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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준 왕상2:8-25 2006년 [열왕기상 7강]
◑도입
여러분의 삶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아니 삶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묻기보다는
과연 삶의 기준이 세워져 있는가를 물어야 할 듯싶습니다.
현대인들의 문제는, 삶의 기준이 될 무엇인가를 세워두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기준이 없습니다.
기준이 없기에, 자신에게 유익되면 받아들이고, 유익되지 못하면 거부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내 마음에 들면 옳은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옳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처럼 삶의 기준이 없기에 신자라고 하면서도
신자로서의 삶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에 의해서 살 자를 살리시고, 죽을 자를 죽이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가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결국 자기 식대로 살아가는 것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천국이 어떤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지를 알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한다면
결국 천국이 거부하는 자로 살아가면서도
‘나는 천국에 간다’고 고집하는 것 밖에 더 되겠습니까?
천국은 내 고집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나 같은 사람이 천국 못가면 누가 가겠나?’
라고 우긴다고 해서 천국이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천국은 천국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기에, 그 기준에 합한 자들에게만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그 기준을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다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죽인 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가를 살펴보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이 내용은 율법주의를 옹호함이 아니고,
믿음으로 거듭난 성도의 삶의 증거, 삶의 열매가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에 아도니야와 요압과 시므이를 죽입니다.
그리고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을 때,
그 편에 섰던 아비아달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고 쫓아 버립니다.
결국 이들 네 사람은 솔로몬에게 버림을 받는 사람으로 등장하지만,
실상은 하나님께 버림 받은 자들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러므로 이들 네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살펴본다면 *요압, 시므이, 아도니야, 아비아달
이들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지 못하고
천국이 거부한다는 것을 분명한 기준을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적당히 교회 출입했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영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겠습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사망에 처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서 구원 받는 것이 영생입니다.
세상 모두가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는데, 그들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은총이, 단지 교회에 출입했다고 해서 주어지는 가벼운 것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심으로 영생을 소망하면서 하나님께 나오는 분들이라면
교회에 출입하는 자신을 보면서 ‘천국 갈 것이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자에게 천국을 허용하셨는가를 살핌으로써
그것을 기준 삼아 자신을 살펴야 할 것이고,
앞으로도 그 기준에 의해서 자신을 점검하면서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자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솔로몬 왕에게 의해 죽임을 당하고, 제거된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 요압 왕상2:5~6, 28~34
아비아달이 솔로몬에게 의해 파면을 당하고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은 요압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뿔을 잡습니다. :28
왜냐하면 요압 자신도 아비아달처럼 아도니야를 쫓았기에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챈 것입니다.
그런데 요압은 왜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쳐 단 뿔을 잡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출애굽기에 있는 하나님의 규례를 요압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출21:13-14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찌니라”
죽여야 할 자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곳으로 도망을 하면, 그를 죽이지 말라는 규례입니다.
여기서 말한 하나님이 정한 곳은 성소(마당의 번제단의 제단뿔)이고,
14절에서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라고 말씀한 것을 보면, 제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요압은 하나님의 규례를 이용하여 목숨을 구하고자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고의로 이웃을 죽인 자는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즉 요압이 제단뿔을 붙잡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고의로 사람을 죽였으니까요!
제단 뿔은 제물의 희생의 피가 뿌려지는 곳이고, 용서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제단 뿔에는 회개와 용서가 있어야 마땅한데
요압은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제단 뿔을 이용한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 없이 다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이용하여 자신이 살 길을 구축하는 것이야
말로 악한 것이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볼게요.
왕상2: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스루야의 아들 요압'
스루야는 다윗의 누이이며, 요압은 그녀의 맏아들이죠(대상2:16)
그러니 요압은 다윗의 조카였습니다. 다윗이 막내 임을 감안하면,
요압과 나이 차가 많지 않았겠죠.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일에 대해서는 삼하 2-3장과 19-20장에 나옵니다.
한편, 그런데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자기의 군대장관 지위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시기심 때문이었죠(삼하 3:6-39, 20장).
여기서 특기할 것은
요압의 그러한 살해 행위를, 다윗은 마치 자신에게 행한 일로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것은,
다윗 왕의 권위에 대한 멸시와 도전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삼하3:26, 20:11).
적어도 요압은 ,다윗 왕에 대해서는 끝까지 충성을 바친 훌륭한 전사였지만,
그래서 '요압을 제거하라'는 말을 솔로몬에게 하는 것을, 의리가 없는 처사로 보입니다만,
요압은 평소에 지나치게 방자하고(삼하 18:5,14) 거칠었던 것 같아요(삼하 3:27, 18:14).
그래서 끼친 공功 못지 않게 자주 다윗 왕가를 괴롭혀왔던 것입니다.
그 중에서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행위는 도저히 묵과될 수 없었던
요압의 치명적 실수로서, 다윗은 그 사실에 대해 아들 솔로몬에게
응분의 조치를 내릴 것을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위 5절이 설명하는 바, 다윗은 어떻게 해서든지 나라의 평화를 원했는데,
요압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5
그래서 다윗 왕의 통치와, 하나님 나라를 어지럽힌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스보셋의 군대장관 아브넬과 협상해 평화적 통일 왕국을 이루려 했었죠(삼하3:21).
또한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마사를 등용한 것은 내란을 종식시키고
왕국의 재정비를 도모하려던 때였어요(삼하 19:13, 20장). 아마사는 다윗의 외조카였죠.
그런데 다윗의 이러한 평화의 노력이 요압의 살해 행위로 인해 크게 방해를 받았던 것이죠.
따라서 요압이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과,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를 계략으로 살해한
행위는 다윗을 심히 분노케 했습니다(삼하 3:29).
'전쟁의 피로...띠와...신에 묻혔으니'
만일 요압이 전쟁 중에 정정 당당히 싸워, 그들을 죽임으로
그들의 피를 자기 띠와 신에 묻혔다면,
그것은 결코 책할만한 일이 못될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교회)에서도 보면, 요압과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자기 출세나 명예를 염두에 두고, 다른 동역자와 경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세상 방식으로 그를 공격하고, 자기 명예를 스스로 높입니다.
그러나 왕은(하나님은) 정확하게 판단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요압은, 자기가 세운 공보다, 과가 더 컸던.. 비운의 인물이었습니다.
왕상2: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네 지혜대로 행하여' 요압은 그때까지도 군대 장관이었고(35절),
다윗의 조카로서 다윗이 왕이 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당대의 세도가였죠.
그러한 인물을 명분없이 처단한다면, 민심의 동요와 같은 어려움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나쁜 술수로 요압을 처단하라는 뜻이 아니라,
납득이 갈 만한 처벌의 정당성과 적절한시기를 가려 시행하도록 충고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불순한 시도가 재차 드러나자
그의 동조자였던 요압도 함께 처단하게 됩니다(19-25, 28-34절).
'그 백발로 평안히...내력지 못하게 하라'
그 무렵 요압도 고령기에 접어들었던 것같습니다.
그런데 '백발의 평안한 죽음'은 죄 없는 자의 죽음으로서,
요압 같은 자에게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요압은 까닭 없이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31절).
히브리인들은 무고한 자가 흘린 피는, 그 피값이 보상될 때까지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믿었고
(창 4:10), 또한 그 피를 흘리게 한 자는, 현세에 반드시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했죠.
(수2:19, 마27:24,25).
한편, 이처럼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창 9:5,6)는 피의 보상 원리에 입각하여
다윗은 요압이 그 피 흘린 죄를 반드시 감당해야할 것이라고 솔로몬에게 권고한 것입니다.
개인적 복수 차원이 아니었다는 거죠.
그러면 왜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압을 처단하지 않고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일을 위임했는가요?
혹자는 당시 다윗은 군대 장관인 요압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즉 다윗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충실했을 뿐 아니라 많은 전공을 새운 요압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단하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또 혹자는 생각하기를, 다윗은 요압과 공모하여 밧세바의 남편이자 신실하고
용감한 신하인 우리아를 죽게 한,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른 경험이 있으므로(삼하 11:14-25),
그 일로 인해 양심이 찔려 요압을 직접 처리하지못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아무튼 다윗은 요압의 불의한 살해 행위를 잊지 않고 있다가
결국 솔로몬을 거스려 아도니야의 반역 행위에 가담한 요압을
솔로몬이 처리하도록 그에게 위임하는 것이
오히려 솔로몬 왕국의 강화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 실현 차원에서 더 유익하다고
판단하고 요압의 처리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부터 솔로몬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왕상2:28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그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으니
이는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이더라
아도니야와 아비아달의 운명을 전해들은
요압은 다음은 자기 차례일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요압은 성소 마당의 제단 뿔을 잡았을 것입니다(1:50).
그런데 요압이 제단 뿔을 잡은 행위는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출 21:13, 14의 규례에 의하면, 제단을 도피처로 삼을 수 있는 자는
오직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에 국한되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려 자기의 야욕과 복수심으로
이스라엘의 두 장수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였던 것입니다(삼하 3:23-27, 20:4-10).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요압이 급히 도망친 '여호와의 장막'은 이전에 아도니야 역시 도망친 곳으로서,
시온산 위에 있던 장막입니다(대하 1:4).
왕상2:29 어떤 사람이 솔로몬 왕에게 아뢰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이르되 너는 가서 그를 치라
왕상2:30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그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아뢰어 이르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신성한 성소에서 피 흘리기를 주저하는 것을 보면서
요압이 대답한 이 말의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습니다.
-요압은 솔로몬이 감히 신성한 성소에서 자기를 죽이지는 못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란 견해
-성소에서 죽음으로써 요압은 솔로몬에게 성소 모독의 오명을 끼치고 죽으려했다는 견해,
-그 밖에 제단 곁에서 죽음으로써, 사후에 어떤 공덕을 얻으려는 일종의 미신적 심리가 작용
했다는 견해 등이 있죠.
요압이 이 중 어느 것을 심중에 두었더라도, 결정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죠.
즉 그것은 비록 요압 자신은 과거지사로 잊고 있었을런지 몰라도,
분명 그는 사악한 계교로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자로서, (무죄한 피를 흘린 자로서)
곧 이웃을 모살한 자라는 점입니다(출 21:14).
그리고 이런 살인자는 성소의 보호 규정에 해당되지 않을뿐 아니라,
성소의 그 어떠한 은총도 전혀 누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신 19:11-13).
왕상2:31 왕이 이르되 그의 말과 같이 하여 그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저를 죽여 묻으라' 솔로몬이 여기서 특별히 '묻으라'(매장하라)는 말을 강조한 이유는
이전에 세운 요압의 공로를 예우해 주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여하튼 이것들은 모두 솔로몬이 율법을 준수할 뿐 아니라, 공평무사한 왕임을 강조합니다.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제하리라'
민35:31-34의 율법에는 고의로 살인한 자는 결코 용서치 말 것과,
또한 그 죄값은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로써만, 오직 갚을수 있다는 율례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런 맥락에서 아브넬과 아마사의 죽음에 책임을 갖고 있는
다윗 왕가는 그들의 피를 흘리게 한 요압의 피로써
그 죄값을 속량할 의무가 있었던 것입니다(삼하 21:1-9, 창 4:10, 9:6).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으면,
그의 가까운 친족이, 그 살인자를 죽이는 보복법이 있었습니다. '피의 보복자(고엘)' 제도!
당시 전통에 그런 법이 있었고, 그래야 저주가 그 땅에서 물러간다고 믿었죠. 민35:19 등
아마사는 다윗의 누이 아비가일의 아들로, 다윗에게는 조카가 됩니다. *요압처럼
따라서 다윗은 임종시 이 사실을 유언으로 남겼고(5,6절),
솔로몬은 부친의 명을 받들어 살인자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마침내 무고히 피흘리게 한 죄값을 속량받아,
결국 억울하게 피흘린 죄를 자신의 집으로부터 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피의 보복법을 시행한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주를 푸는 거죠.
왕상2:32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요압의 처형에 대한 판결문입니다.
'저가 자기보다 외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이 때문에 요압은 비록 성소에서일지라도 끌어내어 죽임을 당한 것이므로, 출21:14
솔로몬의 처사는 위법이 아니고, 오히려 적법인 것입니다. :30
그런데 여기서 솔로몬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요압보다 의롭고 선한 인물로 보고 있는 까닭은,
비록 아브넬과 아마사도 다윗을 적대하긴 하였으나(삼하 2:8-29, 17:25)
그것은 전쟁시였고 후에는, 오히려 화평을 도모했었기 때문이죠(삼하 3:21, 19:13, 20:4).
반면 요압은, 평화시에 개인적 복수심과 질투로 다윗을 거스려 그들을 살해했던 것이죠(5절).
왕상2:33 그들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의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집과 그의 왕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저희의 피는...요압의 머리와 그 자손의 머리로'
솔로몬의 이 말은, 아브넬의 살해 소식을 듣고
다윗이 요압에게 내린 저주와 비슷합니다(삼하 3:28, 29).
히브리인들은 무고히 흘린 피살자(被殺者)의 피는 그 피값이 속량될 때까지
계속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믿었으며(창 4:10),
반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한 살해자(殺害者)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당대 또는 자손들에게서라도 반드시 그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출 20:5, 34:7, 레 20:5, 26:39, 수 2:!9, 마 27:24, 25)
이런 점에서, 여기 솔로몬의 말은, 오늘날 요압이 죽임당하는 것은
그 자신이 흘리게 한 피의 당연한 대가로서,
이제 그 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요압 역시 죽임당한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이러한 피의 보응 원리(창 9:6)에 대한 성경적 일례로,
무고히 기브온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한 사울의 범죄로, 후일 사울의 후손 일곱 명이
처형당함으로써 그 피값을 치른 사건(삼하 21:1-9)을 들 수 있습니다.
'다윗과 그 자손...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이제 솔로몬은
다윗 집안에 여호와의 평강이 영영히 깃들 것으로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그동안 다윗 집안에 드리워진 무고한 자의 피흘린 죄책을
말끔히 제거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31절).
이로 보아 우리는 다윗 혹은 솔로몬이 결코 개인적인 복수심이나 원한으로 요압을 처형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성경적 '피의 보응 원리'(창 9:6, 출 21:14, 레 17:11)에 입각하여
공의롭게 요압을 처형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즉 다윗 혹은 솔로몬은 무고한 피값을 갚을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
그 책임이 다윗 왕가로 돌아와 저주가 되는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반면 그 피흘린 죄책을 제거하면, 다윗 왕가는 여호와의 평강의 상태에 들게 될 것으로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33
그런데도 일찍이 다윗이 즉시 이를 행하지 못한 것은
당시에는 요압의 세력이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삼하 3:39).
그러나 이제 솔로몬이 마침내 그 의무를 행한 것입니다.
왕상2:3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그를 쳐죽이매
그가 광야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거친 땅' '유다 광야'를 말합니다. 이곳은 베들레헴과 드고아에서 가까운, 돌이 많은 지역이죠
(수 15:6, 삿 1:16). 그런데 여기에 요압 조상들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고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에 딸린 정원에 무덤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비록 요압은 피의 보응 원리에 따라 처형은 당했지만, 생전에 그가 다윗을 위해
세운 많은 전공(戰功)이 참작되어, 이처럼 용사의 죽음으로 예우받은 것 같습니다.
◑2. 시므이 2:8~9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한 자였지만 처음부터 죽이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시므이를 죽이지 않은 대신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정녕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2:36, 37절)고 말합니다.
그런데 시므이는 도망간 종을 찾기 위해 솔로몬의 말을 어기고 예루살렘을 벗어나게 됩니다.
시므이가 살 수 있는 것은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말라'는 말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산다는 것이 솔로몬의 약속이었습니다.
결국 시므이의 죽음은 솔로몬의 약속보다는, 종을 찾는 일을 더 크게 여긴 것 때문입니다.
즉 십자가의 언약의 피의 은혜 아래 거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세상의 것을 챙기는 일을 더 크게 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이 두 줄 약간 알레고리적 해석)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입니다. 우리는 이 기준으로 자신을 살피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벗어나지 않는 자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용서 아래 있음을 깨달으며 그 기쁨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만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성품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볼게요.
왕상2:8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시므이가 살던 '바후림'은 수도 예루살렘에서 약 9km 가량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고을로, 베냐민 지역에 속합니다(삼하 16:5).
'게라의 아들'
'게라'(Gera)는 베냐민의 손자이므로(창 46:21, 대상 7:6) 시므이의 아버지일 수 없죠.
이런 점에서, 시므이보다 약 300년 전의 인물인 사사 에훗도
'게라의 아들'로 불리웠던 것으로 보아(삿 3:15), 이 말은 '게라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여기서 '너와 함께 있나니'란 말은 곧 너와 가까이에 있다는 뜻으로,
이는 솔로몬이 거주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과 가까운 곳에 시므이가 살고 있다는 뜻이죠.
그러므로 이 말은 혹자의 견해처럼 '시므이가 솔로몬의 권력하에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직역하면, '그는 지독한 저주로써 나를 저주하였다'란 의미인데,
구체적인 저주의 내용은 삼하 16:7, 8에 나타나 있습니다.
시므이의 그 저주 까닭에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혹 은총을 베풀어 주실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을 정도로 시므이의 독한 말(저주)은
다윗에게 깊이 원통함을 심어준 말이었습니다(삼하16:12).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압살롬의 난이 평정된 후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할 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생명의 위험을 느낀 시므이는, 급히 베냐민 사람 1천 명을 이끌고
요단으로 내려가, 다윗 왕을 영접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였습니다. 삼하19:16~23
'내가...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당시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막 환궁하는 시점에서
사울 왕의 지파인 베냐민 기파 소속의 유력자 시므이를 처형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일단 시므이의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 용서는 시므이의 범죄를 용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 대한 징계를 보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삼하 19:21,23.
왕상2:9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그 백발이 피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다윗은 시므이의 행위(삼하 16:5-13)를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저주와 모욕이 아닌,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시대에는 비록 민심 수습이란 현실적 문제로 그를 처단하지 않았지만
끝내는 처단해야할 존재로 작정했습니다.
사실 시므이와 같은 기회주의적 인물은, 때가 되면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있었으므로, 다윗은 솔로몬의 견고한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므이와 같은 암적 존재가
반드시 제거될 필요가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한편, 혹자는 용서받은 후 시므이의 행동이 신실한 회개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하에
다윗이 이처럼 명령하고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시므이가 신실한 회개를 했다면, 하나님이 그를 지켜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어떤 사람들이 나를 계속적으로 공격한다면,
내가 주님 앞에 진실한 회개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만약 내가 주님 앞에 진실한 회개를 했는데도, 누가 나를 계속 공격한다면,
그건 공격하는 그 사람의 문제가 될 것이고, 주님이 그에게 그 공격이 책임을 물으실 겁니다.
또한편 일부 학자들은 주장하기를,
시므이를 처형시키라는 다윗의 명령은 '뿌리 깊은 증오심' 내지는
'끝내 참을 수 없었던 복수심'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나,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다윗의 명령은 결코 개인적 차원의 원한이나 복수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실현' 내지는 '하나님 왕국의 강화'라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기름 부음 받은 왕을 모욕하고 저주한 자에 대해, 개인적인 용서의 차원을 떠나
신적 심판은 반드시 집행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시므이는.. (자기 개인적 이익을 위해) *그는 베냐민 지파, 사울 집안의 부활을 기대했겠죠.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훼방하고, 하나님 나라를 훼방한 것입니다.
그가 저주한 시점에 당장 죽임 당하지 않고, 나중에 솔로몬 때 죽을 때까지
하나님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오래동안 주신 것입니다.
◑3. 아도니야의 제거 2:13~25
아도니야는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다고 해서, 솔로몬이 그를 죽인 것이 아닙니다.
즉 솔로몬이 정치적 보복을 한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2:16~17절을 보면, 아도니야가 밧세바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한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옵소서 밧세바가 가로되 말하라 가로되
청컨대 솔로몬왕에게 말씀하여 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얼굴을 괄시치 아니하리이다”
즉 아도니야는 밧세바를 찾아와서 솔로몬 왕에게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자기 아내로 삼게 해달라는 청을 넣어달라는 로비를 합니다.
솔로몬 왕이, ‘어머니인 밧세바의 청이라면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계산을 한 것입니다.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청을 승낙하게 되고, 솔로몬에게게 가서 아도니야 얘기를 꺼내지만
솔로몬은 블라블라 라고 말하고, 아도니야를 죽이라고 명한 것입니다. (22-23절)
도대체 왜 그 청이 죽임을 당해야 할 이유였을까요?
수넴 여자 아비삭은 다윗을 수종들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달라는 것은
어떻게든 다윗의 권세를, 장남인 자신이 계속 이어보려는 욕망인 것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왕의 첩을 차지한다는 것은, 왕의 권력을 이어받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이 그래서, 반란을 일으킨 후에, 다윗 왕의 후궁들을 취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이죠.
세속 역사에서 보면, 고대 전쟁에서, 정복자는 피지배국 후궁들을 차지하는 것이 문화였죠.
아도니야는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기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개할 때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는 자비였습니다.
왕은 그것을 행하고, 또한 보여주는.. 하나님의 대리통치자 였던 셈이죠.
아도니야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한 절씩 살펴볼게요.
왕상2:13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70인역에는 아도니야가 절을 하였다는 말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한편 1:11의 밧세바는 왕비였으나, 지금 2장에서 그녀는 태후(太后)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국에서 태후의 위치는 대단히 유력한 위치였습니다.
그러므로 실제 열왕기에는 왕들의 모친들이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14:31, 15:10,13, 왕하11:1, 12:1, 14:2, 15:2 등). 신분이나 지위가 유력했다는 뜻이죠.
그중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의 전횡(專橫)은 특기할 만합니다(왕하11:1-3).
분명 이런 맥락하에서 아도니야 역시 밧세바를 움직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밧세바에게 접근한 것입니다.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뇨'
의당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방문이 의아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아도니야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들 솔로몬과 왕위를 놓고 다투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러한 아도니야가 이제 다윗이 죽고난 후 솔로몬이 본격 통치를 시작할 즈음에
갑자기 밧세바를 방문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밧세바는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므로 경계심을 품은 질문을 한 것입니다.
왕상2:17 그가 이르되 청하건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그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아도니야의 이 간청은, 다만 아비삭의 미모를 탐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대다수 주석가들은 아도니야의 이러한 요구는 궁극적으로 왕위를 노리는 행동으로 해석하죠.
왜냐면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그의 첩(후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바사 제국을 비롯한 고대 근동에서늘 선왕(先王)의 첩을 아내로 삼음으로써
후왕(後王)이 자신의 왕위를 널리 인정받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런 맥락하에서 압살롬도, 백성들의 목전에서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함으로써
왕권 쟁취를 널리 선언한 바 있있죠(삼하 16:20-23).
따라서 비록 밧세바는 이러한 아도니야의 숨은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하고
쉽사리 그의 청을 들어 중재자의 자격으로 나섰지만,
지혜로운 솔로몬은, 밧세바의 말을 통해 아도니야의 숨은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마침내 아도니야를 죽이고 맙니다(25절).
그 이유는 솔로몬이 아도니야에게 일찍이 주지시켰던 바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1:52)
라는 말대로 아도니야의 아비삭 요구 속에는
다시금 왕위를 노리는 '악한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상2:19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 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왕좌에 앉고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자리를 베푸니
그가 그의 오른쪽에 앉는 지라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솔로몬이 모친 밧세바를 태후(太后)로 존중하여 최대의 예우와 존경으로 맞이하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왕국에서 태후의 지위는 매우 유력했던 것입니다.
'그의 우른 쪽에 앉는 지라'
우편의 자리는 특히 고대 근동 사회에서 존대와 영광을
나타내는 자리였죠. 그리고 그러한 관례는 성경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한편 본문이 이처럼 솔로몬의 극진한 예절을 소상히 기록한 이유는,
솔로몬은 효성이 지극한 왕이었음을 알리고, 동시에 그러한 효성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모친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결코 괄시가 아니라
아도니야의 요청이 역모에 관련된 탓임을 나타내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왕상2:20 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 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소서
왕이 대답하되 내 어머니여 구하소서 내가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한 가지 작은 일로'
아도니야의 "한 가지 소원"(16절)이 밧세바에게 이르러 "한가지 작은 일"로 바뀌어 있습니다.
이것은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부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분명 밧세바는 그러한 부탁을 단순한 '애정 문제'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한편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즉 솔로몬이 아비삭을 좋아했기 때문에 밧세바가 일종이 질투심에서 아도니야의 청을
적극 수락했다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는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을
수넴 여자 아비삭과 동일시하는 가설에 기초합니다. *수넴은 술람미와 동일한 지명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 그 가설을 입증할 만한 기록이 전혀 없죠.
왕상2:21 이르되 청하건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소서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분명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이 부탁을 단순한 남녀간의 애정 문제로 인식하고,
이처럼 솔로몬에게 아도니야의 청을 들어줄 것을 부탁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밧세바의 생각으로는,
수넴 여자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지 않았으므로(1:4),
그녀는 한낱 수종드는 시종에 불과할 뿐이라고 간주했을 것이기 때문이죠.
여기에 덧붙여 밧세바는 왕위 경쟁에서 실패한 아도니야에 대한 일종의 동정심도 작용하여
이 문제를 '한 가지 작은 일'로 보았던 것입니다(20절).
그러나 당시 일반 백성들은, 분명 아비삭을 다윗의 첩(후궁)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관례상 선왕(先王)의 후궁을 계승하여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 왕좌를 계승한다는 하나의 상징적 행위였죠(삼하 3:7, 12:8, 16:20-22).
그러므로 만일 아도니야의 뜻대로만 된다면, 그는 왕권회복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되고,
또한 아도니야의 추종 세력들은 크게 힘을 얻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삼하 16:21).
이러한 모든 배경하에서, 밧세바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솔로몬은 이전에 아도니야의 반역죄를 용서해 주면서 한 말,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고 경고했던 일이 떠올랐을 것입니다(1:52).
왕상2:22 솔로몬 왕이 그의 어머니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 하고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처음의 다정했던 분위기가 일순간 깨어지는 순간입니다.
이때 솔로몬은 분명히 격노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도니야의 '한 가지 소원'(16절)의 저변에 깔려 있던 역모의 흉계를 곧 간파했죠.
그리고 그 흉계를 모르고 중개 역할을 한 모친에게 순간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를 위하여 왕위를 구하옵소서'
결과적으로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요구한 것이 솔로몬에게 있어서는
왕위를 요구한 것으로 간주되었죠.
즉 선왕의 후궁과 다름없는 아비삭을 요구하는 것은
원래 장자권을 가졌던 아도니야가
애초 자신의 1차 거사 세력과 재차 역모를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21절의 밧세바의 말과 본절의 솔로몬의 대답은 같은 요소들을 포함하지만,
사건을 보는 시각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비아달과...요압도 위하여'
여기서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 장관 요압의 이름이 거론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1차 거사 실패 이후(1:7, 49)에도 이들 핵심 세력 3인은 왕권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 암중 모색해 왔던 것 같습니다.
혹자는 생각하기를,
과거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들을 취하라고 권면한 자가 아히도벨이었던 것처럼(삼하 16:21),
이번에 아도니야에게 아비삭을 요구하라고 권면한 자가
혹 아비아달 또는 요압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왕상2:23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별울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이 말은 내가 반드시 맹세의 내용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즉 변경할 수 없는 결심을 나타내는 맹세의 관용적 용법이죠(룻 1:!7, 삼상 3:17, 14:44 등).
왕상2:24 그러므로 이제 나를 세워 내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
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솔로몬은 자신이 왕이 된 것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일찍이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대로(삼하 7:11-16,
12:4,25, 대상22:6-10), 왕위가 다윗에 이어 솔로몬에게 주어짐으로써
그 왕위를 더욱 견고케 하셨다는 뜻입니다.
왕상2:25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그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
한편, 혹자들은 이유야 어떻든 솔로몬이 자신의 이복 형인 아도니야를 처형시킨 것은
세속적인 왕권 쟁탈 싸움과 다를 바 없는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비난합니다.
사실 얼핏 보면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구태여 처형시킨 일은 가혹한 일로 비쳐질 수도 있죠.
그러나 솔로몬은 혈연관계를 초월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대권을 위임받은 신정 왕국의 통치자
로서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공의를 구현하는데 주력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1차 경고(1:52)에도 불구하고 재차 반역을 시도함으로써, 신정(神政) 왕국 이스라엘의
근간 질서를 문란케 한 아도니야의 죄는 엄중히 다스려져야 마땅하였습니다.
즉 솔로몬의 아도니야 처형 사건은 단순히 '왕권 도전 세력의 제거'라는 정치적 차원에서
평가될 것이 아니라, '신정 왕국의 확립 및 강화'라는 신적 공의 실현의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솔로몬이 자기 형 아도니야를 처형시킨 사건은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그러나 정당했고,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었습니다.
◑4. 제사장 아비아달 2:26~27
솔로몬이 제사장 아비아달을 파면하고 쫓아 버립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고자 했을 때, 아도니야 편에 섰던 것이 이유입니다.
아비아달은 제사장으로서 제물의 희생의 피로 말미암은 죄 용서,
즉 제물의 희생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증거하면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사장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갈 길은 오직 이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비아달은 제사장으로서 가야 할 길보다는
아도니야 라는 새로운 권력에 눈을 돌립니다. *당시 사독 제사장과 경쟁 관계
즉 제사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살 수 있고, 제사장이라는 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비아달은, 아도니야 편에 서는 것이 그 길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하나님만이 힘입니다.
하나님만을 힘으로 여기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 신자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힘을 바라보고 그 힘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힘이시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런 자도 거부하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한 절씩 살펴볼게요.
왕상2: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
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아나돗' 베냐민 지파에 속한 고을로 제사장들의 성읍입니다(수 21:18, 대상 6:60).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5.6km 정도의 거리로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부친 힐기야의 고향이기도 하죠(렘 1:1).
'죽을 자로되...죽이지 아니하노라'
혹자는 이것을 제사장의 목숨은, 왕이 결정하는 법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보나,
사울의 예로 미루어 합당치 못합니다(삼상 22:!6-19). 따라서 솔로몬의 이러한 조치는
역시 본문이 알리는대로 부친 다윗을 도왔던 아비아달의 공로가 참작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아비아달의 공로는 다음 두 가지이죠.
1) 다윗 앞에서 여호와의 궤(언약궤 또는 법궤)를 메어 올린 일.
제사장 아비아달은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대상 15:11-15)와
2)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피난할 때(삼하 15:24-29) 법궤를 맡아 책임짐으로써
다윗을 도운 적이 있었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제사장 아비아달은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다윗 왕의 충신으로 남아 첩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 다윗의 편에 서서 동고 동락했었습니다. 그 공이 인정되었죠.
왕상2: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아비아달을 쫓아내어...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이러한 솔로몬의 조치는 제사장을 세우고
폐하는 일이 왕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비아달의 경우,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왕에 대항하여 반역을 모의함으로써
스스로 제사장직으로부터 이탈하였으므로,
솔로몬은 그에 상응하는 합당한 조치를 취했을 뿐입니다.
한편, 추방 당한 이후의 아비아달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추측컨대, 추방당할 때의 나이가 80세 가량의 노령이었으므로,
이후 오래 살지 못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엘리의 집...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일찍이 하나님께서 익명의 선지자를 통하여
엘리의 집에 선포한 예언의 구체적인 내용은 삼상 2:27-36에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 내용은, 엘리 가문의 죄로 말미암아 엘리 가문의 제사장직이 폐하여질 것이라는 경고였죠.
여기서 열왕기 저자는, 아비아달의 제사장직 파면 사건을 그 예언의 성취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로써 아비아달은 이다말과 엘리 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제사장 중
마지막 제사장이된 셈이기 때문이다.
원래 아론의 네 아들들(나답, 아비후,엘르아살, 이다말) 중
나답과 아비후는 잘못된 분향 사건으로 인해 일찍 죽었기 때문에(레 10:1,2),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유력한 제사장 계열로 남았죠(레 10장, 민 3:4, 대상 24:3).
그런데 아비아달은 엘리 집안 소속으로서 이다말 계열에,
사독은 엘르아살 계열에 각각 속합니다(삼상 14:3, 22:9, 대상24:3).
그러므로 아비아달이 역모죄로 말미암아 솔로몬에 의해 파면된 것은
곧 대제사장직이 엘르아살 계통으로 완전히 일원화 되었음을 의미합니다(35절, 대상 6:1-8).
아울러 다윗 시대의 2명의 대제사장 문제가 해결되었고, 1:8
결국 엘리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역사의 시종을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섭리 주관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뚜렷이 감지할 수 있습니다.
♣자기 직업을 소중히 여긴 사람
존 윌톤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26세까지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막가는 인생을 살았다.
무엇 하나 집착해서 오래 하는 일이 없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방탕하며, 허송세월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기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누가 그에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는 단정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아주 적은 보수에 상관없이, 가게 점원 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하루는 교회에 나가서 말씀을 듣는데
“너희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기라 하여도 그대로 되리라” 마17:20
라는 말씀을 듣자,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다.
어느 날 존 윌톤은 겨자씨를 한 알 얻게 되었다.
그는 그 겨자씨를 흰 종이에 싸서, 일평생 소중하게 자기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때때로 그는 겨자씨를 꺼내놓고 가만히 쳐다보며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나중에 유명한 실업가로 성공했고,
은퇴할 때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기도 했다.
그는 자기가 겨자씨를 갖고 다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좌절할 때마다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서
겨자씨를 꺼내어 늘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내가 못할 일이 없다고 했는데,
정말 내게는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밖에 없지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저는 새 힘을 얻었습니다.
저는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새들이 깃들이는 미래를 바라 본 것입니다!”
♣등 뒤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었던 트루먼
여러분, 미국의 대통령 가운데 트루먼 대통령을 아시지요?
그에게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이 은퇴 후 어느 날 트루먼 기념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마침 동네 초등학교 학생들이 와 있다가 노인 대통령을 발견하고 모여들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우리들 나이 때 인기도 있고 공부도 잘해서 반장도 하셨겠죠?”
트루먼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정반대였다네. 나는 어려서부터 눈이 몹시 나빠 안경이 없으면 맹인과 같았고,
재주도 없고, 공부도 별로 잘하지 못했으며, 겁쟁이였단다.”
아이들이 놀라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까지 되셨어요?”
대통령은 차분한 음성으로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도와주시고
내가 힘겨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나에게 힘을 주신다는 성경말씀을 믿었기 때문이지.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었어. 하나님이 내 등 뒤에 계시니까...”
노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면서, 아무도 없는 자기 등 뒤를 가리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