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성령’에 관한 10가지 가르침 갈3~6장 2026.05.03.요약, 정리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즉, 이신칭의에 대한 교리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는 구원받는 것이 중요하고,
두 번째는 구원받은 사람은 마땅히 남은 생애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아야 됨을
갈라디아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와 같죠.
그래서 오늘 제목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좀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총 6장까지 있는데 세 단락으로 구분이 되죠.
갈1~2장은 복음과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라는 사도권을 받은 것이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즉 복음과 사도권에 대한 변증하는 내용입니다.
3~4장은 구약에 비춰서 이신칭의에 대한 교리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5~6장은 바로 그 이신칭의라는 교리에 맞춰서
우리 삶에 그것을 적용하는 실천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내용면에서 한 10가지 정도를 거론하고 있는데,
이를 중심으로 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그 성령과 관계된 말씀을 살펴보면,
신앙 생활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알 수 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1. 성령을 받은 시점이 언제냐? 예수 믿고 구원 받았을 때이다.. 라고 가르칩니다.
첫 번째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된 내용이 갈3:1~6절입니다.
갈3: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하느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첫 번째로 성령에 대해서 언급을 하시면서,
성령을 받는 시점이 언제냐? 이걸 말하고 있는 거예요.
‘성령을 받는 것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이렇게 물었잖아요.
언제 받습니까? ..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습니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죠.
우리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이 우리 속에 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본문 갈3:5절에도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여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라고 할 때,
하나님이 능력으로 행하시는 일이 구체적으로 뭐겠어요?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여기서 말하는 겁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일 그리고 성령이 주어지는 일은,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 받을 때, 성령이 우리 속에 오십니다.
▲많은 사람이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합니다.
‘죄사함을 받지도 않은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 이렇게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
또 죄사함을 받고 난 이후에 무슨 이상한 체험을 하면, 그때 성령이 오신다...
이렇게 오해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듣고 믿을 때 성령이 오셔요. 구원받을 때 성령이 오십니다.
그래서 요7:39절에 ‘이는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
믿는 자에게 성령이 오시는 겁니다. 그 사실을 명확히 해야 될 겁니다.
구원 받으셨어요? 성령 확실히 받으셨어요? 성령이 여러분 속에 계시는 게 맞아요?
이건 확실해야 됩니다. *‘지적 동의’를 뜻하는 것은 아님
◑2. 믿는 사람 속에 성령을 주시겠다고, 구약 성경에 계속 말씀해 주셨어요.
성도는 ‘약속된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갈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성령의 약속’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약속된 성령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속에 오신 성령은, 이미 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된 성령을 받은 거예요.
믿는 사람 속에 성령을 주시겠다고, 구약 성경에 계속 말씀해 주셨어요.
바로 그 약속대로 약속된 성령을, 예수님을 믿을 때 받은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부활하신 이후에 승천하시기 전에
행1:4절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즉 구약시대부터 믿는 자 속에 성령을 주실 것을, 하나님은 계속 약속해 오셨어요.
욜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이사야서부터 말라기까지 17권이 선지서인데,
근데 그 중에 가장 먼저 기록된 게 <요엘서>예요.
우리 성경에는, 이사야서가 선지서들 중에 맨 앞에 있잖아요.
그런데 요엘서가 이사야 성경보다 먼저 기록이 된 거예요.
이사야서는 지금부터 2700년 전에 기록됐고,
요엘서는 지금부터 2800년 전에 기록된 겁니다. 선지서 중에 가장 오래된 성경이에요.
위 구절 28절에도 내 신을, 29절에도 내 신으로 그랬어요. 성령님을 가리키죠.
여기 하나님이 약속하시기를 ‘내 신을 즉 성령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그러니까 복음이 완성돼서 복음이 전세계에 전해질 때,
그 성령을 만민에게, 전세계에, 결국 믿는 사람 누구에게든지 부어주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행2장에서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
베드로는 위 구절을 인용하면서, ‘요엘의 예언의 성취가 되어졌다’라고 말했죠.
욜2:28~29절에 주시기로 약속된 성령이, 이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행2:17~18
그 외에도 겔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믿을 때, 우리 속에 오신 성령은,
이미 구약 성경 때부터 약속된 성령이고,
더 과거로 곳을 올라가면 창세 전에 하나님이 계획을 세울 때, 즉 예정하실 때
믿는 사람 속에 주시기로 한 바로 그 성령이다... 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에, 베드로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했어요.
그래서 15개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말씀을 쭉 들었습니다.
근데 어떤 유대인들이 비난하기를 ‘야 저 사람들은 새 술에 취했다’ 그랬어요.
그러자 베드로가 ‘야 지금 몇 시냐? 낮부터 술 마시는 거 봤냐?’ 하면서
요엘서 2장을 인용하면서 ‘바로 요엘서에 약속된 성령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쭉 전하면서 말하기를
행2:38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그래서 그날 베드로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 3천명이, 바로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행2장의 오순절에, 구약에 약속된 성령이 오셨고,
또 우리 개인 속에 오신 성령님도, 우리가 복음을 믿을 때 우리 속에 주시겠다고 하는,
그렇게 우리는 약속된 성령이 우리 속에 와 계신 겁니다.
이 말의 뜻은, 성령이 어쩌다 보니까 오신 게 아니에요.
성령이 우연히, 어쩌다 보니까 오셨다면.. 그건 불확실한 것이죠. 정체가 불분명한 것이 되죠.
그러나 ‘약속된 성령’이 오신 거예요.
당연한 얘기지만 ‘성령은 정체가 확실하시고, 분명한 구원의 역사로 나타나십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새술에 취하였다’ 라고 비난하거나,
오늘날에도 ‘이상한 신비의 역사다’라고 혹평하는 것은, 세심한 분별이 필요합니다.
◑3. 성령은 ‘아들의 영’이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거에요
갈4:4~6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구원받은 사람 속에 와 계신 성령이, 하나님의 아들 성자 예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즉 ‘아들의 영’이 우리 속에 와 계시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거에요.
‘부른다’는 건, 단순히 ‘누구를 부른다’는 게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사귐과 교제가 시작됐다 .. 이걸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여기서 갈3장, 4장 내용을 잠깐 언급해보면,
갈3장에 보면, 구약을 인용해가지고, 은혜의 복음을 지금 설명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 오시기 20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고,
또 ‘천하 만민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 누구든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서 의롭다함을 받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방인도 그 안에 참여하게 된 거예요. 그걸 먼저 얘기하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이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그 ‘은혜 언약’이 먼저 주어졌잖아요.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430년 있었죠. 애굽에 들어갔다 나온 이후에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어요. 순서가 뭡니까?
은혜가 먼저 주어지고, 그 다음에 율법이 주어진 거예요. *홍해 → 시내산 순서
그러면 이 율법이라는 것이, 은혜 언약이라는 것을 폐하는 거냐?
아니라는 거예요.
갈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갈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르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의 약속도, 이미 약속한 것은 마음대로 폐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러면 은혜 언약을 주셨는데, 왜 율법을 후에 추가적으로 주셨느냐?
그건 은혜 언약을 폐하기 위한 게 아니라 은혜, 언약을 굳게 세우기 위해서 주신 거다
라는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은혜가 믿어지려면, 속죄가 믿어지려면.. 먼저 죄를 깨달아야 되잖아요.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 율법을 주신 목적 100%가 아닙니다. 또 성화를 위해서도 주셨죠)
율법을 주신 이유는 죄를 깨닫게 해서, 바로 예수님이 완성한 복음,
바로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추가적으로 율법을 주셨다는 거에요.
은혜 언약은, 은혜를 주시는 언약인데,
율법은 그 은혜를 목적으로 하지만, 바로 은혜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즉 죄를 깨닫게 하는 한 부분만 담당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잖아요.
그 내용이 갈라디아서 3장이에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4장이 읽어보면 참 놀라운 내용이죠.
이 내용을 얘기하면서, 순서가 은혜 언약이 먼저고 율법이 나중인데
▲갈4:6절을 다시 읽습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구원을 받으면 신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에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놀라운 겁니까?
‘내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됐다’ 참 놀라운 거죠.
그래서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아들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 된 게 권세라고 했잖아요.
지금은 이게 잘 안 느껴지죠. 지금은 잘 안 느껴지지만 주님 앞에 가보세요.
‘하나님 아들’이라는 권세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비로소 깨닫게 될 겁니다.
그리고 롬8:17절에도 ‘자녀이면 후사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상속자(후사)죠.
특별히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다, 그리스도와 공동상속자다’ 이렇게 말씀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아들의 신분, 명분을 얻었어요.
그러면 아들의 영이, 성령이 우리 속에 와 계시니까,
이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거예요.
▲자, ‘아빠’하고 부른다는 것은, 이제 친밀한 사귄과 교제가 시작된다는 걸 말해요.
여러분 구원 받자마자 사실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과 교제가 시작된 거예요.
*지적 동의로 받은 구원은 아님
친밀한 사귐과 교제가 시작됐는데, 구원받은 사람이 그것도 모르면 안 되잖아요.
그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서, 성령인 '아들의 영'을 우리 가운데 오게 하셔서,
하나님과 같이 사귀고 교제하게 해놓으셨는데, 그걸 모르고 살면, 많이 손해보는 거잖아요.
요일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 우리의 사귐은... 구원받은 사람이 ‘우리’ 속에 들어갑니다.
여기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구원받은 사람들) 들과 같이
더불어하는 사귐이 시작이 된 거예요. ‘삼위일체 + 나’의 사귐, 교제인거죠.
어린아이가 한 가정에 태어나면, 그 가족과의 교제가 시작이 된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가족끼리
교제가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는 교제가 시작된 거예요.
그래서 고전1:9절에도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이렇게 말씀했어요. 아버지와 아들의 교제입니다.
그 교제 가운데서, 우리(자녀)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그다음에 성장시켜 주시고, 그 가운데서 강건케 하시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시고,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답게 만들어 가시고요.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그 교제 안에서 우리를 견고하게 해가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일 말씀만 듣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돼요.
개인 경건의 시간도 갖고, 다른 모임에도 참석하면서...
그래야 교제가 되죠. 교제는 함께 할 때 교제가 되잖아요.
가족이 같이 모여야 교제가 되죠.
그래서 ‘아들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과 교제가 있게 하셨다...
이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세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로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여러분 가정의 부모는 자식에게 어떤 역할을 합니까?
1) 첫 번째는 양육자의 역할을 해요. 기르는 역할을 하죠.
2) 그 다음에 공급자의 역할을 해요. 필요한 걸 채워주죠.
3) 그 다음에 자녀를 보호하는 보호자의 역할을 감당해요.
4) 그 다음에 자녀가 힘들고 어려워할 때 격려하고 위로하는 격려자와 위로자의 역할 감당,
5) 때로는 자녀가 잘못 갈 때는, 징계하고 책망하는 징벌자의 역할도 부모가 하죠.
6) 자녀에게 조언이 필요할 때, 길을 가는데 코치가 필요할 때, 조언자의 역할도 감당해요.
이렇게 부모가 하는 역할이 많잖아요.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다는 건,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임 가운데, 우리 가운데서
우리에게 이런 역할을 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를 더욱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어 가세요.
그러면 우리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버지와 의논하면 되죠. 그러니까 기도하면 돼요.
그러면 하나님의 도움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아들이니까요!
▲그러면 하나님과 사귐이 있기 위해서, 우리 편에서 해야 될 일은 뭘까요?
우리 편에서 할 일은, 빛 가운데 걸어가야 돼요. 유교적 의지로써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렇게 살게 됩니다. (물론 의지도 필요하죠)
요일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요일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실제 생활에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사귐을 위해서 우리도 빛 가운데 걸어야 된다는 거에요.
죄를 가지고 회개치 않고 계속 생활하면서, 하나님과 사귄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4. 성령을 따라 난 사람은, 육체를 따라 난 사람들에게서 핍박을 받게 된다
갈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자 이 내용은 구원을 받은 사람은 약속의 자녀이고, 성령을 따라 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육체를 따라 난 사람들에게서 핍박을 받게 된다.. 그걸 말하고 있는 거예요.
(‘육체를 따라 난 사람’을, 세상 불신자로 보지만,
교회 안에 있는 신자로 보는 관점을 포함하기도 있습니다)
앞에 문맥의 내용을 잠깐 설명해 볼게요. 아브라함에게 두 아내가 있었어요.
한 사람은 사라고 한 사람은 하갈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통해서 자식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고,
실제 약속대로 장세기 21장에 보면 이삭을 주셨어요.
그러니까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서 태어난 약속의 자녀예요.
이 이삭의 모습은,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그 약속을 근거로 구원받은 사람,
즉 성령을 따라난 사람의 모형인 겁니다.
그런데 또 한 아내 하갈이 있어요. 아브라함이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어요.
약속입니까? 자기수단 방법입니까? 자기 수단 방법이죠. 약속으로 낳은 게 아니에요.
자기의 육신적인 수단 방법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다는 거예요.
뭘 말합니까? 바로 그 이스마엘은, 율법의 행위를 좇아서 천국에 가려고 하는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을 상징하는 하나의 그림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이렇게 말씀했어요. 4:28절이에요.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약속한 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까, 이제 약속의 자녀예요.
그리고 성령이 우리 속에 오셨으니까, 성령의 역사로 된 거니까,
성령을 따라 출생한 자예요.
▲창세기 21장에 보면,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했어요.
육체를 따라난 자가, 약속을 따라난 자 참 상속자를 괴롭혔어요.
창세기 21장에 보면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스마엘과 그 어머니 하갈을 내어 쫓으라’ 그랬어요.
마찬가지로 결국은, 육체를 따라난 사람은 결국은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으로 쫓겨날 거예요.
그걸 말씀하시면서 ‘그때 육체를 따라난 자가 성령을 따라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지금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갈4:29
여러분 성경의 역사가 그걸 말하죠. 가인과 아벨이 둘 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잖아요.
그러니까 가인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아벨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의 대표죠.
가인은 자기 열심으로, 자기 행위로 하나님에 나아가려는 사람의 대표예요.
하나님이 아벨은 받고, 가인은 안 받았어요.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잖아요.
육체를 따라난 자가, 성령을 따라난 자를 핍박했어요.
야곱과 에서입니다. 야곱은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장자의 축복을 사모해서 결국 하나님께 받았어요. 그런데 에서가 미워해서 죽이려고 했어요.
야곱이 도망갔잖아요. 그때도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했어요.
예수님 당시에 보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생명이 없는 육체를 따라난 유대 종교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요.
사도행전에서 복음이 전해질 때, 바로 그 유대교에 속한 유대 종교가들이
사도들을 핍박했습니다.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했어요. 행24:5
‘이제도 그러하도다’ 무슨 말입니까? 4:29
그건 성경 역사 속에 계속 있어 온 얘기고,
그리고 이 성경이 기록될 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그렇고,
우리 시대만 두고 보더라도 ‘육체를 따라난 자가 성령을 따라난 자를 핍박’합니다.
‘이제도 그러하도다’ 지금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딤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우리가 바르게 살고자 하면, 우리는 주님께 속하고,
이 세상은 주님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담대할 수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요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이 승리한 ‘세상’, 우리는 주님의 뒤를 따라갑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 뒤를 따를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세상을 이기게 하세요.
그래서 핍박을 피할 수는 없지만, 미움을 피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5.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 소망, 사랑이 주어집니다
갈5:5~6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여기 보세요.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믿음과 소망을 연결해놨죠.
그리고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사랑과 믿음을 연결해놨습니다.
즉 믿음, 소망, 사랑을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주어져 있는 사람이에요.
즉,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소유한 사람이다 라는 말입니다.
성령은 믿음을 좇아, 사랑 가운데서 믿음을 좇아 살게 하시죠.
그리고 의의 소망을 기다리게 하세요. 갈5:5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을 더욱더 갖게 하세요.
‘의의 소망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자 보세요. 구원받은 성도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세 가지를 명확하게 갖고 있어요.
1)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믿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서 1:3절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예요. 하나님은 주셨죠.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셨으니까, 우리는 믿음을 받은 거예요.
벧후1:1절에도 보면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는 믿음을 받았어요. 구원받은 사람은 믿음을 확실히 소유한 사람입니다.
2) 그리고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죠. 사랑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요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가 구원받은 건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예요.
그리고 계1:5절에도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 죄에서 우리가 해방된 게.. 그의 사랑입니다. 주신 사랑의 결과이죠.
롬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고 피를 흘렸다는 것은
우리 죄를 위한 것이니까, 그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거예요.
죄사함을 받은 동시에, 사랑을 받은 거죠.
그래서 롬5:5절에 보면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인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음바 됨이니’
죄사함 받았죠. 동시에 사랑을 받은 거예요. 구원받은 사람 속엔 사랑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즉 형제 자매를 사랑하고
안 믿는 불신자가 지옥 가는 걸 불쌍히 생각하는 사랑이 있어요.
3) 소망 ...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은 확실한 소망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소망은 죽은 소망이에요.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이 받은 소망은 산 사람이에요.
벧전1:3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게 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우리는 산 소망, 확실히 이루어지는 소망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 갈5장에도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 그랬어요.
갈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의의 소망’이 뭡니까? 의로운 소망이에요.
의에 거하는 새하늘과 새 땅이라고 그랬죠?
벧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의가 가득한, 의가 충만한 새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이에요.
우리는 그 ‘의의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소망은 우리를 견고케 하고, 인내하게 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명화 중에 프레드릭 왓츠가 그린 <소망> 이라는 명화가 있어요.
지구 위에 한 여자가 앉아 있어요. 다 떨어진 옷을 남루한 옷을 입고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눈은 완전히 가렸어요. 소경이죠.

그런데 가슴에 하프를 이렇게 들고 있어요. 그런데 하프 줄이 다 끊어졌어요.
그런데 딱 한 줄만 남았어요. 그게 무슨 줄이냐? ‘소망의 줄’이라는 거예요.
이 그림 제목이 <소망>입니다.
다 끊어져도 소망 하나만 있으면 견딜 수 있다는 거예요.
실제 히6:19절에 보면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리니’
휘장 안은 하나님이 계신 거죠. 우리가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천국에까지
튼튼하고 견고하게 신앙생활하다가 들어가는 것은 ‘소망’ 때문이다 그랬어요.
여러분 배가 물결이 쳐도,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게,
바다 밑에 딱 고정시키는 게 닻이잖아요.
그래서 ‘소망은 영혼의 닻’과 같은 역할을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히6:19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주님 얼굴을 뵙게 될 거예요.
우리는 그토록 바라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천국에, 벧전1:4
사랑이 충만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그곳에, 우리는 들어갈 겁니다.
의가 충만한 그곳에 우리는 들어갈 거예요.
우리는 그 소망이 있어요. 소망이 있으니까 견디죠.
'의의 소망을 기다리나니' 라고 했습니다. 갈5:5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이건 한 세트예요. 이거는 항상 연결이 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보세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게 하시죠.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 생활을 하게 하시는 거예요.
성령이 우리 속에 계셔서 소망을 크게 풍성하게 해주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가운데 살게 이끄시는 겁니다.
즉, 믿음, 소망, 사랑을 우리 가운데 풍성하게 해주시는 거예요. 키워주시는 거예요.
그게 성령이 하시는 역사예요.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은 믿음, 소망, 사랑이 풍성한 삶입니다.
◑6. 성령이 우리 속에 와 계시니까, 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위 구절은, 성령이 우리 속에 와 계시니까, 성령을 좇아 행하라 .. 명령이에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라 ‘행하라’ 명령입니다.
그런데 유교식으로 억지로 행하는 게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자연스럽게 성령을 좇아 행하게 되어 있어요.
어릴 때는, 아침에 양치하고 세수하는 것을 억지로 했지만,
클수록, 어른이 되어서는.. 그걸 자연스럽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구원 받은 사람 속에는, 두 가지 성품이 같이 있어요. 롬8장에서도 그걸 얘기하죠.
롬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본문 갈5:17에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린다’
자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한 사람 속에 같이 있다는 거예요.
자 이렇게 표현하죠. ‘겉사람과 속사람’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고후4:16~18
그리고 ‘옛사람과 새사람’ 성경에 이렇게도 표현했어요. 엡4:22~24
생명을 받아서 성령이 와 있는 우리의 속사람은... 새사람이에요.
그런데 우리 육체에,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죄의 기질이 있죠.
이건 겉사람이고 옛사람인 거예요.
그러니까 겉사람과 속사람의 싸움이 있고,
옛사람과 세 사람의 싸움이... 한 사람 속에 있다는 그 말이에요.
구원받으면 이 싸움이 시작된 거예요. 싸움이 시작된 겁니다.
어떻게 하라고요? '성령을 쫓아 행하라!'
즉 성령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성령의 뜻에 나 자신을 굴복시키고,
성령의 뜻에 따라서 선택하고, 내 삶을 맡기라는 거예요.
그러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욕심이 올라오지 아니하리라’가 아니에요.
구원받은 후에도 육체의 욕심이 계속 올라옵니다.
그러나 성령을 좇아 선택하고, 성령에 순종하고 살면, 욕심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거예요.
육체의 소욕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겁니다. 절제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올라오지만 다스리고 통제하고 절제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방법이 뭐예요? 성령을 좇아 행하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계셔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는 걸 알게 하세요.
그리고 그 뜻대로 살고자 하는 소원을 주세요.
그리고 소원을 주실 뿐 아니라, 그 살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코치의 역할이죠. 직접 뛰는 선수로 뛰는 것은 내가 하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 살아가게 하시는 겁니다. 성령이 하시는 거예요.
그 성령에 자기를 맡겨야 돼요. 이게 ‘성령을 좇아 행하라’ 입니다.
구원받으면 반드시 기억할 게 있어요.
겉사람과 속사람, 옛사람과 새사람의 싸움이 있습니다.
둘이 서로 계속해서 다투고 싸운다... 이걸 기억해야 돼요.
오늘 주일날 교회 오실 때 비가 왔잖아요. 어떤 분은 그랬었을 거예요.
‘비오니까 교회에 가기 싫은데? 그래도 가야지...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이게 성령을 좇아서 행한 거예요. 그러니까 풍성한 결과가 있잖아요.
항상 둘의 싸움이 있는 거예요.
▲이 내용은 신약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거죠. 몇 곳만 찾아보겠습니다.
엡4:17~24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이렇게 말씀했죠.
그러니까 옛사람은 아직 변화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죄의 기질이 충만해 있는 육체를 말하는 거예요.
성도는 새생명을 받았죠. 그러니까 새사람을 점점 입어가는, 변화되는 삶을 살라는 거예요.
롬6:3~7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여기서 ‘연합’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와요.
‘합하여.. 연합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에 연합했어요.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했어요. 그래서 침례를 받잖아요.
물속에 내려가는 것은.. 죽음과 장사, 주님의 죽음과 장사에 연합됐다는 뜻이고,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주님과의 부활에 연합됐다.. 그걸 말씀하시면서 두 가지를 얘기하죠.
롬6:4절에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속사람은 성령을 받았어요. 새 생명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새 사람이 된 거예요.
새 사람 가운데, 새 생명 가운데 행하죠.
그런데 아직 옛사람도 남아 있죠.
6절,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 죄의 기질이 있죠.
자꾸 죄를 짓고자 하는, 세상적인 죄와 관계된 것을 따라가는 육체 속의 기질도 있는 거예요.
겉사람과 속사람, 옛사람과 새사람의 싸움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냐?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6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셔서 그걸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성령의 뜻에 따라 선택하세요.
그리고 행할 때도, 성령의 뜻 가운데 자기를 순종하고 맡기세요.
성령의 뜻에 굴복시켜 보세요.
육체의 욕심이 올라오지만, 통제하고, 절제하고, 다스릴 수 있을 겁니다.
◑7.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갈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 구원을 받자마자 율법의 정죄, 죄를 지으면 율법의 정죄, 심판을 받잖아요.
그 율법의 정죄에서는 우리가 해방됐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율법의 정죄를 대신 받고, 우리 대신 죄값을 다 갚아주셨기 때문에,
율법의 정죄에서는 다 벗어난 거예요. 구원 받는 순간 벗어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이건 무슨 말일까요?
이것은.. 구원을 받아서 율법의 형벌, 정죄에서는 벗어났어도,
내가 주님의 뜻 가운데 살지 못하면,
즉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육체를 따라 살면 어떤 문제가 있죠?
양심의 정죄를 받아요. 맞죠? 말씀을 거스리고 살기 때문에 내 마음이 편치 않는 거예요.
마음에 고통이 있어요. 갈등이 있어요. 마음의 정죄가 있어요.
그런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면,
실제 마음의 정죄에서도 벗어난다 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이 내용은 로마서 7장, 8장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로마서 7장을 보면, 구원을 받았어도, 죄 가운데 살면 갈등과 고통이 있죠.
롬7:20~23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자 구원받은 바울의 간증이죠. 구원받고 바르게 살고 싶은데, 자꾸 죄가 나오는 거예요.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갈구하는데,
육체 속의 다른 법이 자꾸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가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저내랴?’ 그랬죠. 7:24
이것은 지옥이 아닙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내용은 바울이 구원받은 이후에, 자기 자력으로 애쓰고 노력해서 죄를 이겨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죄감이 있잖아요.
율법의 정죄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런데 마음의 고통이 있잖아요. 정죄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결할까요?
롬8장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을 KJV 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곧 육체를 좇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자에게는’
이렇게 덧붙여놨어요.
성령을 따라 사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마음의 정죄감에서도 벗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슴이라’ 8:2
구원받자마자 심판과 지옥, 죄에서는 완전히 해방됐죠.
그 이후에 이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살 때,
양심의 정죄, 마음의 정죄에서도 실제로 벗어나는 거예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 생명의 성령의 법이 역사하는 게 교회잖아요.
‘예수의 영’이 머리로서 교회에 계셔요.
내가 거기 연결돼서 생명의 공급을 계속 받고 살아가면,
그 양심의 정죄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바로 갈라디아서 5:18절 말씀은, 롬7장, 8장을 한 절 안에 설명해주고 있는 겁니다.
◑8. 성령으로 살면,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기 오직 성령의 열매는.. 즉 성령을 좇아 행하고,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실재가 되면,
성령의 열매를 맺어간다는 얘기예요. 아홉 가지죠.
그런데 ‘열매’라는 단어는 단수예요. 틀림없이 내용은 아홉 가지인데, 열매는 단수예요.
포도송이에 보면 포도알이 쫙 있잖아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포도송이처럼, 아홉 가지가 있지만, 한 세트라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인 고린도전서 12장의 내용은,
어떤 사람에게는 주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안 주어질 수 있어요.
그러니까 믿음의 분량대로 재능을 따라, 하나님이 각각의 은사를 주시는 게 달라요.
그런데 이 성령의 9가지 열매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맺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9가지인데, ‘열매’는 단수로 얘기한 겁니다.
성령의 인도하시는 가운데 살면, 인도를 받으면, 열매를 자연스럽게 맺혀갑니다.
이게 내적 열매잖아요.
그런데 이 9가지를 세 개씩 그룹을 지어서 구분해보면
첫 번째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맺어야 될 열매예요.
그 다음에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맺어야 될 열매잖아요.
그 다음에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개인적 안에서 갖춰야 될 인격이에요.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바르게 한다는 건,
하나님과의 관계만 발라서 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사람은, 이웃과의 관계도 바르고,
내적인 인격도 바르게 성숙해가는 거예요.
그 균형을 갖출 때, 정상적인 신앙생활,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걸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9.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하게 됩니다
갈5:25~26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자 여기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이 오셨죠?
당연히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아야 돼요. 그러면 ‘성령으로 행할지니’
여기서 ‘행할지니라’는 단어는, 원어를 보면 ‘바로 곧게 계속해서 간다’는 의미예요.
정말 성령이 속에서 인도하시는 삶은, 지속적으로 성령의 뜻에 순종하는 걸 말해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성령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성령이 계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진짜 받는다면, 성령으로 행하여야 돼요.
적극적이어야 되죠. 지속적이어야 되는 거예요.
이런 삶을 살면,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투기하지 말지니라
헛된 쓸데없는 영광을 안 구하죠.
대신에 무슨 영광을 구할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게 될 거예요.
◑10.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갈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그랬죠?
‘스스로 속이지 말라’ 그랬어요. 하나님은 만홀히, 즉 조롱받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개역개정엔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신다’고 했죠.
하나님이 사람에게 조롱받으시겠어요?
보세요. 육체를 위해서 심어놓고, 성령의 것을 거두려고 하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거예요.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이 땅에 만들어놓은 법칙을 보십시오,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는 거예요.
콩 심은 데 콩 나죠. 팥 심은 데 팥 나죠.
모든 사람은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심으며 사는 거예요.
구원 안 받은 사람도 무엇인가를 심고 있어요.
구원 받은 사람도 무엇인가를 심고 있어요.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이 심는데, 두 종류를 심고 있다는 거예요.
구원받은 사람 속에 육체를 위해서 심는 자가 있다는 거예요.
성령을 위해서 심는 자가 있다는 거예요.
육체를 위해서 심으면, 썩어진 것을 거둔다는 건... 거둘 게 없다는 거예요.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두리라... 영원한 것, 완전한 것을
결국은 거두게 될 거라는 겁니다.
그럼 무엇을 위해 심으면 되겠습니까?
형제 자매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선을 행하는 건.. 심는 거예요.
잃어버려진 영혼을 건지는 것도 심는 거죠.
주님의 뜻 가운데 순종하는 것도 심는 거예요. 우리는 심다가 가는 겁니다.
심어야 돼요. 오늘도 심고, 내일도 심고,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계속해서 심다 가는 거예요.
그중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영혼을 건지는 영생의 열매를 정말 거둬야 될 겁니다.
그걸 위해서 심어야 될 거예요.
성령을 위해 심으면 영원한 것을 거둘 거예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주제가 두 개라고 했어요.
1) 첫 번째는 이신칭의, 예수 그리소를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
2) 두 번째는 구원받은 사람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살아야 된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 뭐냐?
1) 믿을 때 성령이 주어지고,
2) 약속된 성령이다
3) 그 성령은 아들의 영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친밀한 사귐과 교제를 나누게 하시며
4) 성령을 받아서 주님께 속했기 때문에, 육체를 따라 난 자의 핍박을 피할 수 없다
5) 구원받은 사람 속에서 사랑, 소망, 믿음을 주셨으니까
성령은 그것을 풍성히 누리며, 시고 소망으로 기다리게 하시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6) 그리고 성령을 좇아 행하게 될 때 육체의 소욕을 통제하고 살죠.
7) 더 나아가서 마음의 정제를 받지 않게 돼요.
8) 그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9) 성령을 따라 행하게 되고, 즉 곧게 똑바로 계속 가게 되고
10)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실제로 심고 살게 된다는 거예요.
성령 안에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갈라디아서에 자세하게 얘기해 주고 있어요.
더 살펴보시고 묵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