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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4장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LNCK 2026. 5. 14. 11:07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두려움>

https://www.youtube.com/watch?v=NTJFZ0GwtGc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마14:24-33            2026.04.16. 

 

감사합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기를 갈망하는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독일, 체코 여정 잘 마치고 기도해 주셔서 건강하게 잘 돌아왔습니다.

 

오늘도 아마 여러분들을, 이곳에 오게 하신 분은 주님이시라고 믿습니다.

아마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님을 만나는 눈을 더욱 열어주시고,

말씀을 주시려고 하신다고 확신합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오늘 <두려움>에 대한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리려고 합니다.

요즘 국내외 정세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참 두려워할 만한, 어려운 일들을 겪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가족관계 안에서도 두려운 일이 있고, 건강의 문제도, 재정적인 문제도,

우리에게 한순간에 삶이 다 무너지는 것 같은, 숨이 탁 막히는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가 많잖아요.

 

한국에 돌아와서 목요집회를 위해 제가 말씀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두려움’에 대한 말씀을 다루기 원하시는 것을 깨닫고,

오늘 그 말씀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프라하 공항 라운지에서 그날 말씀을 묵상하는데, 신명기 20장이었어요.

그 신명기 20장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절대로 그 가나안 족속의 수나,

그 사람들의 키나, 그 성의 견고함을 보지 마라. 그거 보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고, 대신 싸우실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았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그 가나안 족속의 성읍이 크고, 사람이 많고, 군사력으로 자기보다 월등히 강한 그들을

보았을 때,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신다는 걸 믿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게 그들에게 실제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까,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여호수아 조차도, 여호수아는 실제로 출애굽 과정을 다 지켜 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둘밖에 없었어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실제로 출애굽 과정을 다 직접 목격한 사람이고,

나머지는 다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에요. 출애굽 과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말을 들은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종살이 하다가, 홍해가 갈라지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기적적으로 출애굽했던 과정을, 그들이 그렇게 귀로 전해 들은 거예요.

 

‘그 말로 전해 들은 것 가지고, 눈앞에 있는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가능했을까?’

여호수아조차 두려워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1장에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강조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게 가능했을까?’ 그런 생각이 턱 들더라고요.

 

실제로 우리의 삶의 두려움의 문제는, 우리 신앙생활에 거의 결정적인 변수가 됩니다.

‘믿음이냐, 두려움이냐?’ 하는 거예요.

 

지금 현재 여러분들 안에, 여러분의 삶의 문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오늘 정말 귀 기울여 들으셔야 되고,

그리고 그 문제에서 주님을 진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을 때 그때 어느 교회에서,

그 교인들 중에서 전문가들, 시대적인 그때 상황이 의학적인 문제,

또는 전염병의 문제, 여러 가지 사회적인 어떤 문제들 때문에,

교회도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초반부에는 많이 당황했었거든요.

 

그래서 교회 안에 그래도 전문가들만 모아서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를 당신들이 방안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렇게 전문가 TF팀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 TF팀이 보여서 의논을 하고 도출한 결론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교회 예배도 드리지 말고, 기도회도 모이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된다’ 그런 결론을 내린 것 때문에, 담임 목사님이 엄청 힘들어 하시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 전문가들의 나름대로의 생각으로는 ‘지금 이 상황은 초비상 상황이니까,

교회에서 절대로 모여서 어떤 형태의 집회나 예배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최선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거죠.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모르셨을까?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 어떤 대책이 없으실까?

하나님은 하나님도 코로나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실까? 왜 그 생각은 안 하셨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더라고요.

 

믿음의 문제가 있었던 거예요. 믿음과 두려움은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한국에 돌아오면서 두려움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무슨 말씀을 성도들과 나누어야 하나요?’ 라고 기도할 때,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두려운 게 아니라는 겁니다.

 

문제가 크고, 문제가 어렵기 때문에 그래서 두려운 거야 이건 완전히 착각이라는 거예요.

문제가 어려운 것과, 두려움은 별개의 문제라는 겁니다.

 

두려움은 두려움 자체대로 영적인 문제인 겁니다.

문제가 어려워서 두려운 게 아닌 거예요.

 

▲제가 참 바보 같은.. 제 삶의 경험 중에 하나가,

남은 한 번 훈련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저는 군 입대를 위해서 훈련을 세 번이나 받았습니다.

 

3년 동안에 걸쳐서 군 훈련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훈련을 받다가,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귀가했고,

두 번째에도 소집되고, 세 번째에도 소집이 되었어요.

고생은 정말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죠. *군목 임관 전 군인 기본훈련 9주간

 

근데 한 가지 교훈을 받은 게 있었어요.

그게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던 그 내용이었어요.

‘문제가 어렵다고 두려운 게 아니라’는 겁니다.

 

첫 번째 훈련 받았을 때, 그때는 몸도 힘들었지만, 마음의 두려움도 있었어요.

그 훈련소에서, ‘그 훈련 과정을 따라가는 일이 정말 두렵구나’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에 갔는데, 마음이 첫 번째에 가는 것과 많이 달라요.

훈련은 똑같아요. 힘들기는 마찬가지인데,

첫 번째 훈련소에서 거기서 지내본 경험 때문에,

두 번째 훈련소에 들어갔을 때는, 제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는 걸 느꼈어요.

 

세 번째 훈련소에 들어갔을 때는, 같이 훈련 받는 다른 목사님들,

거기에 신부님도 계시고, 불교 법사도 같이 있었어요.

 

그분들에게 제가 나도 모르게 조언을 해주고 있는 거예요.

‘이 어려움은 토요일이면 끝나요. 토요일에...’        *9주간 훈련

‘훈련하는 우리 구대장이 이런 식의 멘트를 할 거고, 월요일이면 이렇게 바뀔 겁니다.’

제가 경험이 있으니까, 경험담을 말해 주는 거예요. 제가 말한 그대로 됐어요.

 

‘어려우니까 두려운 건가?’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두려움은.. 독특한 별개의 영적인 문제인 거예요.

 

여러분들도 실제로 여러분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이 크니까, 그게 너무 힘드니까,

‘그러니까 내가 두려운 거야’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께서 왜 두려움에 대한 말씀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나요?

우리가 두려워하면,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못하세요.

 

두려움은.. 하나님의 역사심에 매우 심각한 장애물인 겁니다.

여러분 만약에 어떤 아이가 '학교 가는 게 두렵다'고 생각해서, 학교를 안 간다고 합시다.

그 아이 나름대로 두려운 이유가 있겠죠. 학교 가는 일이 만만치가 않겠죠.

 

어린아이들이 처음 학교 생활을 하는 일은, 아이 입장에서는 극복해야 될 과정도 많겠죠.

그런데 그 두려움 때문에, 만약 학교를 안 가게 되면, 그 아이에게는 말할 수 없이 손해지요.

 

마찬가지로 요즘 젊은이들 중에,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다는데,

결혼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이 있더라고요. 결혼하는 걸 두려워하는 거예요.

내가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까? 시댁(처가)과의 관계를 잘 가질 수 있을까?’

그래서 아예 결혼을 안 하려고 생각해요. ‘두려움이 문제라는 거죠.

 

두려움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말할 수 없는 많은 은혜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두려워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실 일들을 하지 못하게 돼요. ★

그래서 마귀가 쓰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 성도에게 두려움을 줘서,

받은 사명을 관두게 하는 거예요.

 

베다니 마리아의 집에, 사랑하는 오빠가 죽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어요.

마르다, 마리아의 마음에 낙심과 슬픔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세 친구들, ‘금신상에 절하라’

느부갓네살 왕이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자 이런 상황이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죠.

 

지금 금신상에 절하라고 왕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두렵죠.

근데 우리는 이미 이 사건의 결말을 다 압니다.

 

오빠가 죽는 극한 슬픔과 미래에 대한 불투명의 두려움 속에 빠졌어요.

지금 금신상에 절하라고 왕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자 이런 상황이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죠.

 

근데 우리는 이미 다 사건의 결말을 압니다.

나사로는 죽었다가 다시 부활했고,

그리고 바벨론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그 가운데서 놀랍게 증거했잖아요.

 

정말 두려워할 만한 일이.. 오히려 정반대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놀라운 간증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변화의 열쇠는.. ‘그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이제 여러분들이 가정생활이든지, 개인적인 문제든지, 또는 직장이나 일터나 교회나

나라 문제든지... 그게 무엇이든지 일단 마음에 두려움이 오면,

그건 하나님이 주신 게 아니라는 것을 꼭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분명히 말씀에 그렇게 약속했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 이건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렘1:17~19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말씀의 대언자 예레미야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 4부류가 나옵니다.

왕들, 지도자들(장관, 관리들), 제사장들(종교지도자들), 그 땅 백성들..

하나 같이 모두 두려워할 대상들입니다. :18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의 대언자에게, 그들을 하나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하시며

‘너는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17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들은, 이런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 담대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배가 뒤집힐 정도로 큰 풍랑이 있는 바다를

다른 제자들과 함께 항해에 가는 도중에, 정말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 풍랑 위를 걸어오셨어요.

처음에는 귀신인가 싶을 정도로 더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니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평소에 그렇게 많이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분명히 기억하실 필요가 있어요.

 

오늘도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에게,

주님은 마치 그때 풍랑이는 바다에 있었던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내니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분은 ‘아멘!’으로 붙잡으셔야 돼요.

 

그때 베드로가 ‘정말 주님이시라면, 나도 물 위를 걷게 해주십시오!’ 마14:28

예수님께서 선뜻 ‘오라!’고 그러셨어요.

 

주님이 ‘오라!’고 그런다고, 또 깊이를 모르는, 그것도 풍랑이는,

그 물 위로 내려 서는 일은...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죠.

근데 베드로가 물 위로 내려 섰습니다. 보통 믿음이 아닌 거예요.

 

아마 베드로의 평생에 예수님과 함께 지냈을 때 있었던 많은 일들이

아마 그의 기억 속에 있을 겁니다. 그게 다 복음서에 기록이 되었잖아요.

 

변화산 상에서 놀라운 광경을 본 것도, 수많은 병자가 고침 받고 귀신이 떠나고,

장모님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고기를 잡았던 첫 번째 사건도 다 놀라운 일이었지만,

아마 가장 놀라운 일, 베드로가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바로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라고 하셔서, 자기가 물 위를 걸었던 사건일 거예요.

 

이 일은 두고두고 베드로가 초대교회에 가장 큰 지도자가 되었을 때,

지도자가 된다는 일이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베드로가 초대교회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는 진짜 바다 위를 걸어야 되는 상황이

수시로 일어났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자기가 실제로 바다 위를 걸었던 그 사건을 기억했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할 말씀은,

그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갑자기 급한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태풍이 불 때처럼, 토네이도가 올 때처럼,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고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풍랑을 보게 돼요.

그 순간에 물 속에 쑤욱 빠져들어가게 돼요.

 

그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마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자 지금 베드로가 물 위를 걷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엄두도 안 날 일인 거예요.

그런 베드로에게 왜 주님은 ‘믿음이 적은 자’라고 말씀했을까요?

 

여기서 믿음은, 믿음은 어떤 증명서, 자격증과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한번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믿음을 주시면,

그 믿음을 항상 그 상태로 유지하고 있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믿음이 수시로 변한다는 거죠.

 

믿음은.. 내가 그 상황에서 주님을 바라보느냐,

아니면 문제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믿음이 있을 수도 있고,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그 순간에, 무엇을 바라보느냐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고 물 위를 걸었었던 사람이지만, 순간 풍랑을 바라보게 될 때,

그는 믿음 없는 자가 된 거예요. 그리고 물 속에 확 빠져들어간 거예요.

 

그때 베드로가 주님께 손을 내밀어서 살려달라고 해서,

주님이 베드로를 물속에서 건지시죠. 그때 예수님의 그 손, 그때 바라보았던 주님의 눈,

아마 베드로는 평생 잊을 수 없었을 거예요.

 

그 이후로 수 없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그 풍랑 위에 있을 때처럼 그렇게 함께 계시지는 않았습니다.

 

성령으로 베드로 안에 계셨을 뿐이에요. 그렇지만 생생한 느낌은 가졌을 거예요.

그리고 그 믿음으로.. 베드로는 훌륭하게 초대교회 지도자의 사명을 감당했던 거죠.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두려움을 이기는 비결인 거예요.

‘내가 왜 두려운가?’

그 말은 내가 베드로처럼, 내가 문제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두려움은 언제 없어지죠? 주님이 바라보아질 때에요.

왜 두려움이 해결이 안 되는 거죠?

솔직히 내가 지금 주님을 바라보고 있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히12: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래서 예수동행일기를 쓰면서, 예수 동행 운동을 하는 거예요.

 

‘예수님을 바라보자’ 지금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 거예요.

주님이 재림해 오실 때 주님을 만나는 것만 아닌 겁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믿음으로 반응하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기쁨으로, 감사로, 또 평안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 순종할 수 있는 비결은,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일 때입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도, 비록 내가 파산 직전에 있어도, 내가 지금 순교하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주님을 바라보게 되면, 그러면 두려움에서 내가 이김을 얻어요.

그리고 내가 해야 될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어요.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실제로 예수님을 정말 알게 되면,

그 말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같은 뜻이에요.

 

예수님 안에 있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누리지 못하면.. 말이 안 되는 거죠.

예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되니까, 더 이상 두려움이 없게 된다는 거예요.

두려움을 내어쫓는다는 거예요.

 

계14:13에 보면 ‘주 안에 죽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하는 문제가 죽음일 거예요.

그래서 마귀가 죽음을 가지고 우리를 다룹니다.

 

가장 마지막 정말 결정적인 두려움이.. 죽음의 문제예요.

그런데 주 안에 있는 자는,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이 없는 정도가 아니고,

복이 있다고까지 말씀 합니다. 죽음이 복이 된다는 거예요.

‘도대체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일까요?’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홍정길 목사님이 암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은퇴하시고 처음 선한목자교회에 오셨을 때,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으셨다고,

자기가 암진단 받았던 이야기를 그때 하셨어요.

 

암진단을 받고 난 다음에, 잠시 두려움이 왔대요.

그 두려움은.. 죽는 게 두려운 것이기보다는,

‘이제 내가 하나님 앞에 가게 되겠는데, 혹시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진 않았나..?’

그런 생각으로 인한 두려움이었다는 거예요.

 

‘내가 사명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가게 되는구나..’ 그게 두렵더래요.

사명을 진짜 잘 감당하지 못하신 게 아니라, 모든 사역자는 그런 조바심을 갖게 되죠.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확 깨달아지는 것이

내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목사로 서지 않고, 아들로 서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셨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내가 서는 순간에 ‘너 목사로서 목회나, 사명을 제대로 감당했냐?’

하나님이 그렇게 묻지 않으시고,

 

‘죽음은.. 하나님이 나를 아들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로서 나를 받아주시는 자리이다’

그 마음이 팍 들어오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싹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 앞에 서는데, 아버지가 이제 아들을 맞이하는 건데,

무슨 사명을 잘 감당했냐, 안 했냐... 하는 것을 따지시겠는가?’ 그런 고백을 하셨어요.

 

진짜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죽음에도 두려움이 없어지는 거예요.

죽음조차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돼요.

이게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엄청난 은혜예요.

 

우리가 진짜 예수님을 믿으면, 이렇게 믿어야 하는 거죠.

문제는 ‘내가 그렇게 예수님을 알 수 있을까?

예수님 안에 거하는 그런 은혜를 나도 그런 은혜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거죠.

 

요즘 그리스도인들 안에 ‘의심’이 있음을 봅니다. 믿어지지 않는 거예요.

성경책 속에서 예수님을 보는데,

지금 내 가정생활, 직장생활, 내 교회생활에서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내가 만날 수 있을까?

나도 그런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이 거짓이죠.

어떤 특별한 성도에게만 ‘주님은 포도나무고 우리는 가지’가 되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은 몇몇 그리스도인에게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물 위를 걸어오는 베드로를 만나 주신 주님은,

지금 풍랑을 만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오라. 물 위를 걸어오라.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이 적은 자여!’ 동일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성경에 그렇게 기록을 해두신 거예요.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처음 이용도 목사님에 관한 책을 읽고,

그리고 대천덕 신부님에 대해서 읽고, 요한 웨슬리에 대해서 읽고,

리즈 하워즈 같은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책을 읽을 때... 엄청 감동을 받았습니다.

리즈 하월즈 관련글 모음

 

‘이렇게 살아야지.. 이런 하나님의 종이 돼야지...’

그런데 한편 마음에 두려움이 일어나요.

 

‘과연 내가 이분들처럼 그렇게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할 수 있을까?’

그 점이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처럼 살고는 싶은데, 내가 그렇게 쓰임 받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분들처럼 그렇게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은... 너무 두렵더라고요.

사람들에게 비난도 받기도 하고, 때때로는 고난도 겪고... (이것을 감내할 수 있을까?)

 

이번 독일과 체코 여정을 쭉 둘러오면서, 진짜 하나님을 말씀대로 믿고 살려는 이들이 겪는

고난의 현장을 보았어요.

저는 신학생 때 그게 너무 두려웠어요.

그래서 마음에는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고, 또 그런 갈망도 생기지는 했지만,

당시에 온전히 그 길을 가지 못했었어요.

 

그게 제 삶을 거의 이제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 제가 가장 원통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셨던 그 감동대로 그때부터 그렇게 살았으면,

아마 지금 제 인생은 전혀 다른 인생이 되었을 거예요.

 

근데 문제는.. 그때는 그 삶을 살아낼 믿음이 제게 없었던 거예요.

그런 삶을 사는 게 너무 두렵기만 했었던 거예요. 그래서 포기했던 겁니다.

 

만약 그때 누군가 저에게, 그때 제가 가지고 있었던 그 믿음으로만이라도,

믿음으로 순종의 걸음을 살도록 도와주기만 했었다면 좋았을 것을...

 

믿음은 자라는 거거든요.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것도,

한 번의 믿음으로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처음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밤새도록 물고기 잡다가 한 마리도 못 잡은 때였어요.

 

그때 예수님이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

이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거역하기 어려운 어떤 권위를 느끼고,

그리고 순종하여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는 것부터, 이제 베드로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주리라’

그물 다 내려놓고, 잡은 물고기 다 버려두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어요.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살면서, 장모님 열병도 고침받고,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도 경험하고, 바로 이 물 위를 걷는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 겁니다.

(믿음이 점점 자라는 겁니다)

 

그러니 베드로도 한 번에 물 위를 걸었던.. 그 믿음을 가졌던 게 아니었던 거예요.

베드로의 믿음은, 아주 작은 데서부터 계속 눈이 뜨이고 눈이 뜨이면서,

주님이 ‘물 위를 걸어오라’ 그러니까, 선뜻 배에서 뛰쳐내려서

물 위에 내려설 수 있었던 믿음이 생겼던 거거든요.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매일 매순간, 여러분 안에 이미 계신 것을 분명하게 정말 믿고,

주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니까, 이렇게 목요집회도 오시는 거잖아요.

 

‘내가 예수님과 동행하겠다’는 갈망도 가지게 되는 거고,

아주 작은 것부터 순종의 길을 살아보세요.

 

[어 얘기해 챌린지] 오늘도 집회 시작하면서, 잠깐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진행을 해주셨는데

여러분도 꼭 해보세요. 부탁을 드리는 것은 매일 하세요.

믿음은 자라요. 처음부터 큰 믿음이 아니에요.

 

▲제가 23년 전에 선한목자교회에 부임에 갔을 때, 그때 주님이 주신 말씀이 이 말씀이에요.

오늘 우리가 나눈 이 본문의 말씀이었어요.

 

그때 선한목자교회로 가는 것은 진짜 ‘물 위를 걷는 것’과 같은 일이었어요.

근데 솔직히 본래 제 성향은, 그런 도전을 할 수 있는 성향이 아니에요.

 

제가 제 성격 테스트와, 성향 테스트를 해보니까, 저는 어떤 유형이냐면

게으르고, 소파 체질이고, 복지부동이고, 결정장애가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선한목자교회 같은 그런 다급하고 어려운 과제가 있는 교회에

담임 목사로 갈 수 있습니까? 말이 안 되는 거죠.

주님이 아니셨으면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예수님이 제 안에 계시다’는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믿어지지도 않았어요. 그저 믿는 척하고 그 상황을 넘길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이 제 안에 계시다는 말씀을 붙잡았어요.

믿어지지 않지만, 제 안에 계신 것을 모르겠지만, 말씀이 그렇다고 하시니까,

그렇게 제가 목회의 삶을 살아왔던 거예요.

 

그리고 주님이 선한목자교회를 오라고 하실 때쯤 되어서는,

마치 베드로가 물 위로 내려서는 것 같은, 믿음의 수준이 된 거죠.

 

교회 일들, 해결해야 될 문제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도 제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어요.

계속 주님을 바라보는... 그리고 저 혼자만 바라보아서는 안 될 문제니까,

교우들에게 계속 ‘주님을 바라보시라, 주님과 동행하시라’고 그렇게 교우들을 권했던 거예요.

 

결국 20년 동안에 선한목자교회 목회가 그렇게 된 거죠. 저는 너무나 분명하게 압니다.

믿음은 바뀐다는 것, 믿음이 자란다는 것!

제가 처음부터 그런 믿음이 아니었거든요.

 

지금 예수동행운동을 하고 있는 지금도, 사실 똑같은 문제를 저는 겪습니다.

눈앞에는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아요.

‘과연 이 예수동행운동이 교회 안에 성도들에게 전세계로 퍼져나가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주님께서 저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세요.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만 바라보라’는 거예요.

 

어느 목사님이 하루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예수동행일기를 써도 별것 없더라’는 거예요.

그 말이 제 마음에 이렇게 확 와닿았어요.

‘예수동행일기를 써도 별것이 없는 건가?’ ... 근데 깨달아졌어요.

 

어떤 일이 크고, 혹은 별것 없고...

그 분별하는 기준이, 우리에게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번에 독일과 체코 순례여행을 쭉 하면서,

아주 웅장한 성당도 보았고, 고풍스러운 고성 old castle 도 보고,

아름다운 독일의 체코의 풍경도 보았어요.

같이 갔던 분들이 그런 아름다운 풍경이나 정말 멋있는 건물들을 보면서, 탄성이 나와요.

 

그 탄성은 저절로 나오는 거예요. 그렇죠?

‘탄성을 질러야 되겠다’ 그래서 탄성하는 게 아니죠.

 

그런데 그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계신 것은, 이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이 큰데,

이 아름다운 건물이나, 고풍스러운 성이나,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는

이렇게 탄성이 나오는데...

주님을 보고는 왜 그러지 않을까?’ 우리에게 심각하게 왜곡이 있어요.

 

무엇이 정말 놀라운 일인지, 무엇이 아무것도 아닌 건지...

우리 속에 분별력이 없는 거죠.

 

독일 헤른 후트 공동체에 갔을 때, 거기 모라비안 교도들 공동체에 갔을 때,

거기에 안내하시는 분이 헤른 후트에서 발행하는 <매일 묵상집>에 대한 소개를 해 주었어요.

‘로중겐’이라고 하는 묵상집이 있습니다.            주1) 로중겐

 

근데 같이 갔던 일행이, 그 다음날 우리 카톡방에, 그 날짜 로중겐을 올려주었어요.

 

2026년 4월 13일자입니다. 제가 그대로 읽어드릴게요.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조용한 날들에 감사하라.

이 정도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염려하지 말고,

더욱 내 안에 거하고 내게 구하라.

눈에 보이지 않는 활동일지라도, 영적인 세계에서는 크게 소리 지르는 것과 같다.

일상 중에 나를 신뢰하며 걸을 때, 값진 복을 받는다.」

 

예수님 안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엄청난 일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에요.

근데 그 점에 대해서, 내가 분별이 안 될 뿐인 거예요.

 

세상 것은 엄청 커 보이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역사는 아주 작게 여겨지는 것에

속지 마세요.

진짜는, 내가 예수님을 정말 마음에 모시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순종해 사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것 같은 작은 그 일에, 내 인생의 미래가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 점을 여러분이 붙잡기만 하시면 돼요.

 

△제가 설교 준비하면서 너무 감사했던 것이, 이번 독일과 체코 여정 속에 우리 함께 가셨던

팀이에요. 10명이었는데, 그때 이 여정 중에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 일어났어요.

 

돌아보니까 그래요. 힘든 것도 있었고 당황스러웠던 순간도 있었고

어려웠던 일들도 있었어요. 근데 그때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이번 여정 속에 우리가 정말 어떻게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만 했었어요.

 

그래서 누구도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고, 비판하는 사람도 없었고,

‘어떻게 하면 서로 사랑으로 섬길까? 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내가 섬길까?’

그 생각만 하면서 독일과 체코를 돌아왔어요.

 

저에게 있어서는 이건 너무 놀라운 일인 거예요.

가서 보았던 종교 유적지도, 그리고 아름다운 유럽의 자연도 너무 좋았고,

그 집회에 은혜의 역사도 있었지만,

 

정말 제 마음속에서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야’ 라고 싶었던 것은,

그동안 예수동행일기를 같이 쓰고, [어 얘기해] 챌린지를 했던 우리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그 여정을 같이 여행했던 바로 그 느낌이에요.

 

서로 도우려고 하고, 그러고 거기서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주님의 손길을 경험했던 그 순간들...

 

함께 갔던 가이드가 이제 여정의 마지막이 가까웠을 때쯤

‘자기도 이 팀에 좀 들어오면 안 되겠느냐? 예수 동행 팀에 좀 들어오면 안 되겠느냐?’

해서 ‘얼마든지 들어오세요.’ 하고 초대했죠.

 

그래서 처음에는 가이드는 빼고 우리들끼리만 나누다가,

그 다음부터는 가이드 집사님도 같이 함께 나눔을 갔고 그렇게 돌아왔어요.

 

주님은 우리와 정말 함께 계세요.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세요.

그 주님을 바라보는 건 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말은 어떤 어려움 속에도, 우리는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두려운 일이 여러분에게 왔을 때, 이 두려움을 없애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건 되지 않는 일이에요.

내가 두려움을 없애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뿐이에요.

말씀을 진짜 믿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을 정말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 그 마음만 가지고 순종하면

어느 순간에 두려움이 없어져요.

그리고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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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로중겐 Losungen

독일의 경건주의 공동체인 헤른후트(Herrnhut) 형제단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묵상집.

로중겐(Losungen)이란,

독일어 '로중(Losung)'은 '해결책, solution'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800여 개의 구약성경 구절 중, 매일 제비뽑기로 한 구절을 선정하여 묵상하는 전통에서

유래했습니다.

구약의 말씀(로중)을 중심으로 관련 신약의 말씀(도움 말씀)을 덧붙여

매일 아침 묵상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