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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3장 짧은 기록, 큰 역사

LNCK 2026. 7. 7. 11:00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리더쉽, 목회자   

사사기강해(07)/사사기3:31,5:6/ 짧은 기록, 큰 역사 Youtube

 

◈짧은 기록, 큰 역사          삿3:31, 5:6       2025.07.27. 사사기강해(07)

우리 지난주는 에훗에 관한 이야기를 좀 나누었습니다. 에훗은 특징이 뭐였습니까? 
왼손잡이였어요. 왼손잡이 엄밀히 말하는 ‘양손잡이’인데 
훈련된 특수부대 정도로 이해를 했었죠. 

오늘은 그 뒤를 이어서 이제 삼갈 이라는 참 생소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에훗도 결국은 그렇게 이스라엘을 구원했지만, 
그의 생명도 기한이 차서, 나라의 평안도 그의 생명의 연수와 함께 끝이 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순환적 패턴을 여전히 밟습니다. 
또 더 깊은 죄악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은 이들을 또 징벌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변 나라들에게 거의 넘기다시피 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당하게 되죠. 그 와중에 등장한 인물이 삼갈입니다. 
그런데 사사기에는 많은 사사들이 등장을 하는데, 
그 사사의 열전 중에 가장 특이하고 특별한 인물이 삼갈이에요. 

일단 기록이 가장 짧아요. 성경에 딱 한 줄입니다. 
삿3:31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물론 5:6절에 또 한 번 등장하긴 하나, 그것은 ‘삼갈’이란 이름만 올려진 등장입니다. 
그래서 ‘삼갈’에 대한 묘사는 실질적으로는 오늘 3장 끝절, 이 한 절이 전부예요. 3:31

그래서 우리는 이 인물의 이 신비로운 등장, 그 신비로운 역할에 대해서 
오늘 좀 만나게 될 텐데, 마치 이 장엄한 교향곡, 이런 걸 듣다가 
누군가 실수로 삑사리가 나는 것처럼, 
이 삼갈의 등장은 굉장히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삼갈'이란 이름은, 보통 고대시대의 이름 속에는, 의미가 담아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름을 연구해 보면, 정통 히브리 이름이 아니에요. 

더군다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쓰여지는 이름도 아닙니다. 
즉 가나안 문화에서 흔히 만날 수 있고, 통용되던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배경이 더욱 정통 히브리인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왜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들어서 사사로 썼을까? 아주 의아스러운 거죠. 

더더군다나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소개되는데, 아낫이라고 소개돼요. *아낫의 아들 삼갈
그런데 이 이름 또한 묘합니다. 더 삼갈에 대한 불편함을 심화시키는 이름이에요. 

이 '아낫'은, 가나안 땅에서 가나안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데, 
전쟁을 주관하는 여신의 이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삼갈은,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또 가나안의 배경 속에서 생겨진 집안이고,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방금 드렸던 질문처럼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구원자로, 
이런 사람을 들어 사용했을까요?' 

더더군다나 이 삼갈이 블레셋 병사 6백명을 죽였는데, 
그가 들고 나간 무기가 뭐냐 하면.. 소 모는 막대기입니다. 
이런 소 모는 막대기는 뭐하는 데 쓰는 겁니까? 농사 짓는 데나 쓰는 거지, 무기가 아니죠.

농경 사회에서 농사를 지을 때 소를 몹니다. 그리고 그 소를 몰기 위해서, 
이제 손에 막대기를 쥔 농부가, 그 막대기로 소 엉덩이를 툭툭 건드리거나 찌르면서 
쟁기질을 시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소 모는 막대기 끝에는, 작은 쇠붙이가 부착되어 있어서,
소를 찌르기도 하고, 간이 농기구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해요. 길이는 약 2.5M   
그러니 전문적인 무기는 아니지만, 급할 때는 무기로도 사용할 수는 있었던 거죠.   주1)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그 손에 들려진 막대기의 용도로 보아서, 이 삼갈의 직업이 드러나요. 
그는 농부예요. 그리고 대개 이때 가난한 사람들은 농사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달을 섬기고, 아스다롯, 아세라를 섬겼던 이유가, 
어차피 농사는 누군가를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 방식이었기 때문에, *비 내려달라고
갖은 우상을 다 섬기곤 했어요. 

그러니까 일단 삼갈의 캐릭터가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열립니다. 
첫째, 이방의 배경을 갖고 있었던 경계선 밖의 인물이었고, 
둘째, 하나님은 그의 손에 소 모는 막대기를 들려서, 적군을 물리치는 사사로 삼은 거에요. 

자 본문 삿3:31절을 한 번 더 자세히 보죠.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백명을 죽였고' 

6백 명을 죽일 정도의 전쟁이면 큰 싸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무리 그 막대기 끝에 쇠가 달려 있었다고 해도,
소 모는 막대기, 그 농기구 가지고, 전투가 되겠습니까? 

이 정도 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야, 그거 가지고 되겠냐? 
6.25 때 쓰던 M1 소총이라도 들고 나가야지...' 하고 제대로 된 무기를
좀 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근데 31절 끝에, 삼갈에 대해서 이런 소개가 붙어 있습니다. 
'... 6백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여러분, 사사의 첫 번째 기능이 '구원자'입니다. 
(비록 이방적 배경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틀림없이 이 사람은 사사가 맞아요.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 삼갈을 사사 라인에서 열외시킵니다. 
정통 사사로 안 봐요. 
그래서 사사기의 사사의 명단을 쭉 열거한 걸 보면, 삼갈을 빼기도 합니다. 

왜냐면, 31절에 '사사'라는 호칭이 일단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아버지와 더불어, 이방인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사사기에는 일반적으로 사사가 등장할 때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으매... 사사를 세우셨다", 
또 "그 땅이 평온하였다", 그의 통치 연수 등의 정형화된 표현이 따르지만, 
삼갈에게는 이런 기록 없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주류의 학자들은, 삼갈을 12사사의 일원으로 인정하죠.
바로 31절에 '구원하였더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그를 사사로 세우셨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죠.
 
이게 무슨 뜻이 되냐면, 삼갈은 잘 준비된 게 자격을 갖춘 사사는 아니에요.
그러나 진짜 사사의 자격이 뭡니까?  
하나님이 시키신 (세우신, 맡기신) 사람이,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난 아직 스펙이 모자라는데... 나는 이런 점이 약점이 있는데...'
아니에요. 그 스펙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격 유무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이 자격입니다. 믿습니까?   *주제
이 인식을 여러분들이 살면서 잃어버리면 안 돼요. 

그런데 여기에 제가 일부러 시비를 걸려는 것은 아닌데,
아니 그냥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본문에 이렇게 써 놓았으면, 좀 더 깔끔했을 텐데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and he also delivered Israel' KJV

마치 '야, 너도 할 수 있어!' 이런 뜻이죠. 하하하 
제가 이 본문을 읽다가 그 광고 카피가 생각이 났어요. 

조정석 배우가 그런 얘기를 하죠. 
조정석 씨가  "야 너도 할 수 있어" 이 광고 카피 하나로 대박이 났어요. 
그래서 그 회사 이름이 <야나두>입니다. 
이게 '온라인 영어 학습 커뮤니티'에서 최강자의 자리를 차지했어요. 

그래서 제가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이 카피 문구의 매력이 뭘까?' 
물론 그 배우가 표현을 잘 한 것도 있겠지만, 제가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이 카피 문구의 매력이 뭘까?' 

그 문구 자체가 참 시대적인 약자들에게... 
늘 실패하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깊은 공감을 주는 문구입니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우리 좌우로 연습합시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물론 저는 그 회사하고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렇지만 오늘 이 말씀 속에, 깊은 메시지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 이게 '야,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거죠.

우리는 삼갈에 대해서 이렇게 몇 가지를 찾아봤어요. 
그런데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 세워지는 사람은 보통 
대단해 보이고, 찬란하고, 우뚝하고, 걸출한 모습만 집중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거 아세요? 세상을 더 깊게 헤아려 보면, 
보이지 않은 영역의 절대적 가치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 삼갈같은 존재는, 사실 굵은 유명한 사사들 사이에 
어쩌면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 인물 같아요. 
슬쩍! 잠깐 나타났다가, 딱 한 줄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3:31 한 절
틈새를 메꾸는 존재처럼 보여집니다. 

그런데 삼갈의 결말을 보면, 여러분들이 깜짝 놀랄 진리 앞에, 두 손을 모으게 될 거예요. 
이 짧았던 한 사사의 흔적이, 발자국이, 
사사기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의 골격을 말해주는 굵은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게 됩니다. 

자 세상에는 보이는 것에 대단한 가치도 물론 있겠으나, 
절대적 흔들릴 수 없는 가치는... 안 보이는 데 감춰져 있어요. 
정말 복이 뭐냐 하면, 그것을 볼 줄 아는 눈을 갖는 게 복입니다. 

제가 어제까지 영덕 선교, 울진 선교를 마치고 토 오후에 도착했는데, 
지금 우리 성도들이 한 8~9백명이 영덕 울진으로 나뉘어져서 
주일날은 영덕의 교회들에 가서 다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제 올라오는 중일 거예요. 

이분들이 이 시리즈 설교를, 특별히 이 '삼갈의 설교' 못 듣게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설교를 일찍 준비해가지고 '스포 설교'를 했습니다. 
영덕 선교팀 그분들이 들으라고, 미리 설교 영상을 준비했지요.

그 가운데 제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어느 장로님에 관한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 중에, 볼트만 계속 생산해내는 공장을 운영하는 장로님이 한 분 계세요. 
저 강화도 깊숙한 곳에서, 그 흐름한 공장을 가지고서, 오랫동안 그 일을 해오셨습니다. 
(지금 '중요하고 요긴한 것은 우리 눈에 감춰져 있다' 그 얘기를 하는 중입니다)

저도 이번에 동해 선교를 가면서 기차를 탔어요. 
서울역에서 강릉으로 가서, 거기서 또 울진까지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참 기차를 늘 타다 보면 신기해요. 그 여러 칸으로 이어진 쇠덩어리들이 
레일 위에서 정해진 규격을 따라 달립니다. 

근데 그 철도 레일 밑에는 뭐가 깔려있죠? 전부 침목이 깔려있습니다. 
그 레일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 침목.

근데 이 레일이 겨울과 또 여름에 늘어지는 차이가 굉장히 심해요. 
이때 제일 중요한 게, 그 레일과 침목을 이어주는, 그걸 잡아주는 볼트가 있습니다. 
그 장로님이 그거를 계속 생산해내는 거예요. 

그럼 그게 뭐 한두 개 들겠습니까? 어마어마한 양의 볼트가 늘 교체되고, 
또 생산이 돼야 돼요. 

 

 

그런데 그 볼트는.. 기차를 타는 사람이 '이 볼트가 문제가 없어야 될 텐데...' 
이렇게 염려하면서 기차 타는 사람은 없어요. 

기관사 걱정을 하면 했지, 또 철도 레일 걱정을 했으면 했지, 
그 볼트 걱정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간혹 대형 열차 사고가 터질 때 늘 보면, 어디서 문제가 생깁니까? 
그 보이지 않는 곳에 딱 자리 잡고 있는, 그 조그만 볼트가, 
그저 손가락으로 한 이 정도밖에 안 돼요. 
이런 볼트 하나가 금이 가 있거나, 헐렁하게 조인트가 됐을 때, 
레일이 흔들리게 되고, 그러면서 기차가 탈선이 되면, 
그대로 엎어지면서 대형사고가 나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보통 눈에 보이는 것만... 관심을 갖고, 박수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대부분 안 보이는 곳에 감춰져 있어요. 
마치 이 삼갈이, 그런 존재입니다. 

역대 위대한, 익숙한 사사들의 이름들이 등장을 하지만, 
이 사람 삼갈은 이름만 들어도 굉장히 생경스러운 사람이에요. 
'뭐 누구지? 이 사람이 사사야?' 
이번에 본문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 분들이 여러분 중에 틀림 없이 계실 거에요. 

'이런 사사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예, 그럴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삼갈은, 사사와 사사 사이에 빈틈을 채워주는 그런 (조인트) 역할을 해요... 

자 우리는 이제 삼갈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소개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경계선 밖에 이방인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었고, 
그는 그냥 소모는 농부, 그리고 그 손에 들려진 소 모는 막대기로 6백 명을 죽이는 
뜻밖의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는 하나님의 인정으로 봐서, 
짧은 기록이지만, 틀림없이 사사로 부름 받은 인물인 것이 맞습니다. 여기까지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 삼갈의 이름이 나오는 5:6절을 한 번 더 봐야 됩니다. 
삿5:6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주2)

'삼갈의 날에, 야엘의 날에'
삼갈이라는 사사와, 야엘 여인을 동일 선상에 놓고 있어요. 
동시대 라는 거죠. 
삼갈은 주로 남서부에서 블레셋을 막고 있었고,

야엘은 북부(갈릴리)에서 시스라를 죽인 여인이죠. 

그런데 이들이 등장해야 했던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하면, 대로가 텅 빈 시대예요. 
무슨 말인가 하면 '무법의 시대였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여서, 온갖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량배들이 
거리에서 백주 대낮에 만행을 저지르던... 
그래서 이 어두웠던 사사 시대를 딱 한 컷의 그림으로 설명해낸 이미지가 
'텅 빈 거리에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다' 입니다.   5:6

이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용했던 인물이 
방금 소개했던 삼갈이라는, 그런 신비스러운 인물이면서, 또는 누구로 되어 있습니까? 
야엘입니다. 

야엘 또한 삼갈 못지않게 신비스러운 인물인데, 여자입니다. 
그래서 야엘에 대해서 소개하기 전에, 
삿5장은 어느 위치인가를 우리가 사사기 전체속에서 좀 이해를 해야 되는데, 

왼손잡이 에훗이 죽고 나서, 삼갈이 일어날 때,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하나님이 드보라라는 여선지자를 사사로 일으킵니다. *삿4장
그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만들어요. 

왜냐면 그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한 족속인 야빈이라는 왕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게 만듭니다. 
근데 그 야빈이라는 왕이, 밑에 아주 무시무시한 장군 하나를 데리고 있었어요. 
그 장군의 이름이 시스라입니다. 

그래서 이 시스라를 앞장세워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만들어요.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쨌거나 백성들을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보호해야 될 텐데, 
그때 이스라엘의 국방부 장관이 누구였는가 하면, 바락이라는 장군입니다. 
(버락 오바마의 버락과 같은 말)

바락은 벌벌 떨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드보라가 
'당신 지금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남자로서 이러고 있으면 되느냐? 
나가서 무기를 들고, 백성을 소집하든지 전쟁을 어쨌든 해야 될 거 아니냐?' 

그랬더니 이 천하의 바보 같은 바락이 희한한 소리를 해요. 
그 드보라의 치맛자락에 숨어서 '당신이 가시면 나도 가겠고, 
당신이 가시지 않으면 나는 죽어도 못 가요' 4:8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남자들의 대표되는 바락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이스라엘 남자들의 전체적인 문제예요. 
그러니 하나님이 여자들을 들어쓰신다는 거죠. 
여자 사사 드보라, 또 시스라를 머리에 말뚝을 박아 죽인 여인 야엘!  *삿4~5장

이스라엘 남자의 대표 격인 바락(군대 장관)이, 
지금 이런 쫄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드보라가 '무슨 소리요? 하나님이 이 대적을 이미 우리 손에 붙였는데' 
4: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4:15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
 
여기 바락이 가서 뭐 옳게 싸운 게 하나도 없어요. 
그냥 자중지란에 빠져서 적들이 서로 치고 박고 죽입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이 드보라가 받은 계시대로 승리를 한 거예요. 

바락은 가라 해서, 순종해서 갔더니, 하나님의 역사를 구경한 것밖에 없어요. 
그래서 시스라가, 적의 장군이, 탈 것도 없어가지고 걸어서 도망을 가는데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  4:15

16절을 잘 보세요. '바락이 그의 (시스라의)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제 이스라엘의 장군이 추격을 하는 거죠. 
'추격하여 하로셋학고임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려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더라' 

여기서 중요한 게 17절입니다. 
4:17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을 가다가 한 집이 생각이 났어요. 
'아, 얼마 안 가면 우리랑 화평조약을 맺은 헤벨의 집이 여기서 가깝지.. 
일단 거기로 피신을 해야 되겠다' 해서 헤벨의 집으로 들어가는데, 

그 집은 일찍 하솔 왕과 평화 조약을 맺어서, 
서로가 위기가 닥쳐올 때, 적의 공격을 받을 때 도와주기로, 평화조약을 맺은 집이에요. 
그래서 안심하고 이 집으로 숨어든 겁니다.

그런데 이 집의 주인장 이름이 헤벨이에요. 
이 사람은 어느 족속인가 하면, 여기 성경에 보니까 '겐 사람'이라고 돼 있어요. :17
'겐 사람'이라는 건, 미디안 사람입니다. 

모세의 장인도 미디안 사람이요, 겐 족속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후손인 거죠.
다 이방 사람이에요. 경계선 밖의 사람이에요. 
당연히 그의 아내 야엘도, 경계선 밖의 사람인 이방 여인입니다. *사사 '야일'과 구분 요

놀랍게도 헤벨의 아내가 누굽니까? 야엘입니다. 
오늘 드보라의 노래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죠.  5:24~27

 

*그래서 야엘 여인이, 하솔 왕과의 약조를 깨고, 하솔의 장군 시스라를 죽인 것은, 

그녀가 모세의 장인의 후손이라서, 비록 시집을 이방인에게 갔지만,

남편은 하솔과 약조를 맺었지만, 

그녀 자신은 결국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자기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자 여러분, 이제 대충 인물에 대해서는 정리가 됐어요. 
시스라가 도망가다가 평화협정을 맺은 자기 친구 헤벨의 집에 들어가요. 
근데 그 헤벨이 겐 사람이에요. 이방인이죠. 

근데 그 아내가 야엘입니다. 역시 이방인입니다. 
그러면 이 가정은 시스라를 숨겨주고 도와줘야 돼요. 협정에 따라서! 

근데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집니다. 
4:21 '그(시스라)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이 여인 야엘이, 일단 남편의 벗인 시스라를 배반한 겁니다. 또 그 평화의 협정을 깬 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원수인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대고 망치를 쳐서 꿰뚫어 즉사시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완성해요. 드보라의 예언대로 된 거죠.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삿4:9

이게 무슨 아이러니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삼갈과 야엘이라는 여인의 공통 분모를 
가만히 생각을 해봐야 돼요. 몇 가지가 있죠. 

첫째,  삼갈과 야엘, 둘 다 경계선 밖의 인물이에요. 
두번째, 이들이 적을 물리쳤던 무기들이, 전부 신형 전쟁에 걸맞는 무기입니까?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무기입니까? 그건 무기가 아니에요. 
사실은 일상에서 자기의 몸처럼 늘 떼려야 뗄 수 없는... 징그러운 어쩌면 떨쳐내고 싶은, 
치워버리고 싶은 그런 도구들입니다. 

소 모는 막대기.. 농부의 입장에서 땡볕 아래 그 거친 팔레스타인 땅을 경작하면서 
매일 눈만 뜨면 '이랴 이랴' 소 잔등을 쳐다보면서 소 엉덩이를 때리고, 농사를 지어야 돼요. 
그 막대기는 삼갈에게 늘 떼려야 뗄 수 없는 몸의 한 부분 같은 도구입니다. 

또 이 겐 족속은 '대장장이들'이라고 별명이 붙을 정도로, 
철기 문명을 잘 다루던 집안인지라, 아마 이런 도구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뚝은 장막을 칠 때, 장막을 고정하는데 쓰는 용도죠. *peg 
또 망치는, 그 말뚝 peg 을 박는 데 쓰는 거예요. 그러니 집안에 당연히 있었겠죠. 
이 또한 일상에서 늘 사용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도구들입니다.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여기서 유심히 살펴봐야 됩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에 다급한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우리가 바라는 대로 최신형 무기를 공급해 주시는 식으로...
어떤 대박을 터뜨려 주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를 기억해야 돼요. 
1) 첫째, 여러분 손에 들려져 있는 소 막대기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근데 우린 자꾸 새로운 거, 뭐 별다른 거, 이런 대단한 걸 자꾸 기도하고 찾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기 가득한 청년들 마음속에 
'하나님 제가 우울하고 절망하고 답답할 때, 왜 내겐 정말 로또 같은 일들이 안 벌어집니까?' 

이런 쓰잘데 없는 기도하지 마시고 '내 손에 들려진 소 모는 막대기는 뭡니까?' 
그거예요! 근데 그것이 항상 내 가까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무심히 생각하는 것, 어쩌면 더 적극적으로 
내가 이걸 좀 떨쳐내고 싶은 것, 
그 속에 시대를 구원하고, 자기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게 야엘에게는 말뚝과 망치였죠. 가재도구들이었어요.

2) 두번째는 우리는 미셔널 시선을 통해서, 이 시야를 넓혀야 돼요. 
자꾸 우리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가두어져서, 
학벌, 그 사람 얼마 벌어놨는지? 등 기본적인 몇 가지 지표가 있잖아요. 
거기에 배우자들도 딱 맞춰서 찾으려니까... 자기 눈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지금도 소 모는 막대기 들고 그냥 돌아다니는 삼갈들이 
여러분 옆에 앉아 있어요. 딴 데 보지 마시고, 삼갈 같은 사람을 한번 찾아보세요. 
누가 진짜 소 모는 막대기를 들고 돌아다니는가를 한번 보세요. 

이게 웃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지요. 진짜 그걸 볼 줄 아는 눈이 복인 것입니다. 
그 눈이 대박이에요. 믿습니까? 그런 눈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3)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자격이 뭐냐? 
이게 이 설교의 결론입니다. 준비된 게 자격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명하시면, 부르시면, 맡기시면, 그게 흔들릴 수 없는 자격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 하나님이 그 일을 맡기신 사람.. 
그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자격인 것입니다. 
삼갈이 그랬고, 야엘이 그랬어요.

오늘 이 말씀을 붙잡고 또 한 주를, 삼갈처럼 소 모는 막대기 들고 
열심히 걸어가는 우리 사랑하는 형제자매들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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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소 모는 막대기'
당시 팔레스틴이나 수리아에서는 밭을 갈 때 길이 약 2.5m 정도되는 둥글고 두꺼운 막대기를
사용하였다 한다. 그 막대기의 한쪽 끝은 뾰족해서 소를 몰 때 찌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며
다른 쪽 끝에는 조그마한 (쇠)삽이 달려 있어서 밭을 손질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한다.

즉 그 끝에는 쟁기에 낀 흙을 긁어내거나, 소를 재촉하기 위한 
조그만 쇠(철), 삽(또는 뾰족한 쇠붙이)이 달려 있었다.


주2) 삿5:6절 주석
삿5:6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삼갈의 날...야엘의 날'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족과 하솔 왕 야빈의 압제 하에서 고통당하던 때를 가리킨다.

이때 '삼갈'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던 블레셋 사람 600명을 소 모는 막대기로 죽여
이스라엘을 구원했었다(3:31). 

그리고 '야엘'은 이스라엘의 압제자 야빈 왕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를
지혜롭게 처치했었다(4:17-22).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당시 이스라엘의 황폐상을 표현한 것이다.

즉 당시에는 블레셋족과 야빈의 압제가 극심하여 상거래(商去來)도 없었으며
법질서도 마비되어 있었기에 노상(路上)에서 약탈 행위가 빈번히 자행되었다.

때문에 약탈, 폭행 등을 피하여 행인들은 큰길로 다니지 않고
소로로 다녀야 할 형편에 처해 있었다.

다시말해 블레셋족과 야빈의 압제 하에서 이스라엘은 경제가 핍절되었으며,
무법 천지가 되어 백성들에게 평안이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