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우리는 노래합니다 계15:2~4 2026.04.05.
*주제 요약 : 예수님이 부활 승리하셨잖아요.
근데 그 승리가, 고스란히 내 현실에서 나의 승리로 돌아오지는 않는게.. 현실입니다.
부활 승리는 .. 진리이고, 팩트인데
내 삶을 둘러싼 환경은.. 여기가 아직 천국이 아니라서, 한 숨이 나오고, 힘든 경우도 많죠.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찬송, 찬양>입니다.
그게 주님의 부활 승리를, 나에게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찬송 찬양하면서.. 우리는 최후의 부활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래에 나오지만, 만약 찬양이 없었다면,
마틴 루터 킹의 흑인 인권운동이나, 남아공의 인종차별철폐 운동이 실패할 수 있었다는 거죠.
그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만약 찬양이 없다면,
성도의 부활 승리도... 아주 어렵고, 힘들게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찬송
기독교의 특징, 다른 모든 세상의 종교들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노래입니다.
교회가 있는 곳에는 노래(찬송)가 있고, 그리스도인이 모이는 곳에 늘 찬송 소리가 있습니다.
물론 다른 종교들도 노래하긴 하지만, 기독교에서만큼 그렇게 중심적이지 않습니다.
타종교는 노래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교회는요. 모일 때마다 공예배는 물론이고, 가정에 심방을 가도 찬송,
야외에 나가도 찬송, 언제나 직장 신우회에서도 찬송하고 예배합니다.
병원에 환우 심방을 가도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작년에 병석에 계신 어떤 교우의 심방을 갔는데, 말을 거의 못하시는 상황이었어요.
찬송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분의 귀에다 대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찬송했습니다.
‘나의 갈 길을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교우가 마스크를 쓰고 계시는데, 벗겨달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입을 조그맣게 달싹 거립니다.
소리는 안 들리죠. 찬송이 진행되면서 환하게 웃으시는 거예요.
간호하던 가족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 나라 갈 때에’,
이 대목을 찬송할 때에, 정말 성령 감아 받은 영혼이, 어떤 것인지
그 표정으로 생생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찬송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찬송할 때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그리스도인 임을 알게 됩니다.
▲초대교회가 핍박받고 조롱받을 때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관찰한 사람들이 썼던 글들 중에, 이런 문서가 남아있습니다.
2세기 초에 비두니아 지역 총독으로 있던 플리니우스가, 로마 황제에게 편지를 썼어요.
당시 골치 아프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집단에 대해서, 그는 이런 보고서를
황제에게 써서 올렸어요.
「그들은 정해진 날 해 뜨기 전에 모여서, 그리스도를 신으로 받들어
그에게 교대로 (교창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주1)
초기 기독교가 외부인들에게 남긴 가장 깊은 인상은 “그들은 노래하는 사람들이다”는 거죠.
성경에서 가장 긴 책이 시편이잖아요. 노래잖아요. 구약신앙은 출발부터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할 때, 그 큰 기사를 전하는 스토리에도 ‘노래’가 나옵니다.
출15: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20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백성들이 다 건넌 후에
미리암은 여인들과 함께 찬양합니다. '여인들'이라고 하는 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이 여인들은요. 용사가 아닙니다. 고대의 나라 전쟁틀을 상상해보세요.
전쟁은 늘 남자들이 합니다.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고 돌아와요.
완전히 죽을 뻔했던 그 백성들이 이제 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구원'이라고 불렀어요. *'구원'이란 말에는 이런 뜻도 포함하죠.
남자들, 전사들은 승리의 영광으로 구원자로 돌아오고, 여자들은 노래합니다.
최고의 영광은 전사들에게, 나라를 구한 남자 영웅들에게 돌려집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 영웅이 없습니다.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누가 이겼습니까?
하나님이 승리하신 거예요. 누가 도와드렸습니까? Nobody!
바로가 말과 병거 마병과 함께 바닷물에 휩쓸려갔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죽음의 바다가 없었습니다. 생명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죽음의 바다가 생명의 바다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거기서 홍해를 건너면서, 이스라엘의 신앙이 탄생한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노래가 있었습니다.
홀로 큰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만 찬양하는 거예요.
▲신약에 와서 예수님 부활하셨을 때도,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앞서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여기에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의 홍해 하나님의 승리, 신약의 부활.. 역시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을 장사지낸 무덤은, 아리마대 요셉의 개인 무덤이잖아요. 가족 무덤이잖아요.
민간 소유예요. 그걸 경비병이 와서 지키는데요.
실제로 지킨 이들은, 사설 경비원으로 봅니다. 중요한 건 아니에요. 주2)
그리고 그 무덤을 큰 돌로 막아 놓았습니다.
여자들은 향품을 들고 시신을 잘 모시기 위해 가면서도 ‘누가 돌을 옮겨주지?’
아무런 대책이 없던 사람이었어요. 아무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5장과 똑같은 구도입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승리하시고, 여자들이 노래했는데,
부활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이 승리하시고 여자들이 증언합니다.
왜 여자들이 즉각적으로 노래하지 않았나? 너무 놀라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찬송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쁨의 노래가 계속 이어지고 이어지고 더 커지는 거예요.
마을마다, 도시마다.. 이 찬양이 막 번져가는 거예요. 이 노래가 온 세계를 덮었습니다.
찬양이 기독교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거죠.
그리고 마침내 오늘 우리에게까지 온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일 때마다 그리스도,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합니다.
참고로, 새찬송가 중에 오래된 곡은 4세기 프랑스 예전 노래
99장 '주님 앞에 떨며 서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찬송한 다윗, 찬송을 멸시한 미갈 주3)
◑예수님의 부활 승리와, 나의 승리 사이에는 <찬송>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리하셨잖아요.
근데 그 승리가, 고스란히 내 현실에서 나의 승리로 돌아오지는 않는게.. 현실입니다.
부활 승리는 .. 진리이고, 팩트인데
내 삶을 둘러싼 환경은.. 여기가 아직 천국이 아니라서, 한 숨이 나오고, 힘든 경우도 많죠.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찬송, 찬양>입니다.
그게 주님의 부활 승리를, 나에게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찬송, 찬양하면서.. 우리는 최후의 승리를 향해 기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예배드리잖아요.
예전에는 안식일(토요일)에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부활을 경험하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주일에 그냥 모이기 시작한 거예요.
여러분 초대교인들은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날 가슴이 벅차서
그냥 집에 있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모여서 찬송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매주일이 부활주일인 거예요.
우리가 사순절을 지냈습니다.
40일 동안 슬픔의 절기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주일은 뺍니다. (40일기간에 주일 빼고 계산)
주일에는 그 부활의 기쁨이 너무 커서요. 사순절이지만,
금식할 수 없고, 슬퍼할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집들이 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셔서 장례해요.
상복 입고 눈물 흘리고 손님들 맞고 하는데 형제들이 앉아서 뒷방에 가서 얘기하다 보면요.
옛날 이야기 하잖아요. 하다 보면 옛날 엄마 이야기하다 보면요.
즐거운 추억들이 막 나와요. 깔깔깔 웃습니다.
미친 사람 아니야? 아닙니다. 여러분 그게 행복한 집 아닌가요?
아무리 슬픈 가운데도 하나님 주신 기쁨이 있는 가정이 복된 가정인 줄 믿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삶의 고난 가운데서 우리는 웃을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전도서 보셨잖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헛되다 헛되다 탄식하고 고통이지만,
중간중간에 자꾸 뭐가 나와요. 즐거움이 나오잖아요.
은총의 햇살이 나오잖아요. 기쁨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은, 물론 슬픔을 만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슬픔만으로 점철될 수 없는 문득문득 기쁨이 찾아오는 삶인 줄 믿습니다.
지리한 장마가 계속되는데.. 잠시 잠시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것처럼..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는요. 가는 곳마다 찬송이 있는 거예요. 왜 찬송합니까?
늘 모든 게 잘되고 편안하고 좋은 일만 있기 때문에 찬송한 거 아니에요.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라는 도시에 들어갑니다.
복음을 지나고 귀신을 쫓아내고 좋은 일을 했는데 핍박을 받습니다.
심한 매를 받고 막 피투성이가 됩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힙니다. 온몸이 욱신거립니다.
차꼬에 채웠는데 차꼬가 풀려지기 전에 그들의 마음이 먼저 풀렸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린 거예요. 행16:23~25
옥문이 열려서 해방되어서 찬송한 게 아니라,
그 깊은 어둠 가운데에, 온몸이 고문의 흔적으로 욱신거리는 가운데에
차꼬에 메어있는 가운데도 찬송했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의 빛이 그 어둠에도 비춰주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은 노력 이전에 뭐라고요? 노래입니다.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우리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우리의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죽음이잖아요.
바울이 차꼬에 채워져 있습니다. 뭘 노력하겠습니까?
차꼬를 풀 수 있습니까? 탈옥할 수 있습니까?
지금 당장 로마 제국을 뒤집어엎을 수 있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런데 찬양합니다. 어둠 속에서 찬양합니다.
그 어떤 빛보다 밝은 빛, 그리스도 생명의 부활의 빛을 보았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희들은 노력하지 않고, 삶을 투쟁하지 (애쓰지) 않고 노래만 하느냐?’
‘너희의 찬양은 자포자기한 사람들의 변명 아닌가?’
여러분 역사를 살펴보면요.
이 어두운 역사 가운데 용기있게 한 발 내디딘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님이 미국에서 민권운동을 할 때에
함께 손에 손잡고 팔짱 끼고 불렀던 노래 We Shall Overcome Some day 아시죠?
그게 원래 흑인 영가요, 찬송가입니다.
‘궁극적인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승리하리라’라는 찬송가예요.
근데 이 찬송가가, 미국에서 흑인인권운동 할 때, 주제곡으로 불리웠죠.
*한국의 양희은이 부른 ‘아침 이슬’처럼요.
‘긴 밤 지세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 보다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요.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We are marching in the light of God
우리는 하나님의 빛 안에서 행진하네’
이게 원래 시아함바 라는 줄루 족의 민요에서 왔습니다.
그리스도 신앙과 만나서 찬송가가 되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다. *위 출처 동영상의 20:30~22:50초
멋지지 않습니까? 그렇죠? 기쁨이 느껴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게 찬송입니다.
여러분 남아공에서 흑인들에 대한 탄압과 불평등이 너무너무 심할 때가 있었죠.
넬스 만델라는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잖아요.
‘자유를 달라 우리도 사람이라’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탄압했을 때
그런데 그들은 행진했습니다. 어떻게 행진했나? 복수, 원한, 분노, 죽창을 들고...
그게 아니고요. 춤추면서 찬양을 불렀습니다. ♬ We are marching in the light of God ♪
여러분, 기쁨의 춤을 추면서 그 총칼 앞에서 행진을 하니까
그 총과 칼이 당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분 이 남아공에... 다 해결이 되잖아요.
그렇게 원한과 복수로 하지 않았고, 찬양을 불러서 결국 승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지만, 그게 진짜 나의 부활 승리가 되기까지는
힘든 현실이라는 간극이 있습니다. *남아공, 미국 남부처럼
이때 진짜 승리하기 위해서.. 성도는 찬송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여러분 아시죠? 보복이 없었습니다.
진실과 화해 참 아름답게 잘하는 거, 우리가 뉴스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피맺힌 분노가 있죠. 슬픈 이야기가 있죠.
그러나 여러분 그것을 슬픔을 슬픔으로 표현할 때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거 있습니다. 뭔가 주장을 하고 싶을 때 뭐해요?
성도는 찬송하는 것입니다.
근데 불교인들은, 나름 평화 시위를 한다고 ‘삼보일배’ 하는 것이, 종종 뉴스에 나오죠.
여러분, 기독교의 찬양과 다른 게 뭡니까?
‘평화로운 사태 해결을 위해서’ ... 사람이 (삼보일배로) 애써서 될 일이 아닙니다. *기쁨 없음
우리 안에 하나님이 기쁨을 주셔야 될 줄 믿습니다. 그래야 사태가 선한 방향으로 해결되죠.
찬양할 때, 우리에게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이기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울과 신라가 감옥에서 부른 노래 남아프리카!
이 사람들이 총칼 앞에서 불렀던 그 노래와 춤,
외부의 결박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내면, 두려움의 그 복수심,
그것을 하나님이 친히 깨트리신 줄 믿습니다.
▲최근에 한국에도 <신의 악단>이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처음에 조그맣게 시작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봤어요. 보신 분들 많을 겁니다.
북한이 너무 가난하니까 어떻게 돈을 구해보려고 *픽션 스토리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갔습니다.
거기 있는 NGO하고 어떻게 연결해서, 2억 달러를 지원 받기로 했는데
그쪽에서 너무 난감해하는 거예요. ‘돈을 그냥 지원할 수 없다...’
북한이 너무 인권을 억압하는 나라로 인식돼 있으니까
뭔가 좀 인권이 개선되었다는 근거를 보여 달라.. 그러면 지원하겠다... 한 거죠.
그래서 아이디를 낸 게, 평양에다가 교회를 두 개 짓고
여기서 예배하는 모습, 부흥회 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면...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당국이 ‘부흥회’를 기획합니다.
근데 누구한테 맡기는가 하면, 보위부에게 맡겨요.
보위부 간부가 영화에서 이렇게 말하죠.
‘아니 우리가 예수쟁이 때려잡는 부대인데, 예수쟁이 역할하게 생겼습니까?’
막 항의하다가... 상부에서 하라니까 해야 되죠.
그래서 악단들 모아가지고요. 이제 가짜로 성경도 보고, 찬양도 하고
가짜 부흥회를 하는 거예요.
근데 놀라운 게 그렇게 연습하느라고 계속 하다 보니까요.
그 찬송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 거예요. 그 곡조가 잊혀지지 않는 거예요.
보위부 장교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보위부는 원래 뽑을 때에, 당에 대한 충성심이 가장 투철한 자를 뽑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빨갱이 중에 빨갱이’를 뽑아서 보위부를 구성하는데,
그 장교는, 자기 삶에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거부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에 나중에는 막 잡혀가고 서로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그러면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죽는.. 그런 장면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이 스토리 자체는 픽션이지만, 북한의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체제 선전을 위해서 교회를 만들어 놨는데
교회에서 연극으로 설교하고, 연극으로 노래도 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마음이 움직여서, 믿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하는 증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노래가, 찬양이 있는 곳에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승리가 있습니다.
‘예수 승리하셨네, 나도 승리하겠네’
우리가 이걸 압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때로 우리의 느낌이요. 이게 너무 멀어요.
예수님이 승리하신 건 알겠는데, 그 승리를 나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은 아는데요.
내 삶으로 승리가 느껴지지 않을 때
이 둘 사이가 너무나 멀다고 느낄 때... 아셔야 됩니다. 그 사이에 뭐가 있어요?
노래가 있어요. 찬양하면 그 승리가 내 승리가 되는 거예요.
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어요. 물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찬양합니다.
그러나 때로 찬양하면서 믿음이 생기기도 해요.
마음을 열면 입술이 열리는데, 입술을 열 때 마음이 열리기도 해요.
그래서 여러분 권면합니다. 예배에서 찬양할 때에 마음을 담아요.
그냥 흘려서 찬양하지 마시고 한자 한자 곰곰이 묵상하며
마음을 실어서 찬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 마음만 담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찬양해야 됩니다.
우리가 여기에 수백 명, 수천 명이 모여서 찬송해도
저 뒤에 앉아있는 분의 개인의 목소리를 저는 못 듣지만,
하나님은 하나하나 따로따로 각각 듣고 계신 줄 믿습니다.
가끔씩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시고 찬양하세요. ‘하나님 제 목소리 들리시죠?’
‘제가 찬양할게요. 하나님 사랑합니다.’ 그렇게 고백하며 찬양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놀랍도록 바꾸실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 평소에 할 수 있으면 자주 찬양을 들으십시오.
한 줄 한 줄 묵상하면서.. 특별히 예배 때 불렀던 찬송들요.
요즘 찬송 들을 도구가 많잖아요. 계속해서 듣는 거 너무너무 좋은 영적인 습관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하면 찬양팀, 찬양대에 자원해서 헌신하십시오.
믿음 생활하는 참 좋은 길입니다.
누군가 만약 <교회를 10배 즐기는 방법>이라는 책을 쓴다면
반드시 거기에 ‘찬양대에 참여해 보십시오’ 라는 대목이 들어갈 것 같아요.
여러분 찬양을 연습하고 정성껏 하나님께 드리는 습관이
우리 삶을 얼마나 바꾸고 행복하게 만드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찬양대들 얼굴 한번 보세요.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까?
늘 우리를 대표해서 찬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찬양대 하고 싶어도 어색하거나 용기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서
머뭇거리는 분이 계실 것 같아서, 주보의 링크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러분이 문의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출15장, ‘미리암의 찬양’에서 시작된 이 모든 노래와 찬양의 역사가
요한계시록 성경 끝까지 이어집니다.
계15: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구약의 출애굽기의 찬양, 홍해를 건넜을 때의 그 넘치는 은혜의 찬양과 어린 양의 노래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만앙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가 함께 만나는 거예요.
출15:19절이 계15:3절과 만나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 같은 구원의 노래이니까요!
이렇게 구약과 신약이 함께 만나는 거예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았습니다. 찬양 아래서 남과 여의 차별이 없어지고
모두가 주님 앞에 무릎 꿇는 평등한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남자 용사들 뿐만 아니라, 여인들까지
모두가 똑같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보배로운 자녀로 주님 찬양하며 영광 돌릴 때,
하나님이 최고의 영광을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찬양할 때에 우리는 전진할 힘을 얻습니다.
목자의 아들도 왕의 딸도 공주도, 평민도 모두 다 한마당에 나와서 춤추며
노래하고 영광의 왕 오직 하나님만이 왕이십니다.
찬양으로 고백할 때 그 안에서 하나 될 수 있고
그 찬양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노래 중에서 백인과 흑인이 하나가 되잖아요.
복음이 가는 곳에 부활하신 예수님 예배받으시고 다스리는 모든 곳에 하나 되는
화해와 평화의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계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모든 열방들이 남자와 여자와 종과 자유자와 문명인과 야만이라 불렸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 예배하는 날을 우리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소망 가운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다시 한번 외쳐볼까요?
’예수 부활하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예수 승리하셨네! 할렐루야!‘
예수의 부활 승리와 나의 부활 승리 사이에 뭐가 있다고요?
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에 하나님 승리를 나의 승리로 삼고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은총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
주1)
이 편지 내용은 역사적으로 매우 유명한 소 플리니우스(Pliny the Younger)가
AD 112년경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서신 (Epistulae X, 96)의 일부분입니다.
이 편지는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독교 예배의 초기 형태 : 2세기 초 기독교인들이 '정해진 날(주일)'에 모여
그리스도를 신으로 찬양하는 노래(찬송가)를 교창 antiphonal 형식으로 불렀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외부인의 시선 : 기독교인이 아닌 로마 총독이 보기에 이들의 신앙이
"부적절하고 지나친 미신"처럼 보였음을 보여줍니다.
-사회적 문제 인식 : 플리니우스는 기독교인들의 행동이 로마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생각하여 황제에게 처벌 방침을 물었습니다.
이 편지에 대한 트라야누스 황제의 답신은 "기독교인을 굳이 찾아내려 하지 말고,
고발되어 증명된 경우에만 처벌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
당시 로마의 기독교 정책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주2)
마28:12~13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해 갔다 하라’
본래는 총독에게 로마 군병 보내서 지켜달라고 했을 겁니다. 무슨 일이 날지 모릅니다.
예를 들면,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서, 여론을 조작해서 살아났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총독에게 로마 경비병을 요청했을 겁니다.
사람들은 보통, 예수님의 무덤을 ‘로마군인들이 지켰다’고 얘기하는데요,
실제로는 ‘(유대인) 자치 경비병’들이 지켰다고 봅니다.
왜냐면, 마28:12에는 ‘군인’으로 나와요. 로마 군인입니다. *스트라티오테스
그런데 마28:4엔 ‘지키는 자들’로 나와요. *테레오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마28:4
유추하건데, 돈을 받은 것은 로마 군인들이고, 제법 지휘관이겠죠. 마28:12, 15
실제로 무덤을 지킨 자들은 ‘(유대인) 경비’쯤 되는 것으로 봅니다. *아파트 경비원처럼
그 로마군인이 돈을 주고 사설 경비원을 고용한 것입니다.
실제 로마 군대는, 원래 자기 고유 임무가 있잖아요.
주3) 찬양한 다윗, 찬양을 멸시한 미갈
구약에서부터 이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많이 이겼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인생의 최고의 순간은
어떤 큰 전쟁에서 승리한 때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법궤가 이방 땅에 가 있다가, 돌아올 때에 너무 기뻤습니다.
왕의 체통을 벗어던진 채, 속살이 보이도록 그렇게 춤을 추었습니다.
그때 불렀던 시편 24편입니다. 7절부터 함께 읽습니다.
시24: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10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여러분, 여기에 그 다윗의 넘치는 기쁨,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다윗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이 찬송의 장면에도 한 여인이 나옵니다. 미갈, 다윗의 아내입니다.
사무엘하에 보면, 미갈은 공주 스타일입니다. 품위, 품격이 고상했겠죠.
‘나는 찬송을 해도 좀 점잖게 해, 기도를 해도 조용히 해!’
좋은데요. 꼭 그래야만 한다는 건 아닌 거예요.
그거는요, 사람이 품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은혜를 못 받아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목동 출신이잖아요. 그래서 아마 미갈이 다윗을 멸시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출애굽기를 보았기 때문에 여인들의 역할을 압니다.
하나님의 승리, 승리는 하나님이 하시고
여인들이 앞장서서 노래하고 경축하는 거예요.
여호와의 법궤가 지금 들어옵니다. 승리의 축제, 회복의 축제입니다.
누가 주인공이 돼야 됩니까? 누가 영웅이 돼야 됩니까?
미갈의 입장에서는 내 남편(다윗)이에요.
‘내 남편이 모든 영광을 받으면, 영광의 왕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나도 앞장서서 온 나라 여인들을 대표해서 퍼스트 레이디로서
여보 수고하셨어요. 여러분 제 남편이에요. 하고 자랑하고...’
미갈은 그 영광을 나누어 갖고 싶은 거예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대신에.
근데 미갈이 지금 보니까요. 법궤가 들어오는데,
내 남편이 주인공이 아니에요.
남편이 백댄스를 하고 있어요.
‘당신 바보야? 영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왜 그렇게 땀 흘리면서 춤추고 있어?’
여러분 미갈은.. 미리암처럼, 부활의 아침 그 여인들처럼, 함께 찬양할 수 있었던 사람이에요.
그래야 할 사람이에요.
미갈은 공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요. 아버지 사울랑이 비참하게 죽고
왕조가 문 닫았습니다. 공주면 뭐해요? 왕조가 망했는데... 더 비참하죠.
다른 나라로 생각하면, 죽거나 노예가 되거나 둘 중에 하나예요.
그런데 계속 왕비가 되었어요.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가장 찬양해야 될 사람이 이 미갈이에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찬양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저주를 듣게 되죠.
여러분 세상의 모든 나라는 쇠하는 나라입니다. 어떤 강대국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만이 쇠하지 않는 영원한 나라인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에, 우리를 흔들리지 않는 공주, 왕자로 삼아주신 줄 믿습니다.
그 어떤 인간의 역사의 격변도, 우리 신분을 박탈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