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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3장 일천 번제를 드려서 지혜를 얻은 솔로몬

LNCK 2026. 5. 31. 13:13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지혜>

◈일천 번제를 드려서 지혜를 얻은 솔로몬          왕상3:1~5, 골2:3         여러 설교 정리

 

◑서론 / 솔로몬이 애굽 공주와 결혼하다      3:1절

 

3:1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우리는 흔히 솔로몬의 애굽 공주와 결혼을 너무 나쁘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결혼할 당시는, 그게 나쁜게 아니라, 정상이었습니다. 

(나중에 후에 잘못됐을 수는 있습니다.)

 

본문을 찬찬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열왕기상 저자는, 솔로몬이 애굽 공주와 결혼한 것을, '그게 나쁘고, 잘못했다'는 논조로

기록해 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논조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뭐가 자랑인가 하면

'우리 이스라엘 왕이 애굽 왕가와 결혼을 맺을 만큼, 크고 강성한 나라가 되었다'는 거죠.

 

왕상3:1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 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이처럼 솔로몬은 내부의 적들을 제거한 뒤(왕상2장)   *아도니야, 요압, 시므이, 아비아달 

외국과의 동맹을 통해 왕국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왕국 강화의 일환으로서 솔로몬은 정략(政略) 결혼을 통해

애굽과 동맹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바로 왕은 애굽 21대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서

35년간 애굽을 통치한 프수센네스 왕으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이어지는 22대 왕조의 초대 왕 쉐숑크는

르호보암 5년에 예루살렘을 침략했던(14:25) 시삭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왕조가 바뀌니 솔로몬과 원수가 됨)

 

그러므로 적대적 관계인 22대 왕조 이전에 상호 동맹이 있었으리라고 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죠. 당시 애굽이 왜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으려 했는지 분명치 않으나,

당시 다윗과 솔로몬 치하의 이스라엘이 매우 강력했던 사실이 그 주요 이유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대국의 왕인 애굽왕들이

다른 국가에게 딸을 주는 일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그 딸을 취하고'

솔로몬이 애굽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 자체가 율법에 위배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즉 일찍이 요셉과 모세에게서도 그러한 전례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41:45; 12:1),

율법에 명시된 바 가나안족과 혼인금지 조항에 접촉되지도 않기 때문이죠(34:16,  7:3).

*바로 공주는 가나안 족 아님

 

오히려 율법은 전쟁시에 취한 이방 여인과 결혼도 허용했습니다( 21:13).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솔로몬의 결혼을 타락행위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부자연스럽죠.

 

이는 후일에 솔로몬에게 우상 숭배의 악영향을 끼친 왕비들 중(11:1-7)

바로의 딸이 제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보다 분명해집니다.

 

고로 본절은 다만 솔로몬의 위세가 바로의 딸을 취할수 있었으리만치 강력했다는 점을

은근히 본문은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윗 성에 두고'

바로의 딸이 자신을 위한 궁이 지어지기까지 임시적으로 거주한 '다윗 성'(이르 다윗)

일찍이 요새화된 고대 예루살렘성을 가리킵니다.

 

이는 여호와의 궤가 위치한 영역으로 보이는 '다윗 궁'(베트 다윗)과는 구별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대하 8:11의 언급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역대하 8:11에 따르면, 바로의 딸은 다윗 궁에 거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여호와의 법궤가 안치된 장막이 다윗 궁 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고로 '다윗 궁'은 특별히 거룩한 곳으로 선포되었고,

따라서 솔로몬은 이방인 바로의 딸이 그것에 거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바로의 딸은 다윗 성으로 불리우던 예루살렘성에 거주하기는 했지만,

'다윗 궁' 안에 거주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궁전 공사가 필역된 후,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위해 지은 궁으로 그녀를 인도했던 것입니다(9:24).

 

이 결혼이 정략결혼인 이유는, 서로의 필요에 따라 혼인을 수단으로 삼은 것입니다.

애굽으로서는 메소포타미아로 가는 길목에서 신흥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중요성을 인지했기 때문에, 바로가 이런 결정을 한 것이었습니다.

 

애굽은 앗수르와의 사이에 이스라엘을 우호 세력으로 돌려 완충지대로 삼는 이점이 있었고,

이스라엘 또한 남방의 오랜 강국 애굽과 가장 강력한 결혼 동맹을 맺음으로써 얻는 실익이

상당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게셀입니다.

 

게셀은 쉐펠라(낮은 구릉, 중산간 지대, 좋은 땅)의 전략적 요충지로,

여차하면 예루살렘으로 바로 진격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적에게 대문을 열어놓은 것과 진배 없는 이곳을 애굽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를 애굽의 공주가 결혼에 대한 예물로 가져온 것입니다(왕상 9:16).

 

그뿐만 아니라 가장 최고 등급의 동맹 관계에 있었다보니, 두 나라간 무역이 활성화되고,

여러 산물을 들여옴으로써 이스라엘의 문명화에 크게 이바지했을 것입니다.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 국력이 크게 강화되었고,

가나안 지역을 다윗이 거의 통일했기 때문에,

애굽과 그런 정략 결혼도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애굽은 보통 정략 결혼이 없는 나라인데도, 이스라엘-솔로몬과 정략결혼을 한 것입니다.

 

율법은 가나안 여인들과의 결혼을 금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버릴 것에 대한 경계 때문입니다.

혈통상 이방인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되면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룻이 그랬고, 라합이 그랬습니다.

애굽 공주가 솔로몬과의 결혼으로 이스라엘로 시집 오면서,

애굽의 무수한 신들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애굽 공주는... 여호와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혹자는, 이 혼인을 기점으로 솔로몬이 주변 나라들과 결혼 동맹을 맺은 이후로

예루살렘에 우상이 창궐하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될 때,

애굽 공주와의 결혼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일천 번제를 드려서 지혜를 얻은 솔로몬

 

왕상3:2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혹자는 본절의 산당(山堂) 제사를 백성들의 종교적 결함으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원문을 순서대로 번역하면 '다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전이 아직 건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란 의미이죠.

 

그러므로 본절의 의미는 아직 유일한 제사 성소인 성전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불가피하게 산당 제사를 했던 당시 형편을 알리는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죠.

이런 점에서 여기 '산당'(바마)

우상 숭배 장소인 가나안 족속들의 산당과는 구별되는 곳으로,

단순히 제사와 기도의 장소일뿐이었습니다.

 

드보(De Vaux)는 당시 산당의 형태는 흙무덤 같은 작은 언덕이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하나의 '제단'으로 구성되었지만,

때로는 제단 곁에 여러 개의 부속 시설을 갖추는 등 꽤 정교하게 구성된 산당도 있었습니다.

 

한편, 이처럼 솔로몬 시대에 산당 제사가 보편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엘리 시대에 블레셋 족속들에게 법궤를 탈취당한 이후(삼상 4:11),

그 법궤가 실로 놉(삼상 21:1-9), 기브온(대상 16:37-40), 예루살렘(삼하 6:16) 등으로 옮겨

다닌 결과 백성들은 제사의 구심 장소를 상실하고

각자 나름대로 산당을 만들어 제사드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왕상3: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율법의 첫째가는 계명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일이죠(신 6:5. 30:16,  22:37,  10:27).

솔로몬의 번영과 업적은 이처럼 여호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율법에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2:3).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다윗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도록 특별히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이죠(8:16).

그리하여 다윗은 그 자신의 시대를 넘어 이스라엘 역사 내내 그의 가치를 인정받아,

향후 이스라엘 모든 왕들이 따라야 할 의(義)의 척도로 등장합니다.

 

그런고로 백성들은 하나님을 다윗의 하나님으로 알았고,

이후 이스라엘 왕들은 축복을 받으려면 다윗의 행함을 본받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9:5, 왕하 20:5, 대하 21:12).

결국 본절은 솔로몬 치세의 번영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대부분이 주석가들이 본질을 부정적 의미로 해석합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와께로부터

가나안 족속의 '산당'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았고(민 33:52),

 

이후 열왕기에서 '산당'은 우상 숭배와 밀접히 관련된 부정적 의미로 나타남을 기억할 때

그것은 타당합니다만, 

 

게다가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기를 회상하며 기록했을 열왕기 사가는

여기 본절에서 솔로몬 왕국의 번영 이유와 타락 이유를 나란히 기록했음직도 합니다.

 

그러나 당시 여호와의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고(2),

다음 장면에서 산당은 솔로몬이 여호와께 지혜를 받는 긍정적 장소로 나타나는 점을 고려할

(4-15), 아직 지나치게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다만 위험한 가능성을 가질 뿐이다. 그 위험의 가능성은 다음 두 가지이다.

즉 여호와의 유일 중앙 성소 명령( 12:5-14,18,21,26)을 소홀히 할 위험성과

산당을 중심으로 드려지는( 12:2,3) 가나안 족속의 우상 숭배 행위를 본받을 위험성이죠.

 

그런고로 여호와의 성전이 완공된 이후, 이러한 산당은 전혀 불필요했고

또한 결코 합법적이 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철저한 파괴의 대상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통치자들은 너무나 오래도록 산당 제사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선왕들 조차도 산당을 훼파하는 데 소홀히 했으며,

이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당으로 말미암아 우상 숭배 행위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사전 지식 : 성막 법궤 분리 보관

(나중에 솔로몬 성전이 완공된 뒤에, 다시 예전처럼 합쳐집니다.)

 

법궤와 성막이 분리된 것은홉니와 비느하스가

법궤를 아벡 전투에 가지고 나가서블레셋에 빼앗긴 때부터 였습니다.

 

이후 성막은 실로 ➔ 놉 ➔ 기브온으로 이동했고,  *기브온 산당 지역

언약궤는 벳세메스   기럇여아림 ➔ 다윗 성 ➔ 예루살렘 성전으로 통합, 안치되되었죠.

 

 

이때 언약궤 운반 시도 중 웃사의 죽음(웃사 사건)이 발생하여,

법궤는 인근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간 머물렀던 적도 있었죠.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피할 때, 놉의 제사장을 찾아가서,

성소에서 물려낸 빵을 제공받아 먹었던 것을 볼 때,

놉에 제사장들과, 성막이 있은 것을 알 수 있죠.  *이때 법궤는 기럇여아림에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된 후(7년 6개월간 통치),

법궤는 기럇여아림(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후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뒤,

법궤를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다윗 성)으로 직접 모셔왔습니다.

 

이때 '다윗 성'에 언약궤가 들어왔을 때, 

다윗이 몸이 보이도록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춘 일이 있었고, 

이때 언약궤를 다윗 성에 보존하면서 '다윗의 장막'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하루 종일 계속 여호와를 찬양하는 장막

 

◑솔로몬의 산당에서 1천 번제.. 잘못 된 게 아닌가요?

  라고 성경을 해석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왜 법궤가 있는 다윗 성을 놔두고,

산당이 있는 기브온에 가서 1천 번제를 드렸나요? 그건 솔로몬의 잘못 아닌가요?'

라고 부정적으로 질문합니다만, 하등 잘못될 게 없습니다. 

(만약 그게 잘못이었다면,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지혜의 축복을 주실리 없지요)

 

산당은.. 그 이름만 놓고 보면, 다분히 이방제사적 요소가 가미된 곳인데,

(나중에 이스라엘이 산당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지요. 그거는 먼 훗날 나중 일)

그래서 솔로몬이 산당에서 1천 번제를 드린 것은.. 그 자체가 잘못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답변 : 그건 솔로몬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직 성전이 완공되기 전입니다.

성막은 기브온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번제를 드리려면, 기브온 성막으로 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제사하는 것은, 성막의 번제단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 제단 위에, 제물인 짐승을 태워버리면서, 레위기에 명한 순서와 절차대로 하는 것이죠.

 

당시 성막은, 기브온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번제단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중에서 법궤만 예루살렘으로 가져와 보관했다고 위에서 살펴보았죠.)

 

기브온 산당은, 좀 넓은 곳이었고,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3:4

그 산당 가운데 '성막'이 있었으리라 봅니다. 성막은 크지 않죠. 45m x 23m

 

법궤를 예루살렘에 따로 보관한 것은, 아마 ‘보안, 방어’ 때문이었으리라 봅니다.

법궤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오늘날로 치면 ‘수도 군단 사령부’가 있는

예루살렘에, 법궤만 가져와서 보관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솔로몬이 1천 번제를 드리려고 했다면,

반드시 기브온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거기에 성막과 번제단이 있었으니까요.

 

예루살렘에는 법궤만 ‘다윗의 장막’에 보관되어 있었지,

거기엔 성막도 없었고, 번제단은 더욱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1천 번제를 드린 것은

거기 있는 성막의 번제단에서 드린 것입니다. 하등 잘못 된 게 없죠.


아마 기브온의 성막의 위치가, 조금 고지대 (산 위)에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산당으로 표현했는데이 때는 성막과 동일한 곳으로 봅니다.  *산당 속에 성막 위치

 

솔로몬이 성막을 제쳐 놓고, 다른 어디 산당에 가서

거기 번제단에서 1천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 ‘1천 번제’도,

1천마리의 양을 번제물로 바쳤다.. 라는 뜻입니다.

 

일단 1마리의 양을 번제로 드리는 데도, 2~3시간 걸린다고 합니다.

구약성경의 율법에 따라 양 한 마리를 번제(모두 불태워 드리는 제사)로 드릴 경우,

도축 및 가죽 벗기기, 발라 내기, 제단에서 완전히 태워지기까지

대략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소요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번제단은 한 곳인데,

또 예루살렘에서 기브온까지 거리도 편도 10Km, 왕복 20Km

거기서 1마리 번제에 소요시간 2~3시간!

이런 것을 감안하면, 솔로몬이 1천일(근 3년)을 매일 20Km씩 다니면서,

1천 번제를 드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한 번에 ‘1천 번제’를 드린 것인데, 학자들은 이렇게 드리는데도

약 1주일에서 ~10일은 족히 걸렸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 기간동안, 연속으로 1천마리의 번제를 드렸다는 것이지요.

대하1:6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적용              

▲1. '지혜' 한 가지를 구했더니나머지는 덤으로 주십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3장의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너에게 무엇을 줄까?'하고 물으셨을 때   :5

'지혜를 주시옵소서!'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왕상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대하1:10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

    왕상3:9에는 '듣는 마음', 대하1:10에는 '지혜와 지식'으로 나옵니다. 

    '듣는 마음'이란, 하나님의 뜻, 말씀,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그게 곧 '지혜와 지식'이라는 뜻이죠.

     

    하나님께서는 그 솔로몬의 대답이 마음에 들어서, 그 외에도 

    구하지 않는 것까지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3: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와 결점이 많은 우리들이지만

    베드로와 다윗과 야곱과 솔로몬이 가졌던 한 가지를 가지고, 단 한 가지를 보시고,

    모든 것을 덮으시고 축복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실수가 많은 사람이지만, 자기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르는

    그 패기, 그 용기, 그 실천, 그 앞장서는 열정... 그 한 가지를 보시고, 

    베드로를 수제자로 삼아주셨습니다. 

     

    다윗은.. 베드로보다 실수와 잘못이 10배로 더 많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분연히 물맷돌을 들고 일어서는'

    다윗의 그 용기있는 믿음, 그 한 가지를 보시고... 

    다윗과 그의 집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주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원하는 그의 충정어린 마음, 

    그래서 지혜를 구하는 그 한 가지를 보시고.. 

    그가 구하지 않은 것들까지 덤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1: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도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 옛날 야곱과 다윗과 솔로몬과 베드로가 가지고 있었던 한 가지가 필요합니다.

    나는 그 한 가지가 있습니까? 있다면 그게 무엇입니까?

    그걸 보여주었던 적이 언제, 어디서 였습니까?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그 한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귀한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2. 지혜는.. 오늘날로 치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은.. 신약으로 치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골2:3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구해야 됩니다.

    그게 솔로몬처럼 '지혜'를 구하는 길입니다.

     

    또한 지혜를 구하는 것은, '말씀의 적용'을 잘 하는 것입니다. 

    좌우의 날선 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의 검을 잘 휘두르는 법을 아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혜를 올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목적이 나옵니다.

    솔로몬은 주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지혜(말씀)를 구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4:3에 따르면, 내 개인적인 욕심으로 지혜를 구한다면, 지혜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쓰려고 구하려 해야 지혜를 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종종 '말씀의 기근'을 사람들이 말하지 않습니까?  암8:11

    그러면 말씀(지혜)를 구하십시오.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입니다. 마7:7

     

    고린도전서 12:4-7을 통해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교회를 유익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합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고 공동체의 유익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혜를 받아야 하고, 그 지혜를 올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받은바 지혜를 사용하게 되면,

    그 지혜는 점점 소멸해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이 욕심에 어두워져서 받은바 지혜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지혜를 받은 사람들은 그 지혜를 하나님의 뜻대로 활용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자기의 뜻을 따라 사리사욕을 따라 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열왕기상 4:34을 보면,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

    이는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들이 보낸 자들이더라”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천하의 모든 나라가

    다 그의 지혜의 혜택을 누리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렇게 지혜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언자가 있다면,

    천하의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모여들 것입니다. 

     

    ※과거에 외국 사역자들을 만나면, 그들의 한결같은 요청은

    '한국 설교를 듣고 싶다. 한국 설교를 듣게 해 달라' 였습니다.

    요즘은 그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냉수한그릇 같은 설교 사이트를 열고, 마우스 우 클릭에서 '번역하기'를 누르면, 

    1초만에 영어로 번역해 줍니다. 요즘은 번역기술이 매우 발전해서, 

    거의 95%이상 완벽하게 번역되어 나옵니다.

    그리고 심지어 유튜브 한국 설교도, 거의 완벽하게 영어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합니다.

    전세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아주 쉬워 졌습니다.

     

    그 설교에 기름부으심이 있고, 내용만 있으면... 전 세계가 몰려들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음을 봅니다. 

     

    ▲3. 무엇보다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의 필요성, 그 가치를 느낀 솔로몬

     

    탈무드 같은 책을 읽어보면, 유대인들은 지혜를 아주 높이 숭상하며,

    그래서 랍비를 아주 귀하게 여긴다는 내용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겠죠.

    그러면 그게 뭐가 유익하기에, 그렇게 한 것일까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보통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을 합니다.

    유대인들이 지혜를 높이 숭상하고, 탈무드 같은 지혜의 책을 만들어서 공부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지혜가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려 지혜를 구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지혜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혜의 가치를 보는 눈을 가졌던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지혜의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귀하게 보는 눈을 가졌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지혜(말씀)'를 구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그 가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있으면 좋지만, 없으도 별 불편 없는 정도...' 그 정도로 지혜(예수님)를 여기고 있지 않나요?

     

    그러니 하나님은 '구하지 아니한 재물과 부귀와 영광까지도' 안 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구할 것을, 먼저 구하지 않으니까요!

     

    사업을 하는 분이나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목사나 선교사도)

    조직과 물질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늘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의 근본이신 여호와를 아는 것입니다. 잠1:7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것도 당장 필요하지만

    위로부터 임하는 지혜가 더 먼저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 가치를 알아야 됩니다. 그 가치를 모르니까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였을 때, 세상이 놀라게 됩니다.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이 왕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이방 나라들, 시바의 여왕도 솔로몬의 지혜를 보러 왔습니다.

    즉, 지혜를 가진 사람은..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처럼!

     

    다니엘도.. 하나님은 그에게 열 배의 지혜와 총명을 주셨습니다.

    단1: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을 깨달아 알더라'

    1: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면, 세상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세상이 우리 성도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