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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7장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LNCK 2026. 8. 2. 17:58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기적,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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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27:38-44                 1998.03.08.

 

♣21세기의 사람.. 도시 유목민

<21세기 사전>이라는 책이 최근에 나와서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자끄 아탈리가 쓴 책인데, 21세기를 전망하면서

그 21세기에 사람들의 모습에 중요한 특징은 도시 유목민이라는 것입니다.

그 유목민이라는 말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옛날처럼 방랑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도시에 살면서 떠도는 유목민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유목민적이라는 것이죠.

 

많은 사람이 모여 살지만은 고독합니다. 정착도 없고, 안정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시는 대로 아파트에 사는, 소위 아파트 족을 보면,

아무 이유도 없이 2년마다 이사를 합니다. 이사 안 하고는 좀이 쑤셔서 못 삽니다.

이거는 유목민의 마음입니다. 한 자리에 정착하지 못 하는 겁니다.

 

별로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도 아니면서

옆집으로라도 이사를 한 번 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도시 유목민의 속성이라는 것이지요.

 

   마음이 허해서 그렇습니다.

   마음에 은혜가 사라지면, 허전하고, 갑갑하고, 불행해서 미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사를 가거나, 해외이주를 하거나 (공부, 선교, 단기 봉사를 명목으로)

 

   아니면 ‘내가 누구 때문에 지금 이렇게 불행하다’며 남탓을 합니다.

   아들이 말을 안 들으면, 속히 군대 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아들이 군대를 가고 나면, 속이 후련해 집니까? 아닙니다.

   괜히 자기 마음이 공허한 것을, 그동안 아들 탓을 하고 있었던 것 뿐입니다.

   (남편 탓, 시부모 탓 마찬가지) 

 

   과거에는 ‘먹고 사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에,

   다른 모든 문제는 거기에 파묻혀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고 나니까,

   오히려 더 많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은혜로 채우면,

   다른 모든 문제는.. 사실 문제가 아닙니다. 다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외적 조건이 아무리 달라진다고 해도 매 한가지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모든 책임을 환경에 돌리려고 합니다.

 

"환경이 이렇기 때문에 내가 이렇다. 저가 이렇기 때문에 내가 이렇다."

라고 말합니다만, 환경과 처지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과 책임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인격이 미성숙한 사람은, 늘 언제나 ‘환경이 바뀌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비로소 내 마음도, 내 성격도, 내 인격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만은,

이것은 잘못된 인간의 아주 원초적 변명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이 화를 벌컥 벌컥 내니까

"여보 당신 왜 이렇 게 자꾸 큰 소리를 내는 거요?"

 

하니까 남편이 하는 말이

“난 원래 안 그랬는데 너하고 살면서 이렇게 나빠졌다”

이런 사람은 참 힘든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아셔야 돼요. 미성숙한 사람(죄인)은 어떤 변화가 바꾸어지기를 바랍니다.

환경과 나, 어느쪽이 먼저입니까?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 것입니까? 내가 환경을 바꿀 것입니까?

 

▲때로는 우리가 욕망에 대해서도, 이 끝없는 욕망,

‘내 욕망이 채워지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전제 합니다.

 

그래서 집없는 사람은 집이 있으면, 병든 사람은 건강만 있으면,

또 직업이 없는 사람은 직업만 있으면,

아무 소원도 없을 거라고 말은 합니다만은...

그저 뭐 그것 줘도 마찬가지에요. 욕심은 점점 더 커져요.

 

그 채울 수 없는 끝없는 욕망에 사로 잡혀서... 현대인은 헤어나지 못합니다.

근본적으로 이 욕망의 문제를 완전히 제어 하고,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물질로도.. 출세로도.. 명예로도.. 그는 절대로 평안할 수 없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생각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밖에서 오는 변화.. 이건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이런 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밖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이런 큰 역사,

이 속에서 특별한 기적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굴을 이렇게 들어다보면, 긴 굴 저 끝에 구멍이 조그만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그와 같이 내가 생각하는 세계를, 요렇게 꼭 굴을 들여다 보듯이,

보고 거기에다 맞추어 달라는 거에요.

여기에 맞지 않는 것은 뭐든지, 내가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바로 그러한 내 방식, 내 방법 대로, 내 세계관 안에서

하나님의 세계를 이해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게 됩니다.

 

기적은 있습니다. 어찌 생각 하면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기적 아닌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적이 없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하면 믿겠노라"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십자가 밑에서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 못박아 놓고 자기들이 말이요,

자기들이 못박아 놓고는 하는 말이

"뛰어내리라. 거기에서 덜렁 뛰어내려 그러면 믿겠노라." 마27:42

그렇습니까? 정말 믿을까요?

 

▲저는 어떤 분을 한 분 아는데,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사랑해요.

병원에 한번 가보니까 그 며느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 시아버지는 예수를 안믿어요.

그 며느리는 예수 믿는데 지금 죽어가는 며느리를 놓고요.

 

그 시아버지가 하는말 “이 며느리가 기도해서 병이 낫고,

며느리가 다시 건강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그 다음에 나는 예수 믿겠습니다."

 

뭐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정말 기적적으로 그 며느리가 건강을 회복했어요.

 

그런데 영감님이 교회 안 나왔어요.

급한 볼 일 보고나니까, 마음이 달라진 것이지요.

 

마찬가지더라구요. 그렇게 장담을 해 놓고, 큰 소리 해놓고, 나하고 약속까지 했는데...

그러니까 마찬가지에요. (기적이 있거나 없거나, 안 믿기는 마찬가지예요)

 

자, 오늘 십자가 밑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 보세요.

자기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는

"예수여, 십자가에서 뛰어내려! 뛰어내리면 내가 믿겠노라"

 

누구를 믿어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겠노라. 당신이 하나님이기를 믿겠노라."

이런 얘기지요.

그러나 이것은 허구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치셨지요. 장님의 눈을 뜨게 했지요. 그리고 죽은 자를 살렸지요.

5천명을 먹였지요.

예수님의 생애는 온통 이적과 기사로 충분합니다만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괴롭힌게 뭡니까?

 

‘하늘로 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라. 표적을 보이라.

또 다른 표적, 지금 보인 것 말고, 또 다른...

뭐 좀 화근한 것, 뭔가 좀 천지개벽 같은 좀 기가 찬 기적을 보이라’고 추구합니다.

재촉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친 것 같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도다."

 

거기에 암시 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요나가 고래 뱃속에 사흘 동 안 있었지요.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내가 죽고 사흘 만에 부활 할 것이다.

이 부활 사건외에는 아무 표적도 더 보일것이 없다.’

 

그 완악한 무리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은 기적에 대한, 기적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기적을 기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필요하다.

기적을 해석하는 해석 능력이 필요하다!’

 

▲여러분, 건강만이 기적이 아니에요. 병드는 것도 기적이에요.

안 되던 사업이 잘되는 것만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멀쩡하던 사업이 무너지는 것도 기적이에요.

문제는 '그 기적, 그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해석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아마도 기적중에 가장 큰 기적은,

모름지기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기적이에요.

 

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이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가장 우주적 기적이요. 대표적 기적입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

이보다도 더 큰 기적이 없어요.

 

또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 알고보면 십자가 지시는 것 자체가 기적이에요.

왜 예수가 죽어야 합니까? 이보다도 더 큰 기적이 없어요.

 

가장 결정적 기적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이렇게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뭘 생각했습니까?

‘내가 죽어야 열매를 맺느리라’ 이 길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

 

저는 오래전에 시카고 대학에 강연하러 갔을때, 잠깐 쉬는 시간에 친구하고 같이

박물관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마침 거기에서 이집트에서 가져온 미라를 특별 전시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가서 관람해 보았습니다.

 

미라를 많이 보았습니다만, 미라를 해부해 놓은 것은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3천년된 미라를 쪼개서 해부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미라에 들어있는 사람은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꼭 그저 북어 같아요. 북어 바짝 말려가지고 말이에요.

그게 뭐 남아 있으면 뭐하고, 썩어 있으면 뭐 하겠습니까?

차라리 불태워버리는 것만 못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그 미라를 보는데, 거기서 들은 얘기는 아닙니만은, 거기서 생각난 것입니다.

오래 전에 TIME 지에서 읽었습니다. ‘3천년 전 미라를 해부했더니

그 미라의 손에 밀알이 몇 알이 있었답니다.

신기하게 생각해서 그 밀알을 소중하게 땅에다가 심어 보았더니, 싹이 나더랍니다.’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가짜뉴스로 판명되었습니다. 주1)

 

어쨌거나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밀알이 죽은 사람의 손에 들려 있으니까, 3천년이 가도 그대로 있습니다.

이것이 땅속에 들어가서, 썩어야, 죽어야... 싹이 나고 열매가 맺혀요.

이 중요한 이치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요새 (1998년 설교) 우리는 개혁을 원합니다. 새로움을 원하고 새로운 변화를 요구합니다.

옛것의 죽음, 옛 가치관의 매장, 완전히 죽어야 사는 역사가 있어요.

바득바득 안 죽으려고 하니까, 되는 일이 없어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김대중 정권 출범 초기의 설교

 

새로운 변화란, 바로 이 죽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밀알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날, 거기에서 싹이 나는 거에요.

그것이 아니면 한 알 그대로 있다... 얼마나 깊은 말씀입니까?

 

▲오늘 본문에는 대단히 중요한 만남의 관계가 있습니다.

보세요. 바로 이 십자가를 지시는 이 장면속에,

예수님 계시고 예수님 옆에 강도가 있습니다. 참 대조적이지요.

 

예수님하고 강도가 가지런히 만납니다. 또 이야기도 합니다.

죽어가면서 대화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입니다.

아주 극적인 만남이요.

 

또한 믿음과 불신앙의 만남입니다.

특별히 사랑과 증오의 만남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극치요.

바로 예수를 죽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증오의 극치입니다.

 

세상에... 사람을 이렇게 미워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 이렇게 악해질수 있습니까? 극단적인 악입니다.
저가 밉다고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립니다.

 

그리고 믿음과 인간적 이성의 만남입니다. 보세요.

신앙의 사건으로 볼 때는, 엄청난 구원의 사건이에요.

그러나 불신앙적 이성으로 볼 때는, 저들의 외침에 일리가 있습니다.

"뛰어내려! 그러면 믿으리라. 십자가에서 뛰어내 려! 그러면 우리가 믿으리라."

 

가장 똑똑한 말 같은데, 이것은 가장 어리석은 말입니다.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사람들은 이만큼 잔악하다는 것입니다.

 

▲철학자이며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알 렝 핑킹 그라운트'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쓴 책에 '잃어버린 인간성'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 주제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동물과 사람을 구별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동물적인 것이요, 이것은 인간적인 것이다.

이것은 동물이고, 이것은 사람이다’ 라고 말하지만은

이상하게도 ‘사람은 동물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유독히 자기 같은 동족인데, 같은 종자인데,

같은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 하지 않는다...

그것이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만 가지는 악이라는 것이에요.

 

보세요. 고양이는 고양이를 대할 때, 고양이로만 대합니다.

고양이를 쥐로 대하지도 않고, 고양이를 개로 대하지도 않습니다.

각각 모든 동물은 같은 동족은 꼭 같이 대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렇게 같은 사람인데도, 사람을 죽입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하는 서양 선교사님이 계셨는데,

거기에 있는 식인종 추장과 같이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마침 오래 전에 나온 신문이 있었습니다.

 

그 신문을 보면서 선교사가 걱정을 했습니다.

‘전쟁이 났습니다. 구라파에서 1차대전이 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많은 사람을 죽인다고... 하며 걱정을 하니까

 

그 식인종 추장이 묻기를

"몇 사 람이나 죽었어요? 열 사람 죽었어요?"

"아니요."

 

"백 사람 죽었어요?"

"아니요."

 

"그럼 천 사람 죽었어요?"

"아니요."

"그 참 이상하구만. 사람의 고기도 안 먹는다면서, 왜 그렇게 많이 죽이노?"

 

식인종 추장이 이해를 못 하더라는 겁니다.

맞아죠. 사람의 고기도 안 먹으면서, 왜 이렇게 사람을 많이 죽여요?

문명인들이 그 야만인 식인종 만큼도 못 한거에요.

 

왜 동물만도 못한거요? 동물 가운데는 적어도 자기 동족을 죽이지 않아요.

동족을 잡아 먹지는 않는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 사람은 이상하게도 서로를, 같은 인간 대접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미우면, 이렇게 죽여요.

 

나치때 보면, 육백만이나 되는 사람을 죽여요.

사람은 그렇게 잔악해요.

 

▲오늘 본문에 보는데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어요.

그리고 그 앞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뛰어내리라고’

 

자기들이 못 박아 놓고 무슨 짓입니까? 계속 이같이 모욕을 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놓은 것은, 육체적 고통입니다만,

그 모욕과, 희롱과, 욕설과, 조롱... 이것들은 정신적 고통이에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 그것도 모자라서

그를 계속 인격적으로 짖밟는 거에요. 존재차원에서 그를 짖밟아요.

"네가 하나 님의 아들이냐?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내리라!"

 

또 그의 능력을 희롱합니다.

“남을 구원하고, 많은 이적을 행했다며?”

뭐 어쩌고 어쩌고 하면서

"어디 한 번 더 이적 을 해봐라. 뛰어내려!"

 

그건 능력을 비방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는 관계를 또 비방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어디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나 보자.

하나님이 네 편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너를 버렸느냐?"

이렇게 또 비난을 합니다.

 

이 많은 저주와 이 모욕 그리고 조롱... 이 속에서 본문을 보세요.

예수님은 조용히 끝까지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인내하시고, 이해하시고 믿습니다.

 

보세요.

"하나님, 저들의 죄를 사해 주시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상에서 맨 처음 하신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완악한, 이 엄청난 죄인들을 아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대로 십자가에 죽어갑니다.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있습니까?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마귀가 와서 시험할 때의 얘기와 똑같은 얘기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로 떡을 해 먹어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믿겠노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조건을 만들어 놓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내 뜻 대로 되면... 그러면 믿겠노라"고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얼마나 '무서운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엄청난 사랑의 계시가 있고, 큰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여기 있습니다만은

사람들은 이렇게 끝 끝내 하나님 앞에 대들고 있 습니다. 그러면 믿겠노라고요.

 

▲여러분 잘 아는 유명한 독일에 작곡가 '멘델스존'이 있습니다.

그 '멘델스존'의 할아버지가 '모세 멘델스존' 인데

이 '모세 멘델스존'은 키가 작고 꼽추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돈 많은 상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갔었는데

그 집에 딸 하 나가 있는데 '프롬체' 라는 그 딸을 보는 순간

너무너무 예뻐서 그만 순간적으로 사랑에 빠집니다.

 

참을 수가 없어서 그의 방에 조용히 들어 갔습니다.

물론 그 아가씨는 본체도 하지 않습니다. 말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용기를 내서 이렇게 물어봤다는 것입니다.

 

"아가씨, 아가씨는 결혼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 부부관 계를 이렇게 하나님이 맺어 주신다고

하나님의 뜻을 믿습니까?"

 

그러니까

"믿고 말고요. 당신은요.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요?"

 

"저요? 저는 물론 믿지요.

그런데 이런 일이 있습니다.

내가 어느때 환상에서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예쁜 아가씨를 소개하면서

'이 여자와 네가 앞으로 살아야 되겠는데,

그런데 이제 태어날때는 네가 한 평생 사랑해야 할 여자는 꼽추로 태어날 것이다.

너는 꼽추와 살아야 할 것이다.'는 것입니다.

 

그 모세는 대답하기를 '아니올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꼽추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정 그러시다면 내가 꼽추가 되겠습니다. 내가 되신 꼽추가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면 네가 꼽추가 되라.' 그래서 내가 꼽추가 된 것입니다."

 

그 때에 이 '프롬체'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을 마음에 가지고 있느냐?"고 그래서 감동이 되어서 결혼했데요.

 

그렇답니다. 여러분, ‘내가 대신 꼽추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지금 우리를 구원 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사건 앞에, 이들이 이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것입니까?

 

사랑은 참는 것이요. 능력을 받는 것이요.

십자가요. 그리고 부활이 있는 것이요.

믿는 자의 마음으로 십자가를 쳐다본다면, 이것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나 자신을 위한 것인데, 오직 감사와, 감격외에 다른 무슨 생각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렇습니다. 나를 위한 십자 가요. 내 자신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쳐다보면서 그 사랑의 엄청 난 계시 앞에

전혀 다른 이 의를 제기하지 맙시다.

 

이대로 사랑으로 받고, 이대로 감사· 감격하고,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하여 사랑과 믿음으로 응답하는, 그런 생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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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유기성 목사)가 존경하는 사람들 중에 이상춘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상춘 장로님이야말로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증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에 대하여 말씀드릴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 분은 평생 교도소에서 사역하시고, 은퇴 후에 재소자들을 위하여 사셨고,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소망교도소 건립을 위하여, 남은 생애를 다 사신 분입니다.

 

그는 평생 죄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 분을 아는 사람들은 다 이 장로님을 “작은 예수”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마음대로 안 되면 대통령을 소환해서 욕하기도 하고,

또 속상하면 ‘그 사람 보기 싫다. 야단치고 싶다’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상춘 장로에게서는 한 번도 불평이나 불만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장로님이 연로해서 간암에 걸린 후에도, 이 장로는 얼굴이 항상 밝아서

그를 만나는 성도들은 가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 분이 진짜 암 환자가 맞나?’

이 장로는 항상 웃었습니다. 언제나 여유가 있었습니다.

 

“고쳐서 쓰시든지, 이대로 쓰시든지, 아니면 데려가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며 사셨습니다.

 

이 장로님은 매 주일 예배 후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한번은 성령의 방언 은사를 받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러나 열리지 않아서 서운해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득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교도소에서 평생 사역하였지만 그의 마음은 순결하고 고결하였습니다.

 

.....................................

 

주1)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도시전설이자 거짓입니다.

Scientific American 및 History Today와 같은 저명한 매체에서도

이를 대표적인 '미라 밀 (Mummy Wheat)의 신화'로 지목하며

명백한 가짜 뉴스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사실과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밀이나 보리 같은 곡물 씨앗의 생물학적 수명은 최대 수백 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3천 년이 지난 씨앗은 내부 세포 조직이 완전히 파괴되어

발아 능력을 영구히 상실하게 됩니다.

 

19세기 영국 등 유럽에서 고대 이집트 문화가 크게 유행했을 때,

미라나 고분에서 나온 씨앗을 심어 싹을 틔웠다는 출처 불명의 자극적인 기사와 소문이

[The Times] 등에 보도되며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후 식물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직접 이집트 무덤에서 출토된 진짜 밀알들로 수차례 통제된

발아 실험을 진행했으나, 단 한 번도 싹을 틔우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History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