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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9장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LNCK 2026. 6. 15. 10:40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크리스천 리빙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2026-05-17) - YouTube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민9:15~17, 신1:30~33        2026.05.17.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 임재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모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성막의 모든 기구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성막의 모든 역사를 마쳤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성막을 덮었어요.

 

민9:15절 말씀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그런데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곳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어요.

텐트 속에만 있지 않고 광야를 행진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광야는... 길이 없어요.

광야는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이정표가 하나도 없어요.

어제 왔던 길이지만, 바람이 불면 그 날아온 모래에, 길이 묻혀서 보이지도 않아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네비게이션도 당연히 없었어요.

그렇다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그 광야를 행진하여 나아갔을까요?

 

아니, 길도 없고 이정표도 없는 이 광야를, 그들은 어떻게 행진하여 나아갔을까요?

다큐 영화를 보면, 보통 사람들은 그 자리를 빙글빙글 돌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주1)

 

아니, 오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이 광야의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어떻게 이 광야를 통과해야 될까요?

 

우리가 읽은 본문은, 광야의 인생길을 걷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음 시간에 걸쳐서 광야를 걷는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광야를 걷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 유명한 관광지에 가보게 되면, 사람들이 너무나 많죠.

그래서 관광객들이 인솔자의 손에 든 깃발을 보고 뒤따라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잘 보이라고 노란생, 파랑색 등 원색 깃발을 많이 사용하죠.

 

그래서 여행끝나고 돌아왔을 때 뭘 봤냐고 그러면, ‘깃발만 봤다’고 하는 분이 있어요. 하하하

여러분, 이게 우스개 소리 같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깃발을 보고 따라가는 게 중요해요.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대열에서 이탈해서, 국제적인 미아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런 것처럼... 길도 없고, 이정표도 없고, 랜드마크도 없는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거예요.

 

그래서 민수기 9: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주2) 성막과 회막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성막 위에 항상 머물러 있다가,

그 구름이 두둥실 떠오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했다고 말해요?

그 구름을 보고, 그 구름을 따라 행진하여 앞으로 나아갔다는 거죠.

그러니까 저 구름이 뭐예요? 오늘날로 말하면 우리를 인도하는 네비게이션이 된 거죠.

 

성경을 보게 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뒤에서 몰아가시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윗도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앞서 나가시면서 인도했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

시68:7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

 

자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거닐 때에

뒤에서 막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 나아가셨다는 거예요.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앞서 가실까요? 그 이유와 목적이 있을 거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이유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요.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인도하기 위해서!

 

그래서 출13:21절을 보게 되면 이런 말씀이 있거든요.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왜 하나님께서 광야의 인생길에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앞서 가셨다고 말해요?

그들을 인도하기 위함이라고 말하죠.

 

하나님은 막연하게 ‘가라, 앞으로 나가라’ 그렇게 말씀만 하지 않으시고요.

친히 앞서 가시며 인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은, 우리를 겁박을 하면서, 두려움을 갖게 해서

뒤에서 우리를 몰아가시는 분이 아니세요.

하나님은 언제나 친히 앞서 가시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제가 지난 여름에 대관령에 있는 양떼 목장을 다녀왔어요.

양떼 목장에 가보게 되면 ‘양몰이 공연’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주인이 호루라기를 불게 되면, 목양견이 나와가지고

그 흩어져 있는 양떼들의 앞뒤로 좌우로 막 빠르게 이동하면서

그 양떼들을 주인에게로, 또는 양 우리 가운데로 몰아넣는... 그게 공연이에요.

 

그런데 이 목양견 중에 대표적인 목양견이 바로 보더콜리 래요.

견종 들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지능이 매우 높고, 시선으로 양들을 압도해가지고, 양들을 몰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들은, 보더콜리의 눈과 마주치게 되면,

겁을 먹고 어쩔 수 없이 움직이기 시작을 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도 그러실까요?

우리 하나님도 이 목양견처럼, 사나운 눈으로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그래서 막 겁에 질리게 한 다음에, 두려움에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까요?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사탄은요, 우리 인생을 겁박해요.

사탄은 우리 인생을 겁박을 하면서, 두려움을 품게 만들어서,

우리를 막 뒤에서 몰아가는 거예요.

 

그러나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은, 병들고 지친 양떼가 있으면,

그 양들을 품에 안고,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면서, 친히 앞서 가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이 앞서 행하시면,

길이 없는 광야라도,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정말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많이 인용하는... 이 말씀을 선포했어요.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43:19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광야에 길을 만드시는 분이세요.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 말씀의 의미가 뭐예요?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게 되면,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면,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케 된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문제일지라도,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면, 그 문제가 해결된다는 거예요.

문제만 해결될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돌파가 이루어진다는 거죠.

 

저는 지금까지 목회를 해오면서, 진짜 하나님이 행하신 새 일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어요.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만드시는 그 하나님을 정말 많이 경험했어요.

그 얘기를 하라고 하면 몇 시간을 계속 해야 될 거예요.

 

여러분 지난주 금요일, 이 자리에서 인천제일성결교회 김형규 목사님이 와서 간증을 했어요.

그 간증을 안 들으신 분이 많이 계시는데, 꼭 한번 오늘 중으로 들어보세요.

 

여러분 이분의 사모님이 암에 걸렸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병수발을 하는 도중에 몸이 이상해서 병원에 갔는데,

자신이 사모님보다 더 심한 암에 걸린 거예요. 전립선암 말기.

그것도 뼈까지 전이돼서, 갈비뼈까지 전이 돼서,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 암 수치가, 저는 뭐 의사가 아니라 잘 모르는데, 20에서 30만 돼도 고위험이래요.

근데 이분은 182. 그래서 의사가 말했어요.

‘방사선 치료도 안 되고, 항암제도 안 되고, 수술도 안 된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 말씀을 주셨어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그래서 이 말씀을 붙들고, 그 목사님이 우리 다니엘기도회 협력교회 목사님이잖아요.

이곳에 와서 기도를 받으셨어요. 끝나는 날에도 기도를 받으셨어요.

그리고 많은 주변의 목사님들이,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했어요.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새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182였던... 수치가 0.01이 됐어요. 고침을 받은 거예요.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시면, 그것이 바로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요한 것은, 나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게 너무 중요해요.

우리가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길이 되신단 말입니다.

 

◑2. 그러면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는가요?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1. 첫 번째가 뭐냐면 ‘장막 칠 곳을 찾으신다’

모세는, 광야에서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품에 안아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신1:31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고, 꾸짖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1: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데

‘장막 칠 곳을 찾으신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 교회가 농어촌 봉사 많이 가잖아요.

근데 이렇게 농어촌 교회의 봉사활동을 가기 전에, 꼭 선발대가 갑니다.

선발대가 가서 해야 될 일이 많아요.

 

우리가 잘 수 있는 잠자리가 제공되는지?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은 있는지?

식당은 있는지? 화장실은 있는지?

 

그래서 없으면, 간이 화장실을 만들고, 간이 식당을 만들기도 하죠.

선발대가 중요해요.

 

그런데 광야의 인생길에, 하나님이 친히 선발대 역할을 해주시겠다는 거예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몇 명이 움직이는 정도가 아니잖아요.

2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움직인단 말이에요.

그러므로 아무 곳에나 진을 칠 수가 없어요.

아무 곳에나 텐트를 치면, 머무를 수가 없단 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세요?

‘내가 너희들보다 앞서가서 장막 칠 곳, 그곳을 찾으시겠다’는 거예요.

‘내가 먼저 앞서가서 너희들이 머무를 곳을 내가 준비하시겠다’는 거죠.

 

▲2. 두 번째로 어떻게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냐면,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갈 길을 인도하시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신1: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 인생길에 앞서가시는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실까요?

그것은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광야는요. 생존이 버거울 정도로,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심합니다.

광야의 낮 기온은 40에서 50도까지 이른다고 해요. 얼마나 무더워요?

 

그런데 해가 지고 밤이 되면은요, 온도가 어떻게 떨어지냐면 0도로 떨어져요.

어떤 날은 영하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 낮에 40도에서 50도에 살다가, 밤에 영하로 떨어지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체온증으로 죽게 됩니다. 얇은 옷 입고 자가가는 큰 일 나죠.

 

그런데 하나님은 낮에 어떻게 하셔요?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막의 뜨거운 더위를 막아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신 거죠.

 

밤에는 어떻게 해요? 불기둥으로 인도하죠. 불기둥의 역할이 뭐예요?

어둠을 밝히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추위를 막아주는 난로와 같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자상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길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이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를 인도하실까요?

 

아니에요. 오늘 이 시대는 구약의 시대처럼,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이는

그런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없나요?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있어요. 그게 뭔지 아세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나아갈 길을 가르쳐주는 나침반과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향을 찾아서 가야 돼요.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그랬어요.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영입니다.

 

그래서 롬8:14절에 보게 되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어요.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에요? 교회를 다닌다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 광야의 인생길을 걷고 있는데,

광야의 인생길을 걷는 우리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이성과 지성과 경험과 상식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게 되면,

우리는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똑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또 어떤 사람은 한 번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뭘까요? 두 가지입니다.

 

1) 하나님이 인도하시기도 전에 자기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기 때문에 그래요.

구름기둥이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더 이상 못 견디겠다면서 보따리를 싸가지고, 먼저 출발을 해버리는 거예요.

 

2) 또 하나의 이유는 뭐예요? 자신의 지식과 이성적 경험을 따라 살아가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이성적 경험을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광야에서 실패하고 넘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죄의 본질이 뭔지 알아요?

타락의 본질 죄의 본질은, 이사야 53:6절에 너무 잘 나와 있어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러분 양은, 목자의 인도를 받아야 돼요.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되는데

양이 어느 날부터 ‘나는 목자가 필요 없어요. 내 마음대로 살 거예요’

 

여러분 죄의 본질은 바로 이거예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어서,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었던 이유이고,

우리 인간들이 바벨탑을 세웠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죄의 본질이 이거예요.

‘하나님 없이도 나는 살 수 있어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는 거죠.

 

◑3. 앞서 가시는 하나님

 

▲1. 우리를 인도하시기 원해서

 

그런데 하나님은요.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인도해 주기를 더 원하신다는 거예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너무나 은혜가 됐어요.

신1:33절 상반절 말씀을 읽겠어요.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여러분, 갑자기 우리 아이들이 생각이 나는데,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장난감 가게에 선물을 사주러 가잖아요.

그러면 애들은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부모보다 더 빨리 가게로 달려갑니다.

 

너무 신나가지고 그냥 앞서 달려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고 그래요? ‘빨리 와, 빨리 와!’ 그러잖아요.

 

근데 우리 하나님이 그래요. 여러분 하나님은요.

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 자신이 먼저 우리를 인도해주기를 더 원하신다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 마음이에요.

 

그러므로 인생의 앞날을 고민하며 두려움 속에 밤을 지새우기보다는

나의 인생길에 나보다 앞서 행하시며,

나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우리를 위해 싸우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앞서 가신다는 거예요.

자 모세는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두려웠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죠.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신1:29

누구를 말하는가 하면 가나안 족속들을 무서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거예요.

 

왜 가나안의 족속들을 무서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줄 아세요?

그 다음 구절에 이유가 있어요.

신1: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무서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출애굽을 하게 됐어요. 구원을 받아서 해방이 됐단 말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민중 봉기를 일으키고,

그래서 독립을 쟁취하여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나요?

아닙니다. 그들은 싸울 여력도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땅 가운데 10가지 재앙을 내렸어요.

그래서 마침내 바로왕으로 하여금 항복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싸워주심으로,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신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싸워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은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여러분 홍해를 건널 수 있었나요?

우리가 어릴 때 불렀던 찬양처럼 ‘헤엄쳐, 아니’

우리가 헤엄쳐서 건너나요? 아니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헤엄쳐서 홍해를 건넌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육지같이 건너게 하시고

뒤따라오는 애굽의 군대를 물속에 수장시키셨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앞서나가 싸워주셨단 말입니다.

어떻게 오합지졸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력한 아말렉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어요?

그들의 힘과 능력으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나가 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시면서

자신들을 위하여 싸워주신 하나님을 늘 목도하면서 살았어요.

소문을 들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친히 그 하나님을 목격하면서 살아왔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들을 위하여 싸워주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다’ 신1:30

 

이 말씀은 강력한 도전이네요. 우리 다시 한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신1:30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구원해낼 때만, 너희를 위해서 한 번 싸워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계속해서...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너희들을 위하여 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신1:30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모세가 죽고 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그들을 위하여 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죽고 난 다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잖아요.

 

그때 누가 가장 먼저 나타났어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손에 칼을 빼어들고 나타났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수5:15

이것은 온전한 순종을 말합니다. 항복을 하라는 거죠.

‘너희가 내 앞에 순종하기만 하면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앞서 나가서 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스라엘이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앞서 나가 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리고성은 장난이 아닙니다. 여리고성은 이중으로 되어 있어요.

외벽과 내벽으로 되어 있는데, 여러분 외벽의 두께가 1.8미터, 내벽이 4.5예요.

높이가 9미터예요. 그런데 어떻게 이 성벽을 무너뜨릴 수가 있습니까?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앞서 나가 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앞서 나가 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낼 때만이 아니라

구원하여 낸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들을 위하여 앞서 행하시며 싸워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도,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위하여 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원주민을 몰아내게 주셨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적용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을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셨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여호와께로 돌아오기까지는,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이 있었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새생명 축제를 앞두고 있는데, 이것은 치열한 영적인 전쟁입니다.

가장 치열한 영적인 전쟁은, 흑암의 권세 아래 있는 그 영혼을 구원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해내셨습니다.

그런데 이후에도 우리의 영적인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애굽의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주었잖아요.

‘떠나가라’ 근데 거기서 바로가 포기했나요? 포기하지 않았어요.

다시금 군대를 모집하고 또 뒤쫓아왔어요. 추격해왔어요.

 

여러분 사탄은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 땅을 떠날 때까지, 내 영혼이 육체의 장막을 벗고 이 땅을 떠나는 순간까지

사탄은 집요하게 우리를 추적하며 우리를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 있어요.

지금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내가 너희를 구원해 낼 뿐만 아니라, 지금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리라’

그러므로 매일매일 치열한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서

나를 바라보지 말고, 지금도 나보다 앞서 행하시며, 하늘의 군대를 동원하시며

나를 위하여 싸워주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됩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선입니다.

눈을 들어서 나를 바라보게 되면, 내게 집중하게 되면,

우리는 영적인 전쟁에서 백전 백패입니다.

사탄의 참소를 이겨내지 못해요.

 

성도가 영적 전쟁을 하려고 하는데, 사탄이 참소합니다.

‘너 지난 주에 죄지었잖아.. 그런데 뻔뻔하게 뭐 승리한다고?’

그 한마디에 우리는 끝나는 거예요. 사탄의 참소를 이겨낼 수 없어요.

 

그러므로 여러분, 영적 전쟁에 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내가 처한 상황과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며, 나보다 앞서 행하시며,

하늘의 군대를 동원하시며, 나를 위하여 싸워주시는

그 용사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더러 싸움에 나가라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에게 싸우러 나가라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하나님은 친히 앞서 나가시며 우리를 위하여 싸우십니다.

 

▲근데 우리는 많은 경우에 말하죠.

내가 먼저 가서 싸우고, 하나님은 뒤에서 나를 도와주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도 나가서 싸우지만,

여러분 하나님이 친히 우리보다 앞서 나가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너무나 많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이 광야의 인생길에

정말 하나님이 나보다 앞서 행하시며, 나를 인도하고 계신가?’

아니 하나님이 나보다 앞서 행하시면서 나를 위하여 싸우고 계시는가?’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거예요.

 

분명히 지금 여기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짜 하나님은 나보다 앞서 행하시면 나를 인도하실까?

진짜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싸우고 계시는가?’ 믿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등장시키는 사람이 하나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구냐? 이방인의 왕 고레스입니다.

 

여러분 고레스는, 그가 태어나기 150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미 고레스라는 이름까지 언급하셨어요. 놀라운 일 아니에요?

 

고레스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방인의 고레스 왕에 대하여 정확하게 예언하셨어요.

 

‘하나님이 그에게 기름 부어서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실 거다’

‘아니, 내가 고레스 왕보다 앞서 나가서 이렇게 행할 것이다’ 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셨어요.

놀라운 일이죠. 어떤 약속을 하셨는지, 우리가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사45:2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하나님은 ‘내가 너보다 앞서가서 이렇게 행할 것이다!’

고레스 왕은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지금 150년 전이에요.

근데 하나님이 약속하셨어요. ‘고레스 왕보다 내가 앞서가서 이렇게 행할 것이다’

세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1) 험한 곳을 내가 평탄하게 하리라

2) 놋문을 부수고 쇠빗장을 꺾으리라

3) 흑암 중의 보화와 숨겨진 재물을 주리라

 

그러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세가지 약속이 이루어졌을까요,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제가 설교를 못하죠.

역사 속에서 드라마틱하게 이 말씀대로 이루어졌어요.

제가 지금부터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할게요.

 

당시 바벨론 제국은 세계 최고의 강국이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 앞에 유프라테스 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벽은 전차 두 대가 오고 교차해서 오고 갈 정도로 성벽이 넓었어요.

견고했어요. 100개가 넘는 거대한 놋문과 쇠빗장으로 철저하게 봉쇄된 그런 성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원전 539년에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하면

그 유프라테스 강의 물줄기를 다른 것으로 흐르게 만들었어요.

물줄기를 돌려가지고 수위를 확 낮춰버린 거예요.

 

그래서 고레스 왕이 이끄는 군사들이, 강바닥을 통하여 이 제국 안으로 들어갔어요.

졸지에 당한 거죠. 그래서 그 성을 정복했어요. 바벨은 제국이 그렇게 무너진 거예요.

고레스 앞에 성문이 열리게 된 거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바벨론 제국이 그동안에 나라들을 점령하고 침략해서 빼앗을 때마다

엄청나게 금은 보화와 재물들을 가져다 쌓아두었는데, 그것을 누가 취하게 된 거예요?

고레스가 취하게 된 거예요.

 

나중에 고레스가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칙령을 내려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도록 만들어줬어요. 여러분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었어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고레스 왕에게 ‘이렇게 내가 행할 것이다.

앞서 행하면서 이런 일을 행할 것이다’ 약속하셨는데, 하나님은요 그 약속대로 이루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누구죠? 저와 여러분이 누구예요? 우리는 이방인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자녀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께서, 어찌 당신의 자녀인 우리의 인생길에 앞서가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방이라도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며

이렇게 행할 것을 약속하시고 지키셨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너무나 분명하게 ‘내가 너보다 앞서가서 너희를 인도하며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길에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은,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우리의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를 앞서행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조건이 하나 있어요. 내가 변하지 않는다면, 내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는다면,

내가 각기 제 길로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실수를 해도,

여러분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의 순간까지,

이 약속의 말씀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저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그렇게 약속을 하셨어요.

그 약속의 말씀을 우리의 큰 소리로 읽겠습니다.

시48:14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언제까지 인도하신다고요? 죽을 때까지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이 배신하지 않는다면, 곁길로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광야길 죽을 때까지,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앞서 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이 처해 있는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여러분에게 집중하지 말고, 나와 함께 계시며

나보다 앞서 행하시며 나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 나를 위해 싸우시는

그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만드시는 그 하나님을

풍성하게 경험하는 이번 한 주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찬양하겠습니다.

‘나의 가는 길 주님 인도하시네

그는 보이지 않아도 날 위해 일하시네

주 나의 인도자 항상 함께하시네

신의 힘 베푸시며 인도하시네 인도하시네’

 

.......................................

 

주1) 윤형 방황 Circle wandering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대부분 죽는 이유는,

아무리 걸어봤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례로 알프스에서 어떤 사람이 눈보라에 갖혀 길을 잃고 헤매다가 10여일 만에 구조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구조되던 날까지 매일 12시간씩 탈출하기 위해 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길을 잃은 곳에서부터 반경 6Km 이내에서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눈을 가린채, 넓은 공터를 똑바로 걸어보면

20m를 지나면 4m가량 치우치게 되고,

100m쯤 가면 결국 큰 원을 그리며 도는 형태가 된다.

이를 '윤형 방황' 이라고 하는데, 바귀모양으로 빙빙 돌며 헤멘다는 뜻이다.

 

 

주2) 성막과 회막

"회막 Tent of meeting" 이라는 표현은 구약성서, 특히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만나실 장소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보통 '회막'은 모세의 성막을 가리키는 또 다른 명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막이 세워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임시 모임 텐트(회막)에서 모세를 만나셨습니다:

 

출33: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출33장 상황은, 아직 성막이 완성되기 이전 상황이죠.

성막은 출40장에서 완성되죠.

회막은, 금송아지 숭배 사건 직후,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들과 같이 계시기 싫어하셔서

진 바깥에 만든 것이었습니다. 출33:7

나중에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는, 그 성막은 항상 진 한 가운데 위치했죠.

 

모세는 텐트를 들고 야영지 밖에 좀 떨어진 곳에 쳤으며,

하나님은 그곳을 '회막 Tent of Meeting'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회막 안으로 들어가면 구름 기둥이 내려와 입구에 머물렀고,

주님께서 거기서 모세와 대화하셨죠. (출33:7, 9).

구름은 종종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죠.

 

모세가 진영 밖에 모임의 천막을 설치한 사실은

백성들이 시내에서 금송아지를 만들면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음을 강조합니다(출33:3).

성막이 세워진 후 모세는, 임시 천막(회막)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고,

이때부터는 '모임의 천막'이라는 용어가 성막에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는 회막이 성막과 같은 용어로 사용되었죠.

 

그래서 우리는 회막과 성막이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회막이 세워질 처음 시기에는, 이와 같이 진 바깥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다르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https://www.gotquestions.org/tent-of-meeting.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