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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8장 바늘 귀로 들어가는 낙타

LNCK 2026. 7. 9. 10:29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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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귀로 들어가는 낙타             눅18:24-30                2006.11.26.

 

눅18:24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6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본문에 "바늘 귀"라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영어나 헬라어로 needle's eye 입니다.

바늘에 실을 꿰려고 뚫어놓은 구멍, 그것이 ‘바늘귀’입니다. 영어식 표현은 ‘바늘 눈’이죠.

 

그런데 오늘 성경말씀에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간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이걸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아주 굉장히 과장적인 것 같이 들립니다.

 

그 큰 낙타가 어떻게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요?

예수님의 말씀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그 말은 불가능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말씀은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눅18:27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들어간다면 들어가는 줄 알아야지요.

여기에 해답이 있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젊은 율법사이며 부자인 청년 한사람이 찾아와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내용이 좀 아리송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나름대로 지금 제 속에는 딴 계산이 좀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행함의 문제를 가지고 나옵니다. 18:18

 

예수님께서 모름지기 그 심리상태를 다 아시고, 아주 높은 수준에서 대답을 하신 것 같아요.

‘계명을 지켜라. 계명을 지키면 영생에 들어간다’는 그런 의미로 하신 거 같지 않아요. 18:20

유도적인 심문이요, 유도적인 대답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계명을 지켜라’

그런데 이 청년 하는 말이 "어렸을 적부터 율법은 다 지켰습니다" 이러고 나오는 거예요. :21

 

어렸을 적부터 율법을 다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 그 잘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잘 지켰느냐? 몇 프로를 지켰느냐?’

그래? 좋다. 그럼 내가 한 가지 더 묻겠다. 오히려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가 율법을 다 지켰다며? 그러면 대답해보라.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 :22

 

예수님은 참 어려운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어쩌면 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씀인 줄로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그만 안색이 변해서, 심히 근심하는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생을 포기했습니다.

 

‘영생이냐 구원이냐?’ 또 ‘구원의 문제냐, 물질의 문제냐?’

이건 사실 대조해서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영생과 물질이 어떻게 비교가 됩니까?

물질은 아무리 가져 봐도, 나 죽을 때 끝나는 거 아닙니까?

영원히 가질 것도 아니고요.

 

영생의 문제는 영원한 생명에 관한 건데, 어떻게 이것과 비교가 됩니까?

결국은 이 사람이 영생문제를 포기하고, 물질을 선택하고 돌아가는 거예요.

청년은 영생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마음에 근심하며 심히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바로 이것을 보시고, 물질을 위하여 영생을 포기하는 이 미련한 인간을 보시고

예수님은 이제 해석을 하십니다. 그 해석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바로 이 시간과 연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소유형 인간 과 존재형 인간

독일의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To Have or To Be」라고 하는

유명한 저서가 있습니다. <소유냐 존재냐>

 

여기서 그는 지적합니다.

‘사람은 두 가지 양식을 가지고 산다. 하나는 소유양식이요,

다른 하나는 생존양식, 존재양식입니다.’

 

보세요. 소유양식을 가진 사람. Having Mode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저 소유가 목적입니다. 그리고 소유가 행복의 근본입니다.

소유가 삶의 중심입니다. 소유가 성공의 지표입니다.

 

여러분, 소유에다가 초점을 맞추고 사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생각하면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죠.

 

또 한사람은 Being Mode 예요. 소유야 어쨌든 간에 생존양식을 중요시 여기고 삽니다.

소유는 때론 잃을 때도 있고, 얻을 때도 있어요.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내 존재가 중요해요. 내 생명이 중요해요.

내 존재의 가치, 존재의 의미가 따로 있는 거예요.

존재가, 소유에 의존되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함께 가기가 어렵습니다.

둘 다 가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돈도 가지고 인격도 가지고,

그리고 부도 가지고 신앙도 가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 둘이 정비례한다면 참 좋겠는데, 때로는 반비례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것이 오늘 주님말씀이에요.

 

‘부자가 있느냐? 부자가 낙타라고 하자.

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처럼, 그만큼 어렵다.

그러니까 부를 포기해야한다, 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좀 더 실제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사랑하십니까? 사랑하고 싶어요?

때로는 사랑하고 싶으면서도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랑 못한 걸 후회하기도 하고, 지금도 사랑을 못해요.

왜? 돈 때문에. 이게 돈이 작용을 하거든요.

 

△별 얘기도 다 있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이 판사로 계실 때 얘기를 하는데요.

좌우간 신혼가정인데 일 년 만에 이혼을 했대요. 이혼하는 이유가 로렉스 시계 때문에.

 

결혼할 때 결혼예물을 주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신랑에게 로렉스 시계를 사주지 못했대요.

이걸 좌우간 신혼여행 때부터 시작해서 일 년 내내 얘기하는 거예요.

‘내 친구들은 다 로렉스 시계를 얻었는데, 나는 장가는 갔는데 로렉스 시계 없어서 창피하다’

 

이 얘길 다 듣고 나서 장로님 판사께서 ‘이혼하라’고 했대요.

‘그런 놈하고 살아서 뭘 하냐?’ 그랬대요.

 

1) 좌우간 이게 문제올시다.

사랑은 해야겠는데 돈이 걸려듭니다요.

이거 때문에 사랑을 못합니다.

 

2) 여러분, 진실해야겠다는 것도 알아요. 그러나 돈 때문에 못합니다.

이권 때문에 진실을 잃어버립니다.

 

3) 여러분, 겸손해야 될 줄 모릅니까? 적어도 인격자라면 다 알죠.

뭐 수없이 듣는 얘기고 또 결심합니다.

 

겸손해야겠다. 겸손해야 산다. 겸손해야 행복하다.’

그러나 겸손하지 못합니다. 왜요?

돈 때문에. 이것이 문제란 말예요.

그런고로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자 바늘귀로 들어갈 만큼 작아져야 되겠다고 말합니다.

 

▲칼 융 연구소의 소장인 존 레비 박사가 쓴 책 중에

재미있는 특수한 단어가 나옵니다. ‘어플루엔자 affluenza’ 라는 말입니다.

 

인플렌자 influenza + 어플류언스 affluence(풍요)의 합성어입니다.

이건 뭐냐 하면 풍요증(豊饒症)입니다.

 

부자가 걸리는 병. 부자만이 가지는 정신병.

그리고 육체까지 병들게 만드는 그 병(어플루엔자)을 잘 분석해서, 책을 한 권 썼어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어플루엔자를 생각해 보세요.

 

1) 돈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착각

돈을 가질 때 어떻습니까?

돈이 만능이라고 하는 물질만능주의에 기울었어요.

돈이면 다예요. 돈이면 다라고 하는 생각에 빠지기 쉬워요.

 

옛날에 이병철 씨가 입버릇처럼 그랬답니다.

골프를 치면서. "내가 마음대로 안되는 게 딱 두 가지가 있어. 아무래도 안돼.

첫째, 자식이 내 맘대로 안돼. 둘째, 골프가 마음대로 안돼."

 

돈 있다고 골프가 잘 쳐지는 건 아니잖아요.

여러분,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있는 걸 안다는 거, 이거 얼마나, 얼마나 간단한 진리입니까!

그러나 부자가 되면, 이걸 모르는 거예요.

돈으로 다 되는 것처럼 착각하거든요. 이게 바로 어플루엔자의 특징이에요.

 

2) 두 번째는 여러분, 돈이 있으면 용기가 있을 것 같죠?

안 그래요. 반대로 심리학적으로는, 의욕이 약해지고, 의기소침해지고,

아주 소극적인 인간이 되요.

 

보세요. ‘우리 좋은 일을 합시다’ 라고 하면

‘합시다!’ 하고 선뜻 나서질 못하고,

딱 먼저 벌써 주판이 돌아요. 돈 계산을 합니다.

 

계산을 해서 ‘이게 얼마나 이롭겠나? 얼마나 해롭겠나?’ 이 생각을 먼저 하잖아요.

그러는 동안에 그만 그 일에 의기소침해지고 말아요.

 

중요한 일, 참으로 해야 될 일을 못하게 되요. 계산하느라고.

계산하느라고 아주 소심한 인간이 돼버리고 말아요.

마지막엔 유치해지고 말아요.

 

3) 자, 또 한 가지는, 부가 더할수록 남을 의심하는 병이 생겨요.

이것도 중요합니다. 부가 더할수록 남을 의심해요.

 

그래서 딸이 자기 남자 연인을 데리고 와도,

‘저놈이 무슨 짓을 하려고? 내 재산을 일부라도 빼앗으려고?’ 의심을 하는 거예요.

 

순수한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돈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으로

오해를 해버린단 말예요.

그러니까 진실한 사랑을 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어요.

이게 부한 자의 불행입니다.

 

4) 또 하나는 돈 많은 사람은 지루합니다.

지루함을 느끼고 신나는 일이 없어요.

행복감이 없고 감격이 없어요.

 

사실은 그 가난한 사람은, 뭐 조그마한 선물 하나 가지고도 감격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돈 많은 사람은 감격하지 못해요.

 

그래서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옛날에 그 영국 여왕의 남편은 참 불행했겠다’

왜냐면 아내에게 선물할게 없잖아요.

 

세계에서 제일 큰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다면서요?

그 사람에게 무슨 선물을 하겠어요?

 

조그만 선물이라도 서로 정을 담어서 주고받을 때,

거기에 부부의 감격이 있고, 행복이 있는 건데...

돈 많은 사람에겐 선물을 못합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되요.

그러니까 행복이 없는 거죠. 삶이 지루합니다.

 

5) 또한 땀 흘려 벌지 않았을 경우에는, 죄책감마저 있습니다.

자기도 양심이 있어서. 내가 성공하는 동안 실패한 사람이 있고,

내가 버는 동안 손해 본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요.

 

종종 그 손해 본 사람의 그림자가 자기 눈앞에 띄어요.

그런고로 죄책감에서 헤어나질 못해요. 이거 또한 큰 문제올시다.

그런고로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부자는 벌써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을 누리기가 쉽지 않은 거죠.

 

△1970~80년대, 심방을 많이 다니던 시절에, 어느 목사님의 경험담입니다.
부자 동네의 부잣집에 심방을 가면, 공통점이 있답니다.

그것은, 집은 넓은데 사는 식구가 한 명, 혹은 두 명 뿐이며, 

그 집은 현관에서부터 냉기가 촤르르 흐른다는 것입니다. 

식구가 적어서도 집이 썰렁하지만, 그 성도님 분위기도 대체로 차갑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난한 동네, 가난한 집에 심방을 가면,

그 집 주인 성도님은, 버선 발로 뛰어나와서 웃으면서 목사님을 맞이한답니다.

그리고 집은 좁은데, 거기에 사는 식구들이 여러 명 많답니다.

또한 온 집안이 화목하고 화기애애하며, 왁자지껄 시끄럽지만 사람 사는 맛을 느낀답니다. 

요즘은 이런 분위기가 그리운 시절이 되었습니다. 

 

둘 중에 어디가 천국일까요?

그런데 조선족이나 고려인 등 해외동포들이 한국에 정착할 때 보면,

요즘도 이런 분위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말씀은 할 수 있다 그랬어요. 하나님은 가능하시다.

 

눅18:26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그 무슨 말입니까?

그렇다면 낙타를 바늘귀로 들어가도록 작게 만들겠다는 거예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만큼, 실오라기만큼 가늘게 만들겠다.’

그래서 쏙 들어가게 만든다는 거죠. 이 얼마나 중요한 얘깁니까?

 

△이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 중에 하나입니다만,

‘바늘귀’라는 것은 옛날 작은 성문을 말하는 별칭이라고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큰 성의 성문을 밤에는 닫아요. 그러면 멀리서 돌아온 사람이,

성문이 닫힌 후에는 성 밖에서 그 추운 밤에 노숙을 하며 자야 되요.

그리고 아침에 성문이 열릴 때 들어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 큰 성문 옆에 조그마한 문이 있어요. (남한산성에 가도 다 있어요)

문이 너무 작아서 ‘바늘귀’라고 불렀어요.

누구도 짐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어요.

다만 빈 몸으로만 살살 비비면서 들어올 수 있는 조그마한 문,

바늘구멍 같은 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별명이 ‘바늘귀’입니다.

 

그 말이 뭐냐 하면, 아무것도 못가지고,

오로지 빈 몸으로만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작은 문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물질로 인해서 부해진 마음, 또 거품, 허영을 하나님이 빼버린다는 거예요.

물질로 인해서 교만해졌다면 물질을 빼앗아서 겸손하게 만들고,

물질 때문에 거짓으로 그렇게 부풀러진 인격이라면, 그 거품을 빼겠다는 말씀이죠.

사람은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하신다... 하나님은 하십니다.

 

▲요새 베스트셀러로 나온 대단히 중요한 책 가운데 「긍정심리학」이란 책이 있습니다.

한번쯤 읽어볼만한 좋은 책입니다.

 

마틴 셀리그만이 썼는데, 이분은 미국의 심리학회 회장을 지낸 분이고,

30년간 우울증을 연구하고 가르치신 교수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1998년에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긍정심리학’이 무슨 말입니까? positive psychology

 

간단히 말하면 ‘손쓸 도리가 없을 만큼 망가진 삶은, 이제 그만 연구하자.

잘못된 세상, 어두운 세상, 그 자꾸 쑤시고 연구해봤자, 거기서 남는 결론은 아무것도 없더라.

그리고 이제는 그런 것은 지워버리고

행복한 것, 잘될 것 같은 사람, 아니 행복한 사람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행복을 연구해야겠다.

그리할 때 행복의 길이 열린다’고 주장을 하면서 긍정심리학을 말합니다.

 

문제는 태도의 문제라는 겁니다. 보세요.

긍정적인 사람은 불행이 닥칠 때, 이것은 임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이것은 좀 더 잘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이 들면,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기다리고, 새로운 미래를 지향합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불행이 닥칠 때.. 개인의 문제나 혹은 특정한 시기에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전 우주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기가 불행할 때, ‘온 세상이 다 불행하다.’

자기가 불행할 때, ‘대부분 세상 사람이 다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어두울 때, ‘세상은 다 어둡다. 다 망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영 나아질 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고로 망가지는 겁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실패는 없습니다. 다만 시련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때로 불행이 있더라도 그건 일시적인 것입니다.

또 지난 다음에 생각해보면, 그 불행한 날이 있었기에 행복한 날이 오는 겁니다.

깊이 생각할 문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혹시 나를 슬림slim 하게 만드시고,

나를 날씬하게 만드셔서,

그 작은 바늘 귀로 통과할 수 있게 만드시는 대수술을 내가 받게 된다 할지라도,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긍정 심리학’을 가지세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천국에 데리고 가기 위해서,

그 대수술을 하시는 겁니다. 눅18:27

 

▲여러분, 나 스스로 겸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손을 보아야 (수술하셔야) 겸손해집니다.

 

나 스스로 진실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야 (성령 감동 주셔야) 진실할 수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은사로 주지 아니 하면, 아무도 순수하고 진실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건 하나님이 만들어가는 작품입니다.

 

내가 지금 요만큼의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욥23:10절에 보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킵니다.

이 훈련을 통해서 작아지고 작아져서,

바늘귀로 들어갈 만큼 작아져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더 작아지면 되겠습니까?

저희 교인 가운데 그런 사람을 봤어요.

 

한때 잘 나갔어요. 잘 살았어요. 뭐 세계를 누비며 살았어요.

바람도 많이 피웠어요. 아내 속을 많이 썩였어요.

 

병원에 들어가서 간암으로 죽게 될 때, 제가 입회했는데

그때 가서 그런 얘기 하대요. "제 아내는 천사입니다. 제 아내처럼 예쁜 여자가 없습니다"

그러더라고요.

 

제가 생각해봤어요. ‘진작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정도 되니까 비로소 알더라고요.

죽을 지경이 되서야 자기 아내의 얼굴이 천사라는 걸 깨닫더라는 거예요.

얼마나 더 작아지면 되겠습니까?

어디까지 작아지면 여러분, 정신을 차리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탕자가 집에 돌아옵니다.

그가 쫄딱 망하는 거지가 안 되었던들.. 집에 돌아오겠습니까?

 

그 교만한 놈을 낮추고, 낮추고 낮추어서

작게, 작게 만들어가지고,

아버지 앞에 와서 무릎을 꿇도록 하나님이 만든 거죠.

비로소 바늘귀를 통과하게 된 거죠.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가 아십니다. 교만한 모세, 작아지고 작아져서

주의 음성이 들릴 때까지 작아지는데 40년 걸렸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나를 낮추십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육체의 가시를 통해서 낮춘다고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 귀한 역사를 창조해가십니다. 낙타를 바늘귀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리할 때 천국이 보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작아지고야 하늘나라가 환하게 보입니다.

 

.........................................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지만, 그래도 통과해야 하는 이유

저는 천당과 지옥이 어떤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천당은 낙타가 바늘귀를 뚫고 지나가야 할 만큼 힘든 곳이라

제가 그곳에 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옥은 한 번 떨어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곳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기에

제가 그곳에 가는 것은 너무 억울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해서라도,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보통 성벽에는 밤이 되면 큰 성문이 닫히고, 사람이나 작은 짐승만 통과할 수 있는

'바늘귀(Eye of a Needle)'라 불리는 작은 쪽문이 있습니다.  *영어나 헬라어는 '바늘 눈'

 

이 쪽문으로는 ‘짐을 가득 실은 낙타’는 이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즉,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짐(재물과 욕심)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어 자신을 낮춰야만 통과할 수 있다는 겸손의 메시지로 활용됩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성경 고대 사본을 필사할 때 낙타를 뜻하는 '카멜로스(Kamelos)'와

배에서 쓰는 굵은 밧줄을 뜻하는 '카밀로스(Kamilos)'가 혼동되어 발생한

오기 誤記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모음 e 와 i 의 차이

 

그런데 ‘밧줄’이 아니라, ‘낙타’가 맞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그 근거로 고대 유대교의 지혜 문헌이자 랍비들의 가르침을 모은 ‘바벨론 탈무드’를 듭니다.

바벨론 유배 시절에 지은 책이겠죠.

 

거기에 보면, 절대 일어날 수 없거나 불가능한 일을 비유할 때

'코끼리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물론 과장법적 표현이죠.

그렇게 볼 때 예수님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 것은,

성경 필사자의 오기誤記가 아니라는 거죠. 팔레스틴에는 코끼리가 거의 없으니,

흔히 눈에 띄는 '낙타'로 바꾸어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낙타' 대신 '굵은 밧줄'을 바늘귀에 넣으려는 상황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건 잘못된 해석이라고 방금 설명했습니다)

이 경우가 좀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석이기는 하나,

혹시 그렇다 하더라도, 밧줄이 바늘귀에 들어가는 거나,

나귀가 바늘 귀(문)으로 들어가는 거나.. 불가능하고 어렵기는 매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고대 시대의 바늘은, 오늘날의 바늘보다 당연히 크기가 컸고,

바늘귀로 3mm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은 1mm 미만이죠.

그래도, 그게 낙타든지, 굵은 밧줄이든지, 통과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죠.

 

그럼, 실제로 예루살렘 성에 있는 ‘바늘귀’문은 그 크기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비유(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비유)에 등장하는 '바늘귀 문'은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가 없는 전설적인 문입니다.

따라서 실존하지 않아 고정된 크기도 없다고 합니다. *AI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벽에 '바늘귀'라는 이름의 낮고 좁은 문이 있었다는

고고학적, 문헌학적 기록은 없습니다.

 

이런 비밀 문, 비밀 통로를 ‘암문 暗門 Castle Escape Tunnels’ 이라 부르는데,  

그리스, 로마, 중동의 요새 등에서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

비상 탈출, 전령의 비밀스러운 출입, 기습 공격을 위해 처음 고안된 것은

AD 9세기 경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문자적으로 '진짜 바늘 귀'로 해석하는 게 맞다는 거죠)

 

▲낙타와 바늘귀 비유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재물은 가장 큰 복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복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실제로 복이 아니라

복을 알게 하는 보조 장치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요즘 건강 보조식품들이 넘쳐나는데, 아무리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 해도,

건강 보조 식품들은 근본적으로 병을 낫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보조 역할을 할 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건강, 장수, 자녀, 화목한 가정, 성공 등과 같은

복들은 우리에게 참된 복을 알려주는 보조 기능을 할 뿐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복은 바로 영생, 믿음, 은혜, 성령 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영생을 위해서 재물을 주실 때도 있고, 가져가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영생을 위해서 건강을 주실 때도 있고, 가져가실 때도 있습니다.

그 외에 장수나 자녀의 성공이나 화목한 가정 등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영생을 위해 그런 것을 주실 수도 있고, 가져가실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생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많은 짐을 싣고서는 들어갈 수 없듯이,

부자는 많은 짐(부자의 재산)들을 내려놓아야 하며,

그 우상을 치워버려야, 바늘귀로, 즉 천국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강제 정리, 사이즈 다운’ 하신다고, 위에서 언급했습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18:8-9)

 

▲낙타도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낙타와 바늘귀 비유의 뜻은 분명합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사실은 부자들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자와 보통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가 돈을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부자에게 돈이 중요하고 소중하듯이, 가난한 사람이나 중산층에게도 돈은 중요합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중산층도, 늘 돈 걱정을 하고 산다면, 그 역시 물질이 우상인 것입니다.

그들이 늘 부자되기를 추구하며 산다면, 그 역시 ‘낙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부자들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중산층이든, 돈이나 어떤 다른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눅19:25-26

 

낙타는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예, 가능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마22:38~39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하나님과 내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어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웃 사랑의 삶을 살 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사실은 그렇게 산다는 것이 곧 영생을 얻은 사람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됩니다.

(이웃 사랑이 구원 얻는 조건이 아니라, 구원 얻은 결과, 증거로 드러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