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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7장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LNCK 2026. 5. 13.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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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  (2026-04-26)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수7:6~26              2026-04-26

 

이 땅에 문제가 없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생은 마치 파도가 멈추지 않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좋은 선장은 파도가 멈추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때를 기다린다면, 항구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때 능숙한 선장은 파도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파도와 바람을 다루어 극복하고 목적지로 나아갈 뿐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과 문제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현실적인 고민은 ‘어떻게 하면 내 인생에 문제가 없을까?’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온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를 가지고 고민하는 때가 많습니다.

 

문제를 피할 수 없다면, 그 문제를 극복할 방법을 익히면 될 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극복되어진 문제는, 우리의 삶을 넘어뜨리는 걸림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끄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 다가온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수7장이 이와 관련된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두 번째 전쟁이었던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에,

그들은 모든 전쟁의 의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서, 그들은 다시 한번 일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로 치르는 모든 전쟁 가운데 승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본문의 내용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삶에 다가온 문제와 실패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 제기

오늘 그와 같은 주제로 말씀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첫 번째, 기도가 회복의 시작입니다.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에 여호수아는, 언약궤 앞에 철석 주저앉아 있었어요.

그 자리는 슬픔의 자리였습니다. 원통의 자리였어요. 절망의 자리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원망을 쏟아놓는 자리였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그 자리가 변하여, 기도의 자리가 되도록 이끄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다시 한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수7:7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다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여호수아는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 이후에, 다시 한번 기도의 자리로 회복이 되어졌어요.

그렇다면 이 전쟁의 패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로 하여금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회복시켜 주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여호수아는, 그 기도의 시작을,

자신의 슬픈 마음을 토로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집니다.

 

첫 시작이 무엇이냐면 ‘슬프도소이다’

슬픈 일은.. 우리 가슴이 아픈 일이지만, 하나님을 찾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슬픈 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의 시간도 될 수가 있는 것이죠.

 

그 다음에 여호수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라고 말이 시작되었는데, 끝말이 좋을 리는 없습니다.

 

‘어찌하여’ ..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자신의 안에 있는 원통함을 쓰다듬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지금 하나님을 향한 원망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한마디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를 왜 요단강을 건너게 하셔서, 어찌하여 패배하게 만드셨습니까?

이럴 것 같으면 차라리 요단강 저쪽, (그러니까 요단강 저쪽은 동편)

거기 광야 가운데 그냥 있게 만드시지, 왜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셔서

여기서 이렇게 전쟁에서 패배하게 만드는 것입니까?’

라고 원통한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붓고 있어요.

 

여러분 그런데 기억해보시면, 이 전쟁의 패배의 원인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묻지도 않고 전쟁에 나갔어요. 묻지도 않고 나갔는데 어떻게 도와줍니까?

결국 이 전쟁의 실패는 묻지 않고 나간,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 문제의 화살을, 지금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이죠.

‘어찌하여 내 삶 가운데, 우리 공동체 가운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여호수아는 자기 생각에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한 번의 전쟁의 승리 이후에,

성공의 속도를 높여 자기가 가장 잘하는 방법을 의존했어요.

 

정탐꾼을 보내고 정보를 수집하여 전쟁의 속도를 가했습니다. 그 결과 실패했어요.

결국 이스라엘이 졌던 이유 중에 하나는 무엇이냐면,

여호수아가 자기 안에 자기 소리가 가득하여, 하나님 음성을 깨닫지 못한 데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을 듣다> 라는 책에서,

책의 저자는, 이비인후과 의사인 알프레드 토마티스를 소개합니다.

 

이분은 한 50만 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한 의사인데요.

이분이 만났던 독특한 한 환자를 소개해 놓고 있어요.

 

그 사람은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너끈히 부를 수 있는 음역대를, 어느 순간부터 부를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 오페라 가수가 여러 병원을 찾아가서 진단을 받았는데, 원인을 찾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이 토마티스 라는 의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의사는 음향 측정기를 통해서, 평범한 오페라 가수가 낼 수 있는 음을 측정했어요.

그 결과 한 1M 거리 안에서 오페라 가수가 내는 음악의 소리가 140 dB (데시벨)

정도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는 어느 정도의 음이냐면, 항공모함에서 제트기가 이륙할 때 나는 그 소리만큼이나

큰 소리입니다. 그러니 전문적으로 음악을 하시는 분들은 발성이 굉장히 큰 거죠.

 

그러니 이 토마티스가 내린 병의 원인은 무엇이냐면,

자기 목소리가 자기 청력을 망가뜨렸다’는 거예요.

 

너무 연습을 많이 하고, 공연을 많이 하다 보니까...

계속 그 고성을 듣다 보니까... 청력에 이상이 생긴 거죠.

여러분도, 바로 앞에서 제트기가 늘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얼마나 귀가 힘들겠어요?

 

자기 소리에 자기 귀가 망가져서, 그 이후로부터는 자기가 낼 수 있는 음역대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죠. (소리를 못 들으니까, 발성도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책의 저자는, 이 이야기를 예로 들어서, ‘기도와 접목을 시켜놓았습니다.

영적인 부분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리가 너무 크면, 영적인 청력이 망가져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설교 중에, 예배 중에, 찬양 중에, 기도 중에

말씀해 주셔도

자기의 소리가 너무 크다 보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죠.

 

이때 그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어떤 연주(설교, 찬양, 기도)가 아니라,

소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 앞에서 잠잠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시간이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멈춤의 시간이에요.

 

▲여호수아는 한 번 넘어졌지만, 그 넘어짐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출발이 ‘어찌하여 그랬습니까?’ 라는 원망의 말을 쏟아 놓았어요.

 

사실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면 얼마나 황당하셨을까요?

물어보지도 않고 나가서 사고쳤는데, ‘왜 하나님 이러셨냐고?’ 하소연하면,

듣는 하나님이 얼마나 기분 나쁘실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기도를 낯설게 받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이런 식의 기도를 해왔습니다.

 

출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애굽에서 4백년 이상 종살이를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은혜로 출애굽시켜 놓았더니만,

그들이 문제를 만나자마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이냐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구원을 받아 기뻐할 때는 언제고,

광야에서 문제를 만나자... 늘상했던 기도의 패턴은 무엇이냐면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였어요.        *앞에 홍해가 가로막힌 상황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받으시고, 그들 앞을 막고 있는 홍해를 갈라주셨습니다.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갑니다.

 

그 후 40년간 광야를 통과했어요.

그 다음에 가나안 입구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들이 보고했던 부정적인 소리를 듣자, 또 백성들은 ‘어찌하여’의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민14:2~3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그렇죠. 이들은 다시 한번 문제를 만나자 ‘어찌하여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서...

차라리 애굽에서 죽게 만들지, 여기까지 인도해서 적들의 칼에 죽게 만드느냐?’라고

지금 원망하고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제를 만날 때마다 ‘어찌하여 어찌하여’라며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이 기도가 우리에게 낯설지가 않아요.

 

우리 역시 문제를 만날 때마다 ‘어찌하여’ 라는 기도를 얼마나 자주 하고 있습니까?

‘이게 뭡니까?’

‘어찌하여 믿은 것에 대한 결과가 이겁니까?’

‘내 삶이 왜 이럽니까?’

우리 역시 이런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너무나 감사한 것은 무엇이냐면, 이와 같은 기도 같지도 않은 원망의 소리를

하나님께서는 다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드리고 있는 원망과 좌절과 불평과 불신의 말까지도

전부 다 받아주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불평할 말이 있거든, 하나님 앞에서 하십시오.

원망의 말이 있거든 하나님 앞에서 토로하십시오.

그 자리가 하나님 은혜로, 불평이 멈추고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지점이 되는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삶의 회복은 기도로부터 시작이 되어집니다.

그 기도가 누군가 보기에는 정말 기도 같지도 않은 기도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습 그 자체도 기쁘게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원망이든 투정이든 한숨이든 침묵이든, 주 앞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끈질긴 기도>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의 저자인 리처드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놓았어요.

 

「아기가 세상에 갓 태어났을 때 하는 첫 번째 생명의 신호가 숨쉬는 행위이듯이,

사람이 거듭났을 때 하는 첫 번째 행위는 기도하는 것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자기가 살아있음을 호흡으로 증명해내듯이,

성도가 거듭났을 때 그 영혼이 살아있음을 증명해내는 것은 호흡입니다. 그것이 기도예요.

 

그렇다면 기도는 선택이 아닙니다. 기도는 생명이에요.

기도하지 않고 살겠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물속에 잠수해서 숨쉬지 않고 참고 살아가겠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얼마나 오래 참을 수 있을까요?

 

한번 상상해볼까요? 물속에 가라앉았습니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요?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물속에 잠수해서 내가 숨을 참고

내 힘으로 버티겠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서,

불평, 불만, 원망, 한탄을 몸에 달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을 자신을 힘들게 버티지 마십시오.

기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실패한 이후에라도 기도하기 시작한다면

우리 인생 가운데 영적인 산소가 들어오게 되는 줄 믿습니다.

 

◑2. 두 번째,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바는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내 삶의 문제를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십니다.

여호수아는 ‘어찌하여’ 라고 하는 불만의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갔어요.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어찌하여’ 라는 단어로 다가오게 됩니다.

7:10~1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여호수아가 ‘어찌하여’ 라고 원망의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도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라고 지금 말씀합니다. 응답을 주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전쟁의 패배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나에게 지금 이런 불평의 말을 하고 있냐?’는 것이죠.

 

11절 말씀을 한글로 보면, 그 의미가 잘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한절의 말씀 가운데, 원어를 보면,

이스라엘이 패배한 원인을 다섯 단계로 분리해서 정리해 놓으셨어요.

그리고 그 가운데 한 단어를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 단어는 ‘베감’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무엇이냐면       *וְגַם

‘그리고 또 (나아가 심지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and

 

하나님은 이 단어를 다섯 번 쓰시면서,

이스라엘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가를 정리해 주셨습니다.

 

11절을, 원어를 넣어서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들이 또한 심지어 내 언약을 어겼으며’

첫 번째 언약의 파기 죄를 언급합니다. *아간의 범죄

 

2) ‘또한 더 나아가 심지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갔고’

하나님의 것을 침범했다는 것입니다.

 

3) ‘또한 더 나아가 심지어 도둑질하며’

도적질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거예요.

 

4) ‘또한 더 나아가 심지어 속이고’

하나님을 속여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진 것입니다.

 

5) ‘또한 더 나아가 심지어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 두었다’

공동체의 오염을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전혀 몰랐어요. 패배의 원인이 밖에 있는 줄 알았어요.

그가 기도하자, 하라님께서 그들 안에 있었던,

‘심지어 더 나아가’ 그 심각한 죄의 5가지를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과 언약관계 속에서 거룩한 전쟁을 치르는 그 동안에도

이스라엘 백성 중의 한 사람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이끌려서, 실족해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그렇지만 우리 인생 가운데 벌어지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밖에 있지 않고, 항상 안에 있습니다.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비하면, 밖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오히려 가볍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안(내부)에 있는데, 그 원인이 밖에 있다고 믿고

밖의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내면이 망가졌고 내면이 무너졌는데, 밖을 채우면 채울수록

그 하중을 견디지 못하여, 사람은 더 크게 넘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는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신 것들이 있다면,

그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문제가 벌어질 때마다,

그 문제의 원인은 밖에 있지 않고, 안(내부)에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내부 공동체를 힘들게 만들었던 내부의 적 3인방이 있습니다.

1) 구약성경에 나오는 그 첫 번째 예가, 본문에 등장하는 아간이죠.

7:25a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2) 두 번째 내부의 적은 사울입니다.

삼상14:29 ‘요나단이 이르되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30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사울이 이 땅을 곤란하게 했다..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블레셋과 전쟁 중에 있었는데, 사울 왕이 뜬금 없이 금식 명령을 내렸어요.

금식은 좋은 것인데, 이때 선포한 금식은, 하나님을 향한 금식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의 ‘오버하는 리더쉽’에서 나온 거죠.

‘밥 먹는 시간도 아껴서, 적을 치라’는 것입니다.

 

전쟁 중에 음식을 먹어야 군사들이 힘을 낼 수 있는데, 괜히 엉뚱한 명령을 내려가지고

이스라엘 군대를 힘들게 만든 거예요.

 

3) 세 번째 내부의 적은 아합이었습니다.

왕상18:17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18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아합 시대에, 북이스라엘에 3년간의 큰 가뭄이 있었습니다.

아합은 그 가뭄의 원인이 엘리야에게 있는 줄 알고, 그를 찾아다녔는데,

이유는, 엘리야가 괜한 예언을 했다는 거죠. ‘비가 안 내릴 것이다’ 왕상17:1

그래서 3년 반이나 비가 오지 않고, 큰 곤경에 처했다는 겁니다.

 

아합을 만나자, 엘리야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했습니다.

당신의 우상숭배가 이 땅 가운데 가뭄을 몰고 온 것입니다.’ 라고 엘리야가 말하는 것이죠.

 

△이 3명, 내부의 적 3인방, 이 3명의 공통점이 있어요.

1) 첫번째는, 그들 인생 가운데 진짜 문제는, 외부에 있지 않고

자기 내부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2) 두 번째는, 그런데 그들이 문제의 원인이었는데, 자신들조차 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 가운데 문제가 벌어졌다면, 어쩌면 그 문제의 원인이

내 안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기도가 필요해요.

 

기도란 무엇이냐면, 내 수준에 맞는 수평적인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아니라,

시각을 위로 올려 수직적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간이 기도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시각을 하늘으로 열어놓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들이 있어요.

 

미국에서 시작된 ‘알코올 중독자 치유 모임’ 일명 AA 모임이 있습니다.

그 모임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복되었는데요.

그 모임에서 회복된 한 사람이, 이와 같은 간증을 나누었어요.

 

나는 술을 끊기 전에 먼저 거짓말을 끊어야 했습니다.’

이 말은, 그 영혼 안에 진짜 회복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 되는 겁니다.

 

문제는 술을 계속 먹는 중독적인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술을 안 먹었다고 부인하고, ‘앞으로 먹지 않겠다고 거짓말하고,

그 상황이 모면되면 또 다시 술을 찾았던 자신 안에 있는 거짓을 끊지 않으면,

회복이 안 된다는 진실된 고백이잖아요.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듣는 동안에

혹시 하나님께서 내가 은밀하게 감춰두었던 내 안의 문제를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느끼게 하셨다면... 여러분 그것은 여러분이 끄집어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괴롭기 때문에,

그 죄를 가급적 안 쳐다보려고 합니다. 할 수 있으면 무의식에서 지워버리려고 해요.

 

그런데 그와 같은 것들이, 내가 말씀을 보는 동안에, 기도하는 동안에 떠올려졌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떠올린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떠올려 주신 것입니다.

 

‘보라고, 이 문제가 해결되야만 너의 인생은 또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고(성장한다고)’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에게서 눈을 리지 마십시오. 힘들지만 그 문제 앞에 섰을 때,

우리 인생에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3. 본문이 알려주는 세 번째 강조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골골짜기가 소망의 골짜기로 변화됩니다.

 

회복은 기도를 통하여 시작되어집니다.

기도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의 진짜 문제를 보여주십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때,

우리 삶의 아골골짜기가 소망의 골짜기로 변화되는 줄 믿습니다.

 

수7:19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가 행한 일을 내게 알게 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하니’

 

여호수아는 내부의 적이 누구인가 제비뽑기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간이 선택되자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을 하죠.

‘내 아들아’ 무슨 말입니까? 그만큼 친밀한 관계였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아간이?, 아간이 이런 짓을 했다고?’ 그럴 줄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그 아간의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어요.

우리 역시 아직까지 들키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가 행했던 그 모든 것을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이, 우리 가정에 있는 사람이, 우리 소그룹 안에 있는 교우분들이,

그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아니 당신이.. 아니 당신이 어떻게 그런 일을?’

 

우린 다 그런 존재예요. 은혜로 하나님이 덮어주셔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부분을 떠올리게 만드셨다면,

그것은 우리가 정말 다뤄야 될 문제가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고통스럽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길 원하십니다.

7:25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처형은 단호했습니다. 아골골짜기에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아간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과, 그가 숨긴 모든 재물들을 가지고

아골골짜기로 끌고가 돌을 던져, 아간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죽이고, 불을 불로 태워버립니다.

그 골짜기의 이름을 ‘아골’이라고 지었습니다.

 

‘아골’이란.. 괴롭게 하다, 어지럽히다, 재앙을 가져오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요.

즉 아간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였으며,

하나님은 그런 죄인인 아간을 괴롭게 하여, 그 골짜기에서 처형을 당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 엄청난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에,

아간 한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던 그 부분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셨다.

그 죄로 인하여 아이 성의 전투에서 지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범죄자를 색출하여 그를 처형하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무서운 거예요.

아골골짜기, 그 골짜기는 죽음을 상징하는 골짜기입니다.

죽음의 골짜기, 절망의 골짜기, 처형의 골짜기,

그 골짜기는 누구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던 골짜기였습니다.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골짜기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서 이 아골 골짜기가 변화되어

소망의 골짜기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아골 골짜기는 이후에 구약성경에 두 번 더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등장하는 장면마다 놀랍습니다.

 

1) 첫 번째, 호세아 2장에서 등장하는데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호세아가 아내를 맞이했어요. 고멜입니다. 고멜은 음탕한 여인이었어요.

호세아가 받아주었지만 계속 집을 뛰쳐나가 간음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게 만드셨어요. 다시 데리고 와서 품어주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을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매번 하나님을 배반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품어주신다.. 라고 하는 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호세아 가정을 살아있는 모델로 보여주신 거예요.

 

그리고 호세아 2:15절에서 다음처럼 말씀하십니다.

거기서 비로소 아골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여러분 보십시오. 아골골짜기로 무엇을 만든다고요?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아골골짜기는 소망의 문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절망의 골짜기, 죽음의 골짜기, 사망의 골짜기였어요. 누구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골골짜기 같은 인생을 걸어가는 너희들을 위하여

그 장소 가운데 소망의 문을 달아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겁니다.

 

여러분, 문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문의 기능은 문턱을 넘어서면 공간이 변화됩니다.

아무리 길거리여도 호텔을 짓고 문을 통과하면,

길바닥에서 5성급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아무리 사막이어도 집을 짓고 문을 통과하면, 오아시스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문은 공간의 변화를 말해요. 장소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아골골짜기,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길을 걸어가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 한복판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한다면,

그 장소까지 ‘소망의 문’을 만들어서, 그 문을 통과하는 모든 자마다

소망을 경험하게 만들어 주겠다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한 복판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곳에 ‘소망의 문’이 열리게 되는 줄 믿습니다.

 

2) 이 아골골짜기가 이사야 65장에 또 등장합니다.

사65:10 ‘사론은 양 떼의 우리가 되겠고 아골 골짜기는 소 떼가 눕는 곳이 되어

나를 찾은 내 백성의 소유가 되려니와’

 

이사야 65장에서 ‘아골골짜기는 소떼가 눕는 곳이 되어’

원래 아골골짜기는 눕는 곳이 아니에요. 죽는 곳입니다.

소떼가 왜 눕습니까? 배불리 먹어서 쉬고 있는 겁니다.

 

원래 아골골짜기는 쉬는 공간이 아닙니다. 끌려가는 공간이에요.

평안의 공간이 아닙니다. 절망의 공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골짜기가 변하여, ‘소떼가 눕는 평안의 장소로 바꿔주시겠다’라고

약속해 주셨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죠?

 

아니 어떻게 아골골짜기 가운데 소망의 문이 달려지고(만들어지고),

그 골짜기가 소떼가 눕는 평안의 골짜기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바꾸시는 이유를 이사야 65:9절에서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사65:9 ‘내가 야곱에게서 씨를 내며 유다에게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내가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서 살 것이라’

 

위 9절 다음에 ‘아골골짜기는 소떼가 눕는 곳이 된다’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10

그러니 여러분, 9절을 보십시오.

‘내가 야곱에서 씨를 내며 유다에게서 택한 자가 나오게’ 하시는데,

 

유다에게서 택한자가 나와 그 장소를 바꾸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유다에게서 택한자가 나오는 그 택한자는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마땅히 죄인으로서 아간처럼

은밀하게 쌓아오던 죄로 인하여 아골골짜기로 끌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는데,

그 골짜기 가운데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오셔서,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죽어야 할 그 장소 가운데 소망의 문을 열어놓으셔서,

 

그 십자가(소망의 문)를 통과하는 모든 영혼마다,

소떼가 누워 평안히 안식을 누리는... 그 평안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인생의 때로는 아골골짜기를 걷는 듯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어요.

넘어질 수 있어요.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호흡이 살아나기 시작한다면,

그 순간에 십자가가 보여지기 시작한다면,

그 자리는 절망의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 주님을 간증하는 소망의 문이 열려진 자리가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아요.

그 절망의 자리 가운데 십자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가 절망의 자리가 아니라, 사망의 자리가 아니라,

소망의 자리가 됨을 알기 때문에, 그 자리 가운데서 십자가를 붙잡는 것이죠.

 

이런 사람은 이런 찬양을 부르며 살아갑니다. 찬송가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입니다.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이 찬양의 2절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아골 골짝을 어떻게 갑니까? 거기는 아간이 돌맞아 죽은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아간 안에 깊숙이 숨겨둔 그 죄악을 보시고, 그를 죽인 자리가 아골골짜기에요.

어떻게 갑니까? 그 자리에 갔다가 우리 죄가 발각되면 얼마나 두려운데,

그 자리에 어떻게 갈 수 있어요?

 

그런데 믿는 거예요. 그 골짜기가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변화되어

소망의 문이 열렸고, 그 골짜기 가운데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내 영혼이 소떼처럼 평안히 눕게 되는 안식을 누리게 됨을 믿기 때문에

주님께서 가라 하시면 ‘아골 골짝 빈들에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절망의 땅이라고 말하는 그 곳 가운데 들어가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겠습니다.’

이 고백을 담아 이 찬양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살다 보면 아골골짜기를 건너는 듯한 인생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십자가를 붙잡으십시오 소망의 문이 열릴 겁니다.

‘소망의 문’ 그 문턱을 넘어가는 순간, 공간이 바뀌는 거예요.

소떼가 평안히 쉬게 되는, 그 평안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 회복은 어떻게 일어납니까? 기도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기도할 때 우리 안에 문제를 보여주세요. 그 문제에 눈을 감지 마십시오. 다루십시오.

힘들지만, 아골골짜기 같지만, 그 순간에 십자가를 붙잡을 때,

소망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 믿음 가지고 ‘내 삶의 이유라’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