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권위 슥3:6~7 [스가랴16]
스가랴서 전반부인 1~6장은 총 8개의 환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에 오늘 살펴보는 스가랴서 3장은 4번째 환상에 해당됩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흰 새 옷을 입혀주시는 환상입니다.
◑서론
첫 3개의 환상의 내용은, 성전을 재건할 때
그 성전 가운데 다시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거였습니다.
특별히 예루살렘 성전 가운데, 또 예루살렘 성읍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고, 그 성읍에 거하는 백성들을 어떻게 축복하시고,
어떻게 보호하시고, 또 어떻게 영광스럽게 하시는가...
하는 약속의 말씀이 첫 3개 환상의 내용이었습니다.
| 스가랴서에 나오는 8가지 환상 1 붉은 말 탄 자의 환상 1:7~17 2 네 뿔과 네 대장장이들 1:18~21 3 측량줄을 잡은자 2:1~13 4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옷 3:1~10 5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 4장 6 날아가는 두루마리 5:1~14 7 에바 바구니 속에 앉은 여인, 5:1~11 8 네 대의 병거 6:1~8 |
이어지는 이제 네 번째, 다섯 번째 환상의 내용은,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성 예루살렘에 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사람은 타락한 존재고 또 연약한 존재입니다.
‘타락한 존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이제 네 번째, 다섯 번째 메시지의 시작점이 되는 질문입니다.
잠시 잠깐이라면 몰라도, 인간의 연약함과 죄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인데,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데,
어떻게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어떻게 영원히 하나님의 성에 거할 수 있는가요?
또 ‘연약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네 번째, 다섯 번째 환상이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뭐냐면, 그것은 우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때문이라는 거예요.
네, 그래서 네 번째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또 이어지는 4장의 다섯 번째 환상에서는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연약한 인간이 강건하여지는’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장과 4장에 기록되어 있는 4번째, 5번째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죄를 사하시는 죄사함의 은혜와,
또 성령께서 능력을 공급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죄 가운데 있고, 연약함 가운데 있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어떠하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을 통한 구속의 은혜, 죄사하시는 은혜,
그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깨끗한 존재가 되었고,
죄인에서 의인이 되었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다섯 번째 환상(4장)은, 우리가 다음에 살펴보겠지만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으로 말미암아,
연약한 인간이 우리 주의 나라의 일을 강건하게,
또 능력 가운데 그렇게 감당하고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네 번째 그리고 다섯 번째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또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주의 백성들이 어떻게 의롭게 되며,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이제 슥3장은 네 번째 환상인데,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옷, 3:1~10
이 환상은 <은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지난주에 전반부를 살펴봤는데, 그 전반부 내용은 뭐였죠?
전반부 내용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깨끗해지는 환상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
목회자, 선교사만 아니라요.
그런데 이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하나님의 법정에 서 있습니다.
그랬더니 사탄이 고소를 하죠.
‘저 사람은 더러운 존재입니다. 저건 타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고 고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문제는 뭐냐 하면, 그 얘기가 틀린 얘기가 아니었다는 거죠.
어느 정도 맞는 얘기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기에 합당하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꾸짖으신 것이 아니에요.
‘네가 왜 더러운 옷을 입고 여기 나타났느냐? 너는 자격이 없다’
그렇게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탄을 꾸짖으십니다.
‘사탄아 내가 너를 꾸짖노라’ 슥3:2
이 소리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된다는 거예요.
사탄이 우리를 고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또 하나님께서 사탄을 꾸짖는 소리에
우리의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그것은 은혜의 말씀입니다. 은혜의 소리입니다.
그래서 율법(사탄)에 우리의 귀를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좌절하게 되고 낙심하게 되고,
주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를 붙잡을 때, 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때,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고,
담대하게 예루살렘 성에 거하며, 주의 영광과
또 우리를 보호하시는 불성곽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네 그래서 우리가 지난 슥15강에서 살펴본 것이 ‘불에 그슬린 나무’에 대한 얘기죠. 슥3:2
그래서 그 은혜를 깊게 아는 자, 그 은혜의 무게와 깊이와 크기를 아는 자가
결국 끝까지 하나님의 성 안에, 보호하심 안에 구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본론
오늘은 이어지는 슥3:6절과 7절을 오늘 살펴보려고 합니다.
3:6, 7절은 뭐냐면, 그렇다면 이 은혜를 입은 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은혜를 입은 자들이 그래서 은혜로 예루살렘성에 거하게 되는데,
그래서 은혜로 예루살렘 성에 거하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
하늘로서부터 주어지는 터전에 거하게 되는 주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에 대한 이야기를 교훈해 주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갈 때 주어지는 결과는 무엇인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슥3:6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증언하여 이르되
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강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벗고, 아름다운 옷을 갈아입게 됩니다.
그리고 정결한 관을 씌워주십니다.
자 이렇게 정결케 된 여호수아에게 뭐라고 하나님 말씀하시냐면
두 가지를 명하시고, 세 가지를 약속하시는데
-첫째, 내 도를 행하고
-둘째, 내 규례를 지키라는 거예요.
그러면 세 가지 약속을 주시는데
-그러면 너희가 내 집을 지킬 것이고
-내 뜰을 지킬 것이고
-또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 왕래하게 될 것이다... 하는 3가지 약속을 주십니다. 3:6~7
여기 보면 ‘도’하고 ‘규례’가 나오는데
한국어 성경을 봤을 때는 ‘도’ 와 ‘규례’가 명확하게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게 그것처럼 보여요. 그렇죠?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도 His way’라고 하는 것이 삶에 대한 이야기라면,
-‘규례’ charge 는, 일에 대한 이야기에 좀 더 가깝습니다. *'직책'
▲‘도를 행하고’는,
매일매일의 삶 가운데 있어서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따라가라는 거예요.
성령의 열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분노하지 말고, 또 선한 마음을 가지고, 절제하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이렇게 도덕적, 인격적, 성품적 측면이고,
‘규례 (직책)’는 그것보다는 일, 직분, 사명에 조금 더 가까운 그런 내용입니다.
그래서 ‘도’라고 하는 것은 뭐냐면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착하고 정직하게 의를 행하고 사랑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라는 거예요.
성령을 좇아서 매일매일의 삶 가운데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는 거예요.
성령의 열매는 성경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갈5:22~26에 보면 이렇게 얘기하죠.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이게 여러분 은혜를 받은 자가, 마땅히 해야 될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선한 열매를 맺으며,
오래 참고, 자비하고, 선한 일을 하고, 또 탐심을 버리고,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고, 서로 노엽게 하지 않고, 투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라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원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셨던 길이라는 거예요.
그 길로 살아가는 거예요. 이것이 은혜를 받은 자가 마땅히 해야 될 바입니다.
이렇게 해야 은혜를 받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은혜는 그냥 아무 조건 없이 주시는 거예요.
이 순서가 아주 중요합니다.
이렇게 해야 은혜를 받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러나 은혜를 받은 자가 마땅히 해야 될 바예요.
그래서 고린도후서에서 정확히 이 이야기를 합니다.
고후9:8절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 이건 뭐라고 그랬어요?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주신 이유가 있는데,
이는 너희로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거예요.
은혜를 주신 이유는, 너희로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라는 거예요.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은혜 받은 자가 마땅히 해야 될 일입니다.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라는 거예요. 그것이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슥3: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직책)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반면 “규례를 행하는 것”은 직분과 사명에 조금 더 가까운 얘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직분이 있고, 맡기신 사명이 있는데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감당해야 될 어떤 직분이 있고, 사명이 있는데,
그것을 신실하고 충성되고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바울이 행20:24절에 보면 이렇게 고백하죠.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게 여러분, 규례(직책)를 지키는 자의 태도라는 거예요.
나에게 맡기신 사명, 나에게 맡기신 직분...
그래서 이 사명이 뭐냐면,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고,
이 사명이 주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인데,
‘이 일을 감당하는 일에, 내 생명을 조금 더 아끼지 않겠습니다.’
하는 이 태도, 이 삶이 뭐예요? ‘규례를 지키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두 가지를 이야기하십니다. 은혜 받은 자들이어야 될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내 도를 지키고 규례를 행하는 것이에요.
-‘도’ : 내가 창조한 질서를 따라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고
삶의 매일매일의 삶 가운데 착한 행신을 살아가면서 살고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사는 것.
- ‘규례’ :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하나님이 맡기신 직분과 사명을
내 생명 다해 감당하는 거예요. 생명다해서 섬기고 감당하는 이 두 가지를 하는 것이
은혜를 받은 자들이 마땅히 해야 될 일인 줄 믿습니다.
*공동번역 : ‘내가 맡긴 직책을 다한다면’ *규례(미슈메렛)을 ‘직잭’으로 번역
여기서 '규례'는 구약의 다른 구절에 나오는 '규례'와는 전혀 다른 말. 주1)
자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일,
그러니까 맡기신 일 중에서도 큰 일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할 때, 즉 규례를 지킬 때,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주신다고 얘기합니다.
자 누가 보금에 보면 이렇게 얘기하죠.
눅19: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래서 우리가 규례를 지킬 때, 그러니까 주께서 맡기신... 큰 일 아니라도 괜찮아요.
작은 일에 지극히 충성할 때, 성실하고 신실하게 그 일을 감당할 때, 뭐 하신다는 거예요?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주신다는 거예요. 권위를 주신다는 거예요.
▲자 그래서 여기에 영적인 순서가 있습니다.
1) 첫째는 뭐냐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이니셰이트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쪽에서 먼저 하시는 거예요.
전적인 은혜를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2) 두 번째 단계가 뭐예요? 도를 행하고 규례를 지키는 거예요.
그것은 우리의 할 일입니다. 도를 행하고 규례를 지키는 거예요.
순서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먼저 도를 행하고 규례를 지키면,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이런 순서가 아니에요.
은혜로 일단 구원하세요. 그리고 도를 행하고 규례(직책)를 지키게 돼요.
변화된 심령이.. 성령의 감동으로 자원해서 도와 규례를 지키게 돼죠.
강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원해서... 지키는 게 자기에게 더 편한 거예요.
3) 그 다음에는, 주어지는 약속들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도를 행하고 규례를 지키면,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결과가 있다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권위를 주신다는 거예요. *권세, authority ↙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3:7
근데 ‘여기 섰는 자들’이 누구예요? 천사들이거든요.
이스라엘 백성들로 대표되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 이 얘기는 ‘천상의 법정’ 얘기인데,
이걸 땅으로 가져와서 보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를 뜻하는 거예요.
천사들도 결국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하니까요. *수호천사처럼
▲그래서 하나님께서 도를 행하고 규례를 지키는 자들에게 권위를 주시는데
어떤 권위를 주시냐면
첫째는 교회 안에서의 권위를 주시고
둘째는 세상 속에서의 권위를 주신다는 거예요.
좁은 의미의 하나님 나라는 주의 백성들이 모여있는 공동체의 교회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조금 더 넓고 확장된 의미의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 전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가 사실 하나님 것이죠.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죠.
자 그래서 이 두 가지에 동시에 권위를 주신다는 거예요.
내 집을 지키게 하시고, 내 뜰을 지키게 하신다는 거예요.
내 집을 지키는 자, 교회 안에서 권위를 가진 자가 되도록 하나님이 그를 세워주시고,
뿐만 아니라 ‘뜰에서’ 즉 세상 속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그런 권위를 그에게 주신다는 겁니다.
자 이 땅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의 권위를 높이시겠다는 것입니다.
◑자 권위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 더 깊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결국 이 주제는 권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권위!
우리가 도를 행하고 규례를 지킬 때, 권위를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는데
이 권위가 도대체 뭔가요?
성경적인 ‘권위(=권세)의 정의는... 결국 뭐냐면 영향력이라는 뜻이에요.
권위는 영향력이고, 무언가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고,
일이 되도록 할 수 있는 힘을 권위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권위‘라는 말 대신, ’권세‘라는 표현을 많이 쓰죠.
권세, 권위 이게 번갈아서 사용되는데
권세는.. 영어로 보면 authority and power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권위하고 힘(능력, power)은
보통 늘 붙어 다니는 말이라는 거예요. 권위가 있으면 이제 힘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 힘이 뭐냐면 무언가를 되게 할 수 있는 힘이에요.
무언가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에요.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고, 사람들을 통솔할 수 있는 힘이고,
그래서 사람들로 한 방향으로 무언가를 위해서 일하도록 할 수 있는 힘이고,
그래서 그 일들을 성취해낼 수 있는 힘이고, 그런 것이 ‘권위’입니다.
자 권위는 영향력이고 힘이에요.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힘,
특별히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움직여서, 무언가를 이루게 하는 힘!
자기 혼자 하는 힘이 아니라, 사람들을 함께 뭔가를 움직여 할 수 있도록 하는 힘,
그것이 권위입니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이 무엇을 움직일 수 있으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권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움직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권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재정에 대한 권위가 있는 사람들은요.
돈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움직여서 어떤 일을 되게 할 수 있죠. 그런 식이라는 거죠.
또 영적인 권위가 있는 사람들은, 영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고, 사람들을 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권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이에요.
자 이 권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모든 권위의 궁극적인 권위는 누구냐면 하나님이세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이 모든 일의 시작이시고,
모든 일을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되게 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세요.
무언가를 되게 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세요.
물론 하나님께서 그 권위를 많이 위임하셔서,
세상에서 다른 힘을 통해서 되어진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결국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세요.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 한마디에 무에서 유가 창조됐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권위는, 결국 하나님의 궁극적인 권위로부터 나옵니다.
모든 권위의 궁극적인 소스(출처)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세속권위까지 다 포함한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권위를 포함해서 모든 권위의 궁극적인 권위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성경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로마서 같이 볼까요?
롬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자, 모든 권세, 위에 있는 모든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거예요.
그것을 인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모든 권위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창조주 이시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권리가 있으세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권위가 있으십니다.
자 그러나 그럼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죠.
‘아니 그럼 목사님, 위에 있는 권위가 위에 있는 정부라든지, 아니면 위에 있는 상사라든지
그런 사람들이 우리로 교회 가지 못하게 하면, 그것도 순종하는 것이 옳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우셨잖아요. 자 권위에 여러분 중요한 속성이 있습니다.
이 속성이 오늘 이 설교 끝까지 이어지는 메시지의 아주 중요한 기초가 되는데,
권위의 중요한 속성은 뭐냐면,
위에 있는 권위가, 더 위에 있는 권위에 대들 때, 대항할 때,
그때는 그 권위를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예요.
일반적인 속성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회사에 부장이 있고,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이렇게 하라고 말하고 갔어요.
근데 부장이 와서 전혀 다른 얘기를 해요.
그러면 부장의 말에 따르지 않아도, 심판 받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왜요? 부장 위의 권위인 사장의 얘기를 따라야 되니까요.
즉 사람의 권위가, 하나님이 권위를 거스를 때,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를 따라야 된다는 거죠.
그럴 때 핍박을 받는다든지, 손해를 좀 볼 수는 있어도
궁극적인 심판을 받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권위의 원칙이 있습니다. 내 위에 있는 권위에 순복해야 되는데,
그 권위가 더 위에 있는 상급 권위에게 대항할 때는, 내 윗 권세에 순복하면 안 돼요.
더 위에 있는 상위의 권위(하나님)를 우리가 인식하고, 인정해야 됩니다.
그 최상위에 있는 궁극적인 권위자는 누구세요?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한에서는
우리 위에 있는 권위에게 순복해야 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런 어떤 권위가 있다 그랬을 때는, 그 권위에 순종하지 않아야 됩니다.
순종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 정도가 아니고, 순종하면 안 됩니다.
그럼 더 위에 있는 권위에게 대항하는 것이 되죠. 그것이 권위의 일반적인 숙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궁극적인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하나님께 있는 권위를 인간들에게 나누어 주셨다는 거예요.
그것이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창1:26~28
자 ‘다스린다’는 것이 권위에 대한 얘기죠. 창1:28
‘땅을 다스리게 하자..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사람에게 주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사람에게는 뭐가 있냐 하면, 피조세계를 다스리고 통치할 데스티니가 있습니다.
통치해야 될 데스티니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데스티니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뭐가 필요해요? 권위가 필요합니다.
권위는 뭐라 그랬습니까?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힘이라 그랬죠.
데스티니가 있기 때문에, 이 데스티니를 이루려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위라는 거예요.
이 권위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삶을 향해 디자인하신 그 계획을 이룰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
‘이 땅을 통치하고 다스리라’고 하는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는 거예요. 그것이 권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자기 자신의 삶을 통치할 권위부터 그렇죠.
내가 내 자신의 삶을 통치할 수 있는 권위가 있어야죠.
그러니까 스스로의 삶을 통치할 수 있는 권위부터 시작해서,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
일터를 다스릴 수 있는 권위, 재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권위까지...
내 삶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들을 다스릴 권위가 필요합니다.
이 권위가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 권위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되냐면
인생을 무언가에 의해서 다른 권위에 의해서 끌려 다니게 돼요.
내가 내 삶을 스스로 통치하고 다스리고 매니지 할 수 있는 권위가 없는 사람은,
다른 권위에 의해서 끌려 다닐 수밖에 없어요. 다른 권위에서 끌려 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디자인하지 않으신 삶,
그런 삶을 살게 되고... 그 결과 인생을 허비합니다.
또 인생을 허비하게 되는 결과, 허무하고 실패하고 낙심하는 가운데 고통받게 되는 거예요.
이게 다 권위가 없을 때 일어나는 일이에요.
권위가 없으면..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데스티니를 살아갈 수 없다는 거예요.
반드시 권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내 삶을 다스릴 권위, 가정을 다스릴 권위, 일터를 다스릴 권위, 사회를 다스릴 권위
그러니까 내 삶과 내 삶을 둘러싼 이 환경들을
내가 통치하고 다스린 통치한다는 얘기가
이제 그 세상에서 이런 강압적으로 잘못된 권위들을 보고 자라면
약간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그런 강압적인 통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식은 굉장히 이 세상에서 인격적이고, 사랑과 공의에 기초한 통치예요.
그런데 어쨌거나 이런 좋은 의미의 통치하고 다스릴 수 있는 그 권위가 주어져 있지 않으면
우리는 인생을 낭비하게 돼요. 우리는 인생을 실패하게 돼요. 허무하게 돼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뭐예요? 인간이 죄를 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이게 모든 불행의 시작이죠.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상급권위의 대적함으로 말미암아.. 그 권위를 다 잃어버립니다.
이 권위의 속성이 뭐라고 그랬죠?
상급권위에게 대적하면, 그 권위를 다 잃어버리는 거예요.
권위가 다 무효화되는 거죠. 그렇죠? 부장이 사장에게 대들면.. 잘리는 거죠.
그래서 아담이, 또한 자연인이 하나님께 대적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졌던 모든 권위를 잃어버린 거예요. 상실한 거예요. 이것이 이제 타락입니다.
권위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대적했고, 지금도 대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간은요.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부터 시작해서
모든 권위를 다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여러분 보십시오.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나 보세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위’가 있다면, 지금처럼 살지 않을 거예요. 훨씬 다른 삶을 살 거예요.
내가 원하는 내 자신의 삶의 모습이 있는데, 그 모습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가 아니고 한 명도 없을 거예요. 다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내가 원하는 건 이건데..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이런 부조리 속에서 괴로워하고,
낙심하고, 자기에게 실망하고 그런 거 아닙니까?
이게 왜 그래요?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상실한 거예요.
우리는 그냥 그 가운데 태어나고 살다 보니까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연하지 않다는 거예요. 원래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시지 않았다는 거예요.
원래 하나님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 가운데 우리를 두셨어요.
그래서 여러분, 구원받은 자에게 성령의 열매 중에 절제(셀프 컨트롤)이 있잖아요.
뭐냐면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본문 슥3:7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가 회복된다는 거예요.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왜? 하나님의 권위에 다시 순복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위, 상급 권위에 다시 순복했기 때문에,
나의 잃어버렸던 권위들이 회복되는 거죠.
그 중에 하나가 뭐예요?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도 회복되는 거예요.
그래서 셀프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어찌 됐든지 간에, 죄로 타락한 인ㄱ산은 자기 자신에 대한 권위를 상실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겪는 일상 중에 하나죠.
스스로가 다스려지지 않는 뿐만 아니라,
다른 권위들, 가정이라든지 친구관계, 일터, 재물, 사회까지 모든 권위를 다 상실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최종 권위자를 떠났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럼 이제 질문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목사님, 어쨌거나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도 이리저리하여 권위를 발휘하면서
살긴 살잖아요. 그럼 그건 뭡니까?’
모든 권위를 상실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그래도 이렇게 살아가는 거죠?
그렇게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뭐냐면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고유의 권위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권위에 끌려다니는 거예요. 다른 권위에 끌려다니는 거예요.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성경 봅시다 에베소서입니다.
엡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여기 보면 ‘너희가 죽었다’는 거예요. 죄로 말미암아 죽었다는 거 죽었다는 건 뭐냐면,
우리 안에 그 주체적이고 내재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다 없어졌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권위는, 우리 안에 있는 주체적인 권위를 가지고
(내가 원하는 건 물론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원하는 거죠.)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뜻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권위가 있었는데,
그 힘이 있었는데... 다 죽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어떻다는 거예요. 허물과 죄로 죽었기 때문에
그때 너희는 어떻냐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그렇게 살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희가 생명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간 게 아니라, 죽었는데,
우리 안에 주신 하나님의 권위는 다 잃어버리고 상실했는데,
마치 허수아비처럼, 마치 이렇게 조작되는 인형처럼
세상 풍조에 의해서 공중 권세 잡은 자에 의해서 그것에 끌려다니면서 살았다는 거예요.
그것이 성경이 선포하고 있는 권위를 상실한 인간의 모습이에요.
우리가 원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세상 풍조가 그렇게 끌고 가니까 그렇게 하는 거고,
우리가 진짜 그렇게 해야 되거나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끌고 가니까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보십시오. 예를 들어서 예 돈을 많이 벌려고 그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 버는 게 인생의 목적 중에 하나죠. 돈을 많이 벌려고 그래요.
왜 돈을 많이 벌려고 합니까? 세상 풍조가 그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돈을 많이 버는 게 좋은 거야.. 돈을 많이 버는 게 권위를 갖는 거야..’
이건 세상 풍조가 정해놓은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적이 없어요.
한 번도 하나님께서는 ‘돈이 있으면 권위를 가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그런데 세상 풍조가 그렇게 정해놓은 거예요.
세상 풍조, 세상... 세상 문화 또는 세상 질서, 세상 가치관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세상 풍조를 만들었어요.
만든 게 누구예요? 공중에 권세 잡은 자가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 질서와 풍조를,
그리고 그것에 그냥 끌려다니면서 사는 거예요. 끌려다니면서!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도 깊게 생각 안 해요. 그냥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은 위협을 느끼는 거예요.
나만 그렇게 안 하면 도태될 것 같고... 나만 그렇게 안 하면 실패할 것 같고...
그래서 그냥 끌려다니는 거예요. 강압에 의해서!
그래서 어떤 내적인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의해서 나오는 권위가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강압적인 어떤 힘에 의해서 끌려다니는 거예요.
이렇게 권위를 다 잃어버린 인간은 결국 끌려다니는 인생이 됐어요.
끌려다니는 인생! 압박에 의해서 끌려다니는 인생, 세상 풍조에 의해서 끌려다니는 인생!
돈이 많으면 왜 세상에서 권위를 갖게 되는가요?
공중권세 잡은자(마귀)가 그렇게 정한 거예요.
사실 여러분, 진짜 권위는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서부터 나와요.
진짜 권위는 돈에서부터 나오는 게 아니고, 사랑에서부터 나옵니다.
진짜 권위는 힘이 아니고 겸손입니다.
진짜 권위는 교만이 아니고 경손입니다.
진짜 권위는 권모술수가 아니라 정직한 거예요.
진짜 권위는 칼이 아니라 십자가예요.
그런데 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세상 풍조와 공중권세 잡은 자가 만들어놓은
유사 권위에 의해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끌려다니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신 고유의 권위는 다 상실하고...
이것이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당신 백성을 삼으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모든 신분을 다 상실하고, 더러운 옷을 입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가 되고, 그렇게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최종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대항함으로 말미암아,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반역함으로 말미암아... 권위를 다 상실해 버려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대제사장 여호수아 같은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다시 당신의 백성을 삼으세요.
은혜로 다시 부르셔서 당신 백성을 삼으십니다.
이 신분의 변화는 은혜입니다.
자 그러면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실 것 같으세요?
은혜로 구원하시고 나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하실 것 같으세요?
당연히 그 다음에 따라오는 일이 있습니다. 권위를 다시 회복시키시는 거죠.
그것이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바로 하셨던 일이에요.
우리를 창조하시고 바로 권위를 주셨잖아요.
땅의 모든 것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주셨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나서, 이게 재창조죠.
잃어버렸던 우리를 구원하시고 나서 다시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예, 권위를 다시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다시 권위를 회복시키는 참권위 잃어버렸던 참권위를 다시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뭐라고 약속하시냐면
‘너희가 도를 행하고 규례를 지키면’ 이 얘기가 뭐겠어요?
하나님의 권위 아래로 다시 돌아오라는 뜻이지요.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 아래로 다시 돌아오면...
너희가 지금까지는 나를 떠나서 내 질서와 관계없이 살았는데,
내 권위를 거부하면서 살았는데,
‘은혜로 내가 너를 다시 받아들였어 신분을 바꿔주었어!’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내 권위가 회복되질 않아요. 길어서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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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구약 성경에 나오는 '규례'
- 호크 (חֹק) / 후카 (חֻקָּה) / 후킴 (חֻקִּים): '새기다'는 뜻에서 유래하여, 변경할 수 없는 영구적인 규례, 경계, 몫.
- 미슈파트 (מִשְׁפָּט): '판결', '법도'로 번역되며, 공의에 기반한 사회적/사법적 규정.
- 미츠바 (מִצְוָה): '계명' 또는 '명령'.
- 토라 (תּוֹרָה): '율법' 전체를 가리키는 교훈.
- 본문 슥3:7의 미슈메렛 ( מִשְׁמֶרֶת ) 은 위 와는 다른 뜻, '직책'이란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