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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9장 내 속도를 하나님의 속도에 맞추라

LNCK 2026. 6. 10. 09:3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삶의 통찰력

내 속도를 하나님의 속도에 맞추라 - (2026-06-07) Youtube

 

◈내 속도를 하나님의 속도에 맞추라        민9:18~23          2026-06-07

 

과식과 과로와 과속은 하나님도 책임져 주시지 않습니다!” .. 아래 설교문 중에서

 

.........

우리가 자주 쓰는 말 가운데 '속도 위반'이라는 말이 있어요.

여러분 언제 속도위반이라는 말을 사용하죠?

정해진 속도를 넘어서 운전했을 때, 그때 많이 사용되죠.

 

그런데 결혼 전에 임신이 먼저 되었을 때도, 이 말을 사용합니다.

손 들어보세요.

 

자, 그래서 오늘은 '속도'에 관한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인생은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거 알고 계시죠?

 

제가 수차례 말씀드렸는데 인생은요, 속도도 중요하지만 방향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면 방향이 잘못되어 있으면, 속도를 낸 만큼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고,

그리고 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방향이 중요한데, 방향만 중요한 게 아니라, 속도 역시 중요하다는 거죠.

 

저는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저희 부모님은 금실이 좋았어요.

그렇지만 한 번도 두 분이 손을 잡고 걸어간 적을, 제가 본 적이 없어요. 제 기억에.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이 손을 잡고 시장을 간다든지, 손을 잡고 교회를 간다든지

그런 때를 본 적이 없어요. 왜냐면 우리 아버님은 굉장히 민첩하시고 걸음걸이가 빠르셨어요.

근데 저희 어머님은 체중이 좀 많이 나가신 편이었어요.

 

그래서 저희 어머님은 항상 빨리 못 가시니까 뒤쳐졌어요.

그럴 때마다 저희 아버님은 앞서 가시면서, 뒤돌아보면서 막 핀잔을 주시고,

어떤 때는 고함도 지르고 그러셨어요.

제가 깨달은 게 뭐냐면 동행을 하려면 속도가 맞아야 된다는 거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도 마찬가지죠. 속도가 맞지 않으면 하나님과 동행하기가 어려워요.

아무리 방향이 같아도 속도가 맞지 않으면 원한 목표와 목적에 이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속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속도에 맞춰야 되는 거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해 내셨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약속했던 가나안으로 그들을  들여보내지 않고,

10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광야로 인도해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않고,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들을 연단하시고, 훈련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까 몸은 애굽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그들의 마음속에는 우상 숭배와

그리고 노예 근성이 남아있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제 광야를 지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구나.. 오직 의지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광야의 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죄의 종이었던 우리를,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던 우리를

구원해 내셨습니다.

구원하여 내신 다음에 곧바로 천국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이 광야의 인생 길을 걷게 하신 겁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이 광야의 인생길을 걷게 하실까요? 그 이유는 뭐냐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 그렇다면 광야를 행진하며 나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뭘까요?

그 첫 번째는요.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지난 시간에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잖아요.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가십니다. 앞서가시는 이유가 뭐예요?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또 앞서가시는 이유가 뭐예요?

우리보다 앞서가시며,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광야를 행진하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선입니다.

나를 바라보지 말고, 나보다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거예요.

 

◑2.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오늘 나누도록 하겠는데,

광야를 행진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

그 두 번째는, <내 속도를 하나님의 속도에 맞추는> 것입니다.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을 따라 이동을 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결정에 따라서 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떠오르면.. 천막을 걷어서 이동을 하고,

구름이 머무르면.. 거기서 정지하여 함께 머물러야만 했던 거죠.

 

그런데 이 이동과 머무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자 예를 들면, 일주일 동안 행진하고, 한 달 동안 쉬고,

또 일주일 동안 행진하고, 한 달 동안 쉬고... 그렇게 정기적으로 이동과 쉼을 하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그 이동이 일정하지 않았어요.

 

어떤 때는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만 머무르고, 아침에 떠오를 때가 있었어요. ↓

민9: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낮이든지 밤이든지 구름만 걷혀 올라가면, 그들은 길을 떠났다' / 새번역

 

밤새도록 짐을 풀고, 이제 막 텐트를 치고, 이제 막 누워서 잠을 자려고 하는데

구름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다시 허겁지겁 텐트를 걷고, 짐을 챙기고, 그래서 일어나서 구름에 그 인도를 받으며

떠나야만 했던 거죠.

 

▲여러분, 이사를 자주 하시는 분이나 여행을 자주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짐을 풀었다가, 다시 짐을 챙겨서 이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사를 자주 하시는 분들은 보니까, 생활에 필요한 짐만 풀어놓고 사용을 하다가,

나머지 짐들은 아예 풀지 않고 놓아두었다가, 곧바로 이사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저도 지난달에 시애틀에서 세 교회에서 집회를 했는데, 교회가 저에게 배려를 해줬어요.

그래서 이동하지 않고, 한 호텔에 계속 머무를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거든요.

제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만 머무르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이틀, 어떤 때는 한 달, 어떤 때는 1년 이상 머물러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따라서 1년 이상 머물러 있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

 

민9: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뭐예요?

광야의 인생길은, 내 속도가 아닌 하나님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거예요.

 

어떤 때는 그 곳이 좀 지저분하고, 그래서 하루라도 더 빨리 떠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떠날 수가 없어요.

 

또 어떤 곳은 보니까, 주변 경관이 좀 예쁘고, 시냇물도 흐르고...

그러니까 ‘여기서 좀 더 오래 지내고 싶다’ 그래도,

그런데 구름이 이동을 하면, 또 구름을 따라 떠나야 되는 거예요.

 

때로는 광야에 모래폭풍이 몰아칠 때도 있거든요. 이런 광야에 모래폭풍이 몰아쳐도 어때요?

그들 마음대로 쉴 수가 없어요. 따라가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 속도가 아닌, 하나님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는요. 내 속도에 하나님이 맞춰주시기를 원하고,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내가 계획한 나의 시간에, 내가 정한 나의 타이밍에,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여러분, 혹시 ‘파이어 족’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어요?

이 말은, 젊은층이 빨리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조기에 은퇴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래요.

*FIRE :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그러니까 20대, 30대의 사람들이, 그냥 허리띠를 졸라매고 젊은 날에는 절약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투자를 해서 돈을 많이 모은 다음에,

평생을 살 수 있는 돈을 모은 다음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인생의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여행하면서 즐기면서 살겠다... 이게 바로 파이어족이래요.

 

그런데 여러분, 인생은요 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인생은 내 시간표대로 흘러가는 게 아닙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내 생각의 속도와 하나님의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자 이사야 55:8절의 말씀 우리 한번 읽어볼까요?

 

사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여러분, 내 생각의 속도와, 하나님의 속도가 달라요.

어느정도 다르냐 하면, 위 구절을 보니까,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라고 그랬어요.

 

여러분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라고 하는 이 말은,

단순히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를 말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인간은요. 언제나 현재만을 보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현재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보십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삶의 한 부분만을 보죠.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이 쥐고 있는 퍼즐 한 조각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에, 여러분의 인생 전체에 완성된 퍼즐을 보십니다.

 

그러니까 관점이 달라요. 우리는 현재와 부분만을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시작과 끝을 보시고, 우리의 인생의 완성된 퍼즐을 보신다는 거예요.

 

또한 우리 인간들은요, 눈앞의 손해와 이익만을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 앞에 펼쳐져 있는 이익과 손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의 유익을 가장 먼저 생각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에 응답을 원하고 결과를 바라지만,

하나님은 내 영혼에 유익한 가장 좋은 때에 응답하시고, 그때에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과 하나님 생각이 이렇게 달라요.

 

▲자, 아브라함을 한번 볼까요? 아브라함은 75세에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심을 받았어요.

근데 고향을 떠날 때 아브라함은 ‘그래, 내가 순종했으니까,

하나님이 약속의 아들을 금방 주실 거야’ 라고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10년이 지나도... 하나님 약속의 아들을 안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의 방법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어요? 25년이 지난 때에, 그의 나이 100세가 되던 해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셨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의 생각의 때가 달랐던 거죠.

요셉도 마찬가지예요. 요셉도 지도자가 되는 꿈을 꾸었어요.

그런데 지도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곧바로 지도자가 되었나요?

아니에요.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겪었어요.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고,

심지어는 감옥에까지 갇히는 수난을 겪어야만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니까, 여러분 하룻만에 총리가 된 거예요.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소년 시절에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어요.

그런데 여러분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왕으로 추대됐나요? 아닙니다.

오랜 광야생활을 거치면서, 훈련 시간을 통과한 다음에, 30세에 이스라엘 왕이 되었던 거죠.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이 생각하는 때가 다르다는 거예요.

이것을 보게 되면, 내가 정해놓은 시간의 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시간의 때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하나님의 타이밍, 하나님의 때가 다르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표를 따라서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역사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나의 때가 아닌, 하나님 당신이 원하시는

가장 선하고 온전하신 때에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내 계획 속에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스케줄에, 하나님의 시간에, 내 삶을 고정시키는 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속도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너무 답답해요.

정말 하나님의 때가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해 보이고,

현실적으로도 너무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여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보게 되면 꼭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 속도가 아닌 하나님의 속도가 맞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기다림의 시간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될 거예요.

지금은 이해가 안 되지만, 우리의 인생 전체가, 우리의 인생 전체의 퍼즐이 완성된 그날에,

아 그렇구나.. 하나님의 때가 맞았구나

그 기다림의 시간도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었구나

하는 것들을 깨닫게 된다는 거죠.

 

그러므로 광야를 행진하는 우리에게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무슨 훈련이 필요하냐 그러면,

내가 정한 시간보다는, 하나님의 타이밍이 더 정확하다는 것을,

내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더 온전하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계획과 열정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추월할 때,

우리는 광야에서 길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속도가 아닌, 하나님의 속도에 맞춰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을 보게 되면,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나님의 속도보다, 자신의 속도가 빠른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우리가 지난 달에 우리 교회에서, 한국교회 중대형 교회 목회자와 사모님 30분을 모시고,

멘토링을 했어요.

그때 강준민 목사님과 함께 멘토링을 했는데,

한 목사님이 강준민 목사님에게 어떤 질문을 했어요.

 

그때 강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과식, 과속, 과로는 하나님도 책임져 주시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요. 과식과 과로와 과속은 하나님도 책임져 주시지 않습니다!”

 

근데 우리는 어때요? 막 과식을 하죠. 그리고 막 과로를 하면서,

당의 수치가 정상이 되게 해주세요. 건강을 지켜주세요.’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안 들어주신다는 거죠.

 

또 우리가 고속도로에 들어가서 운전할 때

막 시속 160Km 로 과속을 하면서 하나님 안전하게 저를 지켜주세요.’

이런 기도도 하나님은 안 들어주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경우에 고속도로에서 이렇게 규정속도를 어기면서 과속으로 달려가듯이,

우리는 내가 설정해놓은 계획과, 내 시간표를 따라서,

하나님보다 앞서 나갈 때가 너무나 많아요. 그래서 길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또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하나님이 움직이셔도,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어요.

성령께서 감동과 감화를 주시고, 여러 차례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삶에 안주하고 싶어서,

미동도 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 또한 문제죠. 그러므로 광야의 인생길을 걷는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앞서 가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려면,

내 속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속도에 맞출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세번째로 광야를 행진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순종이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 구름의 인도를 받아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를 받음에 있어서, 가장 반복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어요.

그게 뭐냐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라는 말이에요.

 

민9: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9:20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광야를 행진하며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서 머물고 진을 치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서 행진하여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즉각적으로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을 했다는 것입니다.

17절과 21절을 보게 되면 ‘곧, 곧’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와요.

 

민9: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9: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곧 행진하였고, 곧 행진하였고’

 

23절도 보게 되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9: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이 ‘곧’이라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그들이 머뭇거리지 않고 즉각적으로 순종을 했다는 걸 의미하죠.

 

하나님의 사람들은요.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즉각적으로 순종을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어요.

아브라함아, 네가 백세에 낳은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

 

근데 창22:3절을 보게 되면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고 돼 있어요.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며칠 시간을 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내하고 상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곧바로 일어나 순종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사라였다면 어떻게 반응했을 것 같아요?

만일 아브라함이 그날 아침에 떠나지 않고, 아내 사라하고 상의를 했다면,

아마 아침에 일찍 떠나지 못했을 거예요. 아마 사라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아요.

‘정말 하나님이 그러셨다고요? 정말이에요? 나는 순종 못해요.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건 안 돼요. 차라리 나를 죽이고, 나를 죽이고 가세요.’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요?

 

아브라함은, 그때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은 명령을 하셨지만, 곧바로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도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너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곧 배와 그물과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4:20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4:22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부르심을 받을 때도,

머뭇거리지 않고 즉각적으로, 그 부르심에 순종을 했다는 것입니다.

 

왜 광야의 인생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머뭇거리지 않고, 즉각적으로 순종을 했을까요? 그 이유가 있습니다.

 

광야의 인생길에는, 하나님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광야를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어요.

 

왜냐하면 광야는 길 자체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못하는지 아세요?

 

저는 이유를 알고 있어요. 하나님 말고도 또 다른 대안이 여러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대안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 앞에 즉각적으로 순종을 하지 않는 거예요.

 

아니, 우리의 기도가 그렇게 간절하지 않는 거에요.

하나님이 내 기도 들어주지 않아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초이스가 있기 때문이에요.

 

왜 광야의 인생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머무르고, 순종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만이 그들의 인생의 해답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대안이 없고,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해답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했을까요?

여러분 이 말씀이 인간의 이성과 상식으로 이해가 되었기 때문입니까? 아니에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상식적으로 이성으로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에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했어요.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이유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이 요구하는 순종은,

한결같이 우리 이상과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말씀 앞에 순종하는 이유가 있어요. 왜요?

그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시고,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인가를

내가 알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좀 더 분명하게 알고자 해서,

묵상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 것은 아주 지혜로운 겁니다.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가를 더 선명하게 깨닫고자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지혜로운 거에요.

 

그러나 너무나 분명하게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선명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의 어떤 안일과 편안함 때문에, 미래에 대한 어떤 두려움 때문에

계속적으로 순종을 미루는 것은, 미적거리는 것은... 참된 순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많은 경우에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하겠다고 말하죠.

여러분 그러지 않아요? 안 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하겠다고 말하죠.

 

성령께서 우리에게 감동과 감화를 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뭐라고 말하죠?

'No'라고는 안 할 거예요. 대신에 ‘나중에 할게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감동과 감화를 주심에도 불구하고, ‘용서’도 나중에 하겠다고 말하죠.

‘기도’도 나중에 하겠다고 말하죠. ‘전도’도 나중에 하겠다고 말하죠.

‘섬김과 구제’도 나중에 하겠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나 여러분, 지연된 순종은 불순종입니다. 우리 한번 따라서 하겠습니다.

‘지연된 순종은 불순종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적으로 미루는 것은 순종이 아니고, 불순종이라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지연된 순종이 아니라,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왜냐하면 다 여러분 경험하셨겠지만, 즉각적으로 순종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던가요? 사탄이 틈을 타서

순종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빠지게 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므로 광야의 인생길을 걷는 우리들 역시,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고, 주님께서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신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계산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 말씀 앞에,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동하고 머무르는 것만이 아니라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도 지켰다라고 되어 있어요.

 

민9: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they kept the charge of the LORD

 

‘직임’이 뭘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맡기신 일을 말합니다.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일이 있었어요.

즉 직임이 있었습니다. 직임이 있었습니다.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는.. 제사장의 직분을 맡기셨어요.

레인들에게는.. 성막을 설치하고, 성막을 철거하고, 성막을 운반하고,

성막의 여러 기구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겼어요.

 

또 레위 자손들 가운데서도 가문 별로

고핫 자손은.. 언약궤와 같은 거룩한 기구들을 운반하도록 했고,

게르손 자손들은.. 휘장과 막을 관리하는 일을 하도록 했고,

므라리 자손들은.. 기둥과 받침대를 운반하도록 했어요.

 

여러분 지금 2백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광야를 행진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무질서하게

그렇게 움직이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무질서한 집단이 아니라, 질서가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이동할 때도, 아무렇게나 막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선두에는 유다지파가 서게 했어요.

후방에는 단 진영을 세워서 보호하도록 했어요. *단, 아셀, 납달리 민10장

 

성막 주변에 하나님이 여러 지파들을 세웠어요.

질서 정연한 가운데에 이동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광야를 행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서 각자 자신에게 맡겨준 직임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직임을 지켰다라고 말하죠. 감당했다고 말하지 않고 지켰다고 말을 해요.

왜 지켰다고 말할까요? 순종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광야를 행진하는 자신들에게 맡겨준 그 일에 대해서 어떻게 했다고요?

지켰어요. 충성했습니다. 순종을 했어요.

 

‘왜 우리 지파에게는 이런 일을 맡겼어요?’

‘저 거룩한 언약궤를 옮기는 일을 맡기지...

왜 하필은 이 무거운 기둥을 옮기라고 했어요?’ 이처럼 불평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그 여호와께서 맡겨주신 직임을 지켰어요.

 

△오늘도 앞서가시는 하나님은, 광야의 인생길을 걷는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직임을 맡기셨습니다.

 

이 교회라고 하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 질서있는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여러 각 사람들에게 직임을 맡기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목사로, 어떤 사람은 장로로, 어떤 사람은 권사로,

어떤 사람은 안수집사로, 또 어떤 사람은 교사로, 어떤 사람은 콰이어로,

또 어떤 사람은 주차봉사로, 다양한 소그룹의 리더로,

하나님이 여러가지 직임을 맡기셨다는 거죠.

 

여러분, 담임 목사가 여러분에게 직임을 맡기신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여호와의 직임’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누가 맡기셨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맡기신 겁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그 직임을 맡기신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그 직임을 잘 지키고 있나요?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맡긴 네 직임을 지켜라. 네 직임에 충성해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이 맡기신 그 직임에,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충성하고 순종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직임만 받고,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권사라는 직분만 받고, 안수집사라는 직분만 받고, 소그룹의 리더,

또는 장로라는 직분만 받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렇게 신앙생활 한다면,

여러분은 주님이 맡기신 일에 대한 직무를 유기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설교는 담임 목사가 할 수 있겠어요? 은퇴한 제가 해야지요.

 

그런데 광야를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서 머무르기도 하고,

행진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여호와의 직임을 지킵니다.

 

결국 광야 40년의 여정은, 단순히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서, 순종의 근육을 키우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근육을 키우라고 말씀하죠?

순종의 근육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우리 옆사람하고 또 한 번 인사하겠습니다. ‘순종의 근육을 키웁시다!’

헬스장에 가서 육신의 근육만 키우지 말고, ‘순종의 근육’을 키워야 돼요.

 

물론 성경을 보게 되면, 그들이 완전히 순종만 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거닐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상을 만들기도 하고,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징계를 받았어요.

 

그렇지만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뭐냐면,

광야의 인생길을 걷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순종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광야의 길을 거닌 우리는, 왜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순종만이 광야를 가장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길만이

이 험난한 광야를 가장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라는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길을 잃지 않고, 광야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광야생활의 핵심은, 능력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 또 똑똑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묵묵히 작은 일에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때로는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하시는지,

때로는 왜 이렇게 사랑의 가시 울타리로 내 가는 길을 막으시는지,

때로는 왜 이렇게 내 가정에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주시는지...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순종하는 사람인가로 우리를 평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마치는 말

지금 저와 여러분은 광야의 길을 행진하면서 저 천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광야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광야의 인생길은 힘들어요.

그러나 우리가 걷는 이 광야의 길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며, 명령을 따라 자기 직임을 지켰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광야의 인생길을 걷는 우리들에게

여러분의 인생 전체의 지도를 한 번에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의 완성된 퍼즐을 단번에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보여주신 적이 있었나요?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요셉에게, 다윗에게

하나님은 완성된 인생의 퍼즐을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 요셉에게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몇 세에 끌려가게 될 것이고, 이런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네가 몇 세에 총리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완성된 인생의 지도를 보여준 적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오늘의 구름을 바라보면서, 오늘 한 걸음 한 걸음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여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완성된 내 인생의 퍼즐이 보이지 않아도,

오늘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한 걸음 한 걸음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는다면

우리는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내 속도를 하나님의 속도에 맞추고,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그 직임에 순종하고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앞서가시며 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사막에도 강을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새일을 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우리 찬양합시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