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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5장 너희가 곧 나의 친구다

LNCK 2026. 5. 22. 13:59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친구>

https://blog.naver.com/karamos/80055378900  정리

 

◈너희가 곧 나의 친구다              15:11-17            1997.12.07. 

 

어느 때에 <런던 타임즈?가 '친구의 정의'에 대해서 현상 모집을 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친구란 무엇이냐? 어떤 사람을 참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겁니다.

 

이 현상모집에서 당선된 1, 2, 3등 세 대답만 소개해 드립니다.

3등으로 당선된 대답은 이렇습니다.

"친구란.. 기쁨을 더 해주고, 슬픔을 나누는 자이다."

 

'기쁠 때 만나면 기쁨이 더 커지고, 슬플때 만나면 슬픔이 반으로 감해지는 자다.'

그러니까 기쁠 때에 만나면 내 기쁨을 함께하고, 기쁨을 극대화 해주는 사람.. 그게 친구예요.

 

그런데 기쁠 때 만나면,  초를 치든지 고추가루를 뿌려서,

영 기분잡쳐 버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건 친구 아닙니다. 다시 만나지 마세요.

그건 안되구요. 기뻐서 만나면 너무 더 기쁘게 만들어 주고,

슬플때 만나면 그 근심을 반으로 감해 주는... 그런 친구가 진짜 친구다.

 

또 2등으로 당선된 것은

"친구란... 한 보따리의 동전이다. 그저 이해해 주는거다.

내 모든 사정을 다 이해 하고 동정하는 바로 그가 친구다."

 

동전이 하나하나 모여 값어치를 하듯, 친구가 보내주는 따뜻한 이해와 위로의 순간들이 모여

인생의 소중한 보물(동전 보따리로 만들어진 큰 돈)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뭐 비판하고 설명하고 뭐 어쩌고... 그건 아니에요.

깊은 동정... 그것이 친구라는 얘기죠.

 

1등으로 당선된 대답은 이렇습니다.

"친구란 온 세상이 나에게서 떠날 때, 다 나를 버릴 때, 내게로 오는 자이다.

그가 진정한 친구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가인 웹박사는, 우정을 지속하기 위해서, 이 친구의 정을 지속하려면

몇가지 조건이 있다는 겁니다.

 

1) 첫째는, 내가 남의 친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의 사정을 깊이 이해하면서,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될려고 노력할 때

또 다른 사람도 내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 하는 것이구요.

 

2) 두번째는, 진실이올시다.

사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비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비밀이 있다구요. 그러나 친구 에게는 비밀이 없습니다.

또 비밀이 없어야만 친구입니다. 이 사이만은 완전한 진실이 있습니다.

친구에게 거짓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직자나 셀리더는, 내담자의 상담 내용을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친구 됩니다.)

그래서 진실만이 친구의 정을 지속하는 아주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3) 세번째는, 평등 의식이올시다.

봉건주의적 행복관을 가진 사람은 영원히 친구가 없습니다.

 

친구가 없다면, 여러분이 가지는 가치관과 행복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평등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너와 나는 똑같다. 지위가 높든 낮든, 학벌이 있든 없든,

나이가 많건 적건...' 심지어는 남녀 어른 상관없어요.

 

문제는 '나와 너는 똑같이 동등하다.' 그런 평등의식을 가진 사람만이 친구가 있습니다.

또 그런 관계라야.. 관계가 오래 갑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경제적으로 서로 '도움주고 받는' 관계가 되면, 

관계가 지속되지 못합니다. 부모-자식은 경제적 도움을 주고도 관계가 계속 지속되지만,

친구 관계에서는.. 경제적으로 동동해야 됩니다. 

그런데 진정 친구를 경제적으로 돕고 싶을 때는, 은밀하게 제삼자를 통해서 하면 됩니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주고, 한 쪽이 일방적으로 받는 관계는..

주종관계가 되지, 친구관계가 안 되죠.  그러면 문제는, 관계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 단점이 있습니다. 

 

▲자기 아내를 소개할 때 옛날 사람들은 '제 집사람입니다. 제 아내입니다. 제 처입니다.'

그랬는데 요새는 바뀌었어요. '(아내이자) 제 친구입니다.'  그러더라구요. '마이 걸 프랜드!'

그게 사실이라면 참 좋은 일이예요. 친구죠.

 

그런데 평등의식 속에만 진정한 친구관계가 가능해요.

혹시라도 내가 더 잘났고, 더 똑똑하고, 더 높고 낮고...

이래 가지고는, 혹은 열등의식이 있어도 친구관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겸손한 가운데서 평등의식을 가져야 친구가 되고,

또 친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스티븐 존슨 박사는 이렇게 친구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네가 곤경에 처했을 때 금방 부를 수 있는 친구가 있느냐? 당장 달려올 사람이 있는가?

없다면 당신은 친구가 없는 사람이요.

 

또 내가 함께 기뻐할 사람이 있는가?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내가 기쁜 일이 있을 때

찾아 가서 붙들고 얘기하면... 그래 그래 그거 참 잘 됐다. 너는 참 좋겠다.

이렇게 아무 시기 질투가 없이, 내 기쁨에 동참해 줄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건 친구요.

 

그러나 내 기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그는 친구가 아니요.

또한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선뜻 내게 돈을 빌려 주고,

만일에 저가 없으면 믿고 다른 사람에게 가서 돈을 꿔서라도 빚을 갚아 주고,

내 어려운 사정을 도와줄 사람이 있는가?'  그가 친구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긍정적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그는 친구가 없는 사람이요.

'당신 자신이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통찰력이올시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사랑하는 제자 들을 앞에 놓고,

"너희는 곧 나의 친구다" 라고 말씀합니다.

 

요15:14~15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너희는 나의 친구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제자들을 지금 최고로 최고의 지위로 우대하는 시간입니다.

 

높이 대하는 시간이올시다. 예수님 지금 십자가 지시기 전야 밤에 말씀하시는 거에요.

'이제 너희는 나의 친구다' 라고 말씀합니다.

 

1)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일단 스승-제자 관계로 통합니다.

예수님은 스승이요 랍비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로부터 배우고, 예수를 따르고, 예수를 모방합니다.

제자와 스승입니다. 그래서 '제자'라고 합니다만,

 

2) 두번째는 '사도'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사명을 지워서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보냄 받은 사람은, 보낸 자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그가 그들에게 넘겨준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이게 사도-주 Lord의 관계입니다.

 

3) 그런데 제자도, 사도도 아니요, 오늘 이 시간에는 친구라고 말합니다.

십자가 지시기 전 날밤에 제자들을 앞에 놓고 '너희는 나의 친구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제자들을 동등하게 높이 추대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도바울은, 성도들을 '예수님과 함께 한 공동상속자'라고 설명했죠. 롬8:17

예수님은 맏형이 되시고, 성도들은 그분의 '형제'라는 것입니다.  롬8:29, 히2:11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날 밤에, 자신은 아주 낮추고, 낮추어서

그들과 수평관계에서 만나는 시간을 가지십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입니까?

 

▲여러분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요. 이 '친구'라는 말도 조심해야 됩니다.

같은 대학교 동창생, 고등학교 동창생들을 보면, '동창들 끼리' 라는게

그저 이렇게 출발할 때는 같이 출발했지만, 한 20~30년 지나고 나면,

 

한 사람은 출세하고, 한 사람은 출세 못하고

한 사람은 잘 되고 부자되고, 한 사람은 못 되고... 다 그렇지요.

그게 다 똑같이 잘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친구가 되는데, 이런때 문제가 생겨요.

친구는 친군데 가령 아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있고,

아주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잘 풀린 친구가, 여러 사람 앞에서 죽 쑤는 친구를 소개하면서

‘이 사람은 내 친구요. 아주 죽마고우요, 좋은 친구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거는 자기는 낮추고, 친구는 높이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주 인격적으로나 무엇으로도 형편 없는 사람이,

자기 동창 친구가 아주 높이 추대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된 것을 텔레비젼에서 보고

'저 친구는 내 친구야', '저 친구 고등학교 때는 내 아래였어'

 

여러분, 그렇게 말 하지 마세요. 이런 이야기는 잘못된 거예요.

이건 그 친구를 격하시키는 거에요.

 

그러니까 나보다 못한 사람을 대할 때는 '내 친구요' 할것이고,

나보다 높은 사람을 향해서 거기다 대고 ‘저사람 지금 거드름 피우는데,

옛날에 형편없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정말 형편없는 친구입니다.

이거는요 말조심해야 됩니다. 자기 인격의 민낯을 드러내는 언사입니다.

 

'친구'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있는게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죄송합니다만은 찬송 부를때 '예수 내 친구' 하는 거는 조금 거북스러워요.

'예수 내 친구' 이게 성경적으로 맞는 말이죠.

그만큼 예수님은 우리를 '동역자'로, '동등하게 대우'해 주시는데, 

유교문화에서 자란 우리는,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이 방향으로 점점 더 나아가야 됩니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 대표팀을 맡을 때, 서로 이름을 부르게 했다지요.

선후배 칼같이 따지다가는.. 축구가 되지 않더라는 겁니다. 실제로 효과 봤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 '친구'라는 말도,

남을 무시할 때 쓰면 안 되고, (내가 낮은 자리에서 높은 친구를 비하할 때 쓰면 안 되고)

(내가 높은 자리에서) 남을 내 곁에 들어올릴 때.. 비로소 '친구'라는 말을 써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오늘 깊이 생각하면,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친구로 그렇게 표명하고,

친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 느니라.'  요15:13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그러한 좋은 친구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예수님의 자기 표명하는 말씀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를 또 설명하면 '목자'가 있습니다.

 

어린 양을 사랑하며 돌보는 목자, 또는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어요.  요10:11

그렇습니다. 선한 목자는 정말로 양을 사랑해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그러나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거 하고,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거 하고는 얘기가 다릅니다.

 

이거는요. 양을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그건 동물이요, 미물입니다.

친구라는 것은 인격입니다. 그리고 친구는 선택적 사랑이요. 자발적 사랑이에요.

 

특별히 중요한 것은 라이벌의식을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친구가 왜 어렵습니까?

친구 사랑이 힘든거예요. 동물사랑은 쉬워요. (라이벌이랄 게 없잖아요)

또 불쌍한 사람 사랑하는 것도 쉬워요. (라이벌 의식이 없잖아요)

 

정말로 어려운 것이 친구 사랑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라이벌이기 때문에... 친하면서도 서로 시기, 질투하기 쉬워요.

 

그래 서 유명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가까운 사람하고 멀고, 먼 사람하고 가까워요.'

 

먼 사람은.. 나하고 이해관 계가 없거든요.

그러나 친구란.. 나하고 가깝고, 이해관계가 있어요.

 

그래 서 저가 올라가는 동안, 나는 내려가고,

저가 내려가면, 내가 올라가고...

이거 아주 어렵단 말이예 요. 시소 게임을 하거든요.

 

보세요. 여러분, 또 아내도 아내 나름이겠지만,

자 친구가 출세하면, 곧 좋지 못한 마누라는 꼭 거기서 말을 하거든요.

'당신 친구는 이렇게 출세를 하는데, 당신은 동창이라면서 이게 뭐에요?'

이런 여자하고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살려면 힘들죠. 이것이 문제가 된 다구요.

 

그러나 목자가 양을 사랑한다고 해서, 누가 질투를 합니까? 시기를 합니까?

나 자신도, 내 부모도, 내 처자식도.. 아무도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않습니다. 양이니까요.

그렇지만 친구사랑은... 그래서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라는 말씀이,

깊이 생각하면요. 그것은 아주 친구를 위하여 마음과 몸을 다 바치는...

그게 최고의 사랑이라는 말이죠. 친구 사랑이 그만큼 어려우니까, 

친구를 진정 사랑하려면, 내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많다는 거예요.

 

친구사랑이 가장 높은 사랑이요. 왜냐면 인격적이니까... (양 사랑이 아니라고 했죠)

시기 질투라 고 하는 그것을 다 넘어 서서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나를 낮추고 그를 높이는 거니까요. 정신적인 엄청난 사랑이 거기 들어있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구로 대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15:16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친구란 누군가가 먼저 주도적으로 출발을 해 야 됩니다.

이니셔티브가 중요한거예요.

 

모든 사람이 내게 친구 되어 주기만을 바라고 기다리면, 죽을 때까지 친구 못 만납니다.

내가 좋은 친구가 먼저 되어야 되죠.

‘내가 너희를 택하였다.’ 내가 주도적으로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내가 너를 사랑했다. 택했다. 먼저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스스로 자기를 크게 비하시시는 것이올시다. 그리고 제자를 높이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15:16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참 눈물이 겹도록 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친구가 소화가 안돼요. 이상하게 소화가 안 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입맛도 없고 괴로워요. 몸은 자꾸 여위고...

 

자기 친구를 불러가지고 '내가 요새 소화도 잘 안 되고 위가 좀 아프다고, 속이 아프다고'

하니까 친구가 '그럼 병원에 가서 진찰을 좀 해보지.'

 

그런데 '알았어' 하고 말하고는, 그 아픈 친구는 병원에 안 가요. 왜 안가느냐?

이 사람이 소심한 사람이라서 갔다가 '위암입니다!' 혹시 이런 말 들을까봐 겁이나서

병원에 안 갑니다. 그저 버티는 거예요. 언젠가 낫기를 기대하면서요.

 

건강한 친구가 몇번 권면했지만, 이 아픈 친구가 절대 병원에 안 가요.

얼마후에 그 건강한 친구로 부터 전화가 왔어요.

'네가 소화가 안 된다고 하더니, 나도 요즘 소화가 안 되네.

나도 위장이 탈이 난 것 같아. 나하고 같이 병원에 가 보세.'

 

그래서 둘이 같이 가서 진찰을 받는데, 진찰을 받아 보니까 뭐 견딜만 하더래요.

두 사람이 같이 진찰을 하고 난 다음에 의사가 말하기를 '둘 다 병이 없습니다.'

건강하다고 얘기해 줬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병원을 나오면서, 그 먼저 위장병 걸렸던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아 내 친구는 위장이 아프지 않은데, 나를 위해서 아프다고 하고

나하고 함께 와서 진찰을 받았구나. 참으로 좋은 친구이구나...’ 

 

▲여러분 참 좋은 친구는 남을 비판하는게 아니예요.

그저 자기를 낮추어서, 그와 나를 동격시 해버리는 거예요.

거기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오늘 성경에도 보니까 '기쁨을 나누자'고 합니다. 즉 '나의 기쁨을 너희에게 준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1

'내 기쁨을, 이 신비로운 기쁨을 함께 나누자.' 이렇게 말씀하시구요.

 

'또한 비밀이 없다'고 말합니다. '너희와 나사이에는 비밀이 없다.'

'종은 주인의 뜻을 모르지만, 나는 너희에게 모든 말을 다 했다.'  :15

절대 비밀 없이 모든 말을 다 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너희가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우신 분입니까?

그 답답한 제자들은, 몇 시간 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다 도망갈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을 앞에 놓고, 예수님은 너희는 내 친구라고 말씀하고,

발을 씻기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이후에는 알리라.'  요13:7

 

'너희들 다 들어둬라. 나중에 충분히 알 것이다. 내 속 뜻을 다 알 것이다.' 이걸 믿고 있어요.

이해 능력을 충분히 믿고 있구요. 그 뿐입니까?

참 놀라운 것은 베드로가 예수를 세번이나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도망가서 물고기 잡을 때 찾아가서 말씀하실 때 말입니다.

 

저는 그럴때마다 성경이 너무 너무 고마워요. 예수님이 참 좋으신 분이예요.

아 그 자리에 가서, 나 같으면 꼭 한 마디 하거든요.

'그러기에 내가 깨어 기도하라 하지 않더냐?'

'야, 모른다고 한마디 했으면 되지, 뭘 세 번씩 했냐? 넌 어째서 이 모양이냐?'

한 마디 꼭 할 것 같은데, 아무 말이 없어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양을 먹이라.'

거기다가 제가 좀 사족을 달면, '과거는 묻지 않으마.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나를 위하여 네가 십자가를 져야 되겠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친구를) 믿어요. 전적으로 믿어요.

예수님의 그 모든 말씀하신거 충분히 이해하고, 그 말씀 안에 사는 것으로 믿어요.

믿어 주었어요. 이게 친구라구요. 의심하는건 친구가 아니에요. 완전히 믿었어요.

 

그리고 나아가서는 제자들이 좋은 친구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친구'라는것은 평등한 관계에서 이루어 지거든요.

절대로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적인 것이예요.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좋은 친구다. 너희들 또한 서로 사랑하라' 그랬어요.

'서로 사랑하라.'

내가 아가페의 사랑을 하니까 너희들도 아가페의 사랑을 하라.

내가 너희들의 친구가 되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친구가 되었다.

너희도 좋은 친구가 되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조선일보 8월 28일자에 나온 기사입니다. 아름다운 우정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경민이라고 하는 18세 소녀 가장이 있었습니다.

이 소녀 가장이 아주 애써서 고학을 해가지고, 혼자 공부를 해가지고

학원을 다녀서 대입검정고시에 합격을 합니다.

 

합격 하자마자 합격증을 가지고 자기 친구 지현이를 찾아가서 자랑을 합니다.

둘이서 그렇게 기뻐하게 됩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 경민이는 6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또 아주 당뇨병으로 심한 고생을 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합니다.

상업학교에 들어갔다가, 중도에 그만 두고 편의점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어머니를 병수발을 하고, 또 어린 동생들을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럴때에 지현이라고 하는 친구가 찾아와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봉투 하나를 던져주고 갔습니다.

봉투를 뜯어보니까 거기에 편지를 이렇게 썼습니다.

 

"항상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지칠줄 모르던 네가,

요즘 구름에 쌓여 빛을 보지 못하는구나. 힘들 어도 이겨낼 줄로 믿는다.

이 작은 이것은 학원비로 보태써라. 나는 이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몇달동안 저금을 했단다."

 

경민이는 여기서 용기를 내서, 그 어려운 가운데서 또 저녁마다 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이 대학검정고시에 합격을 한거예요.

그리고 나서 그 친구 지현이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는 이렇습니다.

 

"지현아! 고마워 모든 것은 네 덕택이야.

나도 꼭 대학에 입학을 하고, 앞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힘쓸께.

꼭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힘쓸께" 이것이 편지 내용입니다.

 

진정한 친구를 가졌으면, 다시 나도 남에게 또 좋은 친구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니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처럼 되게 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은

'내가 너희를 종이라 말하지 않는다. 친구라고 말한다.' 왜요?

 

'나는 너희의 굴종을 원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율법적 관계에서 보상받기 위하여

혹은 저주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 그따위 순종을 원치 않는다.

 

사랑하는 친구로서의 그같은 충성, 그같은 사랑, 그같은 마음을 원한다.

그런고로 나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고 부르노라.

나는 너희를 친구로 대하고 죽는다. 너희는 이같은 사랑을 서로 나누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좋은 친구가 되라... 이제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겠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곧 나의 친구라.' 깊이 생각해야 겠습니다.

이런 친구를 가진자는 절대 고독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