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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6장 주님께 하듯 서로를 섬기라

LNCK 2026. 4. 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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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하듯 서로를 섬기라                   고전16:1~12                         2020년

 

여러분, 추석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아주 어려운 명절을 보냈습니다.

이와 같은 어려운 때에, 우리가 참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기만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하게 될 때, 우리 안에 일어나는 가장 놀라운 변화는

주님께 하듯이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을 정말 바라보고 있다는 가장 놀라운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에게서 주님을 보고,

주님께 하듯이 그를 섬기는 것입니다.

 

▲본문에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면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기근을 만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헌금이, 고전16:1절에 ‘성도들을 도우려고 모으는 헌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16:3절에서는 ‘여러분의 선물’이라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위해서 헌금하는 것이,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헌금이 있는데,

이 헌금이 참 귀하고, 또 복이 있는 헌금입니다.

 

이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서, 교회가 재정적인 큰 위기 상황을 맞이했는데,

그런 중에도 참 놀라운 것은, 구제 헌금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목회하는 동안에, 올해처럼 구제 헌금이 많이 들어온 해,

그리고 이렇게 구제헌금을 많이 흘려보낸 해가 없었을 겁니다.

 

지난 특별새벽기도회 때,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해서 감사헌금을 드리면서,

우리 교우들 중에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 이들을 돕는 일에 쓰겠다고 했을 때,

그동안의 특별새벽기도 때 드렸던 헌금보다 비교할 수 없는 그런 많은 헌금이

모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마음에 굉장한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여전히 풍성하다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은 고전16:2절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하되

중요한 원칙을 세 가지 말씀합니다.

 

1) 하나는 한꺼번에 급하게 헌금하지 말고, 매주 헌금을 하라(모아두라).

2) 두 번째는 모든 성도들이 다 헌금을 하라.

3) 세 번째는 자기 수입에 맞추어서 헌금을 하라.   고전16:2

 

이렇게 헌금에 대한 기준을 정해주고, 그렇게 헌금하도록 권합니다.

사도바울이 방문했을 때, 그저 갑작스럽게 또 형식적으로 그렇게 헌금하지 말고,

마음을 기울여서, 정성을 다해서 헌금을 하라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굳이 헌금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헌금을 드리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복이 된다는 사실을

사도바울이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눅6:3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우리가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나누는 것은,

사실은 우리가 복을 받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복이 있는 사람은, 정말 주는 사람입니다.

재정도 주고, 용서도 주고, 사랑도 주고... 주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당시 성도들이 나누어 주는 일에 대해서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공산혁명이 일어났던 제정 러시아 당시에는, 그릇 하나에도 십자가 문양을 새겼을 정도로

온 나라가 정말 예수를 잘 믿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회와 러시아 귀족들이, 그렇게 어렵고 가난한 농노들을 향하여

나누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정말 주님의 마음을 품지 않았던 거죠.

그러다가 공산혁명이 일어나게 된 겁니다.

*농노 農奴 : 토지에 귀속되어, 주거 이전의 자유가 없고, 영주에게 종속된 농민을 뜻함.

 

우리가 주는 일, 정말 주님의 마음을 품고 어려운 사람들을 주께 하듯이 섬기는 일은,

사실 우리 자신이 복을 받는 겁니다.

 

어려운 사람, 어려운 교회, 어려운 목회자, 어려운 선교사님들을 돕는 것은

사실 엄청난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마10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가 받을 상을 그가 받을 것이고,

의인을 영접하면 의인이 받을 상을 그가 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한그릇 이라도 대접하면,

결코 그 상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마10:41~42

 

정말 놀라운 말씀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선교사와 똑같은 상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선교사를 대접하면, 주님의 종이 받을 상을, 우리가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인이나 의로운 종을 대접하기만 하면, 내가 의인의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는 일이, 사실은 말할 수 없는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정말 주님께 하듯이 섬기는 눈이

여러분에게 열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금년 2020년이 참 어려운 해이지만, 구제 헌금이 이렇게 많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또 여러 목사님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회마다 거의 동일한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아직 포기하지 않으신 겁니다.

2020년은 어떤 의미에서는, ‘복의 씨를 많이 심은 해’ 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죠.

 

▲이어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자기를 대신해서

제자 디모데를 보낸다는 말씀을 합니다.

 

고전16: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이 부분에서도 ‘우리가 주님께 하듯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사도바울은, 개인적으로 자기가 고린도교회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가서 반가운 교인들도 만나고, 또 그들로부터 위로도 받고,

그리고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듯 방문하는 게 아니고,

조금 비교적 오랜 시간을 머무르고 싶다는 고백을 그가 했습니다.

 

16:7절에 보면 ‘지금 나는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서 여러분을 만나 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얼마 동안 여러분과 함께 머무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에게 유익된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전적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이 섬겨야 될 사람은, 고린도 교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직까지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었고,

그들에게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로 가는 것(미전도 지역 선교)이,

주님이 기뻐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사도 바울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을 너무나 어렵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을 주님께 하듯이 섬겨야 했었습니다.

 

16:9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에게 큰 문이 활짝 열려서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방해를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새번역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가면 편안히 자기를 환영해줄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있지만

거기 (미전도 지역)가면 자기를 핍박할 고린도교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사도바올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삶의 원칙이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주께 하듯이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길이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길일까?’ 분별하기가 어려운 순간이

우리에게는 계속 닥쳐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경험에 비춰보면, 이제는 어떤 뚜렷한 지혜가 생기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떠나고 싶을 때는.. 대부분 떠나지 말아야 될 때입니다.

내가 떠나고 싶지 않을 때는.. 어쩌면 떠나야 될 때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정말 꼭 하고 싶은 일은.. 아직 해서는 안 될 때예요.

정말 하기 싫은 일은.. 이제 진짜 해야 될 일이기도 합니다. ★

 

중요한 기준은 내 유익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으냐, 하기 싫으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느냐?’ 이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정말 지혜 있는 사람, 정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이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가야 하기 때문에

고린도교회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니까,

젊은 제자 디모데를 자기 대신 고린도교회에 보내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러나 이 디모데는 사실은 굉장히 젊고 아직도 미숙하고,

그리고 심성이 굉장히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에서는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용기를 가지고 담력을 가지고 사역을 하라’고

권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디모데를 주의 종으로 잘 섬겨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해야 했었습니다.

 

16:10절에 ‘디모데가 그리로 가거든 아무 두려움 없이 여러분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부탁은, 사실 사도 바울도 힘들고, 디모데도 힘들고,

고린도 교인들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담임 목사가 심방 오기를 원하는데, 담임 목사가 어느 전도사님을 대신 보냈다면,

그 교인 입장에서는, 그 전도사님을 주님께 하듯이 그렇게 영접하기 쉽겠습니까?

 

지금 그와 같은 처지가 된 겁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오기를 고린도교인들은 간절히 원하는데, 아주 젊은 디모데를 보낸 겁니다.

 

그리고는 그 디모데를 주님의 종이라고 그렇게 잘 대접을 해달라니,

고린도 교인들이 과연 이것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을까요?

 

지금도 우리 시대에, 온라인 생방송으로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상황이 되니까,

어느 특정한 목사에게로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쏠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사람을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신앙생활 해야 한다는 뜻

 

사실 목사나 전도사나 그를 쓰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 종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주인이 중요한 것이죠.

 

우리가 정말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렸다면,

그렇다면 어느 목사나 어느 전도사님을 통해서도, 우리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그 눈이 뜨여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때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사실 사도바울은 디모데보다도 아볼로를 먼저 고린도교회에 보내려고 했습니다.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의 사도바울의 후임자였습니다.

 

그는 구약성경에 대해서도 아주 해박한 사람이었고, 학자였고, 설교도 아주 잘했고,

말에 능이 있었고(수사학이 뛰어났고), 유대인 학자들과 같이 논쟁을 할 때도

늘 이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는 아볼로를 좋아하는 교인들이 많이 있었고,

‘아볼로파’가 형성되어 있었을 정도입니다.

 

어떤 뜻에서 보면, 아볼로는 사도바울과 경쟁자적인 입장에 있을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사도바울은, 아볼로를 고린도교회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아볼로, 당신이 가서 고린도교회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오세요’

사도바울은 인간적인 어떤 시기심이나 경쟁심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일이 더 잘 될까? 어떻게 하면 교회에 유익할까?’

그 생각만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아볼로에게 고린도로 가라고 부탁을 했었던 거죠.

 

그런데 아볼로가 거절을 합니다. 12절에 보면 아볼로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제가 고린도교회에 가지 않겠습니다.

적절한 때가 오면 그때 가겠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는 겁니다.  

 

6: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어떤 뜻에서 보면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에 가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 어떤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을 수도 있고,

고린도교회에 마음이 안 드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지도 모르죠.

 

그러나 성경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사실 아볼로는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렇게 대답했다고 그렇게 깨달아졌습니다. 이 구절, ‘지금은 가지 않겠다’고 했던 이 구절을

다른 번역본에 보면 ‘이제 가는 것은 전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라고 그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볼로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던거죠. 하나님 제가 지금 고린도로 가야 합니까?

근데 아마 응답을 못 받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씀했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에는 아볼로파가 있습니다. 아볼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가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게 되는 일이 좋은 거겠죠.

 

그렇지만 잘못하면 사람 중심의 교회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가서, 실제로 고린도교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파가 더 갈라질 수도 있는, 그런 어려움도 예상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볼로가 스스로 자기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때가 되면 가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주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는 일에 있어서

사도바울도, 아볼로도, 디모데도,

다 사실 그 중심은 ‘어떻게 하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결정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도 가지 않고, 아볼로도 가지 않고,

아주 젊은, 여전히 좀 미숙한 디모데가 가서 고린도교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

정말 주님의 종이라면, 사도바울이나, 아볼로나, 디모데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역사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면, 종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정말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면,

사도바울이 오나, 아볼로가 오나, 디모데가 오나...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결과는 고린도후서에 나옵니다.

고린도후서에 가서 우리가 참 감동을 받습니다. 그들은 디모데를 받아들였습니다.

 

‘아 초대교회는 정말 주님을 바라보는 교회였구나’

저는 지금 우리도 똑같이 이런 믿음의 훈련을 받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우리는 예배당 중심으로 모이는 일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중심 신앙생활을 극복해야 할 절의 기회가 온 거죠.

 

또 하나가 어느 특정 목사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이제 벗어나야 될 때가 온 겁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신앙생활 해야 한다는 뜻

 

중요한 것은, ‘우리와 정말 함께 계시는 예수님’ 그분이신 것입니다.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이제 정말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중요한 교훈은,

주의 종(담임 목사)이 누구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정말 주인 되시는 예수님, 그분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지만,

영적으로는 지금이 오히려 기회입니다.

지금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주 너무나도 놀라운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파벌의 문제, 은사의 문제, 결혼의 문제, 예배의 문제, 부활의 불신 문제 등

한 열 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아주 심각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일관되게 오직 답은 한 가지만 제시하고 있습니다.

‘흐트러지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서로를 섬기라’ 이게 고린도전서 전체의 핵심입니다.

 

‘주님께 하듯이 서로를 섬기라.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하듯이 서로를 섬기면, 그러면 문제는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똑같습니다. 지금 형편이 힘들고 여러가지 상황이 어려워지게 되니까

사람들은 서서히 자기만 생각하게 됩니다. 다 이기적인 생각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가정안에 분란도 일어나고, 또 교회 공동체 안에도 시험이 많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만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만 유난히 어렵다고 그렇게 여깁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합니다. 이럴 때 우리의 살 길이 어디 있습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정말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가르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하듯이 서로를 섬기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도 살고, 우리의 가정도 살고, 우리의 교회도 살고,

우리의 직장 일터도 살고, 우리 나라도 살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보려고 우리가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일기를 써보자는 것입니다.

계속 주님을 주목하고, 주님께 하듯이 서로를 섬기며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 나누면서, 그 삶을 꾸준히 살아 보자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예배 때, 비서로 저를 도와주시는 이영주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설교하는 중에, 자기가 처음 비서로 임명을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볼 때마다, 담임 목사의 안부를 묻는다는 겁니다.

 

비서실에 혹시 자기가 혼자 있으면

‘담임 목사님은 어디 계시느냐, 담임 목사님은 건강이 괜찮으시느냐?’

 

비서인 자기를 보고, (자신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담임 목사에 대해서만 질문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자기가 당황해하고, 처음에는 그게 너무 이상했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죠. 누구의 비서가 된다는 것은, 그와 같은 그런 처지가 되는 거죠.

 

제가 그 설교를 들으면서 저 자신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저를 보면 주님에 대해서 물으시는 거구나..

주님은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실까요? 주님은 어떤 마음이실까요?’

 

이렇게 주의 종(비서)이 해야 될 일은, 나 자신의 생각, 계획이 아니고,

항상 주님의 뜻을 파악하는 일, 주님의 마음을 품는 일, 그래서 주님을 증거하는 일이구나

하는 사실에 대해서 다시 한번 분명하게 깨달아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들은 '당신에게서 예수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십니다.

누구를 대하든지 항상 주님께 하듯이, 그 사람들을 대하게 될 때에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어떤 분은 '아니 언제까지 그렇게 섬기며 살아야만 하는 겁니까?'

그렇게 질문하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주 예수님이 자기의 기쁨의 이유가 된 사람에게는, 섬기는 것이 사실은 가장 큰 복입니다.

 

내 주위 사람들을, 주님을 섬기듯이 섬기고, 가족을 그렇게 섬기고,

교인들을 그렇게 섬기고, 직장 동료들을 그렇게 섬기며 사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왜요? 주님이 그것을 기뻐하시니까요.

나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어떻든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이 증거되면, 주님의 사랑이 전해지면,

그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인 것이죠. 이 사람이 진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갔을 때, 그가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C S 루이스가 쓴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천국 변방을 여행하는 어느 주인공의 행적을 판타지 소설로 묘사한 귀한 책입니다.

 

한 번은 그 주인공이, 어떤 큰 행렬이 천국으로 이렇게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처음에는 그게 강이라고 여겼을 정도로, 엄청난 사람들이

어떤 한 사람을 따라 쭉 들어오는 겁니다.

 

‘저렇게 천국에서 환영을 받고 대접을 받는 저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누군가 어떤 대단한 사람이 죽어서, 이제 천국으로 들어오는 그 환영 행렬이었습니다.

 

‘아마 틀림없이 대단히 유명한 사람일 거야.. 그래서 나도 잘 아는 그런 사람일 거야’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보는데... 전혀 자기가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자기 안내자에게 묻습니다. ‘저 사람이 누굽니까?’

그랬더니 그가 대답하기를 ‘사라 스미스 라는 여인인데,

그가 골더스 그린이라는 곳에 살던 사람입니다’ 라는 겁니다.

 

자기가 전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어요.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전혀 무명의 여인인데도,

저 정도 천국 인파의 환영을 받을 정도면, 정말 특별히 위대한, 유명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아주 중요한 사람인 모양이군요’ 그랬더니,

 

그 안내자가 대답하기를

그렇지요. 위대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명성은, 저 지상에서의 명성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나요?’ 그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그 소설에 나오는 사라 스미스는, 물론 실존한 인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이 세상에서의 명성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명성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하는 그 어떤 한 사람을,

하나님은 잘 알고 계실 수 있습니다. 왜 그렇지요?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하듯이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 사람이었기 때문에.. 천국에서 우대받는 것이죠.

 

그래서 그가 천국에 들어올때, 하나님께서 그를 성대한 환영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람!’ 여러분 이런 복을 놓치시기를 원하십니까?

 

지금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그 점에 대해서 눈을 계속 열어주고 계십니다.

모여서 예배할 수는 없고, 서로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운 때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님을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열려져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사람 때문에, 또 눈에 보이는 예배당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을 주목하지 못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오직 주님만 주목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눈이 뜨여야 합니다. 정말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여야 합니다.

이제는 가족을 보든지, 교인들을 보든지, 여러분 주변에 있는 직장 동료들을 보든지,

항상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이제는 사람을 따지지 맙시다.

우리가 더 이상 사람을 주목하지 맙시다.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십시다.

주님께 하듯이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만 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실 일이 무엇일까? 그것만 생각하고 사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면, 지금 이 어려운 때가 어느덧 지나갈 때가 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놀랍게 달라져 있음을, 우리의 삶 전체가 엄청난 변화가 왔음을

우리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이 여러분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을, 주님께 하듯이 꼭 그렇게 살아보십시오.

주님은 정말 살아계시고,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을

다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같이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제가 오직 하나만 분명히 하고 살겠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주님께 하듯이 그들을 섬기겠습니다.

주님만 계속 바라보며, 주님만 나의 기쁨이 되는 그런 사람들이 일어날 때입니다.

이 어려운 때, 혼란스러운 때를 하나님 기뻐하는 뜻대로 잘 헤쳐나갈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지금이야말로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드러날 때입니다.

주님 저를 증인으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