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수13장 주일설교 (2026-07-05)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수13:1~33 2026-07-05
전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승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얻은 승리를 끝까지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승리를 얻은 것과 승리를 끝까지 만들어 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을 보게 되면,
당시 전쟁이 수많은 섬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미군이 어떤 섬을 점령하면 지도에다가 ‘탈환’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 섬을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식 보고에도 [점령 완료]라고 지도에 표시하고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실제 전쟁은 [전쟁 완료]라고 보고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 남아있는 잔존 세력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일본의 주력 부대는 무너졌지만,
그 가운데 수많은 병사들이 정글, 산속 동굴 속에 숨어 들어갔습니다.
미군은 전투가 끝난 이후에 ‘전쟁 완료’를 선포했지만,
정글에 계속 남아있는 일본군들을, 계속해서 수색해야만 했던 것이죠.
동굴 하나, 능선 하나, 숲 하나까지 샅샅이 뒤지며,
그 가운데 있는 저항 세력들과, 그 이후에도 전쟁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승리는 이미 이루어졌지만, 실제로 승리를 완료하기까지는, 시간이 더욱더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 일본 장교인 오노다 히로 라는 분입니다.
이 분은 루방섬에서 전쟁을 치렀는데, 일본이 백기를 들었는데
그 사실을 모른 채 홀로 그냥 혼자만의 전쟁을 이어나갑니다.
무려 29년 동안 투항하지 않고, 혼자만의 전장을 벌이다가 1975년경 결국 항복했어요. 주1)
승리는 이미 얻었지만, 전쟁은 아직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already not yet
△또한 이 모습은 산불과도 같습니다.
산불이 났을 때, 큰 불길이 잡히면 진화되었다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뉴스에도 ‘주불 진화 완료’라는 말이 뜨게 됩니다.
그런데 소방대원들의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더욱더 긴장합니다.
낙엽 하나, 나무 뿌리 속 하나, 부엽토 속에 남아있는 불씨 하나가
전체의 산을 다시 태울 수 있기 때문에, ‘주불 진화 완료’라는 문구가 뜨긴 했지만,
모든 소방대원들은 마지막 불씨까지 잡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여호수아 13장의 배경은, 이와 같은 이해 속에서 이해하면 쉽습니다.
여호수아 11장 마지막 절에 ‘전쟁의 완료’를 선언했어요.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수11:23
가나안 세력의 주력 부대가 무너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전쟁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완전히 점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정적인 승리와 완전한 점령은 다른 것이죠.
이미 승리를 얻었지만,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이 넘어왔지만,
그 땅에 남아있는 가나안 족속들의 잔존 세력들이 있었어요.
이들과의 전쟁이 이제부터, 13장 이후부터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인 여호수아 13장부터는, 전쟁의 양상이 바뀌게 돼요.
그 앞에 모든 전쟁은, 여호수아라는 리더가 주도한 전쟁이었다면,
이 이후로 벌어지는 전쟁은, 땅을 분배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즉 각 지파들이
자기 기업의 땅에 주변에 남아있는 잔존 세력들과의 전쟁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그림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그와 같은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와 부활로 결정적인 승리를 얻게 되었어요.
죄와 사망은 이미 패배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 가운데 여전한 영적 전쟁이 남아있어요.
잔존 세력인 그 마귀와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공략하고,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 속에 돌아와, 우리를 마구 흔들어 댑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는,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여호수아 13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여전히 남아있는 그 전쟁을 어떻게 끝까지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한 두 가지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1. 첫 번째는, <남은 땅은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만> 합니다.
수13:1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1절을 보니까, 사람으로서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진리를 언급합니다.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성경에 처음 등장할 때, 그는 청년이었고요. 전쟁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맨 처음 등장하게 되었죠.
이때 그는 40세 전후로 추정합니다. 주2)
여호수아는 모세와 함께 시내산을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의 1차 정탐꾼이었어요. 광야 40년을 통과하고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그 이후로 31명의 모든 왕들과 성읍을 무찔러
그 가나안 땅의 전쟁을 끝낸 사람이 여호수아였습니다.
여호수아 덕분에 가나안 땅은 백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그 모든 전쟁을 끝내자, 본문 1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죠.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13:1
여호수아는 안 늙을 줄 알았습니다. 그는 영원히 청년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새 백발을 휘날리고 있습니다.
(*수14:10에 갈렙이 85세였던 점을 감안하면, 여호수아도 비슷한 나이였을 것임)
인생은 마치 봄날의 벚꽃과 같습니다. 피어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바람 한번 불고 비 한번 맞으면 흩어집니다.
인생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도 같아요. 한번 날아가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늘 청년인 줄 알았는데 여호수아가, 어느새 백발의 노인이 된 것입니다.
그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 여호수아 자신이 가장 많이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생의 무게를 통째로 느끼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확인사살을 하십니다.
13:1b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자기가 나이 많이 든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데, 누군가가 찾아와서 '나이 많이 드셨네요'
라고 말하면, 마음이 참 그렇습니다. 알고 있는데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저도 담임 목사가 된 이후에, 흰머리가 많이 늘었더라고요.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싶은데, 제 딸들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빠 어떡해요? 많이 늙었나 봐요. 흰머리가 많아졌어요.’
틀린 말은 아닌데, 기분은 썩 좋지는 않았어요.
제가 작년 생일 때, 딸 아이들이 이렇게 축하해 주시더라구요.
‘아빠 반 백살 된 거 축하합니다!’ 축하처럼 들리지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그 뒷문장이 중요합니다.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너도 어느새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 그리고 모든 땅을 점령했구나. 사명을 완수했구나!’
이렇게 말씀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13:1에 ‘너는 나이가 많이 들었는데, 아직도 점령할 땅이 많이 남아 있구나’
이 말을 들었을 때,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아마 이런 마음 들었을 것입니다.
‘내가 부족했나 보다, 더 열심히 했어야 되는데,
내가 실패했나 보다,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혹이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우리 인생에도 남은 땅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 가운데,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의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우리 가운데 남아있는 것이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 ‘남은 땅’은 무엇입니까?
-자녀가 대학만 가면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 녀석이 독립을 안 합니다.
-취업을 하면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 결혼자금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결혼만 시키면 정말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놈이 아이를 봐달랍니다.
-손주가 다 커서 이제 정말 끝났다 싶은데.. 그 다음부터 병원 가는 게 일이 되었어요.
사업하는 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한 고비를 넘으면 또 다른 고비가 다가오고 있다고’
목회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한 주 주일설교를 열심히 최선 다해서 마치면,
다음 주 설교가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기도를 오랫동안 열심히 했는데, 그 문제가 해결이 안 된 거예요.
여전히 남아있는 삶의 문제들이 있단 말입니다.
이 문제들을 볼 때마다 ’내가 부족한가? 내가 뭐가 잘못되었는가?‘
라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우리 삶의 미완성처럼 보이는 곳에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이가 많이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있도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를 꾸중하기 위함이 아니었어요.
이 말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냐면, 여호수아의 사명의 전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앞장서서 전쟁을 치르는 그 사명이 아니라,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여, 그들이 자기주변 땅을 차지하는 전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
그러니 다음 세대에게 너의 사명을 넘기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꾸중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너와 함께 싸웠듯이,
다음 세대가 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남은 전쟁을 넘겨라’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13:6a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 산지의 모든 주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쫓아내야 할 땅의 경계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말씀하세요.
13:7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
그 모든 땅에서 내가 적들을 쫓아낼 것인데, 그 방법은 무엇이냐면
'네가 땅을 각 지파에게 분배하면,
내가 그들과 함께 그 지역에 남아있는 자들을 쫓아낼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요,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 인생 가운데, 그가 원했던 모든 것을 다 이룰 수가 없어요.
인생은 원래가 미완성입니다.
모세도 그랬어요.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가 능력이 부족해서 못 들어갔습니까? 믿음이 없어서 못 들어갔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모든 시대를 전부 다 맡기지 않으십니다.
모세의 시대가 있어요. 여호수아의 시대가 있습니다.
사사들의 시대가 있어요. 다윗의 시대가 있습니다.
사람은 왔다가 갈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사람들을 연합하여
하나님의 일을 지금도 이루고 계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냐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믿음의 바통을 이어받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그 믿음의 바통을 또 누군가에게 넘겨주고
주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 사명의 전환을 여호수아에게 요구하고 있으세요.
그러니까 남겨진 땅은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땅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경험할 땅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은 미완성의 땅들,
그 땅은 우리 인생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은 미완성의 땅들은,
내가 하나님을 경험했듯이,
누군가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할 놀라운 기회가 될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이 있기를 축복해요.
이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모든 순간에 열정적으로 차오르는 감사를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어요.
이 말씀을 들은 여호수아의 마음에, 다시 한번 믿음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나는 늙었고 전쟁의 선봉에 설 수 없지만,
하나님이 내가 하나님을 경험했던 그 방식 그대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시고, 아얄론 골짜기에서 하늘에 해와 달을 붙잡아 주시고,
하늘에서 우박을 쏟아 부어 주셨던 그 놀라운 전쟁의 승리를
내가 가장 많이 느꼈는데,
그와 같은 똑같은 방식으로 나의 다음 세대와 함께 하실 그 하나님을
기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있다면, 남은 땅을 두고 후회하지 않아요.
그 땅을 바라보며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 땅 속에서도 놀랍게 역사하실 것이다!'
이 믿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하나님은 왜 여호수아 때의 모든 전쟁을 끝내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천천히 일을 이루실까?' 하는 궁금증은 있을 수 있어요.
'내 때 다 끝내면 좋겠는데, 왜 하나님은 내 때에 다 끝나지 않으실까?'
라는 마음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정복전쟁이 늦어진 이유는, 여호수아 때문이 아니었어요.
하나님께서 원래 그렇게 계획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전에, 전쟁이 벌어질 것을
이미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할 것임을 알려주었어요.
신7:2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전쟁을 벌일 것인데, 이미 그 결과를 말씀하셨어요.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여호수아가 그 모든 전쟁을 끝내지 못한 것은, 그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었어요. 하나님의 지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우리는 빨리 받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 우리에게 허락하세요.
음식도 한꺼번에 먹으면 체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한꺼번에 집어넣으면 몸이 상하게 되었어요.
축복도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축복은, 나를 무너뜨리는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집안에 있는 아이가 언젠가 독립하겠지만,
언젠가 독립한다고 해서 초등학교 때 내몰지 않아요.
그가 성장해서 감당할 수 있을 때, 독립을 시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배년 이상 애굽의 종으로 살았어요.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출애굽하여서 40년 동안 난민으로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가나안 땅 전체가 주어지면, 그 땅을 다스릴 수가 없어요.
다스리지 못하는 땅은, 그들을 삼키는 땅이 될 겁니다.
나라를 세우려면 법과 질서를 세워야 되고
정치, 경제, 국방, 통치, 외교 등 다양한 역량을 갖추어야 되는데,
지금 이스라엘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단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맞는 수준에 따라,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복으로 인도하신 거예요.
그래서 다시 신7:22b절은 다음처럼 되어져 있어요.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면하지 말라'
어떤 의미냐면.. 급하게 땅을 얻게 되면, 관리하지 못하는 땅이 반드시 생길 것인데,
관리되지 않는 땅은 급격하게 황폐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들짐승이 번성한 땅을
인간들이 들어가 살지 못하고, 도리어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니
하나님께서 천천히 이루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원리는 영적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마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영혼과 마음 관리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귀신이 다시 와보니까 그 마음이 텅 비어 있으니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그 마음을 점령했다는 말입니다.
즉 세상은 빈 공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아요. 무엇인가로 채우려 합니다.
하나님으로 채우지 않으면.. 세상으로 채웁니다.
말씀으로 채우지 않으면.. 세상의 소리로 채웁니다.
기도로 채우지 않으면.. 염려와 불안으로 채우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수준에 맞는 것만큼, 우리 가운데 허락해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 삶에도 남은 땅이 있어요. 해결되지 못한 땅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 땅을 바라보면서 '부족하다, 실패다'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남아있는 땅은 우리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낼 땅이 될 줄 믿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지금도 천천히 그러나 완전하게 이루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바는 <각자에게 주어진 땅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라>
이제 땅 분배가 이루어집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땅들이 있어요.
그 땅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시간 관계상, 여호수아 13장 전체를 읽지는 않았지만
집에 가셔서 꼭 읽어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꼭 줄을 쳐가면서 읽었으면 좋겠어요.
아멘이 별로 없으신데, 여러분, 성경책이 지저분해져야 영혼이 맑아집니다.
성경책이 깨끗하면 우리 머리에 든 게 없어요. 지저분해져야 됩니다.
여러분, 성경 구조 자체가 주는 메시지가 있어요.
성경책을 봐야만 알 수 있는데, 그 구조가 어떻게 생겼냐면
오늘 전체 본문이 13:1~7절까지가 '요단 서편 땅 분배에 대한 서론'이고요.
13:8~33절까지가 요단 동편 땅에 대한 분배를 말하고 있어요.
요단 동편 땅의 땅을 받게 되는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의 영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전체가 3등분으로 나눠지는데
14절과 33절이 동일한 말씀의 반복입니다.
한 단락이 끝날 때 동일한 말씀을 반복하고 있어요.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 되었음이더라' :14, 22
그 말씀은 무엇이냐면 레위지파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한 단락을 마치는 14절에서 레위지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33절을 마치면서 또 동일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다가 동일한 단어가 반복되면 '강조'인데,
이거는 동일한 단어가 아니라, 한 문장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땅 분배에 있어서 핵심은, 레위 지파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이 문맥의 구조가 의도적으로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위지파에게는 땅이 기업이 주어지지 않았어요.
그럼 레위지파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생계를 이어갑니까?
각 지파가 분배받은 땅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역 가운데 48개의 성읍이 세워지게 되는데,
그 성읍 속으로 레위인들이, 12지파로 흩어져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어요.
레위지파는 한 곳에 모여 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영적인 지도를 하라고 세워두신 것입니다. *율법 교육, 행정 업무, 제사 집례
그리고 동네마다 돌을 쌓아 만든 작은 제단이 있어서, 거기서 제사를 드리는 업무를
관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3)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레위인으로 하여금 이렇게 살도록 계획하셨을까요?
그리고 레위인이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남아있는 전쟁을 끝내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그 부분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1) 첫 번째, 하나님이 참된 기업임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참된 기업임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레위인을 흩어져 살도록 만들었어요.
레위인들에게는 기업이 없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기업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땅의 것을 주지 않았어요.
아마 사람들은 이렇게 수군거리겠죠.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땅을 얻게 됐는데 레위인은 땅을 못 받았어요.'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레위인은 땅이 없대.. 레위인은 땅이 없어..'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래.. 아니 그렇게도 살아갈 수 있는 거야?'
뭐 이런 얘기를 왜 하지 않았겠어요?
레위인 자체가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의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메시지냐면 '너희의 진짜 기업은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그것을 영원토록 기억시켜주기 위하여 레위인들에게 기업을 주지 않고
흩어져 살도록 만드셨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가장 염려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게 소유 당할 것'을 염려하셨어요.
하나님이 선물로 땅을 주었는데
그 이후에 그 땅을 주신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 매몰되어 땅만 바라보며 살아갈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너희들의 유일한 기업이다' 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레위인을 특별히 선택하여, 영적인 표지판으로 그들을 쓰고 있는 거예요.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하여, 이스라엘 전 백성들이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이 땅이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기업이 아니라, 이 땅은 그림자이며
우리가 얻을 영원한 기업은 저 천성에 있음을 기억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레위인들을 지금 쓰고 있는 것입니다.
2) 두번째 이유는 무엇이냐면
예배와 말씀의 선순환을 세우기 위해서, 레위인을 흩어져 살게 만드셨어요.
레위인들은 각 지파마다 흩어져서 말씀을 가르치고
부정과 거룩에 대한 지혜를 가르치며,
지역 공동체의 영적인 지도를 하는 사람으로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예물을 가지고 나오면 *십일조
그 예물을 먹고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설정하셨어요.
그러므로 백성들은 레위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고,
레위인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예물로 살아가게 함으로써,
그들 가운데 끊임없는 영적인 선순환이 일어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각 지파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면,
레위인은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더욱 더 말씀을 깊게 연구하여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도록
그들을 영적으로 이끕니다.
레위인들의 가르침을 통해
흩어진 각 지파들이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견고하게 서게 되면, 그들의 인생이 살아나고
그들의 땅 가운데 주어진 모든 문제를 승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한 영적인 선순환의 구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이스라엘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그와 같은 영적 구조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깨지면 악순환의 구조가 이루어집니다. 그 시대가 사사시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지 않습니다.
온전히 예물(십일조)을 바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레위인이 살아갈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 레위인이,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얻기 위하여 떠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예배가 무너집니다. 말씀이 희미해집니다.
그러자 그들의 삶 가운데 주어지는 말씀이 없다 보니까,
12지파는 우상을 섬기게 되고,
전쟁이 터지자, 그 가운데 전부 다 무너지는 반복적인 악순환 역사가
사사기 역사가 되는 것이죠.
영적인 선순환 속에서, 우리 가운데 주어진 삶의 문제를 이겨나갈 수가 있는데,
그것이 깨지니깐
영적인 악순환이 벌어지게 되는 거예요.
3) 세번째 레위를 흩어져 살게 만드신 이유는
삶의 현장을 예배의 자리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레위인들은 한 곳에 모여 살지 않고, 이스라엘 12지파의 삶 깊숙이 들어가 흩어져 살았어요.
물론, 성막에서의 예배를 위하여, 1년에 3번 정한 절기에 함께 모여서 제사를 드렸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1년에 3번의 성막의 제사 외에 나머지 모든 일상은,
그들의 일상의 삶 가운데 살아가는 거예요.
(나중에 다윗 왕 때부터, 레위인들은 24반차 group 으로 나누어서,
매년 2주씩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와서, 성전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대상23~26장, 대하23:8)
12지파는 그들의 일상의 삶 가운데, 레위인들이 자기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농사를 짓고, 어떤 사람은 목축을 하고, 군사가 되기도 하고,
가정을 지키고,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 가운데 레위인들이
율법을 가르치고, 정결법을 가르치고,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례와 규례들을 가르친 거죠.
그레서 12지파는, 그들의 일상 가운데 함께하는 레위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영적 지도를 받으며,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그들의 일상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의 공간이 되게 하기 위하여...
즉 '이스라엘 12지파의 영적 지도를 위해서' 레위인들을 흩어져 살도록 만드셨다는 것이죠.
12지파가 하나님과 호흡하며 살아가라고,
하나님을 곁에 두며 살아가라고
레위인들을 12지파 48개 성읍에 흩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호수아 13장부터는, 리더의 양상이 바뀌게 돼요.
여호수아가 주도하는 전쟁이 아니라,
각 지파들이 주어진 땅 안에서 전쟁을 벌여야 되는데,
그때 여호수아 대신 레위인을 세워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라고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구조를 만드셨어요.
여러분의 인생가운데 영적인 질서가 온전히 잡힐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땅이 우리가 살아가는 영원한 본향이 아니라,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어진 그 영적전쟁을 승리하기 위하여
우리가 영적인 선순환이 일어나야 되는데,
예배와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 가운데 일주일에 한 번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호흡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여호수아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대한 모든 정복전쟁을 이미 끝냈어요.
그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으로 인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이미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마귀의 권세를 파하사
십자가 위에서 승리를 거두셨어요.
그러므로 결정적인 전쟁은 이미 끝난 거예요. already
그런데 아직 남아있는 잔당들이 있습니다. not yet
그 사탄과 마귀들은 우리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가라지를 뿌려대고,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댑니다.
더군다나 우리의 삶 가운데는 아직 정복하지 못한 남은 땅들이 있어요.
가정의 문제든, 건강이든, 재정이든, 미래든, 사업이든, 불완전한 내 노후든,
뭐든지 간에 우리한테 남겨진 문제가 있단 말입니다.
그 모든 전쟁(문제, 삶의 도전)에서 우리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요?
혼자 싸우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 땅마다 레위인을 두었듯이, 혼자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즉 그 레위인의 역할을 지금 누가 하고 있는 것이냐면,
교회가, 교회 지도자들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모두가 다 영적인 제사장이 되었어요. 교회는 또한 건물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가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주어진 모든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하여
우리는 교회를 늘 가까이 두고,
그 교회 가운데 주어진 말씀으로 영혼이 살아나며
예배를 통하여 심령이 깨어지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며
성령 충만으로 우리 가운데 주어진 모든 문제를 승리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성도들의 모임 여러분,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에요. 이 땅을 여행하다 가는 건 아닙니다.
칼빈은 말했습니다.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이다"
교회의 본질은 전투하는 것입니다.
일주일동안 각자 삶의 현장에서 한번 열심히, 열심히 싸우다가
다시 한번 모여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곳이 교회입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는 가운데, 말씀과 성령으로 무장하는 곳이 교회인 것이죠.
전쟁을 치르다가 상처를 입을 수 있어요.
그래서 교회는 상처받은 자들이 치료를 받는 야전병원이 되는 것이죠.
또한 영적인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필요한 그 무기를 공급받는 군수기지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또한 세상이라는 전쟁터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파송하는 전진기지가 됩니다.
그 사탄은 언제나 교회를 흔들어댑니다.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예배 시간에 잡념이 들게 만들며, 말씀을 가볍게 어기게 만들고 기도할 때,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성도들을 모이지 못하게 만들도록 흔들어 댑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이 다할 때까지, 영적인 선순환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축복해요.
교회를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날마다 무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예배는 생명이에요. 말씀은 인생의 등뼈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삶의 호흡이에요.
그것이 없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서 승리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저는 우리의 교회가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과 타협하는 교회가 아니라, 선명한 진리를 선포하는 교회,
패배를 두려워하는 교회가 아니라 믿음으로 싸워 승리하는 교회,
세상이 무서워 숨는 교회가 아니라, 복음 들고 땅끝까지 나아갈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그 교회를 함께 이루고 있는, 교회의 온 성도가 한마음 되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또한 전진해 나가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마음 담아서 우리를 사용하소서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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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오노다 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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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성경은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아말렉과 싸울 군사를 택하라고 지시했을 때,
여호수아를 '청년(Young Man)'으로 묘사합니다. 출33:11에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
히브리어로 '젊은 청년(나아르)'은 일반적으로 소년에서부터 젊은 군인에 이르는
폭넓은 나이를 의미합니다.
이후에 가나안 정탐 때 동기였던 갈렙이 40세였다는 점(수14:7절)에 비추어 볼 때,
비슷한 나이로 보면, 여호수아는 출애굽 당시 40대 전후의 젊은 장수였을 것으로 추정하죠.
주3)
본래 율법에 따르면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사는 중앙 성전 번제단에서만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이 멀었던 지방의 백성들은, 편의를 위해,
동네에 개인적인 제단(분향단 및 번제단)을 세우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이곳은 가나안의 우상 숭배와 쉽게 결합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혼합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