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8ㅣ우리가 다르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 베드로전서 4:1 - 11 Youtube
◈우리가 다르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 벧전4:1~11 2026.06.28.
예수를 믿으면 삶이 바뀝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주일 아침 한두 시간 교회 와서 시간 보낸다로 절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예수 믿으면, 교회 다니면 밥 먹기 전에 기도합니다.
학교 가서도 말투가 달라지고, 돈 쓰는 방식도 달라지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마음의 태도, 조급하던 사람이 여유를 갖게 되고,
까칠하던 사람이 부드러워지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 뜻에 따라 사는 것이기 때문에
삶의 목표와 방향, 가치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따라서 자녀 교육에 대한 생각,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
인생에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의 반응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흔들리고 헤매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 '예수 안 믿는 사람하고 별 다를 바 없다' 싶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건 사실입니다.
내 안에 생명이 씨앗이 심겨있고, 그것이 서서히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그 변화를 알아챕니다.
그러면 나의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겨요.
‘저 사람, 예수 믿더니 이상해졌어’
그 전에는 편하게 농담하고 희덕거리던 친구가, 어느 날 달라지니, 이상하게 보는 것이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1. 남은 시간이 아깝습니다!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 온갖 나쁜 거 다 하다가’
그 맨 마지막에 가장 심각한 ‘무법한 우상 숭배’가 있습니다.
전에는, 그렇게 살았는데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이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위 2절에도 ‘때’에 대한 말이 나옵니다.
지금 이 성도들을 비방하던 사람들은요.
초대교회의 성도들과 그 이전에는 함께 어울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음란과 정욕을 함께 즐기고, 술 마시러 가고,
1차, 2차 부끄러운 짓들 함께 하고, 그렇게 같이 놀던 동료들, 친구들이
이 사람이 예수 믿고 나니까, 그런 자리를 피하게 되죠. 그러니까 말합니다.
‘야 너 왜 그렇게 이상해졌어? 왜 시시해졌어? 옛날에는 우리랑 잘 어울렸잖아?’
그러면서 비방합니다.
여러분, 어둠은 빛을 불편해합니다.
가정적인 남편을 바보 취급하는 세상 남자들의 문화가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학생을 ‘좀스럽다’하고 놀리는 교실 문화가 있습니다.
사장이 보든 안 보든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왕따시키는 직장도 있습니다.
뇌물 없이 정직하게 법대로 사업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세계가 있습니다.
거짓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 정직한 사람 하나 생기면... 다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를 불편해합니다.
이렇게 불편하고, 부당 대우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왜 다르게 살아가는가요?
첫째, 시간이 아깝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남은 때...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1
여러분 사람이, 예수를 알고 은혜를 받은 증거가 있으면,
가치관이 바뀌면,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이, 시간이 아까워져요.
△제가 미국에서 30대 때 청년부 사역을 했습니다.
이민 유학생들 사역인데, 한국에서는 전혀 예수님을 모르고 살다가,
미국 이민 와서, 유학 와서, 처음으로 교회 다니기 시작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재밌게 전도하고 성경 공부 같이 했습니다.
그 중에는 한국에서 정말 놀만큼 놀아본 친구들,
그냥 동네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별짓 다 하던 친구들,
심지어 조직폭력배 밑에 들어가서, 폭력을 휘두르다가 온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금요일 밤에 모여서 함께 성경 공부했는데요. 그 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공부하고 은혜 받으면, 사람 얼굴이 바뀝니다.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집니다.
그 얼굴에 어둠이 가시고, 정말 조폭같은 험상궂은 얼굴이,
순진한 아이같이, 천사같이 바뀌어간 현상을, 저는 많이 목격했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힘입니다.
금요일 밤, 일주일 내내 미국 사람들 틈에 섞여서,
잘 되지도 않는 영어 가지고 사느라고 눈치 보고 스트레스 받고 살다가,
주말에 모이면 얼마나 좋은지...
함께 말씀 공부하고, 떡볶이도 같이 먹고, 함께 이렇게 어울리다 보면,
청년들의 얼굴이 달라져요.
여러분 아시죠? 여기 동해안 오징어배,
깜깜한 바다에 오징어배 불빛이 쫙 비취잖아요.
여러분, 사람들 얼굴이 그렇게 환하게 보이는 거, 여러분 보셨습니까?
은혜 있는 공동체입니다.
그때 그중에 몇 친구들이, 저한테 그런 말을 했어요.
‘목사님,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제가 예수 만나고 보니까, 내 삶을 사랑하게 되고 보니까,
그냥 목적 없이 보낸 세월이 너무 후회됩니다.
제가 조금 더 젊었을 때, 예수님을 알았으면 좋았을 걸’ 했는데,
그때 그 친구가 20대 중반이었습니다.
그가 군대 갔다 와가지고 바로, 정신 좀 차리라고, 부모가 미국에 보낸 거예요.
그 후에 이 친구는, 스시 배우기를 열심히 해가지고요. 아주 열심히 일했습니다.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지금은 미국에 가면 엄청난 큰 레스토랑 사장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분들 중에서도, 그냥 뭐 왔다 갔다, 교회당 마당만 밟고 다니다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나면, 처음으로 나오는 반응이 ‘시간이 아까워요!’라는 말이에요.
‘내가 좀 더 일찍 은혜를 받았으면 다르게 살았을 텐데...
하나님 은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일찍 눈을 떴으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동시에 ‘몇 년이 남았든, 지금부터라도 다르게 살겠습니다’ 하는 고백이 생기는 거예요.
그게 오늘 말씀의 ‘육체의 남은 때’라는 말이에요.
여러분, 이어령 교수 아시죠? 평생을 지독한 안티 크리스천으로 살았습니다.
근데 결국 예수님을 영접했잖아요.
‘나는 평생 내 머리로 지성으로 하나님을 분석하고자 했는데,
이제야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단순한 진리를 알기까지 80년이 걸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정말 정말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 1분 1초를 아껴서, 글을 쓰고, 인터뷰하고,
마지막을 얼마나 불꽃같이 살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사람이 철이 들어서 ‘이제 부모님께 효도해야 되겠다’ 하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혹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안 계신다’ 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가치 있는 일에 돈과 시간, 내 인생을 투자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의미 없는 곳에, 내 생명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 밤새도록 고스톱 치고, 눈이 뻘개가지고 집에 가는 사람들 있잖아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결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도박은 나쁜 거야, 그거 하면 안 돼’ 물론 맞는 말이죠.
그 이전에 시간이 아까워서 그걸 못해요.
몇 시간씩 앉아서, 남 험담하고 앉아있는 것,
‘험담은 나쁜 거야’ 말하기 이전에,
여러분, 시간이 아까워서 그렇게 허비 못하는 것,
그게 여러분, 은혜 받은 자의 삶인 거예요.
▲2. 품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역시 시간에 대한 거죠.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할 일이 많지만, 해야 될 좋은 일이 많지만,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라고 말씀한 거예요. 4:8
여러분 때를 알면요. 나에게 남은 때가 무한하지 않다는 걸 알면,
누군가를 미워하고, 험담하고...
그런 무의미한 일에,
나를 드러내려고 헛된 노력하는 일에, 내 에너지를 허비하기에는
너무 인생에 아까운 거예요.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4:8
사랑은 우리의 유한한 시간을 가장 값지게 쓰는 방법입니다.
사랑할 시간도 부족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다르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 첫 번째는
뭐라고 그랬습니까? 시간이 아깝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품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4:4절에,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의 달음질을 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여겨’
‘이상히여겨’ 이 원어가 ‘크세니존타이’, 에일리언, 스트레인저로 여긴다 이런 말이에요.
‘이방인, 낯선 사람 대하듯이. 외계인 대하듯이’ 이상히 여긴다는 거죠.
그런데 바로 이 단어의 어근이, 그대로 9절에 나옵니다.
4: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대접'은 환대라는 말이죠.
영어로 hospitality 인데,
헬라어로 ‘필로크세노스’입니다.
필로스는.. 사랑,
크세노스는.. 낯선 것을, 이상한 것을, 내가 좀 불편한 사람을
필로스 사랑한다는 거예요.
대접, 환대 hospitality 는요. 나하고 다른 것, 낯선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환대는요. 그래서 4절과 9절의 이 두 말의 의미를 정리해보면,
세상은 우리 크리스천들을 ‘낯설다, 이상하다, 저리 가라’ 그러고 배제하는데, :4
그리스도인들은 그 비방을 비방으로 맞서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 환대한다는 거죠. :9
그들 세상 사람들까지도요! ‘대접하고 환영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4절에 ‘이상히 여겨’ 와 9절에 ‘대접’이라는 말이,
우리 한국어성경으로 아무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헬라어로 보면, 마치 대구법처럼 연관이 있게 쓰여져 있다, 어근이 같고 연결된다는 뜻이죠)
△그리고 우리가 베드로전서 시작할 때,
‘이 사람들이 전부 나그네였다, 홈리스였다’ 했습니다. 1:1
작년부터 이런 말씀 자주 드렸습니다.
‘Home for the homeless!’
베드로전서의 신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가 나그네지만, 이 땅에 살면서 집 없는 사람들의 집이 되어주는 사역을 하자’
라는 신앙이었습니다.
▲지난 주간 동안에 우리는 6.25 기념일을 지났습니다.
여러분 6.25 때 남한으로 내려온 월남 동포들,
그야말로 집 없는 나그네였거든요. 얼마나 불쌍하게 살았는지...
저희 장인 어른이 평양 가까운 데 사시다가 내려오셨습니다.
친척들도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가 알아서 내려온 거예요. 서로 만날 길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고 중부지방에 있다가, 부산까지 내려왔는데
이렇게 길에 다니다가, 길에서 사촌을 만난 거예요. 옛날에 부산이 그리 넓지 않았지요.
몇 명 되지도 않는 고향의 친척을, 부산에서 우연히 만났대요.
친척이 장인을 보고 ‘어디 지내냐?’ 하고, ‘우리 집에 가자’ 그러는 거예요.
자기는 먼저 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장인 어른이 친척 집에 가보니까, 부산에 용두산 공원이라고 아시죠?
그분이 데려가는데, 그 산 밑에 쫙 이렇게 판잣집이 그냥 줄지어 있는데요.
딱 요만한 데다가 자리 잡아놓고, 보르박스로 간막이 해 놓은 거예요.
두 명도 눕기 힘든데 ‘우리 집에서 가서 자고 가라’ 친척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거죠.
장인 어른이 제게 그 말씀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분들이 교회를 세운 거예요.
한국 굴지의 교회들, 영락교회, 충현교회... 다 그때 생긴 겁니다.
영락교회는 1945년에 한경직 목사님이 27명의 월남성도들과 함께 피난 와서
서울에 자리 잡고 먼저 전도하기 시작했어요.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게 영락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학교 세우고, 고아원 만들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고...
여러분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요. 모여서 기도하고 이불 한 채 가져온 거 헌납해서,
그거 팔아서 교회 짓고요. 그러면서 이웃들을 대접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6.25를 생각하면요. 우리 한국교회에 오늘이 있을 수 있던 그 영성의 핵심에
‘Home for the homeless!’
‘나도 나그네지만 누군가의 집이 되어줄 수 있다’는 정말 놀라운 신앙의 고백과 실천이
있었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그러니까 낯선 땅인데, 내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우리도 피난 왔는데,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여기서도 하나님 품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Home for the Homeless'를 살려면, 먼저 우리가 하나님 품의 따뜻함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품에 계속해서 파고드는 신앙,
그리고 그 품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세상을 품는 거예요.
하나님의 크심을 알면요. 하나님의 품이 얼마나 크고,
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큰 이야기, 그랜드 스토리를 알면요.
우리는 세상에 못 품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캄보디아 선교하잖아요. 캄보디아 가려고 지금 준비하고 있잖아요.
여러분, 내가 교회 다니지 않았으면, 일생에 한 번이라도 캄보디아를 생각하고,
캄보디아를 걱정하고, 캄보디아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있겠습니까?
거기가 뭐라고 휴가 내서 비싼 비행기 타고, 아이들까지 보내고,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어떻게 가능합니까?
캄보디어 성도들,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인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크신 품을 아니까, 나하고 전혀 상관없는 낯선 사람도 형제로 품을 수 있고요.
심지어 우리를 비방하는 사람까지도 품을 수가 있는 거예요.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이상히 여기지 말고'
우리가 인생 살다가 만나는 일들 중에서,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처름,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지?'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럴 때에 '이상히 여기지 말라' 이렇게 똑같이 ‘크세니조’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쓰고 있습니다. 4절에 이어서.
여러분 보세요. 다른 사람을 향해서 세상은 ‘크세니조’ 이상하게 얘기합니다.
외계인 취급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환대합니다.
똑같은 원리로요. 내 삶에 일어나는 어떤 일들, 생각지도 못한 일들,
‘왜 나에게 이런 시험이 일어나지?’
‘왜 우리 집에 이런 고난이 닥치지?’
하는 그런 일들도, 여러분 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게 똑같은 원리라는 겁니다.
포용심으로 받아들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불시험이 닥쳐도, 그걸 다 수용하고...
내 삶에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도... 감내하는 거예요. 왜냐?
이 사람들도, 이 사건들도,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같은 원리로 보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가르쳐주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내 삶에, 지난 한 주간 지내는 동안에도,
우리 가운데도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은 분들이 계실 거예요.
‘나에게는 대책이 없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손 안에 대책도 있고, 계획도 있으신 줄 믿습니다.
지금의 당황하는 마음도, 고난도, 눈물도..
모두를 합쳐서 하나님의 높으신 지혜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물론 우리가 거기까지 가기까지 갈 힘이 없습니다. 갈 길은 멉니다.
그러나 그 길에 이를 수 있도록, 하나님 순간순간 힘주시고, 소망주시고,
동행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11절 함께 읽습니다.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하나님이 하십니다.
말하려면, 설교하려면..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봉사하려면.. 오늘도 이런 많은 분들이 지금도 찬양대하시고, 예배 안내하고 계시고요.
교육부 교실에 가서 가르치고 계시고요. 선교도 나가시고요.
우리가 ‘담넘어 전도’도 했고요. 식당에서, 또 주차장에서 많은 섬김을 하고 계십니다.
그 모든 봉사가, 섬김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앞으로도 계속하는 사역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힘으로, 내 잘난 멋으로 하면, 금방은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못 갑니다.
금방 삐지고 상처받았다 그러잖아요. 금방 등 돌리잖아요. ‘나 못하겠다’ 그러잖아요.
내 힘으로 하려고 그래서 그렇습니다.
내 힘으로 사역하면 반드시 번아웃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호기있게 나섰다가, 큰소리치다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다르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첫 번째,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고,
두 번째, 품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이고.. 어떤 사람도, 어떤 사건도 품을 수 있습니다.)
▲3. 세 번째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80세의 모세를 알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제 뭐 인생을 정리해야 될 때입니다.
뭐 별 소망이 없는 나이였습니다.
광야에서 양을 치다가 가시떨기나무에 불 붙은 것을 보고 ‘이상하다’ 하고 다가갑니다.
왜 이상해요? 광야에서 불은 날 수 있는 거예요.
광야에 바짝 마른 날씨에 바람이 불면, 서로 부딪혀서 불이 날 수 있어요.
번개에 맞아도 불이 나지요. *자연 발화
그런데 이상한 거는, 가시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꺼지지 않는 거예요.
가시떨기 나무입니다. 여러분 이게 참나무나 소나무면, 좀 오래 탈 수 있어요.
그러나 가시떨기가 뭡니까? 금방 확 탔다가 금방 사그라지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 나무에 불이 사그러들지 않으니까 이상한 거죠.
△제가 예전에 젊었을 때, 어떤 유대인 랍비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 서점에서 서서 읽었어요. 당시에는 책 살 돈도 없어서,
맨날 서점에서 책을 서서 읽었는데, 그 책에 보니까
이 가시떨기가 모세 자신의 상징이라는 거예요.
40세의 모세는, 정의감으로 충만했습니다.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팔에 힘도 넘쳤고 왕자라는 지위도, 네트워크도 있었어요.
나쁜 놈들 한 방에 때려 눕힐 기세였습니다. 그렇게 호기 있게 나섰죠.
그런데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요. 그냥 도망쳐버리잖아요.
확 타오르다가... 세상 다 어떻게 할 것처럼 자신 있게 큰소리 치다가...
금방 사그라져 버리는 가시떨기... 그 인간적인 열정!
그러나 40년 후 80세의 모세를 보십시오. 아무것도 없어요.
힘도 없고 가진, 재산도 없고, 자기를 도와줄 배경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도망가지 않고요. 지팡이 하나 들고, 바로 왕 앞에 나섭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비록 가시떨기같이 보잘것없는 존재였지만,
패션, Passion Ignited by God 하나님이 불붙이신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나를 연료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열정을 불붙이실 때,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제가 그때 우리 청년들 사역할 때, 이런 말을 청년들에게 했어요.
Passion Ignited by God, PIG라고 줄여서 말했습니다.
우리 청년부의 표어로 사용하게 됐습니다. 30년도 넘은 일입니다.
그때 열정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친구들이, 지금까지도 사회 각계에서
또 교회에서 믿음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하나님이 불붙이신 열정이면요. 여러분, 이게 오래 갈 수 있습니다.
모세가 그랬잖아요. 80세에 부름받았는데, 그 이후로 모세가 어떻게 살았습니까?
4:2절 말씀 다시 읽습니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그 후로 하나님께 부름받은 이후로, 그 40년을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었습니다. 열정적으로 달려갈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살았습니까?
요일4:8절에 보면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셨습니다.
모세의 삶은 뜨거운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저 모든 백성들 다 멸망시켜 버릴 거야’ 했을 때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하나님 저들을 살려주십시오. 대신 저를 버려주십시오.
제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져도 좋습니다.’ 정말 뜨거운 사랑이죠. 열정적인 사랑이죠.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이었습니다.
민수기에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했죠. 민12:3
뜨거운 열정뿐 아니라 이러면 온유함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막 공격해도, 모세는 비방에 비방으로 맞서지 않는,
베드로전서의 신앙을 모세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어떻게 하면 온유할 수 있을까요?
온유한 태도를 가진 사람은...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 쓰지 않았다는 증거를 보여줍니다.
여러분, 세상 살다 보면 억울한 일 당할 수 있잖아요. 마음에 생채기가 날 수 있잖아요.
‘어쩌면 나한테 그럴 수 있어?’ 할 수 있잖아요.
그거 붙잡고 집에 가서, 밤새 씩씩거리고, 고민하고, 잠 못 자고...
그럼 그 다음날 밖에 나가서 온유한 반응이 나오겠습니까? 택도 없죠.
모세는 누가 자기를 부당하게 공격해도... 그냥 웃지요.
이런 태도를 세상 사람들은 ‘쿨하다’ 그러죠.
모세는 한쪽으로는 굉장히 뜨거운 열정적인 삶과 함께, 쿨한 사람이었어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어요. 그러니까 그 온유함이, 그 인격이 오래 갈 수 있는 거예요.
△21세기 사회의 최대의 화두가 뭔가 하면요. ‘Sustainability 지속 가능성’입니다.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죠. 성장에 중독되어서,
‘다 무조건 키우려고만 하면 못 산다’ 이 말인데
그런데 여러분 지속가능성도, 게으른 지속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조건 다운사이징 하는 거죠.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고, 아이들 학원도 안 보내고,
뭐도 안 하고, 뭐도 안 하고... 이렇게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은 뭐 쉽죠.
귀찮은데 안 하면 좋죠.
그게 아니고요. 우리는 창조적인 지속가능성이 있어야 됩니다.
어려울수록 어떤 부분은 더 해야 되고, 더 열심히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치가 있어요.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야지요.
여러분 줄일 거, 포기할 거, 안 할 거와,
더 열심히 해야 될 게... 여러분 구분이 어렵지 않습니까?
창조적 지속가능성, 가치가 분명한 삶 개인이나 기업이나 가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 잘할 수 없습니다.
△한나 아렌트라는 여성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하이데거의 제자였는데, 워낙 총명한 학생이어서 하이데거하고 나중에 연인이 되죠.
서로 존경하고 사랑했는데, 하이데거가 나치에 부역하자 실망하고 떠납니다.
미국으로 가서, 그 이후에 독자적인 철학세계를 구축해 나갔죠.
이분이 한 말 중에 ‘탄생성’이라는 말이 있어요.
‘인간다움이 어디에 있는가? 탄생성(Natality)에 있다'
간단히 말하면 ’새롭게 시작하는 능력을 잃지 않는 것에 인간다움이 있다‘는 거죠.
’이 나이에 내가 이만큼 나이 들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고요. 육체의 남은 때가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인간답게 사는 사람이라는 거죠.
그의 스승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 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이 아주 중요한 테제죠.
아렌트는 반대로 여러분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거죠. 인간은 본래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위해 태어났다... *탄생성
새로 시작하는 능력, 지금까지 살았던, 어제까지 살았던 그 익숙한 삶,
'나는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래..’ 이게 아니고요.
오늘부터라도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다르게 살 수 있는 능력,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기 원하시는
가장 값진 선물인 줄 믿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 아시죠? 나치에 저항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젊은 나이에 사형선고를 받았다면
‘내 인생 끝났다’ 싶지 않겠습니까?
근데 그때 기도하고 묵상했던 내용들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요. 은혜의 자리로 초대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 새해를 앞두고 쓴 편지, “선한 능력으로”
그 놀라운 평안을 누리며,
여러분 죽음이 목전에 있는데, 정말 억울한 죽음이 내 앞에 있는데,
정말 놀라운 평안을 누린다고 고백하고 있어요.
도리어 밖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고요.
그리고 이 찬송 마지막에 보면,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내일 모레 죽는데요. 새로운 꿈을 꾸는 거예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것이 은혜입니다.
내 육체에 남은 때가 얼마이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그 크신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새로운 꿈을 꾸고,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렇게 굳세게 전진하는 주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