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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2장 꿈은 성취되고 상처는 아물기 시작하다

LNCK 2026. 5. 15. 17:39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리더쉽, 목회자

요셉 시리즈9. 꿈은 성취되고, 상처는 아물기 시작하다 (2026-05-08)  Youtube 

 

◈꿈은 성취되고, 상처는 아물기 시작하다           창42:5~18      2026-05-08 [요셉시리즈 9]

 

여러분, 창세기를 보시면 대부분 거의 모든 이야기가 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의 모든 스토리는 ‘가정사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고,

우리 옆에 있는 분들을 ‘형제 자매’라고도 부르죠.

교회는 철저하게 가정 중심의 구조로 형성이 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기 전에, 가정을 먼저 세우셨어요.

우리가 가장 먼저 세워야 될 공간은 어디일까요? 가정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가정을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무너진 야곱의 가정

그런데 창세기를 보면 전부 다 가정사의 이야기인데,

그 가정마다 전부 다 가정사가 복잡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요셉의 가정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요셉의 가정은 결국 야곱의 가정이잖아요.

 

근데 그 야곱의 가정 이야기가.. 참 말로 담기가 참 힘든 가정입니다.

가정 안에 역기능이 있다 그러면, 모든 역기능적인 요소가 야곱의 가정 안에 다 들어 있어요.

 

야곱의 결혼부터가 사기 결혼이었습니다.

야곱은 원래 라헬을 원했는데, 장인이 속여서 레아와 결혼했어요.

출발 자체가 사기 결혼이었습니다. 원하지 않게, 아내가 네 명이 생겼어요.

 

그들 가운데 열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니 집안이 얼마나 복잡했을까요?

저는 딸 둘을 키우고 있는데도 만만치 않은데,

열두 아들을 키운다... 저는 상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어머니가 다 다릅니다.

그 아들들 가운데 그룹을 지어서 사고를 치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딸 디나가 강간을 당했어요. 믿음의 가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딸이 강간을 당하자, 형제들이 나서서 세겜 족속을 속여서, 그들을 다 죽여버립니다.

무서운 가정입니다.

 

큰 아들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인 빌하와 동침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죠?

또한 야곱은 요셉을 대놓고 편애합니다.

형들은 그게 너무 보기 싫어서, 꿀밤을 때린 것이 아니라, 동생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집단으로 아버지를 속입니다. ‘악한 짐승이 동생을 찢어 죽였습니다’ 하고요.

 

그 집안이 얼마나 지긋지긋했는지... 그 집안의 실제적인 장남 역할을 감당했던 유다는,

혼자 집을 뛰쳐나갑니다. 집을 뛰쳐나가서 결혼하였는데,

세 아들을 낳았고, 두 아들은 죄를 지어 하나님께 죽임을 당합니다.

 

유다는 남은 한 아들을 지키고자 며느리 다말을 속였더니만,

그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속여서, 유다와 다말이 잠자리를 같이 합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잠자리를 같이 하여 쌍둥이를 낳았어요...

 

가나안에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손가락만 빨고 있어요.

굶어죽기 일보직전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한 가정 안에서 다 벌어졌어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아니 어떻게 사고를 쳐도, 이렇게 많이 사고를 칠 수 있는 거죠?

 

야곱의 집안은, 이 땅의 모든 가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사건이,

그 가정 안에 전부 다 녹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보다 더 무너진 가정은 없을 거예요.

 

놀라운 점은 하나님은 그런 가정도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 5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나왔습니다.

 

여러분, 우리 가정 가운데, 우리 인생 가운데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이 있든지,

하나님 안에서 포기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야곱의 가정을 세우셔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변화시켜서

아예 그 사람의 무너진 가정을 → 그 민족의 이름으로 바꾸신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되시는 줄 믿습니다.

 

그분 안에 우리 가정이 놓여 있다면, 우리 가정이 힘들 수 있지만,

어려움을 당할 수 있지만, 언제든지 주 안에서 회복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 놀라운 회복의 이야기를, 오늘 본문에서부터 시작해 나가십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이 야곱의 무너진 가정이 회복되어져 나가요. 창42:5~18

 

하나님이 지금 거대한 <야곱의 가정 회복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은 “기근을 활용한 회복”이에요.

무엇을 활용한? 기근을 활용한!

 

여러분 보십시오. 기근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가정을 회복시키실 때, 풍년의 때에 회복시키지 않으셨어요.

좋을 때에 회복시키지 않았습니다. 기근의 때에 그 가정을 회복시키셨어요.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였던, 야곱가정에 얽혀 있었던 그 모든 문제를,

풍년의 때가 아닌, 기근의 때를 활용하여 회복시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기근을 통하여 그 가정을 회복시키셨을까요?

기근이 아니면, 그들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웬만한 고통이 오면.. 그냥 버티고 견뎌냅니다.

‘세상이 다 그렇지 뭐.. 나만 힘든 거 아닌데.. 옆집도 그런데...

뭐 나만 이렇게 힘들겠어?’ 그래서 웬만한 고통이 와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큰 고통이 와야, 비로소 움직입니다.

 

야곱의 가정도 정말, 그 가족이 전부 다 굶어 죽을 상황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가정이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근을 통하여, 야곱의 가정을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그러므로 기근이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기근은 변장된 하나님의 회복의 초청장이었어요.

 

야곱의 가정은, 그 초청장을 들고, 이집트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기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을 사람들이, 기근이 다가오니, 기근이 지속되니,

먹고 살기 위하여 지금 애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 인생 가운데 감당할 수 없는 기근이 찾아오거든,

여러분 주저앉지 마시고,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여실 하나님의 초대장인 줄 믿으시고,

그거 붙잡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새로운 지경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 다가온 그 기근, 삶의 어려움은,

우리 인생에 그동안 쌓여있었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순간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기금 가운데 야곱의 가정, 요셉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우리가 크게 두 가지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 번째는,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7년간의 대풍년이 끝나고 이제 7년의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야곱이 아들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어요.

 

너무 답답한 아버지 야곱이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애굽에 가면 식량이 넘쳐난다고 하던데.. 거기 총리 사브낫 바네아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지혜로워서, 기근을 미리 알고 양식을 준비해 놓았다고 하는데,

거기 가서 양식을 좀 구해와라’ 라고 자녀들을 등떠 밉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그 아버지의 떠밀림이 못마땅했지만,

그 말을 듣고 지금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돈을 들고 애굽으로 찾아갑니다.

 

창42:6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여기 보십시오. 약속이 있는 땅에 살아갔던 야곱의 아들들은

기근으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어요.

하지만 팔려간 요셉은, 기근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기근을 맞이했는데.. 누군가는 기근을 당하여 고통 속에 있었지만,

누군가는 기근을 관리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기근의 때에 죽을 것만 같았는데,

누구는 기근의 때에, 자기 국가뿐만 아니라, 이웃나라까지 먹여살리고 있습니다.

 

동일하게 다가온 기근이었지만, 그 가운데 빛을 내는 사람이 있었고,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기근이 아니겠죠.

‘그 기근을 맞이할, 그 기근을 대비할, 내 안에 믿음의 준비가 있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그러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저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땅의 다양한 삶의 영역 가운데 기근을 맞이한 영역이 있을 것입니다.

그 영역 가운데 우리 교회의 성도가 들어간다면,

우리 교회의 창고가 열려졌을 때,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들을 살리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배와, 선교와, 교육과, 나눔과, 다음 세대 리더를 세우는 그 모든 일들 가운데,

우리가 정말, 이 크나큰 기근을 맞이한 이 시대 가운데,

기근을 준비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생명을 살리고, 함께 걸어가는 그 길로

사람들을 초청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그런 상상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창고가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통장 말고요.

영적인 풍요로움, 생각의 넓음, 마음의 넓음! 우리의 그릇이 커지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 풍성해지는 거죠. 우리를 만나는 영혼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영혼이 웃음을 짓고, 그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회복을 누리는...

그것들을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요셉은 먼 곳에서 10명이 걸어오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형들이 옴을 대번에 알아봤습니다.

여러분 22년 만에 만남이었어요.

 

요셉이 17살에 팔려갔습니다. 13년이 지나 30살에 총리가 되었어요.

7년 풍년이 끝나고, 흉년이 2년째 쯤 다가왔을 때,

그러니까 지금 요셉의 나이가 39세쯤 되었을 때, 22년 만에,

형들이 거지같은 모습으로, 그 10명이 곡직을 구하기 위하여 오는 그 모습을,

요셉이 보고 있습니다.

 

요셉이 그 형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겠죠. 세월이 얼마나 흘렀습니까? 22년이나 흘렀잖아요.

 

더군다나 요셉은, 머리를 밀고 가발을 쓰고 있습니다. *애굽식 복장

더군다나 그는 애군말을 하고 있어요. 화려한 총리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형들은 감히 그 총리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더더욱 못 알아보는 거죠.

세월도 많이 흘렀어요.

 

제가 어저께 제가 나온 대학교 개교 기념일이어서, 설교하러 잠시 다녀왔는데,

생각해보니까 그 학교를 입학한 지 31년이 지났더라고요. *Acts

 

31년 만에 학교 가서 설교하고 끝난 다음에,

이렇게 원우회 무슨 총회 같은 게 있어서, 선후배들이 많이 오셨더라고요.

 

인사를 나누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고난과 질고를 그렇게 많이 당하셨는지

얼굴이 다 맛이 갔더라고요. 정말 세월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듯한 그 표정으로 나오시는데

막 인사를 하는데... 못 알아보겠는 거예요. 제 후배인데, 말을 못 놓겠더라고요.

너무 형님 같아가지고...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하하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다 힘들구나...’

 

형들은 요셉을 못 알아봤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대번에 알아봤습니다.

여러분 그렇죠.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해도,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2년 만의 만남이었어요. 그 순간에 요셉은 전율을 느꼈을 것입니다. 왜요?

그 형들이 자기를 보자마자, 그 앞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 어디서 봤습니까?

 

17살에 자기 고향집에서 꿈꿨던 내용이, 지금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창37: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요셉이 꿈을 꿨어요. 곡식단 10개가 자기를 향하여 절을 하는 것입니다.

그 꿈 이야기를 했더니, 그때부터 핍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어요.

‘왜 하필이면 곡식단이 나를 둘러서서 절을 할까?’ 요셉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알게 된 것이죠. 곡식단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자신이 베풀 곡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근의 때에 형들이 찾아와서, 자신에게 곡식을 구걸하는 이때,

그 꿈의 내용과 성취를 알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전율을 느꼈겠죠.

‘아, 그 곡식단이 이 의미였구나. 나를 통하여 형들을 살리는 그 꿈을,

하나님께서 그때 나에게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이구나’

 

그 꿈을 형들에게 말했을 때, 형들은 이렇게 말을 했어요.

창37: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형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열이 받아서 말을 했는데, 지금 어떤 광경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가운데 창42:10, 30, 33절에서, 형들은 요셉을 뭐라고 부르고 있냐면,

‘주 Lord’라고 부르고 있어요.

 

'네가 우리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라고 말을 했는데,

그렇게 지금 되어졌습니다. 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있어요.

요셉을 ’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지금 그들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성취되는 것입니다!

 

형들은 화가 나서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버리고, 이렇게 조롱하며 말을 했습니다.

37: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그들이 악한 계획을 세운 다음에 서로 말을 합니다.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형들은 지금 보고 있어요. 비록 아직은 못 깨닫고 있지만 말이죠.

그 요셉의 꿈을 막기 위하여, 그 요셉을 죽이기 원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한 계획마저 사용하셔서, 요셉을 애국으로 앞서 보내시고,

형들은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 하고 이를 갈고 있었는데,

요셉이 그 땅을 다스리고 있음을, 그들이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못 알아보지만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꿈을,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정말 믿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형들은 악의로 요셉을 팔았습니다.

이스마엘 상인들은 이익을 보기 위하여 요셉을 보디발의 집에 팔았어요.

 

보디발은 자기 필요에 의해서 요셉을 사서 사용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정욕을 위하여 요셉을 유혹했어요.

 

간수장은 자기 편하자고, 옥의 제반 사무를 전부 다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호의를 잊어버립니다.

바로는 악몽을 꿨어요.

 

여기서 벌어진 모든 사건 가운데 한 가지만 어긋나도, 오늘의 요셉의 모습은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벌어진 모든 일들은, 요셉에게 좋은 일들이 아니었어요.

요셉에게 주어진 그 꿈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를(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그 계획을 막는 것처럼 보여졌을 거예요.

그 순간의 그 단면만 보자면 해석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 22년이 지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장소 가운데,

요셉은 그간 모든 시간들이 해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간 모든 조각 퍼즐들이 맞춰져서, '오늘의 이 장면을 위하여, 나를 이렇게 인도하셨구나'

요셉은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 인생 가운데, 삶의 순간에,

지금 혹은 과거에, 어떤 일이 벌어졌든지 간에, 그 일로 인하여 주저앉지 마십시오.

 

요셉보다 더 큰 일을 당하셨습니까? 그렇진 않잖아요. 좌절하지 마세요.

요셉의 모든 순간순간을 엮어서, 합력하여 선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합하여, 원하시는 일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그 순간만 보면, 우리 인생이 방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내 인생 길이 이리저리 지그재그로 요동치는 것처럼 보여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렇지가 않아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그 순간에,

그 모든 것들은 반드시 해석되어질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날마다 주께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바는 무엇이냐면, 이 부분이 핵심인데요.

<나의 꿈의 성취가 모두의 성취가 되게 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세요>

 

나의 꿈의 성취를 통하여..

나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의 꿈 역시.. 성취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주제

 

요셉은 지금 비록 2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 모든 고통의 시간을 겪었지만,

지금 요셉은 꿈의 성취를 누리고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셉만 그 꿈의 성취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정이, 그의 형제들 역시, 하나님의 회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요셉 혼자 총리가 되어서, 형들에게 절을 받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요셉은 그 절을 받는 동안에, 또 다른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형들이 나에게 절하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원하시는 꿈이 아니라,

더 큰 꿈이 있음을, 이 순간에 느끼게 되는 것이죠.

나를 통하여 우리 가정이 다시 한번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한 사람이 열 걸음 앞서가는 것보다,

열 사람이 같은 보폭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기를 더 원하세요.

 

요셉 혼자 마구 독주하고 나 혼자 꿈을 이루었다이것이 아니라,

열 명의 형제들이 함께 서로 손을 잡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약속의 땅 안으로 들어가

함께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이제부터 그래서 요셉의 성공 위에, 요셉을 발판 삼아서,

그의 형제들과, 그의 가정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겁니다.

 

창42: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요셉이 형들을 보자마자 형들을 알아봤고,

형들이 절을 하자마자, 요셉은 그 꿈의 의미를 깨달았어요.

그리고 요셉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형들을 ‘정탐꾼’이라고 몰고 가고 있어요.

아니 요셉은 뒤끝이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 왜 갑자기 형들을, 그 거지 행색을 하고 온 그 형들에게,

정탐꾼이라고 누명을 씌우는 것일까요?

요셉이 뒤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순간에 하나님 마음을 느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42:9a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이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지금 무슨 말입니까?

지금 이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그때 꾸었던 그 꿈을 가지고 해석을 해서,

우리 가정 가운데 일하실 하나님의 공간을 열어드리기 위하여,

지금 형들 안에, 요셉이 어떤 일을 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형들이 요셉에게 절을 했어요. 그런데 형들은 요셉이 요셉인 줄 알았습니까?

몰랐어요.

 

그렇다면 형들은 누구에게 절을 한 것이죠?

애굽의 총리인 사브낫 바네아 에게 절을 한 것입니다. 동생 요셉에게 절을 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형들이 요셉에게 절을 한 그 현장은, 꿈의 외적인 완성만 이루어진 것입니다.

내적인 완성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요셉이라는 인물 앞에 형제들이 함께 사랑과 감사함을 담아,

서로 화해하여 서로를 용서하며, 격려하며 인사하기를 원하셨어요.

 

그가 요셉인지 모르는 상태 가운데, 애굽의 총리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나왔던

난민의 모습으로 절하는 것은, 꿈의 성취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지금 형들이 나와있는 그 현장 가운데서,

자기가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고 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 가운데에 회복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억사하실 공간을 열어두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가정가운데 일하실 수 있는 공간을 열어놓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요셉은 지금 뒤끝이 있어서 누명을 씌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정 가운데 오랫동안 상처로 남아있었던 뒤끝을 잘라버려요.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 지금 이와 같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는 거예요. *정탐꾼

 

저 같으면 그렇게 못합니다. 제가 그렇게 억울한 일 당했으면

형제를 만났는데 '이놈들! 내가 누군지 아냐고? 내가 당신들이 팔아버린 사람이라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라고' 막 이랬을 거예요. 얼마나 통쾌했을까요?

붙잡아놓고 한 명씩 곤장 때리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냐고?'

 

그럼 형들이 제게 ‘아이고 경훈아 미안하다’ 하면서 정말 진심어린 사과를 할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우리의 삶을 더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입니다.

 

아마 형들이 요셉인줄 알았으면 냅다 도망쳤을 겁니다. 얼마나 두렵겠어요?

하나님은 그런 식의 굴복적 상황에서 절하는 것을 꿈꾸지 않으셨어요.

 

진짜 화해되는 그 분위기 속에서, 사랑과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절하는

그 모습을 기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지금부터 형들 안에 놀라운 일을 이루기 시작합니다.

 

▲1. 첫 번째, 형들을 ‘정탐꾼’이란 누명을 씌웠어요.

 

42: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요셉은 왜 하필이면 형들에게 ‘정탐꾼’이란 누명을 씌웠을까요?

22년 전에 자기가 겪었던 모든 삶의 과정을, 형들이 경험하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내가 (요셉이) 어떤 처지에 있었는지, 본인들이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를’

몸소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총리의 자리에서 윽박지르러서, 육하원칙에 따라서 그들의 죄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형들이 겪게 함으로써, 형들 스스로의 죄를 깨닫기 원했던 것’이죠.

 

여러분, 요셉이 22년 전에 집안에서 감당했던 역할은, 형들이 느끼기에 ‘정탐꾼’이었어요.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형들은 요셉에게 제대로 말을 할 수도 없었어요.

창37:4 ‘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형들이 양을 치러 갔습니다. 집안에 채색 옷 입고 요셉이 혼자 남아있습니다.

아버지가 요셉에게 말을 합니다. ‘형들에게 가서 뭐하고 있나 보고 와라’

뭘로 보냈어요? 정탐꾼으로 보냈어요.

 

요셉이 채색옷을 입고 먼 곳에서부터 오고 있습니다.

형들이 그를 보고 이를 갑니다. 왜요? 왜 온지 아는 겁니다.

‘정탐꾼이 왔구만.. 우리 보고 어떻게 하는지, 또 아버지께 일러바치려고 정탐꾼으로 왔구만!’

 

형들의 입장에서 보면, 요셉은 정탐꾼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정탐꾼’이라는 호칭을 언급하며, 그들을 억울한 지경에 빠지게 만듭니다.

 

요셉은 너무 억울했어요. ‘나는 정탐꾼이 아닙니다. 형님들, 제발 이러지 말아주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형들이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 동일한 상황 가운데, 요셉은 지금 형들을 몰아넣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정탐꾼이라’

 

형들이 당황합니다. 그 당시 정탐꾼은 무조건 사형입니다. *오늘날에도 죄가 무겁습니다.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엿보고, 공략하거나 빼앗기 위해서 보낸 자가 정탐꾼이잖아요.

그들이 정탐꾼이라면 전부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죽음의 공포가 몰려왔습니다.

 

22년 전에 요셉이 겪었던 그 감정이, 바로 그와 같은 감정이었어요.

형들이 너무나 당황해서..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말을 내뱉기 시작합니다.

 

42: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우리 열명은 정탕꾼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형제입니다.’

왜 갑자기 이 형님들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을까요?

‘가족 정탐꾼을 본 적이 있느냐?’는 겁니다.

 

정탐꾼은 한 명씩 능력이 특출한 사람을 뽑아서 보내는데,

‘우리 다 형제입니다. 아니 형제가 전부 다 정탐꾼일 수는 없잖아요.

원래가 12명이었는데, 한 명 막내는 아버지 집에 있고, (그 다음이 중요해요)

이들은 22년간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이 말은 맞는 말입니까? 맞는 말이죠. 어디 갔는지 몰라요.

아버지한테는 죽었다고 말했어요. 아버지한테 그렇게 밖에 말 못합니다.

 

근데 여기서 지금 절반만 진실을 말하는 거죠.

‘우리가 동생을 팔았습니다.’ 이 말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없어졌나이다’ 이 말은, 반은 맞는 말이죠.

 

지난 22년 동안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그들의 영혼의 지하 방 속에 깊숙히 숨겨놓았던

그들의 은밀한 죄악을 지금 거론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요셉이 의도했던 바, 하나님이 그들 영혼 가운데 역사하는 그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기치 않은 고난이 다가오자, 형들은 자기가 살기 위하여 변명하다가,

그들 안에 있는 어떤 진실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죠.

 

△요셉은 여기서 더욱더 강하게 몰아붙입니다.

42: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케이 알겠소. 너희 말대로 너희가 전부 다 가족이고,

다 형제라면 오케이, 그 말을 증명해봐! 그러니까 집안에 막내 아들이 더 있다는데

걔를 데리고 와 봐. 그렇다면 너희가 한 모든 말은 내가 진짜로 믿어주겠다’는 것입니다.

 

혹 하나 떼려다가 혹 두 개를 붙였어요.

갑자기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리고 오라고요?

 

아버지가 걔를 보내지 않아가지고 우리끼리 왔는데, 걔를 아버지가 보내겠습니까?

혹 하나를 떼려다가, 혹 두 개가 붙는 일이 벌어진 것이죠.

원통하고 억울하고 증명할 길이 없는 거예요.

 

자신들의 무죄를 (스파이 아님) 증명하자면 동생을 데리고 와야 되는데,

그건 너무나 힘든 일임을 본인들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똑같은 경험을 22년 전에 요셉이 당했어요.

그는 억울했어요. ‘나는 그 정도로 종으로 팔려갈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닌데,

형님들 제발 그러지 말아주세요.’ 하고 외쳤지만, 형들은 그를 외면했습니다.

형들은 똑같은 일을 지금 경험하고 있는 거죠.

 

▲2. 두 번째, 요셉은 형들을 감옥에 가둡니다.

10명이 애굽이 왔는데, 어디론가 잡혀가서 갇혔습니다.

 

언제 풀어주겠다는 말이 없었어요. 갇혔으니 언제 풀려날지 모릅니다.

여기서 그냥 죽을 수도 있어요. 기약이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3일이 지났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갇혀있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여기서 우리가 죽는구나’

그걸로 자기들 생각을 정리했을지도 모릅니다.

두려움의 순간이죠. 좌절의 순간이죠.

 

애굽에 왔다가.. 정탐꾼이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누가 했던 경험입니까?

요셉이 했던 경험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던졌어요.

그 구덩이는 물을 가두는 곳이고, 물이 없을 때(건기)는 감옥으로 쓰는 구덩이입니다.

 

요셉은 살려달라고 외쳤어요. 형들이 외면했습니다. 위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있었어요.

동생은 밑에서 죽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모든 소리를 외면했습니다.

 

똑같은 상황, 형들은 감옥에 갇힙니다. 자기들의 무죄를 말하고,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라는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는 것이죠.

 

▲3. 사흘이 지났어요. 요셉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일을 합니다.

 

42: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엘로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주1) ‘엘로힘’

 

여러분 지금 요셉이 어떤 걸 제안하고 있냐면

‘너희 가족들이 굶주린다고 하니까, 곡식을 가져가서 다 주린 배를 채우고,

너희가 말했던 그 애를 데리고 와라. 대신 여기 한 명만 남아 있으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최대 권력자가 이 제안을 할 때, 18절을 다시 한번 보면,

요셉은 다음처럼 말을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라’

 

이 말을 듣는 순간에 형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애굽의 총리 사브낫 바네아가.. 이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요셉이 왜 갑자기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라’ 라고 형들에게 말을 했을까요?

 

힌트를 주는 것입니다. 방향을 못 잡는 것 같으니까, 힌트를 주는 겁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제발 좀 바라보라고 힌트를 주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한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돌아가서 동생을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고의 거래예요.

 

지금 애굽에서 헤브론 까지는 걸어서 7일 정도 걸립니다.

그러니까 ‘빨리 갔다 빨리 돌아오면 되지 않느냐?’ 라고 지금 제안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형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매우 힘든 일이었어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의 죽음 이후에, 자기들을 도무지 믿지 않았고,

그 동생인 베냐민을 품 안에서 내놓지 않는데...

총리의 제안은 실현 불가능할 것을, 그들이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22년 동안 그 이야기를, 감옥속에서 형들이 하기 시작합니다.

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

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형들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감옥 속에서 그들이 원치 않는 일들을 계속 경험하자,

또한 요셉이 겪었을 그 일들을 본인들이 경험하자, 이 고백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자기들의 죄를 지금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요셉의 총리로서 ‘너 잘못했지?’ 꾸짖으면 변명을 늘어놓았을 것인데,

그들이 (요셉과 같은) 억울한 상황 가운데 궁지에 몰리자,

자신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이때 르우벤 맏형이 한마디 더 합니다.

42: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

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지금 이 말을, 형제들이 히브리 말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요셉은 통역관을 세워놓고, 통역을 시켜 놓았습니다.

 

그 형들은, 요셉이 자기네 말을 못 알아듣는 줄 알고,

이와 같은 이야기를 계속 말하고 있는 거예요. :23

 

르우벤이 뭐라고 말을 합니까? ‘내가 너에게 뭐라고 그랬어? 그 아이를 살려주자고 했잖아?

내가 떠난 사이에 너희들이 그 아이를 팔아버렸잖아?’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요셉이 못 알아듣는 줄 알고, 르우벤이 그때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그때 요셉은 구덩이에 갇혀서, 구덩이 위에서 형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 순간에, 자기가 구덩이 속에 갇혔을 때,

형들이 위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이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 맏형 르우벤은 날 살려주려고 했구나.. 아, 그랬구나..’

‘그런데 형이 잠시 떠난 사이에, 그 나머지 형들이 나를 팔아버린 것이구나’

 

근데 유추해보니까, 유다는 나를 팔아버리자고 말한 사람이고,

죽이자고 주동한 사람이 아니고,

유다는 넷째 형이고, 르우벤은 첫째 형이고...

그렇다면 주동자, 나를 죽이자고 주동한 사람은 둘째 아니면 셋째일 것인데,

둘째는 시므온이고 셋째는 레위입니다.

 

이 둘은 디나가 강간당했을 때, 세겜족속을 속이고 전부 다 죽여버렸던 잔인한 형들이에요.

그러니까 그때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죠.

‘아 그렇다면 나를 죽이자고 주동한 사람이 둘째인 시므온이 되겠구나’ 합리적인 판단이죠.

 

그 순간에 요셉은 정색을 하고 화를 내려다가,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어요.

그때 상황을 듣자, 감춰두었던 감정이 폭발한 것입니다.

 

42:23~24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그때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요셉은 눌러놨던 감정이 폭발한 것입니다.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나온 것이죠.

그 자리를 황급히 피해 엉엉 울고 다시 돌아옵니다.

 

여러분, 요셉 역시 해결해야 할 응어리들이 있었어요. 믿음으로 안 되는 부분입니다.

용서를 선포했어요. 그래서 아들을 낳은 다음에 이름을 므낫세 라고 지었어요.

‘잊다’ 라는 뜻이잖아요.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의 온 집안 일과 모든 고난을 잊게 하셨습니다’ 라는 믿음의 고백이죠.

 

그런다고 우리 안에 있는 감정, 무의식의 감정들이 말끔히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이와 같은 과정들을 통해서, 요셉의 형들 뿐만 아니라,

요셉 안에 있는 미해결된 감정들 역시 해결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눈물이 쏟아졌어요. 울고 와서 정색하며 말을 합니다. ‘시므온을 결박하라’ ↑

 

너무나 두려운 순간이었습니다. 형들이 히브리말로 자기들끼리 계속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요셉이 어디 갔다가 다시 나타나더니만, ‘시므온을 결박하라’

 

본문에 보니까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형제들이 깜짝 놀란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요셉을 팔 때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었는데,

즉 그때 가장 주동자(책임자)가 시므온이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르우벤은 풀어주자고 했으니, 그 다음은 연대책임으로라도, 둘째인 시므온이 져야하는 거죠)

 

그를 꼭 찝어서 그만 결박하는 거예요.

그 순간에 형제들은 소름이 돋는 거죠.

'사브낫 바네아 총리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혹시 신인가?)'

너무 두려움이 엄습했어요.

 

요셉이 곡식을 주고, 그들을 내쫓습니다.

'가서 가족을 먹이고, 너희들이 말한 그 동생을 데리고 와라.

그러면 남아있는 이 사람은 살게 될 것이다' 하고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형제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돈자루를 내주고, 곡식자루로 바꾸어서, 곡식자루를 싣고 갑니다.

그런데 요셉은, 여기서 한 가지 장치를 더 해놓죠.

뭘 해두냐면, 그들의 곡식자루 속에, 그들이 내었던 돈을 고스란히 다시 집어넣었어요.

 

왜 이런 일을 했을까요? 형들이 변했는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형들은 22년 전에, 은 20을 벌겠다고 동생을 애굽으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때는, 하나가 마이너스 되고, 11명이 돌아간 것이 아니라,

10명이 돌아갔어요. 지금 한 명이 다시 애굽에 갇혔습니다.

그들이 곡식을 얻었어요. 집으로 돌아갑니다.

'과연 이들은 다시 돌아와서 시므온을 구할 것인가? 그들이 변화되었는가?'

지금 요셉은 시험하고 있는 거예요.

 

△형들은 돌아가던 길에 여관에 들어갑니다. :27

42:28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형제들이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가려고 그랬습니다.

자루를 하나 풀어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그러는데, 그 한 형제의 자루를 풀었더니,

그 속에 돈이 그대로 그냥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그들이 도둑놈이 되었어요. 그러니 그들은 또한 정탐꾼인 것이 맞게 여겨지게 되는 것이죠.

 

애굽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환대하여 곡식까지 사게 해주었는데,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돈까지 훔쳐간 잡범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이 이 상황 가운데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냐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이들이 난생 처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엘로힘

 

형제들의 입에서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온 첫 번째 장면이 되는 것이죠.

그들 상황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졌어요.

요셉이 겪었던 일들을 계속해서 겪고 있는 것입니다.

 

정탐꾼으로 몰리자.. 감옥에서 그들은, 숨겨둔 요셉 이야기를 꺼내었습니다.

그때 말합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르우벤이 그때 말합니다. ‘그의 피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지금 여관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그들의 숨겨뒀던 양심이 지금 되살아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하여, 즉 요셉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를 나중에 밝히는 일을 위하여,

그 형들의 마음을 지금 이끄시고 계신다(준비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 자루 속에 돈이 나왔어요. 너무나 두려운 순간입니다.

어쨌든 ‘가족의 기근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하여,

형들은 헤브론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아버지 야곱에게 말을 합니다.

그 모든 말을 말하는데, 단지 여관방에서 곡식자루에서 돈이 나온 이야기만

쏙 빼놓고 말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 말을 했다가는, 아버지가 ‘너희들은 돈을 주고 형제를 팔아버린 것이냐?’

라고 오해할까봐, 아버지를 잘 구슬려서

‘이렇게 양식을 주는 좋은 총리입니다.

그러니까 베냐민만 보내주시면, 시므온을 다시 데리고 올게요.’

 

이렇게 아버지를 살살 구슬러가지고 베냐민을 보내달라고,

지금 아버지한테 좋은 이야기만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곡식을 가져왔잖아요. 우리가 능력 있습니다.’ 라고 자랑하려고

그 갖고 왔던 곡식 자루를 풀기 시작합니다. 근데 그 모든 자루에서 돈이 다 나왔어요.

여관에서 곡식 자루를 풀은 것은, 한 사람의 곡식 자루만 풀었던 모양입니다.

 

42: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형제들이 여관에서 풀었던 그 한 자루에만 돈이 있는 줄 알았는데,

풀어놓은 모든 자루에서 돈 뭉치가 그대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의도적으로 이것을 집어넣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 그 돈 뭉치를 보았던 모든 형제와 아버지는, 깜짝 놀란 것이죠.

요셉은 왜 모든 형제들의 자루 가운데 돈을 집어넣었을까요?

 

‘당신들이 이 모든 죄에 대한 범인입니다’ 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내가 당한 일에 대한 고통에 대한 값은, 당신들 모두에게 있습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그들 모든 자루들 가운데 돈이 들어간 거예요.

 

그들은 이제 애굽으로 다시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부 다가 그 중에 아닌 사람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대표로 동생을 데리고 가서,

뭔가 변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들 모두가 다 도둑놈들이 돼버렸어요.

 

그러니 누가 그들이 하는 말을 믿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요셉이 ‘너희들은 정탐꾼이다’ 라고 말을 했는데

그들 전부 다, 돈을 주는 척하고 돈을 훔쳐온 사람들이 되어 버렸는데,

누가 그들의 말을 믿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므온을 구하기 위하여 애굽에 가겠는가?’

요셉은 지금 그 시험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22년 전에 요셉을 은 20개에 팔았어요.

원래 당시 한 사람 노예값이 은 30인데, 요셉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디스카운트해서

은 20에 판 겁니다. 헐값에 넘겼어요.

 

그러니까 은 20이니까, 얼마 되지 않는 돈인데, 형제가 10명이 팔았잖아요?

1인당 얼마씩 돌아간 겁니까? 은 2개씩이었어요. 정말 헐값입니다!

 

치킨 몇 마리 사 먹을 정도의 값을 가지고, 동생을 팔아버린 겁니다.

지금 돈 뭉치가 나왔어요. 이 돈 뭉치는,

은 두 개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큰 돈 뭉치가 나왔는데,

‘과연 이때도 당신들의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면서,

형제인 시므온을 내버리겠습니까?

아니면 당신들은 변화받아서 그 형제를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걸겠습니까?’

지금 그 도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이들의 마음들은 조금씩 변화되어 나가고 있고요.

이 형제들은.. 또한 아버지 야곱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To be continued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다음 주에 43장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과정들을 통하여, 어떻게 또한 야곱의 마음을 움직이고,

형제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는가? 다음 주에 다시 한번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를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요셉의 꿈이 이루어졌어요. 22년 전에 꾸었던 그 꿈의 실현 현장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껍데기뿐이었어요.

 

요셉은 자기만의 성공이 아닌, 자기의 꿈의 발판 위에서

형들 역시 회복이 되어, 모두가 진짜 회복을 경험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자기가 총리 요셉임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가운데 역사하실 공간을 만들어 놓기 위하여

지금 이와 같은 최소한의 일들을 진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양심을 조금씩 건드리셨어요.

결국 형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찾는 수준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감옥에서, 여관에서.

 

그리고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시므온을 구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달려갑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변화되어져 가는 것이죠.

결국 요셉의 꿈을 발판으로 하여서, 그 가정이 모두 진짜 회복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 가정 역시 그렇게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가정 가운데 어떠한 문제가 있든지,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십시오.

요셉의 가정을 일으키신 그 하나님은, 우리 가정 역시 장중에 쥐고 있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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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이런 해석도 있습니다.

창42: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엘로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엘로힘'은 본래 '신'이나 '신들'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의 이방 민족들도

그들이 믿는 신들을 '엘로힘'이라고 불렀으며,

성경 여러 곳에서도 이방 신들을 지칭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창42:18의 하나님(엘로힘)은, 꼭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신, ‘하늘의 하나님’을 의미한 말이었죠.

 

여기서 만약 요셉이 ‘엘로힘’ 대신에 ‘여호와’라고 말했다면,

형들이 금방 눈치를 챘을 것입니다.

 

형들은. 애굽 총리가 아브라함과 야곱의 하나님을 믿는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바로 눈치챘을 것입니다.

 

‘엘로힘(Elohim)’은 창조주 하나님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의 이방인들도

‘신(영적 존재)’을 지칭할 때 포괄적으로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친숙한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무자비한 이방 권력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즉 도덕적이고 신의를 아는 통치자임을 어필하여, 그들의 불안을 덜어주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