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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개척하라 수17:14-18 2008.02.10.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맹인박사가 된 강영우 박사가 쓴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을 없다』라는 책에 보면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동시에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 보는 자신의 의지적인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중학교에 다닐 때 축구를 하다 망막박리로 실명을 한 후에
낙심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열심히 노력한 결과
지금 2000, 2001년에 미국저명인사 인명사전과
2001년 세계저명인사 인명사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장애나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도전과 용기를 주는 귀한 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헬렌 켈러의 전기를 읽고 가장 큰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헬렌 켈러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삼중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으나
이후에 하버드 대학의 래드클리프 대학을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농아와 맹인을 돕는데 헌신하였습니다.
하지만 강영우 박사는 헬렌 켈러와는 달리 중학교 때 실명하였기 때문에
사물을 본 기억이 있어 시각화가 가능하였습니다.
그리고 헬렌 켈러가 가졌던 개념형성의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더 빨리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법적 불평등을 비롯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 인하여
여러 번 포기할 위기를 극복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셨다고 간증하였습니다(193-194).
제가 오늘 설교의 서론에서 이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은 믿음은
우리가 믿고 순종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책임적인 요소가 함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 믿음은 자동 버튼을 누르면 저절로 믿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얻는 문제에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동시에 복음으로 부를 때,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해야 할 인간의 책임적인 요소도 같이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관념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 점을 요셉지파가 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여호수아가 하는 응답하는 말을 통하여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이 본문의 주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어떤 장애물도 두려워하지 않고
믿고 순종할 때 약속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잘 이해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는 여호수아서의 구조와 주제를,
두 번째로는 요셉지파의 요구와 그 의미가 무엇이며,
세 번째로는 여호수아의 권면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여호수아의 구조와 주제
우리가 일반 문학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읽을 때, 그 책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으며,
어떤 문맥 속에 있는지를 살피는 일은
사건이나 인물의 의미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소설가 황석영이 쓴 『손님』이라는 소설을 예를 들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소설은 황해도 신천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소재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념인 공산주의와 기독교로 인하여 겪은 갈등을 잘 그려내었습니다.
이 내용 속에는 자주 인물들을 1인칭과 3인칭 등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한 인물이나 사건의 의미를 설명하곤 합니다.
만약에 이 책을 읽을 때 문맥 속에서 보지 않는다면
인물이 겪는 갈등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도 문맥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호수아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이 성취되는 정복이야기
(1-12장), *기억하기 쉽게 딱 절반입니다. 총24장이거든요.
두 번째 부분, 그 땅이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게 어떻게 분배되고 차지할 수 있는지의
역사를 기록한 땅의 분배이야기(13-21장),
세 번째 부분,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계속적으로 살 수 있는지의 문제를 말하기 위하여
세겜에서 언약을 갱신하는 이야기(22-24장)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조는 여호수아를 이해하는 일과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복 이야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적인 부분이 균형있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배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차지한 땅을 완전히 소유하고
그 땅의 풍요를 누리는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책임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기본적인 원리 가운데 하나는
인물중심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되는 계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하여
각 인물과 사건이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핵심되는 계시의 주제와 연관지어 해석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잘 보여주는 본문이, 이 책 전체에 세 군데 나타나 있습니다.
첫 번째, 땅을 다 정복한 다음에 여호수아 11:23에서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에 보면 땅을 정복하고 난 뒤에 각 지파대로 땅을 다 분배하고 난 뒤에
나래이터(narrator)가 이 일에 대하여 코멘트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수21:43-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주마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으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사방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 모든 대적이 그들을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세 번째로는 여호수아의 고별설교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계속적으로 그 땅에서 안식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할 때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수23:14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
특히 여호수아서는 이러한 주제를 묘사하면서도
약속의 땅을 소유하고 그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방법을 보여주는 데도
아주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책임적인 요소인 믿음과 순종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저자는 믿음과 순종의 중요성을 땅 분배 기사에 집중적으로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유기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2. 요셉지파의 요구와 그 의미
이스라엘 백성이 땅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요셉지파 사람들이 여호수아를 찾아왔습니다.
요셉지파라 함은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를 말합니다(수17:17).
당시에 땅을 분배하는 방식은, 하나님께서 제비를 뽑아서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제비를 뽑을 때, 당시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지파의 족장들이 함께 참여했죠.
수14:1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취한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 이 아래와 같으니라.”
특히 제사장 엘르아살이 참여하였다는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출28:30).
당시 성경의 세계에서 제비를 뽑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아주 중요한 방법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이미 요단 동편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땅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을 다 정복하고 난 뒤에, 나머지 아홉 지파 반에게 분배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유다 지파가 분배를 받았고(수14:6-15:63),
다음으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가 분배를 받았습니다(수16:1-17:13).
▲그런데 요셉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땅을
지도에 하나씩 표시해 보면,
당시 열 두 지파가 차지한 땅 가운데 제일 넓은 지역이며
지형학적인 면이나, 전략적으로나, 경작지면으로 볼 때,
아주 좋은 땅을 차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단강 서편의 지중해 변에 있는 도르, 므깃도, 길갈, 벧 스안, 이스르엘 등과
요단강 동편의 땅 골란과 바산, 길르앗이 므낫세 지파의 땅이고,
에브라임은 여리고, 실로, 벧엘 등의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여호수아에게 찾아와서 불평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아마도 이들은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내에서 그들의 위치적인 면에서 적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민13:8, 수19:50).
그리고 그들 스스로 큰 민족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만
인구 면에서 볼 때 에브라임이 32,500명이며, 므낫세가 52,700명이었습니다(민26:34, 36).
하지만 당시 더 큰 족속이 있었습니다.
유다 지파는 76,500명이었고, 잇사갈은 64,300명이었으며,
단 자손은 64,400명이었습니다(민26:22, 25, 43).
그러므로 그들의 논리는 잘못 되었습니다.
특히 여호수아가 그들의 요구에 대하여 한 말과,
이 말에 대하여 그들이 대답한 말을 볼 때,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수17:15-16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찐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요셉 자손이 가로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 스안과 그 향리에 거하는 자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는 자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여호수아는 요셉 지파의 요구가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기업이 정말 좁다면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본문에 “스스로 개척하라”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러카”(leka, לך)라는 말로
우리 번역처럼 “스스로,” 곧 “자기 힘으로”라는 뜻도 되고,
“너를 위하여”라고 번역도 가능합니다.
여러 영어 번역 성경에 보면 이 점을 서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NIV성경은 우리 번역처럼 “스스로”(for yourselves)라고 번역하였는데
이 말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요셉 가문이라고 해서 의지하지 말라는 뜻도 있고, *친인척 챤스 금지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이기 때문에, 그들 자신들의 힘으로 개척하라는 뜻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들이 여호수아에게 나아온 것은 정상적인 행동은 아닙니다.
사실 그들이 여호수아를 찾아온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제비뽑기로 좋은 땅을 차지하였지만,
실제로 그곳에는 가나안 족속 가운데 강력한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벧스안과 이스라엘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은 철병거가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지형학적인 면에서 볼 때 벧 스안과 이스르엘은 거의 평원이고,
특히 이스르엘 평원은 샤론 평야 다음으로 넓은 곡창지대였습니다.
그리고 철로 된 전차가 산지에 필요할까요? 잘 달릴 수 있는 평지에 전차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차지해야 할 땅에, 철병거로 무장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 철기문화를 가지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시대까지 철을 잘 다루지 못하였습니다.
블레셋 족속은 가나안에서 일찍부터 철기문화를 소유하여 철저히 관리하였습니다.
(삼상13:18-22) 오늘날 정보화 사회에서 일본이나 미국이 핵심기술을 이전해 주지 않고
관리하듯, 블레셋이 철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의 역사를 읽어보면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입성할 때부터
무기와 전술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이겼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기의 열세는 실제적인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것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앞에 보이는 난관만 보고 좌절하거나 불평하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때로는 요셉지파 사람들처럼 여호수아가 그들 지파 사람이라고 하여 요구하듯이
인맥을 찾아 호소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직책을 맡아 봉사하는 것도, 개척하여 목장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고
많은 난관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직분을 기피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또한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을 기피하고
편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보기 좋게 보이는 직분만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척정신을 가지고 도전하기보다는
상황자체만을 보고 지레 겁먹고 아예 도전도 해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처해있는 여건이나 장애만을 보고 아예 순종하려고 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순종하면 놀라운 결과가 있지만, 현실만 보고 기치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사람이 있다면
다음에 나타나는 여호수아의 권면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3. 여호수아의 권면
요셉지파의 이러한 요구에 대하여 여호수아는 소위 혈연에 끌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비를 뽑는 방식으로 기본 원칙을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지도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분배 받은 땅이 결코 빈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스스로 개척하라”라고 도전하였습니다.
여러분! 여호수아 17:17-18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일러 가로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여호수아는 요셉 지파는 큰 민족이라고 말합니다.
이 두 지파의 수를 보면 에브라임이 32,500명이고, 므낫세가 52,700명이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서 싸울 수 있는 숫자가 95,200명입니다.
당시의 인구 비율로 볼 때 큰 민족입니다. *원래 싸우는 남자 숫자만 계수
물론 인구가 많다가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요셉지파가 결코 작은 지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그곳에 브리스 사람이나 르바임 족속이 있다고 할지라도,
비록 벧 스안이나 이스르엘 평원에 거하는 민족이 철병거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위축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이 인구 숫자에 이어 “큰 권능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큰 권능”은 히브리어로 “코아흐 가돌”(koah gadol, כח גדול)이라는 말인데
이 단어의 용례를 조사해 보면 삼손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을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용어는 대개 하나님의 능력을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너희에게 큰 권능이 있다”라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큰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컨코턴스 찾고
바로 이 점을 요셉 지파 사람들에게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하여 “삼림이라도 개척하라”고 하였고,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고 말한 거죠.
▲여기에 “개척하라”라는 동사가 흥미로운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개간하라” 또는 “경작하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히브리어 단어로 “바라”(baraʼ, ברא)라는 말인데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바로 이 동사를 주로 사용하셨습니다.
미지의 땅을 개간하는 것은, 창조하는 일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개 삼림이 우거져 있으면 개척하기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개간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요셉 지파가 가지고 있는 인적 자원으로 충분하고,
그 위에 하나님이 큰 권능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도전하였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면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 민족들이 철병거로 무장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능히 차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요셉 지파 사람들은, 이 일을 기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 말을 하는 데는
이미 그들이 생생하게 경험한 역사적 선례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여호수아는 유다 지파의 갈렙이 가나안 가운데 가장 강력한 민족인 아낙 자손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하다고 할지라도 정복한 선례를 알고 있었고,
요셉 자손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수14:6-15).
요셉지파의 문제는 그들 자신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기 신분에 대한 확신이
결여되었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순종하는 일을
회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본문을 처음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여호수아의 구조와 기록목적을 재차 설명한 일이 있습니다.
이 본문은 약속한 땅을 분배하는 문맥 속에 있습니다.
분배 스토리는 여호수아 13장부터 21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분배 스토리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고 순종해야 할 인간의 책임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셉 지파가 여호수아에게 나아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보다는
외적으로 개간해야할 삼림지대가 많았고, 또한 벧 스안이나 이스르엘에 철병거를 가진 민족이
있어서, 현실적인 어려움만 보고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회피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를 보면 여호수아의 말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지역을, 결국 이 지파 사람들이 소유하였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여호수아의 권고를 듣고 이 지역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땅으로 경작하였고,
지형학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좋은 도시들을 건설하여
북쪽 이스라엘에서 가장 뛰어난 대표지파가 되었습니다.
◑4. 이 역사와 우리
우리가 이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를 통하여 구원을 경험하는 방법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역사의 뒤편을 보면 이 민족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우리는 오늘날 요셉 지파가 보여준 동일한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고,
성령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수많은 은혜와 능력을 베풀어주신 것을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히2:3-4에 기록된 것처럼 말씀으로 증거해 주시기도 하고,
하나님께서도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알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개인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도 여러 번의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들을 주셨습니다.
2005년에 있었던 위기적인 상황에서
저와 아내는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기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하고 복된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경 가운데 구약을 전공하고 성지 이스라엘을 답사하기를 희망했는데
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은혜를 저의 동기들과 친구들을 통하여 주셔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목회의 전반을 검토하여
저와 우리 교회가 부족한 부분을 새롭게 고쳐주셨습니다.
2005년 10월부터 주보도 새롭게 개편하고 2006년에는 미국 휴스턴에서 있었던
“가정교회 세미나”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을 고칠 수 있게 하시고
가정교회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제도가 완전히 자리를 잡기까지는 가야할 길도 멀고 가나안의 철병거와 같은 장애물도
있지만 조만간에 큰 변화를 주시리라 기대합니다. 저는 이러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저와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개간해야 할 삼림이나 가나안의 철벙거와 같은 장애물만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지역을 말씀으로 변화시켜 개혁주의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미 수많은 증거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들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 교회가 건물을 담보를 은행대출을 하고 있지만
교회가 안고 있는 부채를 해결하고, 교회당 내에 세 들어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다 내어보내었습니다.
사실 인간적인 계산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안정된 사회적 기반을 가진 가정이 많이 있습니까?
아니면 돈이나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까?
어렵고 힘든 순간순간마다 기도할 때 우리 교회 가운데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위로해 주셔서 큰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힘을 빼지 않고 더욱 힘쓴
여러분의 봉사와 수고를 잊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와 달리 많은 핸디캡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핸디캡으로 인하여 위축되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한샘교회 성도라는
신분의 정체성을 먼저 인정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말씀을 믿고 순종한다면 반드시 아름다운 결과를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이미 여러분 앞에 많은 증거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함께 해 주신 사실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순종해 보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 이상 전도하여 하나님의 밭을 경작하고 추수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앞에 있는 장애물이나 어려움을 두려워하여 핑계거리로 삼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도전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여러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이며
무한한 능력이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면서
큰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