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강해(04)/사사기2:16-23/‘남겨둔 사람들’
◈남겨둔 사람들 삿2:16~23 사사기강해(04)
오늘 설교 본문은 삿2:16절부터 본문이 잡혀 있는데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에 몇 구절을 좀 더 살펴 볼 필요가 있어요.
위 제목에 ‘남겨둔 사람들’이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다 진멸하지 않고, 거기에 남겨둔 사람들을 뜻합니다.
◑삿2: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
여기서 말하는 악은 ‘신학적인 악’을 얘기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윤리나 도덕적인 죄, 또는 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신학적 악을 얘기해요.
그럼 신학적 악은 뭐고, 도덕적, 윤리적 악은 뭘까요?
사실은 한 줄기인데, 구분해서 표현을 하자면,
신학적 악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악’이라고 할 때는,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관계가 이탈되거나 끊어진 상태를 죄, 또는 악이라고 합니다. *신학적 악
그래서 성경에서의 ‘악’은, 하나님과의 관계 설정 부분을 얘기하는 거예요.
종종 제가 이 죄를 설명할 때 드는 비유이긴 한데, 물을 담아놓은 큰 저수지가 있어요.
거기로부터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공장, 건물, 학교, 가정에까지 물이 공급이 됩니다.
그런데 그 원 파이프가 어딘가에 고장이 났어요. 파괴가 됐어요.
더 이상 물이 공급이 안됩니다. 끊어진 거예요.
그러면 파이프 라인에 남아있는 잔여 분량으로 일정 기간은 물을 사용할 수가 있으나
한계가 오겠죠? 물이 뚝 끊어지거나 떨어집니다.
그러면 우리 가정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제일 끔찍한 게 화장실 문제죠. 요즘은 다 수세식을 쓰지 않습니까.
악취가 나죠. 음식을 못 해 먹죠. 더더군다나 씻지 못하죠.
그래서 위생에, 건강에, 영양에 총체적인 문제가 벌어집니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사회적으로 윤리나 도덕적인 죄의 현상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이 시작된 발원지는,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긴 거예요?
저 위에 저수 탱크로부터, 파이프라인이 끊어진 겁니다.
이걸 신앙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께로부터 관계가 끊어진 걸 얘기합니다.
인류의 모든 불협화음과, 살인과, 음란과, 악과 죄는
사실 그 출처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써 벌어진 현상들입니다. *신학적 악
우린 그것을 보통 ‘죄’라고 말하는데,
그게 윤리나 규범적인, 도덕적인 죄로 표현을 하지만,
근본적인 악은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입니다.
▲그래서 본문 삿2:11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이것은 근본적인 악(신학적인 악)을 얘기하겠죠?
그 결과, 어떤 현상들이 나타나게 됩니까?
바알들을 섬기게 돼요. 여러 가지 도덕적, 윤리적 악이 발생하는 겁니다.
자, 보세요. 하나님과 끊어져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까, 인간은 근본이 종교적 존재예요.
뭔가 대체되어야 돼요.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되는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지 못하면,
자꾸 자기네들이 설정해서, 자기네들이 만들어 놓은 우상을 찾게 되고 만들게 됩니다.
그걸 보통 우리가 ‘우상 숭배’라고 하죠.
여기 설명된 ‘바알’은 ‘주인, 남편’ 이런 의미예요.
‘바알’이라는 가나안 대표적인 신이 담당하는 기능, 역할은 뭐냐면 다산의 신입니다.
생명을 부여해준다 그런 의미예요.
이것과 함께 섬겼던 신이 아스다롯 신입니다.
이 신은 물질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입니다.
이 두 신을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새로운 주인, 새로운 남편을 맞이하게 된 겁니다.
◑2:12 ‘애굽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여기서 ‘여호와를 버렸다’는 이 부분도 중요하지만,
버리게 된 원인이 뭔지 알아야 돼요.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러분 이 ‘조상들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그들이 조상과 전혀 관계가 없는 존재라는 얘기입니까? 연결고리가 있다는 얘기입니까?
당연히 연결고리가 있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조상들의 하나님’ 그래요.
근데 그 조상들의 뿌리가 어디로부터 출발했습니까?
애굽 땅에서 400년 동안 칠흑 같은 어둠의 역사 속에
옥죄여 종살이하던 슬픔의 역사, 그걸 하나님께서 끊어내시고,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이 신앙의 원초적 뿌리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짓을 하게 됩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지는 끔찍한 죄악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래서 12절의 동사를 한번 쫓아가 보세요.
‘버리고, 따라, 절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 주위에 있는 백성들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그 결과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어요?
진노하셨어요. 2:12b
‘진노’라는 말은 ‘콧김을 내뿜다’는 말이에요.
우리도 만화 같은 애니메이션 그림에 보면, 화가 날 때, 코에서 막 김이 나오죠.
이게 바로 정확하게 ‘진노’라는 말인데, ‘하나님의 콧김’이라는 얘기에요.
‘뜨거운 콧김!’
이 ‘진노’의 이면 감정은 질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부관계로 이해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질투하세요.
지금 여러분들은, 별 표정들이 없으신데, 전혀 감이 와 닿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관계로 이해하시니까... 당연히 질투하세요.
나하고 아무 상관없는 여자가, 어떤 남자하고 팔짱을 끼고 가든, 같이 차를 마시든,
나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내 여자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우리 집 사람이, 내 아내가, 우리 가족이
어느 낯선 남자하고 팔짱을 끼고 간다면,
우리는 씩씩거리며 질투하거나 분노하게 되죠.
그러니까 이 ‘질투’나 ‘진노’라는 개념 이면에는 ‘관계 개념’이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아내로 생각하시고, 사랑의 대상으로 이해하시니까.. 진노하시는 겁니다.
그 진노라는 감정의 이면에는 질투의 개념이고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이해하시기 때문에,
진노도 할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런 ‘진노’조차 갖지 않으면,
그냥 잊혀지거나 버림받은 존재죠.
◑2: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버리고.. 따르고.. 절하고..’에 이어서 :12
‘섬겼으므로’ :13
이것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한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어떻게 진노하시냐 하면,
단도직입적으로 메스를 들이대서 징벌하고 처단하고 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너희들이 불순종해서 남겨두었던 그 어떤 것들이
훗날 어떻게 가시로 등장을 하고 올무로 등장해서
너희들을 힘들게 할 것인다’ 하는 방법을 통해 드러내시려고, 그냥 대적들을 남겨두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다음 절을 한번 볼까요?
대적들을 다 멸하시지 않고, 조금 남겨두시는 거죠.
그 단초는 이스라엘이 제공했습니다. 다 멸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2: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2:15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재앙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혼내시는 게 아니라,
그들이 좋아서, 즐거워해서 다 멸하지 않았던 이방 민족들,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남겨두었던 가나안 족속들,
그 불순종의 잔재들이... 결국 이스라엘을 치고, 대적하여 일어나고,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대적들을 당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거죠.
그게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요, 하나님이 불순종한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는 재앙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스라엘)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15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죠.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2: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6절은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읽으면서 이상한 지점을 발견해야 됩니다.
그들이 괴로웠어요. 그래서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셔서,
노략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해 내십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일관된 순환적 패턴이에요.
타락 → 이방의 침략 → 괴로워서 부르짖음 → 사사를 세워 구원하심
그런데 뭐가 이상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어하니까 ‘하나님이 구원자 사사들을 세워서 구원하셨다’
여기서 정상적인 과정대로라면 회개의 과정이 없어요. 그렇죠?
그들이 사사기에서 ‘울었다’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그냥 자기들이 고난 당해서 슬픈 감정을 해소한 거예요.
‘보김’이라는 지명이 생길 정도로, 거기서 통곡을 하고 울었어요. 2:5
제사도 지내고 했지만... 그 종교의 행위만 열심히 강화시킨 거죠.
그냥 울고만 하고 끝낸 거예요.
그 증거는, 그들이 죄와 잘못을 끊지 못하고, 계속 반복한데 있습니다.
감정풀이 한 거예요. 신앙은 울었다고 회개가 아니에요.
▲이거를 우리가 보통 선재적 은혜라고 얘기합니다.
선재적 은혜(Prevenient Grace)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거나 구원을 선택하기 이전에
하나님 편에서 먼저 다가오시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역사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먼저 우리에게 주시고, 그래서 우리를 고쳐가시는 방법을 언제나 택하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400년 동안 부르짖으면서 고역을 겪고 있을 때,
먼저 그들을 홍해를 건너 꺼내어 내십니다. 선재적 은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재적인 은혜에 달려있어요.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에 구원하시는 게 아니에요. 믿습니까?
우리는 회개할 능력도, 실력도 없다는 게... 항상 들통이 나잖아요.
우리는 아버지께로 돌아갈 힘도 없다는 게... 들통이 나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음을 돌리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선을 돌려서 은혜를 주셔야,
우리가 회개라는 모양을 갖추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찬송가 가사도 있잖아요.
이 찬송가 가사 한 마디에도, 깊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나의 어떠함 이전에,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해주시고, 은혜를 주셨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사기의 패턴은 항상 일정해요.
배교 → 징계 → 구원 → 다시 배교 → 징계 → 구원
이 악의 카테고리가 계속 반복이 돼요.
본문에 사사를 세웁니다. 사사를 세우면 조금 나을까요? 볼까요?
◑2:17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짓는 데는.. 빛의 속도로 빨라요.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7
이 말은, 사사기 당시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신실했던 그들의 선조들처럼 행치 아니하였다는 뜻이죠.
◑2: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2: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하나님이 사사를 통해서 구원을 하십니다.
사사가 죽은 다음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이것을 뭐라고 표현했는가 하면, ‘나선형 죄악’
그러니까 나무에 나사를 박을 때, 나사를 돌립니다.
나사가 돌아갈수록 더 깊어집니다.
우리 죄가 그래서 ‘나선형 죄악’의 성질을 갖고 있어요. 점점 더 깊어져요.
이게 성경의 역사예요.
사사를 세워서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엔, 울고불고 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보니까,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더욱 타락해요.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폐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19
◑2: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21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2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가나안의 이방 족속들을 진노하사 쫓아내지 아니 하시는가 하면,
‘한번 너희들도 골탕 먹어봐라’ 이런 심산으로 쫓아내지 않는 게 아니고,
여기 정확하게 뭐라고 표현하셨는가 하면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22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이런 관점의 시험이 아닙니다.
‘누구는 떨어뜨리고, 누구는 붙여주기 위해서 치르는 그런 시험’의 개념이 아니에요.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네가 몇 점짜리인지 확인시켜 줄게’ 그 뜻이에요.
우리 병원에 가면, 근육이든지 뼈든지 어떤 조직이든지
제일 정확하게 집어내는 진단 장치가 ‘자기 공명 영상 장치 MRI' 입니다.
MRI를 통해서, 저 조직 안에 깊숙이 숨겨진 그 미세한 지점까지 정확하게 진단을 해서,
병의 원인을 들춰냅니다. 왜 그렇게 해요? 그 테스트를 왜 합니까?
어떤 상태인가를 확인시켜 주는 겁니다. 그게 확인이 돼야 회복으로 갈 수가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여기서 ‘시험’이라는 말은
‘내가 몇 점짜리 인지를 확인해 봐라’ 하는 목적이라 그랬죠.
저는 제 점수를 알아요. 여러분, 제가 몇 점쯤 될 것 같아요?
100점 중에서 10점? 아유, 10점도 참 감사하죠.
아닙니다. 저는 0점이에요.
여기서 ‘아멘’ 하시는 분은, 너무 순수하셔서 그런 줄로 제가 이해할게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몇 점짜리 같으세요?
▲자, 보세요. 사사기의 역사는,
사사를 세워도, 어떻게 보면 그 영웅들이 의미가 없더라는 거죠.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사사들도 있었어요. 드보라 같은 사사들.
그런데도 그것이 해결책이 되지 못하더라는 거죠.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까막 눈이 돼가지고, 못 꺠닫고, 나중에는 왕을 요구해요.
‘우리도 왕이 있어야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왕들을 줬어요.
그래서 또 잘 된 게 아니고, 남북으로 갈라져가지고...
북왕국에는 옳은 왕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선왕이라는 다윗도 이상한 짓을 많이 했고, 솔로몬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인간의 어떤 시스템이나, 인간 영웅이나, 어떤 탁월한 리더십이,
사람에게 새로운 구원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사사기의 역사는, 그 지점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겁니다.
▲여러분, 로마서에 보면 제가 한 군데만 읽어드릴 테니까 들으십시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롬3:20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1차적인 기능이 지켜라가 아니에요.
그래서 율법의 또 다른 표현이 ‘캐논’이라고 해요. 잣대라는 말이에요.
그 잣대를 들이밀어봤더니 0점, 내 안에 의가 없는 게 드러났어요.
그래서 로마서 기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한 내용이 뭡니까? ‘메시아가 오셔야 된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깨닫는 게 뭐냐면
‘아, 나는 정말 마이너스 수준이구나. 0점짜리구나. 내 안에 의가 없구나’
그러면 제3의 새로운 방법은 뭘까요?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3:24
그러니까 율법이 우리의 시선을 누구에게로 몰아갑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그리스도만이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줄 수 있고, 새로운 길을 줄 수가 있는 겁니다. 주1)
그런데 우리는 홍해를 건넌 애굽으로부터, 구원을 얻은 기억을 잊어버려요.
감사는 그것을 기억하는 데서부터 회복이 되는 거죠.
저는 우리 교회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 스스로가 먼저 하나님 앞에 그렇게 불충한 존재였으나,
구원함을 입고 그 구원의 감격과 은혜를 기억하면서
그것을 동력으로 하나님 앞에 어떻게 달음질해야 되는가 항상 잊어버리지 말고,
또 하반기를 주님의 자비, 주님의 사랑에 기대어
신실한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새해 하반기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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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맞은 양심
한때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일한 적이 있다. 한센병 증상 가운데 하나는
신경 마디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서 환자들은 피부 감각이 무뎌지고,
그렇다 보니 상처가 자주 생긴다.
끓는 물에 손을 넣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화상을 입기도 쉽다.
또 일을 하면서 노출된 신체의 일부를 베이거나 긁혀도 아픈 줄 모르기 때문에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슬리퍼만 신고 다니거나 맨발로 다닐 때 보면, 발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 있고,
물집이 잡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즉시 고통을 느끼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만,
한센병 환자들은 그것을 깨닫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에 화상 부위나 상처 부위에 병균이 침입해 조직이 썩어지고 만다.
결국 손과 발의 상처로 인해 손가락과 발가락을 잃게 되며
그때 병균이 다른 조직과 뼈에 침입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악은 도덕적 한센병으로 도덕적 민감성을 파괴하면서, 도덕적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인격마저 차츰 타락하게 만든다. 한센병 환자가 신체 일부를 잃는 것과 같이,
우리는 진정한 인간됨의 본질, 특히 하나님을 아는 능력을 잃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겨두신 가나안 족속들을 강하게 일으키시는 것이다.
그들로 이스라엘을 괴롭혀서, 이스라엘이 부르짖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신 것이다.
♣'질 때, 지혜롭게 지는 법' 익히기
<헨리 크라우드>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녀를 뛰어난 인물로 키우는 법을 강연하며서
질의 응답 시간에 한 여성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합니다.
“자녀들에게 가르쳐야할 성공 요소를 딱 한 가지만 들으라면, 뭘 들겠습니까? ”
“지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왜 아이들에게 지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까?
지금은 성공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아닙니까? ”
“누구나 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
승자와 패자의 차이점은 승자는 지혜롭게 실패하지만
패자는 어리석게 실패한다
지혜롭게 실패한 승자는 이후에는 웬만해서는 지지 않고
또 지더라도 전과 같이 똑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아니한다.
여러분, 실패하고 지더라도 지혜로운 실패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실패자는, 하나님 앞에 손을 들 줄 아는 성공자인 것입니다.
시28:2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특히 주께 손을 들 때에
14절 '죄악을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지혜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취할 행동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무능함과 정결치 못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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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율법은, 죄를 꺠닫게 하는 목적만 있는가?’ 라고 AI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답을 하는군요.
율법은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기능(몽학선생) 외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살아가는 삶의 지침 제시,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실천, 그리고 죄인에게 구원자(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절감하게
하는 목적 등 다양한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