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강해(10)/사사기6:11-16/‘포도주 틀 속의 부르심’ Youtube
◈포도주 틀 속의 부르심 삿6:11-16 2025.08.17.[사사기 10강]
오늘은 기드온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기드온 하면... 주의 사자(천사)가 기드온을 부를 때 불렀던 호칭 때문에
기드온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천사가 기드온을 향해 '큰 용사여' 이렇게 불렀죠.
삿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그래서 기드온 하면, '기드온과 삼백 용사' 이렇게 마치 영화제목처럼 많이 각인되어 있죠.
그런데 이 기드온이 등장하던 시대는,
가장 사사시대의 어둠 중에서도 칠흑같은 어둠의 절정의 시간입니다.
게다가 이 시대는 전혀 답이 없던 시대예요.
그때 하나님께서 정말 용사다운 인물을 찾다가, 기드온을 부르셨는가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오늘 이 설교의 핵심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본문을 좀 깊이 들여다볼 과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빨리빨리 삿6:1절부터 좀 스케치 해 나가면서
오늘 본론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을 정말 힘들게 했던 미디안의 7년 압제
6: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이렇게 시작했지요.
그러니까 사사기의 역사는 '순환의 역사'에요. 크게 두 가지가 순환된다고 했습니다.
-죄가 순환이 되고
-더불어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은혜가 역시 순환됩니다.
그래서 사사기의 역사는, 순환적 패턴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라는 표현은, 사사기에서 매우 우리 귀에 익숙한, 비극의 용어예요.
마치 내 안에 들키고 싶지 않은 내면의 상태가 외부로 드러나듯이,
'또' 라는 단어로 역시 1절이 시작됩니다.
자, 그런데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7년 동안 그들을...' 누구의 손에 넘깁니까? 미디안의 손에 넘깁니다.
미디안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여러 대적들이 있었지만,
어쩌면 가장 중후장대하고 막강한 세력입니다.
그들이 동원한 군대를 보십시오.
삿6:5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8:10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든 자 십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따라와서 거기에 있더라'
미디안이 동원한 군대가, 모두 13만 5천이라는 얘기입니다.
이정도로 역대급으로 많은 군대를 동원한 것은, 미디안이 당시에 매우 큰 나라였다는 거죠.
하나님은, 7년 동안을 미디안 군대에 이스라엘을 넘깁니다.
어느 정도의 고통이 임했는가를 2절서부터 한번 보죠.
삿6: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의 고통은 무엇인가요?
가나안 땅에서 원래 이스라엘은 평지에 살았어요. 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가나안화되어 가면서 농사로 생업을 바꾸다 보니까, 그들이 익숙한 지형은 평지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미디안이 이들을 못살게 굴었는지, 이스라엘은 전부 산으로 다 도망갔어요.
그래서 산위에 굴을 파고 산성을 만들고 웅덩이를 만들어서 거기서 거의 피난 생활합니다.
가나안 산지에는 동굴들이 많기 때문에, 피하기에 유리한 지형이었어요. 생활은 불편했겠죠.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6:2
그러면 미디안이 어떻게 이들을 못살게 굴었는가요? 3절입니다.
삿6:3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파종할 때면'
특히 유목민인 미디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파종해서 곡식이 싹을 내어 한창 자랄 때에,
자기들 가축을 몰고 와서, 그 곡식 새싹을 뜯게 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소 키울 때 보면, 송아지가 밭에 들어가서 채소 잎사귀 뜯어먹는 것을 아주 즐기죠.
그게 야생 풀보다 몇 배로 더 향기나고 맛있나봐요. 그래서 늘 주인이 쫓아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 자라서 이삭이 여물은 곡식마저 빼앗아 갔으니
이스라엘에 양식이 남아 있을 날이 없었습니다. :4
이 말은 4절에 '메뚜기 같이'라는 말과 연관됩니다.
메뚜기 떼가 날아오면, 곡식들을 다 먹어치우잖아요.
그처럼 '파종할 때면' .. 즉 파종해서 싹이 어느 정도 자랄 때면,
자기들 가축 떼들을 몰고 와서, 장막을 치고, 새 농작물들을 다 먹어치웠다는 거죠. 싹쓸이.
그래서 기드온이 포도주 틀에 숨어서 타작한 것이 이해가 됩니다.
양식이나 작물이 눈에 띄면, 미디안이 나타나서 다 빼앗아 갔다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 때나 약탈하러 오는 게 아니라,
목축업 하는 자기들이, 곡식이 자라서 가축 먹이기에 딱 좋은 시절이 되면,
자기들만 오는 게 아니라, 이 미디안 세력이 옆에 아말렉 족속, 또 다른 유목민들까지
연합군을 조직해가지고, 이스라엘로 약탈하러 들어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자, 대적을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거죠.
이스라엘은 꼼짝 없이 당하고만 있는 거죠.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또 다 죽이진 않습니다.
또 농사하면서 살게 내버려 둬요.
그래야 내년에 또 약탈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세월이 7년이나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농사 지어봐야 아무 소용없다. 산으로 올라가서 웅덩이 파고, 굴 파고,
산성 둘러쳐서, 거기 가서 살자' 하고, 거기서 피난 생활을 하는 겁니다. 6:2
여러분, 산에서 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리고 농사를 포기하다시피 하는 거죠. 생업을 포기하는 겁니다.
그니까 모든 영역에서 이스라엘이 총체적 폐허가 되어가다시피 합니다.
6:4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3절에는 '파종할 때' 침략했고,
4절에는 '추수할 때' 또 침략한 거예요.
'진을 치고'라는 말은, 한 동안 오래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미디안 족도 유목민족이라서, 소떼나 양떼를 칠 때, 한 곳에서 진(장막)을 치고
오래 머무는 습관이 있는 거죠.
6:5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했다'고 했습니다.
그냥 단순한 얘기가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궁핍함은
총체적인 망함 그러니까 '노답의 시대' 라는 뜻입니다. *답이 없음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 그 얘기를 뛰어넘어서,
정치, 경제, 문화, 국방, 산업 모든 면에서 이제 올 스톱 됐다고 말이에요.
이제 뭐 가동할 게 없는 거예요.
그걸 여기서는 딱 한 단어로 '궁핍함'이라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6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반응이 나오는가 한번 보십시다.
6:6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제가 사사기 강해를 쭉 10강까지 해오면서
'사사기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이 자주 반복이 되는데
단 한 번도 진정한 돌이킴이나 회개로 나간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이 '부르짖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요?
그냥 본능적으로 아프니까 힘드니까!
자기들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나올 정도로 소리를 지른 거예요.
고통스러우니까! 이건 참 회개가 아닙니다.
그러자 이제 하나님의 첫번째 반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첫번째 반응 볼까요?
6: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9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런 겁니다. 그들이 막 소리치고 부르짖고 못 살겠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첫 번째 꺼내신 반응이, 한 선지자를, 하나님의 사자를 세우세요.
그리고 그 사자의 입에서, 옛날 박제되었던 역사의 한 컷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합니다.
'과거에 내가 너희들을 애굽에서 꺼내고, 시내산에 불러 올려서, 모세를 통해 언약을 세웠다.
그리고 언약의 말씀을 주었다. 그리고 40년 동안을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게 하셨다.
그리고 그 말 안듣던 질긴 너희들의 악함을 무릅쓰고,
하나님이 너희들을 가나안 땅에 들이셔서,
너희들이 칼로, 군대의 숫자로 이길 수 없었던 대적을 승리케 했지 않느냐?'
이렇게 그 과거의 역사 한 컷을 상기시키게 하면서,
딱 마지막에 결론이 뭐냐 하면 '그러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다' :10
즉 '나와 함께 시내산에서 맺은 그 말씀이 기초된 언약을 깨버렸다' :10
그런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전했어요.
이 얘기를 왜 할까요?
사실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짜 고치려면,
그들이 우리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정확한 지적과 진단이 있어야 돼요.
우리가 병원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진단입니다.
어디가 잘못됐는지, 왜 이 비명소리가 나오는지, 왜 배가 아픈지, 왜 어지러운지,
그 원인을 파고들어서 진단을 한 다음에,
째서 수술을 하든지, 약 처방을 하든지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한 사자(선지자)를 보내셔서,
과거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을 비명 지르니까... 혹시 이러면 쉬울 거 아니겠어요.
'아니 그 고통을 없게 해 줄게. 내가 돌봐줄게. 내가 대적을 물리쳐 줄게.
먹을 거 줄게, 입을 거 줄게!' 이렇게 접근하지 않으세요.
환부를 그대로 둔채, 그 위에 흰 붕대만 감지 않으세요.
대신에 '너희들이 그 비명소리에만 집중하지 말고,
그 비명이 터져 나오도록까지,
너희들의 공동체의 진짜 들춰내고 싶지 않은 핵심 문제가 뭔지 아니?
그건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다는 것이야!'
즉 '하나님의 언약에서, 하나님의 목소리에서 떠나 있었다'
그 얘기를 정확하게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는 겁니다.
문제점을, 병명을, 진단을 정확하게 내리신 거죠.
그런데 이제 오늘 본문 11절을 한번 볼까요?
6: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백성들이 선지자로 부터 그 지적을 들었어요. :8~10
지금 그런데 여기 어떤 백성들의 대꾸도 반응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앞서 살펴본 삿2장 같은 경우에는,
전쟁에 패하고 나서 그들이 대성통곡을 하고, ‘보김’이라는 데서 울었어요.
울면서 제사도 드렸어요.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을지라도, 그들은 제사도 드릴 여력이 있었고, 또 울기라도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이런 여호와의 사자가,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서,
이스라엘의 환부를 들춰내고 지적을 했는데... 이스라엘은 아무 반응이 없어요.
이게 진짜 무서운 거죠.
이제는 그런 의욕마저도 무너진 겁니다. 그냥 텅 빈 눈빛, 잃어버린 의욕...
이게 제일 무서운 거죠.
◑전혀 의외의 장소, 의외의 사람을 주목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역사의 카메라는, 이런 어떤 위기일수록 중심 인물을 찾고,
그 중심 인물에 카메라 렌즈를 들대는 게 아니라,
조용히 저 시골 어느 농가에 이상한 장면... 한 창고에 렌즈를 갖다 댑니다.
그게 오늘 본문 11절이에요.
6: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거기에 기드온이라는 사람이 포도주 짜는 틀 안에서 밀타작을 하고 있어요.
이런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왜 카메라는 조명할까요?
자, 포도주 짜는 틀과 밀타작은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매치입니다.
왜요? 포도주 짜는 틀은.. 바람이 불어서 이물질이 들어가면
포도주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철저하게 밀폐된 공간에서 주로 짭니다.
큰 나무통에 포도열매를 넣고, 발로 밟아서 즙을 짜죠.
그래서 그 장소가 넓을 수가 없어요. 좁아요.
반대로 밀을 타작하려면.. 사방이 툭 터진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넓은 마당이나
나즉한 둔덕에서 밀 타작을 합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어와서 겨가 다 날아가도록 하죠.
그런데 기드온은, 밀 타작을, 세상에 세상 좁은 공간인 포도주 짜는 틀 안에서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그림을 여러분이 머릿속에 한번 그려보시면,
그 시대의 문제가 어디 있는가를 가장 잘 드러내는 한 컷짜리 그림입니다.
원래 포도주는 기쁨과 풍요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쁨과 풍요를 드러내는 포도주 짜는 틀 안에서,
그는 두려워서 미디안 사람들이 이것마저 뺏어갈까봐 걱정이 돼서,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숨어서 타작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얼마나 언발란스입니까?
그런데 이 언발란스한 한 컷짜리의 그림이, 그 시대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거예요.
자, 그러면 우리가 이 그림을 보면서, 거기에 주인공이 기드온입니다.
주의 사자가 그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무슨 얘기를 하는가 잘 들어보세요.
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큰 용사여!’
아니 폼나게 막 무술을 연단하고, 적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때,
적을 막 용맹스럽게 물리치고 있을 때,
그때 기도온을 향해 ‘큰 용사여!’ 그러면 체면이라도 서는데,
지금 누가 자기를 볼까봐.. 이 밀마저 약탈해 갈까봐...
잔뜩 쫄아가지고 아무도 안 보는데 조그만 공간에 숨어서
포도주 짜는 틀 안에서 숨어서 답답하게 이러고 있는데,
주의 사자가 갑자기 나타나가지고 ‘큰 용사여!’하고 부르니, 이게 얼마나 난처한 상황입니까?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가장 부적격자를 선택하십니다.
전쟁에 나서기에는,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기에는
가장 부적격자를 주목하셔서 그를 역사의 전면에 드러내세요.
▲그러면 여기서 ‘큰 용사여!’ 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창조적 선언입니다.
다시요.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적 선언이에요.
‘내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미래의 역사를 반드시 이렇게 만들겠다’ 그러면서 누구를 불러요?
기드온을 불러요.
근데 기드온은 거기에 적합한 자가 아니에요.
그는 나중에 ‘나는 못 하겠다’ 그래요.
‘내가 그걸 어떻게 하냐고? 나는 작은 자 중에서도 가장 작은 잔데’
6: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적용/ 자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세 가지 명제가 있습니다.
1) 첫째, 하나님의 부르심이 자격이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심이 자격입니다!
‘내가 얼마나 잘 준비됐나’ .. 이것이 지도자의 자격입니다.
내가 얼마나 실력이 있고,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가 ... 자격이 아니예요.
믿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이 자격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이게 지도자의 모든 자격요건을 이긴다 라는 말이에요.
2) 두번째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심이.. 하나님의 종의 자격입니다.
주의 사자가 이런 얘기를 해요.
12절을 잘 보시면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 두 번째 자격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해 주신다’는 약속이.. 두 번째 자격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최고의 자격이에요.
그래서 다윗도 인생의 황혼녘에 지난 험난했던 세월을 반추하면서 시편 23편을 쓰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승천하시면서 불안해 떠는 갈릴리 사람들, 제자들에게 뭐라고 약속하셨어요?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마28:20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도, 오셨던 이름이 뭐에요?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믿습니다. 그게 자격이에요.
‘내가 얼마나 금수저냐? 얼마나 금수저답게 준비를 하느냐!’
그게 자격이 아니고
첫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자격이에요.
둘째는 하나님의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하심’이 자격이에요. 믿습니까?
셋째는 ‘절망의 힘’이에요. 이게 기드온이 쓰임받았던 자격이에요.
3) 세 번째는, '절망의 힘'을 가진 것이, 하나님의 종의 자격입니다.
‘절망의 힘’이란 무엇인가요?
자아가 죽을 때(자기 인생을 포기할 때) 나오는 괴력 같은 힘인데요.
자기가 죽음으로써, 하나님만 간절히 전적으로 의지하기에.. 얻는 힘입니다.
6: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그러니까 속이 베베 꼬인 기드온의, 전형적인 투정입니다. 하나님께 항의하는 거죠.
‘아니! 하나님이 그렇게 출애굽 때처럼 우리와 함께 하셨다면, 우리를 인도하셨다면,
우리의 모든 것을 채워주시고 도와주셨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미디안의 손에 이렇게 피폐해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정말 지금도 함께하고 계시는 겁니까?
혹시 역사 속에 정말 박제된 하나님은 아닙니까?’
막 자기 속에 있는... 말 같지도 않은 얘기를 막 쏟아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주 신비한 얘기를 하나 합니다.
6: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4절은 매우 중요한 얘기를 하나 해요.
‘이 너의 힘으로’ 그랬어요.
"Go in this your strength and deliver Israel from the hand of Midian. Have I not sent you?"
과연 여기서 말하는 ‘이 너의 힘’이,
기드온의 힘을 얘기하는 걸까요? 아니에요.
표면적으로는 ‘기드온의 힘’을 얘기하는 듯 보입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이 너의 힘’은, 이걸 어떤 학자들이 이렇게 해석하죠.
‘절망의 힘!’
지금 기드온의 넋두리를 들어보세요. 좌절해서 하는 넋두리거든요. :13
절망해서 하는 내뱉는 푸념이거든요.
△이거는 픽션인데, 설교의 도움을 위해서 가상으로 만든 얘기니까, 진짜로 듣지는 마세요.
제가 어느 날 마포대교를 걷고 있었어요. 인도로 걷고 있는데,
어느 형제가 한참 남쪽 방향으로, 흘러가는 강물을 쳐다보다가 드디어 신발을 벗어요.
그러곤 이제 한쪽 발을 그 난간에 걸치고, 이상한 행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얼른 뛰어가서 그 낯선 형제를 붙잡았어요.
‘이러면 안 된다고, 왜 이러냐고? 빨리 내려오라고’ 해서 그의 다리를 붙잡았어요.
그리고는 더 엉엉 우는 마포대교 다리 밑에, 형제를 데리고 가서 앉혀놓고
‘무슨 일이 있냐고? 어떤 일이 있었냐고,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그 낫천 형제는 막 성질을 내면서 ‘날 왜 붙잡았냐고.. 내버려두지 왜 붙잡았냐고?
나 책임질 거냐고?’ 하면서 자기의 넋두리를 막 쏟아내요.
‘아버지는 어떻고.. 어머니는 어떻고..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집안이 흙수저에다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뭐 견줄만한 것도 없고...’
막 악을 써가면서... 자기 넋두리를 쏟아내요.
그래서 제가 화가 나가지고, ‘야 이놈아, 그렇게 소리 지를 힘을 가지고, 열심히 살면 되지..’
그렇게 넋두리를 하며, 하소연하며 소리 지르는 힘이... 정말 힘이에요?
그게 바로 ‘절망의 힘’이에요. 절망의 힘!
△베드로가 물에 빠져들어갈 때 했던, 자기도 모르게 본성적으로 터쳐나왔던 외마디 비명이
뭐였죠? ‘주여, 주여, 나 좀 살려주세요!’
베드로가 빠져들어갈 때 ‘뭐라고 소리질러야 체면이 설까?’ 그런 생각 했을까요?
아니, 지금 당장 죽어가는 마당에, 체면이 어디 있어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이게 절망의 힘이에요. *죽을 때 나오는 안간 함
여러분, 기드온은 지금 좌절해 있어요. 희망이 없어요.
주의 사자가 얘기하니까, 그 분한테 ‘막 막 뭐라 그래요.’
이걸 ‘절망의 힘’이라고 합니다. 기드온이 완전히 좌절했다는 거죠.
완벽한 나락에 떨어졌다는 겁니다. 신약적 표현으로 ‘자아의 죽음’을 경험한 것입니다.
여기 부딪혀 봐야.. 이 지점에 인간은 부딪혀 봐야... 비로소 하나님을 대면할 수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야곱의 얍복강의 씨름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넋두리를, 그 절망의 절규를 다 들으신 다음에,
촌철살인의 표현을 하나 쓰시는데 보세요.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이게 무슨 얘기죠?
완전히 네 자아가 죽은 가운데서, (신약적 표현으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겁니다.
이런 자격을 가진 기드온을, 하나님은 비로소 쓰시겠다는 거죠!
▲마치는 말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자격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부르심 이게 자격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 자격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이 ‘네 절망으로, 네 자아의 죽음으로, 네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해서, 그분의 능력으로 부활해서, 네 사명을 감당하라’ 입니다.
이걸 이름을 붙이자면 ‘절망의 힘’입니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포기할 때, 나오는 힘
‘내가 너를 보낸 게 아니냐?’ 이게 자격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다 어디에 뿌리 내리고 있어요?
‘절망의 힘’에 뿌리내리고 있어요.
인간은 20대나 10대나 처절하게 자기의 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깊이 좌절해야,
그때 십자가의 은혜가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처지 형편, 수준을 보지 마세요.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 자격이고,
그럼에도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 자격이고,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 자격인데
그 세 가지의 자격은 어디에서 꽃 피워진다고요. 절망의 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