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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7장 성전도 열심히 짓고, 받은 복도 누렸다

LNCK 2026. 7. 13. 07:17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크리스천 리빙


◈성전도 열심히 짓고, 받은 복도 누렸다(화려한 왕궁 건축)    왕상7:1~21  여러설교정리

 

◑성전을 건축하는 기록 가운데, 화려한 왕궁 건축이 들어 있습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즉위한지 제4년에 <성전건축>을 시작하여 11년에 완공했습니다 (6:37-38).

성전건축에 7년 6개월 걸렸습니다.

하지만 성전기구는 아직 제작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제 7장에서는 궁전을 건축하고, 성전기구를 제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내용의 구조는

궁전의 건축(1-12절),

성전의 놋기구들 제작(13-47절),

성전의 금기구들 제작(48-51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열왕기상 5~6장에서 하나님을 위한 성전 건축에 대한 내용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7장에서는 갑자기 솔로몬의 왕궁 건축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성전 도구들과 치장에 대한 설명이 이어져야 할 것 같지만,

뜬금 없이 솔로몬의 왕궁 건축 내용이 나온 것입니다.

아직 성전 건축이 세부적으로 남아있는데 말이죠. 7:13~51

 

성전 건축에 관한 기록을 계속 이어가는 중에

솔로몬이 왕궁을 건축한 기사가 기록(삽입)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5장에서는 성전건축 준비를 한 이야기가,

6장에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7:13절부터도 성전에서 사용하는 여러 기구들을 제작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전을 7년만에 지었다는 것은, 큰 건물을 7년만에 지었다는 거고,

7:13절부터 여러 기구를 제작하는 것까지 합하면, 더 오래 지었다는 것이죠.

자꾸 '성전 짓는 기간'을 가지고, 성전은 7년이고, 왕궁은 13년이니,

솔로몬이 성전 짓는 일에 등한시하고, 왕궁만 열심히 지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본문 왕상7장 나머지 부분을 보더라도, 솔로몬이.. 솔로몬이..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열심히 했다는 식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13, 40, 46, 48등

 

그래서 성전 건축한 기간은, 7년이라고 나오지만  *아마 7(완전수)에 맞추고 싶었나 봅니다.

성전건축을 준비하는 5장,

성전건축 6장

성전의 각종 기구 제작(7:13~51)까지 포함하면.. 7년이 아니라, '24년'이라는 계산이 나오죠.

 

왕상5~7장까지의 흐름은 "성전건축"과 연관된 내용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갑자기 솔로몬 "왕궁 건축"에 대한 이야기(7:1-12)가 짧게 삽입되어 있죠.

 

그 이유는, 솔로몬이 성전만 열심히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왕궁”도 화려하게 지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성전 건축"이라는 대공사를 할 때, 

왕궁은 곁다리고 끼워서 지었다는 뜻인 거죠.

왕하 5~7장을 전체적으로 볼 때, 문맥상 그렇다는 거죠.

*성전건축은 24년 (준비기간 4년 + 성전 기구까지 완공에는 20년),

그 와 동시에 그 중 7년은 왕궁을 지은 것입니다. 총 24년 중에, 왕궁건축 7년이 삽입된 거죠.

 

문맥상 "성전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고, 그 분량도 방대합니다.

"왕궁 건축"에 관한 이야기는 단 12절로 짧게 삽입하고 있을 뿐입니다.  7:1~12

 

그래서 본문을 해석할 때, '솔로몬이 받은 복을 누림'이라는 각도에서 해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만 짓는 일에 올인 하지 않고,

그 와중에 자신의 화려한 왕궁도 지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왕궁 건축 역시, 신정국가에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를 드러내기에

왕궁의 화려함은, 하나님의 크심, 화려함, 변치 않는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구약에서 성경은 화려함과 가난함이 둘 다 나옵니다. 어느 한쪽만 고집할 수 없습니다.

성막이나 솔로몬 성전도, 겉은 보기에 빈약했지만, 속은 굉장히 화려했고, 거의 모두 금이었죠.

 

그러나 신약을 포함한 성경 전체적 강조는 '내면의 부유함'입니다.

외면적 가난함/부유함은 그 자체로 무슨 정답이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내면'이니까요.

(외면이 가난하고 청빈한데, 마음이 부유하고 교만할 수도 얼마든지 있죠. 그 반대도 있고요)

 

그런데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일부 성경해석가들은,

솔로몬이 자기 왕궁 짓기에만 열심을 냈고, 성전 건축은 그리 열심내지 않았다고 해석합니다.

그 논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 해석에 동의하진 않지만,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죠)

 

본문을 살펴보면, 여호와의 성전 솔로몬 왕궁에 대한 극명한 대비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솔로몬이 7년 동안 성전을 건축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6:38

‘왕궁의 건축 기간은 무려 13년’이기에,   7:1

성전 건축의 약 2배에 해당하는 기간을 들여 자신의 왕궁을 지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배나 되는 시간을 쓴 것은, 그만큼 솔로몬의 마음이

성전 건축보다 자신이 거주할 왕궁에 마음이 기울었음을 알 수 있다는 거죠.

 

사람들도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몸과 마음을 집중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궁은 그저 시간만 많이 투자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7:2 ‘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기둥 위에 백향목 들보가 있으며’

 

솔로몬 왕궁의 크기는 길이 100규빗(45.6m), 너비 50규빗(22.8m), 높이 30규빗(13.68m)인데,

이를 성전의 크기와 비교하면 성전의 길이가 60규빗, 너비가 20규빗이기에

왕궁은 성전과 비교하면 4.2배 크게 지어졌습니다.

 

이미 성전과 왕궁의 크기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건축 기간도 당연하게 왕궁이 두 배 정도 오래 걸린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 크기인가 하면,

경복궁 근정전이 앞면 약 30m, 옆면 약 21m, 높이 22m의 목조 건축물이니,

왕궁 근정전보다 약간 더 크다고 보시면 됩니다. 경복궁 근정전도 위용이 좀 있죠.

 

근데 근정전은 14세기에 처음 지어졌고, 지금 보는 것은 19세기 고종 때 중건된 거죠.

그런데 솔로몬 성전, 왕궁은 기원전 10세기 때입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위용이었던 거죠.

물론 주변 강대국들의 건축물에 의하면, 그리 큰 것은 못 되겠습니다만. 

Exploring King Solomon's Grand Palace | TikTok

   

또한 당시 건축할 때 최고급 목재였던 백향목을 사용하였고,

얼마나 많은 백향목을 사용하였는지 새번역 성경에서는

본문 2절의 왕궁을 ‘레바논 수풀 궁’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건물은 넓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는데, 내부 공간을 지탱하기 위해

레바논산 백향목 기둥이 무려 4줄로 15개씩 촘촘하게 세워졌습니다.

‘레바논 수풀 궁’(히브리어 직역)은, 왕궁의 수많은 기둥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모습이

마치 레바논의 울창한 숲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런 정반대의 해석이 있으나,  *솔로몬의 왕궁 건축을 비난하는 해석

본 설교는, “솔로몬이 성전 건축에도 열심을 냈고, 자기 왕궁 건축에도 열심을 냈다”

는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림이었다.. 라고 해석합니다.

그 이유는, 맨 마지막 단락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솔로몬을 옹오하는 해석

 

◑솔로몬 왕궁은 다섯 개의 주요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7:6 ‘또 기둥을 세워 주랑을 지었으니 길이가 오십 규빗이요 너비가 삼십 규빗이며

또 기둥 앞에 한 주랑이 있고 또 그 앞에 기둥과 섬돌이 있으며’

 

1) 먼저 레바논 나무로 지은 큰 본체가 하나 있습니다. (구글에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2) 두 번째로 주랑이 있는데, 주랑은 주 건물 본관에 연이어 있는 기둥들로   *주랑=회랑

벽이 없는 복도를 의미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현관이나 입구로 볼 수 있습니다.

 

주랑의 크기는 너비가 30규빗(13.68m), 길이가 50규빗(22.8m)입니다.

기둥 앞에는 섬돌이 있는데, 섬돌은 ‘돌층계’라기보다 ‘차양’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어서 지속적으로 주요 건물들이 나열됩니다.

 

7:7 ‘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3) 세 번째 건물은, 심판하기 위한 보좌의 주랑, 재판하는 주랑(회랑)이 있습니다.

당시 왕이 감당해야 하는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는 재판입니다.

이미 솔로몬은 3장에서 재판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널리 전했던 사례가 있죠.

 

재판은, 건물 안이 아니라, 주로 주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건물 안은 사적 용도

주랑은 재판정이었던 셈이죠.

 

그리고 나머지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건축물이 등장합니다.

 

7:8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4) 네 번째 건물은,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인데,

2절에서 레바논 나무로 지은 왕궁이 ‘집무실’이라면, 8절의 왕궁은 ‘관저(사택)’입니다.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도 다른 건물의 건축 양식을 따라 비슷하게 지었습니다.

 

5) 다섯 번째는 ‘바로의 딸을 위한 집’입니다.

3:1절을 보면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왕궁을 지을 때 바로의 딸을 위해 특별하게 집을 지어 준 것을 보면,

솔로몬의 여러 부인 중에서 바로의 딸이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이 주변 나라들 중에 가장 강대국이었으므로, 애굽 공주를 특별 대우해 주었던 거죠)

 

이렇게 솔로몬 궁전의 5개 건물은 독립된 단일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큰 궁정 구역 안에 5개 구역이 서로 연이어져 배치된 복합 단지 Complex 형태였죠.  주1)

 

▲아래 본문은, 다섯 개의 주요 건물들을 건축할 때, 사용한 재료들도 설명합니다.

 

7:9-10 ‘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으니 크기대로 톱으로 켠 것이라

그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니 그 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솔로몬의 왕궁을 지을 때 사용한 돌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이 아니라

모두 귀한 것들을 사용하였고,

왕궁의 기초석은 성전의 기초석과 같은 10규빗과 8규빗의 크기이며

기초석들은 각 크기에 따라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졌습니다.

 

7:11-12 ‘그 위에는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으며

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귀한 돌과 더불어, 앞서 솔로몬 왕궁 건축에 가장 많이 사용된 최고급 백향목도 있습니다.

솔로몬의 왕궁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 비교대상이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과

같다'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솔로몬의 왕궁에 대해 그 사치를 비꼬거나 판단을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그로 인한 왕궁의 영화를 자랑하는 듯합니다.

 

◑솔모몬 왕궁 건축.. 너무 허세는 아닌가? .. 하는 우려에 대해

 

물론 성전과 왕궁의 규모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왕궁은 단순히 왕이 사는 공간만이 아니라

본문에서처럼 재판을 하는 공간도 필요하고,

국정을 운영하는데 많은 인력들이 있어야 하기에

성전에 비해 규모가 훨씬 더 큰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성전의 성소는 제사장들만 출입하잖아요. 제사장은 정부 조직보다 인원이 훨씬 적죠.)

 

또한 왕비로 맞아들인 바로의 딸을 위해 따로 궁궐을 지은 이유에 대해

역대하 8:11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리고 다윗 성에서부터 그를 위하여 건축한 왕궁에 이르러

이르되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왕궁에 살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하였더라”(역대하 8:11)

 

즉 솔로몬이 왕비로 맞아들인 바로의 딸에게 왕궁을 지어준 것은

결코 왕으로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거나

또는 이방인인 바로의 딸로 인해 하나님을 져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결코 더럽히지 않으려는 그의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에서 비롯된 것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다음 문장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솔로몬을 향한 불안감을 어느 정도는 해소시켜 줍니다.

 

문맥상으로는 성전의 내부공사 완료 후에,

7:13절 이하 성전 외부에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을 설치하고,

성전제사에 사용될 기구들을 만들고,

성전봉헌식을 한 후에 '솔로몬의 왕궁을 건축'하는 순으로 되어야 합니다.(맨 나중에 와야)

 

그러나 열왕기서 기자는 이 순서를 따르지 않고,

성전이 완공된 후에, 솔로몬의 왕궁을 건설하고 이후에 *솔로몬 왕궁 건축 기사가 삽입

성전제사에 필요한 기구들을 만드는 과정의 순으로 기술을 했습니다.

 

이는 '성전 건축'이나 '왕궁 건축'이, 성격상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둘 다 하나님의 사역이었던 거죠. 

 

히람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2)

 

우리의 불안한 마음(솔로몬이 성전 건축은 제쳐 놓고, 왕궁 건축에만 몰두한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어렵지만, 솔로몬의 마음 중심은

히람을 통해 세운 야긴과 보아스의 두 기둥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27

 

야긴은 '그가 세우셨다'라는 뜻이고,

보아스는 '그 안에 능력이 있다'라는 뜻입니다.

성전 건축을 마치고, 왕궁을 건설하는 동안

솔로몬은 결코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이, 그리고 현재의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워주셨기에 가능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였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두 기둥의 이름을 지은 것을 볼 때 그렇죠.

 

또한 성전 건축을 마치자 아버지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물건

“곧 은과 금과 기구들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둘” 정도로  :51

사심이라고는 일말도 없었습니다. *성전 건축에 남은 재료들

 

성전에 보관된 은과 금은 다윗이 이방 나라들로부터 정복하여 여호와께 바친 성물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이 재물을 자신의 치적이나 왕궁을 짓는 데 사용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성전 곳간에 두어 하나님의 소유로 엄격하게 구별했습니다

 

보통 열왕기상 7장, 특히 7:1~12절의 본문을 해석하고 설교할 때는,

‘솔로몬이 성전은 그냥 어영부영 정성을 들이지 않고 짓고,

자기 왕궁은 정말 열심히 정성들여 지었다. 그는 신앙심이 없었다’라고 해석합니다만,

 

이제까지 제시한 위 해석은, 그게 아니라

솔로몬이 성전도 열심히 짓고,

자기 왕궁도 열심히 지었다는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적용 / 하나님이 주신 복과 번영을 드러내고 누림

 

열왕기상 7장에서 솔로몬의 왕궁 건축이 상세히 기록된 이유는

성전 건축(열왕기상 6장)과 더불어, 솔로몬 통치의 위세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왕국의 번영이 하나님의 축복임을 나타내는 동시에,

솔로몬의 위세는, 신정국가로서, 하나님의 위세를 드러내는 일종의 ‘가시적 표시’였습니다.

 

왕궁은 '레바논 나무 궁'을 비롯해 '주랑'과 '보좌의 주랑' 

국가 통치와 외교를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이는 다윗 왕조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 국가로서

온전한 권위와 번영을 누리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증명하는 기록입니다.

 

물론 나중에 솔로몬은, 그 받은 축복을 잘 간직하지 못해서,

교만해지고, 이방 우상을 섬기는 등 타락해서..

받은 축복을 끝까지 잘 이어가지는 못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본문은 (적어도 왕상7장 본문까지는)

솔로몬의 실정과 잘못한 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솔로몬의 잘한 점을, 그래서 누리게 된 부귀와 영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용1 / 남편이 있을 때 누리지 못함을 후회한 사람 (누림도 필요하다)

 

신달자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중에서

 

아기 걸음마는 보통 1~2살에 배우는데,

작가는 ‘생의 걸음마’를 4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배웠다고 한다.

 

1977.05.11. 12시 30분. (날짜와 시각까지 기억할 정도니 뭐가 있었다)

그 날은 작가의 생일날이었다. 그래서 생일상을 차려서 먹고 있는데,

갑자기 (작가의) 남편이 젓가락을 떨어뜨리더니, 그 자리에서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곧 일어나겠지’ 생각했는데, 남편은 병원으로 옮겨진 후에도

23일 동안 말 한 마디 못하는 혼수상태를 계속했다.

 

죽지 않고 식물인간으로 계속 연명하니까,

의사는 환자를 퇴원시켜서, 집에서 돌 볼 것을 권고하였다.

 

‘아무 것도 기대하시 마십시오.

환자가 설령 깨어난다고 해도, 3살짜리 지능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23일이 지나서,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작가는 책에서, 그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자녀 희수에게 편지 형식으로 글을 적고 있다.

 

 "희수야, 그는 (남편은 생전에) 도대체 나에게 주는 것이 없었어.

시쳇말로 돈을 잘 벌어다 주었니? 살림을 도와주었니?

문화적인 센스가 있었니?

남자로서 아내인 나를 기쁘게 해 준 일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툴툴거렸단다.

‘도무지 저 인간은 내게 해 주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나는 징징거리며 그를 미워했단다.

 

주는 것이 없는 것으로 끝이면.. 좋기나 하지.

남편은 언제나 나를 못살게 굴고, 내게 요구가 너무나 많았거든..

그 진절머리 나는 갖가지 요구들 때문에, 나는 콱 미쳐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

 

아무 것도 안 주는 남자, 나는 그를 징그럽게 미워하면서도

일방적으로 나만 그를 위해 희생한다고 큰 소리를 치고 그랬지.

그래서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안간 힘을 썼었지.

 

그런데 희수야, 남편이 떠나고 난 다음에 나는 비로소 깨달았단다.

‘그 남자가 나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나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아침에 창을 열며 나는 말했어, “여보, 비가 오네!”

남편이 대답했지, “그래, 또 비가 와? 장마 인가봐!”

 

어느 날 “여보, 오늘은 아주 춥데, 내의를 입어야 할까봐!” 말하면,

“그래? 전에 샀던 양털 내의 꺼내주구려” 남편이 대답했단다.

 

너무 간단한 대화, 대화라고 말하기도 쑥스러운 그 간단한 대화가

얼마나 살가운 대화이었던 것을..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단다.

 

그 사람이 떠나고 나니, “여보, 비가 오네!” 말할 사람도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여보, 오늘 날씨가 춥데?” 그 얘기를 할 사람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 장마인가보지” 그 간단한 얘기가 너무 듣고 싶더라는 것이다.

 

남편은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좋고, 감사한 것임을

이제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 것도 안 해 줘도) ‘등 긁어주는 사람’이 너무 그립구나.

같이 사는 것, 그 자체에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네가 깨닫기에는.. 너무 젊지?

 

희수야, 내가 이런 생각만 하면,

그에게 너무 고맙고, 또한 미안해...

그 때 같이 살 때,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렇게 작가는, 평소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던 삶’을 후회하고 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감사해야 할 사람’을 ‘징그럽게도 미워하고’ 살았다고 바보처럼 뉘우치고 있다.

 

돈 잘 벌어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멋지게 잘 나가는 남편이 되는 것도 더 좋은 일이다.

 

그러나 비록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짧은 대화라도 서로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한다.

 

‘감사’는 미리, 미래를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이라 했다.

남편의 미래를 바라보며, 미리/사전에 감사드리는 아내가 되어야 하겠다.

그러면 남편이 감동되어 더 잘 것이다.

나중에 누구(작가)처럼 뒷북치며 후회하지 마시고...

 

여러분,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언제까지 영구히 보장되리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이것들은 정말 하룻만에 훅 하고 없어져 버릴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빼앗기고 나서 후회하거나, '그때 감사하며 살 걸 그랬다..' 하지 마시고,

오늘 현재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누림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적용2/ 솔로몬과 성전과 왕궁이,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가시적 통로’였다면,

오늘날 우리 성도 각자 역시 ‘하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사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삭에게, 그랄왕 아비멜렉이 찾아와서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심을 보았다’고 한 것, 창26:28

요셉에게, 보디발이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심을 보았다’고 한 것 모두 창39:3

신앙과 믿음의 조상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여주는’ 귀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세계 모든 인물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추앙을 받는 사람이

아브라함이에요. 세계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물론이요, 이슬람도 아브라함을 추앙합니다.

유대교도 아브라함을 추앙합니다.

 

여러분, 숫자로만 보면 예수님보다 더 광범위한 존경을 받는 인물이에요. 대단합니다.

 

근데 여러분 아브라함의 업적이 뭐예요?

큰 전쟁에서 승리하고 영토를 차지한 적도 없습니다.

 

나라를 세우거나, 책을 쓰거나, 어떤 가르침을 베푼 적도 전혀 없어요.

그냥 자기 일생을 살았어요.

 

하나님이 다가오셔서 나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의 말씀 붙잡고, 신실하게 살았습니다.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넘어지고 실수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았습니다. 그것뿐이에요.

 

그것뿐 그런데 사람들이 뭐라 그러는가 하면요.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창21:22

하면서 하나님의 프레젠스 presence 를 전하는 거예요.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창23:6

 

여러분, 지금 아브라함은 그 띵에 나그네예요.

그런데 나그네가 이웃이 되고요. 심지어 지도자로

이방인들 가운데 추앙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 아들 이삭도 그랬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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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솔로몬 왕궁 건물을 다시 정리하면,

 

1) 레바논 수풀 궁: 궁전 단지의 핵심으로 무기와 보물을 보관하는 군사·행정 중심지였습니다.
규모가 가장 컸습니다.

2) 주랑(기둥 현관): 왕이 군대를 사열하고 공무를 보던 공간입니다.

3) 재판하는 주랑 (보좌 궁): 왕이 백성의 송사를 듣고 판결을 내리던 재판정입니다.

4) 왕의 거처 (솔로몬의 궁): 왕이 실제 거주하던 개인 생활 공간입니다.

5) 바로의 딸을 위한 궁: 왕비인 이집트 공주를 위해 별도로 지은 처소

 

 

주2)  히람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놋 다루는데 있어서 당대 최고의 기술자 히람은 야긴과 보아스 기둥도 세웠고,

바다와 수레와 물두멍, 성전에 필요한 모든 기구들을 놋으로 정교하게 만들었습니다.

놋으로 만든 그 양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기구가 심히 많으므로 솔로몬이 다 달아보지 아니하고 두었으니

그 놋 무게가 능히 측량할 수 없었더라” :47

 

만약 두로의 히람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성전의 놋 장식은 누가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하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 여인이 이방인 두로 사람과 결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겠습니까?

만나서는 안 될 두 사람의 만남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당신의 사역에 꼭 필요한

한 사람을 양성하도록 역사해주셨습니다.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