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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혜는.. 긍휼 왕상3:16-28 2006년 [열왕기상10강]
*원제목 : 솔로몬의 재판
▲본문 설명
본문의 내용은 솔로몬의 이야기에서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는 솔로몬의 재판입니다.
재판의 내용은 한 집에 사는 창기인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두 여인은 각기 3일의 간격을 두고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밤에 한 여인이 자면서 아들을 눌러 죽이게 됩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죽은 자신의 아이와 다른 여인의 아이를 바꿔치기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죽은 아들은 내 아들이 아니고 살아있는 아들이 내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거죠.
두 여인의 쟁론에 대해 솔로몬은 칼을 가져오라 하여 살아있는 아들을 둘로 나눠서
두 여인에게 나뭐주라고 합니다.
그러자 살아있는 아들의 진짜 어미 되는 여인은 아들을 죽이지 말고 저 여인에게 주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죽였으면서도 그것을 감추고 바꿔치기한 여인은 내
아들도 저 여인의 아들도 되지 못하도록 나눠 달라고 합니다.
두 여인의 각기 다른 반응을 보고 솔로몬은 아들을 죽이지 말라고 한 여인이
진짜 어미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솔로몬의 재판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가 어떠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재판과 하나님의 지혜를 연결하여 이해함에 있어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물론 솔로몬의 재판은, 어렵고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한 아이를 두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곤란한 사건을
지혜롭게 해결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곤란한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의 수준이라면
솔로몬이 기도하여 받은 지혜의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요?
문제 해결의 능력이, 지혜의 가치이겠습니까?
솔로몬이 기도하여 받은 것이라면,
세상에는 없는 것이고, 인간의 능력으로도 얻을 수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처럼 어렵고 곤란한 재판을 해결하는 지혜가,
세상에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꼭 하나님이 주셔야만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런 지혜를 세상에서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나름대로 지혜를 발휘하여 해결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재판이 증거하고 있는 지혜의 가치를,
문제 해결의 능력에만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솔로몬의 재판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 세상에서는 얻을 수도 배울 수도 없고
하나님이 주셔야만 받을 수 있는 지혜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두 여인이 한 아들을 서로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사건에 대해
솔로몬의 해결 방법은, ‘칼로 아들을 나누어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두 여인 중 진짜 어미는, 아들의 죽음을 목격해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어미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들을 포기합니다.
이것이 아들을 향한 어미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진짜 어미가 아닌 여인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기에 아들을 죽여 나눠준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여서 나눠 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아들은 죽고, 상대방 여인의 아들만 살아있는 것에 대한 분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솔로몬은 아들을 향한 어미의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기에
칼로 나누라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들을 향한 어미의 마음을 드러냄으로써, 가짜가 누구인가를 증명한 것입니다.
아들이 죽을 것을 불쌍히 여기는 어미의 마음, 그것은 곧 긍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란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왕상3:9절의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지혜로운 마음에 의해 선악을 분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에게 있어서 재판은,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선악을 분별하는 것은, 본래 인간의 소관이 아닙니다.
선악은 하나님만이 분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심으로써
인간이 선악을 분별하고자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악은 오직 하나님의 마음으로만 분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악의 분별은, 단지 착하고 나쁜 것을 가려내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의 재판에서,
단순히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느냐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말하는 여인을 가려내는 것’을 지혜로 여기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지혜가 없을 때는, 거짓말하는 여인을 가려내는 것만 보이지만,
하나님의 지혜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면,
아들을 불쌍히 여기는 어미의 긍휼의 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의 재판이 보여주는 선은 긍휼이며,
악은 긍휼을 무시한 채, 자신의 욕망만을 내어 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재판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불쌍히 여기시기 긍휼이 이스라엘을 살렸음을 보여주는 재판인 것입니다. *주제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에 순종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선이라고 일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휼을 무시하며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능력을 갖고자 하고
세상의 힘에 기대는 것이야 말로 악이라고 규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답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긍휼에 감사할 때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신자에게도 그대로 주어진 원칙입니다.
신자답다는 것은 그가 행하는 행위로 인해서 증거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다스림 받고 살아가는 것으로 증거됩니다.
긍휼의 다스림을 받고 있기에
그에게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마음인 긍휼이 생산되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이러한 원칙 아래서 교회다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지혜, 즉 긍휼의 마음에 의해 다스림을 받고 있다면
교회에서 생산되어야 하는 것은 마땅히 긍휼입니다.
그런데 긍휼은 자신의 것을 지키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같이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긍휼) 받음으로 사망에서 건짐 받은 존재들이기에
그런 관계에서 맺어져야 하는 것은 ‘서로 불쌍히 여김(긍휼)[인 것입니다.
이것이 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 받음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해롭게 하는 것이야 말로
긍휼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기에 악으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다윗언약 아래 존재합니다.
다윗언약에는 하나님의 긍휼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다윗언약에 담긴 하나님의 긍휼의 원칙으로
다스림을 받아야 했던 것이고, 이것을 위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28절을 보면 “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고 말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왕의 판결을 듣고 왕을 두려워합니다.
그 이유는 솔로몬의 판결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그 속에 있음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솔로몬에게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함께 하심을 뜻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솔로몬이 아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계심을 뜻하는 것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왕상3:10-11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라는 내용을 보면,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고 말합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 것은,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자신의 나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을 자신의 나라로 여겼다면 부와 수를 구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부강과 강함은 곧 솔로몬의 부귀영화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로 다스려지는 이스라엘이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를 구한 솔로몬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의 마음을 간절히 구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교회를 바라본다면,
교회는.. 목사나 장로 인간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다스려지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긍휼의 원칙 아래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기준 되어서 선과 악을 분별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큰소리친다고 해도
하나님의 긍휼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
믿음 밖에 있는 것이고, 교회로 여겨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긍휼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곧 지혜입니다.
때문에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는, 세상에서 배울 수도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망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긍휼이 담겨 있는 십자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긍휼에 의해서 드러나는 악은 인간이 인간의 것을 고집한다는 것입니다.
잃지 않기 위해서 기를 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 부흥을 고집하는 것도 결국은 긍휼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있는 증거입니다.
긍휼 앞에서는 교회의 부흥이라는 것도 헛된 것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아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 지혜로 세상과 교회와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어떻게 사는 것이 선한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것이 세상의 것이 아니고,
내 능력도 내 열심도 내 희생도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임을 알게 될 때,
긍휼에 대한 감사함이 여러분의 마음을 채울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