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그런데 왜 안 될까? 주일설교 (2026-02-01)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그런데 왜 안 될까? 살전5:16~22 2026.02.01.
성령을 소멸하지 않으려면,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고 합니다. 살전5: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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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난 주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생각을 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세 가지인데,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시제가, 현재시제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 번만 그렇게 살아서 되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계속해서 이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성도들이 이 말씀대로 살기가 어렵다라고 말합니다.
아니, ‘실천이 불가능하다’라고 말을 해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여러분,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말이에요? 세상 사람들도 이 말씀을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실제로 삶의 현장에서 이 말씀대로 살려고 해보니까,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실천이 불가능한 말씀이라는 거예요.
‘아니 슬픈 일이 많은 세상에서, 어떻게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느냐?’는 거예요.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겠느냐?’는 거예요.
‘불평과 원망이 떠나지 않는 세상에서, 늘 감사하며 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냐?’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참 이 말씀이 마음에 와닿기도 하고 감동이 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기도 하지만,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거의 실현 불가능하다’
라고 말해요. 어느 정도인가 하면,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해요.
자 타락한 죄성을 가진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면,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가 훨씬 더 많죠.
그렇다면 정말 이 말씀대로 우리가 살아갈 수 없을까요?
주님은 지켜 행할 수도 없는 이 말씀을 저와 여러분에게 주셨을까요?
(‘다만 자기가 말씀대로 못 사는 죄인임을 깨달아라’는 목적으로만,
이런 말씀들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은요.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우리가 지켜 행할 수 없는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그렇죠? 지켜 행할 수도 없는 말씀을 왜 우리에게 하시겠어요?
그러면 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뜻을 따라서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여러분, 이 말씀을 누가 행하며 살 수 있느냐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랬잖아요. 살전5:18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만이, 이 말씀을 따라 살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을 말하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예수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를 말하는 거예요.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아주 신비한 연합이 우리 안에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 가운데 오실 성령님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즉 성령이 오시는 날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성령이 오시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줄을
너희가 알게 되리라’ 얼마나 신비한 연합입니까? 요14:16, 20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누구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후5:17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주님과 신비한 연합이 이루어진 자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게 아니라,
‘주님 안에’ 있게 됨으로, 주님과 신비한 연합이 이루어진 자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내가 거하고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이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잖아요.
분명히 주님과 관계가 맺어졌고, 주님 안에 거하고 있지만... 여러분 어때요?
여러분, 이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나요? 아멘을 못하시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과 연합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누구나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성령께서 공급해주시는 힘과 능력이 없으면,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않으면,
누구도 이 말씀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입니다. 반드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하나님의 뜻을 말한 다음에, 곧 이어서 뭐라고 말씀하는고 하면,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말씀해요. 살전5:19
여기서 ‘소멸’이라고 하는 게 뭐예요? 소멸은 '불을 끄다'는 말이에요.
한자로 보면 끌 소, 없어질 멸.
그러니까 ‘끄다 없애다, 사라지게 하다’
헬라어 원문에 ‘스베누미’라는 말인데, ‘불을 끄다 꺼뜨리다 식히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라고 하는 말이 뭐예요?
불을 끄듯이 성령님의 역사와 감동을 억누르거나 꺼뜨리지 말라는 말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성령님의 그 역사와, 성령님의 임재와,
성령님의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감동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불을 끄듯이 억누르거나 막지 말라는 거예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성령의 불을 끈다’는 것은, ‘성령을 소멸한다’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지 못하도록, 성령님의 역사를 내가 제한시키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성경을 보게 되면, 성령님의 역사를
어떤 때는 불로, 어떤 때는 물로, 어떤 때는 바람으로, 어떤 때는 이슬로,
어떤 때는 비로...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왜 성령님의 역사를 이렇게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성령님은 끊임없이 운행하시고, 끊임없이 일하시고, 끊임없이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느 곳을 봐도, 성령님은 가만히 조용히 다소곳이 앉아계신 분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끊임없이 역사하시고 일을 행하시는 분이세요.
그러니까 성령님은 단순한 파워나 에너지가 아닙니다. 인격을 가지신 제삼위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지금 하나님의 뜻을 말한 다음에
이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하면서, 성령을 불로 말하고 있어요.
왜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역사를 ‘불’로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성령님은 불이다’ 그런 얘기가 아니에요.
불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기능 때문에 그래요.
◑‘성령의 불’이 가지는 기능들
▲1. 불이 가지고 있는 첫 번째 기능이 뭐냐
불은 소멸과 정화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요. purifying
그래서 불은 그 죄를 소멸하고, 더러움을 제거하는 정화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거죠.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높이 들린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보게 되었어요. 사6장
그때 스랍 천사 중에 하나가, 성전 (번)제단의 숯불을 취해서
이사야의 입술에 대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사6:7
이렇게 여러분 성령의 불은, 죄를 소멸하고, 더러움을 제거하는,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지금도 ‘성령의 불’은, 쇠를 녹이는 용광로처럼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노력으로 끊어버리지 못한 중독의 사슬을 녹이고,
우리가 끊어버리지 못한 죄악된 습관들을 끊어서, 우리를 자유케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성령의 불이 임하면, 우상 숭배의 사슬이 끊어집니다.
지금도 성령의 불이 임하면, 욕과 더러운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그 입술이 정화돼서 순화된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불은.. 단순히 뜨거움을 넘어서, 변화를 일으키고,
존재를 새롭게 하는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하면서,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펄쩍펄쩍 뛰는데
만약 아무런 삶의 변화가 없어요. 그런 사람들은 성령의 불을 받은 게 아닙니다.
이상한 불을 받은 거예요.
왜냐하면 성령의 불을 받았으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불을 받았다고 펄쩍펄쩍 뛰는데, 끝나고 나면 여전히 사기치고, 거짓말하고,
그런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불은 성령의 불이 결코 아니다 라는 거죠.
▲2. 자 불이 가지고 있는 두 번째 기능이 있는데
불은 동력, 움직이는 힘을 갖게 한다는 거죠. power
동력이라는 게 뭐야? 움직이는 힘을 말하잖아요. 모든 동력에는 불이 있어요.
여러분, 불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어요. 증기기관도, 불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내연기관인 자동차도, 불이 있어야 폭발적인 에너지가 발생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우주로 나아가는 로켓을 보세요. 강력한 불을 내뿜으면서 나오는 그 에너지로
대기권을 벗어나서 우주로 나가는 거 아니겠어요? 불은 모든 움직이는 동력의 원천입니다.
여러분 불이 있어야 솟아오를 수가 있어요. 불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불이 있어야 날아오를 수도 있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도 똑같아요.
성령의 불이 있어야 여러분 움직일 수가 있는 겁니다.
성령의 불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성령의 불이 있어야 독수리처럼 날아오를 수가 있는 겁니다.
불이 없으면 특징이 뭔지 알아요? 언제나 제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활발 타오르면, 어떤 사람도 그 자리에 앉아있지 않습니다.
근데 지금 신앙생활 하면서,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분들은,
오늘 이 말씀 앞에서 큰 찔림을 받으시길 바래요.
성령의 불이 타오르면, 절대로 그냥 앉아있지 않습니다. 그냥 있을 수가 없어요.
△제가 교회를 개척을 했는데, 제가 교회를 개척할 무렵에 저는
제 힘과 능력으로 목회를 하려고 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그 짧은 지식을 가지고, 내 힘으로 목회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모든 것이 너무나 힘들고 피곤했어요. 그리고 공허했어요.
왜 공허한지 아세요? 확신이 없으니까.
‘내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반드시 이 말씀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확신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을 전하는 내게도, 공허함이 찾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했던 것들,
내가 가지고 있는 짧은 지식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제한했던 것들을 회개하기 시작했어요.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했던 것들을 회개하고,
이제 그 성령님을 다시 한번 인정하고, 환영하고, 그랬을 때에
비로소 내 안에 계신, 내 주위에 계신 성령님이, 제 목회 가운데 역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니까... 가장 먼저 제게 피곤이 사라졌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슈퍼맨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피곤이 사라졌어요.
제가 예전에 개척 초기 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뭔지 알아요?
그때 교회는 한 200명 됐을 때, 집에 들어오면 항상 제가 소파에 벌렁 드러누우면서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어요. ‘나 피곤해. 가까이 오지마. 나한테 아무 말도 걸지마’
이게 제가 했던 18번이었어요.
그런데 성령이 임하시자, 몸에 피곤이 사라졌어요. 다음에는 확신이 생겼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선포했을 때, ‘반드시 이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생긴 거예요.
복음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우리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고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여러분, 성령의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일어설 수 있어요.
그래야 날아오를 수가 있어요. 성령의 불이 타올라야,
어떤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서,
범사에 감사할 수가 있고, 항상 기뻐할 수가 있는 거예요.
성령의 불이 타올라야.. 성령 안에서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기도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이 말씀을 주시기 바로 직전에,
무슨 말씀을 주셨냐요? ‘성령의 권능을 받으라’는 말씀을 먼저 하셨어요.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여러분, 이 말씀을 보게 되면, 나가는 것이 먼저가 아니에요. 권능을 받는 게 먼저예요.
사명을 감당하는 게 먼저가 아니라, 여러분 성령의 권능을 받고 나가라는 거 아니겠어요?
권능이 뭐예요? 두나미스 power 예요.
이 말에서 암석을 깨뜨리는 다이너마이트라는 말이 나왔어요.
이렇게 ‘성령의 불’은 우리 안에는 연약함과 두려움을 몰아내고,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오순절날에 그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의 불이 임했습니다.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성령의 불이 혀의 갈라지는 모양으로 임하기 시작을 했어요.
여러분 성령의 불을 받은 120명의 성도들을 보세요. 그냥 가만히 쪼그려 앉아 있었나요?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여러분 두려움 속에 숨어 지내던 그들이, 이제는 담대하게 나아가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생명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감옥에 갇히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예루살렘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이 되었던 것이죠.
성령의 불을 받으면, 성령의 불이 우리 안에 타오르면,
한 사람도 그 자리에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도, 다시 그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성령의 불이 계속해서 타오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성령의 불을 소멸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성령의 불을 끄면 안 된다는 거예요.
자, 이렇게 말하면 ‘아니, 목사님은 성령님을 하나의 에너지나 파워로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어요.
아니에요. 성령의 역사를 ‘불’로 말한다고 해서,
‘성령님은 에너지나 파워다, 영향력이다’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성령님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인격을 가지신 제3위격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내 마음대로 성령님을 조종하거나
또 소멸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성령님은 어떤 분이냐면,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신,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라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하여 탄식하기도 하시고,
우리의 죄와 불순종을 인하여 근심하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하셨잖아요.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엡4:30
얼마든지 우리가 그 성령 하나님을, 이렇게 근심하고 탄식하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성령의 불을 소멸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두 가지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요.
▲1. 첫 번째가 뭐냐? 예언을 멸시하지 말아야 됩니다.
살전5: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자 그러면 여기 나오는 ‘예언’이 뭐라는 거예요?
예언은 프로페테이아라는 말인데, 언어적인 의미로 보면 이런 말입니다.
‘누군가의 앞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 선포하는 것’을
예언이라고 말해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예언이 뭐예요? 앞날에 일어날 어떤 일에 대한 말씀이죠.
그런데 앞날에 일어날 어떤 일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선포된, 우리에게 주어진 그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
이라고 말해요.
그러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진 신구약 성경은 뭐예요? 예언의 말씀이죠.
그렇기 때문에 계시록 1:3절에 보게 되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자 그러면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멸시한다는 게 무슨 뜻이냐는 거죠.
‘멸시한다’라고 하는 헬라어의 뜻이 뭐냐?
‘가볍게 여기다, 무가치하게 여기다, 업신여기다, 경시하다, 무시하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것은 뭐냐면,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내게 오늘 주어진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듣고도, 내게 주시는 말씀을 받고도,
내가 그 말씀을 가볍게 여기거나, 아니면 저버릴 때가 있잖아요.
말씀을 받는데 그 말씀을 그냥 마이동풍으로 들어요. 한 귀로 듣고 곧바로 흘러보내요.
말씀대로 살려는 몸부림이 없어요. 말씀을 저버리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그런 적이 있었어요.
살전4: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저버렸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도 가볍게 여기고, 무시했다는 거에요.
그런데 이것을 바울은 뭐라고 표현하는 가 하면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렸다’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무시했는데, 바울은 그걸 뭐라고 말해요?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헛되게 하면 결국은 뭐냐?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거예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내가 무시하면,
결국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그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을 내가 듣기만 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는 몸부림도 없고,
그 말씀을 묵상하지도 않고, 그냥 그 말씀을 가볍게 여기면... 그것이 곧 뭐예요?
예언을 멸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은요., 스스로 꺼지지 않아요. 이건 중요합니다.
성령의 불은 스스로 꺼지는 법이 없어요.
그런데 내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 말씀을 무시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강퍅해져요. 말씀을 듣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마음이 강퍅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태신앙인 가운데, 강퍅해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왜? 오랜 시간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니까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이 더 강퍅해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마음의 강퍅함이, 성령의 불을 소멸시키는 겁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약화시키는 거예요.
▲2. 두 번째로 성령의 불을 소멸하지 않으려면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은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는 거죠.
살전5:21~22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자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버리려고 한다면,
먼저 범사에 헤아려야 돼요.
‘헤아리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분별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범사에 분별하라.. 범사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말하는 거예요.
신앙생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
그러니까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심지어는 여러분의 가정, 생활, 직장 생활 가운데
그 모든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분별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가 맹목적으로 믿음을 갖기를 원치 않습니다.
아무렇게나 살아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분별하기를 원하세요.
그래서 성경에 분별하라는 말씀이 참 많이 나오거든요.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요일4:1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빌1:10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여러분 신앙생활은.. 취하기 전에, 분별을 해야 돼요.
여러분 우리가 쓰레기를 버릴 때도 분리수거 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분별을 해야 돼요.
분별을 통해서, 선과 악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돼요.
땅에 속한 것과, 하늘에 속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과,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별해야 돼요.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분별해야 돼요. 여러분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보게 되면 분별을 핑계 삼아가지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유튜버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여러분 근데 그 사람들의 얼굴 좀 보세요. 남을 계속 비판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좀 보세요.
얼굴 색깔이 장난이 아니에요. 기쁨이 없어요. 왜 그럴까요?
마음이 강퍅해졌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우리는 분별하되, 내 감정과 내 사상과 시대의 유행을 따라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분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범사에 분별한 다음에, 그 다음에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돼요? 좋은 것은 취하래요.
좋은 것은 취하라고 했잖아요.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1
그럼 여기서 ‘좋은 게’ 뭐예요?
도덕적으로 선한 것을 뛰어넘어서, 여기서 말하는 ‘좋은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 그리고 공동체의 유익이 되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적으로 볼 때 선한데, 도덕적으로 선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안 맞는 것도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되고, 공동체의 덕이 되고, 유익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이 볼 때는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우리 공동체에 덕이 되지 않는다면
그건 좋은 게 아닙니다. 그것은 버려야 되고, 좋은 것들은 취해야 돼요.
내 영혼에 유익이 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면, 그런 좋은 것들은 취하라고 그랬잖아요.
취하라는 게 뭐예요? 놓치지 말고 꼭 붙잡으라는 거예요.
내 영혼에 유익된 것들이 있다면, 놓치지 말고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 있어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에요.
그들은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왔잖아요. 그런데 그들은 왕실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게 됐어요.
이제 그대로만 살아가며 그들은 어때요? 정말 성공적인 삶이 보장돼 있어요.
그런데 그들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했어요.
그들은 세상의 성공보다는 영혼의 순결을 취한 거예요.
세상의 성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혼의 순결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세상의 성공을 버리고, 영혼의 순결을 취한 것입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그랬어요. :22
여기서 말하는 ‘악’은 포네로스라는 말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악은.. 주변에 해를 끼치고, 오염시키고, 파괴시키는 성질을 가진
공격적이고 전념성이 강한 악을 말하는 거예요.
나쁨을 넘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영혼을 오염시키고 인격을 파괴시키는
아주 전염성이 강한 그런 악을 말하는 거예요.
이 악을 어떻게 하라고요? 이 악을 어떻게 해야 돼요?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이 말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끊어버리고 멀리 떠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그래야 될까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래요.
1) 첫 번째 이유는 악은 끊임없이 자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야고부 장로가 뭐라고 말했어요?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5
여러분 죄라고 하는 것은 자라는, 점점 커지는 거예요.
작은 구멍 하나가, 커다란 댐을 무너뜨리듯이
지금 내 눈에는 사소해 보이는 것, 사소해 보이는 거짓말, 미움과 험담, 작은 음란함이
나중에는 인격을 파괴시키고, 그것이 나중에는 우리 가정까지 무너뜨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어떻게 해야 돼요? 악은 자라기 전에 버려야 돼요.
자라기 전에 싹둑 잘라야 돼요.
2) 두 번째 이유가 뭐예요? 악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거예요.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음란한 사람, 부정적인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
술과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고 시간을 보내다 보게 되면
나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악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가까이 하면 안 돼요.
지금 말씀드린 순간에 막 떠오르는 사람이 몇 사람 있죠?
이런 사람은요. 가까이 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돈을 쓰는 과정에서나, 혹은 어떤 사람과의 모임에서
악의 모양이 될 만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단호히 거절하고
그 모임에서 떠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한 번쯤이야 문제없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악은 선보다 전념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이 선해지는 것보다는, 선한 사람이 악해지는 게 더 쉬워요.
우리들 주변에 보잖아요. 선한 사람이 악해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마약에 중독되었다가 그걸로 인해서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분들 있잖아요.
근데 그 마약을 끊으려는 의지가 강해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 보니까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더라고요. 자기들끼리 모여서 아침부터 큐티하고 예배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지내요. 그 이유가 뭔지 알아요?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마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세상은 악을 미화하고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여러분 왜 우리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은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될까요?
그렇게 살지 않으면 성령을 소멸시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을 소멸하면.. 우리의 능력으로는 이 말씀대로 살아갈 수가 없어요.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의 마지막은, 결론은 뭔지 알아요?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하면, 전도도 할 수 없고, 기도도 할 수 없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어요.
그러므로 여러분 다시 한번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면서 우리가 찬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불길 같은 주성령’
「불길 같은 주 성령 간구하는 우리게
지금 강림하셔서 영광 보여주소서
성령이여 임하사 우리 영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소서
기다리는 우리게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하소서
모든 것 다 바치고 비고 빈 내 마음에
성령 충만하도록 주여 채워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