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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5장 의를 위한 박해와 천국에 머무는 복

LNCK 2026. 5. 3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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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3-13 의를 위한 박해와 천국에 머무는 복

 

◈의를 위한 박해와 천국에 머무는 복       마5:10                 2025.09.23.

 

마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8복 중 마지막 여덟 번째 복입니다.

‘의를 위해 박해를 받으면 천국을 자기 것으로 받는 복’입니다.

 

그러면 첫 번째 복과의 관계가 궁금해지지요.

첫 번째 복이나, 마지막 8번째 복이, 똑같이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고 하셨으니까요.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마음이 가난한’과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음’은 분명 다른 조건입니다.

그런데 받는 상이 똑같아요. 천국을 갖게 된다는 거죠.

이 두 말씀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첫 번째, 마음이 가난하여 천국 누리기는,

몸이 살아있는 동안, 마음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들어가야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8번째, 의를 위해 박해를 받아서 천국 가지기는,

첫 번째를 전제한 말씀입니다.

 

, 첫 번째 복의 경우는, 너무나 쉽게 가진 천국을 다시 상실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에,

하신 말씀입니다.

8번째 복은, 그러므로 이미 가진 천국을 꿋꿋이 지켜냄을 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천국을 다시 잃지 않을까요? 꿋꿋이 지켜낼 수 있을까요?

의를 위해 박해를 뚫고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먼저 의는..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너는 내 마음에 든다’ 라고 말씀하시는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이 의는 쉽게 말해, 탕자가 돌아오는 의입니다.

내 마음은 탕자처럼 이 땅을 어슬렁거리며,

돼지 먹이에 비유될 수 있는 세상적인 가치들이나 기웃거리며 다녔어요.

 

그런데 내 마음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 따라 하늘로 올라가면,

아버지는 기쁨으로 반기시지요. 이때 너 정말 잘 왔다. 너는 내 마음에 너무 든다라는

대대적인 아버지의 환영사가 바로 의를 선언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내 마음이 이 땅을 떠나 천국에 올라가 머무르는 것이,

하나님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하시는 의입니다.

우리는 이런 의의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천국 소유를 지속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반드시 박해가 주어지게 된다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박해란 뭐예요? 압박을 가함으로써 피해와 손해를 발생시키는 일입니다.

즉 가치있고 소중한 것에 상실을 유발하는 것이 바로 박해예요.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는, 초대교회와 같이 물리적인 박해를 받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천국을 가짐과 동시에,

박해를 통해서 그 천국 상실의 위험에 노출된다는 겁니다.

내가 얻었던 천국을 놓치게 만드는 것이.. 박해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주어지는 천국을,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얻게 된 것을

박해가 빼앗아갑니다.

 

즉, 내 마음이 예수님을 따랐기에, 천국을 가지고, 아버지를 가졌잖아요.

그런데 박해는 이렇게 천국과 아버지를 우리에게서 다시 뺏어갑니다.

 

그러면 이러한 박해는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까요?

그렇지요. 내 마음을 천국에서 땅으로 끌어내리려고 압박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보좌 우편에 예수님 안에, 내 마음이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튕겨 나오게... 박해를 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잃으면서, 동시에 아버지와 천국도 송두리째 잃어버리죠.

어찌하든지 내 마음이 천국 보좌 우편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막 태어난 아기가 있어요. 아기가 너무 예뻐서, 그만 내 마음을 다 빼앗겼습니다.

그러면 마음은 보좌우편 예수님 안에 머무는 상태가 아니잖아요.

아가가 내 마음을, 천국 아버지 곁에서 땅으로 끌어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하나님을 잃게 만듭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그 예쁜 아가가 나에게 박해를 가한 것이 됩니다.

마음을 땅으로 끌어 내려 내게서 천국을 빼앗았으니까요.

 

이렇게 마음을 천국에서 땅으로 끌어내려

천국과 아버지를 잃게 한다는 의미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원수가 제 집안 식구니라’ 라고 하신 것이지요.

 

그만큼 내 마음이 천국에 머무르는 (상태인) 의를 그만큼 지켜내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삶의 현장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천국에서 땅으로 끌어내리려는 박해로 작용합니다.

 

세상 모든 삶의 현장은, 이처럼 온통 다 내 마음을 세상으로 끌어내리려는 박해로

가득 차 있어요.

 

예수님 따라 올라간 내 마음이 천국에 머무는 상태가

하나님이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는 이처럼 몸이 살아있는 한 끊임 없는 위험에 노출됩니다.

내 마음이 천국의 머무름인 의에 반하여,

내 마음을 땅으로 끌어내리려는 모든 작용을

예수님은 통틀어 박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죽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믿는 한, 내 마음은 천국으로 올라가 머물러야 하고

그러는 한 다시금 마음을 땅으로 끌어내려

천국과 하나님을 앗아가려는 박해를 피하는 길은 없습니다.

오직 이기는 길만이 우리의 숙명입니다.

 

이런 승리의 길이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이지요.

왜냐하면 갈라디아서 6:14절의 말씀처럼, 십자가는 세상에 대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6:14

 

세상에 대한 죽음이라서, 땅에서 십자가를 보면

십자가는 내 마음이 세상을 탈출하는 출구가 됩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세상에 대한 죽음이기 때문에

천국에 올라간 상태에서 십자가를 보면,

십자가는 내 마음이 세상으로 다시 못 내려가게 하는 장벽이 됩니다.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십자가를 보면서 땅에 대해 죽어서

내 마음이 천국으로 올라가 천국을 가집니다.

 

또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십자가를 보면서

땅에 대해 죽어서 마음이 천국에 머물러 천국 소유를 유지합니다.

 

사도 바울 말씀이 생각납니다. 갈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0250925-14 짭짤한 천국 맛의 소금 선민

 

◈짭짤한 천국 맛의 소금 선민          마5:13                2025.09.25.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짭짤한 천국 맛의 소금선민!’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소금이 맛을 잃은 경우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No

저도 없어요. 소금은 맛을 잃을 수 없지요.

짠 맛이 없다면 그건 본래 처음부터 소금이 아니었던 거지요.

 

하지만 여기서 예수님은 ‘돌소금(암염)’을 가리키신 겁니다.

즉, 소금을 바닷가 염전이 아니라, 산에서 캐내는 경우

정제 기술이 발달하지 않던 시대에는, 소금과 돌이 붙은 채로 사용하기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를 들어 양떼들 사이에, 소금이 붙은 돌덩어리들을 여기저기 던져 놓으면,

양들이 소금기를 다 핥아 먹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돌만 남겠지요.

이런 돌들을 가리켜 예수님은 ‘맛을 잃은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볼 대목은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소금이 되라’고 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소금으로 불릴 수 있는, 어떤 조건을 충족하고 있음을 전제하십니다.

즉 성도가 소금인 조건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을 지금 믿고 있는 상태인 거예요.

 

예수님을 믿으며 따르는 자는, 이제부터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소금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소금인 상태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증거인 셈이지요.

 

그러면 도대체 소금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믿는 자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은, 팔복에 연이어서 나와요.

 

산상수훈에 앞서서, 예수님은 공생애 포문을 여시면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고,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그렇게 가까이 온 천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누리게 되는 실제 상황을,

여덟 가지 측면으로 묘사하신 내용이 바로 팔복입니다.

 

그러므로 소금은, 마음이 실제로 천국을 누릴 때 나타나는 유복한 티입니다. ‘부티’라고도 하죠.

예수님 믿는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승천해서 천국 보좌에 이르는

예수님의 연세 과정을 따라가며, 천국 1일 생활권의 삶을 삽니다. (천국 가기가 쉬워졌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가장 큰 차이는, 이처럼 마음이 머무는 처소예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뱀처럼 땅에 붙어 머물러 있고,

우리 성도들의 마음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땅을 떠나 천국에 머무릅니다.

 

천국에 내 마음이 머물면서 뭘 하지요?

하나님 아버지를 지속적으로 마주하며 교제합니다.

 

그럼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천국에 올라간 마음이 대면하여 교제하는 하나님의 기운이,

내 마음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땅으로 내려와 땅에서 나타나는 내 일거수 일투족에 반영된다는 것입니다.

 

▲위협적인 풍랑 속에서 예수님은 깊은 잠에 빠지시고, 제자들은 공포에 질려 광란합니다.

같은 환경에서 이처럼 다른 태도와 행동이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예수님의 마음은, 천국 보좌 하나님 곁에 있었지요.

그럼으로써 받아들이게 되는 천국 기운이, 나의 태도와 행동에 나타나고 있었던 겁니다.

 

반면에 제자들의 마음은 노도 광풍 속에 있음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광풍의 기운이, 그들의 말과 행동에 반영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금은 이처럼 마음이 천국에 머무르는 경우,

그 사람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나타나는 천국 기운이고, 천국 맛이며, 천국 티인 것입니다.

성도가 천국을 실시간으로 누리는 유복한 티가 바로 소금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금기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짠맛일까요?

‘세상의 소금’이라니까, 우리는 흔히들

이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가리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니지요. 예수님은 분명히 소금의 맛을 가리키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위한 소금인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입맛을 위해서입니다.

 

지구에 사는 인간 세상의 다양한 삶의 현장은

마치 창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 놓인 한 그릇의 설렁탕과도 같아요.

 

음식을 간간하게 먹는 사람이, 소금 안 넣은 설렁탕을 먹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이 세상을 바라보실 때,

그 일거수 일투족에서 천국의 짭짤한 맛을 내는 사람들이 없는 삶의 현장은,

소금 안 넣은 설렁탕이 된다는 뜻입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온 세상 현장마다, 마음이 뱀처럼 땅을 기어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해요.

이렇게 소금 넣지 않은 설렁탕 같은 세상을, 하나님이 노아 홍수때처럼

쏟아버리지 않으시는 이유가 뭘까요? 성도인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은 날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연쇄 과정 속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올라갑니다.

그래서 직면하는 하늘 아버지의 기운을 담아내고,

그럼으로써 그 하늘 기운이 삶의 현장에서, 우리 몸의 말과 행동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정, 직장, 단체, 사회는 하나님의 강간한 입맛에 맞는

설렁탕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 천국의 짭짤한 맛을 잃으면

우리는 그냥 돌조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위한 우리의 책임이 무엇이지요? 세상의 변화와 개선을 추구하는 노력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내가 속한 삶의 현장이

하나님 입맛에 간이 맞는 곳이 되게 하라고, 소금으로서 파견된 자들입니다.

 

가정과 직장과 단체와 시장 등 모든 현장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에 천국의 간간함이 배어나는 소금이면 그뿐입니다.

 

세상을 굳히려 말고 그냥 천국의 짭짤한 맛을 말과 행동에서 드러내세요.

그러면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신 우리 하늘아버지는 소금인 내가 간을 맞춰드리고 있는 동안

내가 속한 모든 현장을 쏟아버리는 대신에, 책임지시고 다스리시며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