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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8장 빌라도, 진리를 알지만 결단하지 못한 사람

LNCK 2026. 4. 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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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주간       출처

 

◈빌라도, 진리를 알지만 결단하지 못한 사람        요18:28~38      2026-04-02

 

우리는 계속해서 “십자가를 만난 사람들”이라는 주제의 말씀을 가지고

새벽에 함께 말씀을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빌라도>에 대해서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빌라도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신경 가운데 그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는, 빌라도의 이름도 함께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하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 사도신경의 말씀을 가만히 보면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빌라도에게’, ‘에게’라는 뜻은 어떤 뜻일까요?

 

우리는 흔히 ‘빌라도 때문에 고난을 받으사’ 라고 해석할 때가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우리 때문입니다.

빌라도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계속해서 말씀을 살펴보겠지만, 빌라도는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신경에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기록해 놓은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죠.

 

그 이유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역사성에 대한 증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역사적인 인물이었고, *로마 역사책에 기록이 나옵니다.

그의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예수님의 죽음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인 실존의 인물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빌라도 라는 인물을 하나 집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빌라도가 만난 십자가, 그 앞에서 빌라도의 모습은 어땠는가를

한번 살펴보고 ‘우리 안에는 과연 빌라도와 같은 모습이 없는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라고 했을 때. ‘본디오’는 그의 가문을 말합니다.

본디오 집안의 빌라도가 되는 것이죠.

 

이 빌라도는 유대의 다섯 번째 총독이었어요.

지금 로마제국의 식민지 아래 있는데, 로마에서 보낸 총독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땅의 실제적인 실세입니다.

유대 땅 안에 자치 통치 조직으로 왕도 있었고, 대제사장도 있었지만, *유대인 계열

그들 위에 있는 존재가 본디오 빌라도였습니다. *로마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기도하시고 체포당하십니다.

그리고 새벽까지 다섯 번의 재판을 받으세요.

그러니 예수님은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이미 몸이 지칠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1) 전직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가시죠.

예수님이 가야바에게 심문 받으실 때와 아울러서

이때 베드로가 따라왔다가 세 번 부인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2) 그 다음에 현직 대제사장이 되는 가야바에게 끌려가십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에 의해서 ‘예수를 죽이자’ 라고 이미 결론은 내려졌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서 안나스와 가야바의 법정(가옥)은 같은 건물은 아니었으나,

매우 가까운 곳에 붙어 있거나, 하나의 큰 단지 Complex 내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 대제사장 가문의 구조는 거대한 뜰 court을 중심으로, 뜰(마당)을 공유했죠.

여러 채의 건물이 연결된 형태였으며, 그 뜰(마당)이 곧 재판정이었죠.

안나스의 집과 가야바의 집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거나, 한 울타리 안에 있어 뜰을 공유했죠.

 

3) 그렇지만 사형 허락을 받고자, 총독 빌라도에게 보내지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고요.

 

4) 그런데 빌라도가 보니까 전혀 죄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갈릴리를 다스리고 있었던 분봉왕 헤롯에게 보내버립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관할에 속했고, 마침 그가 예루살렘에 와 있었어요.

 

5) 헤롯이 보니까 역시 죄가 없기에, 다시금 빌라도에게 보내집니다.

이 정황이 새벽에 다 벌어진 일이에요.

 

예수님은 다섯 번이나 새벽에 옮겨다니면서 심문과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형을 최종적으로내린 사람은, 빌라도가 되는 것이죠.

 

◑빌라도의 세 번의 예수님 무죄 선언

 

이제 사람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잡아다가 최종적으로 빌라도 앞에 끌고 왔어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 했지만,

빌라도 입장에서는 그들의 종교법을 알 리도 없고,

그것 때문에 사람을 죽일 이유도 없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데리고 올 때는 "정치적인 프레임을 씌워서" 예수님을 끌고 왔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왕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가 왕이 되려고 합니다.

라는 등의 명분을 만들어서, 빌라도 앞에 데리고 온 것입니다.

 

요18: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그들이(주로 성전경비병, 대제사장의 부하들)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고 왔는데, '새벽이라' 라고 되어져 있어요.

 

그런데 빌라도가 있었던 관정으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원래 빌라도가 머무는 곳은 가이사랴 인데, 지금 이때는 유월절 명절이었습니다. 주1)

 

유월절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모이면 여러가지 많은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총독이 지금 관정 가운데 와 있었던 것입니다. *안토니아 요새, 혹은 헤롯 궁전

 

지금 그가 예루살렘에 와 있다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위협적이었어요.

'총독이 와 있다'는 표시로, 총독의 깃발이 꽂혀 있으면, 사람들이 긴장하게 되겠죠.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 앞으로 끌고 왔지만, 오늘 말씀을 보니까,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 식사를 먹고자 하여,

관정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28

 

유대인들은 '이방인 집 안으로 들어가면 더럽다(부정탄다)'고 여겼어요.

더욱이 지금 유월절 명절입니다. 유월절 잔치 식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죽이기는 원했지만, 그래서 빌라도의 관정 앞까지는 왔지만,

그 관정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몸을 더럽히면 안 되기 때문에,

이방인의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월절은 무엇을 지키는 날입니까?

어린 양의 대속적 죽음을 기념하고 지키는 날이 유월절입니다. 그들은 철저한 종교인이었죠.

그들은 율월절에 부정하지 않겠다고 관정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 유월절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가운데 오셨는데,

그분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종교인들이었어요.

종교에서 명한 바 규례를 지키면, 본인들이 깨끗한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가리키는 실체가 이 땅 가운데 오셨는데,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죠.

외적으로는 정결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내면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종교는 지켰지만, 주님을 거부하고 있어요.

유월절 떡을 먹기는 원했지만, 유월절의 실체, 주인공이신 어린 양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죠.

자신들의 종교적인 위치와 자리를 지키고자, 예수님을 몰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라도 안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요18: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유대인들이 관정 앞까지는 왔지만, 들어오지 않으니까,

빌라도가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나가서 묻습니다.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그들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요18: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우리가 행악자를 끌고 왔는데 이 사람을 재판에 넘기려고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보니까, 전혀 행악자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악자란, 사형을 당할 만큼의 큰 죄를 지은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아니라면, 대제사장의 재판으로 벌써 끝냈을 것입니다.

 

빌라도가 보니까 전혀 그만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이렇게 말을 했어요.

 

요18: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그를 데려다가 너희의 법대로 재판하라'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죽일 만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그냥 너희의 유대 종교 법대로 알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구약시대부터 대제사장이 사법 재판권이 있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도 대제사장이 맡았습니다. 그런 자치 사법권이 있었지만,

사람을 죽이는 권한은, 유대 총독의 허가가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31

아직 총독의 재판이 시작도 안 됐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답을 이미 정해놓고 찾아왔어요.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는데요.' 무슨 말이죠?

기어코 죽이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판결 방망이를 땅땅 쳐 달라는 것입니다.

사형을 허락해 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유대 민족은 로마의 식민지 아래 있었기 때문에,

웬만한 종교법은 그들의 법에 의해서 다스릴 수 있었지만, *자치권

사람을 죽이는 권한은 로마 총독에게만 있었어요.

 

그러니 지금 로마 총독 자리에 있었던 빌라도를 찾아와,

그에게 지금 '이 사람을 죽여달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보니까 너무 이상한 겁니다.

'전혀 죽일만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왜 죽여달라고 하는 거지?'

사실 예수님의 외모에서, 선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지,

무슨 강도나 정치선동꾼 같은 기운은 전혀 비춰지지 않잖아요.

 

너무 이상해서 예수님을 관정 안으로 불러다가 다시 묻습니다.

요18: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 말은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에요. 비아냥거리는 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너는 왕 같지가 않은데, 저들이 자꾸 왕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말을 하고 있는데

'네가 진짜 왕이야?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요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시죠.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다'

즉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냐면, 예수님의 나라는 너무 커서

이 땅 안에 가둬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 나라는.. 온 열방이든, 온 우주가 모든 것이 내 나라다' 라는 것을

지금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자 빌라도가 다시 한번 묻는 것이죠.

 

요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즉 예수님께서는 '내가 왕인데 진리의 왕이다' 라고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진리의 나라가 되는 줄 믿습니다.

그분은 이 땅 가운데, 진리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오셨어요.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에 대한 기준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죄인에 대한 기준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죄의 용서함에 대한 기준을 선포하기 위하여... 이 땅 가운데 오신 진리의 왕이 되셨던 것이죠.

그러자 빌라도가 다시 한번 묻습니다.

 

요18: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이 자신을 '진리의 왕이다'라고 하니까,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어요. 궁금증이 살짝 올라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을 듣지는 않았어요.

빌라도는 그 말을 하고, 관정 밖으로 나가서 유대인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가 첫 번째로 선언한 예수님의 무죄 선언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내가 보니까 전혀 죽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빌라도는 순간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그는 정말 엄청난 기회 앞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진리의 왕께 진리를 구했죠.

그런데 그 예수님의 대답을 들으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요18: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그러자 유대인들이 말합니다. '예수가 아니라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요18: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빌라도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아니 왜 이렇게 예수라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것일까?'

 

이때 빌라도가 다시 한번 그들과 흥정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채찍으로 때리라고 명합니다.

 

요19: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 군병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사람들이 계속해서 예수를 죽여달라고 말을 하니까, 빌라도가 어떻게 행동하냐면,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으로 때리게 합니다. 왜 채찍으로 때리는 것이냐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이쯤에서 우리가 서로 양보하자'는 일종의 타협안이었죠.

 

'내가 보니까 이 사람은 죽일 만한 사람은 아니니까,

내가 이 정도까지는 벌을 줄게' 그래서 채찍으로 마구 때리게 합니다. 온몸에 피가 납니다.

가시 면류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우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요구한 죄목이 왕이기 때문에.

 

요19: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이게 빌라도의 두 번째 무죄 선언입니다.

 

'자, 봐라. 이게 진짜 왕이냐? 이런 비참한 모습으로 서 있는 이 사람이 진짜 왕이냐?

그러니까 이쯤하고 여기서 그냥 그만두자' 하는게 빌라도의 속뜻이었어요.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모습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그들 안에 '우리가 좀 과했나?' 라고 하는 마음이 들면서,

사형 요구를 멈추게 하기 위하여. 빌라도는 이와 같은 행동을 한 것입니다.

 

채찍으로 마구 때리고,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왕을 상징하는 자색 옷을 입혀서

예수님을 유대인들 앞으로 내보냅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군병들은 예수님을 손으로 마구 때리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말했어요. 조롱인 거죠.

 

이것은 예수로 하여금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는 왕이 아니었네' 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이와 같은 행동을 하게끔 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요19: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이것이 빌라도가 말한 세 번째 예수님의 무죄 선언이었어요.   *18:38, 19:4, 19:6

빌라도는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물러설 마음이 없었어요. 세 번이나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이번에는 빌라도에게, 정치적인 프레임을 씌우려 했습니다.

 

요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예수님에게 정치적인 프레임을 씌워서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빌라도가 말을 듣지 않으니 빌라도에게도 정치적인 프레임을 덮어씌우는 것입니다.

 

'당신은 가이사(로마 황제)의 충신이 아니다. 그 사람 예수와 한 패다.

반역자를 방관하는 것은, 지금 황제에게 반역을 저지르고 하는 것이다'

 

빌라도는 더 이상 그들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형에 넘겨주게 되는 것이죠.

요19: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결국 빌라도는, 자신의 총독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넘겨줍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자신의 그 위치,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줍니다.

소요를 일으키려는 유대인들과, 그들의 배후 세력인 종교지도자들과 타협을 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가만히 보십시오.

사도신경이 나와 있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정말 빌라도 때문인가요? 얼핏 보면, 빌라도 때문이 아니었어요.

빌라도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세 번이나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했다고, 선언했다고!’ 요18:38, 19:4, 19:6

‘난 어쩔 수가 없었다고.. 그들이 데리고 와서 끊임없이 죽여달라고 말을 했다고..

나는 예수를 살리기 위해서 바라바를 풀어주려고 했고,

예수를 살리기 위해서 채찍으로 때렸고,

예수를 살리기 위해서 세 번이나 죄가 없음을 말했는데,

그들이 나를 (가이사에 대한 반역으로) 몰아가서,

어쩔 수 없이 넘겨준 것이라고...’ 빌라도 안에도 억울함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빌라도의 죄는 무엇입니까?

그의 죄는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넘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자리는, 그 자기 (총독) 자리에서 진실을 가려내고,

진리로 판결하는 것이... 그거 해야 될 위치였는데,

그는 자기의 (총독)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진리를 버립니다.

 

진리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정의가 아니라 자신의 안정을,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의 요구를 따르고 있죠.

 

▲그렇다면 이 질문을 우리에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그 자리 속에서, 진리를 지키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그 자리 속에서, 예수님을 지키고 있습니까?’

 

‘나의 가정에서, 나의 일터에서, 나의 대인관계 속에서

나는 예수님을 지켜내지 못하고, 은근슬쩍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신앙 앙심을 저버리지는 않습니까?’

 

우리 모두는 유대의 지도자들 같은 죄는 짓지 않습니다.

‘예수를 죽이라고, 예수는 가짜라고!’ 그런 죄를 짓는 종교인들은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 죄를 짓고 있냐면, 빌라도와 같은 죄를 짓고 있어요.

진리를 아는데... 내가 있는 일터에서,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또는 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때로는 예수님을 은근슬쩍 넘겨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신앙양심을 버리고 있습니다. 안 그러면 너무 손해가 막대하니까요!

 

왜 사도신경 가운데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가룟 유다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빌라도보다 가룟 유다가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그런데 왜 빌라도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적어도 가룟 유다와 같은 죄는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죄를 실제로 짓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도와 같은 죄’에서 벗어날 사람은 없는 거예요.

‘이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정도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눈 감아주고 넘어가는 것이 맞는 게지...’

 

내 자리에서 어떤 결정 사항이 주어질 때,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은근슬쩍 신앙의 양심을 내려놓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진리를 따르지 않고, 윗선에서 시키는 대로 한다든지, 대중이 요구하는 대로 따른다는 거죠.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 사형에 넘겨주고 난 뒤에,

자기는 아무 허물이 없다고 자기 손을 씻었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무너져 있었어요.

또한 역사가, 그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마27:24

 

여러분, 우리가 이 고난 주간을 보내며 다시 한번

‘나는 과연 내가 서 있는 그 자리 속에서 진리를 끝까지 지키고 있는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나에게 부정을 요구하고 그럴 때,

나는 그곳에서 과연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 자리를 지켜나가고 있는가?

우리가 돌아볼 수 있는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 역시 그 자리를 지키겠다고, 그 관계 유지하겠다고,

예수님을 모른 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서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와 손 씻는 마음으로 예배드리면,

’그래도 나는 저 정도까지는 아니지...‘ 라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땅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이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우리 안에 빌라도의 모습은 없는지

돌아볼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주1)

본디오 빌라도는 평소에는 지중해 연안의 도시인 가이사랴에 머물렀지만,

유월절과 같은 명절 기간에는 군중 소요를 막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가이사랴는, 해안도시로 로마와 왕래하기에 교통이 편리하고,

그래서 팔레스틴의 로마군대 총 본부가 (예루살렘이 아니라) 가이사랴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여기에 2년간 붙잡혀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