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시리즈11. 반복되는 동일한 시험,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2026-06-12 Youtube
◈반복되는 동일한 시험,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창44:1~13 2026-06-12 [요셉시리즈11]
루프 loop 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 루프는 '고리, 반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 루프라는 것은 우리의 삶 가운데 깊이 사용되고 있는 개념입니다.
특정 조건이 만족될 때까지, 동일한 명령을 반복해서 실행하는 제어 구조를 뜻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어락에 잘못된 비밀번호를 누르면 삐삐삐삐 합니다.
정확한 답을 넣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인데,
루프라는 장치를 걸어서 그 답이 들어가지 않으면, 무한반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핸드폰에도 루프가 들어가 있습니다. 비밀번호를 정확히 치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정확한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그 단계가 풀려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그와 같은 장치를 루프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루프는 우리 몸에도 걸려 있습니다. 사람의 체온은 36.5도가 정상이죠.
그래서 사람의 체온이 36.5도에 정확히 걸리지 않고 밑으로 떨어지면,
우리 몸이 루프가 발동하여 몸을 정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추우면 우리 피부에 닭살이 돋습니다. 닭살이 돋는 이유는
우리 몸에서 체온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더 추우면 어떻게 돼요? 몸을 덜덜 떱니다.
덜덜 떨면서 몸에 자가 발전을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떨어진 체온을 위로 끌어올리는 생체 루프가 발동이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체온이 올라오면 닭살이 풀리고 몸이 안정됩니다.
더군다나 온도가 정상체 온 위로 올라가면, 또 어떻게 됩니까?
그 온도를 낮추기 위하여, 땀이 나서 체온을 낮추는 것이죠.
우리 몸이 에어컨과 보일러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겁니다.
자가 발전을 끊임없이 하면서, 원래의 상태로 돌리려고 하는 그것을, 루프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핵심적으로 말씀드리면, 그 기준의 설정값이 정확히 들어가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혹은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그것을, 루프 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 전체가, 끊임없는 루프의 반복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주어지는 생애적인 과업이 있고,
여러 가지 많은 시험과 어려움의 문제들이 있는데,
그 단계를 뛰어넘기를 원한다면, 제대로 된 답을 눌러야만 합니다.
그 답을 누르지 않는다면, 그 답을 찾지 않았다면,
우리 인생은 무한 반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내 인생 가운데 끊임없이 반복적인 그 문제가 주어지는 것입니까?
이 동일한 문제를 어느 순간, 한 번 맞닥뜨렸는데
왜 이 문제를 뛰어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죠?
사람마다 그 주제는 전부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1번이란 문제에 대해서, 어떤 분은 2번이란 문제에 대해서,
무한 반복을 하고 있는 인생들이 있어요. 왜 그럴까요?
그 문제에 대한, 올바로 된 답을 입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문제를 함께 다뤄보기를 원합니다.
▲야곱의 인생 가운데, 적어도 40년 이상 반복되었던 무한 반복의 문제가 있었어요.
아버지 야곱의 편애, 어머니가 서로 다른 열두 형제 간의 시기, 갈등, 분노, 속임수, 살인미수,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이 이 가정 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다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만큼,
이 가정의 문제는 꼬여 있었어요.
그래서 이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인생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 그 장소에 그냥 그대로 있는 거예요.
계속해서 잘못된 값을 입력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지겹도록 열리지 않았던 그 문이, 드디어 열려집니다.
정확한 답을 입력했어요. 갑자기 문이 철커덩 열리는 것입니다.
결코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문제, 오랜 시간 동안 쌓여있던 그 문제가
오늘 본문 가운데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죠.
오늘 이 밤이 우리 가운데, 그런 밤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금요철야
오랜 시간 동안 고민됐던 그 문제,
언제 이 문제가 해결되나 고민되었던 그 문제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모든 문이 열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창세기 44장에서 요셉은, 애굽으로 내려온 동생 베냐민을 보고 감격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베냐민 그러면 막내 동생이니까 한없이 어린 줄 알잖아요.
요셉이 베냐민을 만났을 때, 베냐민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참고로 지금 요셉의 나이는 39살입니다. 베냐민은 30대 초반이었을 겁니다.
그러면 자기 동생 베냐민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우리는 한 뭐 대여섯 살? 초등학생? 항상 베냐민이라면 어리게 보니까 그런 줄 알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요셉과 베냐민의 나이 차이는 6~7세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에, 베냐민이 애굽에 와서 자기의 친형 요셉을 만났을 때,
그의 나이는 한 33살 쯤 되는 겁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갈 때가 17세였으니까,
그때 베냐민과 헤어졌을 때는, 베냐민이 약10세였다고 볼 수 있죠.
이 장면에서 우리는 야곱이 그동안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베냐민을 끼고 있었는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베냐민은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이미 다 성장했어요.
더군다나 결혼도 했어요. 아이도 있어요.
창46:21절에서, 이 사건 이후에 고향에 들어가 아버지를 모시고
가족 전체가 애굽으로 오는데, 그때 베냐민의 자녀들을 언급하는데
그때 베냐민의 자녀가 열 명이 등장합니다. ↙
‘베냐민의 아들 곧 벨라와 베겔과 아스벨과 게라와 나아만과
에히와 로스와 뭅빔과 훕빔과 아릇이니’ 46:11
이 열 명이 전부 다 베냐민의 아들들이에요.
그러니까 자녀가 10명이나 있는 다 큰 성인을,
‘베냐민은 절대 못 보내’ 라고 움켜쥐고 있었던 아버지 야곱의 그 마음에는
응어리진 베냐민을 향한 편애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다른 형제들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어요?
‘다 큰 아들인데, 저렇게까지 해야 되는 것인가?’ 라는 상처가 그들 안에 있었겠죠.
(이게 그 가정에 풀리지 않는 루프처럼, 계속 반복되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요셉은, 그 형제들을 만나 마지막 시험을 행합니다.
또 시험한다고요? 그동안 지겹도록 시험했는데, 또 시험을 한다고요?
요셉이 정말 뒤끝이 있는 사람입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요셉은 뒤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뒤끝을 잘라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가정을 묶고 있었던 삶의 여러 가지 아픔과 고통의 문제를 잘라내지 않으면,
무한 반복되는 상처 가운데, 그들이 여전히 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상처의 줄을 잘라내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은혜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마지막 시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 그동안 겪었던 시험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 번째 요셉이 내렸던 시험은 무엇이냐면, 정탐꾼이라는 누명을 씌우는 시험이었어요.
창42: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요셉이 형제들에게 행했던 첫 번째 시험은 ‘정탐꾼’이라는 누명을 씌우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형들이 요셉을, 아버지의 ‘정탐꾼’이라고 오해해서
요셉을 팔아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가 겪었던 동일한 시험을 형들에게 지금 뒤집어 씌우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시험은 어떤 시험이었냐면 그들의 형제애를 시험하는 것이었어요.
첫 번째 왔을 때 요셉은 정탐꾼이라고 말을 한 다음에, 시므온을 감옥에 가둡니다.
그리고 그들을 고향으로 보낼 때 곡식을 줍니다.
그런데 그 곡식 자루 속에 돈을 집어다 넣었어요. 또 다른 시험이 되는 것이죠.
22년 전에 자기를 은 20개 팔아버렸는데, 과연 이 시므온을 구하기 위하여
그 엄청난 곡식과 돈자루를 갖고 있는데, ‘이들은 시므온을 구하러 돌아올 것인가?’ 라는
것에 대한, 즉 형제애에 대한 시험을 하고 있는 거예요.
3) 세 번째 어떤 시험을 했냐면 ‘편애 시험’을 했습니다.
기근이 더 심하게 되자, 야곱이 두 손 들었습니다. 베냐민을 놓아줍니다.
베냐민과 함께 애굽땅에 왔어요. 그리고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 식사 자리에서 형제들은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그 앉는 순서가 어떻게 되었다고요? 장자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앉힌 것입니다.
11명을 순서대로, 나이대로 앉힌 거예요. 그 순간에 깜짝 놀랐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 헨리 모리스라는 학자가 수학적으로 풀어내었는데
우연히 이렇게 될 확률은 3,991만 7천번 중에 한 번이랍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임의로 앉혔는데, 그들의 나이대로 앉힐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는 것이죠.
그 순간에 형제들은 깜짝 놀랐어요. 이 사람은 뭔가...
그런데 식사를 제공하는데 풍성하게 제공했지만, 베냐민에게는 5배로 주었어요.
왜요? ‘편애 시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2년 전에 자기가 아버지께 편애를 받아, 형들의 팔림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 순간에 형들은 베냐민을 어떻게 대하는가? 과연 변했는가?’ 하는 부분들을 보기 원했던
것입니다. 한 번 떠 보는 거죠.
4) 그리고 이제 마지막 시험을 행합니다. ‘은잔 시험’입니다.
이 다양한 시험들을 겪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한 가지 배울 수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어요. 그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이처럼 끝까지 다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만하면 될 것 같은데 계속해서 시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지만, 우리 가운데 죄악이 있다면,
그 죄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문제를 끝까지 주님의 부드러운 손길로 다루실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그 자녀의 결함이 있을 때,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사랑하지만, 능력이 없다면 포기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도 하시는데, 능력도 있으세요.
더군다나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결함과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끝까지 자비로운 손길로 우리를 다루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기다려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그 문제를 다루실 때, 조급하게 다루시지는 않으세요.
그분은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여유로우신 분이세요. 그리고 기다려 주십니다.
그 기다림 가운데 오늘 우리가 함께 나와서, 이렇게 또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형들이 변화 될 때까지 끊임없이 기다려줍니다.
만약에 요셉이 복수할 마음이었으면, 그가 총리가 되자마자 군대를 이끌고
형들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바로 심판을 내렸을 거예요.
그런데 그러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형들이 한번 왔을 때,
자루에 돈이 있는 것을 꾸며서 형들을 보냈는데, 형들이 곧바로 달려오지 않았어요.
그렇잖아요. 곡식 자루 속에 돈이 발견되었다면, 빨리 둘려주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근데 그들이 언제까지 오지 않았냐면, 그 곡식 다 먹을 때까지 오지 않았어요.
저 같으면 못 기다립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요셉은 끝까지 기다려요.
하나님이 우리를 그처럼 기다려주십니다. 우리가 우리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어서,
하나님 앞에 나와 통회 자복하고 돌이킬 그 수준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그 자비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아오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마지막 시험인 <은잔시험>을 자세하게 다루겠습니다.
44:1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2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이제 요셉은 마지막 시험을 행하는데, 어떻게 하냐면
그 마지막 만찬을 먹는 자리 가운데서, 자신의 청지기를 불러다가
다시금 형제들의 곡식 안에 돈을 다시 집어넣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말하는데, ‘베냐민의 곡식 자루에는 은잔도 함께 넣으라’고 말을 합니다.
다시금 요셉은 형들을 끝까지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들의 자루 속에 돈을 집어넣는 것은, 이전에도 했던 방식인데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베냐민의 자루 가운데 은잔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왜 이와 같은 구도로 그들을 다시 한번 죄인으로 몰려고 하는 것일까요?
요셉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너희 모두가 죄인인데 특별히 베냐민은 더 큰 죄인이다.
내가 너희를 용서해 줄 터이니, 베냐민만 내놓고 너희는 전부 다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가 발견되었을 때, 이와 같은 구도를 설정하여
그들이 손쉽게 동생을 포기할 수 있을 만한 장치를, 그 속에 해둔 것입니다.
그들이 식탁 가운데서 밥을 먹고 있을 때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하지만 그들의 삶의 문제가 어떤지를 보기 위해서는, 식탁의 자리가 아니라
위기의 자리에서 그들의 본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제 그는 풍성한 식탁 이후에 엄청난 시험거리를 하나 집어넣게 된 것입니다.
형들은 즐겁게 식사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구나.. 진작에 빨리 올걸..’
시므온도 구하고, 베냐민도 데리고, 식량도 가지고 즐겁게 아마 노래를 부르며
고향 헤브론으로 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멀리 뒤에서 청지기가 급히 달려옵니다. 그리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게 다 요셉의 지시에 의한 것입니다. :4
44:4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갑자기 달려와서 하는 말이 무엇이냐면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라고 말합니다.
형제들은 난데없이 또다시 날벼락을 맞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44:5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그런데 그 은잔의 용도는 무엇이냐면, 점을 치는 데 쓰는 것이었어요.
요셉이 은잔으로 점을 쳤을 리는 없으나, 당시 애굽 사람들은 그렇게 점을 친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은잔을 가지고 어떻게 점을 친단 말입니까?
고대 애굽의 문헌을 살펴보면, 어떻게 점을 치는 것이냐면,
은잔 가운데 어떠한 용액을 집어넣고, 그 다음에 성분이 다른 어떤 것을 떨어뜨립니다.
‘그때 이 은잔 속에 이것이 어떻게 퍼지는가?’
그 모습을 보고 미래를 점치는데 은잔을 썼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쌀을 확 던진 다음에, 그 쌀의 모양을 보고 ‘어떻구만 저쨋구만’
하는 거 있잖아요. 그렇게 이 은잔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했을 리는 없지만,
지금 그와 같은 누명을 형들에게 씌우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은잔은 단순한 금전적 가치를 뛰어넘어, 점을 치는 용도이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죄를 지금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저자는 이 본문에서 ‘은잔’ 이라며, ‘은’을 강조하고 있어요.
형제들은 아마 ‘은’자만 들어도 마음이 떨렸을 것입니다.
그 은 20개 때문에 나눠가지면, 1인당 두 개밖에 못 갖는 그 은 때문에,
그 가정이 이렇게 힘든 일을 갖고 있는데, 다시 한번 은잔을 훔쳤다는 거예요.
(*고대 은전 1세겔의 무게는, 당시 화폐는 무게 단위로 계산했는데,
11.4 그램입니다. 요즘 2026년 시세로 약 4만원이죠.
은 20개로 10명이 나눠가졌으면, 2개 즉 2세겔씩 나눠가진 셈인데,
요즘 시세로 1인당 8만원씩, 10명을 다 합치면 80만원! 큰 돈도 아니었고, 작은 돈이었죠.)
재미있는 것은 재미있는 것은 요셉이 형들의 문제를 시험하면서 다루었던
본문 42장부터 45장까지 ‘은, 돈’이라는 표현이 몇 번 등장할까요?
단어적으로 20번 등장합니다. 학자들은 참 별걸 다 연구합니다. 20번 등장한대요.
형들이 얼마나 놀랬을까요? 끊임없이 ‘은’, 그 말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왜 베냐민의 식량 자루 가운데 은잔을 숨겨 놓았을까요?
그들의 가족 안에 끊임없이 벌어져 있는 그 루프를 끊어내기 위하여
지금 은잔 시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첫 번째 이유는 무엇이냐면, 베냐민을 향한 형들의 태도를 보기 위함이었어요.
형제들 안에 이와 같은 문제가 벌어졌던 핵심은 무엇이었냐면
아버지가 목숨처럼 사랑했던 아들을, 노예로 팔아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 다시금 베냐민은 아버지가 목숨처럼 사랑하는 아들인데,
애굽의 노예로 팔릴만한 위기 가운데 처하게 된 것입니다.
22년 전의 상황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이 순간에 형제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보기를 원했던 거예요.
▲2. 두 번째는 아버지를 향한 형들의 태도를 보기를 원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이었던 요셉, 그리고 베냐민이 팔렸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큰 고통 가운데 있을지를 형들이 알고 있을 것인데
과연 아버지에 대한 배려가 이들 가운데 남아 있는가를 보기를 원했죠.
이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지금 요셉은 형들을 시험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시험은 시험이자, 결국 형들을 회복시키는 회복의 방법이었습니다.
여러분, 특별히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시험은, 단순한 시험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가 회복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되는 줄 믿습니다.
형제들 안에 가득 차 있는 감정은,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죄책감, 실수, 자신들이 22년 전에 그 실수로 인하여 짓눌려 있었던 죄책감을
그들은 늘 안고 살았어요.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을까요? 얼마나 많이 자책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의 회복은, 감정적으로 자책한다고, 회복으로 나아가지가 않습니다.
물론 감정적인 반응은, 회복을 위한 첫 번째 출발이겠지만,
온전한 회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온전한 회복은 어떻게 증명이 되는 것이냐면,
동일한 순간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동일한 시험이 다가왔는데, 예전과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예전과 동일한 선택을 하고,
동일한 행동을 한다면 그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는 힘들지만, 우리 인생 가운데 우리가 넘어졌던 그 자리로
다시 한 번 우리를 데리고 가셔서, 똑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며 어떤 결정을 내리며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시고,
우리를 다시금 회복의 자리로 이끌기를 원하십니다.
그들 스스로 이전과는 다른 것을 행동하게 만듦으로,
‘아 내가 극복되었구나, 내가 이 부분에 있어서 회복되었구나’ 느끼게 만드는 것이죠.
하나님은 지금 그런 의도를 가지고, 이들을 지금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순간에 형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44:9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형들은 확신에 차서 말을 합니다. 그들이 은잔을 훔치지 않았거든요.
자기들이 당당하니깐 호언장담하여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때, 무언가를 걸고 맹세하잖아요.
그러니까 ‘만약에 걸리면, 그 사람은 죽고, 우리 전부는 다 종이 되겠습니다.’
라고 지금 맹세하듯이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도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진짜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이런 표현을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그 말을 받아서 청지기가 ‘오케이, 까보자’ 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형들이 자루들을 풀기 시작해요.
44:10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청지기는 형들이 했던 그 말을 받아서, 조금 경감시켜서 거래를 제시합니다.
‘누구든지 발견된 자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는 종이 될 것이고,
나머지 모두는 죄가 없으니 그냥 돌아가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형들은 기쁜 마음으로 오케이 하고, 지금 그들의 짐을 풀기 시작합니다.
44:11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나귀 등에서 땅에 내려놓았어요. 급히 내려놓았어요.
그들이 훔치지 않았으니까 당당하게 지금 풀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근데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온 거예요.
44:12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온 거예요. 형들은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자루에서 현행범으로 베냐민이 걸린 겁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에 요셉을 통하여,
형들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찌르고 있는 겁니다.
‘이래도 베냐민을 보호할 것인가? 22년 전에는 은 20개를 얻자고 동생을 팔아버렸는데,
지금은 너희들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베냐민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
라는 시험대 위에 지금 형제들을 올려놓은 것입니다.
베냐민은 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애굽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형들 생각에 ‘욕심이 생겼나?’ 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식사를 할 때 다섯 배나 주었어요. ‘얘가 배불리 먹더니만 정신이 이상해졌나?’
‘은잔을 정말 네가 훔쳤냐?’ 하고 동생을 의심하고 꾸짖을 수도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 형들이 어떻게 반응을 보는 것이 맞을까요?
‘오케이, 맹세했으니까 그를 데려가십시오!’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억울합니다.’
라는 변명과 한탄과 호소를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형제들은 그러한 반응은 어떤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처럼 행동하기 시작해요.
이 모습을 통하여 형들이 변화되었음을 우린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우리 인생까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삶의 문제를 풀어낼 길이 되는 것이죠.
◑형들의 변화된 반응
▲1. 그 첫 번째는 무엇이냐면, 자신들의 옷을 찢는 겁니다.
44:13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왔어요. 그런데 형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무엇을 했다고요? 자신들의 옷을 찢어버립니다.
‘옷을 찢는다’ 말은 무슨 말이냐면, 통회 자복하는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행위였어요.
여러분 22년 전에 형들은 은 20개를 얻기 위하여 요셉의 옷을 찢어버립니다.
그리고 요셉을 알몸으로 팔아버렸어요.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 형들은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왔는데
베냐민의 옷을 찢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네가 이런 일을 했냐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옷을 찢어버려요.
스스로 이 문제 속에서 자신들의 죄악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 두 번째, 이들은 함께 전부 다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44:13b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의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가니라'
그들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금 애굽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형들은, 그 자리에서 베냐민만 보내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버지에게 이번에는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어요.
전에는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짐승 피를 묻혀서 ‘들짐승이 찢었습니다’ 거짓말을 했잖아요.
지금은 거짓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있었던 이야기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됩니다.
‘밥을 먹었는데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왔습니다. 걔가 도둑질을 했나 봐요.
애굽에 남아있습니다. 우리끼리만 돌아왔습니다.’ 라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 이 형들은, 자진해서 베냐민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죠.
과거와는 달리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세 번째,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애굽에 가니까 요셉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호통을 칩니다.
‘내가 점을 칠 때 사용하는 그 물건을 어떻게 훔쳤냐고?’ 그들을 야단칩니다.
이때 유다가 나서서 변론하기 시작해요.
44: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너무나 위대한 고백이 유다의 입술을 통하여 지금 나오고 있어요.
유다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오리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까?’ 할 이야기가 많죠. 억울하죠.
그동안 겪었던 모든 시험이 전부 다 억울합니다. 더군다나 마지막 시험은 진짜 억울합니다.
그런데 유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이처럼 벌어지는 자신들의 삶의 문제 가운데, 하나님의 시선으로
지금 그들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찾아낸 죄악이오니, 내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 앞에 지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지은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들춰내셨기 때문에, 사람에게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유다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이 말에서, 하나님이 찾아내신 그 죄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22년 전에 자신들이 은 20개를 위하여 동생 요셉을 팔아버렸던 그 죄악을
하나님께서 찾아내셨습니다.. 라고 지금 고백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이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냐면,
그동안 유다와 형제들은 22년간 도망자로 살았어요. 숨어 살았어요.
하나님의 눈을 피해 영혼의 도망자로 ‘언제 들킬까?’ 조마조마하는 마음을 가지고
22년간 영혼이 눌린 채로 살아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은잔은 훔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22년 전에 우리가 지은 죄를 보시고,
이와 같은 상황으로 몰아넣으셔서 우리의 죄를 찾으셨으니...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즉 ‘베냐민의 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죄이니 우리 모두가 노예가 되겠습니다’
그 고백을 하고 있어요. 변화된 형제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 삶의 문제는 언제부터 변화하기 시작할까요?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리 삶의 문제를 바라볼 때부터
우리 인생의 문제는 해결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단련하세요.
‘하나님이 저의 죄를 찾아내셨습니다.’ 이 고백이 나올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단련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에서는 금을 재련하기 위해서 회취법 Cupellation을 사용했습니다.
금광석을 캐내었을 때 그 금광석에는 금만 있는 것이 아니죠.
구리, 납, 여러 가지 많은 불순물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제련공은 도가니 속에 이 금광석을 집어넣고,
천도가 넘는 불에서 계속해서 태우기 시작합니다.
이때 금보다 먼저 구리와 납이 올라와요. 그러면 그것을 걷어냅니다.
계속해서 또 태우기 시작해요. 정금이 될 때까지.
그리고 언제까지 태우냐면, 그 금속에서 제련공의 얼굴이 비칠 때까지 태웁니다.
그래서 모든 불순물이 제거되었고 순전한 금이 남았을 때,
그 금에서 재련하는 사람의 얼굴이 비친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불로 계속해서 단련시키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처럼 우리를 정금같이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대 위에 세우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 삶의 문제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도 혹시 도망자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전에 나왔지만, 예배하기 위하여 나왔지만
도망자로 서 있는 것은 아닙니까?
‘무언가를 감춰두었는데 이것은 모르시겠지.. 눈감아 주시겠지.. 덮어둬도 괜찮겠지..’
하는 어떤 삶의 문제, 그것이 있진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유다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사오니’
그 고백을 담고 주 앞에 나올 수 있는 이 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유다는 완전히 변화되었어요. 그리고 그는 다시 이렇게 말을 합니다.
▲4. 그들이 변화되었던 네 번째 증거는 무엇이냐면,
‘형제 하나를 자신 전체와 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유다는 이렇게 말을 해요.
44:16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에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요동쳤을까요?
이 순간에 형제들은 베냐민을 남으로 보고 있지 않아요.
그를 나와 같은 하나로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 속에서 전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죠.
그 형제들은 어머니가 네 명이었어요. 자기 어머니에 따라서 형제들이 갈라져서
그들 안에 파당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였던 라헬의 두 자녀는
끊임없는 형들의 시기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자기가 팔려갔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에 지금 형들은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냐면
‘그는 남이 아닙니다. 우리와 하나입니다. 그러니 우리 전체가 함께 노예가 되겠습니다.’
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12형제 모두의 영혼가운데 치유가 일어나고 있어요.
▲먼저는 형들의 영혼 가운데 치유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해자였어요. 뿐만 아니라 피해자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모든 자는 피해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죄를 지은 이후에 그들은 끊임없는 피해자가 되어서 짓눌려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22년 전과 동일한 그 순간에 그들은 이와 같이 고백을 함으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변화된 사람임을 스스로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자신들을 묶고 있었던 죄책감, 응어리 낮은 자존감, 모든 상처가
풀려나는 치유를 그들 스스로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는 묶고 있는 죄의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 죄의 사슬을 끊을 수가 있을까요?
동일한 문제가 벌어졌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전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원하는 방식을 따라
그 모든 사슬을 끊어버리고, 자유로운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이 말을 듣는 순간에 요셉의 영혼 가운데, 요동치는 회복의 감정이 일어났을 거예요.
‘형들이 변화되었구나.. 22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구나’
그 순간에 요셉은 그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음 주 12강에서 살펴보겠지만, 종들을 다 내보낸 다음에 요셉은 대성통곡합니다.
애굽 궁의 모든 사람이 들을 만큼 대성통곡해요. 45:2
그 순간에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죠. ‘요셉은 역시 멀쩡한 것이 아니었구나.
마음 가득 큰 응어리가 있었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 대했지만, 큰 아픔이 있었구나..’
그리고 이 순간에 그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날마다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나의 과거에 죄된 그 모습에 갇혀서
날마다 죄인처럼 도망치며 피해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따스한 손길 안에서 그분께서 우리를 다뤄주실 때
그분께 온전히 인생을 내어드려, 모든 죄와는 상관이 없는 자유한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감정이 올라왔지만 한 번 꿀꺽 삼킨 다음에
한 번 더 말을 합니다.
‘그럴 필요 없으니까, 베냐민만 놔두고 너희들 나머지는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44: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요셉도 참 대단합니다. 끝장을 보려고 하는 겁니다.
‘내가 여기서 끝장을 보겠다. 형들이 진짜 변화되었는지 아닌지
한 번 더 점검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아 그럴 필요 없다고.. 형제간의 우애 좋네요.
그 마음을 알겠는데, 그럴 필요 없으니까 베냐민만 놔두고 너희는 다 그냥
아버지 있다면서? 굶어 죽고 있다면서요? 가서 식량으로 잘 먹이고 잘 돌보면 될 거에요’
라고 지금 설득하고 있는 거예요. 마지막 한 번 더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름을 짤 때, 피가 나올 때까지, 악소리 날 때까지 짜는 것입니다.
짜다가 여기서 대치하고 멈추면, 이후에 더 큰 고름이 올라오듯이,
지금 요셉은 이 문제를 아예 뿌리 뽑기 위하여, 한 번 더 시험합니다. 몰아칩니다.
이때 유다가 다시 한번 나서서 변론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이 말을 듣자 요셉의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44:27~28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지금 유다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냐면,
고향집에 있는 일들을 지금 요셉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했냐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28절에 보니까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이 말은 지금 고향 땅에서 아버지 야곱이 했던 말을 지금 그대로 읊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였거늘’
내 아버지가 지금 고향집에서 이렇게 아들 하나가, 너무 사랑하는 아들 하나가
짐승에서 찢겨 죽어서 너무 큰 고통 가운데 있다는 거예요.
이 순간에 요셉은 자기가 알지 못했던, 자기와 관련된 일을 한 가지 알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형들이 나를 팔아버린 다음에 ‘짐승에게 찢겨서 죽었다고 말을 했구나’
요셉은 팔린 그 이후의 과정을 모르잖아요. 늘 그게 궁금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아버지께 말을 해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 궁금했는데,
지금 유다가 변론하는 가운데 ‘아 내가 찢겨 죽었다고 말을 했구나’
‘그래서 아버지가 지금 엄청난 고통 가운데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된 것이죠.
왜 아니겠어요?
아버지가 심부름 보냈어요. 그 심부름 나갔다가 돌아온 것은 옷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짐승에 찢겨 죽은 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들었으니,
아버지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 라는 것을 지금 요셉은 느끼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유다는 다시 한번 말을 합니다.
44:29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다시금 야곱이 한 이야기를 유다가 인용하는데
근데 ‘너희가 이 아이도 베냐민도 데려가라’고 했던 이야기를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을 듣고 있는 요셉은, 또다시 알고 있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이후에, 아버지는 베냐민을 나처럼 애착관계(감정적 의존관계)를
맺어서 편애하고 있었구나’ 나를 향한 마음을 베냐민에게 부어서 그렇게 살고 있었구나는
것을 지금 또 하나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유다는 이 아버지와 아들 간의 끈끈한 관계를 말하면서
지금 요셉에게 호소하고 있는 거예요.
자신의 죄와 어떤 부분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간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
지금 요셉에게 자신들의 상황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33절에 매우 중요한 말을 한 번 더 말합니다.
44: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유다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내 아버지를 봐서라도 제발 용서해 주시고, 제가 대신하여 종이 되어
이곳에 머무르겠사오니, 베냐민을 제발 형제들과 함께 돌려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 한 사람이 누군가의 죄를 대속하는 첫 번째 장면입니다.
유다가 ‘내가 베냐민의 죄를 대속하여 이곳에 남아서 죄값을 치르겠습니다.’
라고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유다의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도를 통하여 성경은 우리 가운데
풀리지 않는 그 죄의, 쌓여있는 겹겹이 쌓여있는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대속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회복이 일어남을
지금 이 사건을 통하여, 그림자로 우리 가운데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이 말을 하는 순간에 드디어 도어락의 비밀번호가 정확히 눌러지게 되고,
문이 활짝 열려졌어요.
‘아 이제 형들이 동생을 위하여 대신 죽을 수 있을 만큼의 변화를 이루었구나’
그 순간에 닫혔던 관계의 문이 열리고,
그들 안에 새로운 회복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22년간 얽혀있었던 삶의 문제가 이렇게 해결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린 지금 계속해서 야곱의 족보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야곱의 족보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형제간들의 이야기...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어떻게 끝나는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는데,
그 문제는 너무나 간단하게 이루어졌어요.
-형들이 자신들의 옷을 찢고,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삶의 문제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더군다나 다른 한 사람의 문제를 위하여, 내 인생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의 헌신이 있었을 때.. 삶의 문제가 온전히 회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회복을 우리 모두가 또한 이 밤에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세요.
우리가 더 이상 죄인처럼 숨어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자유한 영혼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예배하며 살아가는 영혼 되기를 원하세요.
오늘 이밤 우리가 이 말씀 붙잡고 기도할 때, 그러한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질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