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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2장 왜 다른 세대가 일어났는가?

LNCK 2026. 6. 8. 16:33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다음 세대>    <청년, 젊은이>

사사기강해(03)/사사기2:10/‘왜 다른 세대가 일어났는가?’ Youtube

 

◈왜 다른 세대가 일어났는가?           삿2:1~10              [사사기 3강]  

 

오늘은 사사기 2:10절, 한 절을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좀 살펴보겠는데요.

사사기 2:10절은, 사실 사사기 전체를 관통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중요한.. 우리 몸으로 치면 척추 같은 본문입니다.

 

오늘 이 본문이, 과연 이 시대를 살아낼 여러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까요? 우리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완전히 타락한 다음 세대, 다른 세대의 출현

 

삿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러분, 삿2:10절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될 원근법이 있습니다.

카메라를 이렇게 들고 사물을 찍다가, 갑자기 렌즈 초점을 뒤로 쭉 빼요.

그러면 타켓으로 한 사물이 더 넓게, 작게 보이겠죠.

 

그러니까 (2:10절에서) 역사의 시간표를 갑자기 줌으로 쭉 뒤로 뺍니다.

‘그 세대의 사람(출애굽 2세대, 여호수아 세대)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2:10

 

그러니까 과거의 시간을 갑자기 소환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이 본문 자체도 당연히 의미가 있겠으나,

이거를 과거의 맥락에서부터 보겠다는 의도입니다.

 

그러면 ‘어떤 맥락을 도대체 살펴보고자 하는 걸까요?’

삿2:6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전에’

과거의 때를 뜻하죠.

이게 도대체 언제적 시간표를 얘기하는 걸까요?

 

‘전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전쟁을 대강 마친 후에)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 수24:28

 

즉 여호수아가 임종을 얼마 안 남겨놓고 백성들을 모두 소집한 자리에서

‘이제 나는 (하늘나라에) 가지만,

이 땅에 우리를 들여보내신 하나님의 원래의 가나안 정복이라는 목적을,

너희들은 받은 땅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 남은 과업을 성취해라’

 

이렇게 미래에 대한 전망과,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부탁한 내용이에요.

 

자 그런 차원에서 삿2:6절을 다시 한번 보자고요.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라고 되어있어요.

 

▲자 그런데 7절을 한번 보십시다.

삿2: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위 구절을 요약하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이거를 평면적으로 이해를 하면 안 되겠죠.

‘아 여호수아가 생존해 있을 때는 신앙들이 참 좋았나 보다’ 예 그게 맞죠.

 

근데 다른 측면으로 이해를 하자면 무슨 뜻이 됩니까?

이들의 신앙은, 여호수아라는 핵심 인물의 생물학적인 세월을

넘어가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그저 불안불안하게 버텨내고 있었던 이들의 신앙이,

(여호수아의 죽음과 함께) 핵심 엔진이 딱 꺼지면서,

그걸로 끝난 거예요.

 

그러니까 생물학적인 신앙의 계승이 (다음 세대로) 이어가지를 못하고,

물리적으로 거기서 끝난 거예요.

굉장히 슬픈 역사를 암시하는 내용입니다. 2:7절이.

 

삿2: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이스라엘 가운데 (참 신앙의) 엔진이 꺼졌어요.

 

2:9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다른 세대’  *출애굽 3세대

‘다른 세대’라는 말은 이렇게 이해하면 안 돼요.

‘그래도 여호수아가 살아 있을 때는 4.0 버전을 썼는데,

그 엔진이 꺼져 버리니까, 그 다음 세대(다른 세대)는 좀 버전이 낮아졌다.. 옛날만은 못하다..’

이 얘기가 아니에요.

 

이걸 좀 제가 거칠게, 우리 뇌리에 확 와닿게 표현을 하자면,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완전히 다른 종자가 자라더라’

 

근데 그 종자를 두 가지로 설명했어요.

1) 하나님을 알지 못해요.

2) 그러니까 당연히 ‘그분이 행하신 일도 모르는’ 거죠. :10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어요.

 

출애굽 1세대 : 모세 세대, 대부분 광야에서 엎드러짐, 가나안 진입 못함
출애굽 2세대 : 여호수아 세대, 그때 장로들 (2:7), 가나안 진입, 그러나 진정한 신앙 못 보여줌
출애굽 3세대 : 완전히 타락한 다른 세대가 됨 (2:10)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고민해야 될 것은

‘왜 이런 신앙적 붕괴가 왜 오게 됐는가?’를 좀 고민 해봐야 돼요.

그것도 불과 한 세대 만에!

 

어쩌다가 이스라엘 공동체가, 오늘 식으로 얘기하면,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이러한 붕괴가 시작이 되었을까요?’

 

▲그래서 우리가 사사기 2:1절을 좀 보십시다.

삿2: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위 구절은, 하나님이 스스로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이에요.

‘나는 너희들에게 한 번도 고개를 돌린 적도 없고, 외면한 적도 없다.

그리고 반드시 내가 너희를 출애굽해서 건져낼 때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킬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걸고 약속하신 겁니다.

 

삿2: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걸고 그들에게 약속하시고, 또 약속하시고,

그들이 기억나지 않을까봐 또 일러주시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가나안 백성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 그랬는데,

언약을 덜커덕 맺고, 모든 가나안 문화에 젖어들어서,

우상의 신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우상숭배의 제단을 흘지 않았어요.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하나님이 고발을 하시는 겁니다.

 

삿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쫓아내지 않은 가나안 민족들이 ‘너희에게 가시, 올무가 되게 하시겠대요.’

즉,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린 결과로,

가나안 족속들이 너희에게 가시가 될 것이고 올무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십니다.

 

삿2:4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이 일이 벌어진 장소가 ‘보김’인데,         *후에 ‘보김’으로 이름 붙였죠.

그래서 이 ‘보김’이라는 말이, ‘우는 자들, 통곡하는 곳’이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얼마나 많이 울었으면, 눈물로 홍수를 이룬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곳의 지명이 ‘보김’으로 바뀔 정도로 많이 울었어요.

 

게다가 5절을 보시면 이런 표현이 있어요.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이스라엘이 거기서 지명이 보김으로 바뀔 정도로 많이 울었고,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어요.

그런데 그들의 삶은 돌아보니까 전혀 달라진 게 없어요.

 

여러분, 운게 회개한 게 아니에요.

울었다고... 그 정서적 카타르시스는 되었을 망정,

내가 눈물을 흘리고 울었다고... 그게 회개가 아니에요.

 

‘회개’는.. 가던 길에서 돌이켜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게 회개입니다.

근데 정서적 恨 풀이를 한다고... 자기가 회개했다고 속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신앙의 감정’이라는 것은, 조심해서 들여다봐야지, 스스로 속기가 쉬워요.

게다가 그럴수록(울수록), 이들은 종교의 형식만 계속 강화시킵니다.

 

‘나는 울었어.. 제사(예배)도 드렸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했다고 속아요.

그런데 우리가 그 이후에 사사기 본문들을 들여다보면,

이스라엘은 계속 우상숭배 현장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 형식적 회개, 피상적 신앙의 결론은 뭐예요? 다른 세대가 일어났어요.

‘하나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분이 행하신 일이 어떤 일인지도 모르는’  :10

다른 세대가 일어났어요.

 

그러니까 이런 회개를 뭐라고 얘기하냐면,

사사기 1강에서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기계적 회개’의 특징입니다.

 

그냥 감정이 북바쳐서 우는 거예요. 그냥 그런데 삶은 안 바뀌어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뭐라 그랬어요?

 

말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야, 그런 예배 이제 그만 좀 하자. 내가 언제 제물에 목이 말랐냐?

그거 그만 갖고 와라’

더 끔찍한 얘기를 하시죠. ‘이 성전 문을 닫자. 그런 제사는 나는 싫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압제하고, 남의 것을 등쳐 먹고도,

그들의 삶은 탐욕에 붙들려 조금도 달라지지 않으면서,

제사만 드리러 오면, 계속 울고.. 또 회개하고...

또 예배드리고 하면서 종교적인 형식만 강화하는...

‘그런 예배 그만 하자’고 지적하시는 거예요.

 

그런 결과가 뭐예요? 다른 세대가 일어난 거예요.

다른 세대의 특징을 한번 볼까요?

 

삿2: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바알들을 섬기며’

바알은 풍요의 신, 다산의 대표 신이에요.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그러니까 (출애굽 3세대가) 하나님은 몰라요.

 

‘..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그 결과 ‘다음 세대(출애굽 3세대)’는. 더 끔찍한 종자들이 출현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

 

삿2: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이것이 다음 세대들의 특징이에요.

 

◐그러면 여기서 멈춰서서, 우리가 같이 고민해야 될, 생각해야 될 과제가 있습니다.

 

뭐냐면, 이 다른 세대들은 갑자기 일어났을까요?     *출애굽 3세대

‘이제 뭐 여호수아도 죽고, 우리 아버지 세대(출애굽 2세대)도 갔으니까

이참에 우리도 신을 좀 바꾸어 보자! 다른 신을 섬겨보자!’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2:1절서부터 쭉 살펴본 맥락을 보면

그들(2세대)이 계속해서 제단을 헐지 않았어요.

 

그리고 3세대가 ‘아스다롯과 바알을 섬겼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당장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는 것 같고, 효율적으로 보이고, 자기들 눈에 좋게 보여지는

이 가나안 문화를 매력있게 본 겁니다.

 

효율성을 따지고, 즉각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뭐 어쨌든 나한테 이익이 되면 좋은 신인 거지 뭐’

이렇게 철저한 우상숭배의 전형을 (2세대, 아버지 세대가) 따라간 거예요.

 

"바알"은 소유주(lord)란 뜻인데 이스라엘주위에 있는 민족들이 섬기는

(베니게 족속들과 아람 족속들이 섬기는) 신이었죠.

그리고 "아스다롯"은 역시 그들이 섬기는 여신(바알의 아내)이었죠.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찌하여 그렇게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떠나서

이런 우상숭배로 타락했던가요? 이것은 우리로서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죠.

 

그 이유는, 크게 3가지 인데,

1) 그들 베니게 즉 페니키아, 또는 아람 인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잘 살았기 때문입니다.

2) 그들 신전에는 창기들이 있었고, 제사 자체에 어떤 타락한 문화가 가미되어 있어서

사람들의 본능을 자극, 유혹했을 것입니다. 

3) 그들이 참되신 하나님에 대하여 효과적인 증거와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10절).

 

※출애굽기는 : 출애굽 1세대 이야기, 약40년

여호수아는 : 출애굽 2세대 이야기, 여호수아 80세경~110세, 약30년   

사시기는 : 출애굽 3세대 이야기, 이후로 계속 타락한 세대 이어짐

 

자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몇 가지 조금 더 깊이 들어갈 이유가 있는데,

이 다음 세대의 사실상 생태계를 만들어 놓은 사람들은 누구예요?

기성세대입니다. 그 앞에 세대예요.   *출애굽2세대, 여호수아 세대

 

콩 심은 데서 콩이 나오는 거예요. 콩 심었는데 팥이 나오는 법은 없어요.

그러니까 뭔가 생태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다른 종자가 일어났다그 말이에요. *주제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정직하게 자기의 얼굴을 들이미십니다.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여러분, 잊어선 안됩니다.

 

오늘 조그마해 보이는.. 사소해 보이는 내 하루의 삶의 행위들이,

언젠가는 저 먼 시간표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결과로 드러나게 되어있단 말이에요.  주1)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엄중히 생각해야 될 신학적 고찰은,

역사 인식을 가져야 됩니다.

 

‘역사 인식’이라는 것은 무슨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예요.

점들이 모여서.. 점들은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에요.

그 점들이 모여서 우리의 인생이 되고,

인생이 쌓여져서 역사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다음 세대, 다른 세대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세대가 아니에요.

 

▲일찍이 하나님은 신6:6~10 에서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그들이 여호와를 버렸다는 것은, 단순히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삶의 체계, 삶의 철학, 신앙의 체계가 완전히 붕괴됐다는 얘기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신6:6절을 한번 보세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마음이 눈에 보여요? No 마음 볼 수 있어요? 못 보죠.

그래서 여기서 '마음'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우리의 전 인생의 실존적 실체입니다.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일일이 가르치고, 주입식으로 집어넣고 한다고,

뭔가 배워지는 게 아니에요.

 

자녀들은 다 알죠. ‘우리 엄마가 말은 저렇게 해도, 돈 되게 좋아하는 거 내가 아는데...’

자녀들은 그렇게 부모로부터 배우는 거예요.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돌아가잖아요.

 

‘우리 아버지가 저렇게 하면 손해보는 거 뻔한데, 왜 저러실까?’

근데 얼마 있지 않아, 자기도 아버지의 자리에 서게 되면

‘그때 우리 아버지가 그랬지... 그래, 그 길이 맞았어.. 나도 그렇게 걸어가야 돼!’

이게 자녀 세대가 부모로부터 배우는 거잖아요.

귓구멍에 막 (잔소리로) 집어넣어 준다고, 그게 학습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마음에 새기고라는 말은,

실천적인 총체적 삶을 통해서, 우리가 후배들에게,

또 기성세대는 자녀 세대들에게, 어떤 생태계를 만들어주고 있는가를 봐야 됩니다.

 

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실제로 이렇게 하면 애들이 거의 죽어요. 애들이 어떻게 살아요?

그런데 이 말의 진의가 뭡니까?

 

‘이 말을 강론할 것이며’

이 말은, 말씀을 선포하라는 말, 말씀을 풀어주라는 말입니다.

해석하라는 말입니다.

 

△저도 이제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 이 30~40분짜리 설교를 준비하려면,

1) 월요일 날부터 일주일 내내 계속 씨름합니다.

오늘도 주일 새벽 2시까지... 그것도 모자라서 계속 씨름을 해요.

(A4용지 여러 장을 흔들어 보이면서) 그리고 이제 이렇게 원고가 다 준비가 돼요.

 

그런데 그 씨름하는 과정에서 성경이 해석이 되죠.

 

2) 다음은, 이 강단에서 설교하는 그 시간에,

내가 준비한 것과는 상관없이, 내가 준비한 것을 넘어서 하나님이 말씀을 (즉석에) 주실 때가

80~90% 있어요.

물론 준비된 말씀이 토양이 되겠지만요.

 

3) 그러면 세 번째 해석은 어디서 이루어질까요?

당연히 제 삶의 현장과, 말씀을 들은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에서,

그 말씀이 녹아지고 해석이 돼야 돼요.

 

△지난 월요일날, 제가 [킹 오브 킹스] 시사회에 다녀왔어요.

아직 우리말로 더빙이 안 돼서, 원본을 보고 왔는데, 제가 깜짝 놀랐어요.

 

애니메이션에 그런 신학적 고찰을 담아낼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거기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월터 라는 어린아이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 뒤를 따라가요.

예수님이 쓰러지고, 또 십자가를 질질 끌고 가시다가 또 쓰러지고 하니까,

아이는 그릇에다가 물을 담아서, 기회를 봐서 예수님이 목을 좀 축이도록 하려고,

그 물그릇을 들고 가다가... 그만 얘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요.

 

그러니까 이 그릇이 떼굴떼굴 구르면서... 안타깝게도 물은 다 쏟아지죠.

결국 그 물을, 예수님께 드려 목을 잠깐이나마 축이시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제가 시사회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스토리가 성경에 나와있는 얘기도 아닌데, 왜 굳이 이런 삽입을 했을까?’

영화를 보면서 내내 궁금했어요.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 시사회 평하는 인터뷰 자리가 있어서,

사회보는 기자가 ‘작가에게, 감독에게 물어볼 게 있습니까?’

 

그래서 제가 궁금해서.. 장성호 감독에게

‘그 의미는 혹시 이런 거 아니에요?’ 하고, 제가 느낀 대로 얘기를 했어요.

 

‘마지막 십자가의 구원의 완성에는, 어린 아이의 물 한 그릇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고난과, 피 흘린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만 구원은 완성되는 거다!’

 

‘그 의미를 담아내려고, 그렇게 어린아이의 물그릇을 놓치는 그림을 삽입한 거 아닙니까?’

그렇게 질문했더니, 장감독은 놀랍게도 맞대요.

 

그래서 질문했던 제가 더 놀래가지고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그게 신학적인 얘기잖아요) 하셨어요?’

 

그랬더니, 장감독이 저를 이렇게 쳐다보시면서,

‘설교 시간에 다 들은 거예요!’   *우리 교회 성도

 

순간 제게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왔어요.

제가 진짜 놀랬어요. 이런 신학적 지점이, 그 에니메이션 중에 몇 군데 들어있더라고요.

다 얘기를 하면 스포일 되니까, 7월 16일 개봉합니다. 여러분, 꼭 보세요.

정말 잘 만들었어요.

완성도에 있어서는, 영화를 공부한 분들마저도 ‘완벽하다고’ 그러더라고요.

 

△다시 설교의 흐름으로 돌아와서,

설교의 최종적 ‘해석’은, 결국 말씀을 들은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그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이 설교의 완성입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해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7절을 다시 봅니다.

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무슨 얘기예요? 우리의 전 존재와 삶의 시간표 속에서 말씀을 살아내라.. 그 말이에요.

삶이 말씀이 되고, 삶이 그 말씀의 선포가 되도록 가르치고 살아내라... 그 말이에요.

 

그런데 왜 다른 세대가 일어났을까요?

부끄럽지만 기성세대(2세대)가, 그런 토양을 안 만들었다는 얘기예요.

바알을 섬기고, 아스다롯을 섬기고...

이건 단순한 우상 숭배를 넘어서서, 배교를 넘어서서

이거는 여호와를 저버린 토양의 결과입니다. *3세대, 다음 세대가 완전 다른 세대가 된 것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될 지점이 뭐냐면, 8절을 한번 읽어볼까요?

 

신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여러분, 세 가지를 기도 제목 겸, 결론을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1. 우리는 성공의 기준을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바꿔야 됩니다.

‘성공의 기준을 바꾸라!’

 

2018년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연속극 <스카이 캐슬>, 기억나실 거예요.

거기에 보면 김서영(입시학원 원장) 씨가,

아이들 성적에 불안해하는 부모님이 찾아오면, 꼭 하는 얘기가 있어요.

 

‘OOO의 어머님,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이거 무서운 얘기죠. 왜요? 부모는 지금 불안해요.

‘우리 아이가 떠밀릴까 봐.. 스카이 캐슬에 들어가지 못할까봐..’ 불안해요.

 

서울대 들어가야 되고, 분명히 또 의대를 들어가야 돼요.

그러니까 그 불안에 떨며 찾아오는 어머니들을 향해서, 입시학원 원장이 꼭 해주는 얘기가

‘어머님,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이 말에 어머니들이, 또한 우리가 빨려들어가는 거예요.

 

도대체 누굴 믿겠어요? 이 흔들리는 세상에 학원 원장을 믿겠어요? 아닙니다.

유명한 얘기가 있죠.

하도 엄마가 서울대 의대 혈통을 따지니까,

 

'악착하지 공부해 서울대 들어 가!' (엄마의 열변)

그래서 아이가 합격했어요.

그러곤 떨어져서 죽어요. 이게 최고의 복수라는 거예요.

만든 얘기겠지만... 비슷한 이야기들이 그 드라마에서 나와요.

 

‘엄마가 이거 원했지? 나 합격했어!’

그렇게 엄마의 통제와, 엄마의 욕망을 대리하는 욕망의 폭력 속에 공부했던 애들이

결국 입시에서 성취를 이룬 다음에,

결과는 ‘그 아이가 이미 죽은 아이’라고 말해요. 모든 영역에서!

드라마는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 청년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지표, 성공의 기준은 뭡니까?

연봉 좀 낮으면 어때요? 내가 근무하는 회사가 이름이 좀 없으면 어때요?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크리스찬으로서 떳떳하게 얘기를 하고,

주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그 청년을 볼 때마다 상사들이 뜨끔거릴 정도로, 그 현장에서 정직하게 살아낼 때...

그게 성공이에요.

 

‘내가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고, 내가 누구보다 많이 가져야 성공’이라는 방식,

그건 세상이 가르쳐주는, 세상이 주입한 공식입니다.

예수님! 그분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성공이에요. 믿습니까?

 

▲2. 두 번째, 우리가 바꿔야 될 지표가 뭐냐 하면,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위해서 쓰임받고 사용될 것인가?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고전10:31

 

‘하나님, 제가 감당하고 있는 인생의 한 몫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참 초라하게 보일지라도,

저의 이 작게 보이는 이것을 통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성공한 거예요.

 

그래서 무엇을 가졌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 교회에게 최근에 교육관 건물을 하나님이 주셨어요.

 

‘와 우리에게 멋진 건물 두 동이나 생겼다!’ 그게 자랑이 아니라,

그곳에서 여러분들이 마음껏 하나님을 경험하고,

‘실패를 딛고 어떻게 또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도약할 것인가?’

그 고민을 해야 되겠죠. 믿습니까?

 

▲3.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신앙의 전수傳授’라는 것은 정보 전달이 아니에요.

傳授 : 전해주고, 가르치다

 

신앙의 전수라는 것은, 온 삶으로 살아내는 웅장한 메시지를 드러내야 됩니다.

설득하고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물론 그게 토대가 되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란 말이죠.

 

(삶으로 살아내는) 그 청년을 볼 때 그 자매를 볼 때 ‘저거지...’ 우리가 알잖아요.

뭐가 진짜 올곧게 걸어가야 되는 싸움인지... 우리는 알아요.

 

근데 안 되는 영역이 분명히 있어요.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목말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성공이에요.

 

내가 부족해도, 연약해도...

그러니까 탕자가 온전해질 때는, 아버지께로 의지하여 돌아오는 게 온전해진 거예요.

믿습니까?

 

내가 뭔가 그럴듯한 모습으로 폼나게 준비돼야 온전해지는 게 아니에요.

그걸 ‘완전주의자’라 그래요. 성경은 ‘세상적으로 폼나게 완전해지라’는 말을 안 해요.

 

우리에게 ‘온전해지라’ 그게 무슨 뜻입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허물도 약함도, 누가 다 대신해 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그 안에서 다 만져주십니다. 그게 성경적인 성공이에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끝에는, 항상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질문이 이거예요.

‘너 그래도 네 힘으로 살래? 내 Jesus 힘으로 살까?' 이 싸움이에요.

 

청년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은, 다른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 시대에 은혜로 잘 준비되는

신실한 복덩어리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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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나폴레옹이 최후의 시간을 보낸 것이 세인트 헬레나 섬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과거를 되돌아 보며 남긴 말이 있습니다.

 

'오늘 나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이다'

 

나폴레옹에게 ‘오늘 불행이 그냥 갑자기 온 게 아니라,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들이 보복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기서 반대로 표현하면 뭘까요?

'오늘 나의 행복이 있다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어제 내가 지혜롭게 보낸 시간에 대한 보상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