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예수동행 목요집회 2026.06.25 l 시91:1-6 l 전능자의 그늘 Youtube
◈전능자의 그늘 시91:1~6 2026.06.25.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정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저와 함께 하셨음에
늘 감사합니다. 누구나 다 어릴 때 꿈이 있고 기대가 있고 소원이 있었는데
살다 보면 그렇게 못 살게 되잖아요.
저도 제 어릴 때 제 꿈이 있었고, 제 기대가 있었는데
이제 나이가 이렇게 들어보니까, 제 꿈대로 못 살았더라고요. 꿈보다 더 잘 살게 됐어요.
제가 어릴 때 부산 영도 그 바닷가에, 정말 수줍고 뭔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아 그런 정말 소년이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무슨 꿈을 제대로 꾸었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정말 별 볼일 없는, 그런 바닷가의 한 소년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제 삶을 돌아보면 '이게 무슨 역사지?' 이런 생각이 이따금 듭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초점이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는' 눈이 뜨였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나의 전능자의 그늘이 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 삶에 수없이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저도 동일하게 겪었고
그런 어려움이 없는 인생은 아무도 없겠지요.
그때마다 제가 전능자의 그늘 아래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어려움조차 저에게는 엄청난 유익이 되었던 겁니다.
사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광야'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합니다.
우리 한국이 여름이 굉장히 무덥다고 하지만,
그 중동, 성경의 배경이 되고 있는 그 중동의 한낮의 뙤약볕은, 상상할 수 없이 어렵습니다.
그 광야 길을 하루 종일 걸었다... 그건 정말 우리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고통이에요.
그런 광야 길을 하루 종일 걷는 중에... 그늘을 발견한 거예요. 이건 정말 황홀한 겁니다.
(산이나 언덕이 있으면, 또는 큰 구름이 있으면.. 그늘이 생기지요)
오늘 본문 시91편 기자가 하나님을 '전능자의 그늘'이라고 이렇게 표현한 것은,
어쩌면 지금 우리의 경험 세계 속에서는, 선뜻 실감이 잘 나지 않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한낮의 여름 더위가 이제 만만치 않잖아요.
그때 그늘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힘이 되고, *바닷가 백사장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그늘로 인하여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면,
오늘 말씀이 조금은 이렇게 와 닿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시편 91편 기자가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시91:1
지금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여!'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이미 그런 은혜를 받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면서 가장 높으신 분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는 너는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아래 머무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그런 은혜를 받고 있다는 거예요.
이제 그런 은혜를 받으라는 게 아니고,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여',
가장 높으신 분의 보호를 받으면서 지금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 말씀에 선뜻 실감이 안 나시는 분이 있으실 겁니다.
나는 지금 땡볕 가운데 그냥 있는 것 같다고...
나는 지금 말할 수 없는 어려움 중에 푹 빠져있다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
오늘 말씀으로,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은혜를, 제대로 눈 뜨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91: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지할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냥꾼의 덫에서 너를 빼내주시고, 죽을 병에서 너를 건져주실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그 깃으로 너를 덮어주시고, 너도 그의 날개 아래로 피할 것이니,
주의 진실하심이 너를 지켜주는 방패와 갑옷이 될 것이다' 그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4
▲그런데 궁금해져요. '정말 그렇다면,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은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현재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은,
'하나님이 정말 나의 그늘이 되시고, 방패가 되시고, 성벽이 되어주신다면
내가 그런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 있다면,
그러면 나는 지금 왜 여전히 이렇게 어려운가?' 그런 생각을 아마 하시게 될 거예요.
△저는 저희 어머님께서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정말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하나님이 전능자의 그늘이신가?'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신 그때, 저희 가정의 분위기와,
그때 제가 느꼈던 느낌은... '하나님이 어떤 그늘이 되어 주신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어느 장로님이, 이제 30세가 된 딸, 참 귀한 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장례식을 치르는데, 제가 그 장로님에게 드릴 말씀이 없더라고요.
저도 딸이 둘이 있는데, 그 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상상을 하면...
그냥 장로님을 빈소에서 안아드리고, 우는 것 밖에는 제가 할 게 없었어요.
'하나님은 진짜 전능자의 그늘이신가?'
그런 생각이 우리의 삶 속에도 수도 없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 믿음의 싸움이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 현실은, 하나님이 내 전능자의 그늘은 아니셔,
그래서 나는 말씀을 믿을 수가 없어...' 그럴 수도 있고,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니까, 내 형편은 지금 말할 수 없이 여전히 어렵지만,
마치 뙤약볕 속에 노출되어 있고, 폭풍우가 내게 불어닥치고,
내가 정말 땅이 꺼진 것 같은 그런 어려움 속에 여전히 처해 있지만,
'하나님은 나의 전능자의 그늘이 되신다' 그렇게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어요.
이 둘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 뿐입니다.
'결국 나는 어느 쪽을 택하느냐?' 하는 거예요.
믿음의 선택을 할 건지, 말 건지...
▲성경에 수많은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은 정말 그들에게 그늘이 되어 주시는 분이셨지만,
그들은 어려움을 다 겪었습니다. 어려움이 면죄된 하나님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 대표적인 사람이 엘리야입니다.
왕상 19장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이방 제사장 850명과 엄청난 영적 대결을 벌입니다.
그때 엘리야가 불 하나 쓰지 않고, 물을 그냥 열두 양동이나 다 쏟아 부은 제단 위에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는... 그런 엄청난 기도의 역사를 이뤄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세벨은 기세등등하게, 엘리야를 죽이려고 할 때,
그냥 낙심해서 광야로 도망을 갑니다.
하루길을 갔다고 그랬습니다. 왕상19:4
그러니까 하루 종일 그 뙤약볕의 광야를 도망가야 되는 엘리야는
어떤 고통 가운데 있었을까요?
그렇게 도망가다가 거기서 조그만 로뎀나무, 자그마한 나무,
우리 포스터에는 꽤 괜찮은 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실제로 로뎀나무는 그런 나무는 아니에요. 그냥 가시덤불 같은... 키도 2~3M 밖에 안 돼요.
가시 나무니, 풍성한 그늘을 주는 잎사귀가 없습니다. *비 없는 광야에서 나무의 생존법
그런 그래서 그 덤불에 약간의 그늘이 있는 정도인, 그 로뎀나무 하나를 발견하고,
거기다가 아마 머리 정도는 그냥 디밀었겠죠.
그 끔찍한 사막의 한낮의 더위에... 그 정도만이라도 머리라도 이렇게 어디 그늘 속에
둘 수 있다면, 그게 그냥 유일한 소원이었을 그 엘리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엘리야는 '하나님, 이제 그냥 저를 데려가세요.
저는 이제 더 살고 싶지도 않아요..' 그 정도로 엘리야가 낙심했습니다.
몸도 그랬고, 마음도 그렇고,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임하셨어요. 그리고 일단 엘리야를 먼저 재우십니다.
그래서 자게 해요. 그리고 천사를 보내서 그 엘리야를 다시 어루만져 깨우시고는,
떡과 물을 먹이십니다. '일어나 먹어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왕상19:7
하나님이 그 엘리야를 광야에서 만나 주시고는, 그냥 재우시고 물과 떡을 먹이시는 정도로
하시고는 계속 24시간 또 가게 하세요. 그리고는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이르게 합니다.
40주 40야를 걸었다니까, 밤낮 40일을 걸은 거죠.
그리고 거기서 큰 지진, 불, 바람, 산이 막 쪼개지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날 때에도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으세요.
그런 엄청난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날만 하신데,
그때는 하나님이 전혀 나타나지 않으세요.
그러다가 다 지나고 난 다음에, 아주 세미한 음성 가운데, 주님이 나타나세요.
엘리야를 만나 주시는데, 하나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만 남았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끝이에요' 그랬던 엘리야에게
'7천명을 내가 남겨두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 7천명을 남겨두고 있다' 왕상19:18
그래서 그 엘리야의 마음의 낙심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는 장면이
열왕기상 19장에 나옵니다.
▲자 여기서 우리도 엘리야 같은 심정일 때 있죠.
하루 종일 광야 길을 걸으면서, 어디에도 머리둘 데도 없는, 그늘도 없는 곳에서
조그만 로뎀나무 하나 만나서, 거기다가 겨우 내 머리 디밀고,
'그냥 여기서 이렇게 죽고 싶습니다..' 이런 심정인 때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엘리야를 만나 주시는데,
이상하게 그 모든 어려움을 싹 다 없애주시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면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잖아요.
광야 길에서 엘리야를, 정말 숲이 우거진 그런 산속으로 옮겨주실 수도 있잖아요.
굳이 떡하고 물하고 먹이고, 40주야를 또 걷게 하실 이유가 없잖아요. 왕상19:8
이세벨을 당장에 죽이시고, 엘리야에게 엄청난 승리를 경험하게 해주실 수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그 대신에 해주신 게 뭐냐면, 그 어려움 속에서 동행해 주신 거예요.
40주야를 같이 걸어서 호렙산에 가게 하시고,
그리고 세미한 음성으로 만나 주시고,
'여전히 7천명이 남아있어..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렇게 격려하시고,
그게 하나님이 하신 전부예요. 동행해 주신 것!
어떻게 생각하면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근데 여러분, 이게 바로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전능자의 그늘'인 거예요.
다시 말하면 지금 예수님이 내 마음에 거하시는 것을 내가 믿고,
그리고 그 주님과 동행하고자 하는, 바로 지금 우리가, 그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려움이 다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에요. 문제가 다 사라졌다는 말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우리가 전능자의 그늘 아래 있다'는 말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 내 문제가 다 없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보호자세요.
변호인이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대언자, 요일2:1등
우리 주님의 진실하심이 우리의 방벽이고, 또 우리의 방패예요.
'아 나는 그래도 잘 안 믿어집니다...'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실제로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은,
하나님이 정말 여러분을 보호하시고 지키신다는 게 안 믿어질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꼭 주목해야 돼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짜 힘이 되어 주시는 것은,
문제가 없게 해 주는 게 아니고,
그 문제 속에서 주님이 함께 해 주시는 거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아셔야 돼요.
▲금요성령집회 때, 선한목자교회에서 어느 성도님이 나오셔서
안수기도를 받으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 제목을 쓰신 쪽지를 봤습니다.
기도 카드에 이렇게 쓰셨어요.
「불의의 사고로 두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죽음 가운데 살려주신 하나님, 감사하면서도
그때 왜 저를 온전히 지켜주시지 않으셨는지 원망의 마음이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감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아 정말 기도 제목이 정말 안타까워요.
자 이분은 이해할 수 없는 큰 사고를 당하고, 두 다리 다 절단하고,
지금 의족을 한 상태입니다. 자 그런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이 보호하신다고 나는 믿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하고 떠날 수도 있어요.
근데 그분은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 제가 감사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런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나오신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의 전능자의 그늘 아래 들어와 계신' 거예요.
그 안에 계시는 주님이 아니시면, 그분에게 이 믿음과, 이 기도 제목이 나올 수가 없어요.
이게 바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있는' 자인 거예요.
△어떤 한 분이 동행일기를 쓰신 것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캄캄했던 밤, 저는 더 이상 기댈 사람도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저 무릎 꿇고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 한마디밖에 못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문제가 그 자리에서 풀린 것이 아니라,
제 마음에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임한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주님은 짐을 치워주시기보다
그 짐을 지고 갈 수 있는 당신 자신을 주신다는 것을요!」
그 분은 정말 정확히 안 거예요.
전능자의 그늘은,
우리가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있다는 말은,
'문제가 없어졌다, 치워졌다'는 뜻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상황에서 주님이 함께 계심이 믿어진 거예요. 그러면 상황이 확 달라집니다.
문제는 여전하고 어려움은 여전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제가 회심을 체험했을 때, 저는 다리가 장애인이 될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는데,
기도가 바뀌어버렸어요. '그냥 두 다리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그게 저에게는 더 유익하다고 느껴진 거예요.
진짜 주의 종이 되고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고 나니까 굳이
'다 고쳐주세요, 모두 해결해주세요' 할 게 없더라고요.
그냥 주의 종이 될 수만 있다면, 어떤 것도 좋더라고요.
여러분, 예수님을 보며 사는 것, 진짜 주님을 믿고 사는 것이
여러분이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있음을 믿으셔야 돼요.
△제가 얼마 전에 유재일 목사님의 주일 설교 때 들은, 본인의 이야기입니다.
청소년인 아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 아들에게 질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너무나 마음이 힘들었다는 거예요. 그게 정말 안타까운 기도 제목이죠.
부모된 자들은 다 동일한 심정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산책을 하는데, 우산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 겁니다.
그래서 그 산책로 옆에 있는 나무 아래 가서 서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그 목사님에게 아주 세밀한 음성을 마음에 들려주시더래요.
「예측하지 못한 순간을 만나, 두려움이 엄습했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때도 여전히 하나님이 마련하신 은혜의 그늘이 있다.
가끔 피부에 빗방울이 닿는 것은, 하나님이 그늘을 거두신 것이 아니라,
너에게 지금 비가 오고 있다는 싸인일 뿐이다.
이곳에 그냥 있으면 된다고, 기도의 우산을 쓰고, 말씀의 우산을 쓰며,
믿음을 잃지 않으면 충분하다고,
내가 여전히 너와 함께한다. 소나기는 지나가는 거란다.」
목사님이 그때 주님이 주셨던 그 마음에 주신 음성을,
그가 기록해서, 그 아내에게 그 내용을 메시지로 보냈다는 거예요.
비가 오는 중에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다가 깨달은,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다는 거죠.
이 경우가 전형적으로 전능자의 그늘 아래 들어가는 믿음인 거예요.
우리를 둘러싼 위협이나 폭염이나 폭풍 같은 것,
그 한가운데서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게 없어져서 피난처가 되신 게 아니에요.
우리가 전능자의 그늘 아래 들어갔다는 말은, 그게 없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게 여전한데도 나는 하나님의 그늘 아래 들어간 거예요.
때때로는 폭염이 나를 내리쬐고, 폭풍우가 몰아치면,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는 그늘을 거두셨나?'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냥 단순히 '지금 강한 햇빛이 비치고 있다,
빗방울이 지금 내게 떨어지고 있다'는.. 그냥 삶의 현실일 뿐이지
그게 '하나님의 그늘이 내게서 거두어졌다'는 말은 아닌 겁니다.
△자, 그런 위기 한복판에서 우리가 할 일은 하나예요.
여전히 주님이 함께 하시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나? Yes
내 내면 속에 신앙 고백은 여전한가? Yes
내게 있어서 하나님은 여전히 아버지이신가? Yes
예수님은 지금 내 안에 계신가?' Yes
그렇다면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요. 나는 여전히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있는 거예요.
해는 기울기 마련이고, 소나기는 결국은 지나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한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으세요.
▲한 번은 제가 장례설교를 준비하다가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 그런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설교를 해야 되는 거예요.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 롬12:12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긴 한데, 좀 난감하더라고요.
그 유족들은 다 지금 깊은 슬픔 속에 있는데
'즐거워하라'는 설교를 목사가 해야 되는 게, 여러분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자 이 설교를 해서 '이게 오히려 더 시험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하나님, 지금 슬픔 중에 있는데, 사랑하는 어머니 잃어버리고 다들 지금 슬퍼하고 있는데,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 도대체 무슨 근거가 있습니까?'
그때 주님이 저에게 주셨던 답이 너무 놀라웠어요.
'내가 있잖아!' 하는 것이었어요. '내가 있잖아!'
'여전히 유족들 마음에 주님이 계시잖아!' 주님이 우리 마음에 계세요.
사랑하는 가족이 지금 세상 떠났습니다.
그런데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주님이 여전히 내 안에 계시잖아요.
우리가 겪는 폭우, 폭염, 시험 중에 제일 큰 시험이 사망의 시험이에요.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소망 중에 즐거워할 수 있다면,
사실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시험은, 세상에 없는 거예요.
△어느 '사모 세미나' 때, 그때 한 사모님이 마지막 시간에 간증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목회를 어떻게 해야 되나? 사모 역할을 어떻게 감당하나?'
너무나 두렵고 고민이 되었는데 '내가 있잖아!'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답이었습니다.
진짜 은혜를 제대로 받으신 거예요.
목회 현장은 여전히 똑같아요. 이제 세미나 끝나고 돌아가는 사모님의 삶은
여전히 변함이 없죠. 그런데 이제 완전히 달라졌어요.
주님이 '내가 있잖아!'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이, 내게 분명해진 거예요.
그게 바로 내가 전능자의 그늘 아래 들어가게 된 거죠.
인생의 삶 속에서, 우리가 겪어야 될 많은 어려움들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계속 오고, 지나가고 나면 또 오고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우리의 인생의 단계마다 겪어야 될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그게 면제되지 않아요.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들이 없어지는 게 아닌 거예요.
왜냐면, 그 어려운 일들을 통해서, 또 하나님이 이루어가시는 역사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달라진 것이 있어요.
'내 안에 주님이 거하시고, 그 주님이 내 왕이 되어 계신 것!'
이거 하나면, 그러면 인생길 가운데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들이
전혀 의미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제가 은퇴하고 난 다음에 지금도 기억이 나요.
사택에서 짐을 다 꾸리고, 이삿짐 다 내보내고
이제 마지막 이삿짐 실은 차에, 제 아내와 제가 타고,
그리고 복정동에 있는 사택에서 쭉 이렇게 빠져나오는 그때가, 굉장히 추운 겨울이었어요.
날씨가 굉장히 추웠어요.
그래서 이삿짐 차를 타고, 담임 목사 사택에서 빠져나와서 쭉 나오는데
꼭 느낌이 온실 속에 살던 제가, 아주 차가운 들판 속으로 나오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이제 3년째 은퇴 목사로서 지금 살아가고 있는데,
근데 한 가지 너무너무 감사한 것이,
담임 목사로서 '늘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으로 그렇게 설교도 하고,
예수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주님과 동행하자고 그렇게 말씀을 전했지만,
은퇴 이후에 그 믿음이 더 선명해진 거예요. 그게 너무 감사한 거예요.
은퇴한 이후에 담임 목사의 직에서, 이제 은퇴 목사로,
예수동행운동을 하면서 주님을 더 갈망하게 되고, 주님을 더 바라보게 되고,
주님을 더 의지하게 되고...
뭐 담임 목사에서 은퇴하고 난 다음이
모든 것이 다 너무 좋기만 하기 때문에 그렇겠습니까?
근데 그 쉽지 않은 일들조차, 저에게는 엄청난 은혜가 된 것은,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더 큰 실제가 되었으니까요!
저는 한동안 '왜 주님의 역사가 정말 필요할 때,
주님은 구체적으로 즉시 역사해 주시지 않으실까?' 그게 늘 애통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저에게 매 순간 구체적으로 믿어지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꿈을 꾸면서, 주님이 저에게 어떤 상황을 통해서 질문을 하시는 것 같아요.
'내가 매 순간 즉시 너를 도와주고 지켜주면, 네게 유익하겠느냐?'
그 질문은 그게 유익하지 않다는 뜻이잖아요.
저는 '매 순간 즉시 내가 필요할 때마다,
주님이 구체적으로 역사해 주시는 게 얼마나 좋을까?'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다 깨달아졌어요.
만약에 주님이 내가 힘들 때, 어려울 때, 뭐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주님이 즉시 나를 도와주시고, 지켜주시고, 나를 건져주시고 그랬다면
아마 틀림없이 제가 더 안전하게 느끼고, 더 편리하고, 더 편안함을 느낄 수는 있었겠지만,
저는 굉장히 약해졌을 거예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 거예요.
저는 정말 무능한 사람이 되었을 거예요.
매사를 주님이 다 도와주시고, 지켜주시고 하신다면,
그리고 저는 굉장히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을 거예요.
주님께서 분명히 제 안에 계신데도,
제가 어려움을 겪어야 되고, 그 과정을 지나가야 되는 것이...
왜 그런지 알 것 같아요.
욥의 경우처럼, 사탄이 욥을 시험하도록, 주님이 그냥 허락하시지요.
왜요? 그게 욥에게 유익하고,
그 이후에 우리들에게도 그 과정이 너무나 큰 은혜가 되니까, 그렇게 허락하신 거예요.
주님은 때때로 우리의 연약함을, 또 우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우리가 때때로 힘들어하는 것을... 그냥 지켜만 보시고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도 '전능자의 그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 그때 부모와 주변의 어른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아이가 더 버둥버둥 대면서 일어나려고 하고, 그리고 뒤뚱거리면서 걸음을 한 걸음씩
내디디고 얼마나 아슬아슬해요?
그럴 때 어른들은 다 지켜본다고요. 즉시 붙잡아주지 않아요.
그냥 사람들 다 불러요. 온 가족을 다 불러요. '얘가 일어났다고.. 얘 걷는 것 좀 보라고...'
다 쳐다보기만 하는 거예요. 그 아이가 혼자서 뒤뚱뒤뚱하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내디뎌요.
그러면서 아이가 근육이 강해지고, 똑바로 서게 되고, 그리고 뛰게 돼죠.
그걸 다 붙잡아주면, 그 아이는 너무나 약한 아이가 되고 마는 거죠.
그냥 이제 일어나려고 하는 아이를.. 붙잡고 일으켜주고,
뒤뚱뒤뚱한다고.. 붙잡아서 바로 걷게끔 도와주려고 하고,
넘어질까봐, 다칠까봐, 깨질까봐 늘 붙들어주고 그러면,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돼요.
넘어져도.. 좀 다리가, 무릎이 깨지고, 어디 부딪혀서 얼굴에 상처가 나는 것을 다 겪으면서
우리는 이렇게 다 어른으로 자란 거거든요.
우리 주님이 우리를 결정적으로 보호하시는 선이 있어요.
그 선은 절대로 넘어가지 않게 하세요.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겪어야 될 일은 겪게 하세요.
우리가 스스로 주님을 붙잡고 일어나야 할 것은, 일어나게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주님께 '믿어지게 해주세요.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게 정말 계속 믿어지게 해주세요.'
믿어져야 믿음이거든요.
그런데 주님은 '믿어지기만 무한정 기다리면 안 된다.'
이미 믿음으로 일어설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이 주셨어요.
'주님은 내 안에 계시다' 그건 믿어져요. 그러면 충분해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얼마든지 그 믿음을 쓸 수 있어요.
지금 그 믿음을 쓰라는 거예요.
'나는 너무 힘든데...' 주님은 내가 지금 이 믿음을 써야 될 때는, 가만히 지켜보십니다.
그래서 한 걸음씩 순종하며 나갈 때, 그때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요.
그리고 어느 순간에 저는 예전의 제가 아닌 거예요. 믿음이 커졌어요. 강해졌어요.
제가 이 사실을 깨닫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저의 부족함이 너무 안타까웠지만, 동시에 제 여러 가지 많은 힘들고 어려운 실패와 좌절이
있었던 가운데도, 주님은 저를 더 사랑하시면서 "지켜보고 계신 것이 너무 감사"했어요.
여러분에게 정말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고, 말할 수 없는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은 상황이
지금 여러분 삶 속에 혹 있다 하더라도,
그 말은 주님이 여러분을 그냥 내버려 두셨다는 뜻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여전히 여러분은 주님의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있어요.
주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 게 분명하다면
그리고 주님은 여러분이 그 상황에서 믿음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세요.
얼마든지 그 상황을 이길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이 주님을 정말 믿고 그리고 말씀의 순종의 걸음을 한 걸음씩 내디디기
시작하면, 그럼 여러분 자신이 깜짝 놀랄 만큼, 여러분이 변해져 있는 것을 알게 돼요.
주님은 말씀하셨어요. 마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후12:9절에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그러면 이 말씀이 사실인 거예요.
여러분의 지금의 상황에서, 오늘 주님의 은혜는 족해요.
주님이 여러분의 형편을 모르시기 때문에, 역사를 안 하시는 게 아니에요.
얼마든지 지금 여러분 스스로 이길 수 있어요.
여러분이 새로워지는 단계로 지금 들어가 있어요.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놀랍게 일으키고 계세요. 주님이 나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럼 충분해요. 주님이 함께 걸어주시는 것만으로, 완전한 답을 얻은 거예요.
응답 전에 '먼저 내 마음에 평강을 주세요.'
오늘 여러분 안에 그 은혜의 역사가 놀랍게 임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