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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3편 하나님의 나라 1

LNCK 2026. 6. 12. 10:3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간증>

하나님 나라 1 : 오직 단 하나 | 시편 23:1 | 2026.06.07 |   Youtube  

 

◈하나님 나라 1 : 오직 단 하나          시편 23:1             2026.06.07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복음 수업을 들으신 분들은 정확한 답을 이미 알고 계시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드리고

우리의 모든 소유권, 모든 결정권, 모든 경영권을 주님께 온전히 양도해드리면 됩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통치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삶에 온전히 임했다면,

그 다음 순간 나의 삶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그곳에.. 참된 생명이, 참된 평강이, 참된 행복이, 참된 자유가,

참된 만족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에는

언제나 감사와 기쁨과 평강이 가득차고 넘쳐납니다.

 

▲자 그런데 지금 이 시간 여러분에게, 한 가지 아주 기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솔직하게 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 나는 참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였습니까?

여러분은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정말 차고 넘쳐나는 평강, 기쁨, 감사, 자유를 경험하고

계십니까?’

 

질문을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 볼까요?

‘여러분의 삶이 순탄할 때 뿐만 아니라, 삶에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이 찾아왔을 때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다스리심 가운데 살아가며 조금도 흔들림 없이

절대 평강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런 분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참 이상하죠?

성경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사람의 삶에는 감사와 기쁨과 평강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에는, 감사와 평강이 넘치기보다는,

걱정과 근심에 휩싸여서 살아갈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사람의 삶에는,

다른 것은 다 몰라도 감사, 기쁨, 평강은 차고 넘쳐나야 될 텐데,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에 메말라 있으니...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해 줄 수 있는, ‘진단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자,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될 텐데요.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이 마음속으로만 솔직하게 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십니까?’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라는 말에

지적으로 또는 교리적으로 동의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 질문은 아주 간단합니다. ‘실제로 그러한가요?

실제 나의 삶에서, 정말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십니까?’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 사람은, 자기 삶의 그 어떤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참된 평강과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사람은,

평생을 신앙생활 하면서도 참된 기쁨과 평강을 모른 채,

걱정과 근심에 휩싸여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가?’

 

▲‘나는 정말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가?’

이 질문이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죠?

그렇다면 다음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나의 삶에 극심한 재정난이 찾아왔습니다.

이제 우리 식구가 어떻게 먹고 살아야 될지가 막막합니다.

 

그와 동시에 관계적인 갈등이 생겼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몸이 너무 아파서 병원을 찾아가 보니,

내가 중환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밤에 잠이 오지 않겠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해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의 하나님 됨이라’ 사41:10

 

자 그렇다면 ‘이 고난의 시간에,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제 안심하고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주무실 수 있겠습니까?

정말 하나님 한 분만으로 행복하십니까?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십니까?’

 

이 질문 앞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쉽게 ‘예!’ 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겠죠.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시23편

이 모든 질문들 앞에 자신있게 ‘예스’라고 답하는 사람을 만나보게 됩니다.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을 기록한 시편 기자인 다윗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겁니다.

다윗이 언제 이 시편의 내용을 기록했을까요?

 

23편의 내용을 보면,

목자와 양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23편은 다윗이 목동 시절일 때 기록한 글이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23편은, 다윗의 노년기에 기록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인생의 굴곡과,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삶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삶에는 참으로 많은 고난과 고통, 역경과 어려움이 있었죠.

 

그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아픔을 겪으면서 자랐습니다.

그가 골리앗을 물리쳤을 때, 한순간에 국민 영웅이 되었지만

사울왕의 시기와 질투를 산 것이 화근이 되어서,

그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왕의 칼날을 피해서, 수년간 도망다녀야만 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군대를 소집하여 자기를 집요하게 추격해 오니,

그가 느꼈을 공포심과 불안감이 얼마나 컸을지를, 한번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왕에 오른 후에도 고난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역경과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 모든 고통 중에 그의 삶에

가장 큰 아픔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압살롬의 반란이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친아들이, 아버지의 목을 향해서 칼을 겨눈 사건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상대로 전쟁을 치러야 되니, 그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겠습니까?

 

자,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죠? 압살롬의 죽음으로 종결됩니다.

아무리 반란을 일으킨 아들이라도, 아들은 아들입니다.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들은 다윗은 절규합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이라고 애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삼하18:33

 

세상에 부모에게, 자기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런 인생의 숱한 고난과 고통을 겪은 후에,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했다는 사실을 알면,

이 고백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인지를 우리는 실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고백입니다. 시23:1

제가 궁금한 것은 ‘과연 이것이 저의 고백이며, 여러분의 고백이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십니까?’

시23:1절의 다윗처럼,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쉽게 답할 수 있는 답은 아니겠죠. 저의 삶을 봐도 그렇습니다.

분명히 저의 삶에도, 예수님 한 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때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의 삶의 고난을 통해서

왜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의 간증

 

제가 텍사스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눈에서 마비 증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눈꺼풀에 쇳덩이를 달아놓은 것처럼, 눈이 너무 무거워서

2초 이상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너무 과로했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날 집에 일찍 귀가해서, 숙면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날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2주의 시간이 흘러도,

상태가 전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저는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병명도 몰랐지만

여러가지 정밀검사를 통해서 병명이 밝혀졌습니다.

의사가 저를 앉혀놓고 이야기했습니다.

‘김우준 씨, 당신의 병명은 중증근육무력증 입니다.

심각한 병이니 빨리 신경과 의사를 찾아가 보세요.’

 

▲그러나 미국의 그 어마어마한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저는,

서둘러서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한국 고대병원에서 이틀에 걸쳐서 다시 한번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정밀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가 나왔을 때 신경과 전문의가 저를 앉혀놓고 했던 말을

저는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김우준 씨, 당신의 병명은 중증근육무력증 입니다.

‘중증’이라는 단어가 붙을 정도로,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심각한 병입니다.

근육무력증이란 문자 그대로, 온몸의 근육을 마비시키는 병입니다.

 

이미 눈과 얼굴에서 시작이 되었고,

이 마비 증상은 온몸으로 퍼져나가서, 팔과 다리를, 손과 발을 마비시킬 것입니다.

당신의 경우에는 중증이기 때문에, 6개월 안에 전신이 마비될 것입니다.

 

그러면 너무나 안타깝지만 식물인간이 되어서

평생을 침대에 누워 지내셔야 되며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실 수 없을 겁니다.

마비 증상이 만일에 호흡기로 퍼지게 된다면, 구급차가 오기도 전에 질식사로

이 세상을 떠나시게 될 것입니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이건 불치병입니다.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강력한 약을 투입해서 마비 증상이 퍼져나가는 속도를

조금 늦출 수는 있겠으나, 아무리 오래 지연시킨다 해도, 1년 안에 전신이 마비될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은 해봐야 되니 빨리 입원하세요.」

 

저는 제가 방금 들은 그 말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멀쩡하던 제가 하루아침에 식물인간이 된다는 소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저에게는 사형선고보다도 더 잔인한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입원실 침대에 앉아서, 창문 밖을 한참을 멍하니 내다보았습니다.

그런 시간이 한 두세 시간 정도 흘러 지나갔을까요?

저는 오랜 침묵을 깨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 인생을 이렇게 비참하게 끝내버리실 거였다면, 왜 처음부터 저를 사역자로 부르셨습니까?

 

저는 이제부터 세상으로 달려나가, 복음을 외치고 또 외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임받기는 커녕,

식물인간이 되어 평생을 침대에 누워서, 내 사랑하는 가족에게 짐 밖에는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지금 제 생명을 가져가세요. 차라리 오늘 제가 죽겠습니다.」 하고

제가 그날 하나님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저는 잘 알고 있었죠.

그 고통의 시간에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솔직히 하나님 한 분만으로 저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하나님 더하기 돈, 하나님 더하기 치유, 하나님 더하기 건강이 있어야

제가 행복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저를 치유해 주셔서 건강이 회복되면,

즉 하나님 더하기 건강이 확보되면.. 행복할 것만 같았어요.

 

만일에 하나님이 저를 취해주시지 않는다면,

적어도 돈이라도 많이 주셔야, 평생을 식물인간으로 지녀야 되는데,

간병인이라도 고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한 분만으로는 못 미더웠습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해주시는 성경 말씀이, 저의 마음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욥기 1:21절의 말씀입니다.

 

욥이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다 잃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10명의 자녀를

한날 한시에 다 떠나보낸 후에, 하나님께 드렸던 고백이죠.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실지어다’

 

저는 그 말씀을 기억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이 제 인생의 주인 되신다는 말씀의 뜻이

구체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저는, 다른 건 다 몰라도, 제 몸만큼은 저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제 몸이 제 거 아닌가요?

그런데 불치병을 선고받고 보니, 그제야 평생 처음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누려왔던 그 모든 것, 저의 생명, 저의 시간, 저의 건강, 저의 몸,

저의 팔과 다리, 저의 코끝의 마지막 생기와 호흡 하나까지도

저의 것이 아니며, 단 한 번도 저의 것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모든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고, 저는 그 모든 것을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다시 나의 삶을 찾아오셔서

그동안 잠시 맡겨놓으신 그 모든 것을 가져가시겠다면 가져가시는 겁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이십니다.’

주인이 주인의 것을 주인의 뜻대로 하겠다는데, 청지기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것을 깨닫고, 저는 병실 침대에서 무릎 꿇고 다시 회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그동안 제가 말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사실은 제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네요.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 순간 눈물이 팍 터졌습니다. 얼마나 펑펑 울면서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갑자기 감사기도가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그동안 수십 년간 제가, 제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제 다리로 직접 걸을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 손으로 수저를 잡고 직접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입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도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저의 가족과 교회 식구들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몸이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갈 수조차 없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많이 있는데,

저는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절망 가운데서도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 입에서 계속해서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 기도를 마칠 때쯤, 제가 한 번도 생각하지도 않았고 의도치도 않았던 말이

제 입술을 통해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날 저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6개월 안에 제 몸이 전신마비가 되어서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제 평생에, 마음으로(입이 마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겠습니다.」

 

제가 한 번도 생각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의도하지도 않았던 말이었기 때문에

이 고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저의 믿음은 너무나 작고 초라했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사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이 고백을 이끌어내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저는 그날 그 고백과 함께, 저의 삶의 모든 소유권, 모든 결정권, 모든 경영권을,

제 인생의 참 주인 되시는 예수님 발 아래 전부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렇게 전부를 내려놓고 보니, 그 다음 순간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너무나 기쁘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참된 평강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평생을 짊어지고 다녔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온전히 다 내려놓는 순간이었습니다.

참 이상하죠? 상황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요.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저는 여전히 환자이고, 여전히 병실에 있었으며, 여전히 불치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상황은 달라진 게 없는데, 저는 너무 기뻤어요. 너무 행복했어요.

참된 평강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저는 그 순간, 생각했습니다.

‘아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진정한 평강이로구나...’

참으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그때 참된 평강을 처음으로 경험해 보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마음이 편했을 때는 많이 있죠.

그러나 세상이 주는 편안한 마음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좌우됩니다.

상황이 좋으면 마음이 너무 편해요.

그런데 상황이 나빠지면 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강은, 그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강, 그 어떤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의 삶을 능히 지탱하사, 폭풍 가운데서도 노력해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후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나는 그동안 이 참된 평강을 모르면서 살았을까?

나는 왜 하루하루 그렇게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살았을까?’

 

생각을 해보니 이유가 너무나도 분명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입술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실제 저의 삶에는 제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주인 행세를 하다 보니, 이제 제 인생 내가 책임져야 됩니다.

문제는 저는 인생을 찾아오는 수많은 고난과 환난과 핍박과 역경과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매일 걱정하고 근심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물론 교회 생활은 아주 충실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순종 잘하다가

 

인생에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삶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될 때에는,

제가 결정권을 거머쥐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선택은,, 다 제가 혼자 했습니다.

내가 제일 가고 싶은 대학교는 여기,

내가 취직하고 싶은 회사는 이곳,

내가 평생 살고 싶은 지역은 바로 여기야... 제가 다 결정해버렸어요.

 

그리고 우리 자녀는 뭐 하나님께 물어볼 것도 없어요.

제 3명의 자녀는 무조건 3명 다 명문대를 졸업하여, 출세하고 성공하여,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아야 됩니다... 제가 다 결정해버렸어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방향 설정을 할 때는, 기도를 하는 무늬는 완벽하게 띄고는 있었지만,

별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마음속으로 제가 결론을 내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제 가장 열심히 기도했을까요?

제 마음대로, 제 뜻대로, 제 욕심대로 아무렇게나 선정해버린

제 인생에 도달하고 싶은 수많은 목적지들을 향해 달려나가다가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때는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오 주여 냉큼 제게 달려오셔서, 이 장애물을 치워 주시옵소서.

주님 제 삶에는 모든 문제와 고난과 역경이 다 사라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정말 간절히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또 기도는 많이 하고 오래 했기 때문에,

‘기도 잘 하는 성도’라고 칭찬이란 칭찬은 다 받았습니다.

아마도 그때 저의 모습을 보았다면, 제가 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무늬는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실제 저의 생활에서는, 예수님이 저의 삶의 주인이 아니셨습니다.

저는 감히 예수님을 저의 ‘행복 도우미’로 취급하고 있었던 겁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죠.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저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 저의 삶에서는, 마치 하나님이 저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인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저의 소원 성취의 도구로 이용하려고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겠죠. 항상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살았습니다.

제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을까봐... 항상 불안했거든요.

 

그런데 그날 저의 삶의 모든 소유권, 결정권, 경영권을

주 예수님의 발 아래 내려놓고 보니, 너무 자유로웠어요. 너무 행복했어요.

(죽을 각오를 하니.. 모든 삶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는 병실에서도, 저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치유를 위해서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전의 저의 삶과, 결정적으로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예전에는요, 제가 최종 결론을 이미 다 내려버렸습니다.

 

‘하나님, 이 병은 꼭 고쳐주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제 뜻대로 정해버린 그 결과를, 내게 내려달라고 떼를 쓰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결정권을 하나님께 넘겨드렸어요.

그러니 제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구하기는 하나, 간절히 부르짖기는 하나,

하나님이 어떤 결정을 내리시던지, 제가 감사함으로 받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받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저를 치유해 주신다면,

저의 건강이 회복된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저를 치유해 주시지 않는다면,

그때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으나,

그 고난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목적이 있음을 믿고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예배’라는 결론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결정권을 온전히 주 예수님께 내어 드리고 보니, 너무 자유로웠어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일까요?

그 지긋지긋한 걱정, 근심, 불안, 염려로부터의 완벽한 자유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혹시 식물인간이 된다 해도 걱정하지 않겠다는데,

이제 저를 걱정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내가 전신마비가 된다 해도 불안하지 않겠다는데

저를 불안케 할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과연 무엇이 있겠습니까?’

 

모든 걱정과 근심으로부터의 완벽한 자유입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예수님이 나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을 온전히 믿으니

고난 중에서도 평강을, 고난 중에서도 자유를,

고난 중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입니다.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 나의 삶의 모든 소유권과 결정권을 주 예수님께 양도해 드림으로써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되시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면, (즉 죽기를 각오하면)

그때부터 진정한 기쁨과 행복과 자유와 평강과 만족의 시작이로구나.

이것이 일생일대 최고의 복이로구나 이것이 가장 기쁜 소식이로구나.. 이것이 복음이로구나’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이 예수님 앞에 당신의 삶의 전부를 내려놓으라라는

성경적인 메시지 앞에 크나큰 부담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부담을 느껴야 되는 말씀이 아니라,

기쁨과 감동으로 받아들여야 되는, 일생일대의 가장 복된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내 삶에 주인 되시면, 그래서 예수님이 온전히 통치하시면

내 삶의 그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참된 행복과 기쁨과 평강과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생각했습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저를 치유해 주시지 않는다면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이 6개월 밖에는 없겠구나.

그 소중한 6개월을 어떻게 사용해야 될까?’

 

저는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만일에 여러분의 인생에 단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그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시겠습니까?’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하면 참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왜냐하면 먹고 싶은 곳도 많고, 가고 싶은 데도 많으며,

무엇보다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참 많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잘 생각을 해보니, 항상 제 머리가 복잡했던 이유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 인생의 주인으로 우뚝 서서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의 우선순위를 정하려 하다 보니... 내 머리가 복잡했던 것이죠.

 

그런데 이제는 정말 인생의 주인이 바뀌어버렸어요.

그러니 무엇을 먹을까? 어디를 갈까? 누구를 만날까? 이 모든 질문들이 다 사라지고,

오직 단 하나의 질문만이 남았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죽음을 앞에 두고 이 질문을 해보니, 답이 너무나도 자명했습니다.

‘나의 인생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유언과도 같이 하신 말씀인 지상명령에 내가 순종해야 되겠구나.

내가 남은 6개월을 복음 전파하는 데 사용해야 되겠구나’

 

그래서 제 다리가 마비되지 않는 한, 링거를 끌고 다니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병원에서 만나는 모든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복음을 전하다 보니,

하나님의 숨결이 생생하게 제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내 삶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얼마나 즐겁고 신났는지 모릅니다.

가만히 있어도 절로 콧노래가 나옵니다. 너무 행복했어요. 너무 기뻤어요.

그때 병원에 입어있었던 수개월의 시간이, 제 평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 중에 하나입니다.

 

제가 장담컨대 그때 고대병원에 입원했었던 모든 환자들 중에

당시 제가 아마도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들이 흘러 지나가고 3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을 때,

제 주치의가 다시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김우준 씨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기적과도 같이, 당신의 근육 마비 증상이 거의 다 풀려버렸습니다.

 

이것을 의학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고, 설명할 길이 유일하게 하나 있다면

당신이 그렇게 반복적으로 외치던 하나님이라는 분이, 정말로 살아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곧 퇴원하셔도 좋습니다.」 (회중들 짝짝짝짝)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그 의사 선생님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식물 인간이 될 것이라는 진단을 받은 그 병원에서

제가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어 나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도... 제가 다시 주인 행세를 하고 싶어지면

저는 그날 그때로 그 병실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조용히 고백합니다.

‘예수님만이 저의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 없는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쩌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참된 평강을, 참된 기쁨을,

참된 자유를 잃어버리셨습니까?

혹시 여러분의 삶에서 결정권을 거머쥐려고 하기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다 내려놓으십시오. 다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제게 고난을 통해서 다 내려놓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난의 폭풍의 가운데, 저의 삶의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다 깨져나가고 다 부서지고 예수님 한 분만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전부 다 사라지고, 예수님 한 분만이 남으니,

그제야 비로소 저는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구나!’

 

우리의 참된 행복과 평강과 만족을 위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오직 단 하나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행복합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이것을 경험하면 이제 비로소 우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것이 저의 고백이 되고 여러분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