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24 – 온 땅의 심판 (2021.03.28 주일예배)
◈온 땅의 심판 슥6:1~8 2021년 설교
오늘은 스가랴서 6장 전반부 말씀을 살펴볼텐데요.
6장 전반부 말씀은 스가랴의 환상 중에 맨 마지막에 있는 환상입니다.
여덟 번째 ‘네 병거의 환상'인데,
환상 내용으로는 끝부분에 있는 환상입니다.
◑도입 / 스가랴의 6th, 7th, 8th 환상은 심판의 삼부작
이 마지막 8번째 환상의 내용은,
역시 심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여섯 번째, 7번째 환상에 이어서 *에바 바구니에 앉은 여인의 환상
8번째 환상 역시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쭉 이어져서 나옵니다. *4대의 병거 환상
그래서 8번째 환상은, 심판에 대한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그런 환상입니다.
그래서 이 심판의 내용들이, 조금씩 조금씩 이렇게 더 넓어져 가는 것을 보게 되는데,
6번째 환상은 그 환상의 내용이 뭐냐면.. ‘각 사람의 개인의 죄에 대한 심판’
그래서 이것은 어떻게 보면 심판이라기보다는, *6th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
우리 삶 가운데서 죄악들을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죠.
그것을 다루고 있다면 그 다음에 7번째 환상은 *에바와 그 속에 앉은 여인
조금 더 구조화된 공동체와 또 사회 속에 있는 죄 문제를 다루고 있고,
마지막 8번째 오늘 본문의 환상은, *4병거
이방인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전 지구적인 글로벌한 그런 심판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심판의 범위가 조금씩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래서 처음엔 개인에서 시작했다가 (6th 환상) → 그 다음엔 공동체로 → (7th 환상)
오늘 8th 환상의 내용은 온 세상으로 심판이 확대됩니다. 점층법적이죠.
그래서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모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을 다 심판하시는
그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악을 다 제거하시는...
그래서 이 땅을 온전히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시는
그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 스가랴서에 나오는 8가지 환상 1-붉은 말 탄 자의 환상 1:7~17 2-네 뿔과 네 대장장이들 1:18~21 3-측량줄을 잡은자 2:1~13 4-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옷 3:1~10 5-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 4장 6-날아가는 두루마리 5:1~4 7-에바 바구니 속에 앉은 여인, 5:5~11 8-4대의 병거 6:1~8 |
▲그래서 스가랴의 8가지 환상을 다시 한번 우리가 리뷰해보면서
8가지 환상의 내용들을 한번 정리해보려고 하는데,
8가지 환상은, 성경 전체의 큰 주제를 처음부터 쭉 한 흐름 가운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이냐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회복하기 원하시는 결정을 하시지요.
타락한 인간에게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결국 하나님께서 이 죄 문제를, 즉 죄를 제거하실 것이고
결국 하나님께서 원래 인간에게 주시고자 했던 놀라운 축복과
그 하나님의 모든 계획들을 다 완성하시겠다고 하는 결정을 하십니다.
그래서 스가랴에 처음 3가지 환상은 그것에 대한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회복시키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하시겠다
라는 소망과 비전에 대한 환상이 1~3번째 환상이었습니다.
▲이어지는 4~8번째까지 쭉쭉 이어지는 내용은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이 계획들을 이루어 가실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뭐냐면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고 망가뜨리는 존재가 있는데.. 그게 죄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놀라운 축복을 주기 원하시는데
죄가 그것을 파괴하고 있고, 죄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처음에 창조하셨을 때, 그 상태는 온전한 상태였고,
하나님의 모든 복이 다 부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죄가 그 가운데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그 데스티니가 파괴되기 시작하고, 그 데스티니가 지체되기 시작하고, 막히기 시작하고,
이런 역사들이 일어나죠.
그래서 이어지는 성경 전체의 이야기는 ‘이 죄 문제를 하나님이 어떻게 제거하시는가?’
하는 것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 죄 문제를, 하나님은 어떻게 해결해 가십니까?
그런데 이 성경의 이야기는, 사실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인류 가운데 있는 죄 문제를 어떻게 제거하고 해결해 가시는가?
하는 차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시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우리 각 사람, 각 사람을 향해서도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큰 계획과 큰 은혜와 데스티니들을 가지고 계신데,
우리 삶 가운데 들어와 해결되지 않는 이 죄의 문제들이,
우리의 데스티니를 가로막고 있고, 우리의 데스티니를 블록하고(막고) 있죠.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향한 주의 계획을, 선한 계획을 가로막고 있는 ‘죄의 문제’를
제거하고 해결해 가시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복음이고, 그게 성경이고, 그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스가랴서에 나오는 이 8가지 환상은,
인류 역사 전체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우리 각 사람 각 사람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은혜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은 무엇을 약속하십니까? 회복과 소망을 약속하십니다.
비록 죄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무너져 있는 상황 가운데 있고,
삶도 무너져 있고, 내면도 무너져 있고, 가정도 무너져 있고, 직장도 무너져 있고,
많은 것들이 무너져 있습니다.
현대에는 특별히 정신적으로 많이 무너져 있습니다.
특별히 이 COVID-19 시대가 계속되면서, 우리 안에 정신적으로 많은 압박들이 있고,
정신이 많이 무너져 있고... 하여간 우리 삶 가운데 여러 부분들이 무너져 있습니다.
관계가 무너져 있고, 가정도 무너져 있고, 자녀와의 관계도 껄끄럽고...
수많은 것들이 무너져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의 약속은 뭐냐면
‘이 무너진 것들을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거예요.
‘무너진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거예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일으키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는 원수의 공격에 무너지지 않도록, 불성곽을 거기에다 두르시고, 2:5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로 함께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동행하는, 이 온전한 축복 가운데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여러분 모든 각 사람 각 사람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줄 믿습니다.
무너진 것들을 다시 일으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무슨 일을 행하시는가?’ 하는 것이
이제 죄를 제거해가는.. 4번째부터 쭉 이어지는 환상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죄가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으면, 하나님의 계획을 막고,
또 하나님의 계획을 지체시키는데... 그래서 로마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계획을 의미하죠.
모든 사람이 죄 때문에,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셨던 그 영광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더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영광의 수준에 이를 수 있게 되는가요?
롬3:24에 이렇게 그 해답을 얘기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래서 이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의 시작점은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거예요.
우리 돌아오는 월요일부터가 2021년 고난주간이죠.
이번 주 금요일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날을 기념하는 성금요일 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 가운데 있는 죄의 문제,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시발점은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는 거예요.
그것이 이 모든 여정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의 역사도 보면,
처음에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런데 불행하게도 죄가 들어오죠.
그리고 이어지는 구약의 역사와, 신약의 복음서까지의 역사가 무슨 얘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것이잖아요.
물론 구약은, 그 이후에 일어날 그 모든 일들을 쭉 예언하고 있긴 하지만
하여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서 역사가 쭉 진행됩니다.
성경의 이야기가 쭉 진행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이제 신약과 함께 터지게 되죠.
그 일을 통해서,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여정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영적인 여정의 시작은 뭐냐 하면, ‘십자가의 은혜’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그 다음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습니다.
은혜가 빠져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율법밖에 없고,
은혜가 빠져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종교밖에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짜로 회복시키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뭐냐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예요. 사랑의 관계인데,
이 사랑의 관계는, 여러분, 은혜가 우리 안에 역사할 때만 발휘돼요.
▲그래서 네 번째 환상의 내용이 뭐예요?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옷’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죄사함, 이 일을 통해서 *그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
하나님이 죄를 제거해 가시는 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의 구속을 향한 그리고 그 영광을 향한 놀라운 여정이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거 가지고 다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사안받았고
우리 안에 은혜에 대한 깨달음과 감격이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에겐 뭐가 있어요? 죄로 말미암은 무기력함이 있다는 거예요.
죄는 우리에게서 의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다 뺏어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남아있는 힘과 능력은 뭐냐면
죄를 지을 수 있는 힘과 능력만 남아있는 거예요.
그 죄의 결과 비록 우리가 신분은 새로워졌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무 값 없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아무 값없이 우리를 다 죄를 사하셨을지라도
우리 안에 죄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남아있는 무기력함이 있는 거죠.
그래서 이 무기력함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결하시는가 하는 것이
그 다음 환상의 내용이었습니다.
▲그 다음, 다섯 번째 환상은,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
로마서는 이 영광과 의에 이르지 못하는 무기력함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롬7장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않냐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 여기 보면 바울이 죄로 말미암은 무기력함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의를 행하고 싶은 마음은 생겼어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고
정말 하나님과 함께하고 싶고 하는 마음은 분명히 생겼는데,
살면서 보니까 나의 원하는 바 선을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바 악을 행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게 타락한 인간의 현실이더라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내 마음에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알겠고,
정말 선을 행하고 싶은 원함도 있는데... 보니까 현실은 안 되더라는 거예요.
그럴 능력이 없는 무기력한 존재들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그 다음 이어지는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하고,
바로 다음 절이 이제 롬8:1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성령의 해방’에 대한 말씀이, 그 다음에 이어집니다.
‘성령의 생명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했다’는 거예요.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서, 의를 행하는 데 무기력해진 인간들...
그런데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셔서, 이 굴레를 끊으시고 우리를 해방케 하셔서,
의를 행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에게는,
율법의 요구, 즉 의로움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길들을 여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스가랴의 바로 다음 이어지는 5번째 환상의 내용은 뭐냐면 *두 감람나무와 촛대
‘성령의 능력’에 대한 거예요.
죄사함 받은 자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무기력함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의 의를 행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리고 다섯 번째 환상의 내용이 뭡니까?
슥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그래서 이어지는 스가랴의 다섯 번째 환상의 내용은 뭡니까? 성령님에 대한 거예요.
그러니까 스가랴의 8가지 환상이,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쭉 순서대로 훑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래서 사실 이 성령의 역사는 뭐예요?
복음서가 끝나고 나서 사도행전부터 이어지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행해가는 역사가 쭉 이어지죠.
순서적으로도 처음에 타락이 일어나고,
그리고 구약시대를 거쳐서 복음서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속, 죄사함의 역사가 일어나고 나면,
사도행전에서 성령께서 임하시는 이 일들이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스가랴가 봤던 다섯 번째 환상은 성령님의 능력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슥4:6
물론 이 예언은 당시 ‘성전재건’이라는 특별한 상황 가운데 주어진 것이지만,
그 성전재건이라는 것이 함축하는 의미가 그런 거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를 행하고자 하는 어떤 소원이 있고 열정이 있는데,
그것을 이루어가는 것은... 힘도 아니고, 능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영이시라는 거예요.
우리 삶 속에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기 원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것을 이루어가는 것은 우리의 힘도 아니고, 우리의 능력도 아니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복음은요. 결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세요. ★★
(그런데 일부 교회에서는, 안타깝게도 이런 성령의 역사를 80%이상 제한시켜 버리고 있죠)
이 비밀을 전 여러분들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결국 복음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세요.
처음에는 그게 이 말뜻이 무엇인지 애매할 수도 있고, 좀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
제가 35년 신앙생활하고 나서 보니까, 결국 고백하게 되는 건 그거더라고요.
‘아 복음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시고,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시구나!’
그게 우리의 힘이고,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고,
또 주님께서 주시는 복된 축복의 가장 핵심인 줄 믿습니다.
▲이어지는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환상이 있습니다.
6, 7, 8번째 환상은 사실 하나의 패키지인데, 삼부작인데 그 내용은 뭐예요? 심판이죠.
그래서 성경도 보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죄사함이 있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놀라운 부흥과,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면 성경의 결국 마지막은 뭐예요?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심판으로 마무리되죠.
그래서 스가랴서도 역시 그것을 쭉 이어서 좇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얘기는, 뭐냐면 심판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심판 3부작인데, 이 심판의 본질은 뭐냐면 죄를 제거하는 겁니다.
심판의 본질은 저주나 벌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죄를 제거하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게 심판의 본질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은혜로 시작되지만, 결국 심판으로 완성되는 거예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죄가 완전히 제거된 게 아니에요. 여전히 우리 삶 가운데 죄가 남아있지만
하나님께서 의롭다라고 칭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죄로 말미암은 형벌을 면하게 해주시는 것이지
죄 자체가 제거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죠. 예수 믿고 거듭났다고 해서 우리 안에 죄가 전혀 없어집니까? 아니죠.
여전히 죄의 능력들이 우리를 괴롭게 하죠.
그래서 은혜와 칭의라는 것은, 죄로 말미암은 형벌을 하나님께서 제거하셨다는 것이지
죄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니에요.
그리고 성령의 역사는, 죄와 싸워서 우리가 이기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것이지,
죄 자체가 제거된 것이 아니죠.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거죠.
그래서 ’죄가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뭐냐 하면, 결국 심판이라는 거예요.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죄를 완전히 제거하십니다.
이것은 개인의 삶 속에서도 비슷한, 똑같은 패턴으로 나타납니다.
*6th 환상, 날아가는 두루마리
결국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죄와 싸우고, 죄를 이겨나가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어떤 특정한 죄의 문제들을 완전히 제거하시는 것은,
사실은 심판을 통해서예요.
’심판‘이라는 것은.. 내가 원치 않지만 고통스럽고 괴롭고 하는
어떤 그런 사건들을 통해서,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죄를 완전히 제거하시죠.
그래서 여러분, 고난에는 신비가 있어요.
’고난에는 신비가 있다‘는 얘기를 여러분 기독교계에서 여러 번 들어보셨는데,
’고난에는 신비가 있다‘는 말은 뭐냐 하면
고난을 하나님이 허락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정금처럼 나오게 하세요.
이게 여러분 욥기의 주제잖아요.
'그 많은 고난을 통과하고 나니까 정금처럼 나오더라'
정금이라는 게 뭡니까? 100% 순금이죠.
금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불순물들이 들어있는데
뜨거운 불을 쫙 통과하면서 불순물들을 쫙 빼내는 거죠.
그러니까 고난을 통해서 우리 삶 가운데 죄를 제거해 가시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완성되어 가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일곱 번째 환상에서는 무슨 내용을 다룹니까? *에바 속 여인
우리가 숨쉬고 있는 문화, 구조화되어 있는 죄에 대해서도,
크리스찬들은 계속 선한 싸움을 싸워야 되고,
그래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 자체가 거룩해지도록 싸워야 된다는 거예요.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구조화되고 문화화된 죄들을 제거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가운데서
구조화되고 조직화되고 있는 죄들을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 일곱 번째 환상이라면,
이제 드디어 여덟 번째 환상에 다다르게 됩니다. *네 병거
그래서 이 심판이라는 건 뭐냐 하면,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이르게 하는 거예요.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공동체적으로도 그렇고 한 나라와 국가적으로 글로벌하게,
또 온 우주적으로도 동일해요.
결국 하나님께서 심판이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에 이르게 하십니다.
죄악된 것들을 제거해 나가시는 거예요.
제거한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 결국 고통스러워요. 결국 고통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죄하고 우리 자신은, 정말 이렇게 한 몸을 이루듯이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내 몸에서 죄만 뚝 떼어내는 것이 불가능하고, 우리 몸의 일부를 함께 도려내야 돼요.
죄가 얼마나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우리 안에 있는 몸의 일부를 도려내야 되기 때문에,
죄를 제거한다고 하는 것은 항상 고통이에요.
개인의 삶 속에서 죄를 제거할 때도 그렇고,
또 나중에 보면, 계시록에서,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전우주적인 심판이 행해질 때도 보면,
결국 누군가는 도려냄을 당하죠. 결국 누군가는 도려냄을 당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아파요.
'저 사람들이 저렇게 멸망하고 지옥에 가고 그렇게 끝나는가'
우리 마음이 아프고... 또 어떨 땐 하나님 원망도 좀 나오고 '저렇게까지 심판하셔야 되나?'
그래서 여러분, 항상 심판이라는 것, 죄를 제거하는 것은 고통스러워요.
죄는 우리 안에 아주 깊이 들어와 있어서, 그냥 죄만 살짝 뽑아낼 수가 없어요.
우리 삶의 일부를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이 있어요.
그래서 심판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판은 아무리 그 결과가 좋은 거라고 얘기를 해도, '심판이 축복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도,
결국 심판 앞에 서게 되면, 사람들은 싫어요. 싫고 고통스럽고 괴롭고...
그런데 그게 결국 우리 삶 가운데 죄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원래부터 죄를 짓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아담과 하와에게도 ’절대 따먹지 말라‘ 그러시고...
불행하게도 우리 삶 가운데 죄가 들어오면서,
이제 죄를 제거해야 되는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어찌 됐든지 간에, 이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는 것, 방점을 찍는 것은 심판입니다.
이어지는 이제 여덟 번째 환상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여덟 번째 환상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심판 3부작의 가장 마지막>으로,
모든 민족 가운데, 열국 가운데 온 땅에 행해지는 심판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역시 동시에, 우리 삶 가운데 행해지는 심판이기도 해요.
각 사람의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심판이에요.
그래서 이 본문 이야기를, 각 사람의 개인에게는 어떻게 적용되느냐 하면,
더 이상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지 않는.. 진짜 마지막 심판이 되는 거에요.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심판은, 우리를 제거하시는 심판이 아니에요.
우리 삶 가운데 죄를 떼어내기 위한, 그리고 우리를 다시 건지기 위한 심판이라면,
이 마지막 8th 심판은 좀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것은 결국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잘림 cutting 을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안에 있는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심판을 통해서
내 안에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 그 문제가 남아있으면
결국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냥 나 전체가 주님 앞에서 제거함을 당하게 되는...그 마지막 심판에 이르게 된다는 거예요.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온 지구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기회를 주세요. 계속 기회를 주시고,
주 앞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개인에게도, 민족에게도 계속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데,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마지막 심판이 임하는 거예요.
어쩔 수가 없어요.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이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계속 기회를 주시고 기다려주시지만...
완성은 해야 되는데, 계속 불순물들이 붙잡고 있단 말이에요.
그럼 완성에 이를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들을 제거하시는 일을.. 마지막에 하세요.
물론 하나님은 그 일을 끝까지 미루세요. 끝까지 미루시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참고 기다려주세요.
그러나 영원히 기다리시는 건 아니에요. 결국 하나님께서 그것을 제거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에 이르게 하십니다.
◑여덟 번째 환상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25분30초~
8th 환상의 내용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단순한데,
구리산 사이에서 말들과 내 병거가 등장합니다.
4 병거가 등장하고, 말은 몇 마리인지 모르겠어요. 말은 여러 마리가 등장하는 것 같아요.
'이 네 병거와 말들이 등장해서, 온 세상에 두루다니면서
북쪽과 남쪽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행한다' 하는 것이 8th 환상의 내용입니다.
자 근데 여기 보면 이제 말들의 색깔이 있고,
또 '북쪽, 남쪽'이라는 상징적인 표현들이 있고
또 '구리산'이라는 상징적인 내용들이 있는데,
그런 거 몇 가지만 이해를 하면, 이 심판의 내용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주제는 아주 단순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심판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행하신다는 내용입니다.
▲네 병거를 끄는 말들이 있는데 색깔이 각각 지정돼 있죠.
그래서 말들의 색깔을 보면,
붉은 말들이 끄는 병거가 있고,
검은 말들이 끄는 병거가 있고,
흰 말들이 끄는 병거가 있고,
네 번째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끄는 그런 병거가 있습니다.
자 여기서 '어룽지다' 라는 단어의 원어의 뜻은 ’반점이 있다, 색깔이 섞여 있다‘ 뜻입니다.
그래서 어룽지다 라는 것은 ’알록달록 섞여 있다‘는 말이에요.
스가랴에서에서는 각 색깔의 의미가 뭔지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거의 똑같은 내용이 계시록에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7th 환상에서 살펴볼 때, 스가랴서 내용과 계시록에서 계시록 18장이 서로 오버랩되었듯이,
본문 8th 환상도, 계시록 6장에 거의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오버랩 됩니다.
그래서 계시록 말씀을 보면 '아, 유대인들이 이런 색깔을 볼 때는 뭐라고 생각하는구나'
하는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각각의 문화권에 따라서, 어떤 동서남북 방향이라든지,
아니면 색깔이라든지 하는 것이 갖는 의미가 있고, 상징이 있죠.
계시록 6장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붉은 말’은 계시록에서 피와 전쟁을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계6:4
‘흰 말’은 승리를 상징합니다. 또는 미혹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주1)
‘검은 말’은 기근, 절망, 죽음을 상징합니다. 계시록 6:5~6
그리고 ‘어룽진 말’에 대한 것은 계시록에 나오지 않고, ‘청황색 말’로 나오죠.
(그래서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청황색도 푸르고 붉은 색이 얼룩지게 섞여 있으니까요)
이 각각의 색깔의 말들은, 계시록 6장에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을 행하는 말들’로 묘사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말과 병거에 대해서 스가랴가 묻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까, 6:4
천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오늘 본문 5절, 6절, 7절입니다.
슥6: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6 검은 말은 북쪽 땅으로 나가고, 흰 말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쪽 땅으로 나가고,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이것은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5
바람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호흡’을 상징한다고 했죠.
그래서 말이나 바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행하는 존재라는 거예요.
검은 말과 흰 말은 북쪽으로 가고, 또 어룽진 말은 남쪽으로 갑니다.
그리고 건장한 말은 온 땅을 두루 다니죠.
‘건장하다’라는 것은 이 히브리 원어를 보면 강력하다 이런 뜻이에요.
강력한 하나님의 어떤 행하시는 일들이, 온 땅을 두루 다니고 있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봐야 될 것이, ‘남쪽 북쪽’ 하는 방향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국민들은 ‘북쪽’ 그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뭐예요? 그렇죠. 북한이죠.
비슷하게 이 유대나라도, 북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뭐냐면 원수들입니다.
이스라엘을 쳐서 무너뜨렸던 모든 원수들이 다 북쪽에서 왔어요.
바벨론, 앗수르, 페르시아가 전부 북쪽에서 왔어요.
물론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위치를 보면, 그 나라들이 동쪽으로 되어 있지만,
당시 사람들이 다니던 길, 그 침입 경로가,
동쪽으로 이렇게 쳐들어올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여기는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사막이나 바다가 있죠.
그래서 이스라엘을 치러 올 때는, 반원으로 이렇게 돌아서 내려옵니다.
그래서 항상 북쪽에서 왔어요.
그래서 요엘서에 보면 ‘북쪽에서 오는 군대다’
그래서 아예 이스라엘에게 임하는 그런 환란과 고난을 ‘북쪽에서 오는 군대’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할 정도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북쪽 그러면,
원수들이 쳐들어오는 방향! 그것이 이제 북쪽의 의미입니다.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자 그런데 그 북쪽으로는 뭐가 간다는 거예요?
검은 말이 향하고, 흰 말이 뒤따른다는 거예요.
검은 말은 뭐예요? 죽음과 기근과 완전한 심판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흰 말은 승리를 얘기하죠.
그래서 이 말은 뭐냐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그들 원수들에 대해서, 완전한 심판을 행하시고,
그래서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신다 하는 뜻입니다.
완전한 심판과 완전한 승리를 행하시겠다는 거예요.
△반면 남쪽은 무슨 방향이냐면 애굽 방향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남쪽은 어느 방향이에요? 이집트 방향이에요.
그런데 애굽은 좀 애매한 나라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애굽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또 어떨 때는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품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애굽이 쳐들어와서... 그러나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킨 적은 없죠.
티격태격 전쟁은 좀 하지만, 그래도 또 어떨 때 보면, 이스라엘을 보호해주고요.
또 품어주고... 이런 일들을 합니다.
선지서에 나온 예언들을 한 번 찬찬히 읽어보세요.
이사야서라든지 예레미야서라든지 후반부에 보면, 각 나라들에 대한 예언들이 쭉쭉 나오죠.
그 예언서에 예언된 그 내용들을 좀 깊게 들어가 보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바벨론에 대해서는요. 한 번도 하나님께서 여지를 두신 적이 없어요.
바벨론에 대한 예언은 여지를 두신 적이 없어요. 항상 철저한 심판을 말씀하세요.
그런데 애굽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면요. 여지가 많아요.
그러니까 어디는 굉장히 ‘애굽의 심판’에 대한 얘기를 하시는데,
또 어디는 보면 ‘하나님께서 굉장히 은혜로 애굽을 품겠다’는 얘기들을 또 하세요.
그러니까 특별히 사19장 같은 데 보면,
‘유대와 더불어 애굽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선포하고...’ 이런 말씀도 있고,
그래서 애굽은 굉장히 믹스되어 있어요.
심판 얘기도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품으시고, 은혜를 주시겠다는 내용도 나와 있죠.
근데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예언하실 때는,
그것이 진짜 그 땅 바벨론인지, 상징적인 의미인지, 물론 두 개가 다 섞여 있겠지만,
하여간 여지를 두신 적이 정말 한 번도 없어요.
좋은 내용의 예언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민족들은 조금씩 좋은 내용들이 나오거든요.
가끔 애굽도 그렇고... 그런데 이 바벨론은 정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어요.
그래서 ‘북쪽에는 완전한 심판을 행하신다’는 것이, 예언서의 통일된 예언이고,
남쪽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어룽진 말’이라는 상징을 통해서,
‘뭔가 믹스된 일을 행하시겠다’고 하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심판과 은혜의 믹스
그런데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장한 말들이 나오죠.
그리고 강력한 말들은 온 땅을 두루다닙니다.
▲그리고 이 온 땅을 두루다니는 강력한 말들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8절에 하나님이 뭐라고 그러시냐면 이렇게 말씀하세요.
슥6:8 ‘그가 내게 외쳐 말하여 이르되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
무슨 말이에요? 심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쉼을 얻으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참 충격적인 표현이죠.
‘심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쉼을 얻으셨다’는 거예요.
이야기는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세우시는 분이신데
이 공의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쉬지 못하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속성이에요.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죠.
그런데 이 ‘공의’라는 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가 그대로 세워지는 것이 공의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그 질서대로 세워지지 않는 것이 불의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불의가 있는 것, 공의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쉬시지 못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심판을 통해서, 악이 완전히 제거되었을 때,
비로소 쉼을 누리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분, 언제 안식하셨다고 표현이 나옵니까?
7일째 창조가 다 끝났을 때, 죄가 들어오기 전에
그래서 모든 하나님의 질서가 완전하게 세워져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안식을 누리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죄가 들어오고, 이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졌을 때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안식하시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쉬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끊임없이 일하신다는 거예요. 무슨 일을 하십니까? 공의를 세우는 일을 하신다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 가운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안에 원하시는 것은 뭐냐 하면, 안식하시는 거예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기뻐하시고,
우리 안에서 쉼을 누리시고,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쉼을 누리시는
그 내용이 아가서의 내용이죠.
그래서 우리 안에서 안식하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원함이신데,
우리 안에 죄가 제거되지 않으시면.. 안식하시지 못한다는 거예요. 쉬시지 못한다는 거예요.
끊임없이 우리 삶 가운데 죄를 제거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긴장하시고 두려워하셔야 됩니다.
죄가 제거되지 않으면요. 하나님의 역사는 끝나지 않아요. 포기하지 않으세요.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죄가 제거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세요.
여기서 우리가 ‘심판’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이 질문 내용 두 가지를 살펴보고, 오늘 함께 기도하려고 합니다.
길어서 후략
..................................
주1) 계6:2, 또 본문 슥6:3의 ‘흰 말’을
-승리로 해석하기도 하고, *계19:11에 의거
-미혹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미혹’이 맞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1) 네 말들의 내용이 모두 다 ‘파괴적’이고 ‘심판’을 의미합니다.
흰 말을.. 그리스도와 성도의 승리로 보고,
나머지 세 말을.. 심판과 파괴로 해석하는 것은, 문맥이 매끄럽지 못하죠.
그래서 흰 말도.. 뭔가 파괴적인 심판의 것으로 해석할 때,
사탄이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듯이, ‘미혹’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미혹’으로 전쟁이 시작됩니다.
2) 예수님이 마24장에서 종말에 대해 예언하실 때,
종말의 징조로서 ‘미혹’을 제일 먼저 드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24:4
계6장에 보면, 네 마리의 말이 나오는데, 첫 번째가 흰 말입니다.
마24장이나, 계6장이나.. 서술 순서 상 ‘미혹’이 제일 먼저 나온다는 뜻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