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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6장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LNCK 2026. 5. 1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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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교회를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픈 이유 Youtube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마6:30~34            설교녹취, 정리        

 

여러분, 날씨 좋은 날 자동차를 타고 가시다가 유채꽃을 보시면, 그저 멀리서 '멋지구나'

그렇게만 보시지 마시고, 내려쪼이는 햇볕을 반사하는 유채꽃 꽃잎을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그 화려함 그 생명의 발산을, 솔로몬의 옷이 어떻게 당하겠습니까?

 

그 꽃은 살아있는 거예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6:30

 

여러분, 우리가 다 같은 공간에 같이 앉아서 같이 예배를 드리고 같이

성경 공부한다고 해서 절대로 다 똑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마6: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여러분들과 이 성경 본문의 차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대전제는 '하나님이 내 사정을 모른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내 형편을 모르신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여'를 외치면서, '저 멀리 있는 하나님을 내 앞으로 끌어와야 돼'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중언 부언하며 기도로 구합니다.

마치 이방인들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왜 그렇게 기도합니까?

이방인들이 믿는 모든 신의 신상은, 목석이거나 금속이에요.

귀는 있지만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신상 앞에 가서 밤을 새우고 기도해도, 이 목석이 내 기도를 들었다는 확신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이 목석이 내 기도를 들었다'는 자기 최면이 걸릴 때까지, 중언부언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내가 다 아느니라'  마6:8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나한테 있어야 할 것을 일일이 하나님에게 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내 사정을 속속들이 모르시면, 여러분 우리가 왜 그런 하나님을 믿습니까?

 

엄마가 아기를 배면(임신하면), 그 아이를 낳기 전에 아이에게 필요한 거 다 준비합니다.

태아가 자궁 속에서 '엄마 기저귀 준비해!' 얘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이를  밴 여인보다 못하십니까?  No

 

생각만 해보면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내 형편을 다 알고 계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내 형편을 다 알고 계신다'는 전제에서 하는 기도와,

'내가 하나님께 중언부언 얘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모르신다'는 전제의 믿음의 기도가

같을 리가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거예요.

 

마6:33~34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요즘 주가 급등으로, 평소에 주식 투자를 안 하는 분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죠.

그러나 성경에 가르치는 '가정 경제'에 대한 기본 베이스는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6:8

또한 '(먹을 것이 있으면) 자족한 줄 아는 것'입니다.  빌4:11

 

그런 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돈이나, 재산 증식을 구하지 않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것이 관심이 되어야 하죠.

그런데 마6:33절은 별로 관심 없고, 날마다 '재산 증식'을 추구하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죠.

 

그리고 혹시 주위에, 운이 좋아서, 투자를 잘 해서.. 재산이 늘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또 다음 번에, 운이 나빠서, 투자를 잘 못 해서.. 재산을 다 까먹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0~40년 지나 보면, 다 본전,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현재 주식 활황에 일희일비 할 필요 없고, 성도는 마6:33절에 일희일비 해야한다는 거죠...)  

 

'너희들 조금만 생각해 봐라. 들풀을 입히시는 하나님이 너희들 책임 안 지시겠냐?

그러니까 너희들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데 애써거라'

 

풀이해서 설명드리자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기를 애써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는 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한

나머지는, 경제 생활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 이방인처럼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혹자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어요.

근데 나는 지금도 가난에 쩔어 있습니다. 왜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책임져 주시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지금 가난하게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당신의 자녀를, 가난 속에서 훈련시키시는 겁니다.

 

이 가난 속에서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하나님께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더하도록... 이끌고 계신 거예요.

 

▲비슷하게 '하나님, 나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는데, 왜 평생 병자로 살아야 합니까?'

그것이 바울의 질문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세 번 기도했습니다.

위대한 사도바울이 세 번을 기도했다면,

한 달씩 금식으로 세 번 기도했는지, 얼만큼 작정해서 세 번 기도했는지.. 그건 알 수 없지만,

간절히 기도했다는 뜻이에요.

 

그러나 그저 '하나님 낫게 해주세요. 낫게 해주세요. 낫게 해주세요.'

이렇게 세 번 기도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었던 사도 바울이, 자기 지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바울이 받은 응답이 뭡니까? '이미 네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

네가 기도하면 죽은 사람도 살아나는데, 네가 건강까지 응답받으면, 네가 하나님이 될 거야.

그러니 하나님께서 네 육체를 연약하게 하심으로써

네가 가장 연약할 때에 가장 강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살게 해주시기 위해서...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가 족한 줄 알고 살아라' 그래서 바울은 평생 지병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병의 노예가 아니라, 병의 주인으로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요.

'네가 나하고 바른 관계 속에 있는 한, 네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건강하든지 병들었든지, 내가 책임져 줄 것이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마라. 가불해서 염려하지 마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다'

 

옛날 개역 성경은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시계를 딱 보고 있다가, 밤 11시 59분까지는 오늘 염려하고,

밤 12시가 딱 되면 '아 이제 내일이 됐다. 아휴 이거 어떡하냐?' 그런 뜻이 아닙니다.

 

개역개정은 '내일 일은 내 일이 염려할 것이요' 무슨 말입니까?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 공동번역   

*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 새번역

 

'네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는 한, 하나님께서 너에게 내일을 주셨다면,

너에게 내일을 주신 하나님이, 내일도 너를 책임지신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다른 질문입니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요?"

우리는 다 구원받았다고 얘기합니다. 근데 여러분 구원의 실체가 어디 있나요?

구원을 받았다면, 내 손안에 보이는, 구원의 실체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실체는 뭡니까?

 

한국에 '세 사람 건너서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 두 사람 건너서 한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자' 라고 말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국교회가 양쪽으로 가장 팽창했을 때, 한국교회는 가장 어두웠습니다.

그 여파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수가 줄고 있습니다.

 

구원받았다고 전부 다 자랑하고, 민족 (전체) 복음화를 외쳤는데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구원받았으면 나하고 달라야 되는데, 나보다 똑같거나 못한'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면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처럼 살지 못하는 것은, 구원의 의미를 아직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성경 용어는 다 추상명사입니다. 믿음, 구원, 은혜, 자비, 긍휼... 다 추상명사 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추상명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인 언어로 생각하며 살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평생 뜬구름 잡는 것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구원의 실체를 좀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졌다.

이거는 어떤 유력 가문의 혈통을 통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위대한 영웅 같은 사람의 뜻을 통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나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나의 죗값을 십자가에서 치러주신 주님 안에서

주님의 의를 힘입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나의 신분이 바뀌는 겁니다.

 

구원은 신분이 변화되는 겁니다. 어떻게?

사망의 자식에서 생명의 자식으로

어둠의 자식에서 빛의 자식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에서 영원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는 것,

 

'나는 구원받았어요'하고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내 신분이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라고 구원을 이해하는 데는

천양지차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모든 신분은 신분이 바뀔 때마다

그 신분에 걸맞는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에 초등학생 신분을 가진 학생이 있습니다.

또 대학생 신분을 가진 학생이 있습니다. 신분이 다르죠.

초등학생 신분을 가진 아이는, 초등학생 수준의 언행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학생 신분을 가진 청년이, 그의 수준이

초등학교 어린아이 언행의 수준의 언행을 쓴다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겁니다.

 

내가 미국에 이민 간다는 게 뭔가요? 가서 미국 시민이 된다는 게 뭔가요?

한국 국적을 버리고 미국인으로 신분이 바뀌는 거예요.

미국에 가서 미국인으로 신분이 바뀌었는데, '나는 미국 법은 안 지켜.

난 운전할 때도 서울에서 운전하던 것처럼 내 마음대로 해' 그런 사람은 미국에서 못 삽니다.

미국 시민이 되었으면, 세금을 미국 세무당국에 납부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엌 지킴이 신데렐라가, 어느 날 왕자의 선택에 의해서

우리 용어로 얘기하면 왕자의 은혜를 힘입어, 하룻밤 사이에 왕자비가 되지 않습니까?

부엌 지킴이 신분에서 왕자비의 신분으로 신분이 수직 상승했습니다.

 

동화에서 신데렐라 얘기는 거기서 끝나는데요.

만약에 이 신데렐라가 왕자비가 되고 나서,

매일 자기를 왕자비로 선택해 준 왕자를 찬양만 하고, 평생 산다면

아마 그 결혼생활 오래 못 갔을 것입니다.

 

부엌때기 였던 신데렐라가, 꿈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내가 왕자비로 내 신분이 바뀐 것을 정말 그가 깨달았다면,

그 다음부터는 왕자비 수준에 맞는 삶을 스스로 적응해가야 합니다. 성숙해져야 됩니다.

그래야 그 왕자하고 계속 살 수가 있습니다.

 

신데렐라가 부엌때기 에서, 왕자비가 되는 수직 상승은 엄청난 수직 상승인데,

그리스도인이 공동묘지에서 한 줌의 흙으로 끝날 사람들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상승된 것은,

신데렐라의 신분 수직 상승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구원의 완성' 관련글 2편 (강추)

 빌2:12~14 너희 구원을 이루라 https://rfcdrfcd.tistory.com/15981255

 빌2:12 이루어야할 구원 , 남아있는 구원 https://rfcdrfcd.tistory.com/15975188

 

 

♣충만한 존재로 살기 (펀 글)

나무는 존재와 삶이 하나입니다. 사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요 존재하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한국의 봄을 수놓는 진달래를 보세요.

진달래는 소나무나 플라타너스처럼 키가 크지 않다고 불평하는 법이 없습니다.

 

키 큰 나무들 속에 못난이처럼 숨어 있지만

한 번도 소나무가 되겠다고 몸부림치지 않습니다.

그저 봄이면 제일 먼저 산을 붉게 물들이는 것으로 한없이 행복해 합니다.

 

진달래는 오히려 키 큰 나무들 속에 숨어서 피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더 빛이 납니다.

목련처럼 꽃잎이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 않지만, 진달래만의 멋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진달래는 진달래로서 훌륭하게 존재하며 삽니다.

 

그런데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은 존재만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뭔가를 성취해야만 만족해 합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소유해야만 비로소 웃습니다.

 

사람은 자기 존재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유와 성취를 향해서 내달립니다.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나는 왜 키가 작은 거냐고, 장동건처럼 꽃미남이 아니냐고,

 

삼성 회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여, 사는 게 힘들고 피곤합니다. 이런 인간을 향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

 

존재만으로도 충분한데 존재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취하겠다고 뛰어다니다가

나도 죽이고 너도 죽이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욕망이 존재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를 파괴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생의 슬픈 현실입니다.

이런 슬픈 인생을 향해서 주님은 존재의 충분함을 역설하셨습니다. 이미 충분하다고.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어떤 것인지를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기억하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란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너와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거야.

 

니콜라이야, 바로 이 세 가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란다.

그게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이유야."

 

저는 톨스토이가 말한 것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며 사는 것,

그것이 정말 사는 것이고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고.

 

그런데 사람들은 한결 같이 내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이 세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