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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20장 악한 시대, 의인의 사명

LNCK 2026. 5. 1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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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시대, 의인의 사명 | 예레미야 20:9-13 | 2026.05.10 

 

◈악한 시대, 의인의 사명             렘20:9~13                2026.05.10.  [예레미야 16강]

 

우리 기독교는 이원론적 신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원론적 신관’이란 태초부터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서로 대결하는 구도로 존재하는 것,

이것을 ‘이원론적 신관’이라고 해요. 그런데 기독교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태초에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홀로 존재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악까지도, 하나님이 만드신 선한 것이 변질되어 악이 된 것이에요.

모든 악도 하나님의 허용 아래서 이 땅에 드러난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따라서 더욱 악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가 있고,

그런 악한 일의 배후에는, 물론 악한 신, 성경이 말하는 마귀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성경은 때때로 이런 ‘마귀’의 존재를 가리켜 ‘이 세상 신’ 혹은 ‘이 세상 임금’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요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사탄의 세력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선언하는 말씀이에요.

 

또 요일5:19절의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이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 악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시대에는, 평범한 시대와 다르게, 더욱 악한 일이 기승을 부리는

그런 시대가 있습니다. 그런 특별한 시대, 특별한 곳, 특별한 나라에서, 특별한 도시에서,

특별한 가정에서, 이런 악한 일들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본문의 예레미야 선자가 살았던 시대,

그 당시에 유대 말기가 바로 그런 시대, 그런 장소이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예레미야 19장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유대 땅 예루살렘 성읍에 그들의 악함으로 말미암아

곧 이망에 대할 하나님의 심판 재앙의 경고가 예언되고 있습니다.

 

렘19: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

 

그들이 주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기 때문에, 이 심판이, 이 재앙이 불가피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가장 악한 모습은 이렇게 드러났습니다.

이런 심판의 말씀을 증거하는, 백성을 깨우치조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오히려 그 나라 사람들이 체포합니다. 그리고 감옥에 투옥시킵니다.

 

자 이 광경을 제사장 바스훌 한 사람의 음모에 의해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체포되어 투옥되는 악한 일에 대한 증언을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렘20:2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

 

이런 부당한 폭력을 경험하는 선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서 다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렘20:5 ‘내가 또 이 성읍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중품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리라

6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사는 모는 사람이 포로 되어 옮겨지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너의 거짓 예언을 들은 네 모든 친구도 그와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악한 제사장과, 그를 따랐던 유다의 모든 백성들이

이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거기서 인생을 마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이 다시 전달된 것입니다.

 

자, 이런 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에, 거기서 살고 있는 의로운 사람들,

의인들의 반응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지금 5월 달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 시대도 그렇게 선한 시대라고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악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녀들을 키워야 하는 모든 부모들, 믿음의 부모들,

의로운 부모들은,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내야 할까요?

 

악한 시대에 의인의 사명 무엇일까요?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의 반응을 통해서 우리는 3가지 사명을 배우고자 합니다.

 

◑1. 악한 시대 의인의 사명 세 가지, 그 첫째는 <말씀 선포의 사명>입니다.

 

렘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며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여기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마음을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

 

자, 말씀 때문에 박해를 당하고, 말씀 때문에 체포를 당하고,

말씀 때문에 투옥을 당하면서도... 이 말씀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것이 바로 선지자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 마음이 지금 말씀으로 불붙고 있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선지자는 말씀을 불로 체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여러 번 말씀의 능력을 증거하면서

‘말씀은 불과 같다, 혹은 말씀은 방망이와 같다’ 이렇게 증거합니다.

 

렘5:14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을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을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르리라’

 

렘23:2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자 하나님의 말씀이, 불로 그 마음에 임한 사람들, 그들은 결코 잠잠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선포할 수밖에 없고, 그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이 말씀 선포, 말씀 전파는, 하나님의 백성 우리 모두의 사명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16절에서의 바울사도의 고백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말씀의 사람 바울의 고백입니다.

 

▲종교개혁의 기초를 놓았던 마르틴 루터는 1521년, 소위 보름스 종교 재판에 끌려갑니다.

거기서 종교개혁에 대한 그의 주장을 철회하도록 압박을 받았을 때

그는 이런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내 양심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으며,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자기의 사랑하는 독일 백성들 모두가

이 성경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사명을 완수했던 것입니다.

 

18세기 영적 대각성운동을 영국에서 이끌었던 조지 휫필드라는 목사님이 계셨어요.

그는 자기 생애를 통해 1만 8천 번이나 설교를 했습니다.

그가 나이가 늙었을 때 ‘목사님, 그만 이제는 쉬시지요’ 라는 권고를 받았을 때,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녹슬어서 없어지기보다도, 말씀을 전하다가 닳아 없어지기를 원하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그분(휫필드)이 했어요.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시대가 악할수록, 시대를 밝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까?

우리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시장에서, 거리에서도 이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최후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유언처럼 이런 말씀을 남깁니다.

딤후4:2절은 바울의 유언 같은 말씀이에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악한 시대에 의인의 사명은,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말씀을 읽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이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함께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의 축복을 함께 나눌 수가 있어야 합니다.

 

악한 시대, 그때 의로운 부모의 사명을 통해서,

말씀은 우리의 가정을 지키고, 바로 세우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악한 시대의 의인의 사명, 두 번째 사명은 <중보기도의 사명>이에요.

 

렘20: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악한 시대에 핍박을 받으면서, 투옥당하면서, 의인 예레미야가 한 일은,

자기의 사정을 주님 앞에 그대로 아뢰인 것이에요. 중보기도 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악한 시대를 극복하는 선지자의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성전에서 말씀을 증거하다가 조롱당하고 비방당하고 마침내 투옥된 것입니다.

그런 조롱과 비방을 그는 기도로 극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렘20: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선지자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다 쏟아놓고 있어요.

계속되는 예레미야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20: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얼마나 정직한 토로입니까? 마음 그대로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주님께 아뢰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런 고통스러운 심정, 억울한 마음이

기도를 통해서 그대로 투사되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모든 것을 아시는 능하신 하나님 용사이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토해내며 그분의 도움만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고난 받고 있는 자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태어난 생일조차 저주하고 싶었던 사람인 고난받고 있었던 욥,

그런데 이런 안타까운 사정 속에서 욥이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그 안타까운 사정을 아뢰이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욥기 3:20절과 26절의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욥3:20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욥3: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그런데 그걸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어요.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갈멜산에선 놀라운 승리를 거뒀지만,

잠시 후 그 승리가 역사를 바꾸지 못하고, 그는 여전히 쫓기는 몸이 되자

그는 로뎀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어떻게 죽을까?’ 그는 주님 앞에 부르짖지 않습니까?

 

왕상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하고’

 

‘하나님 내 생명 가져가세요. 나 그만 살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기도예요.

이렇게 토로하는 마음의 기도, 분명히 기도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추적을 받으며, 동굴로 숨어들어 고백한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시57:4~6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셀라’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잖아요. 심지어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도

십자가 상에서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마27:4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러니까 이렇게 기도하는 게 잘못 아니에요. 마음이 그럴 때 그렇게 기도하세요.

이 모든 절망스러운 마음의 토로, 그러나 이것은 정직한 중보기도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악한 시대에 우리가 할 일 의인들이 할 일 ‘기도’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사명입니다.

악한 시대에 악한 일을 당할수록, 우리는 더욱 중보자로 정직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야 합니다.

 

악한 시대에 의인의 사명, 뭐라고요? 중보기도입니다. 아멘!

중보기도자들을 인해 감사하십시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의 부모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던

그 기도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런 부모를 주신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3. 악한 시대의 의인들의 사명 세 번째는 <야웨 찬양의 사명>이에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던 선지자는 기도하다가 한순간 노래로 바꾸어요.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찬양이었던 것입니다.

 

렘20: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여기 ‘가난한 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경제적 가난만을 뜻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를 위시해서 의로운 일 때문에

악한 자들에게 오히려 핍박받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

그들이 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해서 말씀을 붙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

가난해서 엎드려 기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런 가난한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악한 자들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래서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는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여러분, 인생의 창조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찬양인 걸 아세요?

사43: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뭐 하려고 지어주셨다고요? 찬송하라고!

이게 성가들만 찬양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다 음치라도 그냥 다 찬양해요. 찬양을 하셔야 돼요.

 

그런데 시22:3절에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자 주님은 어디 계시다고요?

찬송할 때,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 앞에 찬양할 때, 놀라우신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찬양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전도하다가 감옥에 들어갔지만 찬양합니다.

그가 밤중에 찬양을 시작했을 때, 감옥이 흔들려요. 그리고 감옥문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매인 것도 풀어지지 않았습니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찬양 중에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시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아멘!

찬양은 자주 듣고, 자주 찬양에 참여하는 것이 좋아요.

 

△저는 이틀 전 금요일, 강남 청담동에 [광야 아트홀]이라고 있습니다.

거기 가서 뮤지컬을 봤어요. 얼마나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 몰라요.

 

이건 프랑스의 종교개혁 이후에 종교개혁을 따르던 우리 개신도들을 위그노 라고 불렀어요.

그들 위그노 들이 가톨릭에 의해서 잔인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찬양을 그치지 않았던

그런 내용이에요. 뮤지컬의 제목이 <저항 : 찬송이 된 사람들> 입니다.

 

신앙 때문에 38년간 투옥되면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주인공

'마리 뒤랑'과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1)

 

모든 상황 속에서 뮤지컬의 주인공 마리 뒤랑이라는 여인이,

한마디만 ‘저는 가톨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면 석방됐을 텐데, 그 말을 안 해요.

‘나는 주님의 뜻이라면 여기 있겠습니다’

감옥에 얼마 있었느냐? 38년을 있었어요. 실화예요.

 

거기에 38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그 감옥에 갇힌 여인들과 함께 찬양을 부릅니다.

찬양은 우리의 존재 이유라고... 찬양으로 모든 고난을 이긴 것이예요.

 

그렇습니다. 찬양이 우리의 존재 이유이고

찬양은 고난을 이기는 승리인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악한 시대에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뭘로 감당했느냐?

말씀으로 감당했어요. 기도로 감당했어요. 찬양으로 감당한 것입니다.

 

사명은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명을 상실하면 생명은 생존에 불과한 것입니다.

행20:24절 바울의 고백을 기억하시죠?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여기 사명과 생명, 두 단어가 다 나와요. ‘나는 생명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생명도 버릴 수 있다’ 왜요? 사명이 더 중요하니까.

 

사명 없이 살아있는 것, 그건 버티고 사는 것에 불과해요.

사명을 잃어버리면 생명은, 구차한 생존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는 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그 시대 속에서 의인으로서의 사명,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복음전파의 사명,

둘째가 중보기도의 사명,

셋째가 야웨 찬양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사명으로 살면, 어두운 시대에 어둠이 물러갈 것입니다. 빛이 밝아올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올 것입니다.

 

여러분, 시대가 악할수록, 우리 자녀들 키우기가 더 어려울수록,

여러분, 이 사명을 감당하는 부모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893년 미국 보스톤에서 약 6천 명이 모이는 큰 집회가 열렸어요.

그때 집회 강사로 초대받았던 목사님이 M.B 윌리엄스라는 목사님이셨는데

설교 주제가 주어졌어요. ‘성경의 중요성에 대해 설교해 달라고’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거기에 맞는 찬송가를 미리 가르쳐달라고’

 

성경의 중요성에 관해서 설교를 하겠는데, ‘거기에 맞는 찬양 뭐가 있을까?’

생각이 안 났습니다.

그래서 그 집회에서, 전체 찬양을 책임 맡고 있었던 틸만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성경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거기에 맞는 찬양이 생각나지 않네요. 무슨 찬양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이 음악가 틸만 박사가 뭐라고 말하냐?

‘그러지 말고 목사님이 시를 써주세요. 작시를 하세요. 그러면 제가 작곡을 할게요.’

 

그런데 설교자 M.B 윌리엄스 목사님은

갑자기 자기 어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돌아가신 어머니가 늘 쓰던 엄마의 성경책이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그 성경에다 손을 대고 기도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러자 그는 펜을 들어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찬송시죠.

그리고 그 시의 제목은 My Mother'S Bible 나의 어머니의 성경!

그 찬송이 바로 여러분이 부른 찬송이에요.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다른 거 물려주지 마세요. 성경을 유산으로 남기세요.

여러분이 쓰던 성경, 아버지의 성경, 어머니의 성경,

그 성경에 손을 얹고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하던 기도를 유산으로 남겨주세요.

 

어머님의 기도, 아버님의 기도, 어머님의 찬양, 아버님의 찬양,

어머님이 붙들고 읽던 그 성경, 그 말씀이 바로 나를 나되게 만들었다고,

우리의 자손들이 훗날에 간증할 수 있다면,

여러분과 저의 삶은 결코 헛된 삶을 산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다시 붙드십시오. 다시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찬양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를 키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렇게 우리를 키워주신 말씀을 유산으로, 기도를 유산으로, 찬양을 유산으로 남기신

우리의 부모님들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같이 기도하십시다.

 

..................................

 

주1) 마리 뒤랑은 18세기 프랑스의 개신교도(위그노)인데,

가톨릭 개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19세의 어린 나이에 체포되었습니다.

그녀는 지중해 연안 에그모르트(Aigues-Mortes)에 있는 콩스탕스 탑(Tour de Constance)

감옥에 갇혀 무려 38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그녀는 춥고 어두운 감옥 속에서도 동료 여성 수감자들을 돌보고

시편 찬송을 부르며 신앙 공동체를 이끌었습니다.

또한 감옥 돌바닥에 새겼다는 '저항하라(Resister)'라는 글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