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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2장 부요한 믿음

LNCK 2026. 6. 9. 10:30

설교본문 색인                       ▣리더쉽, 목회자            <믿어주는 사람>   

https://blog.naver.com/karamos/80055489148

 

◈부요한 믿음                            약2:1~9                          1998.02.01.

 

경제문제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사이에서는,

‘사업’이라는 말과 ‘경영’이라는 말의 개념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사업이 든 경영이든,

그게 그건가보 다 이렇게 그저 보통으로 그 렇게 이해하고 있지만,

학자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좀 더 예민하게 개념을 쪼개서 분석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이해하고 또 비판하게 됩니다.

 

그런 학자적 개념에서 보면 사업과 경영은 다릇습니다.

사업이 라는 것은 돈을 버는 것이요, 경영이라는 것은 사람을 버는 것입니다.

 

사업이라는 것은 돈을 관리하는 것이요, 경영이라는 것은 사람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업이 잘 됐다’ 하는 말은 ‘돈 벌었다’ 하는 말이요,

 

그러나 경영이 잘됐다 하는 말은, 결국은 그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일하게 됐다. 다 같이 행복했다... 그런 말이 됩니다.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구멍가게 주인은, 자기 혼자서 부지런을 떨면 밥술이나 먹습니다.

그러나 사업이 좀 커지면, 이제는 경영에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경영 능력이 있어서, 많은 사람을 모아서 적재적소에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자기능력과 지식과 경험을 십분, 100% 발휘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창의적으로 일할수 있게... 요즘 말로 말면 관리를 잘하고, 교통정리를 하고,

분위기를 만들어 놔야 해요.

 

이 경영을 잘 하는 것, 그러니까 경영을 잘하게 되면, 일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야 돼요.

누구도 기분 나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열심히 일하는...

그런 환경,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경영에 성공했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업가하고 경영인은 다릅니다.

 

▲참 미안하지만... 우리가 지금 어디서 고민을 하게 되는냐 하면,

사업들은 했는데 경영은 못했어요. 경영에서 결국은 실수했다 하는 말입니다.

 

‘경제’라고 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자본이 있어야 하고, 지식이 있어야 하고, 기술이 있어야 하고, 뭐 경험이 있어야 하고...

뭐 이런 얘기를 하게 됩니다. 뭐 노하우가 어떻고, 뭐 이런 얘기를 합니다만,

이거 다 경제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들입니다만,

이보다 더 중요한 최대의 요소는 인간입니다. 사람입니다.

 

이거 모두 다 사람이 하는 일이예요.

그러기 때문에 인간문제, 인간성 문제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소프트웨어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인간 자신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얻지 못하면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렇다면 인간의 능력, 그 사람이 가지는 지식, 또 창의력, 기술

이것을 최대한도로 극대화 할 수 있으려면, 먼저 신뢰성이 있어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든가, 전적으로 믿어준다 할 때,

나는 용기가 생기고, 삶에 보람도 있고, 밤새워 일 해도 피곤하지도 않아요.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다 하고 싶어요.

요즘 말로 하면 ‘충성을 하고 싶단’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아요. 나도 나를 못 믿어요.

일이 이렇게 되면, 자기가 가진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가 가진 지식, 능력 아무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런 고로 이 ‘신뢰성’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예요. 이게 기본적인 것이요.

그건 바로 인간의 문제요, 인간 존재와 인간의 성품에 관한 문제가 되더란 말입니다.

 

신뢰성... 우리는 지금 이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이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것이 아이큐다. 지능지수다.. 하고 생각합니다.

 

또 요즘 와서는 EQ 감성지수가 중요하다.

또는 MQ 이제는 도덕성지수가 문제다.

또는 CQ 지도력의 문제다 했는데, *지도력 지수, Charisma Quotient

제가 한개 더 만들겠습니다. TQ다. 이것은 신뢰성지수다. 신뢰지수!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느냐?'

'당신은 어느 정도에 믿는 사람이 됐느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됐느냐?'

그것이 그 사회를 결정하는 것이에요.

 

가장 무서운 세상이라는 것이 뭡니까? 못 믿을 세상이죠.

나도 못믿고, 너도 못믿고... 그 의심이 점점 극해지면 큰 일이죠.

 

흔히 있지 않습니까? 의부증, 의처증... 이건 살인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그 사람이 지식이 얼마나 있든 없든, 뭐 잘났든 못났든, 아무 소용 없어요.

의처증 환자하고 살면 참 힘들죠. 의부증 환자하고 살면 지옥이지요. 그건 사는 게 아니죠.

 

◑자, 오늘 우리는 바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보니까

예수님의 믿음이 대단해요.

 

예수님의 그 신뢰지수, 신앙 지수가 너무 높아요.

풍랑 이 일어날 때에도 조용히 주무세요.

그 예수님을 깨워서 ‘우리가 죽게 됐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의심하느냐?’

예수님은 마음이 평안하세요. 하나님을 믿으니까.


그런가 하면 또 예수님께서, 그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어요.

죽은 나사로를 장례까지 치렀는데,

무덤을 찾아가서 ‘돌을 옮겨놓으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소리지르는데,

저는 아무리 생 각해도 그 대목은 참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만일에 안 나오면 어떡하죠?

‘나사로야 나오라!’고 소리지를 때에, 안 나오면 그런 국제 망신이 어디있습니까?

 

어쩌자고 무덤 앞에 가서 소리를 지르는 겁니까?

대단한 대단한 깜짝 놀랄만한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의 믿음’을 가지신 스승을 앞에 놓고,

제자들이 너무 부끄러워서 예수님께

‘주여! 우리에 게 믿음을 더하소서’

즉 ‘우리에게 믿음 좀 주세요. 그런 믿음 좀 가지게 해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리는 이야기를 성경에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니까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약2:5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했다.’ 매우 귀한 말씀이올시다.

 

요새 세계적으로 문 제가 된 베스트셀러 책이 있습니다.

프렌시스 후쿠야마 라고 하는 사람이 쓴 책인데 「트러스트」 라고 책입니다.

 

이건 ‘신뢰’라는 말입니다만, 그 말의 뜻이, 개념이 특별하기 때문에

번역하지 않고, 책의 이름도 그대로 <트러스트> 하고 영어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한번 사업하시는 분들은 반드시 읽어 보실만 합니다. 누구라도 권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 이 경제윤리의 문제인데,

경제 윤리에 바탕은 트러스트라는 거예요.

‘신뢰성 지수에 따라서 경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공산주의 사회가 하나같이 경제 적으로 어려워졌죠.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기술이 부족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지도력이 부족해서?

 

아니에요. 공산주의가 경제적 으로 어려워진 이유는 간단해요.

사로를 믿지 않기 때문이예요. 절대 안 믿어요.

 

그래서 비밀 경찰이 있고, 한 사람에게 명령을 하고,

그 뒤에 감시자를 두고, 그 뒤에 그 사람을 감시하는 감시자를 또 두고...

그 뒤에 또 감시자를 두고... ‘삐꺽 하거든 죽여버려라!’ 이렇게 살아요.

 

전부 의심해요. 아무도 못 믿어요.

그러는 동안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잠재력 능력, 지혜, 기술... 다 소멸되고 말았어요.

이게 공산주의 나라가 못 살게 된 이유예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예요. 신뢰지수... 얼마나 믿느냐?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트러스트> 책에서 지적하는 말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국인은 중국인보다도 더 유교적이다’

 

중국에서는 충忠을 강조합니다. 나라에 충성하는 충忠을 강조하는 것에 비해서,

한국은 효孝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중국사람 보다 한국사람이 더 효孝를 중심한...

효孝를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더라 그말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되느냐 하면, 결국은 철저하게 가족지향적 사회가 되고 맙니다.

그것도 협소한 의미에서, 내가 좀 내 새끼, 내 자식, 나밖에는 몰라요. 철저한 이기적이에요.

 

그 결과로 어떻게 되나 봅시다.

양자를 삼을 때도,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은 양자를 삼을 때

친 자식이 없으면, 남의 자식 데려다가 양자를 삼아서,

법적으로 완전한 자기 자식을 만들어서, 이렇게 가족을 만들고, 기업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절대로 그렇게 안 해요.

양자를 삼을 때는 꼭 자기 핏줄, 자기 조카라든가

뭐 하다못해 몇 방울이라도 핏줄기가 이어진 사람... 이렇게 밖에는 못하는 거예요.

 

왜요? 못 믿으니까! 이게 바로 우리의 좁은 마음이에요.

그러면 이렇게 가족지향적 사회가 되면, 전부가 불신 사회가 됩니다.

 

가족들끼리도 이게 친자식냐, 서자냐, 첫째냐, 둘째냐, 사위냐, 딸이냐....

도대체 이건 끝도 없는 거예요. 무서운 불신이 이루어 집니다.

 

그 결과로 이제 보십시다. 우리나라에 큰 기업, 20대 기업을 조사해 보면,

그 가운데 중역의 31%가 가족입니다. 가족들끼리 하는 거에요. 다른 사람은 못 세워요.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에요.

 

결국은 ‘로열 패밀리’말고는, 아무도 못 믿어요.

가족들 다 갖다 앉혀놓고도 ‘이것이 몇 촌이냐’에 따라서 또다시 의심을 하는 거에요.

이렇게 되니까 비가족들은 소외되는 것입니다.

 

가족들끼리 하는 일에, 다른 사람이 거기에 충성해 줄 일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들을 보면, 얼마 하다가는...

다 그 경험도 쌓고, 기술도 좋은 분들이... 다 그 기업을 나와버려요.

그 회사에 더 있질 않습니다.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집안 식구들끼리 하는 일에, 내가 왜 거기서 충성을 하느냐? 언젠가는 쫓겨날 텐데...’

다 나와 버렸어요.

 

그러니까 그 귀한 지식, 노하우가 그냥 빠져나가는데, 그 회사가 잘 되겠어요?

이래서 한국경제가 어려워진 것예요. 불신 때문에!

 

▲자 이제 예를 들어 봅시다. 일본에 김봉학 장로님이라고 계시는데

여러분이 잘 아시는, 존경하시는 어른인데

그 일본에서 세계적인 큰 플라스틱 회사를 경영합니다.

 

제가 거기 방문했을때 깜짝 놀랐습니다.

이 회사 가운데 ‘나와 더불어 30년 이상 여기에 근무한 사람이 100명이 넘는다고’ 그래요.

 

자기 비서를 소개하는데, 그 비서가 24년 됐데요. 자기 하고 같이 있은 지가...

이렇기 때문에 기업이 커지는 거예요.

 

우리는 아무도 못 믿어요. 그 소중한 노하우를 다 짤라버려요. 다 내쫓아요.

다 도망가 버렸어요. 그래서 자기 집안 식구들이 붙들고 있는데,

그런 기업이 이 세계 경쟁에서 어림도 없는 겁니다. 이래서 어려워졌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신용지수’입니다. ‘얼마나 (남을) 믿느냐?’

전적으로 믿어 주어야, 또 믿을 수 있어야,

내가 (직장인이) 생을 바쳐서 열심히 일할 수 있겠는데...

서로 믿을 수가 없으니까... 거기서 오래 일할 수도 없고, 일할 필요도 없어요.

이래서 그 많은 능력들이 다 사장되고 말았다 하는 얘깁니다. *死藏 죽을 사, 감출 장

 

▲여러분 경제가 돈으로 되는게 아니요. 신용으로 되는 거예요.

경제가 일어서고 못서고는, 바로 신뢰지수에 정비례한다는 겁니다.

 

불신은 불행을 초례하고, 불행해 지면 불안해 지고,

불안해 지면 창의력이 다 상실되어 지고 맙니다. 마지막엔 무능해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실 때 유명한 달란트 비유를 말씀합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씩을 주었다.

가서 장사해가지고 돌아왔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에서 칭찬하십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기에 내가 큰 일을 맡기리라’

 

이렇게 칭찬할 걸 볼 수가 있습니다. 누구에게 일을 맡깁니까?

누구에게 돈과 기술과 건강과 능력을 맡기느냐?

착하고 충성된 자에게!

 

여기서 신실이라는 말이나, ‘충성이라는 말이 원래 피스토스 같은 단어입니다.

신실이 곧 충성. 그 신뢰지수에 따라서 일을 맡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구원에 이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을 수 있을 때, 복을 받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을 수 있는 그 믿음은,

우리의 행위, 신실한 충성된 행위로 증거되어야 합니다.

 

결국은 내가 지닌 신뢰지수에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을 또한 타인을 신실하게 믿어야 하고, 또한 역방향으로

하나님이나 타인이 나를 믿을 수 있는,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네요)

 

▲믿음(신뢰)의 뿌리는

오늘 본문 약2:1절에 있는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거기에 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지혜와 그 경륜을 믿습니다.

이 믿음이 기본이요.

 

둘째로는 나 자신을 믿어야 됩니다. 십자가 안에 있는 나 자신을 믿는 믿음입니다.

나 자신에 대한 정체의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믿어 주십니다. 그런고로 나는 소중합니다.

 

그 자신의 정체감, 그 믿음이 아주 중요한 것이요. 현실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웃을 믿습니다.

 

그것은 이웃을 믿기 보다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웃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아내를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남편을 믿고, 자식을 믿습니다. 친구를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나를 믿고, 이웃을 믿게 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듯이, 그 사람도 똑같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셔서, 나를 그 이웃들로부터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더 깊은 뜻 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약2:5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믿음을 부요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거예요.

가난한 자를 택하사...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선택된 자의 기본자세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부요하게 되는 것이 어디서 이루지느냐?

가난 속에서 이루어 지고, 역경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제가 인천에서 목회할때 그런 아주머니 하나를 만나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 재벌에 가까울 정도로 돈이 많은, 사업을 잘 하는 사람인데,

그 부인이 조금 입이 좀 거칠어요. 그래서 욕설을 잘하고 그런 분이에요.

 

옛날 얘기를 하는데, 6.25전쟁 때 피난 다닐때

너무나 어려울 때, 죽 한그릇을 쑤어 놓고, 서로 한 숟가락만 더 먹으라고 권했데요.

‘당신 밖에 나가서 일할꺼니까 한 숟가락 더 떠먹고 가라고’

‘아니 당신이 아이들과 하루종일 수고해야 되니까 당신이 한 숟가락 더 떠먹으라고.’

 

죽 한그릇을 놓고, 서로 더 먹으라고 권하고 할때에,

믿음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행복도 있었데요.

 

요새 와서 사업을 한다고 돌아다니니까, 열흘에 한번 코빼기도 잘 볼 수가 없데요.

그래가지고 그래 이 아주머니가 뭐라고까지 하는고 하니,

‘이놈의 사업 다 망해 넘어져라’ 그러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사람답게 살아봤으면...’ 그러더라구요.

왜요? 신뢰가 없어졌어요. 믿음이 없어졌어요. 이젠 행복도 없어요.

여러분, 이걸 아셔야 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오히려 신뢰가 있어요. 거기에 행복도 있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향할 때
그들로 하여금 많은 고통을 당하게 했어요.

 

그 고난 중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 형제간에 대한 믿음,

이 신뢰지수를 높여 가지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했어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유학시절에... 1964년인거 같습니다.

아주 옛날에 돈을 좀 벌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고학을 하면서 공장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여름방학 한참 더울 때, 가서 일을 좀 해 봤는데,

‘월리암 스포츠’라는 큰 공장에 가서... 강철 공장입니다. 쇠를 깎는 강철을 만드는 거에요.

 

아주 강하고 굳은 쇠를 만드는 공장입니다.

가만히 보니까 쇠덩어리를 불속에다 넣었다가 꺼내가지고

5톤짜리 쇠 덩어리로 한 방 내려쳐요. 때려요. 자꾸 때리고,

또 불속에 넣었다가 꺼내서 또 때리고... 또 집어 넣었다가 뻬서 또 때리고...

그냥 반복해서 때리는 거예요. 왜 이렇게 하냐구요?

 

이렇게 때려야 여기 속에 찌꺼기가 다 빠져나가, 분자와 분자가 강하게 밀착됩니다.

그래서 쇠가 강해지는 거래요. 불순물이 다 빠지고, 순수해지고,

분자와 분자 사이가 가깝게 되어서 강한 강철이 된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그 공장에서 일하면서 그거 하나 배웠습니다.

 

여러분 고난속에서 읽어버렸던 진실을 되찾습니다.

거품같은 것, 위선같은 것, 체면같은 것, 쓸데없는 것 다 벗어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서로 껴안고 사랑할때 진실하게 됩니다.

 

지금같이 거짓 투성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우리 인격 자체에서부터 진실을, 그리고 믿음을 회복해야 됩니다.

 

▲디모데후서 3장이나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말세에 징조에 대해서 말할 때,

‘이 세상 끝에 가면은 재난도 있고, 지진도 있고, 환란도 있고, 전쟁도 있고...’

뭐 많은 어려움이 있겠다고 말씀하실 때,

‘사랑이 식어지며 배신하는 일이 있으리라. 믿음이 없어질 것이다.

서로 서로 잡아주는’ 이러한 불신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보십시다. 마24:10~12

 

그 제자들... 아무리 보아도 우리 가 보아도 시원치 않은 제자들이에요.

예수님을 세번이나 모른다고 도망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 가실때 다 도망가고 말았죠.

 

이런 시원치 않은.. 참 부끄러운 제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믿었습니다.

아무 말없이 ‘내 양을 먹이라. 네가 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해야 할 것이다.

네가 나를 위하여 순교하리라. 너희가 나를 위하여 증인이 되리라...’

 

십자가로 구속한 그 교회, 그 거룩한 백성을

그 사랑하 는 제자들에게 위탁했어요.

위임했습니다. 믿어 주었습니다. 완전히 믿어 주었습니다.

 

사랑이 뭡니까? 사랑은 믿는다는 것이예요.

주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됨을 믿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미래와, 그 소망에 대해서 믿었습니다.

 

오늘은 쓸모없는 자 같으나, 장차 훌륭하게 쓰여질 것이라고 하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미래를 믿었고, 약속을 믿었습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 너희가 나를 위하여 순교하리라. 나보다도 더 큰 일을 하리라...’

전적인 신뢰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생각합시다.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으나,

이제 믿음만 회복할 수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고, 이웃을 믿 고...

믿어야 하고, 또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은 오늘도 이 많은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십니다.

믿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믿게 하십니다. 믿음을 순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신뢰성을 구축하고, 거기서 다시 일으킬 것입니다.

이 은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