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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1장 십자가와 반대의 원리

LNCK 2026. 7. 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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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니 4] 십자가와 반대의 원리 (1:1-5)2026.4.3   Youtube 

 

◈십자가와 반대의 원리          룻1:1-5, 창26:12~23      2026.04.03. [데스티니 4강]

 

오늘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을 기념하는 성금요일입니다. Good Friday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 삶 가운데에 충만한 그런 날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데스티니에 대한 이야기 중에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반대의 원리'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룻기에 보면, 데스티니의 중요.한 원리를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방금 말씀드린 '반대의 원리'입니다.

 

모든 성경은 그 성경에 기록된 이유가 있습니다.

창세기는.. 모든 것의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고,

출애굽기는.. 구원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고,

레위기는.. 그러면 율법(제사법, 거룩)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고

이렇듯이 모든 성경은 그 성경이 기록된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죠.

 

▲자, 그렇다면 룻기는 뭘까요? 룻기가 왜 기록됐을까요?

사실 룻기는 좀 쌩뚱맞은 책입니다.

그 앞에 나오는 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이런 것들은 알겠어요.

왜 기록됐는지가 분명한데, 룻기는 읽다 보면, 생뚱맞게 ‘이게 여기 왜 들어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한 모압 여인의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가 성경으로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지요. 룻기가 기록된 이유가 뭘까요?

룻기의 맨 뒤에 보면 마지막 절에 나옵니다.

 

마지막 절에 뭐라고 그러냐면 ‘룻은 보아스에게서 오벳을 낳았더라’ 이렇게 하고 끝납니다.

오벳이 누구지요? 이새의 아버지.

이새는 누구죠? 다윗의 아버지.

그러니까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인 거죠.

 

그러니까 룻이 누구냐 하면 다윗의 증조할머니인 거예요.

자, 그러니까 이 룻기가 기록된 이유는 뭐냐면

다윗이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알려주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룻의 데스티니는 뭐냐 하면.. 오벳을 낳는 거예요. 이게 룻의 데스티니입니다.

오벳을 낳는 것이 룻의 데스티니예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뭐냐 하면, 이 룻은 아들을 낳아야 되는 존재인데,

룻기가 어떻게 시작되냐면 다 죽는 걸로 시작합니다. *반대로

 

남자들의 씨가 마르는 것으로 시작을 해요.

그 당시에는 형사취수제도 라는 것이 있어서,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형제가 대를 잇게 해주는 그런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론과 기룐이 둘 다 죽었어요. 그래서 대를 이어줄 형제가 없게 됐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남은 가능성이 뭐냐 하면,

그 시어머니가 시아버지가 늦둥이를 낳는 거예요.

늦둥이를 낳아가지고서 얘를 키우는 거예요.

그게 마지막 가능성인데 그것까지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왜냐면 시아버지까지 죽었어요.

 

그러니까 그 집안에는 남자의 씨가 셋 다 마르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낳아야 되는 데스티니가 있는 룻인데, 절대로,

어떤 아이도 낳을 수 없는... 그 이야기로 룻기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룻기 1:11~13절에 보면 시어머니 나오미가 이렇게 얘기하죠.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그렇죠. 이제 그 얘기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 마지막 가능성이 뭐냐면

나오미가 아들을 낳아서, 그 아들이 오랜 시간 동안 키워서 대를 잇게 해주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도 지금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그 시아버지마저 죽었기 때문에.

 

시아버지가 죽었고, 나오미는 이미 늙었고, 그래서 지금 아들을 낳을 수 없다.

그러니까 너희는 대를 이을 길이 없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단이 아예 씨를 말려버린 겁니다.

룻을 통해서는 절대로 후손이 나오지 못하게 된 거죠.

룻의 데스티니는 오벳을 낳아야 되는데, 이제 오벳은 고사하고,

그 어떤 자녀도 낳을 수 없도록 철저히 막아버렸습니다. 이게 이제 <반대의 원리>예요.

*룻이 그런 데스티니가 없었다면, 그 삶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겁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게 데스티니죠.

그런데 원수마귀도 우리의 데스티니를 압니다.

그렇죠. 원수마귀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를 향한 계획이 뭔지를 알아요.

 

그리고 이 원수마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싫어할 뿐만이 아니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그 데스티니의 문을 막아버려요.

그래서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도록 하는 거죠.

 

▲그런데 십자가의 능력은 뭐냐 하면,

십자가의 원리는.. 그렇게 막아버린 것 같지만, 복음 안에 들어오는 순간,

그것이 오히려 역전이 된다는 거예요.

막아버렸기 때문에, 더 강력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 십자가의 반전의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여러분,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능력이에요. 아멘이십니까?

항상 십자가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능력이에요. 아멘!

 

그래서 십자가는 약한 자들의 소망이고, 가난한 자들의 희망인 것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우리의 모든 가난함과 우리의 모든 저주들을

십자가가 모두 축복으로 바꾸기 때문에 그래요.

 

그전에도 제가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십자가는 ‘곱하기 마이너스 1’이에요.

그래서 저주가 크면 클수록, 십자가를 통과했을 때, 축복이 더 커지는 거예요. 할렐루야!

 

우리의 모든 저주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감당하셨어요.

다 감당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모든 저주는 예수께서 다 도말하셔 버렸어요.

그래서 이 십자가를 통과하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믿음으로 취하는 사람들은

그 저주가 다 도말되고 오히려 그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는 줄로 믿습니다.

이게 십자가의 원리에요. 

 

그래서 우리의 데스티니는 여러분, 사실은 우리가 잘하는 것, 또 우리가 은사가 있는 것,

그런 것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가장 연약한 것, 저주 같아 보이는 것, 안 될 것 같은 것,

씨가 말라버린 것 같은 것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그렇죠. 룻기에서 여러분, 룻에게 가장 불가능한 일이 뭘까요? 자녀를 낳는 거 아니겠어요?

남편이 없습니다. 시아버지도 없고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 룻의 상황에 들어가 보면, 가장 불가능한, 가장 안 되는 게 뭐예요?

자녀를 낳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십자가를 통과했을 때 어떻게 돼요?

룻이 오벳을 낳는 거잖아요. 이것이 '반대의 원리'인 줄 믿습니다.

 

▲이것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데스티니를 이해할 때도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는 원리입니다.

 

그런데 나라와 민족의 데스티니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원리가 뭔가 하면,

사실은 반대의 원리예요. 

 

예를 들어서... 저희가 이제 중동 요르단(선교지)에 자주 왔다 갔다 하는데,

요르단 나라의 데스티니가 뭘까요?

 

요르단의 데스티니는, 감사하게도 성경을 보면 나와 있습니다.

요르단은 암몬, 에서... 그런 사람들의 자손이잖아요.

그러니까 에서의 후손이고, 암몬과 모압의 후손이고.. 이런 이방 사람들이죠.

 

성경에 보면 이 사람들에 대한 예언이 다 나온단 말이에요.

에돔에 대한 예언도 나오고, 암몬에 대한 예언도 나오고, 모압에 대한 예언도 나오고...

개인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후손으로 만들어진 민족에 대한 예언들이

쭉 나오죠.

그래서 사실은 성경을 찾아보면, 이 사람들의 데스티니를 당연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성경에 이 사람들에 대한 예언을 찾아보면

좋은 예언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좋은 예언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암몬도 그렇고, 모압도 그렇고, 에서도 그렇고 거의 다 저주입니다.

다 저주이고, 쓸만한 예언이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오래전에 제가 요르단에서 요르단 사람들을 대상으로 집회할 때,

요르단의 데스티니에 대한 설교를 한 적이 있었는데,

요르단의 데스티니에 대한 설교를 하려니까, 이제 성경을 다 뒤졌죠.

뒤져서 에서에 대한 예언, 암몬에 대한 예언, 모압에 대한 예언들을 다 찾아가지고

쓸만한 거 하나라도 찾으려고 했는데, 한 개가 없더라고요.

 

성경의 예언들이 다 저주이고...

그래서 이 사람들이 구약성경을 읽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더라고요.

 

구약에 자기 민족이 등장하긴 하는데, 전부 저주받은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신약만 주구창창 읽고 있지, 구약을 안 읽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또 반대예요. 구약만 주구장창 읽고 있지, 신약을 안 읽어요.

그래서 제가 ‘이런 저주를 가지고, 어떻게 데스티니에 대한 설교를 할까?’

그랬는데... 십자가의 원리를, 그때 하나님께서 보게 하신 거예요.

 

‘아,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거구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게 십자가의 능력이구나!’

이게 사실은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이 민족은 소망이 없습니다.

그냥 저주 속에 끝나는 거예요.

 

근데 성경에 뭐라고 그랬냐면, 구약에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받은 자라’고 했거든요.

근데 신약에 넘어오면 ‘그 나무에 달린 이가 우리를 구원하는’ 축복이 되십니다. 아멘!

그게 이제 십자가의 원리죠.

 

그래서 구약에서는 맞아요. 저주받은 자예요.

그리고 에서에게 뭐라고 그랬냐면 ‘동생을 섬기는 자가 될 거라고’ 했거든요.

‘너는 동생의 종이 될 거야’ 이렇게 얘기했는데.. 저주죠.

 

근데 신약에서는 여러분, ‘섬기는 자가 큰 자라’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사실 ‘에서’에게는, 큰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진 거죠.

동생을 섬길 수 있는... 또 다른 민족을 섬길 수 있는...

그런 데스티니를 하나님 주셨다는 거예요. 이런 게 이제 반대의 원리입니다.

 

▲우리 민족도 비슷합니다. 우리 민족은 한민족의 데스티니는...

당연히 데스티니는 하나만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중에 중요한 데스티니 중에 하나는 당연히 ‘기도’입니다.

기도를 한국 사람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습니다.

 

요즘은 이제 기도가, 한국교회에서 정말 많이 시들해 졌는데,

우리 윗세대까지만 해도 정말 무섭게 기도하신 분들입니다.

진짜 무섭게 기도하신 분들이고... 그런데 한국인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은 정말 찾기 힘들어요.

 

한국이 온갖 종류의 기도를 다 만들지 않았습니까?

무슨 수요기도, 금요기도, 철야기도, 산기도, 뭐 금식기도, 새벽기도...

하여간 이름이 붙어있는 모든 기도 모임은, 전부 한국이 원산지입니다.

하여간 기도에 대해서는 유별나요.

 

그리고 한국 사람처럼 그렇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민족은 정말 찾기 힘듭니다.

정말 찾기 힘들어요. 그래서 오죽하면 미국에서 그 통성 기도를

영어로 ‘한국식 기도’라고 부르잖아요. 코리안 스타일 프레이어라고 하죠.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부르짖으면서 기도했는지...

하여간 이렇게 부르짖는 기도를 Korean style prayer 그렇게 부를 정도입니다.

 

△제가 2012년 12년 즈음에, 프랑스에서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어요.

프랑스 사람들을 대상으로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프랑스 목사님들 사역자들이었어요.

 

근데 그때 이제 주제가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기도는... 기도에 대해서 배우는 것보다, 기도를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강의는 짧게 하고 난 다음에

‘우리 기도를 합시다. 제가 한국식 기도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한국식 기도를 가르쳐 드리기 시작했어요...    주1)

 

결국 '주여 삼창 통성 기도'를 전수해 주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상하다, 이게 한국 사람은 되는데

왜 이게 프랑스 사람들은 안 될까?' 그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하나님께서 단어 하나를 딱 떠오르게 하시는데 뭐냐면,

'한국 사람들이 통성으로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한이 많아서 그런 거야' 이런 말씀이었어요.

'한이 많아서 그런 거야...' 생각해보니까 맞아요.

 

이 '한'이라는 것의 정확한 정의가 뭐냐면, '역사적으로 축적된 슬픔'이라는 뜻이죠.

한국의 역사를 보면 전쟁이 약 8백번 정도 있었대요.

 

그런데 이게 아주 엄격하게 잡은 거고,

많게 잡으시는 분들은 1500번이라고 그런 분도 있고,

1600번이라고 그러는 분도 있고... 하여간 굉장히 많은 전쟁이 있었다는 거예요.

거의 1000번 가까운 전쟁이 있었는데,

 

그것을 이렇게 연대기를 쭉쭉 써보면, 전쟁이 없었던 세대가 없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거의 없었어요.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라는 것은,

6.25 이후에 태어나신 지금 젊은 사람들, 이 세대가 한국 역사상 거의 첫 번째 세대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거의 없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전쟁이라는 것이 어떻습니까? 굉장히 고통스러운 거죠.

지금도 우리가 전쟁의 조기 종식을 위해서 기도했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참 고통스럽습니다.

 

사람들이 죽잖아요. 남편이 죽고, 또 아들이 죽고,

또 옛날 전쟁은 이렇게 여자들은 또 끌려가잖아요.

여자들은 또 포로로 끌려가고... 이게 그 어떻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들이

이렇게 쌓여가죠. 근데 그게 한국은 계속된 거예요.

 

계속 적어도 800번 이상 쌓이고 또 쌓이고 또 쌓이고... 그래서 이것이 민족성이 됐습니다.

그걸 이제 '한'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 민족성은요. 굉장히 슬퍼요.

한국의 전통 가요들을 들어보면, '아리랑' 이런 거 들어보면,

가사가 뭔지도 모르는데 눈물이 나죠. 아리랑을 부르고 있으면...

 

그 전에 제가 유튜브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아리랑을 부르니까

외국 사람들이 울더라고요. 이 사람들이 가사를 알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슬픔의 정서가 이제 전달이 되는 거죠. 이게 이제 한국의 민족성이 된 겁니다.

그걸 '한'이라고 부르는데, deep sorrow, Han

 

사실은 지금 젊은 세대들은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젊은 세대라고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조부모, 부모 다 그 정서 속에서 그 정서를 가지고 살아갔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밑에 있던 자녀들이라고 해서 자유롭지 못해요.

 

그래서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안에는 '한'이라는 정서가 있습니다.

이 한 때문에요. 한국 사람들은 작게 기도하는 게 안 돼요.

기도하면 기도 소리가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 할머님은 평생 기도하셨던 분이세요. 평생 기도하셨던 분인데

저희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 기도 소리를 들어보면 한 풀이가 그렇게 많아요. 신세 한탄...

 

그래서 '우리 남편이 어땠고...' 막 이러시던데, 우리 할아버지가 사고를 좀 많이 치셨거든요.

'우리 남편 때문에...' 그 기도가 가장 많으셨고,

또 한 번은 시어머니한테 받았던 구박까지 끄집어내셔서 '그때 어쩌고 저쩌고..'

이런 이게 기도인지 한탄인지... 그게 이제 기도인 거죠. 한국의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소리가 작아질 수 없는 거예요. 기도하다보면 기도가 커지게 돼 있습니다.

 

사실은 '한'이라는 것은 축복은 아닙니다. 저주지요.

전쟁이 어떻게 축복이겠습니까, 당연히 저주지요.

 

그런데 이 저주가.. 십자가를 통과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거에요. 이게 '반대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시지요. 대제사장 중보자신데 어떻게 중보자가 되셨냐면

우리의 모든 고통을 친히 경험하셨어요. 친히 체휼하심으로 중보자가 되셨어요.

 

그러니까 중보하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뭐냐 하면, 체휼할 수 있는 능력이에요.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인데, 우리는 그 능력이 있는 거예요.

왜요? 우리도 아파 봤거든요. 우리도 힘들어 봤거든요.

 

제가 몇 해 전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났을 때,

그때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한 특별 헌금을, 한국 교회에서 모금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집행하는 일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불과 얼마 안 되는 시간 안에,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가 모이더라고요.

 

그러면서 '야, 한국 사람들은 긍휼의 마음이 있구나.'

그냥 누가 아프다 그러면, 마치 내가 아픈 것 같이... 공감하는 거예요.

 

왜요? 우리도 당해봤거든요. 800번을 당해봤기 때문에

외국에서 전쟁이 나면 '저거 힘들 텐데...' 그 생각이 올라오는 거죠.

 

그래서 맞아요. ''이라는 건 저주인데

100, 120년 전에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고,

그 복음을 통해서 이 땅에 십자가가 세워집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과하고 나니까, 이 저주, 슬픔, 고통이...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이 되죠.

이게 반대의 원리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이삭을 미워했던 원수들이, 이삭의 우물을 다 막아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요? 아브라함 때 팠던 그 우물에서 물이 나오면, 이삭이 잘 되거든요.

그럼 원수 입장에서는 안 좋은 거죠.

그래서 이삭이 망하라고, 그곳의 모든 우물을 막아버립니다.   창26:12~23

 

여러분 '나의 데스티니'가 뭔지 궁금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잘 안 풀리고, 힘들고, 한이 되고...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열정이 있는, 그 막혀버린 우물을 찾으셔야 돼요.

막혀버린 우물을 찾아서 (다시 샘솟게 하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데스티니일 수 있습니다.

 

뭐 다는 아니에요. 어떤 경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은사를 사용하실 때도 있어요.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데스티니에 대한 것들을 살펴볼 때 오해하는 게 뭐냐면,

내가 잘하는 거, 잘 풀리는 거, 내 은사... 그런 것만 데스티니라고 생각하는데,

다 그렇진 않다는 거예요.

 

그렇게 사용하실 때도 있지만, 전혀 뜻밖의 곳에 우리의 데스티니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가능성을 기억하셔야 돼요.

 

그래서 우리 삶 가운데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원수가 막아 놓은 것 거기에...

나의 데스티니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내 인생에서 두려워하는 게 뭔지,

그래서 원수마귀가 끈질기게 막으려고 하는 게 뭔지,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요. 원수마귀는 우리 데스티니의 우물을 막아버리려고 합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개인의 경우에는 심지어 태어날 때부터 데스티니의 우물을 막아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우리의 데스티니는, '반대의 원리'를 통해서 찾아야 될 때도 있습니다.

 

꼭 우리가 잘하는 것, 은사 그런 것만이 아니라

어떤 때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

그래서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정말 불가능해 보이는 것, 막힌 우물,

여기에 우리 데스티니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나라와 민족도 마찬가지고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열린 기회, 우리가 잘하는 것, 거기에만 데스티니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막힌 곳, 어려운 곳, 닫힌 것 같은 곳, 마치 저주 가운데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곳,

거기에 어쩌면 우리의 데스티니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어디에 가야 우리의 데스티니를 찾고 번성할 수 있습니까?

이 데스티니는 여러분, 번성하는 거예요. 번성하는 것!

 

왜냐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계획은 뭐예요? 복을 주시는 거거든요.

'우리를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하신 게.. 복 주신 거예요.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복은 뭐냐면 번성하는 거예요. 풍성해지는 거예요. 많아지는 거예요.

영혼육이 다 풍성해지는 게 복입니다. 아멘이십니까?

 

그래서 우리가 어디에 가야 번성합니까?

막혀있는 우물, 안 풀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것,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계속 열정이 있는 것... 거기에 가야 됩니다.

거기에 우리의 데스티니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룻의 인생이 그랬죠.

룻의 데스티니는 잉태하여 출산해야 되는 존재인데, 사단이 어떻게하죠?

잉태의 우물을 막아버려요. 남편뿐만이 아니라 그 집안의 모든 남자의 씨를 말려버립니다.

 

룻의 데스티니는 오벳을 잉태하여 낳는 거거든요.

그래서 사단은 그 데스티니의 우물을 막아버리죠.

룻기가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잖아요.

 

▲자 그런데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될 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셔서 우리 안에 심어 놓으신 데스티니의 씨앗을

사단이 막을 수 없다는 거예요. 아멘이십니까?

 

그렇지만 십자가로... 그 우물을 다시 여신다는 거예요. 이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물을 막는다고 하는 건 뭐냐 하면, 저주지요. 왜요?

그 우물에서 우리의 데스티니가 (샘물처럼) 올라와야 되거든요.

 

데스티니가 올라온다고 하는 건 뭐라고 그랬어요? 풍성해지는 거죠. 복을 주시는 건데,

복의 근원을 막아버렸단 말이에요. 이게 저주란 말이에요.

그런데 십자가의 능력은 뭐냐면 이 막힌 저주를 여는 거예요. 저주를 깨는 거예요.

 

모든 저주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친히 감당하심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어떠한 저주도 우리 삶 가운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신 게.. 십자가예요. 아멘.

 

그래서 사단은 우리의 데스티니의 우물을 막으려고 하지만,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거예요.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우물을 여는 줄로 믿습니다.

오히려 그 사단의 공격을 믿음으로 뚫고 나올 때,

오랜 고통과 좌절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돼서,

오히려 더 강력해지고 더 순전해지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에 나타나는 패턴입니다.

예수의 데스티니를 아는 사단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죠.

 

또 총리가 되어야 될 요셉의 데스티니를 아는 원수는,

요셉을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룻의 데스티니를 아는 사단은, 그 집안의 모든 남자의 씨를 말립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요셉의 총리 본능이 사라진 게 아니고요.

그런다고 룻이 오벳을 출산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그런다고 예수의 구원사역이 멈춰진 것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오히려 원수가 막아버린 우물이... 그들의 데스티니를 더 강력하게 하고,

더 진짜가 되게 하는 연단의 도구가 됐습니다. 아멘.

 

그래서 이 데스티니에는 '반대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로마서에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5:3~4

 

사단이 막아버린 우물, 민족의 저주처럼 여겨지던 그런 슬픈 역사,

그런데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하기 시작해서 어떻게 돼요?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죠.

 

민족의 한이, 오히려 민족의 데스티니를 이루는 놀라운 동력이 됩니다. 아니 이게 십자가죠.

사단은 우리를 저주하려고 우물을 막아버립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과해서, 그 우물을 통과하고 나면,

오히려 더 강력하고 더 순수한 그런 질 좋은 물이 나오는 거예요.

더 질 좋은 물이 나오는 거예요.

 

▲제가 간증을 좀 할게요. 저의 데스티니는 뭘까요?

예수를 만나고 나서도... 저는 목사만은 제 데스티니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딴 거는 다 해도, 목사는 내 길이 아닐 거야'

목사는 저의 모든 가능성 중에 제일 마지막이었어요. 그렇죠.

 

말을 심하게 더듬는 사람이 무슨 목사를 하겠어요? 딴 거는 모르겠어요.

제가 예수를 만나고 성령 받고 나니까, 주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열망은 있었습니다.

'난 어떻게하든지 주를 위해 살 거야.. 그런데 목사는 아니야!'

 

그러니까 목사 말고, 주를 위해서 살아야 되니까,

'뭐 내가 할 수 있는 그런 게 있겠지...' 그렇게 살고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제가 말을 심하게 더듬으니까, 저희 어머님이 저를 웅변 학원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웅변을 배우게 하셨는데, 뭐 별로 효과는 없더라고요.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 그거 할 때는 돼요. 그거는 더듬지 않아요.

그거 할 때는 되는데, 그 외 다른 말은 안 돼요. 그게 이상하더라고요.

 

제가 한 2년 다닌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거 할 때는 딱 되는데, 그거 말고 다른 말은 안 돼요.

그래서 한 2년 배우다가 이제 집어치웠습니다. '이거 학원에 다녀도 안 되는구나'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서 제가 목사가 됐습니다.

마침내 데스티니의 길에 들어서게 됐고,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제가 인생 첫 설교할 때, 하나님께서 말더듬을 완전히 고쳐주셨어요.

 

△자, 그런데 설교를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그러는 거예요. 목사님은 딕션이 좋으시대요.

딕션이 뭐냐 하면, 말이 뭉개지지 않는 거죠. *발음, 말의 전달력

 

지금은 목이 약간 가가지고 이런데, 목은 갔지만 딕션은 좋죠.

딕션이 안 좋다고 하는 건, 말이 뭉개져서,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는 거예요.

 

치열이 안 좋든지, 혀가 짧거나 하면.. 웅얼웅얼하는 건데,

그러면 발음이 정확하게 전달이 안 돼죠.

 

딕션이 좋고, 또 이렇게 막 큰 소리를 내야 될 때와,

그렇지 않아야 될 때를 참 잘 구분하신다는 거예요.

 

사실은 제가 설교를 어디서 배워본 적도 없고, 저는 이제 부목사 생활도 안 했잖아요.

그냥 갑자기 창졸간에 하나님께서 목회를 시작하게 하셔서

담임 집사로 시작해서 바로 설교를 시작했는데,

설교 훈련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어디서 연습해본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없었죠.

 

그런데 제가 젊었을 때, 지금은 경험이 많이 쌓였으니까 그런다고 해도,

35살에 목회를 시작했는데, 그 때도 그런 말을 들었어요.

'목사님, 설교할 때 딕션이 좋으시고요. 전달력이 너무 좋다고'

 

그래서 '내가 왜 그러지?' 그러고 가만히 생각해봤더니

어릴 적에 웅변을 배운 거에요. 그래서 '이 연사 외칩니다.'

웅변 배우면 뭐 하냐면, 이렇게 또박또박 말이 뭉개지지 않게

빠르게 읽는 훈련을 계속 시킵니다. 그래야지 이제 전달을 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 이제 웅변학원이라는 게 다 없어졌지만

저희 때만 해도 웅변학원이 제법 유행이었거든요.

그래서 거기 가면, 이렇게 빠르게 읽는 거, 정확하고 빠르게 읽는 거를 배웁니다.

그러니까 딕션이 좋아지는 거죠.

 

'아 그렇지 내가 2년이나 웅변을 배웠지...'

원수는 여러분한테 좋은 일만 해요. (전화위복으로) 원수는 우리한테 좋은 일만 해요.

 

얘는 막아버린다고, 우리를 저주한다고 우물 다 막았다고 기뻐하는데,

우물을 막아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그 안에 질 좋은 물들이 계속 만들어져요.

 

우물이 열려있으면, 그 우물에 더러운 것도 들어가고, 계속 퍼서 쓰니까 물도 없어지고,

이렇게 되는데... 그거를 막아버리고 나니까 어떻게 됩니까?

결국은 더 풍성하고, 더 깨끗하고, 그런 물이 솟아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반대의 원리'입니다.

원수마귀가 우리의 우물을 막아버렸다고 해서, 여러분 좌절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도 마시고, 염려하지도 마십시오.

 

원수는 항상 뭐해요? 우리 좋은 일만 해요.

걔는 하나님 손바닥 안에 있어요. 우리를 저주한다고...

우물을 막아버리고,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에 만만의 말씀!

우리에게는, 아니 하나님에게는, 십자가라는 비밀병기가 있는 거예요.

 

십자가라는 비밀병기가 있어서, 이 십자가를 통과하게 될 때,

원수가 우리를 죽이려고 하고, 막아버리려고 했던 모든 저주들이

십자가에서 다 소멸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원수가 막아버렸던 일들로 인하여

그 안에 훨씬 더 질 좋고, 깨끗하고, 풍성한 그런 우물물이 솟아나게 되는 거...

이게 하나님의 역사인 줄 믿습니다. 아멘!

 

혹시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 혹시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에

정말 안 풀리는 것이 있습니까? 정말 장벽인 것이 있습니까?

 

'나는 이것 때문에 안 돼, 그때 그 사건 때문에 내 데스티니가 망가졌어!

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 나는 대학을 못 나왔어! 나는 몸이 약해!

나는 말을 못해!' 그렇다면 기억하십시오.

 

그게 어쩌면 여러분의 데스티니의 시작일 수 있어요.

사단이 그걸 알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 우물을 막아버린 것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할 때, 그리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결국 우리는 오벳을 낳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여러분은 결국 오벳을 낳을 것입니다.

언제? 십자가를 통과할 때! 이것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어요.

 

아니, 오히려 막으려 하는 자의 시도가, 더욱 위대한 오벳을 낳게 할 것입니다.

'십자가를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사람들은 데스티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자기가 잘 하는 것'을 주로 생각해요.

자기의 은사를 생각하고,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데스티니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이게 없어서 그렇고,

저게 없어서 그렇고... 이렇게 핑계대기 시작합니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그렇고, 부모를 잘못 만나서 안되고,

여자라서 안되고, 남자라서 안되고,

돈이 없어서 안되고... 아니 여러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것 때문에 우리의 데스티니가 막힌다면, 하나님이 주신 데스티니가 아니죠.

아니 하나님이 주신 데스티니가, 어떻게 능력이 부족해서 막힙니까?

하나님이 주신 데스티니가, 어떻게 상황 때문에 막힙니까?

그럼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 아니죠.

 

만약 나의 재주나 은사가 데스티니의 열쇠라면,

하나님의 능력이 설 자리는 어디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은 아니세요. 우리 하나님은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것,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어 보이는 것... 요셉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은 여러분, 노비로 팔려간 자였고요. 노예도 부족해서 살아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왕의 죄수들이 갇히는 감옥에 갇혔던 자입니다.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거기는 여러분, 한 번 들어가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그 인생은 완전히 끝났어요.

완전히 끝났어요. 막힌 우물이었어요.

 

그런데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서, 요셉을 총리로 만드시잖아요. 아멘!

만약에 여러분,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지 않았다면,

만약에 요셉이 왕의 죄수가 갇히는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요셉은 총리가 됐을까요? 아니 무슨 수로 총리가 되겠어요? 참 역설적이죠?

예, 참 역설적입니다.

 

어쩌면 요셉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어 보이는 일들,

그리고 '이것 때문에 내 인생은 망했어!' 라고 생각하는 일들,

'이것 때문에 내 인생은 더 이상 뭐를 할 수 없어!' 라고 생각하는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것...

그런데 사실은 거기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강점이 아니라, 우리의 약점과 연약함을 쓰십니다.

강점을 쓰시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사람이 교만해져요. 지가 한 줄 알아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질 않아요.

 

그런데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이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야..' 하는 상황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셨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 이건 하나님이 하신 거구나..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이게 우리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이에요.

 

▲뭐 저도 이제 오랫동안 사역을 하고, 오랫동안 목회를 하다 보니까,

은사, 강점, 뭐 은사라는 게

이런 초자연적인 은사 말고, 원래 재주가 많은 사람 있잖아요.

 

말을 잘 한다든지, 설득력이 있다든지, 머리가 좋다든지...

그러니까 그런 은사를 가지고 반짝했던 사람들은, 끝이 좋은 사람이 정말 없어요.

끝이 좋은 사람이 별로 없어요. 왜요?

그 탁월한 은사로 교만이 생기니까요.

 

다 자기가 했다고 그러고,

아무리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그게 피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교만을 피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교만을) 감당할 (이길) 만한 사람은, 그렇게 하실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그렇게 역사하시지 않고,

우리로 '전부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고 고백하게 하세요.

 

'제 공로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건 내가 한 게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라고 고백하게 하세요.

 

그럼 여러분, 노예로 팔려갔다고 해서, 노비로 팔려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시고요.

왕의 감옥에 갇혔다고 해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믿음으로 십자가를 통과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우리의 데스티니를 이루는 지름길이 될 겁니다. 아멘!

 

▲마치는 말

여러분 우리가 어디로 가야 번성합니까? 그렇죠.

막혀있는 우물, 안 풀리는 것, 가능성 없어 보이는 것,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열정과 소망이 있는 것.... 거기로 가야 됩니다.

그것을 포기,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방이 다 막힌 것 같고, 또 남자들의 씨가 다 마른 것 같고,

더 이상 소망이 없어 보일 때... 그때가 오벳이 잉태 되는 때입니다.

그때가 오벳의 잉태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에, 우리는 오벳을 안게 될 거예요.

그러니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포기하지도 마십시오.

분명히 여러분은 오벳을 안게 될 거예요.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는 적이 없어요. 하나님의 계획은 막히는 적이 없어요.

완벽한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가 믿음 안에서 포기하지만 않으면,

우리가 믿음 안에서 포기하지만 않으면, 포기하지만 않으면...

 

요셉이 여러분 만약에 포기했다면 절망해서 끝났어요.

그러면 요셉의 데스티니는 끝났을 겁니다.

 

하지만 믿음 안에서 포기하지만 않으면, 결국 우리 손에 오벳이 들려질 겁니다.

막힌 우물에서 오벳을 낳는 것,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고,

십자가의 반대의 원리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 *성 금요일 저녁 설교

이 놀라운 십자가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풍성하게 역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어나서 같이 기도합시다.

 

△저도 요즘은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진짜 고난이 많습니다.

설교할 때마다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또 다음 주에 새가족 수양해야 되는데

도저히 못할 것 같고, 또 여행을 계속 다녔더니 이석이 심해져가지고서

계속 어지럼증이 와요.

 

그래서 어지럼증이면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 되고 그러면

‘이번 달까지 책의 탈고를 해야 되는데, 이건 언제 하나?’

하여간 고난이 많은데 감사한 게 뭐냐면, 이게 한 번도 짜증이 난 적은 없어요.

그리고 염려가 된 적도 없어요.

 

얼마나 속 편한지 몰라요. 그냥 여러분 믿으셔야 돼요. 믿으셔야 돼요.

우리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세요. 절대 실수하지 않으세요.

우리가 믿음 안에 서 있기만 하면...

 

우리의 죄로 인해서 막힐 수는 있어요. 그러니까 죄가 있다면 얼른 회개를 해야죠.

근데 또 기억나지도 않는 죄 때문에 불안해하진 마세요.

어차피 우리는 다 죄인이고, 기억나지도 않는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은 아니세요.

 

근데 알고도 회개 안 하는 거 있잖아요. 이건 빨리 회개하셔야 돼요.

알고도 해결 안 하는 거, 이건 빨리 해결하셔야 되는데,

그것만 아니라면 하나님은 실수 안 하십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시고요.

 

‘뭐 안되면 여기까지 하고 마는 거고,

그럼 또 그 다음에는 계획이 있으시겠지요.

내가 해야 되는 것만 할 수 있게 하실 거고...’ 이 믿음을 가지셔야 돼요.

 

십자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최악의 상황을 역전시키는 그 능력이 십자가에 있어요.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는 예수께서 다 감당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냥 믿음으로 붙잡으셔야 돼요.

 

‘하나님 실패하지 않으신다. 하나님 실수하지 않으신다’

‘반드시 오벳을 낳을 거다. 반드시 오벳을 안게 될 거다!’ 아멘

이 믿음과 평강 가운데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한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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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전부 다 일어나시라고 그래서 한국식 기도는 발을 이렇게 11자로 딱 벌리고,

양 주먹을 이렇게 불끈 쥐고 큰 소리로 ‘주여 주여 주여’ 세 번 부르짖고 기도하는 거라고

그래서 '주여'가 불어로 '세뇨르' 잖아요.

 

그러니까 세뇨르를 이렇게 세 번을 크게 부르짖고 기도하는 거라고,

그래서 '세뇨르, 세뇨르' 부르시고 기도하시는 거라고,

배에다 힘을 줘야 된다고 그랬더니 알겠대요. 그렇게 할 수 있대요.

 

그래서 실습을 했습니다. 근데요,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소리를 못 질러요.

그냥 이렇게 약하게 '세뇨르' '세뇨르' 정말 이렇게 어색하게 해요.

 

이게 큰 소리를 지르지는 못하고 그냥 '세뇨르 세뇨르' 뭐 이러는 거예요. 되게 어색하게.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렇게 배에다 힘을 주고 크게 소리를 질러야 돼요.

다시 한 번 하자고... 알겠대요. 근데 역시나 안 돼요.

뭐 조금 소리가 커지긴 했는데, 그냥 '세뇨르 세뇨르'

 

그래서 불어로는 안 되나 보다, 그러면 그냥 한국말로 하자고,

'주여, 주여, 주여'

그래서 '주여 주여 주여' 세 번을 크게 부르시고, 소리 내서 기도하자고 그랬더니,

또 알았대요. 그런데 역시 안 돼요. 말만 시뇨르를 한국말로 바뀌었지 똑같아요.

그냥 주여 주여 뭐 이러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 실패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