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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6장 혹시 구멍 난 구명보트에 타고 계신가요?

LNCK 2026. 4. 7. 09:54

설교본문 색인                 <전도주일>      <주 되심 Lordship>         출처

 

◈혹시 구멍 난 구명보트에 타고 계신가요?    행16:29-32, 롬10:9~10   2026.03.29.

[복음수업 6]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출처 동영상의 1:50초부터 녹취

‘너희는 가라,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제 성령을 받은 후로 우리는 세상으로 달려나가서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한번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해야 된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동안 내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그 예수님을 단 한마디로 소개를 해야 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다 Jesus is the Lord’

예수님의 우리의 삶의 주인 되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듣기에는 굉장히 평범한 메시지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대는 가히 혁명적인 선언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로마 제국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가장 대표적인 고백이 무엇이었죠?

‘Caesar is Lord! 로마의 황제 Caesar가 우리의 주인이시다’가 가장 대표적인 고백입니다.

 

로마 황제의 통치 아래에서, 로마 황제의 주권 아래에서 살고 있음을

그들은 고백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 시대에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라고 외치는 것은, 로마 제국에 대한 정면도전입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이 메시지를 외쳤기 때문에 ‘Jesus is the Lord’

그들의 삶에는 무서운 핍박과 환란의 폭풍우가 휘몰아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이유로, 그들은 사회적인 지위를 박탈당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매장됐습니다. 원형 경기장에 끌려가서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고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으며, 창에 찔려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숨을 내어 걸고 그리스도 예수의 주인 되심을 외쳤습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흘렀고, 그 순교자의 피가 씨앗이 되어서

교회는 더 부흥하고, 더 성장하며, 더 확장했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든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했고,

그들이 가는 곳마다 어둠의 세력이 물러났으며, 역사의 지평이 뒤흔들리고

하나님 나라가 능력있게 확장되었으며,

그들은 삶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복음의 능력으로, 로마 제국을 뒤집어 엎어버렸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은 흘러 흘러 지나가고, 2000년이 더 넘는 시간이 지난

오늘 현대교회는 어떻습니까? 오늘날의 수많은 교회는 너무나 심하게 변질되었습니다.

심각하게 병에 들여 있습니다. 너무나도 무기력합니다.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교회로 인하여 세상은커녕, 지역사회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지역사회까지 갈 곳도 없죠.

우리가 속해있는 직장과 학교와 가정도 변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볼 때, ‘내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나의 삶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는가?’라는 간단한 질문에도 쉽게 답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차고도 넘쳐납니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합니다.

우리가 비난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비난을 받는 이유를 단 하나로 요약을 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기보다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문제가 생기면.. 걱정하고 근심합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불평과 불만을 쏟아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조금만 상처를 주면.. 그 사람을 미워하고 끊임없이 뒷담화를 늘어놓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과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똑같습니다.

돈, 명예, 권력, 출세, 그리고 성공...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복음 수업 첫 번째 시간에 우리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오늘날의 교회는 왜 이렇게 변질된 것입니까? 우리가 왜 이렇게 무기력해졌을까요?’

 

그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신앙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앙의 첫 단추는 복음입니다. 복음은 모든 신앙생활의 기초일 뿐 아니라

신앙생활의 핵심이고, 본질이며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적용하면, 신앙 생활 전부가 망가집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주어지겠죠.

‘혹시라도 내가 처음부터 복음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읽으셨던

모든 전도지의 내용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에는 수 백 개의 전도지가 있습니다.

네, 어떤 전도지를 읽으셨던 상관없습니다.

전도지마다 단어 선택과 표현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모든 복음의 내용이, 단 세 개의 핵심 메시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오늘날에 선포되고 있는 복음의 내용은, 이 세 가지 메시지가 핵심입니다.

-첫번째 메시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두번째 메시지, 인간은 죄인이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세번째 메시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을 수 있으니,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조금 더 길고, 조금 더 짧을 수는 있겠으나,

오늘날 선포되고 있는 모든 복음의 내용은, 절대 다수의 경우,

이 세 가지의 메시지가 바로 핵심 메시지입니다. *전도지이든지, 전도초청설교이든지

 

자 그런데 여러분이 그동안 복음 수업을 통해서 배웠던 내용을 토대로,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이상하다.. 뭔가 중요.한 내용이 빠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실제로 이 메시지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핵심 메시지가 빠져있습니다.

생략된 그 중요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생략되었습니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의 본질이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시간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복음의 핵심이, 곧 하나님의 나라였음을 체계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사도 바울이 전파한 복음의 내용 또한, 하나님의 나라였음을

우리는 함께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본질이요, 핵심인 하나님의 나라가 생략되었고,

그 나라의 주() 되신 주님의 통치에 대한 순종과 헌신이 결여됐다는 것은

너무나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셨는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복음을 이해하는데, 왜 선악과라는 주제를 다뤄야 될까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을 드렸죠.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드셨는지를 알아야, 죄의 본질을 알고,

죄의 본질을 알아야, 구원의 본질을 알 수 있으며,

구원의 본질을 알아야, 복음의 본질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구원 복음은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는 이것을 연결되어서 일관성 있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요,

구원이 무엇입니까? 죄로부터 건지심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내가 중한 병을 앓고 있는데,

내가 앓고 있는 병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정확한 처방이 있고,

정확한 처방이 있어야, 정확한 치료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일관성 있게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러면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다라고 말씀드렸나요?

 

선악과는 하나님의 통치하심,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선포하는 표지판입니다.

그렇다면 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곧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거부한다’

또는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한다’

또는 ‘하나님이 내 삶에 주인 되심을 거부한다’는 다 같은 뜻입니다.

표현만 다르지, 그 본질적인 내용은 똑같습니다.

 

자 그렇다면 정리해 볼까요. 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통치하심, 곧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의 본질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겠죠.

 

그러면 복음의 본질은 무엇이죠?

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나의 삶에 주인 되실 때, 하나님 나라(통치)가 회복이 되고,

우리는 생명과 구원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통치하실 것이요.

주님이 통치하시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곳에, 구원과 생명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된다’라는 말과,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되셨다’ 라는 말 또한 동의어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본질적인 내용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 되셔야, 하나님 나라가 회복이 되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절대로 결단코 빠져서는 안 되는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주인 되심이, 반드시 선포되어야 되겠죠.

예수님이 주인 되실 때,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예수님의 주님 되심을 목숨 걸고 외쳤던 겁니다.

예수님은 주님입니다. 예수님의 주인 되심이, 바로 복음의 본질이고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메시지가 빠지면 결단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선포되는, 우리에게 익숙한 오늘날의 복음의 메시지,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까?

이 메시지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의 주님 되심이

어디에서 설명되고 있는지를 한번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번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2번 ‘인간은 죄인이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3번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을 수 있으니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예수님의 주인 되심이 어디에 설명되고 있죠?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복음의 본 재료,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의 나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주인되심(통치)

오늘날 복음 제시에서 증발해버렸습니다.

이건 너무나도 심각한 문제이죠. 핵심이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자, 다음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아주 고급 외제차가 있습니다. 여러분께 그 차를 드리겠습니다.

심지어 이 차는 풀옵션입니다. 근데 딱 하나가 빠졌는데, 엔진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차가, 차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하죠.

엔진은 차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일에 복음에서 복음의 본질의 핵심이 빠져 있다면,

그 복음의 생명의 능력이 있겠습니까?

복음이 복음으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심은, 우리가 결단코 빠뜨려서는 안되는, 복음의 핵심 내용입니다.

물론 우리가 결신기도를 인도할 때는, 무엇이라고 고백하게 이끌어 주죠?

‘예수님을 나의 삶의 구원자와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결신기도 할 때에서야 ‘주님’이라는 단어를 살짝 끼워 넣기는 합니다.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는, 정작 복음을 설명해 줄 때,

그리스도 예수의 주님 되심을 언급조차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신자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인생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주되심 Lordship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올바르게 결단도 못했죠.

결단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앵무새처럼 ‘이 말을 따라하세요’ 라고 해서

따라하는데...

아무 의미도 모르고 ‘주님’이라는 단어 하나만 살짝 끼워 넣었다고,

정말 그곳에 구원의 능력이 임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적 동의’에 불과하죠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갈 때에,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그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그리스도 예수와 어떤 관계 안에서 살아가야 되는지를

이해하고 결단하여 예수님을 영접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엔 예수님의 주되심 Lordship 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고,

예수 믿는다는 것은, 그 분께 순종하여 믿고 따르는 것임을.. 출발때부터 분명히 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접하는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우리가 결신 기도를 할 때, 두 가지 단어를 사용하죠.

 

‘구원자와 주님으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Savior and Lord 두 단어를 사용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이신 예수님 따로 있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따로 계시기 때문입니까?

아니요. 예수님의 구원자 Savior 되심과 주님 Lord 되심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주님 Lord 되신 예수님이 곧 구원자 Savior 되신 예수님이요.

구원자 Savior 이신 예수님이 곧 주님 Lord 되시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 단어를 사용하다 보니,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마치 이것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은 구원자 Savior 이신 예수님은 좋아합니다.

그런데 주님 Lord 이신 예수님은 무관심한 거예요.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나에게 구원을, 생명을, 혜택을 주시잖아요.

반면에 주님 Lord 이신 예수님은, 자꾸 우리를 향해 명령을 하신단 말이죠.

그래서 ‘나는 주님 Lord 이신 예수님은 별로 달갑지 않고,

예수님을 나의 삶의 구원자 Savior 로만 영접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성도들이

실제로 많이 있습니다. 이게 가능하리라 생각하세요? 불가능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주님이신 예수님이 곧 구원자이신 예수님이시고,

이것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원자로만 영접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비성경일 뿐 아니라 실제로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구원자이자, 주님 되시기 때문입니다.

 

▲자, 그런데 무엇보다도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는지가 가장 중요하겠죠?

그러므로 여러분이 제 말만 듣지 마시고요.

여러분이 직접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 한번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반드시 구원, 영생, 그리고 복음에 관해서 예수님을 소개할 때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구원자 Savior’ 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예수님의 주님 Lord’ 되심을 강조할 때가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구원자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성경의 강조점은, 그리스도 예수의 주인되심에 있다는 점입니다.

 

구원에 대해서, 영생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성경은 거의 전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주인되심 Lordship 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의 엑센트가 어디에 떨어지는지,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를, 직접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 지금부터 여러 성경 구절을 함께 살펴볼 텐데요.

여러분이 ‘주 Lord’ 라는 단어를 보실 때마다, 동그라미 표시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러져 벌벌 떨면서 묻습니다.

‘선생님들이여, 내가 어찌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답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위 구절에 의하면 ‘주 예수님’이십니다. *‘구원자 예수님’이라고 하지 않음

즉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인생의 주인 되심을 우리에게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입술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해야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내 인생에 주인으로 모셔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골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하라’

 

이 구절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주 간단 명료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뿌리를 내리고, 예수 안에 세움을 받아서,

예수 안에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여정이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죠?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순간부터, 비로소 신앙생활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 되시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는 것이죠.

 

벧전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이 말씀은 전도자적인 삶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우리가 빠짐없이 인용하는 중요한 구절이죠.

비신자들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보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달라도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죠.

 

분명히 슬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기뻐합니다.

불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감사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심한 상처를 주어서 미워할 수밖에 없는데, 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들이 물어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당신 안에 있는 소망이 대체 무엇이기에, 당신은 이렇게 다르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그때 말해주라는 겁니다. ‘제 인생의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그 소망을 갖게 되었을까요?

‘너희 마음의 그리스도를 주로 삼았던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에 참된 소망이 있고, 주인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의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이 송두리째 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까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회개하게 되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임하는 그 순간 우리가 반드시 고백해야 되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라고요? 예수를 주라고 우리는 고백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죠.

 

고후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사도 바울이 자기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가 그동안 전파했던 모든 복음의 내용을

딱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복음의 본질, 복음의 핵심이 무엇이라고요?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심을 선포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복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과 사돌들도,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심을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Jesus is the Lord 예수는 주님이시다!’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울서신을 읽어보면,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또는 ‘주 안에서’ 이 표현이 가장 많이 반복 돼요. 왜 그럴까요?

처음부터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의 주인으로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무엇인가요?

‘주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빌2:8b~11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죠.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

 

그리고 예수님이 얼마나 겸손하게 낮아지셨는지를 설명하면서, 그 정점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그러하셨다’는 겁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그로 말며암아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를

방금 읽은 구절에서 설명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를 (무엇이라 하시나요?)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9~11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한마디로 다시 우리의 주인 되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죄의 본질이 무엇이죠?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즉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거부하는 거예요.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망에 이르게 됐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러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다시 하나님의 통치하심 가운데 살 수 있도록,

다시 우리 인생의 주인 되어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 즉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될 때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 되실 때,

죽음에서 생명으로 우리는 옮겨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22:20~21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선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인데요.

 

다시 오실 그분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인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이와 같이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주인공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심을 우리에게 선포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렇게 전적으로 구원에 관해서 예수님을 소개할 때는,

예수님의 주 되심을 설명하는데,

왜 우리는 구원자, 그리고 주님이라는 두 단어를 사용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삶에 주인으로 모셔 드리면, 구원이 임하기 때문이죠.

주인이 바뀌면 구원이 임하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이라고도 하고,

그와 동시에 구원자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겁니다.

 

다만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드리는 것이, 본질이고 핵심입니다.

 

▲이러한 성경적인 개념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세계 2차 대전 때로 한번 돌아가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수많은 유태인들이 독일군에 의해서 학살당했죠.

 

6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단 수용소에서 학살당했습니다.

그들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수용소의 책임자 독일 장교입니다.

생사여탈권이 독일 장교의 손에 있었다는 의미로,

독일 장교가 그들의 ‘삶의 주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목숨 줄을 거머쥐고 있기 때문인 거죠.

 

그렇기에 집단수용소에 갇힌 유대인에게는, 그 어떤... 어떤 소망도 없었습니다.

고통스럽게 살아가다가 비참하고 처참하게 죽을 수 밖에는 없어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면, 대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입니다.

주인이 바뀌어야 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실제로 2차대전 때 오스카 쉰들러라고 하는 독일 사업가가

강제수용소로 가서 한 명 한 명 몸 값을 지불하고 빼내와서

자기 공장에서 일하게 해줬습니다.

 

자 이제 이 사람들은 죽음의 길에서 벗어나서, 생명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졌나요?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러면 오스카 쉰들러 씨에게 선택받은 유태인 입장에서, 이 사업가를 바라볼 때,

그를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장 본질적으로는 나의 새 주인이죠. 주인이 바뀌었으니까요.

그와 동시에 주인이 바뀜으로, 내가 구원을 받았으므로 구원자라고도 부를 수 있겠죠.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삶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죄와 사탄의 종노릇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인생이란 무엇인가요?

고통 가운데 태어나, 고통스럽게 살아가다가,

고통 가운데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을 떠난 모든 자연인의 운명이었어요.

 

그런 가운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어요.

다시 하나님의 통치하심 가운데 들어갈 수 있도록,

주인이 바뀌게 되면,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 되시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질적으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주인이 바뀔 때 구원이 임했으므로,

예수님을 구원자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꼭 기억해야 됩니다. 복음의 본질과 핵심은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심입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 되셔야,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선포되는 복음의 메시지를 보면, 저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변질되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좋은 목적과 취지에서 시작이 되었겠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빠르게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좋은 의욕으로

좀 더 쉽게, 좀 더 빠르게, 좀 더 편리하게 회심으로 인도하려는 목적으로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되는 내용은 다 빼버리고

인간의 귀로 듣기에 가장 달콤한 메시지만 남겨놓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내용을 삭제하다 보니,

그와 함께 복음의 본질여 핵심인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심이 같이 사라져버리지는 않았는가를

생각해봅니다. 그거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복음 자체 크나큰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유람선을 타셨습니다.

휴가를 즐기고 있는데, 그 유람선이 큰 사고가 나서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물에 가라앉기 직전에, 여러분께서 구사일생으로 구명보트에 타셨습니다.

'아, 이제는 내가 살았구나'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구명보트 중앙에 큰 구멍이 뚫려 있어서, 바닷물이 콸콸콸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구명보트가, 생명을 구하는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구멍난 구명보트’ 같은 복음을 붙들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혹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시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내일이 아닌 오늘 꼭 예수님께로 달려 나오십시오. 결단하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제가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은을 부수고 들어가서라도

여러분을 회심으로 인도해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 다해 간절한 마음으로 이 복음의 메시지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 예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참된 생명이, 참된 기쁨이,

참된 평강이, 참된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혹시 여러분이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셨다면,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하심 가운데 살아가고 계신가요?

만일에 정말 그렇다면.. 나의 모든 시간, 나의 모든 재정, 나의 모든 재능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삶의 열매를 보고 알 수 있겠죠.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불러주셨으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저의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