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딤전4장 당신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LNCK 2026. 6. 2. 11:00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사명>

[1516 주일설교] 당신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딤전 4:11-16) 2026.05.31

 

◈당신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딤전4:11-16                  2026.05.31.

본문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와 오늘날 우리에게 '인생 사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딤전4:11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사도바울이 디모데전서 4장 서두에서 ‘거짓된 가르침에 성도들이 속지 않도록, 
건강한 성경적인 교훈을 명하고 가르쳐야 된다’ 하고 권면했습니다. 
이것이 디모데의 사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사명이죠. 

그런데 이런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12절을 한번 보여주시겠어요? 
12절에 보니까, 한 가지 장애물이 있다는 거예요. 
디모데가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고,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유일한 장애물이 뭐였을까요? “그의 연소함”이었습니다. 

과연 디모데가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몇 살쯤이었을까요? 

이 편지(디모데전서)를 받았을 때 몇 살이에요? 33살. 
그래서 디모데가 30대 초반, 조금 나이가 많아도 30대 중반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1)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까 제가 2005년도에 벤쿠버 담임목사로 갔을 때, 
그때 제 나이가 딱 한국 나이로 33세 이었어요. 
이취임 예배를 잘 드리고 내려왔는데, 사람들이 ‘저렇게 어린 목사님이...’
하면서 뒤에서 수군거리는 거예요. 

그리고 심방 가서 심방 예배를 드리고 나면, 꼭 제게 묻는 거예요. 
‘근데 목사님, 나이는 몇이세요?’ 
제가 힘이 빠지는 거죠. 

저는 이제 사명지향적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 나이를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별로 나이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하도 ‘나이’ 얘기를 사람들이 하니까 
제가 나이에 대해서 제가 묵상을 하다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러다가 제가 이제 스스로 선포를 하게 됐죠. ‘33살이면 십자가를 질 나이다!’ 
즉 ‘내가 사명을 감당할 나이다!’  

<두려움 너머의 삶> 책에서, 앙리 에스틴이라는 프랑스의 인문학자가 한 얘긴데, 
‘젊은이는 아직 할 수 없고, 노인은 타이밍이 지나가서 이미 할 수 없다’

번역은 여러 가지로 가능해요. 
"젊은이는 아직 때를 얻지 못했고, 노인은 이미 때를 놓쳐버렸다"

‘젊은이는 아직 할 수 없고...’ 
젊은이가 세상 물정을 뭘 알겠냐는 거죠. 
그러니까 이해나 경험도가, 젊은이는 아직 떨어지잖아요. 

젊은이는 아직 할 수 없고, 노인은 타이밍이 지나가서 이미 할 수 없다면, 
그럼 도대체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다윗이 어려서 골리앗을 쓰러뜨리지 못했는가요? 
여러분 모세가 늙어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지 못했나요? 
나이는 상대적인 지표일 뿐입니다. 절대적인 기준점이 될 수가 없어요. 

우리가 세상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면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점 위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벤쿠버에 갔던 얘기를 했는데, 이번에 나이 계산을 하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2005년도에 제가 벤쿠버를 갔고, 2009년도에 한국에 돌아와서 청년 사역을 했습니다. 

온누리교회는 국내 캠퍼스 교회가 이제 한 40개 정도 되거든요. 
근데 그중에 이제 양재 캠퍼스를 담당할 때가 2015년이었으니까 
그때 제 나이가 43살이었더라고요. 

근데 이제 제가 양재 온누리교회를 담당하게 되고 나니까, 
권사님들이 ‘새로 오신 목사님이 나이가 어린데...’  자꾸 그러는 거예요. 

제가 속으로 ‘도대체 나이가 몇 살이 돼야 나이가 들었다고 얘기를 하실까?’ 
약간 좀 이렇게 제 마음이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이제 교회개척을 한 게 2023년이니까, 그때 한국 나이로 51세예요. 
그랬더니 이번엔 사람들이 또 ‘나이도 많은데 (개척하지 말고) 그냥 교회에 그대로 눌러 있지...’ 

아니 내가 얼마 전에 ‘나이가 어리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또 이번에는 ‘나이가 많은데 가만히 있지, 뭘 또 개척하러 나가냐?’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들의 ‘나이가 많다, 적다’라는 말에, 과도하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저희 둘째 아들하고, 아들의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베프예요. 
둘이 아주 친한데, 둘 다 현재 22살이에요. 

어디 갈 일이 있었고, 뒷 좌석에 두 사람을 제 차에 태우고 가는데, 둘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저는 그냥 가만히 운전만 하고 있었어요. 

근데 이 친구들이 대화를 하면서, '요즘 중고생들이 우리 나이 사람들한테 아저씨라고 불러' 
그렇죠. 고등학교를 다니는 애들이 '아저씨'라고 부르겠죠. 
아니면 그냥 '형'이라고 부르겠어요? 그러니까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서로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 우리 나이쯤 됐으면 나이가 많이 들었지?' 
'우리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만나는데, 세월이 13년이 흘렀어.. 세월이 진짜 빠르지 않냐? 
앞으로 세월이 얼마나 더 빨리 흘러갈까?' 막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고작 22살짜리들이.

그 나이에, 그걸 깨달았던 게 기특하죠. 
그러더니 조용히 운전하고 있는 저에게, 둘째가 물어보더라고요. 

'아빠, 아빠는 몇 살 때, 내가 좀 나이가 들었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 
그래서 제가 '아빠는 최근에 내 몸이 예전 같지 않구나.. 이걸 느꼈을 때, 
내가 좀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빠는 뭐 마음을 항상 젊게 살지 않느냐?' 

제가 인생의 궤적을 따라오다 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30대에 '이제 과격한 운동은 좀 자제해야지' 
40대에 사람들이 '내가 뭐 나이가 이 정도 됐는데, 뭐 새로운 걸 하겠어?' 
50대에 '아유, 이제 도전은 할 나이가 아니지...' 
사람들이 이렇게 다 하나씩, 하나씩 다 포기하더라고요. 

'근데 아빠는 지금도 하나님 안에서 꿈을 꾸고, 새로운 일을 계속하고 시도하고 있지 않니?' 
여러분, 나이에 신경을 쓰지 말고, 하나님께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나이에 신경을 쓰지 말고, 
'언행의 본이 되고, 사랑과 믿음과 정절의 본이 되라'고 권면을 했어요.   4:12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오해하는 게 있는데, 
'운동을 통한 신체적인 성장, 또 공부를 통한 지적인 성장은 어렸을 때나 하는 거고, 
신앙 성숙은 나이 들어서 하는 거다' ... 과연 그럴까요? 

여러분 뭐 신체적인 성장이나, 아니면 지적인 성장도.. 평생 계속 할 수 있는 거고, 
신앙의 성숙이야말로.. 어떻게 보면은 일찍 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지표와 푯대를 세우는 것인 줄 믿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예수님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는 결단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12절을 다시 보면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정절'이라는 것은, 인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거든요. 
이것들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실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비슷해요. 

살전1:3절에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가 기억함이니'

여기서 바울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크리찬의 세 가지 덕인데, 
믿음이 있다고 말만 하지 말고, 믿은 대로 실천하면서 사는 것, 
사랑한다고 감정만 품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헌신하는 것, 
소망을 바라지만 말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결실을 거두는 자리까지 떠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이게 '휘포모네, 인내'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디모데는 나이가 어린 목회자였던 만큼, 
사도바울이 '네 나이 신경 쓰지 마라, 대신에 삶과 신앙의 본이 되어서 정면 돌파를 해라'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비본질적인 것에 휘둘리지 말고, 본질로 싸우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비본질에 여러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세요. 
본질적인 것에 여러분의 열정과 시간과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삶이, 
진짜 자유한 삶이고, 복된 삶입니다. 

◑4: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바울사도가 디모데에게 본이 되는 삶을 얘기해 놓고, 
그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니까, 
'말씀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3

그리고 '네 속에 있는 은사' 이미 디모데 안에 있는 은사였어요. 
하나님이 주신 은사였고, 
또 '장로의 회'라는 리더십 그룹에서 인정이 된 은사였습니다.  :14

▲제가 전에 섬기던 온누리교회에는 목회자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근데 하용조 목사님이 부재 중이셔도, 딱 정해진 부목사들에게만 주일설교를 시키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부목사님들도 하목사님께 
'다른 목사님들에게도 좀 주일 설교 기회를 주시죠.' 이렇게 말씀드리면,
하목사님은 항상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설교는 연습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 항상 최고의 설교를 들려줘야 됩니다.' 
이 얘기를 항상 하셨고, 

그리고 어떤 목회자가 담대하게 하목사님께 가서 
'저도 티칭의 은사가 있습니다. 저도 기회를 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목사님은, 이렇게 답변하셨대요.
'은사는 자기가 판단하는 게 아니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얘기해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와서, '그 목사님은 말씀 티칭의 은사가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는 거죠. 

여러분 그래서 은사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만 독특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14절 보면, 그렇게 분명히 은사가 내 속에도 있어요. 공동체의 인정도 받았어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 은사를, 어떻게 여길 가능성이 있다고요? 
가볍게 여길 위험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볍게 여기지 말며' :14
왜 그럴까요? 

디모데 같은 내향형의 완벽주의 기질들은, 자기 자신에게 점수가 후하지 않고 박합니다. 
저도 디모데하고 비슷한 기질이니까, 충분히 이해가 돼요. 

제가 대학생활할 때 영어 영문학 전공이었으니까, 미국 교수님들이 계셨는데 
이분들이 채점을 하는 표현들을 보고, 제가 깜짝 놀라게 됐어요. 

그건 뭐냐면, 이분들이 90점 이상이면.. excellent, 
80점 이상이면.. very good, 
70점 이상이면.. 70점을 맞아도 good! 이라고 써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나라에서는 70점 맞아서 갖고 가면,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아요.
그런데 70점을 맞아도 '잘했어, good' 이렇게 얘기를 해줘요. 
너가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죠. 

그런데 완벽주의는 90점이 아니라, 100점 맞아도 만족은 잠시뿐이에요. 
'내가 다음 시험에 또 100점을 맞을 수 있을까?' 이렇게 자기 자신을 피말리며 사는 거예요. 
칭찬을 해주는 게 아니고, 끊임없이 자기를 채찍질하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는 거예요.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당신에게 그 은사를 주신 것을, 후회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 은사를 통해서, 당신에게 특별한 사명을 맡기신 것을, 후회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로 태어난 것을, 후회할 수 있어요. 
나는 나로 태어난 것을 막 지우개로 지우고 싶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거를 후회하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러나 여러분, 그게 자연적인 재능이든, 아니면 여러분 기질의 장점이든, 
여러분의 영적인 은사이든 간에, 처음부터 이게 폭발을 하고, 
처음부터 영향력이 생기고, 처음부터 탁월하던가요? 그렇지 않아요. 

절대 은감이 있는 애라고 해서, 음악이 처음부터 그게 되는 게 아니에요. 
굉장히 노력하는 그 과정들이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디모데 같은 유형이 저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은, 
은사라고 하나님이 저에게도 얘기를 해주셨고, 사람들도 얘기를 해주는데, 
'나는 확신이 없는' 거예요. 

'나는 이게 아닌 거 같은데..'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앉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볼 때, 디모데가 안타까운 거죠. 

그래서 '너 하나님의 사람아, 사명과 부르심에 집중할지어다!'  6:11참조
사람들이 '네가 나이가 어리다고, 경험이 미숙하다고, 실력이 부족하다고 이야기 해도, 
그거 너무 신경 쓰지 마라'는 거예요. 

아니 모든 게 그렇잖아요. 모든 게 처음 할 때는 다 미숙하고, 부족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가끔가다 교회 사역 요청을 하면서 '싱어 좀 섬기시죠?' 
'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요..' 

원래 우리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걸 하는 겁니다. 
초등학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겁니다. 
근데 왜 우리는 자꾸 '경험이 미숙하다, 나이가 어리다, 실력이 부족하다' 
이런 걸 신경을 쓰는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을 때는, 재능을 주셨을 때는 
그 뒤에 담겨있는 패키지가 있는데, 그게 하나님의 콜링 calling 이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신 사람 중에, 허무하게 보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하나님이 세상에 보낸 모든 사람에게, 각자가 감당해야 되는 유니크한, 독특한, 
특별한 사명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뉴저지 사경회를 인도하면서 
신구약을 다 하려다가 구약밖에 못했는데, 
'구약의 질의응답'들을 정리해서 강의도 했지만, 
단톡방을 만들어 갖고, 거기에 질문들을 올리게 했어요. 

수십 개의 질문이 올라왔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수명이 다해서 죽은 게 아니라, 사명이 다해서 죽었잖아요. 
그래서 사명이 다할 때까지는 하나님이 그의 수명을 지키시는가요?' 
어떤 분이 이렇게 질문했어요. 계속해서 이런 내용이 이어졌어요.

'사명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지켜주신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평신도인 저에게는 특별한 사명을 주신 것 같지 않습니다. 
교회 봉사를 한다든지, 단기 선교를 한다든지... 그게 뭐 사명적 차원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명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 하나님이 데려가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평신도로서 사명이라고 붙들 것이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이렇게 답변을 드렸어요. 
'이게 사명이라는 것은 what to do, 무엇을 할 것이냐'에 관련된 건데, 
여러분 성도에게 사명의 자리는 어딘가요? 
일터와 가정인 거예요. 

우리가 일터와 가정을 사명의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뭔가 목회자가 된다든지, 선교사로 간다든지... 
꼭 그런 거를 해야만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분 사명의 자리를 놓치고 있는 거예요


느헤미아가 140년 만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최악의 폭군 중의 한 사람이었던 아닥사스다 왕을 
진심으로 섬기는 것을, 자기 사명으로 여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움직인 겁니다. 

여러분 다니엘과 같은 영성가가 '나는 영적인 일만 하겠다' 그러지 않았어요. 
바벨론의 최고의 정복자였던 느부갓네살 왕을 진심으로, 전심으로 섬기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적인 일도 하게 하신 거예요. 

왜 우리에게 사명이 없겠습니까? 
일터는.. 크리스찬으로서 우리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될 사명의 자리인 줄 믿습니다. 

 

▲또 자매님들은 가정에서 자녀 양육을 하다 보면, 
'나는 경력이 단절됐다. 내 인생이 여기서 멈췄다. 
내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누구의 엄마로 불린다' 
내 인생이 거기서 중단된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여러분 과연 그럴까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얘기하는 것이, 한 생명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가는 거예요. 
요게벳이 모세를 키워내지 않았습니까? 
한나가 사무엘을 키워서 하나님께 바쳤죠. 
유니게가 신실한 디모데를 키워낸 거에요.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거룩한 신앙을 다음 세대에게 유전시키기 원하시고, 
거룩한 가문을 세우기를 원하시고, 거룩한 인물들이 나와서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반전의 역사를 만들기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꿈꾸시는, 크리스찬들의 굉장히 중요한 사명이에요. 
여러분 그러니까 우리에게 사명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직장을 나가는 게 아니에요. 

'내가 아이를 키우는데, 이 아이가 태어났는데, 
어떻게 하면 다른 애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이 아이에게 경쟁력을 키워줄까?' 
그게 여러분의 인생의 비전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명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에게 일터와 가정은, 가장 중요한 기본적 사명입니다. 
그런데 디모데에게 주신 사명, 그런데 그 사명을 보면, 
또 우리에게 주시는 또 다른 영적 사명이 있는 거예요. 

성경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 
이것을 목회자와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전념을 해야 된다면, 
그것은 에베소 성도들 뿐만 아니라,   *지금 디모데 목회지가 에베소 교회
오늘날 현대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사명인 것이죠. 

▲4: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 첫 번째, 성경을 읽는 것에 전념하라! 
저는 여러분이 [보라통독] 한 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성경을 2독하고, 3독하고, 10독하고, 20독하고... 
'성경을 읽는 것에 전념하라' 

롬10: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성도는 육의 양식뿐만 아니라,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흡수해서 
우리의 신앙 인격을 만들어가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키워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 과목이죠. 

2) 두 번째, 성경을 권하는 exhortation 것에 전념하라. 
여기서 '권한다'라는 것은, 말씀대로 살도록 인격적으로 권면, 격려한다라는 뜻이에요.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우리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면, 여러분 신앙이 위선으로 갈 수 있어요. 
그게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이, 종교인들이, 성경 지식은 엄청 해박한데, 
하나님의 마음은 전혀 모르는 거예요. 이게 신앙 위선에 빠지는 거죠. 

여러분 말씀을 한 구절을 깨달아도,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진정한 하늘의 능력과 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3) 세 번째는 성경을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마28:20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전하지 않는다면 누가 듣겠습니까? 가르치지 않는다면 누가 깨우치겠습니까? 롬10:14참조
성경에 물론 우리가 읽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주셨지만 
여러분 상당히 어려운 내용들이 많잖아요. 

1) 그러니까 성경을 가르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교회는 진리의 전당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가르치고 배우고 행하는 터전인 거예요.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3:15

제가 이번에 뉴저지에서 일주일간 성경문답을 하는 사경회를 하면서 
'하나님의 때가 됐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신구약 통독사역을 지난 20년간 해왔고, 
그리고 사실은 저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임재 체험을 하고, 인생이 완전히 바뀐 거거든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성경통독을, 저희 목사님들이 인도하고, 
저는 성경 문답을 하는 교육을 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냐면, 
교리문답, 성경문답... 이런 거는 완전 옛날 옛적에 하던 고리타분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과연 그럴까요? 

오늘날 교회의 본질적인 컨텐츠가 뭘까요? 
결국에는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교회개척운동에 동참하는 교역자들과 성도들에게 
우선적으로 이 성경통독 훈련을 시키려고 하고요. 

2) 두 번째는 기독교 변증이에요. 
성경이 왜 진리인지, 왜 하나님이 유일하신 분인지, 
왜 예수님만이 구원이신지... 이것에 대해서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성경적으로, 교리적으로 정확하게 답변을 해주는 기독교 변증, 
이것도 정리를 해서, 교회개척운동을 하는 분들, 
그리고 주일에 성도들과 리더들에게 훈련을 시키려고 합니다. 

20세기의 사회학자들 중에서도 미래학자들이 '21세기는 영성의 세기가 될 것이다'라고 예측을 
했어요. 그래서 정말 21세기에 신흥 종교들이 창궐하게 됐고, 
절대자 하나님을 떠난 서양 사람들은, 온갖 동양 종교와 명상훈련, 뉴에이지 운동과 심령술에 
지금 다 빠져 있어요. 

그러나 폭우가 내리게 되면 물은 넘쳐나는데, 마실 물이 없게 되잖아요.
오늘날 21세기가 '영성의 세기'가 되고, 영성 종교들이 창궐하게 됐지만, 마실 물이 없는 거예요. 
아모스 선지자가 그 시대를 향해 예언했던 것과 같습니다. 
암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호세아도 똑같은 예언을 했는데 4:6절을 읽겠습니다.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 
이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흥하고 싶은데.. 반대로 망하게 된다는 거예요. 

호세아도, 아모스도, 세속주의 신앙에 빠져있던 북왕국, 북이스라엘을 향해서 
경고의 메시지를 발했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그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너무나 비슷합니다. 
북이스라엘은 부국강병을 이뤘어요. 그래서 그들이 나라가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감도 못 잡았습니다. 

여러분 21세기, 가장 문명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잖아요. 
그러나 이 시대에 가장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재의 본질과, 진리의 말씀의 본질로 돌아오면... 여러분은 살 수 있습니다. 
이 얘기를 해줘야 되는 거예요.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콘텐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뭘 하나요? 
하나님의 임재 체험이 있는 예배자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경험하는 사람들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게 가장 본질적인 콘텐츠인 거예요. 
그래서 '이거를 내가 해야겠구나!' 이것을 하나님의 콜링으로 제가 받아들이게 됐어요. 

◑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 사역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전심전력 하라'는 거예요. 
'올인해서 모든 것을 쏟아 부어라!' 

오늘 설교 첫 부분 시작할 때 '연소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잖아요. 
연소함은 개인에게도 해당이 되겠지만, 저는 1516교회가 생각이 났어요. 

제가 지지난 주일에 설교하기를 '교회가 좀 역사가 있어야 컨퍼런스도 하는 건데...' 
우리 교회 연혁의 연소함이 있잖아요. 

그러나 '우리가 사역의 경험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교회의 본질을 얘기하게 하시고, 교회의 본질에 우리가 집중하면, 
하나님이 살리실 수 있다는 걸 선언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저는 1516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다른 거 아닙니다. 
어떤 새로운 것이나 신박한 거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에요. 
예배의 감격과 말씀의 능력 체험이, 여러분에게 저와 여러분에게 먼저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통해서 이게 사방으로 흘러나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우리가 '교회개척 운동'을 하려고 하는 것은, 
그냥 곳곳에 건물로서의 교회, 조직으로서의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불길이 번져가고, 말씀의 대로가 열리는 교회들을 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디모데에게 주신 이 말씀사역의 은사가, 사실 저에게도 주신 은사이고,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은사와 부르심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이번에 예교콘, 예교콘이 뭔지 아시죠?   *예배교회 콘퍼런스
예교콘 오프닝 세션하고 마지막 클로징 세션 메시지를 전하고, 
그리고 둘째 날 선택 강의 때, 교회개척에 관심 있는 목회자들 들으시라고, 
"교회개척 꿈을 꾸다" 이런 강의를 제가 하려고, 강의 개설을 했어요. 

그런데 목회자들이 한 30명 정도 신청을 하셨는데, 
보니까 타교인들이 강의 신청을 엄청 많이 하셨더라고요. 

그러니까 '저 목사님이 교회 개척 운동을 한다는데, 뭘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궁금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우리 집에서 잔치를 벌였는데, 
우리 집 자녀들은 못 먹고... (우리 집, 너희 집에 어디 있느냐고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먼저 이 영적인 콘텐츠를 누리는 것이 
여러분에게 복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다윗을 생각해보세요. 어려도 강력한 예배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사무엘을 생각해보세요. 
사무엘도 다윗과 비슷한 나이거나 더 어린 나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무엘이 그 어린 나이여도 강력한 기도자가 될 수 있었던 거예요. 

반면에 또 모세처럼 늙어도 강력한 말씀 증거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성경의 시작, 모세오경을 기록한 사람이 되었잖아요. 

또한 바울처럼.. 무섭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대적했던 사람도, 
디모데처럼 성격이 유약한 사람도, 
말씀에 불이 한 번 붙으면, 이 말씀으로 영혼들을 살려내고, 가정을 살려내고, 
시대를 살릴 수 있는 말씀 사역자가 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아까 그런 얘기 했잖아요. 
하나님이 저에게 '너는 이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라!' 
제가 10대 때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의 말씀이예요. 

그런데 계속 내 마음에 의심하는 거예요. 
'과연 나는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것도 싫어하고...' (믿어주세요. 예전에 제가 그랬던 거에요) 
그냥 어디 구석에 조용히 항상 예배드리며, 기둥 뒤에 앉으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제가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기둥 뒤에 앉아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 

'하나님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매일 그랬거든요. 
근데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주위 사람들이 (은사가 있다고 제게) 얘기를 해도 
'나는 아니지 않나.. 나는 부족하지 않나..' 그 생각을 계속했던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그 부르심의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선한 일을, 하나님이 완성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본문 16절 말씀에 놀라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에 전심전력하고 이것을 지속적으로 하면, 
너를 듣는 사람, 즉 회중들, 성도들만 구원하는 게 아니라, 
너 자신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이 얘기를 바울이 왜 했을까요? 
인생 최고의 감격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이것은,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모두가 동의할 텐데, 
세상 최고의 가치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이보다 소중한 가치를 가진 존재는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그 사람을 살리겠다고 나서는데... 
인권으로 사람을 살리겠다, 
사상으로 사람을 살리겠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만난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배의 감격으로, 
생명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살려내는 줄로 믿습니다. 

인생이 너무나 지쳐있고, 가정이 깨어져 있던 사람들도 
하나님의 임재체험의 예배를 드리고 나면, 한순간에 변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거짓된 세상신화에 빠져서 살던 사람이 
'내가 왜 존재해야 되는지, 왜 살아야 되는지' 알지 못하던 사람이, 
진리의 말씀을 깨우치고 나면, 40년 만에, 50년 만에, 60년 만에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이에요. 

오늘날 교회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왜 어떤 프로그램이나, 전략이나, 프로세스나, 시스템으로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하는가요? 

여러분, 교회는 복음의 본질, 생명의 말씀과,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본질, 
이런 가장 중요한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을 온전하게 증거하고 선포하면, 
하나님이 교회를 살리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사람 살리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터를 살리는 일꾼이 되고, 가정을 살리는 가장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가족을 위해서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하고, 돈을 벌어다 줬는데 
여러분 자녀들하고 관계는 계속 어려워지고... 
제가 오늘도 한 가정을 만나서 그런 얘기를 나눴어요.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면 키울수록.. 아이들과 멀어지는 거예요. 
부부의 관계가 어려워져 가는 거예요. 

여러분 가족을 살리려고 했는데, 가족을 죽이는 가장이 아니라, 
가정을 살리는 가장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살리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그렇게 사람 살리는 일을 하게 되면, '당신 자신을 살리게 될 것이다' 
제가 두 주 전에도 그런 얘기 했잖아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제일 크게(잘) 배우는 것이다!'

같은 원리입니다. 누군가를 살리는 것이 곧 나를 살리는 일이 되는 거예요. 
제가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이 시간도 매우 감격적이지만, 

저에게 있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한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이 한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인생이 변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할렐루야! 어떤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이 충만하겠어요? 
그 생명을 전해본 사람에게! 

어떤 사람에게 복음의 능력이 충만하겠어요?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요! 

저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경험했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흘러가지 않으면, 결국에는 우리 자신도 건져내지 못하게 돼 있어요. 

오늘 인생에 대해서 4:16절에 말씀하는 대로 '네가 이 일을 전심전력으로 하고 
지속적으로 하면, 사람들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너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다

교회가 이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임재에 충만한 예배가 
교회를 살리고 사람들의 생명을 살린다는... 이런 본질적인 얘기를 외쳐야 되는데, 
이거를 외치지 않고, 전하지 않고, 
교회가 은혜를 흘려보내지 않으면, 교회는 교회 자신도 살려내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열방에 축복의 통로'라고 세워놓으셨는데, 
그 역할을 하지 않았잖아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서 자기들만을 위해서 존재했잖아요. 

결국에는 열방도 살려내지 못하고, 자기 나라도 망하게 됐어요.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돈을 위해서, 물질을 위해서, 지위와 권력을 위해서, 
화려함과 부요함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철저하게 살아보세요. 
결국은 자기조차도 구원하지 못하게 되어있어요. 자기 가족도 구원하지 못하게 되어있어요. 

그러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나의 혼신을 다 드리면, 
여러분 자신을 살려내고, 가정을 살리고, 시대를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주1)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디모데가 청소년, 청년 때에 사도 바울에게 픽업을 받았어요. 
그때가 2차 선교여행 초기였기 때문에, AD 49년으로 추정이 되고, 
그때 디모데의 나이를 많으면 18~20살 정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18살이라고 생각을 해봤는데요. 
그리고 바울이 3차 선교 여행이 끝나고, 로마에 2년 잡혀있다가 풀려나서 
에베소에 디모데를 목회자로 맡겨놓고, 그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서 이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니까 그때를 AD 64년으로 보면, 
AD 49년에서 AD 64년까지 몇 년이 흘렀어요? 15년. 
15년 정도 시간이 흘렀고, 디모데가 18살에 픽업이 됐다면, 
이 편지(디모데전서)를 받았을 때 몇 살이에요? 33살. 
그래서 디모데가 30대 초반, 조금 나이가 많아도 30대 중반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