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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03편 모두 잘 지내요

LNCK 2026. 5. 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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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0ㅣ모두 잘 지내요.(Everbody,s fine)(시편 1038 - 14)ㅣ Youtube 

 

◈모두 잘 지내요                시103:8~14                 2026.05.10.

 

▲도입 / Everybody's fine 영화 이야기

프랭크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평생 열심히 일하면서 가족을 부양해온 자녀들이 잘 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랬던 가장입니다.

 

멀리 사는 자녀들을 불러 모아서 파티를 준비합니다.

마트에 가서 최고급 와인, 스테이크를 사고요. 바베큐 그릴을 손질합니다.

완벽한 파티를 꿈꿉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직후라 외롭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욱 자녀들이 함께 모일 날에 대한 기대가 크고 마음이 설렙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한두 명씩 전화가 와서 ‘일정이 바빠요.. 아이가 아파요..’ 하면서,

오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네 명의 자녀 중에 아무도 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실망스럽지만 프랭크는 주저앉지 않습니다. ‘내가 찾아가면 되지!’

그래서 아빠인 자신이 직접 자녀들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뉴욕, 시카고, 덴버, 라스베이거스로!

 

2009년에 나온 영화 <모두 괜찮아 Everybody's fine> 이라는 영화 내용입니다.

Everybody's fine은 ‘모두 잘 지낸다’라는 말이죠.

 

‘자녀들이 모두 잘 지내고 있다’ 나름대로 자기 역할 잘 하면서, 주위의 인정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먼 길을 가는 게 조금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을 잘 키워낸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뿌듯하고요, 자랑스러운 마음도 함께합니다.

가는 여정 중에,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도, 막 자녀 자랑을 합니다. 자랑을 멈출 수가 없어요.

 

1) 처음에 뉴욕에 사는 큰아들 데이빗을 방문하러 갔는데,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크리스마스 파티에 오라’는 초대장을, 문 밑으로 넣어놓고 돌아옵니다.

 

외로운 여정입니다. 텅 빈 레스토랑에서 혼자 외롭게 밥 먹는 모습! (아래에 사진 나옴)

어쩌면 이 장면이 프랭크의 인생 전체를 보여주는 압축판 같아요.

외로운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을 잘 키워내었다는 보람으로 이겨왔습니다.

 

2) 이제 뉴욕에서 시카고로 갑니다.

딸 에이미는 누가 보아도 ‘와!’ 할 만큼 엄청나게 멋진 그림같은 저택에 살고 있습니다.

 

잘 나가는 사업가 남편, 딸 본인도 인정받는 비즈니스 우먼으로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 가니까 이상한 점이 있어요.

‘아이가 아파서 아빠 집에 못 가요’ 했는데, 보니까 아이가 안 아프고 멀쩡한 거예요.

 

그리고 손주가 식탁에서 자기 아빠를 대하는 모습이, 벌레 보듯 하는 겁니다.

할아버지가 와 있는데도, 마치 이 손주가 할아버지에게 ‘우리 아빠는 나쁜 사람이에요.

나는 아빠를 정말 싫어해요.’ 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집도 크고, 오랜만에 방문한지라, 한 이틀 쉬어갈까 계획했었는데

딸은 아빠가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3) 그래서 가방을 들고, 둘째 아들 로버트를 찾아서 덴버로 갑니다.

오케스트라단 지휘자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까,

저 뒷구석에서 타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연습하고 있는데, 연습 중간에 빠져나와도 표시도 안 나는, 존재감이 약한 단원이에요.

‘너 지휘하지 않니?’

‘오늘은 안 해요.’

 

그런데 아빠는, 아들이 지휘자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에게 나중에 계속 추궁을 하니까,

아들이 하는 말이 ‘아빠, 내가 지휘한다고 한 번도 말 안 했어요.’

 

아들이 음악한다 그러니까.. 아빠가 좋게 알아들어서,

그냥 ‘우리 아들이 지휘자라고’ 자기가 단정해버리고, 칭찬하고, 자랑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요. 아들 잘못도 있어요.

‘아빠가 내가 지휘자라고 생각하고 계신다’는 걸 알잖아요.

그러면서도 사실을 그대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용기가 없어서일까요?

아빠를 배려해서일까요? 그게 정말 배려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아들 로버트는 ‘제가 곧 당원들과 함께 유럽 투어를 떠나야 되기 때문에

아빠와 시간을 보낼 수 없습니다.’

 

4) 그래서 아빠는, 덴버를 떠나서 막내딸 로지가 사는 라스베이거스로 갑니다.

라스베이거스에 가니까, 막내딸이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리무진을 타고

공항에 마중나왔습니다.

 

운전기사를 부리면서 그렇게 아빠를 집으로 모셔갑니다.

최고급 고층 아파트, 운동장같이 넓은 거실, 반짝반짝하는 가구들,

성공한 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빠가 흐뭇해하지만 뭔가 어색해요.

 

이 밝은 모습에서, 쾌활하려고 일부러 너무 노력하는 듯한 모습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 엿보입니다.

 

‘아빠, 저희 집에서 주무시고 가세요.’

‘아니야, 내가 여행을 너무 길게 했구나’

사양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빠 프랭크는 심장마비로 쓰러집니다.

 

눈을 떠보니까 아빠 자신이 병원에 누워있고, 세 자녀가 옆에 와 있는 거예요.

자기가 심장마비와 뒤이은 혼수상태에 있으면서, 꿈을 꾸었는데,

어린 자녀들과 함께하는 식탁입니다. 아이들과 대화하는 모습이 겹치면서,

자녀들이 감추어왔던 모습이 드러나요.

 

큰 아들은 아직 연락이 닿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못 왔습니다.

큰 딸은 부삿집이지만.. 남편이 계속 말썽을 피워서, 이혼 위기에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지휘자는 고사하고, 유럽 투어도 돈 드니까 못 따라가요.

막내 딸은 라스베이거스에 사는데, 정말 가난하게 남의 집 애 봐주면서 살아가고 있고,

그 화려한 집도 친구한테 하루 빌린 거고요. 리무진도 물론 렌트카입니다.

 

아마도 이 내용이 꿈에서 보지 않았다 해도.. 아빠가 대강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 자녀들의 어두운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러면 안 돼지!’

라고 꽉 누르고 있다가, 이게 혼수상태가 되니까 의식이 느슨해지잖아요.

그 현실이 막 떠올라오는 거죠.

 

왜 이 자녀들은 솔직하지 못했을까요? 아마 거짓말을 하려고 한 건 아닐 거예요.

굳이 자기 사정을 말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까 쌓여서 그렇게 됐겠죠.

 

자녀들의 그 마음에는, 아버지 앞에서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아들, 딸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죠.

 

▲여러분 오늘 어버이주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라는 단어로

하나님을 표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 ‘하나님의 이미지’에는,

내가 갖고 있는 ‘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겹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엄마와 아빠는, 우리가 아는 모든 단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입니다.

가장 포근하게 우리를 감싸주는 ‘엄마, 아빠’는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부모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아요.

‘아버지’ 하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존경의 마음으로 고개가 숙여지는...

막 힘과 용기가 솟아나는 아버지, 그런 훌륭한 아버지도 계시지만,

 

‘아버지’를 생각만 해도,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아버지를 피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을 ‘어떤 아버지라고 하는지’, 관심 있게 들여다봐야 됩니다.

 

시103: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우리가 단지 ‘먼지’ 일뿐임을 기억하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어떤 분은 ‘오늘은 어버이 주일인데 아버지 이야기만 하십니까?’

여러분 성경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번역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조금 더 깊이 읽으면, 조금 다른 부분이 보입니다.

 

‘(자식을) 긍휼히여긴다’ 할 때, 이 ‘라함’이라는 말은 어원은 레헴인데,

여성의 자궁, 모태를 말하는 겁니다.

 

엄마가 여린 생명을 그 자궁에 품듯이 하는... 이게 ‘긍휼히 여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의 하나님의 ‘모성적 이미지’가 여기 있는 거예요.

성경에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죠?

‘예루살렘아, 내가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품으려고...’

하나님을 암탉으로 묘사했고요.

 

다윗은 ‘하나님, 저는 젖뗀 아이가 엄마 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시131:2

하나님을 엄마처럼 묘사하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내용적으로 보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어버이’라는 말이 더 맞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엄마와 아빠의 이미지와 좋은 점이 다 들어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훌륭한 엄마, 아빠를 합쳐서,

거기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출발해 보셔도 좋습니다.

 

▲이 영화 <Everybody's fine> 에서도, 아이들은 엄마하고만 말해요.

전화를 했는데 아빠가 받으면요. ‘아빠 잘 지내시죠? 저는 잘 지내요. 엄마 있어요?’

그래서 엄마를 바꿔주면, 아빠는 그걸로 통화가 끝입니다.

 

평생 한 대화가, 전화가 그것뿐이에요.

엄마는 자녀하고 한참 통화합니다.

 

‘어떻게 지낸대?’ 물어보면 모두 잘 지낸대요.

Everybody's fine.. 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왜 아빠에게 아이들이 솔직한 이야기하기 힘들어 할까요?

그건 아빠의 기대 때문이죠.

우리의 사랑에는 ‘내 중심의 기대와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숭고하지만, 순수하지 않을 때도 많죠.

그런데 세상에서 성적 순으로 자녀를 평가하고...

여러분, 사람을 세상의 성취로 따지는 그 가치관이, 그 기대가 이미 부모에게 들어와 있어서,

그 기대가 자녀를 억눌러서, 자녀를 숨막히게 해버린다는 겁니다.

 

여러분, 엄마가 아빠에게 말하지 않은 게 배려일까요?

아빠의 입장에서는요. 자기 나름대로 그려놓은 가정의 이미지가 있는 거예요.

소원이 있는 거예요.

 

그 완벽한 가정의 이미지에, 아이들은 거기에 맞추느라고,

그 아빠의 그림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숨막히고 힘들게 살았을까요?

 

△이 영화는 주인공이 완벽한 파티를 준비하면서 시작됩니다.

완벽한 파티를 하려는 그 의미는, 완벽한 가정에 대한 기대가 있는 거예요.

 

이렇게 가정에 갈등이 많은데, 아무리 잘 준비해도, 그 파티 분위기가 좋을 수가 없죠.

 

그리고 그 이면에는 완벽한 삶에 대한 소망이 있는 겁니다.  *세속적인 소망

이런 완벽한 삶, 조금 더 부족함이 없는... 너무 좋은 그런 삶이 세상에 있을까요?

그런 가정이 있을까요?

 

우리 교회가 교인이 수천 명인데, 이 많은 가정 중에

여러분 단 한 가정이라도 찾아보세요.

‘내가 아는한 이 분의 가정은, 아무 걱정, 어떤 아쉬움도 없는 완벽한 가정이다.

아픈 손가락이 하나도 없는 가정이다’

 

만약 이런 가정을 한 가정이라도 찾아오시면, 제가 상을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을 다 뒤져서 찾아보아도 없을걸요?

세계를 다 뒤져도... 아니 오늘 시대만 아니라, 역사를 다 뒤져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보았습니다. 전도서 기억하십니까?

솔로몬이 그 모든 영광, 성공, 재물, 세계인의 찬사를 받아도 ‘인생은 헛되다’ 그러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전도서의 주제를 기억하십니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이 행복이라 부르는 그것 말고,

숫자로 표현되는 성공의 지표, 그 강박 말고, 정말 좋은 삶 good life 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물어야 되는 거예요.

 

결론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12:13

이게 ‘좋은 삶’의 출발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13절에 보면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렇게 ‘좋은 삶(이상적인 삶)’의 출발은, 하나님을 경외는 삶이고,

그 안에,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들어있습니다.

 

여러분 ‘경외’라는 말에는, 굉장히 넓고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최소한의 의미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존중한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학생이 선생님을 존중한다’ 그게 뭐예요?

선생님께 인사 잘하고, 무례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선생님의 의견을 존중하는 거예요.

 

노래 배우는 학생이 ‘나는 별로야, 성악에 소질이 없어’

근데 선생님은 ‘아니야 너는 정말로 대단해, 성악에 자질이 있어’

이 맥락에서 선생님을 존중한다면 뭡니까?

선생님의 판단과 의견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따르는 것입니다.

 

시103: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아버지 생각하면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 성질 급한 우리 아버지,

다 듣기도 전에 화부터 내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평생, 자녀들에게 그거 (아버지 화) 막아 주느라고 얼마나 고생 많으셨습니까?

경상도에 특별히 많죠?

 

여러분, 그래서 자녀들에게 '화내는 아빠, 나에게 실망했다라고 말하던 아빠',

그래서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두려움 안에는 ‘나는 사랑받을 존재가 되지 못한다’라는 그러한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두려움이 깊으면, 남녀간의 사랑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죠.

 

옛날 유행가 중에 그런 게 있었습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애모

작아져요. 사랑은 하는데, 잘 보이고 싶은데... 위축이 돼요.

 

우리에게는 ‘자신이 사랑받기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예요. 그래서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그런 만큼 점점 멀어져 갑니다.

 

성경은 먼저 우리가 먼지에 불과한 존재임을,

그러나 사랑받은 존재임을 일깨워줌으로써... 이 두려움에서 해방시킵니다.

 

▲시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라는 말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먼 거리를 뜻하죠.

그렇게 우리 죄과를 옮기셨다는 거예요.

 

우리의 죄를 이미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그 죄의 결과를 이미 하나님은 멀리 옮기신 줄 믿습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 죄를 아직도 끌어안고 있어요. 하나님의 용서를 믿지 못해요.

쓰레기, 냄새나는 쓰레기를 다 갖다 버렸다가,

다시 집에 가지고 와서 주저앉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내가 죄를 버리지 못하면요. 죄를 끌어안고 있을수록, 하나님과 멀어지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을 밀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죄의식이 인간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치는데,

여러분, 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아이들을 보기에 떳떳하지 못하고, 자랑스럽지 못하고,

내 존재 자체가 아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 같은’ .. 그런 두려움이 부모에게 있을 수 있죠.

 

나의 자격없음, 그 밑에 깊은 죄의식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모든 관계에서 ‘내가 복이 될까? 민폐가 되지 않을까?

과연 기쁨이 될까?’ 하는 그런 의심이 있습니다. 자기에 대한 의심이죠.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노력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돈으로 혹은 다른 어떤 조건으로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 프랭크는 영화에서 멋진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최고급 와인과 스테이크,

완벽한 세팅, 초청장도 정성들여 만들고... 그런데 자녀들은 한 명도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자녀들이 모인 것은요, 자기가 쓰러져서 병원에 누웠을 때입니다.

아무런 준비도 할 수 없고, 어떤 연락도 할 수 없을 때,

내가 가장 연약할 때 자녀들이 모인 거예요.

 

여러분 ‘인간이 먼지(티끌)와 같다’라는 말이 여러분 실감 나십니까?  *시103:14에 ‘먼지’

너무 심한 말이라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이걸 인정하기 힘들어 할지도 몰라요.

 

그런데 여러분 아파 보면요, 실패해 보면요,

쓰러져서 내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화장실 가거나 밥 먹는 것조차 내 힘으로 못하게 될 때

그때 좀 실감할지 몰라요.

그런데 그제서야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내가 먼지라는 것이 실감난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인생에 이런 비참한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은 위험합니다. 그 교만 가운데 무너질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남편이 큰 사업을 해서 유복하게 살았습니다.

아주 젊은 나이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애들을 어떻게 키우나?’

일단 남편 사업을 이어받았는데 잘했어요.

남편보다 더 잘해가지고, 사업이 몇 배로 커졌습니다.

 

그런데 IMF 때 부도가 나서, 빈손으로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거의 막노동 같은 일들을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다가,

이제 남편 떠난 지 수십 년 후에, 배필을 만났습니다.

후에 각각 권사님, 장로님이 되셨습니다.

 

제가 재작년에 미국에 가보니까, 아드님도 장로가 되셨더라고요.

그분이 그래요. ‘목사님, 제가 돈이 많을 때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남자들 모두 내 돈을 보고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모두 다 잃고 나니까, 가난하게 되고 나니까, 좋은 사람이 눈에 보이고,

용기를 내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자기에게 아무 힘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사랑이 시작된 거예요.

 

여러분, 이런 경험을 하고 있는 분들 계실 거예요.

폭풍우가 밀려오는데, 우산 하나 붙잡고, 온 비바람 다 맞아가면서...

바람이 한 번 더 부니까, 그 우산마저 다 망가져버리는...

그 부서진 우산 붙잡고.. 어떻게 해서든지 가정을 이어가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여러분, 이 영화의 주인공 프랭크는, 이름 뜻이 솔직하다 frank 는 말이죠.

이제 쓰러져서 자녀들에게는 솔직하게 힘든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요?

 

이 프랭크는 오늘날 많은 아버지들의 모습을 비추어줍니다.

또 서로 사랑하면서도 가까워지지 못한, 안타까운 관계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옛날에 영어 배울 때 How are you? 이러면 뭐라고 대답하죠?

I'm fine, Thank you. 근데 여러분 I'm fine 이게 굉장히 허접한 영어입니다. 아세요?

안 통할 때가 많아요.

 

이齒가 아파서 밤새도록 끙끙거렸습니다.

잠도 못 자고요. 스트레스가 끝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출근했어요. 누가 How are you? 물어보면 뭐라고 그럽니까?

I'm fine! 거의 기계적으로 그렇게 대답합니다.

 

막 사업이 힘들어서, 자녀가 힘들어서, 마음이 온통 먹구름인데도,

사람들은 오늘도 I'm fine 그럽니다.

 

 

이 영화에 보면 정말 프랭크의 마음이 깨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진실은 아프다 Truth Hurts 어떤 일인지 말 안 할게요.

시간도 없고, 직접 영화를 보십시오,

줄거리를 다 이야기하면 영화 볼 때 재미없을 것 같아서...

 

Truth hurts, Hidden truth hurts more 진실은 아픕니다.

그러나 진실을 감추면 더 큰 아픔을 겪게 됩니다.

 

여러분, 몸의 어떤 부분을 다쳤다고 생각하십시다.

끄집어내어서 약 바르고 치료하는 거 아프잖아요. 덮어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아프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내가 이 세상에서 단 한두 사람이라도

누구에게도 틀어놓지 못한 진실을 끄집어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 그 사람의 삶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위 사진, 저는 이 영화를 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이 장면이에요.

식당에서 혼자 혼밥하는 이 외로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열심히 살았는데...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살아왔는데,

가족들과 마음은 다 끊어져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꿈을 꿉니다. 이렇게 식당에 혼자 앉아있는 이 외로운 노인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여기 계시네요? 함께 앉아도 될까요? 어떻게 지내세요?"

라고 물어봐주는 가족이든, 교우든...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일까요?

 

△어제 우리 새가족반 종강파티와 환영회로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동체별로 소개했는데, 마태공동체가 나와서, 여러분 “소문의 낙원” 노래 아시죠?

아주 앙증맞게 춤을 췄습니다.

 

이 노래, 우리 유치원에서 영상 올렸어요. 200만 가까운 조회가 나와서

포항제일유치원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제가 수차례 듣다가, 어제는 이 대목이 와닿았어요.

맨 첫 마디가 뭔지 아세요? “잠깐 앉아요.” 입니다.

 

그 뒤에 좋은 말 굉장히 많아요. “수프도 있고 불치병도 없고...”

그런데 그 모든 게 시작되는 게요. 잠깐 앉아야 시작돼요. 잠깐 앉아야 돼요.

 

우리 안에 아무리 좋은 마음이 있어도, 사랑이 있어도요.

“잠깐 앉아서” 서로 마음을 오픈할 수 있는, 대화할 기회가 없다면.. 불행한 거죠.

 

저는 여러분 가정이 “잠깐 앉아서”,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가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 되기를 원합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교인들이 다 나누기 힘들기 때문에, 사랑방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내 삶의 모든 것, 크고 작은 기쁨들 말하고,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러한 “소문의 낙원”이 우리에게 있다면,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놀라운 일 하실 줄 믿습니다.

 

저는 포항제일교회에 부임해서 여러 가지 기도 제목이 있었는데

하나는 주일날 교회 오시면, 우리 어르신들, 이 버스 타고 오시면서

식사도 못하시고 가시는 게 참 마음 아팠습니다.

 

그래서 지금 요한공동체가 생겨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여러분 우리 어르신들 가운데 일주일 내내 혼자 식사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교회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잠깐 앉아서, 함께 식탁을 나눌 수 있다면,

여러분, 한 끼 대접하는 것 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은혜가, 그 자리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결국 자녀들 한 명 한 명이 다 힘들게 살고, 고통스러운 소식이 들려오는데,

영화 마지막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와요.

 

프랭크가 아내의 무덤 앞에 가서, 아내에게 말을 하는 거죠.

마치 살아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독백을 합니다.

이때 하는 말이 'Everybody's fine!

여보? 걱정마세요. 모두 잘 지내요.'

 

처음에 영화가 시작할 때 Everybody's fine은, 그냥 현실을 덮어놓은 거예요.

그냥 대충 퉁치고 넘어가자는 거예요.

 

근데 맨 마지막에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성장 영화죠.

완전히 바닥을 경험하고, 바닥보다 더 밑바닥의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을 직면하고, 큰 슬픔을 겪지만, 더욱더 성장하게 되는 겁니다.

 

처음에 그냥 모르고.. 내 기대에 따라서 ‘잘 지낸다’고 말했지만, 

나중에 이 아이들이 그대의 그래도 나름대로 서로 사랑하며,

부모를 존중하며 살아가려는 애쓰고 살아가는 이 모습 하나하나가,

너무 귀하고 감사하고, 그래서 모두 잘 지내요. Everybody's fine!

그 모든 아픔을 다 알고도, 그 부족한 모습 알고도... 그래도 잘 지내요.

 

여러분, 우리 아이가 성적을 100점 받아서가 아니라,

우리 남편이 사업을 잘하고 직장에서 승승장구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잘 지내요. I am fine, you are fine' 할 수 있다면,

복된 가정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어버이주일에는 이런 시간 가져보면 좋겠어요.

함께 가족들이 잠깐 앉아서 '아빠, 나 사실은 이런 일 있었어요.

괜찮으려니 했지만 아빠 나 무척 힘들어요.’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얘들아 아빠 사실은...’ 이라고 시작하면서

마음속의 이야기 참아 못했던 아빠의 약한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다면,

여러분 거기서부터 우리 가정에 새로운 날이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온전히 우리는 길 위에 있습니다. 인생길 다 나그네 길이에요.

어디가서 텐트 치고 하룻밤 잔다 그러면요.

밥먹는데 뭐 멋진 접시에 차리고 안 그러잖아요. 그죠?

 

코펠에 라면 끓여서 냄비 뚜껑에 담아서 먹어도요. ‘좋아요. 괜찮아요. 신나요.’

여러분 우리의 본양은 천국에 있는 줄 믿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가정도 없고 완벽한 파티도 없어요.

 

완벽한 파티는 천국 가서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그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길 위에서, 나그네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 앉으세요.’ 하고, 그를 받아주며, 내가 또한 그의 옆에 앉는 겁니다.

 

예배가 바로 그런 시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면, 내가 얼마나 깊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게 될 줄 믿습니다.

그 마음으로 사람들과 함께 가족들과 함께, 교우들과 함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신없이 바쁘지만, 압박이 많지만,

아니 정신없이 바쁘고 삶에 압박이 많을수록, 우리 삶에 눈물 나는 일이 많을수록,

우리는 잠깐 앉아서, 하나님과 함께할 시간, 서로 나눌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솔직하게 용기있게 만들어주시고,

우리 서로도 용납하고 품어줄 수 있는 능력한 마음 주실 줄 믿습니다.

 

혹 우리 가정에 지난 날 깊은 상처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치유해 주시고, 새로운 소망으로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길을,

당당히 소망 가운데에 걸어가게 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