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마6장 은밀한 상도 상일 수 있나?

LNCK 2026. 6. 13. 10:38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삶의 통찰력  

20251007-17 은밀한 상도 상일 수 있나?

 

◈은밀한 상도 상일 수 있나?             마6:1~4                  2025.10.07.

 

마6:1~4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위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상의 개념’이 잘 이해가 안됩니다.

마6:1~18절까지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구제나 기도나 금식 등의 신앙행위를 예를 드시면서

위선을 경계하십니다. 신앙행위의 동기를 문제 삼으십니다.

 

‘하나님 믿기에 행하는 신앙행위가, 왜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아니라,

사람이 주는 상을 겨냥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가려져 은밀하시면, 너희가 받게 될 상도 은밀할 줄을 몰랐냐?’는 말씀이지요.

 

이 점이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 말해서 ‘은밀한 상도 상이 될 수 있나요?’

행위도 은밀하고, 행위를 보시는 하나님도 은밀하시고,

그래서 주시는 상도 은밀하면... 이런 상도 상이 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상의 가치와 크기는, 공개되는 범위의 크기에 달려있지 않습니까?

전국 체전 1등과, 올림픽 금메달의 차이가 뭐지요?

공개되는 범위가 대한민국과, 전 세계라는 차이입니다.

 

은밀하면 상이 아닙니다. 수상하는 맛이 정말 밋밋하고 싫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바로 이런 지점을 지적하시는 겁니다.

 

우리 마음에서 왜 은밀한 상이 그렇게 밋밋하고 싫은가를, 스스로 자문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요. 정말 왜 우리는 하나님께 은밀히 받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상 같지가 않죠?

하나님의 축복은, 왜 꼭 다른 사람도 알 수 있는 거라야 속이 시원할까요?

 

그건 존재감 때문입니다.

내가 존재감을 크게 느끼는 대상이, 나를 알아줄 때,

칭찬과 상은 실제로 기쁨이 됩니다.

 

상을 받을 때, 공개되는 범위의 크기가 중요한 이유가 뭡니까?

많은 사람, 즉 대중의 존재감을 무겁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내가 존재감을 압도적으로 크게 느끼는 대상이라면,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다만 한 사람이라도, 칭찬과 상의 의미는 넘치는 것입니다.

 

▲한 아가씨가 첫눈에 반한 남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녀는, 그 남자 외에, 다른 남자는 세상에 없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남자에게 갑자기 프로포즈를 받았어요.

 

이 사실을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정말 은밀하게 가려진 일이지만,

그녀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자기가 받은 상 중에 가장 큰 상이라 느끼며 행복해합니다.

 

왜 그렇지요? 자기 마음에 현재로는

그 남자가 최고의 존재감을 가진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같은 프로포즈라도, 도저히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존재감이 제로인 수많은 청년들이

‘난 당신 밖에 없어요’ 라고 그러면 어떻습니까?

이건 짜증나는 일이지 상과 칭찬이 아닙니다.

 

이처럼 아무리 은밀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나를 알아주는 자의 존재감의 크기가, 칭찬과 상의 의미를 결정합니다.

 

하나님은 은밀히 사람들의 눈에는 가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면 어떠냐는 겁니다.

 

너희가 만약에 하나님의 존재감을 크게 느끼기만 한다면,

아무리 은밀해도, 하나님의 칭찬과 상이, 네 마음에서 가장 큰 기쁨이 될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존재감은 적고, 다수의 사람이나 대중의 존재감은 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의식하는 신앙의 위선은,

마음속 하나님의 존재감이 빈약할 때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면, 이제 그 이름이 가리키는 실제 하나님의 존재감이

그 마음에서 가장 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선민으로서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의 동기가... 다 위선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아내나 남편 앞에서

아내나 남편의 존재감이 하나님의 존재감보다 더 크게 느껴져서,

나에 대한 그의 평가가.. 내 말과 행동의 동기가 됩니다. 그러면 믿음이 아니라 위선입니다.

 

내가 사장님 앞에 있을 때, 하나님 존재감보다 사장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져서

사장님의 칭찬을 얻기 위하여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면 나의 모든 언행이 위선입니다.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이 위선이 아니려면,

내가 누구를 만나든지 하나님의 존재감이 더 크게 실감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내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

하나님의 존재감이 그 이유와 동기가 되어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내가 부르고 믿는다고 하는데도

하나님의 존재감은, 세상 것들의 존재감보다, 항상 빈약하기만 할까요?

 

예수님이 답을 주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15:8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 마음이 하나님이 가까울 때보다, 존재감이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가까우면, 하나님의 존재감은 커지고,

하나님이 내게 멀어지면, 하나님의 존재감은 작아집니다.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계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죽고 부활 승천하여 우편에 이르는 그리스도 연쇄 과정 속의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마주하실 때,

우리도 함께 하나님을 마주해야 합니다.

 

이렇게 지속하여 실시간으로 마주하고 있어야, 하나님의 존재감은 내 안에서 실제가 됩니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하나님을 마주하기를 지속하고 반복하면서,

자꾸 하나님과 실제로 친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존재감이 점점 더 커질 수가 있고

그래야 은밀한 상에 정말 진한 맛에 눈을 뜨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