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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유혹, 평생의 기도제목 창3:1~6 2009.07.12.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들었던 얘기입니다.
어떤 동네에 병들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한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병세를 보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하루 하루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겁니다.
인심 좋은 시골이었고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쌓은 덕이 많았던지,
문병객들이 꽤 잦았습니다.
물론 할아버지는 사람들을 잘 알아보지 못했고, 말도 잘 못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자기를 찾아오는 문병객들에게, 한 가지 똑같은 행동을 보인 게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맞은 편 벽엔 오래 된 동양화 한 점이
약간 비뚤게 걸려져 있었는데 손으로 그 그림을 가리키는 거예요.
할아버지의 의도는 삐뚤게 걸려져 있는 그 그림을, 똑바로 달아 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다들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는 사람마다 그저 그림을 한 번씩 힐끔 쳐다보곤 눈길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젊은 시절 그 할아버지에게 큰 도움을 받았던 사람 하나가 문병을 왔습니다.
그 신사는 자기 은인의 병세를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그 날도 할아버지가 그림을 가리키는 겁니다.
환자에 대한 마음이 깊었던지라 그 뜻을 알려고 노력했고,
결국 그는 할아버지의 의도를 알아 차리고 그림을 바로 달아 주었습니다.
이상한 일은 그 신사가 돌아간 후에 일어났습니다.
그날 밤 할아버지가 조용히 숨을 거둔 것입니다.
당시 형님으로부터 이 얘기를 들은 어린 저는,
그냥 “할아버지가 왜 죽었지?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이 얘기 속에는, 뭔가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은 겁니다.
여러분은 이 짧고 얘기 같지도 않은 얘기 속에서, 어떤 메시지를 받으십니까?
인생은 넉넉해지는 데서 오는 에너지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모자라는 것도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모든 게 만족스럽다면, 인생은 기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혹 맥 빠지는 일은 아니겠어요?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눌 말씀은 이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주제
▲사실 우리 모두는 평생에 걸쳐서 오는 유혹들이 있고,
그래서 거기에 따라 평생 기도해야 될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기도 하지만
매사에 이 문제와 연관되지 않는 건 하나도 없다는 점이 더 그렇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로 영의 눈을 뜨시고,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해결을 보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3장을 폈습니다.
창세기 3장은 우리에겐 특별한 장입니다.
창세기 1장은 천지창조의 장이고, 2장은 인간 창조의 장이라면,
3장은 인간이 맞닥뜨리는 상황을 묘사하는 장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3장은 첫 인간인 아담과 하와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자의식을 느낀 후에
처음 접하는 문제가 뭔지를 극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우리가 평생 기도해야 할 문제가 뭔지도 아울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3장은 어떻게 시작되지요?
뱀으로 나타난 사탄이 인간을 유혹합니다.
이것은 인간역사는 유혹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피조물이면 누구에게든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뿐 아니라 지금을 사는 우리 역시도,
인간으로서 처음 접하는 정황은 유혹이라는 것이지요.
해서 살아 있다면 누구나 피할 수 없고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가 유혹이요 시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유혹이고 거기에 따라 우리가 기도해야 될 구체적 제목은 뭘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창3:1~6에 그 내용이 나와 있는데,
우리를 평생 힘들게 하는 유혹은 두 가지고,
거기에 따라 우리가 평생 기도해야 될 제목도 두 가지라는 것입니다.
다 채우려고 하는 탐심! 그게 첫 번째 유혹이요,
보이는 것에 목 매는 과시욕! 그게 두 번째 유혹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평생 따라 다닙니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우리의 기도제목은 어떠해야 할까요?
“다 채우려고 하지 말게 하소서!” 그것과 “보이지 않더라도 괜찮게 하소서!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해결된다면 우리의 기도 제목은 1/10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집시다! 그래서 웬만큼이라도 해결 하십시다!
◑1. 우리에게 닥쳐오는 첫 번째 유혹은
다 채워져야 거기에 비로소 행복이 올 것이라는 유혹입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다 먹게 하셨습니다.
그 얘기는 풍성히, 모자람 없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를 금하시지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만은 따 먹지 말라는 겁니다.
만약 먹을 게 부족한 상태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면 그건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선악과가 아니더라도 먹을 것은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아마 평생 먹어도 남을 것입니다.
인간은 피조된 존재, 제한적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런 조치를 취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에게 다 채울 수 없는 부분을 남겨 두셨고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받아들이길 원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사탄이 유혹하는 게 무엇입니까?
“뭣 땜에 하나님이 제한한 걸 남겨두니?
너희들은 위대하기 때문에 그것까지도 다 할 수 있어!”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이런 말로 접근해 오는 겁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3:4~5)
▲오늘 특별히 유의 깊게 봐야 할 말씀은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게 유혹의 근본입니다.
즉 모든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유혹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채우고, 다 누리고, 다 잘 할 수 있다는 유혹인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유혹입니다!
즉 우리가 못해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다 전지전능의 능력자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은 계속 성장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그 상태로 만족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잘 나가고 있지만 그래도 부족한 부분까지 채워서 perfect! 완전을 이루려고 합니다.
모든 부분에서 다 일등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신처럼 되려고 하는 유혹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되면 어쩌면 인간은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서, 삶의 의욕을 상실할지도 모릅니다.
아까 그 할아버지처럼‘저 그림이 바로 걸려야 되는데, 바로 걸려야 되는데,
"그 소원이 너무 간절하다 보니까 그게 생의 목표가 되고
그게 어느 날 이루어지니까 갑자기 살 동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서두의 할아버지 예화
그래서 하나님은 다 채우시지 않는 겁니다.
열 가지 중에 여덟, 아홉 가지를 잘 하고 한 두 가지 못하는 게 있습니까?
그러면 그건 “아!하나님이 나를 제한하라고 그것을 주셨구나!”
그렇게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까지 채우려고 하는 데서 인간의 불행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열 가지 중에 8~9가지 정도 가지면 내가 만족하지... 절대 유혹 당하지 않지...
하지만 지금 나는 그게 아니잖아! 열 가지 중에 겨우 한 두 가지 가지고 있는데… ”
아니요!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이 원하시는 분량 가운데
한 두 가지 정도만 빼 놓고는, 다 채워져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두 가지도 시간과의 싸움일 뿐,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생 기도해야 할 제목 하나가 “다 채우려고 하지 말게 하소서!” 라는 겁니다.
이미 채워질 만큼 채워져 있기 때문에 이 기도를 매일 드려야만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우리 감리교에 어떤 젊은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분은 어린 나이에 벌써 만 명이 넘어가는 교회를 목회하고 있습니다.
교인들도 모두 목사님을 존경하고 다 하나가 돼서
지금도 그 교회는 부흥에 부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그 목사님과 교회를 보면, 모든 게 만족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어찌 보면 목회자로서 10가지 중 10가지가 다 채워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께도 채워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자녀 중 하나가 심한 뇌성마비를 앓고 있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돌봐 주지 않으면.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을 보면 웃는 한 켠에는, 언제나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우리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어요?
만약 하나님께서 제게 “얘야!너 십만 명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고 장애아 아빠가 될래,
아니면50명 목회하더라도 정상인 아이의 아빠가 될래?”
이렇게 제안하신다면 제가 어떻게 대답할까요?
물어보나마나 입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영혼 구원의 열정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선택의 문제라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니까 그 목사님은 교회가 아무리 성장한다 할지라도,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우리가 다 채우려는 것은 유혹이고 욕심이고 탐심입니다.
그러니까 “다 채우려고 하지 말게 하소서!”하는 기도는
기도제목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그 기도를 인생 전체의 마음가짐으로 굳게 다지고
행동으로 실천해야만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회가 열에 열을 다 잘 할 수 있겠으며,
어떤 신자인들 무슨 일이든 다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부족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다른 사람이 부족한 것은 내가 채워주면 됩니다.
우리는 다 제한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서로 동역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첫 번째 대하는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족한 것을 받아 들이라는 메씨지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 또한
그 상황을 깊이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매 순간 “너희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더 뛰고 더 열심히 해 봐!”
하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담과 하와의 경우에서 보듯, 슬픈 역사를 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을 오가면서 비행기 안에다 놓고 내린 물건들이 꽤 있습니다.
그 중에 아직도 아쉬운 것은, 프랑크푸르트 행KAL기에
최인호씨의 5권 짜리 소설 <상도>라는 책을 놓고 내린 겁니다.
물론10시간 넘는 비행 시간 내내 다 읽기는 했지만
그 중 몇 대목은 다시 대하고 싶은 장면이 있습니다.
소설 <상도>는 거상 임상옥의 얘기입니다. 商道
그는 단순히 장사치가 아니라, 뭔가 나름대로의 인생철학이 있었습니다.
임상옥은 장사를 하러 다니면서도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계영배(戒盈杯)였습니다.
‘계’는 조심한다는 뜻이고, ‘영’은 가득 차다는 뜻입니다. ‘배’는 잔이지요.
해서 계영배라 하면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는 잔’이 됩니다.
그것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뜻일까요?
늘 그 잔을 보면서 임상옥은 다짐하지 않았겠습니까?
‘나는 가득 채우지 않겠다. 혹 내 평생 가득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나는 그렇게 채우는 것을 경계하고 또 경계하겠다’그 얘기 아니겠어요?
그렇습니다! 뭐든지 약간 부족한 게 좋습니다.
좀 모자라게 살면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사는 게, 하나님 자녀다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현대의 시스템은 참 위태롭습니다.
최근 어떤 재벌 그룹이 동네 슈퍼마켓에서 할 사업까지 뛰어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할 게 있고 하지 말아야 될 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싹쓸이를 하겠다는 것은 정말 천박한 일입니다.
아무리 승자라도 흘리는 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레위기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잖아요?
추수할 때 주인은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지는 말라는 거예요.
또 포도처럼 열매 나무라면 그것을 다 따지는 말라고 하세요.
왜요? 귀퉁이와 떨어진 이삭, 그리고 떨어진 열매 같은 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타향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라는 거지요.
그게 성경의 일관된 정신입니다.
10가지 다 가질 수 있지만 한 가지 정도는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가지지 못한 한 가지는 인생을 불행하게 하기는커녕
더 풍요롭게 하는 조건이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게 다 들어오면, 그때는 아까 그 할아버지처럼 죽는 수순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일의 모든 원리가 다 그렇습니다.
냉장고도 70~80 %정도 채울 때 냉장효과가 가장 좋고,
우리 위도2/3쯤 채웠을 때 가장 쾌적한 법이고,
우리 생활도 뭔가 부족한 게 있어야... 그게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혹 우리 자매 중에 자기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자매가 있습니까?
그런 자매는 머리가 좀 나빠야 합니다.
또 얼굴도 예쁘고 머리도 좋습니까? 그렇다면 성격은 아주 나빠야 됩니다.
그래야 균형이 맞지 않겠어요?
예쁘고 총명하고 성격도 좋습니까?
그러면 그런 자매는 곧 죽을 일 밖에 없습니다. 하하하
▲어느 날 임상옥에게 세 사람이 와서 장사 밑천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임상옥이 조건을 걸지요.
한 냥씩 줄 테니까 그걸 밑천으로 5일간 장사를 해 오라는 겁니다.
닷새 후에 첫 번째 사람은 짚신 장사를 해서 다섯 푼 이윤을 남겨 왔습니다. *냥 아래에 푼
1.5배를 남긴 거지요?
두 번째 사람은 연을 만들어 팔아서 두 냥을 남겨 왔습니다.
곱절을 남겼지요?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그 한 냥을 술 퍼 마시고 놀면서 탕진했습니다.
그리고는 관가에 가서 무슨 대출제도를 이용해서
10냥을 받아가지고는 그걸 가져왔습니다.
임상옥이 각각 세 사람에게 장사 밑천을 대 주는데
다섯 푼 남겨 온 사람에게는 100냥, 한 냥 남겨온 사람에게는 200냥을 대 주었습니다.
그리고 술 마시고 노는데 장사밑천을 다 쓰고 엉뚱한 데서 10냥을 빌려 온
세 번째 사람에게는1000냥을 빌려 주었습니다.
임상옥 주변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지요?
“어떻게 저런 허랑방탕한 놈에게 제일 많이 밑천을 내 줍니까? ”
그때 임상옥이 그런 말을 합니다.
“저 사람은 돈에 집착하지 않아. 되면 저 사람이 뭔가 될 것 같아…
저 사람은 돈을 돌고 도는 것으로만 알아. 제대로 뭔지를 아는 사람이야… ”
그랬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합니다.
“자네들 모두 돈의 속성을 잘 알게. 돈은 따라다니면 도망치는 법일세.
그런데 내가 돈으로부터 도망치면 돈이 와서 나를 잡아 버린다네.
그러니 절대로 돈 쫓아 다니지 말게. 도망가는 돈은 절대로 잡을 수가 없는 법이네.
그러니 자네들은 돈이 오면 계속 피하고 도망치게. 그러면 돈이 자네들을 잡을 걸세… ”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뭔가 욕심을 가지고 추구하면 그 일은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마음을 비우고 ‘그거 없어도 살아’ 그렇게 집착을 버리면
의외로 쉽게 다가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안 먹어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마저 따 먹었을 때 인생은 소용돌이친 것입니다.
집착을 버리십시오! 다 채우려는 마음을 내려 놓으십시오.
부족한 게 오히려 넉넉함의 조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임상옥에게 돈 천냥을 받아 간 사람은 그 돈을 갚질 않습니다.
임상옥 앞에 전혀 나타나질 않습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입방아를 찢습니다.
“거 봐요, 그 놈은 싹이 노란 놈이예요. 어르신은 1000냥을 그냥 떼인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그 사람이 거부가 돼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임상옥에게 인삼 10만냥 어치를 그냥 줍니다.
100배로 갚은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 사람이 임상옥에게 말합니다.
'나를 믿어준 사람은 어르신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 사람은 돈에 집착하지 않았던 것이고, 임상옥은 더더욱 집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에게도 이 계영배가 있었습니다.
정말 사도 바울만큼 은사와 능력을 많이 받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받은 김에 더 받으려고 했던 거 아닙니까?
“한 가지 더, 제발 제 몸에 병 그거 하나만 더 해결해 주세요.
그러면 아무 것도 바라는 것 없이 복음만 전할께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 만큼은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에 사도 바울도 그 뜻을 깨닫지요?
(고후12:7에 그 내용이 나와 있는데 같이 읽어 볼까요?)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에게 있었던 육체의 질병 한 가지는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더 하나님과 가깝게 했던 계영배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평생 다 채우려고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용쓴다 해도 우리는 부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방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80~ 90 %채워지면 거기서 머무르고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채워짐은 거기까지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만족하고 감사하면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족한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우리에게는 최선입니다.
선악과까지 따 먹으려고 탐내지 마십시오!
선악과는 그대로 두는 것이 복입니다.
탐욕에 대한 집착을 버리시고, 평생 “다 채우려는 마음을 진실로 내려 놓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인간에게 평생 찾아오는 두 번째 유혹은 과시욕입니다.
첫 번째 유혹이 ‘먹음직도 하고’에서 오는 탐심이라면
두 번째 욕심은 ‘보암직도 하고’에서 오는 과시욕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삶은 대부분이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땅에 내 혼자 산다면 남을 의식하거나 보일 것도 없겠지만
범죄한 인류는 남에게 보이는 것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세상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하와의 실수가 뭡니까?
본질이 아니라 ‘보암직도 한’,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온 세상은 보이는 것에 승부를 거는 풍토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그저 겉보기 괜찮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거기서 모든 행복이 다 나오는 줄 압니다.
크고 화려하면 좋은 것이고, 많고 드러나 보이면 그게 선이고,
예쁘고 날씬하면 그게 아름다움인줄 압니다.
그래서 온 세계는 보이는 것에 올인하고, 치장하는 데 온갖 열정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내면을 냉정히 바라보면,
우리 역시 매사 과시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세하고, 성공하고, 명성이 높아지려는 게
다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사실이 있습니다.
한 세대가 보이는 것에 너무 집착하면, 그것은 다음 세대를 타락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일례를 들면, 지금 세상은 너무나 육체의 아름다움과 완벽함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생각도 못 할 일들을 꿈꾸거나 행하고 있습니다.
못 나면 못 난대로 살아야 되는데 ‘성형 수술하면 되지’ 한다는 것입니다.
살을 빼려면 운동해서 뺄 생각을 해야 하는데 ‘지방흡입수술 하면 되지’그런다는 겁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바로 전 세대 사람들이 그것을 보여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옵니까?
그러니까 한 번 그런 흐름이 시작되면 몇 세대는 금방 악순환으로 간다는 겁니다.
모든 방면에서 총체적인 타락이 일어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보이고 싶은 것일수록, 자랑하고 싶은 것일수록 감추는 게 아름답습니다.
보이는 것을 맘껏 보이고, 자랑하고 싶은 것을 맘껏 자랑하면..
그건 망하는 수순일수도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압살롬의 자랑은 길고 윤기나는 머리털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에 그 머리털이 나무에 걸리는 바람에 정말 웃기게 죽었습니다.
그래서 매력은 보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감추는 데 있다는 건 정말 사실입니다.
▲목회를 오래 하신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또 제 친구 목사님들의 얘기,
또 제 개인적인 목회 경험을 종합해 보면 참 이상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얼굴 예쁜 자매들의 얘긴데요.
예쁜 자매들은 시험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그렇게 예쁘면, 대체로 하나님이 총명함까지는 같이 안 주세요.
그래서 판단력이 흐립니다.
그러다 보니까 남자를 만나도 '좀 아니다' 싶은 사람을 만납니다.
좀 못 생겼으면 신중하기라도 할 텐데, 예쁘다 보니까 그냥 주변에 꼬이는 남자 중에
덜컥 만나서 사귀고 어찌 어찌 결혼을 하는 겁니다.
오래 못 가더라구요. 그래서 일찍 가정이 깨지는 것을 봅니다.
어린 나이에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거지요.
그런 현상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 지 아세요?
“아!저 자매가 여성적인 매력이 덜 했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 텐데,
저 자매가 조금만 덜 예뻤다면 훨씬 더 훌륭한 연주자,
훨씬 더 훌륭한 일꾼이 되어 있을텐데… ” 그런 마음이 드는 겁니다.
주님은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더 가치가 있음을 잊지 말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지금도자꾸만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평생 기도제목 또 하나는 “보이는 것에 목 매지 않게 하소서! ”
“보이지 않아도 거기에 별 영향 받지 않게 하소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역 초기에 이 부분에 시험을 받으신 적이 있습니다.
마귀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하지요.
센세이션을 일으키라는 말이고, 기적으로 사람을 끌어 모으라는 유혹입니다.
사역을 할 때도 이런 과시욕, 또는 물량주의를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 우리 한 번,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십시다.
보면 하고 안 보면 안 할 것입니까?
혹시 우리는 교회 일을 하면서도 누군가의 칭찬이나 인정을 받고 싶어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겐 분명히 그런 요소가 있습니다.
기억하십시다! 칭찬과 격려 없이도 할 수 있는 게 진짜입니다.
그래야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정말 하나님을 바라보고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사실 저 역시도 목회를 하면서 한 방에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안수해서 암 환자를 낫게 하고, 기도 한 방에 정신병자들이 돌아오고,
설교 한 번에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이면 됩니다.
아기 못 가진 사람들이 우리교회만 오면 임신을 하고, 별 볼 일 없는 연주자도
저한테 기도 한 번받고 갑자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정말 금방 유명한 교회가 될 것이고 금방 부흥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정말 보기에도 활력 넘치는 교회요, 나타나는 현상 만으로도 벌써 자랑스럽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좀처럼 그렇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사탄은 보이는 것으로, 기적으로 세상을 구원하라고 유혹했지만
예수님의 방법은 십자가였습니다.
섬겨주고 정말 별 소득도 없어 보이는 순종과 수고로 일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열심히 애쓰면서 수고하고 준비하고,
더 많이 손해보고 희생하는 가운데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해 나가는 겁니다.
정말 사역은 기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십자가로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야 그게 진짜요 그게 참 충성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꽃을 좋아합니다만 더 좋아해야 할 것은 열매입니다.
과시욕이란 꽃과 같습니다.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오래 가지 않습니다.
꽃이 피는 이유는 열매가 있기 위함이지 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한 때 아름답지만 얼마 못 가 시들어 버리는 게 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더러워질 때 그것보다 추한 것은 없습니다.
모두들 백합이나 장미가 시드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어떻던가요?
꽃보다 열매입니다.
부디 예수님처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거부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유혹에 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함정이요, 신기루요, 안개일 뿐입니다.
정말 자랑하고 싶고, 보이고 싶은 것일수록 더 감추십시오!
가끔 그런 것들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언뜻언뜻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의 그 감춘 아름다움은 극대화될 것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바로 그런 모습인 것입니다.
그럴 때 보이지 않아도 괜찮게 되는 저와 여러분의 기도는 이루어 질 줄 믿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우리 평생의 두 번째 유혹인 과시욕을 퇴치하시기 바랍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선악과는 앞으로도 우리를 유혹할 것입니다.
성령께 의지하고 기도하시면서 이겨 나가십시다.
다 채우려 하지 말고 부족함이 있는 인생을 사랑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쉽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행하고 싶을 때 마다 감추인 아름다움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꽃보다는 열매가 더 소중함을 알고 조용히 십자가로 일하십시다.
거기에 인생의 참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부족함과 보이지 않음을 추구하며
즐겁게 주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