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벧전4장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

LNCK 2026. 5. 21. 10:4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내적 치유

https://www.youtube.com/watch?v=SKFxNDVkX6g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             벧전 4:7-11                2026.04.23.    

저는 요즘 [어 얘기해] 챌린지를 보면서 
어떤 사람은 '요즘 남편이, 아내가 왜 이렇게 착해졌지?' 
또 우리 아이들 중에는 '우리 엄마가 왜 이렇게 착해진 거야?' 
'우리 아빠가 왜 이렇게 달라진 거야?' 그런 가정이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 얘기해] 챌린지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가족들은  아마  *카톡 신앙생활 간증 나눔방
'틀림없이 사람이 변한 것 같은데?' 이런 느낌을 받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이 집회에 참여한 여러분 모두가 다, 
여러분의 마음과 또 생각 속에 있는 상처가 치유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어 얘기해]의 사연 한 두 가지를 여러분에게 먼저 읽어드리고 오늘 설교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2030 청년 오픈 채팅방]에 올라온 사연입니다. 

「푸릇푸릇한 나무들을 보다가 '사람들이 왜 봄에 그렇게 생을 등지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마음은 한겨울인데, 세상은 꽃이 피고 있으니 그렇겠지요. 

하지만 '어 얘기해'를 실천하다보니, 주님이 손만 대시면 
가장 늦은 꽃도 활짝 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향한 주님의 사랑 외에 영원한 것은 없듯이 
광야도 끝이 있고, 그렇게 맞이할 새로운 곳에서도, 주님의 손을 붙잡고 나아가고 싶습니다. 
이런 용기와 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년 오픈 채팅방에 올라온 사연입니다. 
「남편과 작은 말다툼에서 들었던 서운함이 점점 더 커져서 
거의 접어두었던 이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상하고 나니, 매일 보는 말씀도 보기 싫습니다. 
그래도 다시 꾸역꾸역 말씀을 보는데, 민6:24~26절에서 

단단해졌던 제 마음이 녹듯이 눈물이 터집니다. 

남편 의지하기보다, 주님을 먼저 신뢰해야 할 마음을 놓쳐버린 것을 깨닫고, 
주님께, 나의 무너지고 단단해진 마음 그대로 나아가니, 새 힘과 새 마음을 주십니다. 
오늘은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저녁을 해 주어야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 남편은 무슨 호강일까 싶어요. 오늘 저녁에 '이거 웬 반찬이지?' 
아마 그런 느낌일 텐데, '정말 마음이 무너지고 또 상처가 있는데, 
주님 안에서 해결되어지는 역사들이 이렇게 많구나...' 
[어 얘기해] 챌린지에서 정말 매일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용서, 십자가의 용서가 가장 필요한 곳은 교도소가 아니고, 가정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용서가 가장 필요한 곳, 십자가의 은혜가 가장 필요한 곳이 가정입니다. 

예수님께서 '용서 하되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말씀하셨는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7번씩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회사에서 그 정도쯤이면... 벌써 회사를 그만둘 겁니다. 학교도 그만둘 거예요. 
아마 교회 공동체에도 그 정도면, 아마 교회를 옮겼을 겁니다. 

그러나 가정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가정은 정말 지긋지긋해도 헤어질 수 없는 게 가족이잖아요. 
그러니까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게 되는' 케이스는, 가정을 말할 수밖에 없겠죠. 
                                                      
우리의 가정이 사실 그와 같은 곳입니다. 
가족은.. 너무나 가까운 관계, 헤어질 수가 없는 관계인데 
그러다 보니까 서로 계속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거죠. 

▲'결혼하고 난 다음에 사람이 달라졌어요. 속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 속이려고 한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본인도 잘 몰랐던 거예요. 

그런데 결혼해서 살아보니까, 배우자에게 또 자녀들에게, 
자기 속에 있었던 상처가 드러나게 된 겁니다. 

혼자 살았으면 아마 자기도 몰랐을 거고, 또 그걸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가까이 함께 살다 보니, 그 사람의 속에 있었던 상처를 보게 된 거예요. 

이 마음의 상처는, 마치 신발 속에 있는 모래와 같아서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겪는 고통도 심각하지만, 
그와 가까운 배우자나 가족들, 자녀들과 부모님이 겪는 고통도 엄청나게 큽니다. 

그래서 가정이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행복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상처로 인한 고통의 자리가 돼요. 

▲교회도 그 점에 대해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인들도 서로 가까이 오래 교제하고 알다가 보면,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 마음의 상처까지 서로 경험하게 되면서 
'교회가 왜 이래?' 이런 말이 나오는 지경까지도 가게 되죠. 

근데 여러분, 이 마음의 상처를 절대로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없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내 마음의 상처를 그냥 넘겨 버리면 큰일입니다. 본인도 쉽지 않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크니까... 나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 상처는 치유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경험하는 놀라운 일이에요.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그냥 내버려 두면, 금방 영적인 침체로 가게 됩니다. 
내 마음의 상처는 가장 치명적인 영향이.. 영적 침체로 갑니다. 

마귀가 가장 노리는 것이 '내 마음에 있는 상처'입니다. 마귀는 압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나 스스로 무의식 세계의 그 상처를 그냥 밀어넣어 버렸어도 
마귀는 압니다. 그래서 그 상처를 통해서 나를 조종하게 되죠

그러니까 마음의 상처는, 그 자체가 굉장히 심각한 겁니다. 
영적으로 어느 순간에 기도도 안 되고, 하나님이 믿어지지도 않고, 예배의 은혜를 모르겠고...
문제가 생긴 겁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진 거예요. 

그런데 영적 침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음의 상처입니다. 
내가 어느 순간에 내 마음을 정직하게 주님 앞에 내어놓지 못하고, 
상처를 숨기고 덮어버린 까닭에, 
기도도 안되고, 말씀의 은혜도 안되고, 성령의 감동도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겁니다. 

마귀가 어떻게 역사하느냐 하면 
자기가 남에게 상처를 준 걸 모르게 만듭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을 목양을 해보면, 상처받은 사람만 많은 거예요. 
그러면 누군가는 줬다는 거잖아요. 상처를 준 사람이 있으니까 받은 거잖아요. 

그런데 교회에 상처를 준 사람은 없어요. 
상처를 주었는데 자기가 모르는 거예요. 마귀가 그것을 모르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부모 자신이 모릅니다. 
어느 날 자녀가 은혜 받고 '내가 엄마 용서할게요. 내가 아빠 용서할게요' 그러면, 
부모가 더 화가 납니다. '뭘 용서할 게 있어? 내가 너를 용서하지, 네가 뭘 나를 용서하냐?' 
부모가 모르는 거예요.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를... 참 기가 막힌 거죠. 

그러니까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으면, 
'내가 그(상처 준 사람)에게 용서한다고 말을 해주면, 내 마음이 풀릴 거야' 
그러면 완전히 마귀에게 속은 거예요. 
왜냐하면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은,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도 마귀가 역사합니다. 
마귀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만 역사하는 게 아니에요. 

마귀가 역사하니까, 상처도 주고 살지만, 
상처받은 사람에게도 마귀가 역사하는데, 
마귀는 자기가 마치 위로자요, 해결자인 것처럼 속입니다. 

'너 괴롭지? 너 힘들지? 야 네가 제일 억울한 사람이야' 
'너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없을 거야' 이렇게 마귀가 내 마음속에 속삭이는데, 
내가 분별을 못하니까, 계속 마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그러면서 고통을 키웁니다. 

실제로 자기가 가진 고통과, 마귀가 부추겨서 고통이 점점 심해지게 되고, 
결과는 미움과 원망으로 남습니다. 그게 마귀의 역사인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어릴 때부터, 또는 지금 어떤 마음에 상처가 있는데, 
그 상처가... 미움으로 갔고, 원망으로 갔고, 자기 자신에 대한 좌절로 갔다면, 
이미 마귀의 무서운 공격에 지금 당하고 있는 겁니다. 
'열매를 보면, 그러면 그 나무를 아는' 거죠. 

'아, 하나님이 주신 열매가 아닌 열매가 내 속에 맺혀 있구나' 
그러면 '나는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됐어' 라고 핑계해서는, 완전히 마귀에게 당하고 맙니다. 
그래서 해결될 수가 없어요. 

상처받은 내 마음속에도 마귀가 역사했고,

'내가 그 마귀의 역사를 받아들였구나' 
거기서부터 문제가 풀어지기 시작합니다. 

마24:10절에 보면 '그때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그러니까 미운 마음이 생긴 것은, 누가 그런 마음을 역할을 또는 원인을 제공했느냐를 
따질 것 없이, 이 자체가 벌써 마귀의 역사인 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을 미워하고, 억울함을 풀지 않고, 원망하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좌절에 빠져 있다면, 
그건 영적으로 굉장히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 '시험 들었다'는 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 때문에 시험 들었다' 또는 '어느 교회 일 때문에 시험 들었다' 라고 말하는데, 
아무리 그럴듯하게 말을 해도... 그냥 내가 삐진 거예요. 
사실 내가 어떤 일에 대해서, 내가 마음이 삐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면, 반드시 가정이 깨지고, 교회가 분열이 되고, 
그리고 서로 비방하고, 물어뜯고 쌈박질하고, 이런 일들이 벌어져요. 

예수님의 몸인 교회가, 도대체 세상보다도 더 험악한 곳이 되어지는 이유가 
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믿음 좋은 부부가 헤어지고, 그렇게 은혜로웠던 교회가 분열되고... 
그게 다 마음의 상처에서 시작됩니다.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지 못하니까, 완전히 마귀에게 속는 거예요. 

꼭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마음의 상처도 주님은 치유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가장 놀라운 열매가, 
'내가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것을, 주님이 치유해 주신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내 생명이 되시고, 주님이 되신 것, 그게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이 마음의 상처의 치유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가장 사랑하셨던 제자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시고, 
그리고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죠.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사실 이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주님은 '마음의 상처'를 품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다 용서하셨습니다. 
그 주님이 지금 우리 안에 계신 거예요. 제 안에, 여러분 안에 계신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치유 못하실 마음의 상처가 없어요. 
우리가 진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믿음만 분명하다면,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분열하고, 다툴 일이 없어져요. 

▲미국의 마이클 몰튼이라는 사람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종신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본인은 그러지 않았는데, 꼼짝없는 그런 판결이 나서 종신형 판결을 받고 
25년 복역을 하다가, 이제 과학기법이 발전해서 DNA검사를 하게 되고 
본인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그래서 풀려났습니다. 

근데 25년 복역하는 동안에, 이 마이클 몰튼의 생애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25년을 아내 살인범으로 감옥에서 살았으니, 그 인생이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런데 그 감사한 것은,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에, 예수님을 정말 영접했고 
그리고 예수님이 정말 자기 마음에 거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고백을 했어요. 

'나는 이제 세 가지밖에 모릅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존재합니다. 
두 번째는 그분은 지혜로우시고 나보다 더 똑똑하십니다. 
세 번째는 그분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마이클 몰튼이 새 삶을 시작해요. 
'억울하다, 힘들다, 죽겠다' 이런 마음 갖지 않고, 
딱 그 세 가지 믿음 때문에,
즉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분은 나보다 더 똑똑하시고, 지혜로우시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면 된 거지요. 

자, 여러분에게는 해당 안 되십니까?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고, 여러분보다 훨씬 똑똑하고 지혜로우시고, 
그리고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다 누리는 은혜예요. 

그렇다면 뭐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못 살겠어, 죽을 것 같아, 너무 힘들어' 
푸념할 일이 뭐가 있느냐는 거예요. 

우리에게 있어서 문제는 '사람 잘못 만난 것도, 환경이 내게 너무 안 좋은 것도' 아니에요. 
근본적으로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분명하게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일들이 다 문제가 되고, 내 마음의 상처가 되고, 내 인생을 옭아 매고 있는' 겁니다. 

▲베드로 사도가 때를 잘 분별하라고 했어요. 
벧전4: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이 말씀은 어떻게 읽으면 정확하냐면 
'언제 마지막이 올지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내게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내가 생각과 판단이 확 달라져요. 
'언제 마지막이 올지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어느 남자 성도가 이혼 하겠다고, 저를 찾아오셨어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자기는 이혼한다는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남자 성도님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할 거냐?'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내일 주님이 재림해 오신다면, 그래도 이혼하겠냐?' 
그랬더니 가만히 계세요. 
'주님이 내일 오신다면, 이혼 안 하죠.' 그러시더라고요. 

내일 주님이 오시나, 100년 뒤에 오시나 똑같은 거 아십니까? 
내일 주님이 오신다면.. 이온 안 할 거라면, 
지금 할 이유도 없는 거예요.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어려운 순간은, 주님 앞에 서는 순간이에요. 
주님 앞에 딱 서는 순간에 '내가 왜 그랬을까? 이렇게 주님 앞에 내가 설 건데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중에서 제일 후회가 되는 것이 '내가 상처받았다고... 
내가 그 마음 풀지 않고... 그리고 그 상처 속에 내가 고통당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평생을 산 거예요.' 

우리 주님은 나를 위에 십자가를 지셨어요. 
그 주님을 뵙는 순간에 '나 상처받았어요.' 이 말조차 회개할 제목이 돼요. 

주님은 나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셨는데, 
도대체 무엇이 나를 여전히 상처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냐 말이에요. 

누구를 용서 못한 것조차, 그 순간에는 너무 죄스럽게 되는 거예요.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그러니까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상태를 잘 보셔야 되는데, 
기도가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거예요. 

기도가 잘 안 되는 분들이 많아요. 
목사님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눠도, 정말 많은 목사님들이 
'솔직히 요즘에는 기도가 잘 안 됩니다.' 그런 말씀을 하세요. 

자기가 설교도 하고, 예배도 인도하고, 새벽기도도 인도하고 하시는데, 
혼자서 개인 기도 시간에... 기도가 안 된다는 거예요. 
(*기도나 말씀 묵상이 안 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매사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입니다.
집중력을 키워야 됩니다)          ☞ <집중>

여러분, 지금도 여러분 스스로의 영적인 상태를 정직하게 봐야 되는데 기도가 잘 되십니까?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지금 내가 뭔가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때가 어떤 때인지를 정확히 분별을 못하고 있는 것이고, 
내 속에 영적으로 뭐가 탁 막혀있는 겁니다. 

내가 풀어야 되는 걸 풀지 않고, 받아들일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거예요. 

벧전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기도가 왜 안되는가? 왜 내가 영적으로 답답한가? 
결국은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마지막 때가 될수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영적인 막힘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정말 정말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면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그 사랑이 다시 영적으로 살아나요. 

내게 상처 준 사람, 만약에 내가 용서가 안 된다면, 
또 사랑이 안 된다면, 
내게 상처를 준 그 사람보다, 내가 지금 더 심각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상처 준 사람만 탓할 일이 아닌 거예요지금 내가 더 심각한 상태에 있으니까요. 

△제가 과거에 부산제일교회에 담임할 때, 
그때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을 정말 마음껏 설교하고, 
성도들을 그렇게 제자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 저를 찾아오셨는데, 제가 숨이 멎는 것 같았어요. 
돌아가신 어머님을 그렇게 힘들게 하셨던 그분이, 사역자가 되어서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그리고 지금 아주 어려운 지역에서 사역을 하시면서, 너무 힘들고, 또 지원이 필요하니까, 
제가 목회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제게 도움을 요청하러 오신 거요예요. 
부산제일교회 담임 목사로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제가 그분을 만나 뵙고 너무 당황스러운 것은... 
그분이 우리 어머님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그분이 전혀 모르는 것 같다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머님이 밤새도록 우시고, 밤잠을 주무시지 못하시고, 그랬던 걸... 
'그분이 모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머니는, 목사의 아내로서 교인들을 대할 때, 늘 밝은 얼굴로 대하시면서 
또 마음의 정말 무거운, 정말 돌덩어리 같은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밤을 새면서 울고 하셨는데... 
'그걸 전혀 모르실 수 있겠다...' 왜냐면 그 분이 정말 해맑게 저를 찾아 오셨어요. 

그분을 대할 때, 제가 어떻게 해야 될지... 너무 난감하더라고요. 
근데 그때 제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을 
정말 매 설교 때마다 '목사님의 설교 레파토리는 저거밖에 없나?' 
그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설교를 했었기에... 

제가 그때 주님의 마음을 느꼈어요. '그분을 진심으로 도우라' 
그래서 그분의 사역을, 제가 도울 수 있는 한 열심히 도왔죠. 
아주 오랜 기간동안 저를 찾아오시고, 또 도와드리고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솔직히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어머님도 그렇게 (마음 고생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제가 그분을 (원수를) 그렇게 도와야 되는 게... 어떤 때는 좀 기가 막힌 느낌이 들어요. 

'하나님, 저는 언제까지 이렇게만 해야 하는 겁니까?' 
그런 좀 억울한 느낌, 하나님께 대한 섭섭한 마음, 그런 마음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하다가 제가 안산광림교회로 부임을 하게 됐습니다. 
안산광림교회에 가서도, 제일 먼저 장로님 부부를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그 십자가의 복음으로 
<예수님의 사람> 제자 훈련을, 가장 먼저 장로 부부들을 훈련을 했어요. 

장로님들이 또 권사님들이 은혜를 많이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타지키스탄에서 교회에 폭탄 테러가 일어났는데,  *2000.10.01.
이슬람 신학생들에 의해서, 
정말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단한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7명 사망, 100여명 부상

그런데 선교사님이 연락이 오기를, 현지인 교인들이 너무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성도들이 예배드리러 주일 예배에 왔다가, 
폭탄이 세 군데 시차를 두고 예배당 본당에 터지고, 
사람들이 우루루 복도로 몰려나가니까, 그 복도에서 터지고, 
계단으로 몰려 내려가는데 계단에서 터지고, 세 번이나 폭탄이 터진 거예요. 
폭탄 든 가방을 그렇게 미리 둔 것이죠.

그러니 성도들이 예배 드리러 올 마음이 다시 있겠으며, 
또 거기서 다시 예배 드리는 분위기가 어떻겠냐고요? 

그래서 선교사님이 제게 요청하기를
'유목사님이 타지키스탄에 한번 오셔서, 우리 교우들에게 위로의 말씀이라도 좀 전해주세요.' 
그런 요청을 하시는데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안 간다고 하기도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장로님들에게 '그런 요청이 와서 제가 집회를 인도하고 와야 되겠습니다.' 
장로님들이 아무 말씀이 없으세요. 
뭐 그런 곳으로 간다니까, 장로님들이 좀 걱정도 되고... 
그렇다고 또 '가지 마세요!' 이렇게 하기도 쉽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래도 아무 말씀도 없으시니, 제가 좀 섭섭하더라고요. 
근데 그 다음 주일에, 어느 장로님 부부가 저를 찾아오셔서 
'남자 장로님이 저와 같이 타지키스탄으로 가시겠다'는 거예요. 

'진짠가 아닌가? 상황을 보러 가시는 건가?' 이런 마음은 아닌 것 같은데, 
꼭 굳이 가시겠다는 거예요. 
'장로님이 동행하시면 힘드실 텐데... 나 혼자 갔다 오면 차라리 좀 편한데...' 
그런 생각도 들면서, 굳이 가시겠다고 하시니까... 그래서 장로님과 같이 갔습니다. 

근데 봄이었어요. 날씨도 추웠고, 
특히 거긴 난방이 잘 안 되는 지역이라, 밤에 잠자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그 장로님이, 잠을 자다가 보니까, 당신의 이불을 저한테 갖다 덮어줘요. 
'장로님은 어떻게 주무시려고 그러세요?' 자기는 너무 덥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불을 저에게 덮어주시고, 하여튼 그렇게 지나고 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 장로님 부인 되시는 권사님을 만나서 
'장로님이 그렇게 저를 정말 잘 섬겨주셔서 잘 다녀왔노라고' 그랬더니, 
그 권사님이 하시는 이야기가 

'유목사님이 타지키스탄에 가신다고 그러는데'
얼마 전에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이고, 그래서 밤새도록 부부가 이야기를 나눴대요. 

그래서 결론은 '당신이 대신 죽어라. 목사님께 혹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당신이 대신 죽으세요.' 
그래서 장로님이 저를 따라오셨다는 겁니다.  

제가 그때 '나는 더 이상 어머님이 힘들었고 그래서 돌아가셨고... 이렇게 말할 자격이 없구나' 
그 장로님, 권사님이, 그때 저에게 베풀으셨던 그 섬김이 
제 마음속에 있는 모든 걸 다 녹여냈어요. 

사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제가 선한목자교회에 담임 목사로 오게 된 겁니다. 
선한목자교회에 와서 목회하는 시절이, 저에게는 정말 행복한 목회였어요. 

모든 교우들이 다 너무 좋으신 거예요.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 안에서, 어떤 마음의 상처도 치유가 되더라고요. 

정말 예수님이 내 생명이심을 진짜 믿게 되니까, 
주님께서 '받은 상처로 반응하지 않고, 주님으로 반응하게' 되면서,
나도 살고, 또 남도 살리는 자가 되게... 그렇게 만들어 주시더라구요. 

▲10절 말씀을 봅시다. 여기에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게 어떻게 하는 건지'에 대한 
아주 참 놀라운 적용이에요. 

벧전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게 바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 
가정 안에서, 교회 안에서, 일터에서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그러면 어떤 곳도 나를 무너뜨리지 못해요. 
내 어린 시절에 어떠했든지, 지금 내 삶의 지경이 어떠하든지,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가족이 되어 살든지, 누구와 같은 교우가 됐든지 간에, 
예수님께서 상처가 될 일을... 다 간증이 될 일로 바꾸십니다

그게 이제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이에요. 
벧전4:11b에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이게 [어 얘기해]에 그대로, 지금 열매로 나오고 있는 거예요.
[어 얘기해 챌린지]를 쭉 이렇게 매일 읽다 보면 
진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일상의 삶 속에서 드러나요. 

여러분, 주 예수님을 정말 바라보세요. 그러면 두려움이 없어져요.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이 없어져요. 
왜요? 주님이 얼마든지 다 회복시키시고, 간증이 되게 만드실 수 있습니까요! 

결혼 안 하려고 하시는 분들 중에, 
하나님이 그런 특별한 섭리가 있어서, 독신으로 살게 하시는 분도 있지요. 
그러나 어떤 분은 두려움이 있어요. '결혼해서 힘들까봐' 

또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분도 
'아이 낳고 힘들까봐.. (아이와 부모가) 서로 상처받느니.. 
차라리 그냥 무자식 상팔자지' 이런 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에요. 

마음에 상처가 생길까봐, 그것 때문에 서로 관계가 안 좋아질까봐, 
아예 어떤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예요. 
마귀가 아주 교묘하게 우리의 마음에, 그런 두려움을 심어주고 있는 거예요. 

사실 결혼은 동화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결혼해서 살면, 서로 겪게 되는 어려움이 반드시 있게 돼요. 그렇지만 꼭 기억하셔야 돼요. 

그 결혼이 주는 축복이 얼마나 큰 지를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주님이 해결해주세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결혼해서 상처 주고 받을까봐, 결혼을 안 할 이유가 없어요. 

제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저 자신을 잘 몰랐을 거예요. 
제가 결혼하고 난 다음에, 내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 사람인가를 제가 알았어요. 
아내와의 관계속에서.. 또 두 딸을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근데 그 일 때문에, 그래도 제가 좀 (성숙한) 사람이 된거죠. 
만약에 결혼하지 않고 독신 성직자가 됐다면, 
아마 그것도 또 한 부르심의 유형이긴 하겠지만, 
아마 지금 제가 겪는 이 은혜를 경험할 수 없었을 거예요.

아이들을 기르는 것도, 사실 아이 없이 지낼 때와, 
아이가 있을 때는... 이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아이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물론 있어요. 

 

근데 꼭 기억하셔야 돼요. 그 아이 때문에, 부모가 겸손하게 돼요. 
그 아이를 기르면서 부모의 교만이 깨지고, 또 부모의 자존심도 변하게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로서의 그릇이 커 지게 돼요. 이건 정말 엄청난 은혜예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아이 때문에 얻어지는 성숙함이.. 참 보배 같은 거죠.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때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서' 어떤 일을 못하는 것은, 
이제 조심해야 합니다. 어둠 속에 피하려고 하지 말아야 돼요. 
오히려 거기에 마귀가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어요.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 두려워서 상처받을까봐...  

▲도서 <P 31> 저장인 하형록 목사님, 
부산 용호동 나환자촌에서, 그 분의 아버님이 목회를 하셨습니다. 

6.25 전쟁이 막 일어나던 때, 아버지가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나갔다가 
하나님이 생명을 건져주신 은혜를 감사해서, 하나님의 종이 되기로 서원하고 신학교를 갔는데 
임지가 나와서 사역을 나가야 될 때, 나환자촌에서 사역자를 찾는 것입니다. 

'내가 주의 종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임지를 선택할 수가 없지 않나?' 
그래서 나환자촌으로 가서 사역을 합니다. 

7년 동안을 나환자촌에서 사역을 했다가, 부산 삼일교회라는 큰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에서 청빙이 왔는데, 
그 어머니가, '내가 지난 7년은 억지로 참으면서 나환자촌에서 사역을 한 게 너무 죄스러워서 
이제 내가 앞으로 7년을 자원해서 섬기고 싶다' 

남편 때문에 억지로 나환자촌에 가서 사역했던 어머니가, 
그런 마음 때문에 14년을 나환자촌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게 하형록 목사님 어린 시절에 얼마나 힘든 일이었냐면, 학교 가면 돌을 맞아요. 
'문둥이 왔다고' 나환자촌에 사는 아이가 왔으니까, 
그 아이(하목사)는 건강하지만, 그러나 사는 데가 나환자촌이니까, 문둥이 취급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돌에 맞고.. 친구 한 사람 없고.. 그렇게 참 끔찍할 만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런데 아버님이 미국을 가시게 돼서, 따라서 미국 이민을 가게 된 겁니다. 
미국 이민을 갔는데, 아무래도 인종차별이라는 게 있죠. 동양 사람이니까. 

그런데 나환자촌에서, 같은 우리 한국 아이들로부터 돌에 맞으면서 어릴 때 가졌던 경험 
때문에, 미국에 가서 거기서 인종차별, 받는 것은 일도 아니었답니다. 
그건 자기에게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훌륭한 목사님으로 성장하는데, 그 어릴 때의 그 끔찍했던 그 경험이 
오히려 그 목사님을 놀라운 사역을 하게 만들어 주셨다고... 그 간증을 하시는데, 
너무 많이 도전도 되고, 은혜가 되더라고요. 

상처받을 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어려움보다 크신 분이세요. 
능히 이기게 하시고, 그 어려움과 상처가, 간증이 되게 만드시는 분이세요. 
이제 우리 찬양을 같이 하면서, 기도하는 시간을 좀 갖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