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시116:15~16 2021-12-26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귀중하게 여기시므로
성도는 평소에 자기 죽음을 잘 준비하고, 존귀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래 설교의 한 가지 주제.
..................................
2021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코로나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고 여전히도 확산되는 가운데 있지만
그래도 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이 큰 은혜이고
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5번에 걸쳐서 시편 116편의 말씀을 묵상해왔습니다.
오늘은 시편 116편의 마지막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15~16절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116: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들의 죽음을 귀중한 것으로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나오는 ‘경건한 자들’은 누구를 말할까요?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개역한글, 우리말 성경, 새번역 성경은, 여기 나오는 ‘경건한 자들’을
‘성도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시인은, ‘성도들의 죽음은 여호와의 눈에 귀중하다’라고 말하죠.
여기서 ‘귀중하다’는 히브리어로 ‘야카르’ 인데
이 말의 뜻은 귀하다, 보배롭다, 무겁다 라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precious, glorious, splendid, weighty
그러니까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고,
성도의 죽음을 가장 가치있고, 보람되고, 보배롭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도가 어떤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든지 간에,
하나님은 그 성도의 죽음을 귀중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성도는 북한 정권이나 탈레반과 같은 그런 사악한 자들에 의해서
참수를 당하기도 하고, 총살을 당하기도 합니다. *순교
또 어떤 성도는 옥중에서 고문을 견디다가 순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성도는 교통사고라든지, 불의의 사고를 통해서 이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또 많은 성도들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하죠.
이렇게 성도들의 죽음이 다양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성도들의 죽음을 귀중하게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던가요?
세상의 사람들은 죽음을 그렇게 귀하게 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다’ 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야’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굉장히 가볍게 여기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영국의 교육자였던 해리 스콧 홀랜드는 이런 제목의 시를 썼습니다.
‘죽음은 결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분은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죽음은 단지 내가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라고 말을 했어요.
그러나 여러분 죽음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죠.
죽음은 이 시인의 고백처럼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눅16장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보십시오 어느 날 거지가 먼저 죽었어요.
그런데 죽음은 끝이 아니었잖아요. 그 죽음의 순간에 천사가 나타나서
그의 영혼을 받들어 아브라함의 품으로 인도했습니다. 천국으로 인도한 거죠. 주1)
그리고 이어서 부자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의 죽음은 어떻게 되었나요?
음부(지옥)의 고통 중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음부의 고통 중에 떨어져서 고통을 당하고 있던 이 부자는
이렇게 하소연을 하죠.
눅16: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여러분 이 말씀처럼,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죽음을 우리가 우습게 생각하고, 가볍게 생각하게 되면,
하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도, 가볍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0년도에 대한민국의 자살자가 13,195명
그러니까 하루에 36명꼴로 자살을 했습니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로 사망한 숫자는 3,081명입니다. 하루 8.4명꼴이죠. 교통사고의 4.5배)
여전히 OECD 국가 중에 1위입니다. 다른 국가들은 하루 13~14명대죠. 주2)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할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자신의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고
그 자신의 죽음을 아무것도 아닌, 너무나 가볍게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절대로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성도의 죽음을 어떻게 여기신다고 말하죠? ‘귀중하게 여기신다’라고 말하죠.
성도의 죽음을, 하나님은 가볍게 다루지 않아요.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보배롭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여기십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의 순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하늘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행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스데반이 순교할 때에 하늘이 열렸어요.
그리고 주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어요.
왜 주님이 일어나셨을까요? 스데반의 죽음이 안타까워서 일까요?
아닙니다.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그의 죽음을 귀중히 여기시기 때문이죠.
그의 천국 입성을 맞이하기 위해서, 주님은 일어서신 것입니다. 주1)
저와 여러분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육체의 장막을 벗고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우리의 영혼이 천사의 인도를 받아서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게 될 때도
우리 주님은 보좌에서 일어나셔서, 우리의 영혼을 맞이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품에 안아주시고, 우리의 눈에서 흐르는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보게 되면, 죽음을 저주라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계14:13a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죠.
이 세상의 종교 가운데 죽음을 복이라고 말하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 밖에서 죽는 자들도 있다’는 거죠.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바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영접한 자들입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믿고, 영접하고, 그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의 죽음은 복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순교의 기회가 여러분에게 주어진다면,
주를 위해서 여러분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금번에 전남 영암에 연합 집회가 있어서, 연합 집회를 인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암에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었어요.
영암에서 좌익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무려 88명의 성도들이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철사로 손바닥을 꿰매인 채로,
줄줄이 야산으로 끌려가서 학살을 당했습니다.
저희 (김은호 목사) 아버님도 크리스천이고 장로님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끌려갔죠.
그때는 인민재판을 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죽창으로 믿는 사람들을 찔러 죽이는데,
저희 아버님은 순교를 당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때에 인민위원장이 ‘이 사람은 내가 직접 죽이겠다’
자기가 저희 아버님을 직접 죽이겠다고 말하고, 자기의 집으로 끌고 가서 숨겨주었어요.
그래서 그 위원장의 집에서 우리 아버님이 몇 달 동안 숨어 계셔서
죽음을 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태어났습니다.
그때 우리 아버님이 순교를 하셨다면, 저와 여러분의 만남은 없었어요.
△1950년 10월 3일에, 인민군 폐잔병들과 빨치산들이 전남 영암에 들이닥쳤어요.
그리고 전남 영암에 있는 구림교회 성도 19명을, 마을 입구에 있는 주막집에 가두고
회유를 했습니다. 회유의 내용이 뭔지 아세요?
‘예수를 믿지 않겠다라고 한마디만 하면 살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19명의 성도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19명의 성도들 중에 ‘예수를 믿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그들은 그 주막집을 꽁꽁 걸어잠그고, 장작더미를 쌓고,
짚으로 불을 지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태워죽였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비명소리가 나니까, 동네 사람들이 놀라서 몰려들었는데
처음에는 비명을 지르던 그분들이, 나중에는 비명을 지르지 않고
한결같이 찬송을 부르면서 순교의 제물이 됐습니다.
그들이 그 화염 속에서 불렀던 찬양은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갇혀있던 성도들은 한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면서, 순교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은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성도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여기실까요?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주고 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저들의 죄값을 지불하셨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사, 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당신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의 죽음은, 모든 수고를 그치고,
그 행한 일에 영광스러운 상급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계14:13b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자 오늘이 2021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5일이 지나면, 2021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에게도 마지막 주일이 있고, 마지막 날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에 도달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거죠.
하나님의 사람들은, 내 인생에 다가오는 그 마지막 죽음을, 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왜냐면 죽음은.. 이 땅에서의 내 인생을 마치는, 내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날일 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결론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내 인생의 마침표를 찍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결론이 되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에 죽음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부르시는 그날에,
후회함이 없이 내 인생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의 죽음을 귀중하게 여기십니다.
◑시116: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자, 16절을 보게 되면 시인은 자신이 주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고 말합니까?
'주께서 내 결박을 푸셨나이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결박을 풀어주셨다' 라고 고백하고 있어요.
우리가 앞서 이 말씀을 나눴던 것처럼, 시인은
사망의 줄이 자신을 두르고 있을 때에,
죽음에 이르는 고통의 줄들이 자신을 얽어매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을 때에,
이 시인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어요. 116:3~4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고요?
'자신의 모든 결박을 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16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이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져주심으로써,
나의 그 수많은 인생의 결박들을 풀어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악한 영이 하는 일이 뭔지 아세요?
악한 영의 주특기는, 우리를 묶고 결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진정한 금식이 무엇인가를 말씀
하시면서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말씀했어요.
사58: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여기서 '흉악'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사악함'입니다.
그러니까 흉악의 결박은, 곧 사악한 결박을 말하겠죠.
저는 목회를 하면서 정말 악한 영에 의해서 결박당한 자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오늘도 악한 영은, 사악한 방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묶고 결박하여 매임을 당하게 합니다.
때로는 재정의 어려움을 통해서 사람을 묶기도 해요. 때로는 질병으로,
때로는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내 자녀의 문제로, 나를 결박할 때가 있어요.
때로는 잘못된 습관과 중독을 통해서, 내 영혼을 결박해요.
때로는 불안과 두려움과 공포로, 우리를 묶을 때가 있어요.
때로는 우리 안에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마음의 아픔과 상처,
우리 안에 있는 쓴뿌리를 가지고 우리를 옭아맬 때가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보니까, 이 사탄의 참소에 묶여있는 자들이 너무나 많아요.
사탄이 끊임없이 우리를 참소하지 않습니까?
그 사탄의 참소에 묶여있는 자들이 너무나 많아요.
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의해서, 묶임을 당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무심코 내뱉은 남편(배우자)의 그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수년동안 그 말에 매여있는 사람이 있어요.
잊으려고 하는데도.. 그 말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거예요.
그것만이 아니죠. 여러분 우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뱉은 그 말 한마디가,
비수로 꽂혀서, 그 말에 매여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부모는 자식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 몇 마디를 통해서, 평생 상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에 의해서 상처를 받고,
평생 그 말에 매임을 당하고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부모의 입에서 나오는 이런 말 때문에, 자녀들은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가슴이 문드러져 봐야 네가 정신 차리지...'
'걔는 학원도 안 다니고 1등 했다더라'
'너 같은 걸 낳고 내가 미역국을 먹었다니...'
'지 애비 닮아서, 지 애미 닮아서 그런 게지'
여러분 이런 말들은 우리 자녀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져다 줘요.
그리고 이 말은 평생 내 자녀의 인생을 옭아맵니다.
△반대로 자녀의 입에서 나오는 이런 말 때문에 부모는 또 상처를 받곤 합니다.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다른 집 부모들은 안 이래'
'엄마 아빠가 무슨 상관이야? 내 인생인데'
'내 인생의 가장 큰 저주는, 내가 이 집구석에서 태어난 것이고,
아빠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에게 상담하러 와서 그렇게 말하는 청년들이 있어요.
'내 인생에 가장 큰 저주는, 우리 아빠라고... 내가 우리 아빠의 자녀라는 거에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입에서 나오는 그 말 때문에, 상처를 받고...
상처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에 평생 매여서, 묶여서 살아가고 있어요.
또 목회를 하면서 보니까 심지어 무당과 점쟁이들, 또 잘못된 예언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 때문에, 묶여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요.
무당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알아요?
'조상 중에 배고파 돌아가신 분이 있네... 제를 올려드려야 운을 받을 수 있어'
이런 말을 들으면 '아,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뭔가 불행한 일이 닥칠 것만 같아'
끊임없이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거죠.
교통사고만 나면 '어,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그런가?'
여러분 이전 같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문제인데,
그 말을 들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렇게 (점쟁이의 말에 따라서) 인생을 해석한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연초에 친구와 함께 점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용하다는 보살이 이렇게 말했어요. '가까운 사람 누구 하나 잃겠네?'
이 말을 듣는 순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가까운 사람? 누구지? 내 남편인가?'
'남편이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던데.. 그러면 남편이 죽는다는 얘기인가?'
'아니 가까운 사람은 내 부모잖아.. 그럼 우리 부모님이 죽는다는 얘기인가?'
여러분, 그 말을 듣지 않아야 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그 말에 매임을 당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점집에 가지 말라고 하는데, 왜 자꾸 가서 그런 얘기를 듣느냐 말이에요.
그것도 돈 내고...
이렇게 목회자가 안타까운 심정으로 얘기를 해도, 꼭 돈 들고 찾아가서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요.
여러분 말을 잘못 들으면, 그 말이 비수처럼 내 마음에 꽂히게 되고,
그 말에 우리는 매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주변에 보면, 용서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매임을 당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요.
남편을 용서하지 못하고.. 아내를 용서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용서하지 못하고.. 내 자녀를 용서하지 못하고..
그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악한 영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용서하지 못하면, 나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마5:23~2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배보다 용서와 화해가 먼저라는 거예요.
또 예수님은 마18: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나님은 교회된 저와 여러분에게, 이 땅에서 묶고 푸는 권세를 주셨어요.
이건 대단한 권세거든요.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땅에서 묶고 푸는 권세를 주셨거든요.
그러므로 여러분,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뭘 잘해야 되느냐 하면,
묶고 푸는 걸 잘해야 돼요.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곧바로 합심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이어서 용서에 관해서 말씀하셨어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어요. 마18:22
그러면 왜 주님은, 이렇게 기도에 관하여 말씀하신 다음에, 마18:18~19
곧 이어서 용서에 관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마18:22
그것은 기도의 응답과 용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과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형제와 불화하면서, 가족과 등지고 살면서,
미움의 쓴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기도의 응답을 기대하지 마세요.
아무리 여러분이 '내가 믿사옵고 믿사오니.. 믿습니다..' 라고 기도해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아요. 왜? 막혀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를 해야 돼요.
여러분 용서한다는 것은 어떤 때는, 내가 죽는 것보다 어려울 때가 있어요.
내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돼요. 그래서 용서가 힘들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용서가 너무 힘드니까
차라리 용서보다는 자기의 목숨을 끊는 걸 선택할 때가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용서를 해야 합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내가, 주님께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고
주님이 우리에게 용서를 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용서를 받아주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를 구해요?'
이렇게 묻는 분이 계세요. 물론 그런 분이 계시죠.
그러나 여러분, 상대방이 내 용서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와는 상관없어요.
내 용서를 받아주든지, 받아주지 않든지... 오히려 더 공격하든지... 상관하지 마세요.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용서하면 (또는 용서구하면) 돼요.
그래서 여러분, 용서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마세요.
어떤 분은 그래요. '저는 위선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제 마음에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데, 제가 어떻게 용서합니까?'
여러분 우리는 타락한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아니고서는,
우리 안에 용서하고 (또는 용서 구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지 않아요.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의 당위성 앞에서, 먼저 용서를 하는 거죠.
우리가 아침에 일어날 때, 일어나고 싶어서 일어난 사람 누가 있어요?
여러분 자녀들이 '아, 나는 학교 가야지' 너무 즐거워서 일어나던가요? 아니잖아요.
'아침에 학교를 가야 되는' 당위성 때문에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리면, 죽을 때까지 용서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고, 용서하라고 명하니까 '주님, 제가 용서합니다.' 용서를 선포하세요.
▲그래야 내가 "자유"할 수 있어요.
상대방이 용서를 받아주는 때까지 기다리지 마세요.
내가 살기 위해서, 내가 먼저 용서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멍에를 깨뜨리고, 결박을 끊어버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분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악한 영의 결박에 의해서, 인생의 아픔과 상처에 의해서,
또한 용서하지 못함 때문에, 누군가의 말에 얽매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훔1:1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여러분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집트를 정복한 앗수르 왕이
유다왕 므낫세에게 조공을 요구할 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제 앗수르 왕이 네게 지운 그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시겠다'라고
하나님이 선포하신 내용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에 보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멍에를 깨뜨리기 원하시고
우리의 결박을 풀어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 해가 저물기 전에,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반드시 저와 여러분이 해야 될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내 멍에를 깨뜨리고, 내 결박을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묶고 있는 인생의 결박을 끊어버리고, 여러분이 그 결박을 풀고,
2022년 새해를 맞이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결박을 풀 수 있죠? 이게 중요한 거잖아요.
▲첫째로는 금식하며 기도해야 돼요.
사58: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물론 이 말씀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금식'에 대한 말씀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영적인 전쟁을 하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여러분의 흉악의 결박이 풀어지지 않는다면, 금식하며 기도하세요.
특별히 금식하며 기도하되, 여러분, 용서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 <금식>
그리고 부모로부터 받은 말,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말, 남편에게 들었던 그 말이
사라지지 않고, 자꾸 여러분의 삶 가운데 생각이 나고,
그래서 그 말에 내가 메여 있다면, 여러분, 예수의 이름으로 그 결박을 끊어버리세요.
이렇게 말씀하셔야 됩니다. 누군가의 들었던 그 말을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그 말이 나와 상관이 없음을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라!'
이렇게 그 말이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예수의 이름으로 끊어버리시길 바랍니다.
그걸 구체적으로 하셔야 돼요.
또 우리가 2022년 1월 1일부터 70일동안 릴레이 금식기도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도 여러분들이 용서의 기도를 하시고,
이 기간 동안에도 여러분이 모든 결박을 끊는 그런 기도를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돼요.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우리를 묶고 있는 인생의 결박들이 끊어집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유다에 쳐들어왔어요.
그때 유다 사람들은, 자기들 스스로 삼손을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주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동족이 자신을 배신한 거죠.
블레셋 사람들이 보니까, 삼손이 결박당해서 나오잖아요.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지르면서 이제 삼손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갑자기 삼손에게 임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볼까요?
삿15:14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여호와의 영, 곧 성령께서 갑자기 삼손에게 임하셨어요.
여호와의 영이 임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그를 묶고 있던 두 개의 새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끊어져 버렸어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우리의 인생을 옭아매고 있는 줄들이 끊어집니다.
우리를 결박하여 놓은 것들이 아무리 크고 아무리 단단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임하면, 성령의 불이 우리 가운데 임하면,
그런 결박의 줄들이 불탄 삼처럼 끊어져 버립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언제나 자유케 하시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후 3:17절에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곳에는 언제나 자유함이 있어요.
악한 영은 언제나 우리를 묶고, 결박하고, 매이게 만들지만
성령님이 역사하는 곳에는 언제나 자유함이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도, 앗수르로부터 자유를 말하면서,
이사야 10:27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여기서 '기름'은 성령을 말하죠. '기름지다'라는 말은 성령의 충만을 말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그랬어요.
멍에는 뭐죠?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을 말해요.
그러니까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
인생의 멍에들이 벗어지고, 그리고 결박들이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행16장에도,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빌립보 감옥에 갇혔잖아요.
그들은 한밤중에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그럴 때에 성령께서 그 감옥의 현장 가운데 강력하게 임했습니다.
성령께서 임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볼까요?
행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할렐루야!
여러분 성령께서 임하시니 옥터가 흔들렸어요. 옥문이 열렸어요.
모든 사람에게 묶여있던 결박들이 풀어졌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동일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멍에들이 꺾어지고
우리를 묶고 있는 인생의 흉악의 결박들이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시인은 (시116편의) 마지막으로
'왜 하나님께서 자신의 결박을 풀어주셨는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어요.
여러분 다시 한번 16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시116: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자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앞에 뭐라고 말하고 있어요?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냥 종이 아니라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왜 하나님께서는 이 시인의 결박을 풀어주셨다고 말하고 있어요?
내가 주의 종이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때문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내가 이런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내가 주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모든 결박을 풀어주셨다는 거죠.
'곧 주의 여종의 아들, 주의 종'이라는 말은, 자기 어머니를 언급하고 있어요.
자신의 어머니가 늘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여종으로 살았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어머니를 통해서, 자기가 이런 신앙을 전수받아서,
자신이 결박의 멍애를 풀었다는 거예요. *요즘 말로 '엄마 찬스' 같은 거죠.
얼마나 위대한 어머니면 이렇게 말하겠어요?
어머니에게 있던 아름다운 신앙이, 이 아들에게 전수된 거죠.
또한 어머니의 중보 기도가, 그 아들에게 응답이 된 거죠.
그래서 '나는 주의 여종의 아들, 주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이 종의 결박을 풀어주셨다고요?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오늘 2021년 마지막 주일인데, 꼭 여러분의 인생의 결박을 풀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여러분이 결박을 풀고
자유로운 몸으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두 번에 걸쳐서 기도를 하겠습니다.
첫 번째 기도할 제목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귀중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도 내 인생의 죽음을 귀중히 여기는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이 내 인생의 영혼을 부르시는 그날에
세상의 사람들처럼 죽음 앞에 겁을 내지 않게 도와주시고
두려워하지 말게 도와주시고
하나님께서 내 죽음을 귀중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당하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는 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이 시간 먼저 이 기도를 드릴까요?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여기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죽음 앞에서 인생의 마침표를 찍고
내 인생에 살아온 인생의 결론이 되는 내 죽음을
아무렇게나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세상의 사람들처럼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여기신다는 말씀처럼
나도 내 인생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면서, 정말 당당하게 사랑스럽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내 인생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다시 우리 한번 기도할까요? 두 번째 기도는 '주께서 내 결박을 푸셨나이다'
시인은 하나님이 베풀어진 은혜를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악한 영은요. 우리를 묶고 그리고 우리를 매이게 만들어요.
악한 영은 끊임없이 사악한 방법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때로는 재정의 어려움을 통해서, 때로는 질병으로 인해서,
때로는 내 자녀를 통해서, 수많은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를 통해서,
때로는 중독, 내 안에 잘못된 습관,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때로는 용서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때로는 무당의 말과 거짓된 예언의 말들을 통해서
사탄의 참소를 통해서 우리를 묶고, 결박하고 있어요.
여러분 묶여있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과거에 들었던 어떤 말이 잊혀지지 않고, 여러분의 삶에서 자꾸 영향을 미친다면
여러분은 그 말에 매여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그 결박을 풀어버리는 기도를 하셔야 돼요.
어떤 말이 자꾸 생각이 나고, 어떤 그 말에 내가 상처를 받고 매여있다면,
내가 누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는데, 이 말이 나와는 상관이 없음을
예수의 이름으로 끊어버리고 선포하세요.
더 이상 여러분이 그 말에 매임을 당할 필요가 없어요.
남편에게 받았던 말입니까? 아니면 부모로부터 받았던 말입니까?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말입니까? 그 말에 매이지 않도록 하십시오.
예수의 보혈로 덮으시고, 하나님 나로 하여금 금식하며 기도하게 하시고,
성령 충만 받게 하여 주소서!
내 인생을 묶고 있는 수많은 결박들이 끊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자유로운 몸으로 새해를 맞이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또 잠잠히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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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성도가 죽으면, 또는 사람이 죽으면
그날 즉시 천국에 갈까요? 아니면 재림의 날까지 기다렸다가 천국에 갈까요?
왜냐면 성경에 둘 다 나오기 때문입니다.
눅16장이나, 행7장의 스데반의 경우는 ‘그 날 그 시간에 막바로 천국에 갔다’고 나오고,
살전4장에 보면, 재림의 날에 최후 심판을 거쳐서, 미래에 천국에 가게 된다고 나옵니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렇게 다른 것은, 차원이 다르기 떄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3차원의 세상에 삽니다. 여기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3차원의 현실에서 볼 때, 재림과 심판과 천국은.. 미래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4차원의 영원 세계에 사십니다. 거기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없습니다.
‘천년이 하루 같다’고 했습니다.
재림과 천국이 앞으로 몇 백년 후에 있을지 모르나..
천국의 하나님, 4차원의 관점에서 보면, ‘하루 사이에’ 다 벌어지는 일입니다. *늘 현재
그러므로 거지 나사로나, 스데반이
죽어서 예수님의 재림 때가지 ‘중간상태’에서 기다렸다가 *‘중간상태’는 학자들이 지어낸 말.
미래에 천국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보듯이 ‘그 날 즉시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냐면, 사람은 죽으면, 그 시간부터
3차원의 세계가 아니라 ‘4차원의 시간’, 즉 ‘하나님의 시간’ 상태에 들어가기 때문이죠.
과거, 현재, 미래에 지배받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영원한 현재)에 들어가기 때문이죠.
바울의 설명도 틀리지 않은 것은... 3차원의 시각에서 설명한 것이고,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가 있으리라’ ... 예수님은 4차원의 시각에서 설명하신 거죠.
주2)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레소토, 가이아나, 에스와티니 등 일부 아프리카 및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대한민국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죠.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레소토: 약 41명
가이아나: 약 39명
에스와티니: 약 29명
모잠비크: 약 28명
국가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한국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동유럽 국가들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 10만 명당 28명. *최근 1년 통계, 5천만명이면 연간 14,00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