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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장 노쇠해진 다윗

LNCK 2026. 5. 24. 08:19

※구약 39권의 <엄선 설교집>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최종적으로 신구약 66권을 지향하지요.

구약에서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잠언, 전도서 6권을 아직 다루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교들이, 의외로 인터넷에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열왕기상부터 인터넷 설교들을 읽고 정리해 나가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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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크리스천 리빙

 

◈노쇠해진 다윗             왕상1:1~14              2023.10.11.         출처          

 

오늘부터는 열왕기상을 묵상합니다. 열왕기서는 왕들의 이야기가 나오며,

다윗 왕 말기부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 때까지 다루게 됩니다.

열왕기상 1~11장은 통일 왕국에 대해서

12~22장은 분열 왕국에 대한 내용입니다.

 

열왕기서의 기록 목적은 왕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우상숭배하는 삶에는

하나님의 징계와 멸망이 있음을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열왕기를 살펴보며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삶에는

하나님의 보호와 회복이 있음을 깨닫게 되지만

반대로 하나님께 불순종을 하게 되면, 징계와 멸망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묵상하는 열왕기상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 왕 말기의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노년의 다윗  1:1-4

 

1절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다윗은 이제 나이가 들었습니다.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도합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나이는 70세이며, 당시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대략 50세 전후였음을

감안하면 제법 장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나이가 들면 건강이 약해 집니다. 다윗의 건강이 악화되어 제대로 나라를

통치하지 못하자 그의 신하들은 다윗이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방법을 제시합니다.

 

2-3절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신하들은 다윗을 위하여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에

수넴 여자 아비삭을 데리고와서 다윗을 시중들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원기를 회복하여 다시 나라를 통치할 수 있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행한 것이죠.

 

신하들이 다윗에게 데리고 온 여자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다윗은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아비삭과 동침하지 않은 것을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다윗의 기력이 너무 쇠했기 때문이거나

혹은 밧세바를 데려와 동침한 후에 참회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하들은 다윗이 다시 기력을 찾기를 원했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신하들이 준비했어야 하는 것은 다윗의 기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후임자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왜냐면 다윗이 지금 기력을 회복한들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을 바라보는 시각을 키워야 합니다.

다윗이 아무리 위대한 왕이라고 하지만 그도 세월 앞에서는 약해지고,

이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을 때가 되었다면

그를 보내주고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신하들이 다윗을 회복시키려는 것은 어찌보면 그들의 욕망일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삶 속에서 신하들이 다윗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처럼 놓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은

없는지 말씀을 묵상하며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윗이 나이가 많아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자 이 때를 틈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도니야의 반란      1:5-10

 

5-6절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다윗의 후계자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을 틈타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자신을 스스로 높이며 왕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아도니야는 이전에는 성경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다가 열왕기상에서 등장합니다.

 

아도니야는 용모가 심히 준수하였고, 다윗은 그에게 한 번도 섭섭하게 한 일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을 섭섭하지 않게 대했지만

아도니야는 오히려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성경을 볼수록 다윗은 왕으로서는 훌륭했지만,

아버지로서는 너무나도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자녀들이 잘못을 행할 때, 올바른 훈육이 아니라 방관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아도니야는 자신 스스로 높이면서 ‘내가 왕이 되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남아 있는 아들 중 자신이 장남이기 때문에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실제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도니야는 용모는 심히 준수했을 수 있으나 그의 인성은 그리 썩 좋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장남이라면 충분히 아버지 다윗에게 찾아가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한다는

것을 말했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방법을 택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 왕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아도니야의 반란에 함께한 사람들이 있는데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입니다.

이 두 사람은 다윗의 젊은 시절부터 함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다윗 왕과 함께 하며 많은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이들도 아도니야의 반란에 합세 하였습니다.

(시세를 보니, 아도니야가 현재 왕자들 중에 최고 실세 임을 파악하였던 거죠)

군사력을 가진 요압과 종교적 힘을 가지고있던 아비아달로 인해 아도니야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의 반란에 모두가 함께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8절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렇지만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의 반란에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는지는 성경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도니야의 반란에 참여한 사람보다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때로 분별력을 잃고 옳지 않은 일에 가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본문 8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아도니야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삶 속에서 올바른 분별력을 가져야 하고,

내가 어디에 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얻은 아도니야는 본격적인 행동을 시작합니다.

 

9-10절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스스로 왕이 된 아도니야는 잔치를 베풀었고,

이 잔치는 자신이 왕이 되는 즉위식을 행하는 자리입니다.

아도니야는 잔치에 자신의 모든 동생과 신하들을 초대 했지만

초대를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초대 받지 못한 사람들은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

그리고 자기 동생 솔로몬은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초청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을 초청하더라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이들이 이미 솔로몬을 왕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도니야 역시 동생 솔로몬이 왕을 이어갈 강력한 인물이라는 것을

초대하지 않음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도니야가 잔치를 열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소식을 들은 선지자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찾아갑니다.

 

◑나단과 밧세바가 다윗을 찾아갈 계획을 세우다      1:11-14

 

11-12절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여 이르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이제 내게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을 구할 계책을 말하도록 허락하소서’

 

아도니야가 잔치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나단은

급히 밧세바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합니다.

또한 자신이 솔로몬의 생명을 구할 방법을 말하도록 허락을 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단이 이렇게 급박하게 밧세바를 찾아온 것은

이 문제가 밧세바의 생명과 솔로몬의 생명이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도니야에게는 잔치였지만, 이 소식을 들은 나단과 밧세바 그리고 솔로몬에게는

기쁨의 소식이 아니라, 슬픔과 충격이 되는 것입니다. 나단은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신의 계획을 밧세바에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13-14절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여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이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당신이 거기서 왕과 말씀하실 때에 나도 뒤이어 들어가서 당신의 말씀을 확증하리이다’

 

나단은 밧세바에게 다윗을 찾아가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킨 것과

솔로몬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해 달라고 요청하라고 하였고,

그 이야기를 할 때 본인이 함께 따라 들어가서 확증하겠다고 말합니다.

 

지금의 상황은 무엇보다 신속하게 움직여야 밧세바와 더불어

솔로몬의 생명이 지켜질 수 있기에 매우 긴박하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세속적 가치관과 욕망에 눈이 멀어 반란을 일으키는 아도니야와

반란을 저지하고, 하나님 뜻대로 솔로몬이 왕이 되도록 힘쓰는 나단과 밧세바가 등장합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수는 있지만

모든 일이든지 올바른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왕이 되고자 했으면 반란이 아니라 아버지 다윗과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었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왕이 될 수 없었다면 또한 그것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믿음도 올바른 방법과 절차들을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 생활에는 지름길은 없고, 오직 정도만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혹시 우리 안에도

아도니야처럼 욕망에 따라 나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무엇보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을 목적 삼으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살아갈 때 세속적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따라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교우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한 시대를 화려하게 승리로 장식했던 다윗의 퇴장이 가까워지며

또 다른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아무리 화려하게 살아가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욕망에 빠져 살아가는 연약한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매일의 삶에서 세속적 가치관을 따르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목적 삼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며 나아가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ttps://blog.naver.com/karamos/80139538544

 

◈(아도니아가) 내가 왕이 되리라              왕상1:1-10                    2006년

 

열왕기상은 노쇠해진 다윗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다윗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고 말씀한 것처럼

이제 다윗은 나이 많아 늙어짐으로써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을 정도로,

즉 항상 몸이 차가울 정도로 기력이 다한 상태입니다.

 

이처럼 다윗이 노쇠하여 힘이 없어졌을 때, 압살롬의 때처럼

아도니야의 반역이 발생하게 됩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후궁인 학깃의 아들이며,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입니다.

이 아도니야가 스스로를 높여서 ‘내가 왕이 되리라’하고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 인을 예비합니다.

 

전배란 ‘앞서 달리는 자’ 즉 호위병과 같은 군사를 뜻합니다. *개역개정엔 ‘호위병’

이처럼 아도니야는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세밀한 준비를 한 것입니다. 1:5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을 솔로몬으로 정해 놓은 상태입니다.

다윗도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밧세바를 범한 다윗의 범죄와 함께 등장한 아들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을 하고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은 그 아들을 치심으로 죽게 합니다.

 

범죄한 자는 다윗인데, 다윗이 아닌 아들을 죽게 한 것은

그 아들처럼 다윗이 죽어야 할 존재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죽이지 않으신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 많았기에 봐주는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 하신 약속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다윗의 범죄를 기회로 삼아, 하나님의 약속의 실체가 무엇이며

또한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보여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내용은 긍휼과 자비입니다.

이 약속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심으로 성취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택하신 것도,

솔로몬이 정치력이 있거나 지도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왕다움은 정치력이나 지도력에 있지 않습니다.

왕이 정치를 잘하고 이스라엘을 잘 지도하여, 이스라엘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유지되는 것은 왕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책임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왕의 역할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택하신 것도

다윗의 범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솔로몬을 세워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증거하고자 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윗도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들 중에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반역을 하는 것입니다.

 

아도니야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고, 아주 준수한 인물의 사람이었으며, 1:6

다윗으로부터 한번도 꾸중을 들은 일이 없을 정도로

다윗의 마음에 들게 행동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아도니야였기에, 그는 아마 자신을 왕이 될 만한 사람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압살롬처럼 왕이 어떤 역할의 사람인가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한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의 자리로만 바라본 것입니다.

때문에 솔로몬에게, 왕위를 빼앗기기 싫어서 반역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기중심으로만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기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 한 채

자신의 이득을 따라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자신의 이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7-8절을 보면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아도니야가 요압과 아비아달과 모의를 하자, 그들이 아도니야를 돕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8절을 보면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않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도니야의 계략에 동조하지 않고, 하나님이 세우신 뜻대로 순종하고자한 사람들이죠.

 

아도니야는 이미 병거와 기병을 예비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군대장관인 요압마저 아도니야에게 동조를 한 입장에서

이미 대세는 아도니야에게 기울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형편에서 유리한 것은, 아도니야에게 동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에게 동조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유리함을 바라보며 행동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들이 여호와께 속한 신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자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신자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께 속한 자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유, 불리를 따져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기쁨인가를 살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그 길이 불리하게 되는 길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신의 뜻을 여호와께 두어야 합니다. 여호와께 속한 자라면 그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자신의 뜻이 살아있으면서 여호와의 뜻에 순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을 여호와께 두었을 때 비로소 순종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도니야는 스스로, 자신이 왕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럼 다윗은 어떨까요?

 

다윗도 하나님이 세운 왕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했을 때는

왕의 권력에 취해서 범죄합니다.

 

그러한 다윗이 자신의 죄를 깨닫자,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세운 것은

죽어야 할 자를 죽이지 않으시고 살리시는 긍휼과 자비를 증거하기 위함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왕의 역할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도니야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내가 왕이 되리라는 교만이 돌출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목사가 될 만한 사람이 없고, 장로가 될 만한 사람이 없고

집사가 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 말하고 있는 장로의 자격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 읽어보시면

왜 제가 목사, 장로, 집사 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제가 목사로 있고, 여러분이 장로, 집사로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될 만한 사람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될 수 없는 사람을 세우셔서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긍휼과 자비를 증거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역할을 잘 아는 신자라면

나같은 자가라는 고백과 함께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긍휼과 자비가 증거 되는 것에 있음을 알기에

모든 일의 뜻을 여기에 두고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였을 때에도, 한결같이 교회가 잘되고 유리하게 되는 것을 꿈꾸며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하심만을 마음껏 증거하고

나타내는 교회를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에 집착하게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집착하게 하지도 않고 나에게 집착하게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하나님의 것을, 세상에 증거하는 자로 살게 하실 뿐입니다.

 

‘내가 왕이 되리라’는 아도니야의 욕망에서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신자라면 그러한 욕망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욕망에서 자신의 악함을 보는 것입니다.

즉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자신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을 바라보기를 게을리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으면 자기 착각이라는 함정에 빠져서

긍휼과 자비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때문에 감사와 족함 대신에 불평과 원망과 부족함만 있는 삶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만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며 자신의 유리함을 따라 힘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만을 소망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이러한 삶을 날마다 배우셔야 합니다.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전부라는 것을 힘써 배우며 살아가셔야 합니다.

 

세상이 힘이 아니며 그리스도가 힘이라는 것을 배우셔야 합니다.

세상이 소망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소망이라는 것을 배우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언제나 그리스도께 끌림을 받는 신자로서 왜 예수님이 기쁨이고

즐거움이라고 말하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예수를 말하되 예수께 속한 자로 살아가는 자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