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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31ㅣ인내의 열매는 우아한 삶이다(베드로전서 2장 18 - 25절) Youtube
◈인내의 열매는 우아한 삶이다 벧전2:18~25 2026.05.31.
▲도입 / 힘겹게 현실을 살아가는 직장인
미국 시카고는 스카이라인이 아름다운 도시로 소문나 있습니다.
아름다운 빌딩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시카고에서 사역 할 때, 청년들과 가끔씩 다운타운에 가서
차 마시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한 청년이 감개무량한 얼굴로 이렇게 말해요.
'목사님, 제가 취업했잖아요. 내일부터 저 높은 빌딩에 출근해서 일합니다.
50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카고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들어보니, '내가 시카고를 정복했습니다' 하는 느낌으로 말해요.
제가 함께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가 어릴 때 부모님 따라 이민 와서, 부모님이 자기들 키우느라고 고생하는 것을
함께 보며 자랐습니다. 그의 부모님들이 좁은 세탁소에서,
뜨거운 다리미 들고 하루 종일 10~12시간 일해서, 그렇게 고생하며 자녀들을 키웠는데,
이제 아들이 전문직을 얻어서, 탁! 트인 전망의 초고층 사무실에서
시카고 전경을 내려다보며 일할 수 있게 되었다니... 참 축하할 만한 일이죠.
그런데 몇 달 뒤에 그 형제가 이렇게 말해요.
'목사님, 사무실에 가니까, 제 자리가 딱 이만큼 0.5평도 안 돼요.
이 큐비클(칸막이) 안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 들여다보고 있고,
잔소리 듣고, 야단 맞고... 숨 막힙니다. 너무 답답합니다.'
그형제가 덩치도 이렇게 크고요. 굉장히 활동적인 친구여서, 그 말이 더 실감났습니다.
입사한지 1년 쯤 지났을 때에, 제가 그 집에 심방 갔는데, 그 아내가 그래요.
'목사님, 우리 남편이 요즘 출근하기 너무 싫어해요.
때로는 진짜 (아내인) 제가 등을 떠밀어서 가야 돼요'
여러분은, 어떻게 일하고 계십니까? 아침에 어떤 마음으로 출근하십니까?
여러분, 길을 가다 보면, 찌그러진 음료수 캔을 볼 때가 가끔 있습니다.
어떤 직장인들은 그 찌그러진 음료수 캔을 보면서, 감정이입이 된다고 해요.
이리 치이고, 저리 차이고, 밟혀서 찌그러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갑니다. 죽지 못해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는... 그런 답답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많죠.
그래서 공부 아주 잘하면, 한국에서는 지금 대체로 의대 가는 것 같아요.
그러면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저는 다수의 의사 선생님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하루 10시간씩 이 좁은 진료실에서, 기계적으로 환자 만나고, 또 만나는 것,
너무 답답합니다.'
신기하게도 똑같은 말을, 누가 써준 걸 그대로 외워서 하는 것처럼,
똑같은 말씀을 하는 다른 의사 분들이 많아요. 여러 가지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지치고 신경이 곤두 설 때가 많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 좀 더 좋은 직장, 좀 더 좋은 환경은 있지만,
삶의 조건이 본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최근 종영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굉장히 도발적인 제목인데, 저는 이 제목에서 '모두가' 라고 하는 단어,
그 단어에 눈길이 갔습니다.
저는 뭐 앞에 조금밖에 못 봐서 '이 말이 맞다 틀리다' 말하기는 힘들지만,
'모두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뭔가 치열한 싸움을 싸우면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게 성경적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싸움이 있어요. 편하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좀 많이 가진 것 같아 보이는 사람, 뭔가 이루었다고 자랑할 만한 사람도 예외는 아닙니다.
'저 사람 참 편하게 사네... 저 정도 되면 별 걱정 없겠지?'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좀 성공했다 싶어도, 많이 가졌다 싶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 하나님께 다 맡기십시오!
베드로전서는 이런 세속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권면입니다.
벧전2:9 '여러분은 택하심 받은 족속이요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아름다움을
여러분의 삶으로 선포하게 하려는 뜻입니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정말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사명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멋진 삶으로 부름 받았구나'라고 마음이 많이 고양되는데,
2:11절에 보면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
이 말은 '(너희는) 사회 맨 바닥의 주변인이다..' 라는 것입니다.
2:18절에는 한 수 더 떠서 '사환들아'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노예들을 말하는 겁니다.
정말 한껏 올렸다가 :9
사정 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현실... :11, 18
여러분, 이 베드로전서의 그리스도인들은, 현대의 직장인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좁은 공간, 답답한 상황, 억압적인 상황에서 살아갔습니다.
그나마 그 노예의 주인이 선하고, 관용하고, 착한 사람이라면 낫겠지만
여러분, 이 세상에 어떤 주인이 많을까요?
요즘에는 그래도 민주사회가 되었고, 평등을 말하고, 인권을 말하고, 노동법도 있고요.
주위의 눈치도 보고요. 잘못하면 그냥 인터넷에 올라가고... 그러니까 좀 많이 나아졌죠.
그런데 당시에 노예의 주인은, 노예에 대해서 모든 권한,
심지어 생사 여탈권까지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거칠 수밖에 없죠. 당시 문화가 그랬다는 겁니다.
벧전2: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했는데,
여러분, 당시에 많은 노예들이 '선하고 관용적인 주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게 뭐죠?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나요?' 하고 반문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상상하기도 힘든 캐릭터예요.
까다로운 주인들이 대부분이었죠.
여러분,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일이 위험해서, 좁고 위험한 환경 때문이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이에요.
'내가 부당하게 대우 받는다는 느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셨다는 겁니다.
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예수님은 당시의 노예들보다 당연히,
또한 오늘 우리의 삶에서 힘들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사셨습니다.
그러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어떻게 그러실 수 있나요?
우리는 쉽게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신앙이 좋으시니까.. 그렇게 하실 수 있겠지'
오늘날에는 '저 분은 믿음이 성숙했으니까, 그런 그쯤이야 쉽게 이기겠지'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은요 누구나 힘들어요.
중학생은 중학생만큼 힘들고, 어른은 어른만큼 힘들고, 대통령은 대통령만큼 힘들고요.
예수님은 예수님만큼 힘드신 거예요. 힘겨운 거예요.
그 억울함, 부당함을 예수님이 견딜 수 있었던 비결은, 23절을 보면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commit, entrust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가 계신다는 겁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공의가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나를 잘 몰라줍니다.
악이 선보다 더 잘난 체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정의롭게 공의로 판단해 주실 하나님이 계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마음이 있어야 돼요.
사람들이 몰라줄 때, 그때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잖아요.
사람들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내 형편을 알아주십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부탁하시며'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너무 약한 표현입니다.
[새번역]을 보면,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이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commit, entrust
'부탁했다'라는 것과 '다 맡겼다'는 것은 다르죠.
'부탁'은.. '내가 할 텐데, 내가 잘할 수 있는데, 조금만 도와주세요' 하는 거고,
'다 맡겼다'는 건.. 내가 전적으로 의탁하는 겁니다.
'다 맡기는' 거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떤 사역을 하거나,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
노력하지 말고 팔짱 끼고 있으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거다... 그 말이 아니고요.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내가 나를 위해서 변호하고, 항변하고 싶을 때에,
잘못된 거 바로잡고 싶을 때에, 그때에 맡기는 태도,
모든 것을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인생에 관찰한 몇 분이 생각이 났습니다.
참 어려운 환경인데 참 잘 참았어요. 묵묵히 참고 견뎠어요.
그런데 나중에 못 참고요, 결국 한두 마디 했던 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회복의 시기를 늦추고,
그분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여러분, 때가 되면 하나님이 정리해 주실 줄 믿습니다.
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공의로 심판하신다'는 말은 물론 정말 미래의 날을 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지난주에 '오시는 날'에 라는 말 기억하시죠?
선과 악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날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날이.. 종말의 날인데
그러나 그것이, 그 하나님의 날, 그 주님의 시간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도래한다... 그랬습니다.
이게 미래이지만, 현재입니다.
하나님이, 그 억울한 일들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셔서 필요할 때에 개입하셔서 정리해 주실 줄 믿습니다.
선과 악이, 옳고 그름이 드러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헌신과 수고, 희생의 눈물을 다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실 줄 믿습니다.
언제요? 딱 지금 쯤이면 좋겠는데, 딱 지금쯤
'하나님 요거 좀 딱 선을 그어서, 교통정리 해 주시면 좋겠는데...'
여러분 그게 우리의 판단이고요. 그때조차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거예요.
맡기면 조급함이 사라집니다.
여러분, 모든 일에 있어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이 승리할 줄 믿습니다.
결국에는 믿음이 이깁니다.
그게 언제인가요? 그것조차도 하나님께 맡겨야 돼요.
맡기는 믿음은, 미래의 승리를, 오늘의 여유로 살아가는 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 하나님이 일하실 것은 압니다.
그러나 맡기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 불안한 거예요.
미래에 이길 건데.. 그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힘이 오늘로 들어와서,
오늘날 우리가 여유있게 능력있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맡기는 믿음'에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나에게, 그 (맡기는) 믿음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맡기는 만큼 평안을 누리고, 맡기는 만큼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게 우리의 미래에 대한 믿음입니다.
◑2. 두 번째는, 참으십시오.
2: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위 구절은, 당시 종들, 노예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노예들에게 생각을 주문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직장에 그런 상사들 많죠.
'넌 생각하지마. 너 판단대로 하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해!'
내가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했고요. 치열한 경쟁 뚫고 입사했는데,
나도 웬만큼 아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 부장보다 내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러니까 답답하고 한숨이 쉬어지죠.
일의 의미도, 삶의 재미도.. 꿈같은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전서는 '생각하라' 그러거든요.
당시에 종들에게는 대단히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는 살아있는 도구'라고 말했습니다.
로마 시대에 바로 라는 사람이 '농업 경영'에 대한 책을 썼어요. 꽤 유명한 책인데,
'농기구가 세 가지가 있다. 그 중에 하나, 노예는 말하는 도구다'
'쟁기나 이런 게 말 못하는 도구라고 하면, 노예는 말하는 도구다' 라는 거죠.
'당시 사람들에게 노예는 지시를 수행할 뿐,
도덕적 사유나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소유물이었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단하는 윤리적 주체가 아니었다'
근데 여러분 성경은 노예들에게 '생각하라'고 합니다. :19
그것도 일을 하는 어떤 궁리가 아니라,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삶의 태도에 대해서
궁극적인 자기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은, 대단히 현실적인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그런 말을 하잖아요. '일사불란하게'
어떤 조직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러는데요.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 되기 힘듭니다.
눈에는 일사불란해 보여도요.
그 안에 들어가면, 전부 다 각각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 물어보세요. 팀원의 생각이 각자 다 달라요.
하나님은 행동을 말하기 전에, 생각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뭘 생각하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하나님을 '생각하므로' 라고 하는 이 단어는, 원어로 대단히 독특한 단어입니다.
'생각하므로' 수네이데시스 :19
원어로 번역하면 '하나님을 생각하므로'는.. '하나님의 양심으로' 라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양심이 내 안에 들어와 있다'
여러분, 이 수네이데시스 에서
순 .. '함께'
에이데시스 .. '본다 안다'
내가 누군가를 보는데, 어떤 일을 보는데 '하나님과 함께 바라본다'는 거죠.
하나님과 상의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양심으로'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나와 함께 이 세상을 본다는 거예요.
예전에 내가 어떤 사람을 볼 때는, 그를 무시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이 계시면, 무시할 수 없죠.
예전에는 어떤 일을 만나면, 또는 어떤 사람 앞에서 불안해지고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면요.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말씀에 '하나님을 생각하므로 슬픔을 참아내면 아름답다' :19
그 아름다움울 수 있는 힘이, 즉 슬픔을 참아내고 견딜 수 있는 힘이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시각이 내 안에 들어올 때에,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보고, 세상을 볼 때에 가능해진다는 겁니다.
그게 우리의 현재의 힘입니다.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본'이라고 번역되는 헬라어는 휘포그람모스 입니다. example
이 말은, 당시에 아이들이 글씨를 배울 때에
어른들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의 밑에 글씨를 써줍니다.
그 위에 대고 따라 쓰면서, 글을 쓰는 거예요.
여러분 옛날에 글 배울 때 그러셨죠. 영어 ABC 필기체 배울 때,
밑에 점선으로 되어있는 거 따라 쓰는 거예요.
내 마음대로 쓰는 게 아니라, 점선을 따라서 쓰는 게.. 이게 '본'을 따르는 겁니다.
그 '본(밑그림)'을 따라서, 차근차근히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 따라가는 길이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미 이 땅을 살아가셨어요. 예수님의 삶이 우리의 밑그림(본)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될 점선 글씨라는 거예요.
'욕을 당하셨지만 맞받아치지 않으시고,
억울한 고난을 당했지만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잖아요.' “21
그 결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 거류민과 나그네들, 그리고 노예들
오늘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난을 많이 받으며 살았지만,
그들이 가졌던 신앙,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어떻게 대했는가요?
1) 첫째로, 내 신앙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계기라는 거예요.
여러분, 저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아닌가는... 평소에 잘 몰라요.
평탄할 때는 잘 몰라요.
그러나 억울한 일 당해보면, 그때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면.. 그의 신앙이 드러납니다.
2) 두 번째로, 이렇게 당하면서 참는 과정이,
신앙훈련,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의 핵심입니다.
신앙훈련, 제자훈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억울한 일,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서, 거기서 믿음의 근육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에 보면,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서 너희에게 본을 기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의 본을 따라, 자취를 따라가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거예요.
우리를 부르신 바는 그 이유입니다.
그냥 예수 믿고 복 받고, 천국 가자.. 그게 아니고, 그걸 물론 포함하지만,
'예수 믿고, 예수 따라가고, 예수님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표인 줄 믿습니다. *성화
그래서 여러분 밑글씨(본)를 딱 써주셔서.. 그걸 따라가면 돼요.
'밑글씨를 써주셨다' 이게 뭡니까?
이건 '그냥 배워라'가 아니라, '참조해라'가 아니라
'알아두면 좋을 거야' 이게 아니고요.
이게 필수 과정이에요. 그대로 따라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억울한 일을 감내하고 참아내는 것은,
예수 닮아가는 과정이요, 신앙인의 필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고난 당하지 않고, 억울한 오해 받아보지 않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가요?
저는 모르겠어요. 그런 사람이 있는지...
이거는, '우리가 예수 닮기 위해서, 하나님이 일부러,
우리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 일부러 고난으로 밀어넣는다' 그 말이 아니고요.
우리 삶의 기본 값이.. 답답하고, 자주 억울한 일 당하고, 뜻대로 안 된 일들이 많고,
선을 행하고도 욕을 먹는,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이 세상에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고난을 뜻합니다.
모든 사람의 삶에 있는 아픔, 억울함, 슬픔... 그것을 참고 견디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임직식 때, 우리 임직자들이, 그리고 온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이 찬양을 했습니다.
'우리 걸어가는 이 길이, 결코 처음 밟는 길은 아니야
수천 년 동안 온 땅 곳곳에서 주님 따른 흔적이 있으니
우리가 가는 이 길이 낯설고 두려워 보일지라도
삶의 무게를 뚫고 흘러들어오는 주님, 부활의 생명을 봐'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쓰신 밑글씨(본)를 따라서,
쓰고 쓰고 또 써서, 그렇게 기역 니은 배운 사람들이 성장해서
오늘 우리 교회 121년 역사가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손잡고 함께 가세. 낯설고 두려워 보일지라도'
누구에게나 쉬운 길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존경하는 신앙의 정말 귀한 훌륭한 어른들도요.
처음부터 그분들이 그런 게 아니라,
ABC 배우듯이.. 기역, 니은 배우듯이..
글자 하나하나 따라 쓴 아이들이... 성장해서 훌륭한 사람들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글자를 배운 아이들이, 더 커면 미분, 적분도 하고요.
소설도 쓰고, 영화도 만들고요. 아카데미 상도 받고요. 멋진 빌딩도 짓고요.
반도체도 만들고, 나라도 경영하고요. 선교도 하고요. 노벨상도 받는 거예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받으면서, 수락연설을 이렇게 했습니다.
「여덟 살 때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주산학원의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맹렬한 기세여서,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현관 처마 아래 모여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습니다.
도로 맞은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듯
그 처마 아래에서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발을 보며,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느끼며 기다리던 찰나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과 건너편의 저 모든 사람들이 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저 비를 보듯 저 사람들 하나하나가 비를 보고 있다.
내가 얼굴에 느끼는 습기를 저들도 감각하고 있다.'
그건 수많은 1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었습니다.」
8살짜리 꼬마가, 주산학원 갔다 오는 길에,
내리는 비을 보면서, 꺠달은 문학적 감수성!
그때부터 이미 여러분 노벨상을 향한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던 거예요.
그것보다 훨씬 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한강 작가가, 노벨상 수상 작가가,
밑글씨를 따라서 기역, 니은 배우고 가, 갸, 거, 겨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 이전부터 뭔가가 그 안에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그게 신앙입니다. 예수님 따라가면서 하나하나 예수의 발걸음을 따라 배우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성장시키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사용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신앙의 기본을 배운 아이들 가운데,
이런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나오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쉽지 않습니다. 설교 서두에 '내 영혼이 찌그러진다' 그랬잖아요.
깡통이 찌그러지는 거는 압력 때문이죠.
외부 압력은 센데, 내면의 힘이 없으면.. 찌그러지게 돼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의 삶에서, 외부의 압력은.. 조절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면의 힘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예수로 충만하면.. 이 모든 압력을 이겨내고,
짱짱하게 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정리하면, 미래의 심판주가 계시고,
둘째로 현재에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고, 과거의 밑그림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라 살 수가 있는 거예요.
◑3. 이렇게 살 때 하나님 주시는 선물이 무엇입니까?
2: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카리스)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카리스)'
'선을 행하고 고난을 받고 참는 과정을 통해서, 아름다운 삶이 주어진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말을, 헬라어로 보면 '카리스'가 두 번 겹쳐 나와요. ↑
'카리스'는 원래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은혜'라는 말을 넣어서 읽어보면
19 '...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은혜니라 (카리스)'
20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은혜니라(카리스)'
'선을 행하고 고난받고 참는 것이 은혜입니다' 라고 말하는 이유는,
1) 첫째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삶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참을 수 없고 버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맡길 때, 하나님이 그 빈 공간을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그 삶이 밖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보여주는 삶이 되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영어로 표현하자면 It's graceful 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말에 '아름답습니다'라고 번역한 것은, 그 뉘앙스를 정확하게 캐치한 겁니다.
원어는 카리스(은혜, 선물)지만, 실제로 말의 쓰임새는 '아름답다'는 말에 가깝습니다.
이게 왜 그런가 하면요,
자, 예수 믿는 사람은 이게 은혜인지 알아요.
그래서 똑같은 사람의 삶을 이쪽에서 보면 '은혜'예요.
그런데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은혜'가 뭔지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눈에 보여요. 뭐라 그래요? '아름답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는 은혜인 줄 알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름답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It's graceful.. 저보고 번역하라 그러면 '참 우아한 삶입니다' 라고 번역하겠습니다.
'그레이스플'을 '우아한'이라고 자주 번역하거든요.
특별히 이 말을 들으면 생각나는 말이, 요즘 아주 유행합니다.
에이징 그레이스플리' .. '우아하게 나이 들기' aging gracefully
뭐 나이 들기 싫죠. 다들 젊어 보이고 싶죠.
그래서 요즘에 화장품 '안티 에이징' 제품이 많이 나오지요.
그런데 여러분 아시죠.? 안티에이징 그거 불가능한 겁니다. ☞ ▣웰 에이징 설교모음
속지 마십시오. 조금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 아름다운 것은, 나이 안 드는 게 아니고, 제 나이에 맞게 우아하게 나이 드는 거예요.
우리 교회에도 그런 분들 많이 계십니다.
만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세월의 품격이 느껴지고요.
말에 무게가 실리고 푸근한 하나님의 사람들,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시대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날 서울에 있는 [기아대책본부]에 가서 설교했는데,
이제 회장님하고 임원들과 같이 만나서 얘기하면서, 그런 이야기해요.
본래 '기아대책', 기아는 뭐예요? 굶어 죽어가는 사람을 돕는 거잖아요.
근데 이게 이제 본래 출발부터, 국내 사역도 하고, 국외 사역도 하거든요.
해외 사역은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한테 가서 사역하면.. '기아대책'이 맞습니다.
근데 한국은 문제가 있어요. 굶어 죽는 사람들이 별로 없잖아요.
한국 안에서는 기아가 없으니까, '기아 대책'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뭘 할 것인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랫동안 배고픈 시대를 살았기에 그래서 '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로
살아왔습니다. 식당도 '좋은 식당' 그러면.. '양을 많이 주는 식당'이었어요.
제가 대학 때, 우리 대학 앞에 인기 있었던 식당을 생각하면
'전부 다 양을 푸짐하게 주는 식당'이었어요. 지금은 다르죠.
근데 그것도 한 단계 넘어서는 문화적 현상이 생기고 있어요.
여러분 요즘, 한 3, 4년 됐나요?
한국에 갑자기 유행하기 시작한 말이 파인 다이닝 입니다. fine dining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란 말이 유행인데,
이 파인 다이닝 식당에 가면, 스테이크를 요만큼 (조금) 주고,
음식값은 일반 스테이크 집의 몇 배나 받죠. 모르는 사람이 가면 깜짝 놀랍니다.
여러분, 진짜 파인 다이닝은요. 뭘 목표로 하는가 하면, 양도 아니고, 질도 아닙니다.
'격'이에요. 격! 디그니티! dignity
그러니까 인테리어도, 조명도, 음식을 닫는 그릇과 모양새도.. 세련되어야 되구요.
특별히 파인 다이닝의 승부는, 그걸 서빙하는 사람들이 세련되어야 돼요.
그렇죠. 뭔가 격조 있는 대접을 해줘야 됩니다.
손님도... 진짜 파인 다이닝 식당에 가면, 슬리퍼 신거나 반바지 입고는 못 들어갑니다.
저는 미국에서 어디 손님이 오셔서, 꽤 괜찮은 식당에 모시고 갔다가
반바지 입고 갔다가 못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좀 차려입고 가야 돼요. 격조를 요구하는 거죠.
시대가, 여러분 양의 시대에서 → 질의 시대로,
질의 시대에서 → 격의 시대로 급속히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그게 이제 '파인 다이닝 현상'인데,
여러분 멋진 음식 잘 담아놓고, 조명 잘 켜놓고, 인테리어에 비싼 요리...
그리고 명품 양복 입고 식탁 앞에 앉아 있어도,
만약 그들이 하는 대화가 낄낄거리고 저급하다면... 그건 격조가 아니죠. 품격도 아니죠.
진짜 품격이 뭔가요? 그건 인격이잖아요.
초대교회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옛날에,
이미 이 '품격의 시대에 가 있었다' 저는 그런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결국 베드로전서 전체의 메시지가.. 좀 품격있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하는 이야기에요.
어떻게 우리가 예수 믿고, 예수만큼 품격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분 격과 비슷하게 '우아하다'는 말을, 프랑스어로 엘레강스라고 그러잖아요.
옛날에 동네마다 '엘레강스 미용실'이 다 있었는데, 그 엘레강스입니다.
근데 이 말이 본래 라틴어 엘리게레(eligere)'에서 유래했습니다.
그 말은 의미 '선택하다', '골라내다'라는 뜻입니다.
'우아함' 과 '선택'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본래 엘레강스라는 말이, '좋은 것을 신중하게 잘 고르고 선택하는'
그래서 '안목이 있는, 취향이 고급스러운' 이렇게 말이 발전되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아함'은 선택의 결과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돈이 굉장히 많아요. 명품으로 치장을 해요.
이것 저것 돈으로 휘두르고 다녀요. 그렇다고 우아해지는 게 아니라는 거죠.
미소가 우아하고.. 말투가 우아하고요.. 품격 있는 사람... 그게 진짜 우아함이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사람이 '우아하다'는 것은, '은혜롭다'는 것은, '품격이 있다'는 것은,
오랜 선택의 결과입니다.
화내고 싶을 때 참고,
쏘아붙이고 싶을 때에 부드럽게 웃어주고,
한마디 해야 되겠다 싶다가도 침묵하고,
내가 양보하고, 내가 손해보는 선택...
그 오랜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 품격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말을 꼭 해야 될 때도 '어떻게 하면 저분이 상처 안 받게' 기도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
하나님의 양심을 그 안에 가진 사람,
그 노력이 쌓여서 사람의 품격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화내고 싶을 때 참고,
쏘아붙이고 싶을 때에 부드럽게 웃어주고,
한마디 해야 되겠다 싶다가도 침묵하고,
내가 양보하고, 내가 손해보는 선택...
그거 평생 안 하는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평생에 단 한 번도 안 하는 거예요.
진정한 크리스천(내면이 변화된 성도)이라 말하기 어렵죠.
그런데 그게 처음에는 대단히 어렵지만,
한 번, 두 번만 실천하면, 이때 성령의 은혜가 필요하죠.
세 번부터는.. 의외로 쉽게 됩니다.
그게 왜 안 되고, 어려운가 하면,
평생 그걸 한 번도 안 해봤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더.
한 번, 두 번만 해 보면... 쉽게 격조 있는, 아름다운, 은혜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집이 꽤 많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엄마가 애들한테 너무 짜증과 신경질을 많이 내요.
근데 이 딸이 보니까, 할머니를 만나니까, *엄마의 어머니
할머니는 너무너무 품격있고, 하실 말씀 다 하시면서도,
이렇게 이해해주고 안아주고 할머니는... 너무 멋진 거예요.
그래서 어린 딸이 하루는, 할머니한테 물어봤습니다.
'할머니, 엄마는 할머니 딸이잖아요. 근데 왜 그렇게 다르죠?'
그때 할머니가 하는 말이 '얘야, 나도 너희 엄마 때는
애들 키울 때는 얼마나 조급하고 짜증 많이 내는지 몰라'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 할머니가 어떻게 그런 멋진 할머니가 되었겠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 아니에요.
몇 번이나 속이 뒤집어지고... 하는 거 다 참고, 견디고, 눈물 흘리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앞에서 깎이고...
나 자신의 한계를 처절하게 경험하고, 눈물 흘리고...
그런 가운데서 선한 것을, 아름다운 것을 “선택”한 결과인 줄 믿습니다. *성령의 인도로
우아함은요., 오랜 시간 선택을 통해서 결국 나타내는 열매인 겁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이 드라마의 제목이, 본래 어디서 왔을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추정하기로, 여기서 온 것 같아요.
'친절하라. 내가 만나는 사람 모두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19세기의 스코틀랜드의 한 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
여러분 교회 와서 주위 분들의 얼굴을 보면, 다들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잖아요.
평온한 것 같잖아요. 그런데 아니라는 거예요.
모두가.. 내가 오늘 하루 삶에서 만나고 스치는 모든 사람이,
그냥 평온하게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힘겨운 싸움을, 무언가와 싸우면서 살고 있다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만나는, 우리가 만나는 까다로운 사람일수록
'내가 까다로워야지' 작정하고 까다로운 게 아니고요.
자기 안에 불편함과 불안과 싸움이 있기 때문이에요.
강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실제로는 얼마나 약한지요...
여러분 무례하게 행하는 사람일수록, 얼마나 그 안에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여러분 아시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인간의 시각으로 그런 까다롭고 무례한 사람들을 보면...
분노하고, 그냥 한 대 때려주고 싶지만,
하나님의 양심,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길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에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까다로운 사람' 그러면 직장 상사가 생각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분들은 '사춘기 자녀'가 먼저 얼굴에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아 이 조그만 게 얼마나 까다로운지... 그 까칠함...
'누굴 닮아서 저러지?' 그러지 마시고요. 요.즘 아이들 힘들잖아요.
'오죽 힘들면 저러겠나?'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그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은혜가 있으면, 우리는, 누군가 안아주고, 이해해주고,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삶이, 그렇게 답답한 삶이라 하더라도, 숨 쉴 여유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면,
(캔처럼) 찌그러졌던 영혼들이 펴지고, 회복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참아주고 인내해주고 기다려주는 나 자신,
우리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져 가는 거예요.
그걸 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참 은혜스럽습니다' 그럴 것이고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참 아름답습니다. 우아하십니다. 품격이 있으십니다.'
이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열매를 하나님이 우리 삶에 주실 줄 믿습니다.
그 열매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