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 naver. com/karamos/80087164783 정리
◈실수하지 않으려면 왕상12:3-15 2002년 6월
도입 일화 / 공항 대합실에서 있었던 실수에 관한 에피소드 입니다. 주1)
그런데 우리 생애에 있어서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면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인생의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 옵니다. 그때만큼은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때의 실수는 단 한번이지만 인생 전체가 잘못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는 그런 사람의 대표적인 예가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솔로몬 왕의 아들인 르호보암입니다.
솔로몬 왕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됐습니다.
르호보암이 원로, 노인의 조언을 따르지 않아서 왕국이 분열되게 된 성경 줄거리.. 중략
제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여섯 명의 대통령을 봤는데 하나같이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죽거나 감옥에 가거나 불명예로 끝났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무슨 큰 잘못을 해서라기보다도 잔 실수를 많이 해서 그렇습니다.
특히 대통령 주변에 아첨하는 무리들을 많이 두었다는 겁니다.
바른 말 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하나같이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르호보암 왕은, 노인 같은, 경륜 있는 사람은 무시하고
친구 같은 사람들만 주변에 둡니다. 그래서 악순환이 계속되는 겁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어려움을 많이 겪지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역시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실수하지 않으려면"인데, 그렇게 해 놓고 보니까 너무 밋밋한 것 같아서
고민을 하던 중에, 우리 작은 애가 또 기발한 제목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늘 실수가 소실수 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바늘 실수가 소실수 된다"는 말은 또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은 안되지만 그 뜻을 생각해 보니까 아주 적절한 제목 같았습니다.
우리가 르호보암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될까요?
◑바늘 실수가 소 실수 되지 않으려면
▲1.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겁니다.
신중하게 처리하려면, 서두르면 안 됩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결정해야 합니다.
요즘이 Speed 시대라서 어디서건 속도를 요하고 있습니다.
결정이 조금만 늦어도 우유부단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특히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을 더욱 신중하게 처리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빠른 것을 따르다보면 신중하지 못하게 되고 거기서 실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사숙고해서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급하게 처리해서 실수하는 것보다는 시간이 걸려서 우유부단하다는 소리 듣는 게 났습니다.
△우리나라 도장을 보면 "여기가 앞입니다"하고 하얀 뿔 같은 것을 박아 놓거나
몸통에 표시를 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급 도장일수록 그것이 없답니다.
얼핏 생각하면 고급 재료에 흠을 내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했는데.. 그게 아니랍니다.
도장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중요한 서류에 도장을 찍을 때 어디가 앞인지
도장을 찬찬히 돌려가며 살피면서 여기에 도장을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시 한 번 신중히 생각하라는 뜻이랍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신중히 행동할 것을 몸으로 보여주신 사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시는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예수님께 어떻게 말하겠느냐고 합니다.
율법에는 이런 여인은 돌로 치라고 되어 있습니다.
율법에 따라 돌로 치라고 하면, 사랑을 어기는 것이 되고,
돌로 치지 말라고 하면 율법을 어기는 게 됩니다.
뭡니까?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려 고발할 조건을 찾고자 이렇게 하는 겁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백성들의 신앙생활을 바르게 지도하는데 힘써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 지식을 올가미로 삼아,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볼 때 예수님의 마음속에 분노가 일었을 것입니다.
"이 위선자들아!" "이 회칠한 무덤 같은 자들아!"소리가 나올 만 합니다.
그리고 당장 급한 것은, 그 간음한 여자에 관해서 어떤 대답을 들려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말없이 땅에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쓰셨다는 유일한 기록입니다.
이 때 무엇을 쓰셨는지 알 수 없지만, 요8:7절에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 하는지라"
땅에 무엇을 쓰시는 동안 계속해서 그들이 채근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꽤 오랫동안 쓰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시간을 끈 이유 가운데 하나가,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에 일어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고 했습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하나씩 하나씩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신중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그 여인을 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신중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큰 깨달음을 줄 수 있었습니다.
신중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도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성경본문을 묵상하면서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한 게 있었습니다.
르호보암이 노인들과 자기 친구들에게 각각 의견을 물어본 후,
'한 번 두 그룹을 같이 만나게 해서, 서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굉장한 충돌이 있었겠지만, 그렇게 신중을 기했다면 르호보암은 실수를 하지 않았을텐데...
그런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이 나라(오스트리아)에 살면서, 같이 느끼는 답답함은
뭐든지 우리나라보다 느리다는 겁니다.
인터넷도 느리고, 음식도 늦게 나오고, 사람을 불러도 늦게 오고,
계산대에서 계산도 느릿느릿 하고, 관공서에서는 한 시간 기다리는 건 기본이고...
하여튼 뭐든지 느립니다.
여기서 오래 살았던 저는, 아직도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요즘 생각해 보니까,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사람들은 빨리 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하는 걸 우선으로' 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신중하게 살고 있다는 말도 됩니다.
△엡5:15절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여기에서 '자세히 주의하여' 라는 말은 '신중하여 careful'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항상 시간에 있어서 신중함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제한된 시간이기 때문에!
시간을 사용할 때마다. 물어야 합니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없습니다.
초대한다고 다 갈 수도 없습니다.
누가 감투를 씌워 준다고 다 받을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선택이 필요합니다.
'자세히 주의하여'
이 지혜는 분별력이죠. 내가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분별해 내는 것입니다.
근데 이 지혜가 부족하면, 이것을 놓치게 됩니다.
여러분, 지혜가 부족하면 찾아온 기회를 놓칩니다. 그리고 항상 후회가 남습니다.
나폴레옹이 최후의 시간을 보낸 것이 세인트 헬레나 섬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과거를 되돌아 보며 남긴 말이 있습니다.
'오늘 나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이다' 그랬습니다.
오늘 불행이 그냥 갑자기 온 게 아니라,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들이 보복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기서 반대로 표현하면 뭘까요?
'오늘 나의 행복이 있다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어제 내가 지혜롭게 보낸 시간에 대한 보상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죠.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결정 할 때마다, 하나님께 '자세히 주의하여' 물어야 합니다.
시간에 있어 항상 신중하고, 선택에 있어서 또 신중해야 합니다.
어떤 젊은이가 신호위반까지 하면서, 오토바이로 폭주족인데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더니 게임방으로 들어가요.
르호보암이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은, 그 성급함의 이면에는,
오락이나 유흥 등, 어떤 잘못된 스케줄이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거기에 빠져서.. 정작 중대한 결정은, 사흘만에, *왕상12:3, 12
그 단기간에 내려버리고 말았던 거죠!
그 결과로,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말았고,
더욱이 나라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10지파를 내어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실수하지 않으려면, 경험을 존중해야 합니다.
르호보암은 아버지 때부터 있었던 사람들의 경험을 존중했어야 합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더라도 경험에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배웠던 많은 지식들이 실제 현장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자들의 말을 들어보고 그 경험을 존중해야 합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에 나왔을 때 처음에는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왔다가 이것을 보고 말합니다.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이었지요.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출19: 17∼18).
그런 후에 어떻게 합니까?
경험 많은 이드로는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을 세우도록 합니다.
모세는 그 충고에 따랐습니다.
만일 모세가 경험 많은 장인의 충고에 따르지 않았더라면
모세와 백성들은 광야에서 재판하다가 다 죽었을 겁니다.
출18:13절을 보면, 모세가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는데
백성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재판, 내일도 재판, 재판하느라고 행진할 틈이 없었을 것입니다.
경험 많은 이드로의 충고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행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경험은 지식의 어머니입니다. 그 누구의 지식도 경험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특별히 신앙은 경험이 중요합니다.
성경 읽고 설교 듣는 데서 끝난다면 신앙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경험해야 성장합니다.
성경 말씀을 실제생활에서 적용하는 가운데서 겪는 여러 가지 경험,
신앙원리를 실제생활에서 적용하는 과정에서 겪는 경험이, 우리의 신앙을 성장하게 합니다.
은혜도 경험해야 하고 은사도 경험해야 합니다. 듣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요즘 우리 한국 월드컵대표팀을 보면서 참 많이 생각합니다.
특히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설교
그 사람은 축구에 대해서라면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입니다.
처음에 그 사람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습니다. 강한 팀들과 경기를 많이 가졌었지요.
시합할 때마다 큰 점수 차로 졌었습니다. 오죽하면 한때 별명이 "오대빵(5:0)"이었을까요.
작년에 체코 부르노에 우리 대표팀이 와서, 체코 대표팀과 경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식구가 다 가서 응원을 했는데, 그때도 5:0으로 졌습니다.
여기저기서 감독을 바꿔야 되는 게 아니냐 말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본인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의 생각이 옳았다고 말합니다.
'강한 팀과 많이 싸워서 많이 얻어터지는 게 배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됐다'는 겁니다.
이길 것만 생각하면 말레이시아나 태국 팀을 부르지 왜 비싼 돈 주고 강팀을 부르냐는 겁니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게 옳았습니다. 누구든 다 공감합니다.
선수를 선발할 때도 경험이 많은 선수들을 적시적소에 배치를 했습니다.
결국 젊은 선수들의 패기와 큰 게임에 경험이 많은 선수들을 함께 썼을 때,
극대의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겁니다.
그게 다 일선 감독을 오래 하면서 이기기도 해 보고 져보기도 하고,
자존심 강한 유명선수들을 다뤄보기도 하고 무명의 신인선수들을 키워보기도 한 경험의 산물입니다.
△심리학자들이나 사회원로들의 견해를 들어보면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때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라는 얘기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지적(知的)으로 가장 절정에 달해있고
삶의 대한 경험도 웬만큼 했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런 생각들이 40대에 접어들면서 꺾인다는 겁니다.
이것은 제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봐서도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신중히 행동하라고 말씀드렸지만,
사실은 저부터도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견해에 대한 양보는 절대로 없었습니다.
한때 제 논리의 일관성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젊은 패기와 제 아는 것만 믿고 제 주장만 했던 거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경험자들, 선배들과 더 활발한 대화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특별히 우리교회 형제 자매님들은 그런 연령대에 있습니다.
경험을 존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선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는 않나 늘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분야에 있든지,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서는
그 동안의 경험이 좌우하게 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끊임없이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직접경험을 다할 수는 없겠지요.
여러분께 한 가지 권한다면, 여러분이 어떤 분야에 있든 간에
독서에 열정을 바치시기 바랍니다. *독서는 간접 경험으로 유익
여러분의 예술적 영감은 독서량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조금 더 과장되게 말씀드린다면, 여러분의 나이에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음악적인 재능 역시 점점 시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시집과 소설, 자서전, 수필, 고전과 성경을 손에서 떠나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서 얻은 경험들, 그리고 선배들의 대화 속에서 얻는 경험들은
여러분들을 실수에서 구할 겁니다.
많은 경험을 하고 남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겨,
르호보암처럼 실수하지 않으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실수하지 않으려면 노인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충고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실수 가운데서도 실수였습니다.
작년(2000)에 돌아가신 한경직 목사님은
노인들의 특징을 "완숙"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노인들, 특히 신앙으로 일생을 살아온 노인들은 모든 것이 완숙한 분입니다.
곡식이 무르익는 것과 같이, 모든 실과가 붉고 혹은 누렇게 익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도 완숙하고, 기도하는 것도 완숙하고 습관도 완숙하고, 인격도 완숙해집니다.
청년 시대는 잘 믿는다고 하지만 때때로 시험받고 흔들립니다.
청년 시대에서 나이 많기까지 예수를 끝까지 믿은 분,
그런 분들의 신앙과 인격과 생각은 완숙해서 어떤 환난이나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르호보암 앞에 나온 노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버지 솔로몬 왕 때부터 왕을 도와서 당시에 지상 최대의 강국으로 만든 장본인들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나라가 잘 되고 망하는지를 아는 안목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화려한 성전도 이 사람들이 지었던 것입니다.
왕궁이나 새 도시 역시 이 사람들의 머리와 손끝에서 나왔습니다.
그 광대한 영토를 잘 통치했던 제도나 법규도, 이 사람들의 지혜와 경험에서 나온 겁니다.
무엇보다 신앙적으로나 신하로서나 정절을 지켜왔던 사람들입니다.
자기 친구들은 혹 배반할지라도 이 노인들은 절대로 배반하지 않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르호보암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 노인들의 이야기는 꼭 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듣지 않았습니다. 실수도 이만저만한 실수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말로는 안 그런다고 하지만 노인들을 무시합니다.
몸이 쇠하면, 마음까지 쇠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나이가 먹을수록 판단력은 더 냉철해진다고 합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에 장공 김재준(金在俊)학장님이 계셨습니다.
찬송가261장 "어둔 밤 마음에 잠겨"를 작사하신 분입니다.
이 분은 평생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분입니다.
1901년에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분으로 5공화국과 6공화국 시절에는
이미 연세가 많았지만 변함없이 민주화 운동을 했습니다.
그 연세에도 감옥을 들락거리셨습니다. 이 때 이 목사님이 즐겨 쓰셨던 말이
'노서지곡(老鼠知穀)'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늙은 쥐가 곡식이 어디 있는지 안다"는 말입니다.
그 숨은 뜻이 뭘까요?
"늙은 쥐가 곡식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나라가 잘 되는 길을 알고 있으니
나이 많다고 무시하지 말고 내 충고를 들으라"하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도 연로 하셨을 겁니다.
생각도 늙으신 것 같고 컴퓨터도 못하시고 아시는 것도 점점 더 희미해 갈 겁니다.
음악에 대해서 뭘 아시겠습니까? *회중 가운데 음악전공 유학생들 많음
그렇더라도 부모님의 살아오신 지혜와 경험은 어디서도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을 공경하시고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모든 노인들을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신약성경의 세 기둥은 예수님과 바울과 요한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은 복음서 네 권에 기록되어 있고, 바울 서신은 열세 권입니다.
그리고 요한문서는 요한복음, 요한1서, 2서, 3서, 요한계시록 다섯 권입니다.
이 가운데 나이가 늙도록 활동한 분은 요한입니다.
요한복음 같은 경우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60년 후에 쓴 문서입니다.
그 노인 사도가 쓴 문서가 얼마나 깊이 있고 오묘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른 세 복음서와 요한복음은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퍼 올리면 퍼 올릴수록 더 맑은 샘물이 솟아나는 깊은 우물처럼 느껴집니다.
요한 사도의 연륜이 그런 깊이를 더해 주는 것입니다.
△칸트는 그의 나이 74세에 세 비판서를 완성했습니다.
베르디는 85세에 아베마리아를 썼습니다.
알프레드 테니슨은 80세에 "죽음을 향해"하는 시를 발표했습니다.
괴테는 80세에 그의 대작 '파우스트'를 완성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나이 85세에 성 베드로 성당의 공사를 감독했고 '피에타'를 조각했습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끝도 없습니다.
노인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실수 중에 실수입니다.
레19:32절에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센 머리는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말합니다.
이 말씀에 따라 노인들을 공경하고 그들의 충고를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우리는 실수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실수하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르호보암의 경우에서 보듯이 실수는 자기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하게되면 우선 자신이 망가지고, 그것은 이웃에게까지 영향을 줍니다.
위치에 따라서는 한 나라가 분열되고 멸망하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여럿에게 피해를 주는 실수, 그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보다 신중하게 일 처리를 해야할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루를 넘긴 다음에 해 보시기 바랍니다.
경험을 존중하고 이미 겪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듣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 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3자의 얘기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책을 손에서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노인들은 우리 인생을 보다 자세히 보게 해 줄 겁니다.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분들의 통찰은 우리를 성공으로 안내하는 것이지 실수로 이끌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주님 앞에 우리를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실수투성이인 우리를 보살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순간 순간 주님께 물어봐야 될 것입니다.
"주님! 이럴 땐 제가 어떻게 해야 하지요?" 한 번 하지 말고, 수 십 번, 여러 날 계속 하는 겁니다.
거기에 주님은 대답해 주시고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앞으로의 생애가 일로나 신앙적으로나 실수하지 않는
완숙하고 성숙한 삶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기에 주님은 대답해 주시고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가이오를 멘토링 해주었던 사도요한
요한3서에 나오는 가이오, 데메드리오, 디오드레베는 다 남성입니다.
남성들은 우리 사회의 위기 지점에 있으며,
교회의 남성 사역은 그런 시대적 흐름을 같이 탈 수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2020-2021 학년도에
"미국 대학은 5년 전에 비해 150만 명의 학생이 감소했으며
남성이 감소의 71% 를 차지했습니다." *여성은 29%라는 말
이것은 Covid-19로 인한 일탈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40 년 동안 남성은 2년 또는 4년제 학부 프로그램에 입학한 학생의
비율이 점점 더 적었습니다.
또한 남성은 학위 프로그램을 마칠 가능성도 적습니다.
대학 통계가 성공이나 사회 척도를 정의하는 특성은 아니지만,
이러한 변화는 사회 경제적 계급, 인종 및 지리적 지역에 걸친
남성이 점점 더 덜 참여하고, 동기 부여가 적으며
이것은 결국, 건강한 아버지와 남편이 될 가능성이 적다는 신호를 보내는
요인들 중 하나입니다.
또한 「타임」지에 의하면, 남성은 여성보다 독신일 가능성이 더 높고,
부모와 함께 살 가능성이 더 높으며,
독신 여성보다 성공적인 경력을 쌓을 가능성이 적습니다.
이것이 교회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젊은 남자들은 교회에서 나이 든 남자들에 의해 멘토링 (또는 제자 훈련)
되지 않습니다. 멘토링을 요청하지 않는 청년도 많고
멘토링을 해 줄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노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자도에 대한 성경적 모델은 (부인할 수 없이) 삶의 멘토링입니다.
더욱이 멘토링 관계를 시작하는 것은
나이가 많고 성숙한 신자에게 의무가 있습니다.
영적 멘토가 되기 위해 성경 학자, 목사 또는 실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교회는 상처, 실패의 경험이 있었던 멘토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세대 간 관계가 절실히 필요하며,
젊은 남성들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이러한 우정에 더 개방적입니다.
밀레니엄 세대는 20 대 후반에서 30 대 후반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경력의 전성기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방향타가 없고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멘토링의 가치와 그것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가족과 교회에 미칠 수 있는
다운스트림 효과를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북미 남성의 대다수는 현재 또는 음란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성적인 문화에 살고 있으며,
많은 크리스천 남성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이는 더 깊은 투쟁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남자들에게는 약물 남용, 분노 문제 또는 다른 죄문제로 힘겨워합니다.
이는 멘토와의 관계로, 상당 부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역들입니다.
적어도 멘토의 기도는, 젊은 남성에게 큰 격려와 힘이 될 것입니다.
북미의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가정에서 아버지없이 자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소년들이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모른 채
자라고 있습니다. 그들은 텔레비전, 인터넷, 대중 문화를 통해
남성다움이 어떻게 생겼는지 배웁니다.
당신의 교회는 아버지 없는 소년들을 위해, 그 틈에 설 기회가 있습니다.
남성 여러분, 어린이 사역에, 남학생 사역에 자원 봉사하십시오.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 긍정적인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십시오.
혼자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소년이 여러 명의 긍정적인 남성 롤모델을
가지고 있다면 엄청난 승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그 청년과 그의 미래의 자녀, 손주, 증손주들에게
미칠 수 있는 장기적인 영향을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기본적인 일들을 잘 하는 것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제자도에 집중하십시오.
그들에게 경건한 남자, 남편, 아버지가 되도록 가르치십시오.
모든 교회가 제자도의 부르심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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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공항 대합실에서 있었던, 실수에 관한 에피소드입니다.
어느 여자가 탑승시간을 기다리면서 잡지 한 권과 과자 한 봉지를 샀습니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서 잡지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옆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보니까 옆에 있는 남자가, 방금 자기가 사놓은 과자를 아무 말 없이 집어먹고 있는 거예요.
참, 먹지 말라 그러기도 뭐하고... 또 괘씸하기도 하고,
그래서 자기도 같이 과자를 먹었대요.
그런데 이 남자 좀 보세요. 웬만큼 먹다가 그냥 둘 것이지, 끝까지 다 먹는 겁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하나가 남았는데, 그거마저 반을 자르더니 반은 자기 입 속으로 넣고
나머지는 그냥 놔두고 가더래요.
그래서 그 여자도, 그 반을 먹고 비행기를 탔는데, 영 기분이 불쾌한 거예요.
'세상에 별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 남의 걸 그렇게 한 마디 말도 없이 먹다니...'
그렇게 생각하면서 안경을 닦기 위해서 휴지를 꺼내려고 자기 가방 지퍼를 열었는데,
거기에 보니까 안 뜯은 과자 한 봉지가 있는 거예요.
뭡니까? 그 남자의 실수가 아니라 이 여자의 실수였던 거예요.
그 과자는 원래 그 남자 거였던 겁니다.
오늘 저는 실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런 실수는 괜찮습니다.
그 여자는 한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겠지만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일어날 만한 실수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