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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된 자가 입은 은혜 마20:1~16 2007.11.11.
※아래 설교문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비교"입니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은혜 받은 종은 '자기를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거죠.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신적이기도 하고 또 가장 인간적인 고통이기도 합니다.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종말적 고통이기도 합니다. 만회할 길이 없습니다.
인생을 다 살고 마치려고 하는데, “지난 일을 돌아보며 후회”라고 하는
또 다른 고통에 직면하게 됩니다.
첫째는 '좀 더 베풀 걸' 하는 생각이랍니다. ‘너무 인색하게 살았다...’
주변에 내가 도와야 할 사람들이 늘 있었는데,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핑계하면서 돕지 못한 것 마음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좀 더 즐길 걸'하는 것입니다. 넉넉하게 즐길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안달하며
그렇게 불행하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었는데 하는 유감입니다.
셋째는 '좀 더 참을 걸'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참았으면 세상의 운명이 달라지는데,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 인내가 부족했던 것에 대해서 후회하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언젠가 한번 결혼 주례를 하면서 이상한 아버지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두 사람이 앞에 앉아 있는데, 전혀 서로 바라보질 않고 딴 곳만 바라보고 있는
그런 내외분을 봤습니다.
그 남편이 한번 실수를 했어요.
그것을 용서했더라면 좋았을 걸, 아내가 그만 용서하지 않고 정죄해 버렸어요.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별거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나 전에 낳았던 아들이 장가를 가는데,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가 앉아있기는 한데, 참 답답하더군요. 보기가 너무 딱해요.
그 부인의 후회는 이것입니다.
'내가 한번만 눈을 감았더라면 세상을 다르게 살 수 있었는데
내가 왜 그걸 참지를 못해서 아이들에게까지 이렇게 큰 불행을 줘야 하나' 그것입니다.
그런 후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이 모두가 기회에 대한 후회입니다.
기회는 있었어요. 그런데 기회를 내가 버렸어요. 인생은 기회입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과거에) 기회가 있었어요. 없었던 것이 아니에요.
가능했었는데, 그만 차버리고 말았던 겁니다.
기회를 놓쳐 버리고 나니까 다시 잡을 수가 없어요.
▲자, 그럼 왜 이렇게 됐을까요? 기회를 잃은 이유.
그것은 내게 주신 은혜, 내게만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내가 몰랐었기 때문이에요.
또 그렇다면 은사를 모르게 된 이유는 또 무엇이겠습니까?
심리학적인 얘기입니다. 이건 다른 사람과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내가 불행해진 거예요. 상대적으로 불행해졌던 거예요.
그래서 내게 주신 은사까지 다 저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내 것을, 남이 받은 것만 못하게 느꼈기 때문이죠.
그래서 결국은 내게 주신 은사를 내가 차버리게 된 것이죠.
심리학자인 폴 호크(Paul A. Hauck)의 명저「Overcoming the Rating Game」 라는
유명한 홀 호크에 명저가 있습니다. 「왜 남을 자신과 비교하는가」라고 번역된 책입니다.
현대인이 우울증과 열등감에 시달리는데 그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거예요. 비교하는 중에 평가가 잘못되고 비교의식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예요.
▲제가 6.25 전쟁 때 피난민 속에 들어가 보니까, 그 피난민들의 생활이 처참하거든요.
그래도 가만히 보니까 그 속에 낭만이 있더군요.
왜냐 하니까 다 못 사니까 괜찮은가 봐요.
다함께 피난민 보따리를 지고 다니니까, 거기에도 웃음이 있고, 낭만이 있더라는 겁니다.
거기서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남 잘 사는 것 보면서는 불행을 느끼는데,
다 같이 못살고, 더구나 부자가 그렇게 섞이니까, 대단히 기분 좋아한다는 겁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나의 일생이 망가지는 거예요.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는 언제나 평등하게 주어집니다.
여러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절대 평등을 신앙 고백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보이는 것이 다르고 물질적으로는 다른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 영적으로 볼 때는 하나님은 절대 평등하시며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내게 주신 기회, 내게 주신 은사가 최선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가능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내가 받은 것이 최고다. 내가 받은 것이 최고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다.
하나님은 어거스틴의 말대로 어쩌면 나만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신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 수 있으면 그는 성공적인 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적인 것이다.
이미 기회를 잃어버린 자에게까지도, 또 다른 기회를 주신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포도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달라서 여름이 건기고, 겨울이 우기입니다.
그래서 여름동안 농사를 했다가 이제 포도원의 포도를 따게 되는데
건기이기 때문에 당도가 높고, 질이 좋은 포도를 우기가 되기 전에 따는 겁니다.
포도를 다 따기 전에 폭우가 쏟아지면 이 포도 농사는 망치는 겁니다.
바로 그 순간 포도를 따야 하는데 손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품꾼이 많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런 순간에 된 얘기입니다.
(그 많은 포도를, 단 며칠 사이에, 다 따야 하는 것입니다. 적기를 놓치면 안 돼죠)
그래서 포도원에 품꾼을 사서 들여보내는데
'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마' 약속해 놓고 오늘 성경 말씀대로
제 3시, 제 6시, 제 9시, 제 11시 이렇게 나갑니다.
아침 해 뜰 때부터 저녁 질 때까지가 12시간입니다.
아침 9시, 12시, 3시, 5시, 이렇게 포도원에 일꾼들을 들여보냈습니다.
오늘 본문에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마지막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은 그 순간에 주인은 말하기를
'너도 내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 고 그랬겠지요.
'한 시간 밖에 없는데요.' '그래도 들어가라.'
여기에 큰 은혜에 복음이 있는 것입니다.
‘한 시간 밖에 없었다.’ 그 말은 뭡니까? 기회를 놓쳤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공쳤다고 생각했고, 오늘은 그만 완전히 잃어버린 날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러나 주인은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은 그 사람을,
그의 잃어버린 과거를 꾸짖지 아니하시고,
‘왜 그 동안 빈둥거렸느냐? 그 동안 뭘 하고 있었느냐?’ 이렇게 따져 묻지 않았어요.
여기에 Justification이 있어요. 지난날의 과거를 묻지 않는 그 은총이 있어요.
그 복음이 그 속에 있는 거예요. 지난날에 잘못한 모든 것, 잃어버린 기회, 묻지 않아요.
단 지금 남은 시간만 물어요.
‘한 시간이라도 남았으면 좋아, 한 시간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이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이 그 사람이라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루 종일 다 빈둥거렸어요.
낭비한 후회가 많아요. 시간 낭비한 후회가 있는데, 주님은 그것을 꾸짖지 않으세요.
과거를 묻지 않으세요.
그리고 ‘한 시간이라도 족하다. 남은 한 시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는 말씀이죠.
이들은 아마 이랬을 겁니다. ‘주인의 그 너그러운 마음에 감사하고,
과거를 용서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하고, 오늘 나를 써 주신다는 데에 대해서,
아직도 쓸모가 있다는 거 감사’할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자, 건강 재산 능력 환경 지혜 다 낭비해 버렸어요. 다 소실했어요.
그러나 이제 주님은 말합니다. '내 그 과거는 묻지 않으마.
이제 남은 시간 한 시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그렇게 말씀하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마 이들은 써주시는 데 대해서,
아직도 한 시간 남은 저희를 써 주시는 데 대한 감사가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이 사람들은 적어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침부터 와서 일했어요. 점심때부터 와서 일했어요.
그러니 그 분들과 나와 어떻게 비교하겠습니까?
저분들은 저분대로 충실하게 하루를 일했지만
우리는 그저 남은 부스러기 한 시간 뿐인데... 그저 비교할 생각이 없지요.
그저 부지런히, 부지런히 일했을 따름입니다.
또 하나 있지요. 이들은 임금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어요.
저 아침부터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는데
우리에게 얼마를 줄는지 그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비교의식이 없어요.
비교의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그런 세계관으로 사는 거예요.
‘다른 사람에 비해서 나는 더 많은 은혜를 입었다. 더 많은 긍휼을 입었다.
더 많은 축복을 받았다’는 생각 뿐이에요.
그래서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한 시간이지만,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들은 기회 주심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일을 맡겨 주심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일 할 수 있다는 것, 아직도 일할 수 있다는 것, 이거 한 가지만 가지고 감사하구요.
보수에 대한 생각은 없습니다. 주셔도 그만 안 주셔도 그만...
이것은 그저 또 다른 은혜일뿐입니다.
▲자, 그런데 이제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은 먼저 온 자처럼 비교의식이 없었습니다.
주인은 먼저 온 자들에게 말합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남의 것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마라. 너와 나와 약속한 것이 한 데나리온이 아니냐?
네가 할 충성 다하고 네가 할 진실을 다할 뿐이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참 선명한 말씀입니다. 너와 나와 약속한 것이 한 데나리온이 아니냐?
‘그 약속은 지켜지고 있지 않느냐? 또한 나중 온 자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거 내 마음이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네가 왜 비판하느냐? 나의 선함을 악하게 보느냐?’
‘이것이 선한 일이라고 하자. 그렇다고 너한테 비판 받아야 할 일은 아니다’ 라는 거죠.
얼마나 확실한 말씀입니까?
나중 온 자, 이분들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런 정황,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중 온 자는 가슴이 뭉클했을 겁니다. 주인에 대한 엄청난 감격과 감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자, 행복한 자가 누구입니까? 행복한 사람은 일이 있는 사람입니다.
일이 없다는 건 쓸모가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일이 있어야 합니다.
▲현대에 있어서 제일 비참한 게 이겁니다. 가끔 뭐 그런 말하잖아요.
나이 좀 많아지면 뭐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나 할까 하지만 농사 아무나 하나요.
그거 옛날 얘기입니다. 아, 그저 흔한 일 같지만, 마당을 쓸어도 기계로 쓸어요.
아, 그렇지 않습니까? 뭐 청소하나라도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 일이나 하는 말처럼 맹랑한 말이 없어요. 그렇게 할 수 있게 돼 있질 않아요.
그런데 일이 있다는 것, 어떤 일이든지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가끔 여행을 하면서 보면 시골에 갔을 때, 이 주간에도 전라도 광주를 다녀오면서 보니
주유소에 새벽에 들어가 보면, 노인 가까운 분들이 거기서 일을 해요.
내가 기름을 좀 넣으라고 하면서 보니까, 아, 이 할아버지가 되게 기분이 좋더란 말입니다.
왜요? 일거리가 있다는 거예요. 일거리가.
'이 새벽에는 젊은 사람들 못 나오니까 이건 우리 몫이다.' 뭐 그런 거 같아요.
새벽에 이거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 주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걸 보고 저는 생각했어요.
진작 그리 살았더라면 좋았을 걸……. 새벽에 나와서 주유소에서 기름을 주유하면서
그 행복해 하는 노인을 종종 봅니다. 일이 있다는 건 행복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일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뜻을 아는 자가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일 자체를 즐겨야 합니다. 일 자체를.
자, 이제 보세요.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를 즐겨야 합니다.
공부가 재미없으면 공부는 다 한 거예요. 그건 능력이 나올 수가 없어요.
공부하는 사람은 책 보는 게 즐겁고, 공부하는 자체가 즐거운 거예요.
‘이거해서 출세해야 한다고’ 출세 지향적으로 안달을 하면 공부 안 되는 거예요.
그저 공부하는 것 자체, 연구 자체가 즐거워야 됩니다. 그 사람이 성공하는 거예요.
즐겨야 되요.뿐만 아니라, 보수에 대한 생각이 없어야 되요.
‘이거해서 어떻게 되나, 얼마를 버나? 이것이 잘 되려나?’
그런 결과지향적인 생각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망가진 거예요.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 그 자체를 축복으로 생각하는 거기에 은혜가 있는 것이올시다.
▲여러분, 잘 아는 마이크로사의 빌 게이츠라고 하는 유명한 CEO가 있지 않습니까?
그 빌 게이츠가 마운틴 휘트니(Mt. Whitney)라고 하는 고등학교를 한번 방문했어요.
옛날에 자기가 나온 학교인가 봐요. 거기 후배들에게 연설을 하게 됩니다.
그는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회에 나아갈 고등학교 학생인 후배들을 세워놓고
선배로서 아주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첫째, 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다. 그걸 인정하라. 키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고
머리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 이걸 인정하라. 그러니 불평하지 마라.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대로 불공평을 공평으로 수용하라.
거기서부터 출발하고 남과 공평하지 못하다고 불평하기 시작하면 인생 끝난다.
둘째, 세상은 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심이 없다. 다만 성취만을 요구할 뿐이다.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대해 주느냐 신경 쓰지 마라.
셋째, 학교 선생님이 까다롭다고
생각하느냐, 앞으로 직장에 나가서 상사는 더 까다롭다.
그저 까다로운 선생에 대해서 원망하지 마라.
넷째,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라.
너의 할아버지들은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걸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살았느니라.
다섯째, 인생은 네가 망치면서 부모 탓하지 마라.
참 재미있는 얘기예요. 인생은 네 자신이 망치면서 부모 원망하는 것,
그건 아주 망가지는 것이다.
여섯째, 학교 성적은 우등생이라 하더라도 사회 나와서도 우등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곱째, 학교에서는 학기말도 있고 방학도 있지만, 인생은 학기말도 방학도 없다.
여덟째, TV는 현실이 아니다.
이 텔레비전 때문에 망가집니다. 텔레비전 보면서 저게 전부다 사실인줄 알고
자기도 영화배우가 된 줄로 착각하거든요. TV는 사실이 아니에요. 그냥 멀찌감치 보세요.
마지막으로, 공부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친구가 있거든, 그 친구에게 가까이 잘 해 두라.
앞으로 그 친구의 밑에서 일하게 될지 모르니까.
아주 진지한 충고예요. 여러분, 이걸 잊지 마세요.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았어요.
여러분, 연령이 얼마든지, 건강이 얼마 남았든지, 재산이 얼마든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요샌 더구나 치매가 심한 세상이니깐
치매 걸리기 전에 아직 정신이 멀쩡할 때, 남은 한 시간의 생명은 기회입니다.
생명은 기회예요. 또한 중요한 것은 기회는 축복입니다. 동시에 이 축복은 사명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세요.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너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있다.’ 얼마나 희한한 복음의 말씀입니까?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있다.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