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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27장 줄과 멍에를 목에 걸고 바벨론 왕을 섬겨라

LNCK 2026. 6. 16. 09:29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섬김>         ☞ 장기려 장로님

(21) 줄과 멍에를 목에 걸고 섬겨라 | 예레미야 27:1-8 | 2026.06.14 Youtube

 

◈줄과 멍에를 목에 걸고 바벨론 왕을 섬겨라      렘27:1-8       2026.06.14. [예레미야21강]

 

우리는 지난 시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70년 유배의 의미”를 함께 묵상했습니다.

이스라엘,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다 백성들의 바벨론 유배는,

3차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제2차 유배가 일어난 때가 주전 597년입니다.

느부갓네살왕, 그는 유다의 여호야긴 왕과 엘리트 계층의 기술자들,

그리고 유다의 모든 지도자들을, 유다 땅에서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끌고갔습니다.

 

그리고 유다 땅에는, 다윗의 왕족 가운데 그가 다루기 쉽다고 느꼈던 21살의

어린 왕 시드기야를 일종의 허수아비 왕으로 세워 두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바벨론의 신하로서만 존재하도록 하고자 한 것입니다.

 

▲‘반 바벨론 연합 전선’ 일어남

그런데 주전 594~593년에, 바벨론 제국 내에서 작은 반란 사태가 일어나서,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반란 세력이 등장하고,

그래서 바벨론 제국은 일시적이지만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자 유다 땅에 시드기야를 옹위하던 유다의 귀족들은,

바로 ‘이때다! 지금이 유다 나라가 독립할 기회다!’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다 땅 근처에, 혹은 바벨론 주변에,

작은 몇 개의 나라들이 함께 일어나서,

유다는 그들과 더불어 ‘반 바벨론 비밀 군사 동맹’을 모의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주전 593년 예루살렘에서 비밀 결사 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모압, 암몬, 두로, 시돈... 이런 국가들을 대표하는 사신들이 모여

유다 땅의 시드기야 왕을 중심으로, ‘반 바벨론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바벨론 제국에 대한 봉기를 획책하는 일종의 국제회의가 벌어진 것입니다. ↓

 

렘27:3 ‘유다의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밧줄, 멍에)을 주어

에돔의 왕과 모압의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의 왕과 시돈의 왕에게 보내며’

 

자, 그리고 이때 남쪽에는 비교적 큰 나라인 이집트가 있었는데, 이집트에서도 연락이 옵니다.

‘너희들이 일어나면 우리도 함께 하겠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바벨론을 치라’고 부추깁니다.

 

자 이런 ‘반 바벨론 연합 전선’의 논의가 한참 무르익어 갈 무렵에,

갑자기 이 회의 석상에 불청객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불청객이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였어요.

그는 굵은 동아줄을 갖고, 황소의 목에 매는 멍에를 자기의 목에 걸고,

또 몇 개의 동일한 줄과 멍에를 준비하고 등장합니다.

 

그리고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은

당분간 유다와 그리고 이 주변의 제국들을 바벨론 통치 아래 두신 것이라고,

그러므로 현재처럼 그의 통치에 굴복하는 것만이 당신들이 살 길이고,

어떤 유형의 반항도 실패할 것이며,

그것은 더 큰 피흘림과 더 큰 파괴와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렘27:6~8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섬기게 하였나니

모든 나라가 그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

또한 많은 나라들과 큰 왕들이 그 자신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리라’

 

지금 이 시점에서의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반역은

그것은 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본문 2절의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말씀하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내 목에 걸고

그리고 내가 정한 그 기한이 이르기까지 느부갓네살 왕을 섬기라’고 메시지를 전합니다.

밧줄과 멍에를 목에 걸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신약시대의 적용

 

자 그런데 이런 말씀을 우리가 읽으면서,

우리는 구약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신약 시대를 살고 있단 말이죠.

 

이 새로운 언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여러분과 저는

구약의 이런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옳을까요?

 

이런 예레미야 선지자가 지금 밧줄을 손에 들고, 멍에를 목에 걸고,

시청각적인 시연(퍼포먼스)을 하면서 전달하는 메시지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전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1.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이 홀로 역사와 인생의 주권자이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인, 하나님만이 인생의 주인이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한 나라의 주권자가 되려면, 그에게 통치의 권한이 주어져야 합니다.

이 통치의 권한을 주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본질적으로 창조자여, 섭리자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자, 본문의 5절과 6절의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27:5~6 '나는 내 큰 능력과 나의 젖은 팔로 땅과 지상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내가 보기에 옳은 사람에게 주었노라.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섬기게 하였나니'

 

그러니까 '느부갓네살을 왕으로 세운 것은 나다.

나 하나님 여호와가 그를 열국의 통치자로 세운 것이다' 이 말입니다.

 

모든 지상의 권력자들의 권력은, 원천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옳게 여겨, 그 권력을 잠시 동안 그 사람들에게 위임시켜,

백성들로 하여금 그를 섬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섬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27: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멍에를 매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멸하리라'

 

이 모든 섭리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바로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질문이 생길 수 있어요.

'자 하나님이 세운 권력자 소위 권력자가 불의를 행할 때에도,

우리가 그를 섬기고 그에게 순종해야 옳겠습니까?' 

(이어지는 설교에서의 답은, 하나님이 알아서 컨트롤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역사로 되돌아가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니엘 4장에 보면, 느부갓네살의 힘이 절정에 도달하고,

그가 자기 주변의 모든 국가들을 정복하고 전성기에 도달한 어느 날,

단4:29~30절에 보면, 그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성경은 기록합니다.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단4:29~30
 
느부갓네살이, 자기가 만든 바벨론 제국의 왕궁을 바라보고 거닐면서

그가 독백처럼 토해놓은 말이에요. 여기 중요.한 단어가 뭡니까?

반복되는 단어가 '내가' 라는 단어예요.

'내가 나의 능력으로 나의 도성을 만들고 영광을 선포한 것이 아니냐'

 

그런데 그가 이 말을 하는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모든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님의 메시지가 하늘로부터 그에게 전달됩니다.

 

단4:31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그가 스스로 착각해서,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왕국을 건설했다고 선언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너는 끝! 이것이 너의 제국의 끝이고, 너의 인생의 끝이다!' 이렇게 선언하세요.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요?

 

단4:32~33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하나님은 그의 비참한 종말을, 그의 마지막 심판으로 예언하신 것이에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도적질하는 그 누구도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잠시 복권되기는 하죠. 그러나 잠깐이었고, 결국 이 예언대로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제국의 통치자로서의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 위임된 것을 알고,

겸손히 그 권력을 행사하는 동안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느 날, 이제 그의 이 지상에서 공생애의 마지막 시간이 가까웠을 때,

3년 동안 훈련했던 제자들에게, 마지막 중요한 명령을 내니다.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해서, 제자들을 통해 세상이 변화되는 것을 보기를 원하셨던 주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며 주신 말씀,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라고 말하죠.

 

마28:18~20절을 같이 읽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예수님께) 주셨는데,

내가 그 권세를 너희들에게 위임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내가 너희들에게 위임한 권세를 갖고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는 그 사역을 완수해라'

라고 주님이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다. 우리가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잠시 무엇인가 어떤 권세를 갖고 행할 때라도,

그 권세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잠깐, 잠깐만 그분의 뜻을 이루도록, 그분의 사역을 행하도록,

우리에게 맡겨주신 위임된 권세라는 것을, 저와 여러분이 잊지 말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레슨이에요. 가장 중요한 레슨이에요. 사람들이 종종 쉽게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말이죠...

 

▲2. 두 번째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받아야 할 레슨은,

굴종의 섬김, 구약시대에 나타난 굴종의 섬김을,

신약시대에 그리스도는 명예로운 섬김으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자, 구약 시대에서 섬김이란 단어는, 오늘 본문에서 보는 사례처럼,

밧줄과 멍에를 목에 매는 굴종적이고 노예적인 섬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섬김의 의미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아들이 되어 이 땅에 오십니다.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선포하시면서, 그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

 

자 이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이 3년 동안 함께했던 제자들이 이제 마지막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작별할 때가 가까웠을 때,

그분은 나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면,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인가'를

서로 다투게 됩니다.

누군가는 주의 우편에 앉고 싶다고, 누군가는 주의 좌편에 앉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 막10:40절이죠.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던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누가 어떤 자리를 얻느냐?

'얻을 만한 사람이, 앉을 만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하나님이 주신다)'

 

그리고 이어서 막10:42~43절에서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놀라운 말씀을 다 같이 읽어요.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지금까지 이런 말씀을 하신 분이 없어요. 그 당시에 놀라운 말씀이에요.

'다스림'의 패러다임을, '통치'의 의미를 '섬김'으로 바꾸는 혁명적 가르침이었습니다.

 

'너희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예수님 때 와서 비로소 처음으로 이런 말씀이,

그 전에 이런 말씀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크고자 하는 사람,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섬기는 사람이 큰 사람, 섬기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오늘날 우리에게, 섬긴다는 것은 여전히 불편한 일입니다.

섬김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죠.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섬겨야 한다는 것은, 힘들고 고역스러운 노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오늘 본문에서도, 섬김의 이미지가 '굵은 동아줄, 혹은 소가 메고 다니는 멍에',

이게 섬김의 이미지였겠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분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멍에,

예수님도 우리에게 멍에를 메워주신다고 그러세요.

 

'그런데 그런 멍에는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멍에가 아니다.

억지로 감당해야 할 무거운 멍에가 아니다...'

 

자 마11:29~30절의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가 예수님 따라다닐 때도, 우리는 멍에를 메야 돼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그 멍에는 가볍고 쉬운 멍에다.

그것은 오히려 기쁨으로 질 수 있는 멍에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따라 섬기는 멍에를 멜 때,

우리는 즐겁고 기쁘게 섬기는 자가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약속이에요.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이후로,

인류는 서비스(섬김)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르게 성찰하고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서비스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규범적 단어로 정착한 것은 최근이에요.

사실은 1960년대 70년대에 와서,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속에 섬긴다는 의미가 심어졌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지 거의 2000년이 가까운 이때예요.

이 서비스의 의미를 우리 시대에 처음으로 활성화시킨 사람은

미국의 AT&T라는 회사에서 38년 동안 인사, 교육, 경영, 개발, 책임자로 일하던

로버트 그린리프 라는 사람이었어요.

 

 

그가 38년 동안 회사에 가르치고 퇴직하면서, 자기가 강의했던 내용들을 묶어서 책을 출판해요.

그것이 <서번트 리더십>이에요.

이 책이 소개된 그 때부터, 모든 비즈니스 세계, 경영학에서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말이 비로소 보편적으로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교훈을, 이 사람이 잘 할 수 있게 적용한 것입니다.

이 책에 보면 이 서번트 리더십의 핵심적 주장은 뭐냐? 한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리더십은 권력이 아니라 섬김에서 나온다

두 번째, 그러므로 리더는 먼저 섬기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세 번째, 훌륭한 리더는 사람들의 성장과 성숙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네 번째, 리더에게 성장과 성숙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조직의 성공보다도 사람들을 섬기는 마음이 더 우선해야 한다

다섯번째, 리더는 무엇보다 약자들과 공동체를 돌아보고자 하는 책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서번트 리더십의 핵심이에요. 이게 바로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이 아니겠습니까?

 

▲본문을 통해서 배워야 할 세 번째 중요한 레슨은 뭐냐?

모든 우리들의 선교의 목적은 그리스도처럼 섬김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금년 여름에도 우리 교회는 다시 국내외로, 해외로, 국내로,

이번엔 삼척, 동해 쪽으로, 또 목장 별로 흩어져서 섬김을 실천하고,

또 해외까지 가서 단기 선교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우리는 섬겨야 할까요?'

정답은 딱 하나예요. 예수님처럼 섬기시면 됩니다.

 

자, 질문은 아직도 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섬기셨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서 가장 좋은 말씀은 바울이

빌2:5절이에요. 예수님의 섬김의 일생을, 이 구절이 잘 요약했어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여기에 세 가지 중요한 단어가 있어요. 그 세 가지 중요한 단어만 우리가 기억하면 되겠습니다.

1) 첫째는 비우시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이신 분, 하나님의 본체이신데,

다 비우고 이 땅에 오셨다는 거예요. 이것을 'Kenosis(비움)이 영성'이라 그래요.

 

하나님과 동등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특권을 다 내려놓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사 자기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는 권세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시고, 대신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2) 두 번째 중요한 단어는 낮추시고,

그는 자신을 낮추시고 오셨어요.

어떻게 하나님과 동등이신 분이, 사람의 모습으로

그리고 사람 중에서 종이 된 자리까지 낮추어 오셨어요.

 

어느 날 그 예수님은 군중들 앞에서 한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섬기려면, 섬기려는 대상과 눈높이를 맞추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복종하시고,

어떻게 복종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하늘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자, 죽음의 길을 순종함으로 그는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가셨습니다.

 

그에게는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만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섬김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의 세이비어 서번트가 되셨어요. 구세주요. 종이신 하나님!

그게 예수님이에요. Savior Servant!

 

▲자 이런 예수님의 섬김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예수님의 섬김을, 예수님을 닮은, 예수님처럼 섬기시던 분이 계셨어요.

 

저 부산에 가면 송도 언덕에 [부산 복음병원]이 있어요.

이 복음병원 원장을 오랫동안 하셨던 장기려 박사님, 장로님이요, 병원장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의사로서 환자들을 대할 때, 마치 환자를 예수님처럼,

환자들을 자기 가족처럼 따뜻하게 섬기셨습니다.

 

그는 환자들의 사회적 지위나 빈부격차를 전혀 개의치 않으시던 분이셨습니다.

늘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이시고, 때로는 무릎을 꿇고 환자의 눈높이에서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영양실조였던 농부 한 사람을 진찰하다가, 진료 차트에 이렇게 씁니다.

'이 환자에게 내 월급으로, 닭 한 마리 사서 먹이시오' 하고 차트에 써놨어요.

 

퇴원비 진료비를 낼 수 없어 한숨을 쉬고 있는 환자 곁에 다가가서 속삭입니다.

'뒷문 열어놨으니까 빨리 빠져나가시오'

 

이분은 부인을 북한에 두고 남쪽으로 오셨던 분이에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한창이었을 때, 북한에 있는 부인을

북한 측에서도 장기려 박사가 오면 만나게 해주겠다고...

 

그런데 장기려 박사님은, 일반 시민들 중에 아직도 만날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순서가 아니라고 사양했습니다. *특혜를 거절했습니다.

 

평생 부인 사진을 침대 위에 놓고 살았어요.

그는 제자들과 간호사들에게 항상 존댓말을 쓰셨습니다.

병원의 가장 궂은 일을, 병원장인 그분이 친히 감당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가 남긴 유품은 의사 가운, 청진기, 서적 몇 권, 낡은 성경책,

그것이 그가 남긴 전부였습니다.

 

자기 집이 없었던 그분은, 평생 병원 맨 꼭대기 20평짜리 옥상 옥탑방에서

평생을 기거하시며 돌아가실 때까지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고 늘 말씀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지금 그 옥상이 보존되어 있어요. 부산에 가시면, 여러분이 송도 고신복음병원에 가시면

꼭대기 층 옥탑 방에, 장기려 박사님이 쓰시던 방이 그대로 이렇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보존에 있었어요.

 

네 이분이 평생 그렇게 사시다가 가셨어요.

그분을 접촉하고 그분을 만난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이 말이에요.

'그 분은 정말 따뜻한 사랑이, 온화한 인품이 넘치는 분이세요'

 

제가 저는 두 번 가는데 거기 지난달에도 한 번 또 갔습니다. 부산에 갔다가 들려봤어요.

예수님처럼 섬기다가 가신 분 예수님처럼 섬기다가 가신 분,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여러분과 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남아있는 인생의 날들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섬기다가 가야 할까요? 이번 여름철은 또 어떻게 섬겨야 할까요? 기도하시겠습니다.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류지광의 교회가는 길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