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동행 목요집회] 2026.07.02 l 시1:1-6 l 나는 복있는 사람인가? Youtube
◈나는 복 있는 사람인가? 시1:1-6 2026.07.02.
제가 목회하면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마음이 아팠던 말이 하나가 있다면
‘예수님을 오래 믿었는데도 복은 받은 게 없다’고 하는, 어느 교인의 말이었어요.
‘저는 예수님을 오래 믿었는데 복은 별로 받은 게 없습니다!’
제가 참 마음이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아마 이 시간에도 그런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를 믿었지만 오래도록 나는 복은 받은 게 없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에 대한 아주 유명한 성경입니다.
이 ‘복이 있는 사람’의 특징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3절에 보면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러니까 복이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는 겁니다.
황량한 바위 산에 이렇게 심겨진 나무와 대조가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항상 시절을 따라 열매가 맺히고,
항상 잎은 푸르르고, 모든 것이 다 형통한 모습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복이 없는 사람’은, 바위산에 심겨진 나무 같아서,
열매는 고사하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그런 나무 같은... 정말 말라 비틀어진... 그런 나무 모습이 ‘복이 없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자, 그 말씀을 여러분이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적용해 보면
‘아 나는 복이 없는 게 맞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나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가?, 내 삶이 메마른 바위산에 심겨진 나무 같은가?’
그런데 뭘 보고 도대체 판단을 해야 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나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가, 바위산에 심겨진 나무 같은가?’
라고 생각하면... 정반대로 잘못 해석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나오는데, 그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그 시대에 하나님을 정말 잘 섬긴 대표적인 경건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바리새인들이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눅16:14
이게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복을 주신 사람이라면,
반드시 부자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부자여야 하나님이 이 사람을 복을 주신 사람이 맞구나’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을 주셨음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움켜쥐는 사람들이 된겁니다.
‘돈이 있어야, 사람들이 나를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볼 거니까’
바리새인들은 ‘돈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야박하게 처신하는 거죠.
(*예수님이 한 번은 서기관에 대해서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욱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하고 질타하신 적이 있는데, 눅20:47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사회적 약자들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탈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도 서기관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정말 심각하게 왜곡된 사람이 된 거예요.
그 마음의 심령은 돈으로 가득 차 있고,
겉으로는 아주 경건한 척하는... 이런 사람을 ‘율법주의자’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 기준으로 복이 있고/ 없고’를 판단하면 이렇게 왜곡이 돼요.
▲딤전6:8절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 알 것이니라’
근데 이 말씀이 마음에 안 드시는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
‘어떻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있다고 만족하라는 것이냐?’
아마 그런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혹시 ‘아, 나는 너무 불행해..
나는 정말 내 삶이 너무 만족이 안 돼..’ 라고 생각한다면,
부모 입장에서 어떤 마음이 드셔요?
살 집도 있어요. 부모님도 있어요. 먹을 것도 있어요.
좋은 음식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상관없이, 일단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양식이 있어요.
학교 다니며 공부할 수 있어요. 가족들이 같이 살고있어요. 몸도 건강해요.
그러면... 자녀가 ‘나는 행복하다. 너무 감사하다’ 그래야 되지 않겠어요?
그러면 부모 입장에서 더 힘을 얻고, 자녀들을 잘 뒷바라지 하고 싶겠지요.
근데 자녀들이 ‘난 이것도 없어.. 우리 집은 이것도 못 해..
나는 우리 집에서 태어난 게 너무 불행해...’ 그러면 부모 마음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마음 하나만 바꿔보면, 자녀가 감사할 것 천지인데...
그러면 그 자녀들이 더 잘 될 텐데...
부모는 자녀가 그렇게 보이잖아요.
그런데 가진 것을 감사할 것은 전혀 생각지 않고,
없는 것만 가지고 탓하는 자녀들을 바라보는 부모 심정...
이게 디모데전서 6:8절을 통해,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시는 이유인 거예요.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우리가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복을 받은 사람이에요.
앞으로 복을 받을 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복을,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이에요. 그걸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하니까, 자신이 불행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겁니다.
▲제가 한 번은 감옥에 갇힌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꽤 오래 전 일이긴 해요.
꿈을 꾼 그날 아침에, ‘내가 이렇게 감옥에 갈 일이 생기나?’ 이런 생각도 했을 정도입니다.
‘내가 왜 이런 꿈을 꾸지?’ 근데 생각해 보니까, 그때가 2009년이에요.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우리 한국도 말할 수 없이 어려운 그런 형편에 있을 때,
선한목자교회는 엄청난 부채상환의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교회 재정상황이나 건축비 상황이 정말 벽에 부딪혀 있는 그런 상황에서,
아마 제 마음이 눌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치 제 형편이, 감옥에 묶여 있는 것 같은 그런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으로, 저를 감옥에서 풀어주셨어요.
그 말씀이 요15:5절 말씀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나는 가지이고,
나는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제 안에 계시다’는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이거는 억지로 믿으려고 할 문제가 아닌 거예요.
진짜 저는 예수님 안에, 예수님은 제 안에 계신 게 너무 분명한 사실이니까,
너무너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예요.
요15:5절 말씀을 묵상하고 또 묵상하는 중에, 제 삶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겁니다.
교회 상황은 여전히 어려워요. 국내 상황뿐만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 상황입니다.
우리 교회 부채는 너무 많았어요. 이자도 갚기 버거울 정도가 됐습니다.
교인들은 헌금할 능력이 없어요.
‘이제는 끝인가?’ 이런 절망적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제 마음속에는 그 문제보다도, 제 안에 주님이 계신 것이 너무 놀랍게 느껴지는 거예요.
지금보다도 백 배나 더 어려워도, 저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신데, 내가 감옥이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요.
그냥 주님이 가시는 길이면, 내가 가면 되는 거고,
주님이 계신 곳에 나도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었어요.
‘영혼이 복되고, 진짜 복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요?
주어진 환경과 형편으로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형편이 좋았던 삶만 살았던 게 아닌 거예요.
성경을 읽으시면 다 알 수 있어요.
때로는 말할 수 없이 어려웠고, 죽을 위기 속에 있고,
정말 벼랑 끝에 서는 것 같은,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복이 없는 사람들입니까? 아닌거죠.
▲자, 도대체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 이런 복은, 뭘 말하는 것입니까?
시1:1, 2절부터 보셔야 돼요.
첫째, 시편 1:1~2절에 ‘도대체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건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고,
그 율법을 즐거이 묵상하며 행하는 사람’
다시 말하면, 저절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지는 사람,
그 사람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악한 사람은요? 돌 바위 산에 겨우 그냥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그런 나무 같은,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죄를 안 짓고 싶어도 죄 짓게 되어있잖아요. 저절로 어떻게 하다 보니까...
맨 주변에는 악한 사람들하고만 같이 어울리게 돼요.
‘안 해야지 안 해야지’ 하는 일만 골라서 하게 돼요.
‘어떻게 이렇게 나는 세상 일, 또 죄 짓는 일에만 이렇게 그냥 나는 어울려 살게 되는가?’
이런 사람이 악한 사람, 복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1:2절 말씀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이런 분도 계실 거예요. 그가 복이 있는 사람이에요.
반대로 ‘나는 복이 없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거예요.
왜요? 별로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나, 주야로 말씀 묵상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나는 별로 복이 없는 게 맞구나’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예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시라는 거예요.
지금 있는 여러분의 상태가 어떠한지 보다도,
‘예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 하는 겁니다.
예전에는 아예 성경말씀을 볼 생각도 안 하던 사람,
이런 말씀이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
교회를 나오지도 않았었고, 성경을 읽지도 않았었고, 설교는 물론 듣지도 않았던 사람...
그런데 지금은 오늘 이렇게 집회에도 나왔고, 또 성경 말씀도 일부 알고 있고,
또 어떤 말씀을 들으면 은혜도 되고, 깨달아지기도 하고... 엄청나게 바뀐 거예요.
이건 정말 엄청나게 바뀐 겁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물론 ‘지금 이 상태로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 같지 않다...’
성령께서 그렇게 나를 근심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예전과 비교해 보면, 나는 분명히 엄청나게 달라졌어요.
무슨 변화가 일어난거죠?
내 안에 성령께서 임하셨고, 역사하고 계신 삶을,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2: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가 되는 사람,
비록 그것이 내게 있어서는 아주 작은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중요한 것은 '그런 역사가 내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깨달아 지었고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은혜롭게 느껴져요.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고 싶어요.’
이건 엄청난 일이에요.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와 계셔서 역사하지 않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그는 복이 있는 사람이 된 겁니다.
▲어떤 초등학교 선생님이 하루는 시험감독을 하다가,
「반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아주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도 좋은 아이가
시험지 답안 하나를 못 쓰고, 끙끙대는 걸 보았어요.
근데 그 옆에 있는 애가, 그 공부 잘하는 아이의 답안지를 컨닝을 하다가,
그 1등이 답안지 답을 못 쓴 걸 보았어요.
그 옆에 얘는 늘 컨닝하는 애예요. 얘는 두루 정보가 많아요.
다른 아이의 답안지까지 다 보니까, 얘가 답을 안 거예요.
그런데 모범생이 답을 못 쓰고 있는 거예요.
1등 하는 아이가 그렇게 곤경에 빠져 있으니까,
늘 컨닝하는 애가 ‘내가 늘 신세를 졌기 때문에, 오늘은 갚아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아 얘한테 답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그래서 계속 옆의 친구를 연필로 꾹꾹 찔렀어요.
‘보라고, 여기 이거 보면, 이게 답이다’
‘내가 두루 살펴보니까 이게 답이야, 근데 넌 이걸 모르는구나.. 그러니 내 답안지를 보라고’
선생님이 감독하는데 이게 다 보이는 거예요.
‘야, 답 좀 가르쳐 줘..’ 평소에 이렇게 하는 거하고는, 다른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근데 이 1등하는 아이는, 계속 혼자서 끙끙대는 겁니다.
옆에서 찔러도 자기는 안 보겠다고, 컨닝을 하지 않겠다고...
그러는데 선생님이 이제 초조해지기 시작한 거예요.
‘얘가 결국은 친구 답안지를 볼 건가, 안 볼 건가?’
그런데 결국은 마지막에, 시험 시간이 끝날 때쯤 되니까, 확 보고 답을 쓴 거예요.
선생님 마음이 확 무너졌어요. ‘아, 얘가 결국은 이렇게 그냥 시험에 빠졌구나’
선생님은 너무너무 안타까웠어요.
너무 믿었고, 또 아꼈기 때문에... 뭐 한 문제 틀리더라도,
끝까지 친구 답안지를 안 봤으면 싶었는데...
시험이 끝나고 아이들이 이제 다 교실을 빠져나가는데,
그 아이가 끝까지 답안지를 안 내고, 얼굴만 시뻘개져 가지고 앉아있는 겁니다.
그러더니 맨 마지막에 답안지를 가지고 나오더니 울더래요.
‘선생님, 저 0점이에요. 저 한 문제 보고 베꼈어요. 저는 빵점이에요.’
선생님이 그 아이를 끌어안고 ‘야, 내가 정말 복이 있다!’
그렇게 말을 해 줬다는 겁니다.」
여러분, 복이 있는 사람은...
뭔가 일이 잘되고, 돈을 많이 벌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하는 일마다 다 잘되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닌 겁니다.
그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는 거예요. 거짓말하기가 어려워요. 죄짓기가 어려워요.
어떻든지 은혜가 사모함이 돼요.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가고 싶어요.
한 문제 베낀 것 가지고, 자기는 이제 0점이라고 생각해요.
깨닫고 보면, 예전처럼 마음껏 죄짓지 못하게 된 거,
이게 춤출 정도로 기쁘고 놀라운 일이에요.
내가 이제는 예전 같지 않아요.,
내가 지금도 물론 온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늘 하나님 앞에 죄송해요.
그렇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이 달라졌어요.
이건 정말 내가 복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된 거예요.
이제는 성령의 근심이 느껴져요.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뜻이에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근심을 전혀 못 느끼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하나님이 안타까운 게 느껴져요.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게 느껴져요.
혹시 잘못할 때도 있지요. 그렇지만 그때 성령의 근심을 느끼는 것,
그것 자체가 복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영상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열두 해 혈루병 앓던 여인이 고침을 받는 그 장면을
이 시간에 잠깐 우리 영상으로 보고 말씀을 이어가겠습니다.
*혈루병 여인이 고침 받는 영상, 위 동영상의 20:00~25:52초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그 어떤 장애물도 그녀를 막을 수가 없었어요.
이 여인과 같은 그 심정, 주님을 향한 그 마음, 그 믿음, 그 간절함, 그 소원,
주님께로 이끌리는 그 심정... 이 사람이 복이 있다는 거에요. 이 사람이 복이 있는 거예요.
그건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따라
저절로 열매를 맺음 같이, 그 나뭇잎이 풍성해지는 것처럼
이분은 ‘기도를 하라 말라’ 할 것도 없이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라, 읽지 말라’ 할 것도 없이 말씀이 보아져요.
항상 주님을 생각하고 살아요.
그 점을 오늘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라고) 주목해 봐야 하는 거예요.
결국은 이 여인이 정말 복이 있는 사람인 것이 드러났잖아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밀치고,
그리고 주님 옆에서 몰려들고 있어도...
주님과 이렇게 몸이 닿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에요.
그런데 주님께서 딱 멈춰서시고 ‘누가 나를 만졌다’고 말씀하셨어요.
다들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아니 밀치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닌데...’
복이 있는 사람이 바로 이와 같은 경우인 겁니다. 예수님은 그를 알아보시는 겁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만,
실제로 주님의 역사하심에 연결되어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안타까운 것은, 복이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 어떤 복이 있는지를 잘 모르는 거예요.
선한목자교회에서 ‘남자들만의 기도 모임’을 새벽기도 후에, 한 주일에 한 번씩 가졌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남자들>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가졌어요.
남자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서로 고백할 거, 회개해야 될 거, 믿음으로 결단해야 될 것들을
매주 모여서 한 번이라도 같이 기도 시간을 갖고, 회개할 것은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싶어서... 모임을 시작을 한 겁니다.
첫 번째 모임을 가졌을 때 서약을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원해서 이 모임에 오셨는가?’
그때 서약한 내용들이 너무 제게는 감동이었어요.
「하나님 제가 우리 가정의 아버지입니다. 제가 남편입니다. 제가 가장입니다.
이제 세상 의지하던 줄을 온전히 끊겠습니다.
세상에서 불의한 방법으로 계약하지 않겠습니다. 술자리 이제는 피하겠습니다.
먹고사는 거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집에서 화내고 짜증내지 않겠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매일 축복기도 해주겠습니다. 정직하고 죄짓지 않겠습니다.
분노를 이길 힘을 주심을 믿겠습니다. 정상적인 상품만 취급하겠습니다.
손해보더라도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 작은 법이라도 꼭 지키겠습니다.
검소하게 살아 꼭 빚 정리하겠습니다. 수입의 십일조 드리겠습니다.
시간의 십일조 드리겠습니다. 나의 회사를 주님 위한 회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수요일, 금요철야 전에 영업을 끝마치겠습니다.」
하여튼 구구절절하게 고백들을 그렇게 하셨어요.
이런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예요.
이런 마음이 들고, 이런 결단이 되고, 이게 소원이 되는 일은
아무나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번 주에 [예수님의 사람 제자훈련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목사님들, 사모님들이 한 50분이 모이셨어요.
강사목사님이, 교회에서 만났던 ‘노숙자였던 성도’의 제자훈련 간증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노숙자 성도님 대신으로 간증문을 읽어주셨습니다.
「저는 노숙자로, 교회에서 말하는 ‘주목자’입니다.
그런데 요즘 정말 행복합니다. 언제 이렇게 행복했나 싶습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 제 부모님을 정말 많이 미워하고 원망했습니다.
아내는 가출을 했다가, 사고로 죽었습니다.
저는 아이 둘을 키워야 했기에, 악착같이 살았지만,
남은 거 하나 없이 홀로 고시원에서 살게 됐습니다.
외롭고 배고프고 슬픔과 분노에 가득 찬 생활을 하다가,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무료 급식소에 나와 식사를 제공받았는데,
아무 조건 없이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교회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게 됐고, 1대1 양육도 받고, 제자훈련도 받았습니다.
처음엔 부끄러워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양육을 받았는데,
언제부턴가 모자를 벗고 양육을 받았습니다.
양육을 받으면서 복음을 알게 됐고, 내가 죄인이고 미워하는 것,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고 회개했습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에서 저는 정말 자신없고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저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제 죄가 사해졌다는 소식이, 제 마음에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10년 넘게 길렀던 긴 머리도 자르고,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에 오신 예수님 때문에, 제가 행복해진 게 너무 신기합니다.
형제님들과 봉사 나가서, 다른 분들을 돕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나는 행복하다’는 소리를 요즘 입에 달고 다닙니다.
멀리 있는 아이들한테, 아빠가 예수 믿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전도를 해서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저를 진짜 행복의 길로 인도해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런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 사람이에요.
그분의 고백 속에, 그분은 지금도 여전히 노숙인의 형편 속에는 있지만,
앞으로 점점 빠져나오게 되겠죠.
그가 고백하는 것을 보면, ‘예수 믿는 게 이렇게 쉬운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잖아요.
▲또 제자훈련 세미나 강사님 중에
‘돌발성 난청이 와서 고생했던 목사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강의 중에 간증하신 내용에, 많은 참석자들이 깊은 은혜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 간증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제 오른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때 하나님께 기도를 했답니다.
‘주님, 제가 듣지 못하게 될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분명히 들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렇게 눈물로 기도했다는 고백을...」
아멘. 이런 사람이 복이 있는 거에요.
기도를 들어봐도 ‘야 이 사람은 진짜 복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의 기도는.. 기도부터가 달라요.
여러분에게도 그런 갈망이 있나요?
저는 믿기는, 오늘 목요집회에 참여한 분들,
또 온라인으로 참여한 모든 분들이 복이 있다고 믿어요.
복이 있지 않으면 목요집회에 이렇게 오지 않습니다. 온라인 영상으로도 보지 않으세요.
이 집회에 관심이 가고, 마음의 사모함이 생기고,
그게 도대체 누구의 역사죠?
▲제가 지난 토요일 2026년 6월 27일입니다.
제 동행일기를 우리 목사님들하고도 나눴었는데,
제가 아침에 일어나 뒷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는데,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게 해주세요.’ 그 기도를 정말 간절히 드렸어요.
‘제가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제 아내에게도 힘들게 하고,
두 딸들도 힘들게 하고, 또 제 주변에 함께 동역하는 목사님들,
또 우리 파트너스 형제교회 목사님들도 힘들게 하고 있다’는 마음이 너무 강하게 들어요.
‘제가 정말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동행하면,
주님이 저를 통해서 더 놀랍게 일하실 텐데...’ 그런 마음이 간절히 들어요.
그런 애통한 마음으로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기도를 하고,
이제 산에서 이렇게 내려오는데, 갑자기 ‘이 간절함이 뭐지?’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이번 세미나 때도, 제가 목사님들과 그 내용을 나눴더니, 좀 어이없어 하는 목사님도 계세요.
‘제가 그 간절함으로 기도했었다’고 하니까, 어이가 없어 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제 마음에 ‘이 일이, 제 안에 주께서 역사하시는 것이구나’ 부인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게 너무 복되게 느껴지는 거예요.
여러분 모두가, 다 이미, 복이 있는 사람의 반열에 다 들어와 계세요.
이걸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세상은, 세상 기준으로 ‘복이 있다, 없다’ 판단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무엇이 복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내 속에 일어나고 있는 주님을 향한 갈망, 말씀에 대한 갈망, 은혜에 대한 갈망,
하나님 앞에 더 온전하게 살고 싶은 마음, 이건 누구에게나 허락된 일이 아닌 거예요.
그리고 이건 어떤 것보다도... 귀한 거예요. 이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 거예요.
시1:6절에 ‘무릇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결국은 여기서 갈라지는 거거든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주님의 역사하심에
더 분명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안에 주시는 은혜 갈망 주님을 향한 갈망을, 더욱 간절히 붙잡게 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복 있는 사람인 여러분을 놀랍게 이끄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