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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25장 70년 유배의 레슨

LNCK 2026. 6. 9. 15:2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징계>

70년 유배의 레슨 | 예레미야 25:1-5, 11-14 | 2026.06.07 | Youtube

 

◈70년 유배의 레슨                    렘25:1~14                   2026.06.07

 

두 주일 전에 저는 여기서 운전하면 15분 거리에요.

수원에 유신고등학교에 거기에 채플이 있습니다. 그 체플교회를 ‘산상교회’라고 부릅니다.

그 산상교회 창립50주년 기념예배에 가서, 제가 설교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그 산상교회 제1대 목사예요. 유신고등학교 교목실장을 하면서,

주일 날에는 인근 주민들이 와서 예배하도록, 채플을 열어서 주일예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꼭 30세였습니다. 50년 만에 그 교회에 초대를 받아서 간 것입니다.

딱 가니까 50년 세월이 하루아침에 지나간...

그 세월의 흐름을 온 몸으로 경험하는... 만감이 교차하는 그런 시간을 제가 가졌습니다.

 

◑바벨론 70년 유배의 목적

 

자, 오늘 본문 렘25장을 통해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이 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에 걸친 유배 생활을 할 것과

또 70년 만에 유배 생활이 끝날 것을 동시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렘25: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25: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그렇다면 유다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가서 종살이 한 70년 유배시간의 레슨은 무엇일까요?>

 

▲1. 첫째로, 바벨론 포로 70년은 징계의 시간입니다.

 

25:3 ‘유다의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 왕 열셋째 해부터 오늘까지 23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 우선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유다 백성들에게 꾸준히 지속적으로 말씀하셨지만,

그 백성들이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무려 23년간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을 듣지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 다시 본문 4절을 보세요.

25: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

 

그래서 본문 5절에서, 구체적으로 유다 백성들을 향해

이제 하나님께서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25:5 ‘그가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

 

분명하지 않습니까?

자 하나님이 불순종의 죄악 속에 있는 주의 백성들을 깨우치고자,

선지자를 세워, 또 선지자를 보내어 계속적으로 권면하고 말씀하셨으나,

그들이 돌이키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배(귀양)는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징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2:6절의 말씀을 상기하십시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나님이 관심이 없다면...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세요. 징계도 안 하세요. 야단도 안 쳐요.

그러나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히브리서 12:8절을 다 같이 읽습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여기 유다 백성을, 하나님께서 참 아들로 사랑하시고 대우하셨기 때문에,

그런 고난의 시간이 유배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0년 유배의 시간,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필요했던 징계의 시간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유대 땅은 폐허가 되어 잠든 땅으로, 죽은 땅으로 될 것이며,

저 바벨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간 주의 백성들은,

이방인 바벨론 왕의 노예로서 살아야만 했었던 것입니다.

 

다시 이제 본문의 11절 말씀을 보세요.

25: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따라서 그 70년이라는 시간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압제 아래서 고난을 견디면서,

그들에게 필요했던 훈련을 받아야 하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왜 하필이면 70년이었을까요?

 

(※1차포로 BC 605~ 1차귀환 BC 538까지 약 70년,

또는 성전이 불에 탄 BC 586~ 성전을 재건한 BC 515까지 70년을 보기도 함)

 

그것은 아마도 그 당시에는, 사람들의 보통 수명을 70년으로 보았기 때문에,

70년이면 한 사람이 살고 사라지는...

그래서 완벽한 세대교체의 시간을 주시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90:10절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지금은 우리가 옛날보다 훨씬 더 오래 살게 된 것이죠. 당시는 70세가 보통 수명이었죠.

 

70년이면 당시 바벨론에서 한 세대가 완전히 끝이 나고, 새로운 세대가 일어날 터인데,

그 새로운 세대를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사,

새로운 역사를 쓰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 짧지 않은 긴 시간의 포로기를 통해,

유다 역사를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무관하지 않은 시간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고통에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도 ‘포로기’를 살 때가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그 뜻을 모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무의미한 고통이란 없습니다.

 

모든 인생의 고통의 배후, 특별히 성도들이 경험하는 고통의 배후에는,

역사의 주 Lord 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고통을 통해 주의 뜻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존재하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한한 고통을 경험하도록 버려두시지는 않습니다.

 

▲2. 여기 70년 유배의 시간이 가르치는 두 번째 레슨이 있습니다.

그것은 징계는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경험한 유배의 고통, 그것은 길었지만... 70년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 고통은 결코 무한한 고통은 아니었습니다.

끝이 기다리고 있었던 유한한 징계, 유한한 고통이었습니다.

 

그 고통은... 당시에는 긴 시간 같았지만,

지나고 보면 잠깐, 잠시라는 것입니다.

 

설교 서두에 언급했듯이, 제가 두 주 전에 산상교회에 갔다가 느낀 것이,

그냥 50년이란 긴 세월이 마치 어저께 같아요.

 

50년 전에 제가 섰던 강단에 다시 서니까, 50년이 없어진 것 같더라고요. 잠깐이에요.

여러분, 50년도 잠깐입니다.

 

마찬가지로 70년도 잠깐입니다. 지나고 보면 잠시예요.

연세가 80 되신 분들께 물어보세요. 돌이켜보면 70년도 잠깐입니다.

잠시의 고통, 잠시의 시련, 잠시의 눈물, 잠시의 억압, 잠시의 아픔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옥의 고통을 제외하고는, 영원한 고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하는 징계의 고통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는 고난 속에 있는 흩어진 성도들에게 사도 베드로가 쓴 편지예요.

근데 베드로전서 1:6절의 말씀을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베드로가 흩어진 성도들에게 ‘너희가 근심하는 거 안다. 근데 잠깐이다’ 이 말씀이에요.

‘잠깐 근심’이다! 벧전1:6

 

베드로전서의 끝나는 마지막 장이 5장이거든요.

벧전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그대 (소아시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성도) 들이 고통당하는 거 잘 안다. 그런데 잠깐이다.

그리고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너희들의 삶의 터를, 주님이 마침내 견고하게 하시리라’ 아멘!

 

그렇습니다. 고난이 아무리 혹독하게 경험되었어도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성도를 ‘온전하게’ 만들어주고, 그의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가도록 하죠.

 

(*약2:5에 보면,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했다.’ 매우 귀한 말씀입니다.

 

위 말씀에 깊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약2:5

가난이... 믿음을 부요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거예요.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부요하게 되는 것이 어디서 이루지느냐?

가난 속에서 이루어 지고, 역경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부부사이가 서로 애틋하고, 정겹고, 오래도록 사랑하는 사이인 부부가 있어요.

그 비결이 뭔지 아십니까?

서로 함께 가난의 시절을 버텨냈든지, 함께 역경의 시절을 지나 온 거예요.

 

만약 그 부부도, 풍부한 세월을 보냈고, 함께 순탄한 시절을 지나왔다면,

지금과 같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분, 이걸 아셔야 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오히려 믿음이 있어요. 거기에 행복도 있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향할 때

그들로 하여금 많은 고통을 당하게 했어요.

 

그 고난 중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 형제간에 대한 서로의 믿음,

이 믿음을 높여 가지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했어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의 고난의 세월을 통과한 그들이 배운 것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믿음이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성도에게, 포로기도 주시고, 가난도 주시고, 고난과 핍박도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도, 야고보서도, 신명기도, 본문 예레미야서도.. 그걸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베드로 사도가 이 편지를 쓰던 그 당시에, 성도에게 고난을 제공한 주역은 네로 황제였죠.

네로 황제 때문에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받았단 말이죠.

심지어 나중에 베드로사도와, 바울사도를 순교시킨 인물도 네로 황제입니다. AD 67년 경에.

 

그런데 ‘그 고난도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자, 베드로 사도는 이런 고난을 감내하고 있는 그 당시의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그 고난을 견디고 있는 교회를, 이렇게 재미있게 표현했어요.

그 흩어진 교회를 ‘바벨론에 있는 교회’라고 표현합니다.

 

벧전5: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당시 네로 황제에 의해서 흩어져 박해를 받고 있었던 모든 로마의 식민지,

소아시아(투르키예), 로마, 또한 저 북아프리카 땅에서 고난받고 있었던 백성들을 가리켜서

‘바벨론에 있는 교회’ 이렇게 말하고 있단 말이죠.

 

바벨론 제국은 오래 전에 이미 사라졌어요. 그런데 바벨론에 있는 교회’,

그들 신약성도들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고난이,

마치 옛날 (본문 예레미야 시절처럼)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했던 고난을

연상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벨론에서, 유다 백성들이 연단 받고 훈련 받은 것처럼,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각지에 흩어져서.. 똑같이 훈련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고난은 잠깐입니다. 70년도 잠깐입니다.

지옥만 가지 마십시오. 지옥의 고통이 무서운 것은,

그곳은 세세토록 영원토록 지속되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계20:10절의 말씀을 보세요.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얼마 동안 괴로움을 받아요? ‘세세토록!’

그게 지옥이에요. 고통이 영원토록 끝나질 않아요. 그래서 지옥 가지 말라는 말이에요.

 

마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서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지옥은 본래 마귀와 마귀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비된 거예요.

사람들이 왜 지옥에 가느냐? 살아 생전에 마귀를 따르기 때문에 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성도들을 위해서 지옥을 준비하지 않았어요. 마귀를 위해서 지옥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마귀를 따라가니까... 마귀와 함께 지옥에 가는 거예요. 계20:5, 마25:41

 

지옥이 무서운 것은, 그곳에는 영원한 꺼지지 않는 고통의 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고통은 유한합니다. 잠깐입니다.

그러므로 잠깐만 견디십시오. 고통은 지나갑니다. 곧 끝날 것입니다.

고통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옥의 고통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의 잠시의 고난을 잘 견디면서,

장차 다가올 천국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려고,

성도를 천국에 들어가기에 온전하게 만들려고.. 고난과 환란을 통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3. 바벨론 70년 유배의 그 세 번째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세 번째는, 징계의 도구도 징계하신다는 사실이에요.

하나님은 결국 징계의 도구(바벨론)도 징계하십니다.

 

본문 9절에 보시면, 바벨론 통치자를 가리켜 하나님이 뜻밖에

‘내 종 바벨론의 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5:9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 느부갓네살을 ‘내 종’이라고 부른 것은,

그 바벨론 왕이 하나님을 잘 믿었다는 말이 아니에요.

내 종’이라는 말은 ‘내 도구’라는 말이에요.

‘내가 잠시 사용하는, 내가 잠깐 부리는 종이다’ 이 말이에요.

 

하나님은 당신의 구속사적 섭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때때로는 하나님을 안 믿는 불신 지도자도 사용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용하신 다음에는, 그들의 죄악도 심판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니까요.

 

하나님이 시진핑을 쓰실까요? 쓰세요. 얼마든지 사용하세요.

하나님이 푸틴을 쓰실까요? 네 쓰세요.

하나님이 김정은을 쓰실까요? 쓰십니다.

네, 쓰신 다음에 그들도 심판하십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깨우친 다음에는, 그들도 심판하세요.

죄목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 죄!

 

그래서 70년 유배도 끝이 납니다. 본문 12절, 13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25: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13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바벨론)에 임하게 하리라’

 

그래서 때때로 하나님은 악한 나라, 악한 지도자를 부르시사 사용하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깨우치기도 하시지만,

때가 차면 그 악한 나라와 그 악한 지도자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징계의 도구를 징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다음에는 다시 회복시켜서,

그 백성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다시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성가 가운데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란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 말라 네 손 잡아주리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아멘 참 좋은 찬양이죠.

 

오래 전에 영국에 노예를 사서 파는 노예 상인이었던 존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예선에서 일하다가, 그는 옆에 있는 동료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아프리카의 노예가 됩니다.          ☞존 뉴턴 

 

하도 밉게 구니까, 아프리카에다가 그냥 떨궈놨어요.

그 아프리카에 떨어져서 노예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몇 년을 고생합니다.        주1)

 

그 아버지가 소식을 듣고 구조선을 보내서 아들을 구출합니다.

구조선을 타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는 도중 북대서양을 지나다가

그가 탄 배가 폭풍을 만나요. 큰 폭풍과 파도를 만납니다.

 

몹시 배가 흔들리자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하면서, 이 청년이 배의 가판에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저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그런데 기적적으로 폭풍이 가라앉고

그 배가 영국에 도착을 하자 ‘하나님이 나를 분명 살려주셨구나’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그는 다시 또 노예무역선을 탑니다. 한 6년간 탔어요.

그러나 그는 바뀌었습니다. 변화되어서 이제 자기 동료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인격적으로 대하고,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데려오는 노예까지도 아주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하지만 그는 다시 이 노예무역을 하는 동안에 성경을 읽으면서

‘결국 노예무역은 죄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노예무역에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이제 노예무역 선의 선장까지 됐어요.

선장까지 되었던 이 사람이, 완전히 노예무역을 떠납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됩니다. 그가 목사가 되었을 때 나이가 39살에요.

 

그리고 영국의 시골에 가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이분이 시를 잘 썼어요.

날마다 매일 하나님 앞에 감사의 시를 하나씩 썼어요.

 

1773년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가 되자 지나간 자신의 인생의 어두운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거기서 자기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게 생각되어서, 시 한 편을 썼어요.

 

그가 쓴 시 한 편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찬송가,

어디를 가나 전 세계에 크리스천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최고로 유명한 찬송가,

그게 어메이징 그레이스 예요.

 

그게 바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쓴 존 뉴턴 목사님이에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존 뉴턴 목사는. 이후 많은 목회자들에게 존경받는 삶을 계속 살아왔지만,

그가 목회를 하면서 동시에 한 일이 또 하나 있어요.

뭐냐? 자기가 아끼는 정치가가 한 사람 있었어요. 그 정치가와 동역을 했습니다.

그가 아끼던 정치가가 윌리엄 윌버포스라는 국회의원이었어요.  ☞윌리엄 윌버포스

 

그 국회의원과 함께 노예 무역 폐지 운동을 합니다.

자기는 목회자니까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윌버포스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왔어요.

 

그리고 마침내 수십 년이 흐른 후, 영국에서 노예 무역이 폐지가 됩니다.

생각해보세요. 노예 무역을 하던 사람이, 노예 무역 폐지를 위해서 일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 거예요.

 

고난을 통해 그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노예를 사고 팔던 그가,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악의 노예였음을 깨닫고,

그런데 죄악의 노예된 자신을 건져주신 하나님의 큰 놀라우신 은혜 Amazing Grace

그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찬미하고 선포하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고난을 당할 수가 있어요.

혹시 고난이 나의 죄 때문에, 나의 실수 때문에 빚어진 것은 아닌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 앞에 새롭게 서는 사람!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생, 보배롭고 존귀한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경험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하십시다.

 

그렇습니다. 살다 보면 마치 인생이 유배지처럼 느껴지는 고난을 체험할 때가 있습니다.

고난이 올 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혹시 내 잘못이 고난을 초래했다면, 하나님 제가 배워야 할 레슨을 배우게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남은 인생 보배롭고 존귀하게 쓰임받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저를 다시 써주세요.

주님, 보배롭고 존귀한 남은 날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

 

주1) 존 뉴턴이 한 때 노예생활을 했던 이유

존 뉴턴은 영국 왕립 해군에 징집되었다.

하지만 뉴턴은 그의 기질과 도피하려는 열망으로 인해, 해군에서 오래 지내지 못했다.

1744년 그는 탈영해서, 탈영병으로 붙잡혀 채찍질을 당하고 결국 해군에서 쫓겨났다.

 

이 시절에 대해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때에는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조금도 없었고, 양심의 가책도 전혀 없었다.”

 

그는 망신을 당하고, 직위를 박탈당했으며,

그래서 지나가는 상선, 즉 노예선의 선원이 됐다.

이렇게 그가 악명 높은 ‘서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과의 삼각 노예무역’에서

노예 무역업자로 경력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 뉴턴은 몇몇 노예선 동료들과의 불화로, 바다에 있는 동안 투옥되었으며,

거의 굶어 죽을 뻔했고, 그들이 운반한 노예들처럼 사슬에 묶여 감금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아프리카의 셰브로(Sherbro) 부족은

그런 뉴턴을 납치하여, 자기들의 노예로 만들었다.

감금된 자를 해방시켜서, 자기들의 백인 노예로 삼았던 것입니다.

 

1745년부터 뉴턴은 셰브로 부족의 페예 공주의 노예가 되어, 그의 개인 수행원이 되었다.

여기서 그는 다른 노예들처럼 학대받으며, 처참한 노예 생활을 했다.

 

다행히도 영국의 선장이 뉴턴을 구출해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예 상인의 포로 생활 경험은

그를 예전 방식에서 돌이키게 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후에 그의 결정적인 회심은, 풍랑속에서 거의 죽을 뻔하다가 구원받은 사건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