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삿4장 드보라 시대 바락의 역할

LNCK 2026. 7. 14. 11:18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리더쉽, 목회자

사사기강해(08)/사사기4:1-9/‘드보라 시대 바락의 역할’ Youtube

 

◈드보라 시대 바락의 역할             삿4:1-9                  2025.08.03. [사사기 8강]

 

우리는 지금 계속 사사기를 차례대로 보고 있습니다. 사사기는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먼저는 순환적 역사입니다. 무엇이 순환이 되느냐? 두 가지가 순환이 돼요.

 

-하나는 죄가 순환이 됩니다.

그런데 그 죄는 하향적 나선형 구조를 갖고 있어요. 나사를 박으면, 더 깊이 들어가죠.

세월이 갈수록 죄가 덜해지는 게 아니라, 더 깊어진다는 나선형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순환은, 더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순환됩니다.

그때마다 사사를 세워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건져주시고 들으십니다.

 

오늘 본문 삿4장도, 그 패턴이 여지없이 드러나는데, 1절을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4:1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계속 반복이 되죠.

4: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다’라고

되어 있어요.

 

순환적 구조는 이렇게 일관성을 갖습니다.

죄를 지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주변 나라들을 강하게 하셔서 이 백성들을 징치하십니다.

그러면 아프죠. 또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크신지라, 또 그 부르짖음을 외면치 못하시고 또 살려내십니다.

사사를 세워서 구원을 하세요.

 

그리고 그 사사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편안해요. 문제도 안 일으켜요.

그런데 그 사사가 죽으면, 여지없이 '또' 라는 반복을 통해서 죄가 반복이 됩니다. 4:1

 

오늘도 그 장면을 우리가 보죠. 이번에는 가나안 왕, 가나안 북부의 가장 대표적인 족속이고,

큰 나라입니다. 철기 문명에서 가장 앞장 서 있었던 나라죠.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 이스라엘을 파십니다.

 

그래서 그의 군대 장관 시스라를 앞장세워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해요.

이스라엘은 무려 20년 동안을 압제를 견딥니다.

 

그런데 이 가나안은 철기문명의 앞선 문명국가답게, 철병거 900대를 준비하고 들어와요.

그 광경을 한번 살펴 보십시다.

 

4:3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어요.

그런데 이 부르짖음은 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차원이지,

한 번도 옳게 회개다운 회개를 한 적이 없어요. (했다면, 시련이 끝났겠죠)

왜냐하면 이 부르짖음이 계속 반복이 돼요. 참된 회개가 아니죠.

 

▲문제는, 가나안 왕이 몰고 온 9백대의 철병거,

그리고 어느 나라도 대적할 수 없는 막강한 군대,

거기에 이스라엘은 20년 동안의 학정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굉장히 적용점이 큰 주제입니다.

누구나 사연이야 어찌됐든 간에, 가나안 왕이 몰고 온 철병거 9백 대에 맞먹는,

우리를 떨게 만들고, 무력화시키는 큰 난공불락의 대적이 있어요. 각자가 다 다를 거예요.

 

건강의 문제이든, 경제의 문제이든, 시대의 큰 쓰나미 같은 조류이든,

누구나 그 앞에 떨고 있고, 자기 존재가 무기력하게 비춰질 때가 있습니다.

 

이 시간에 여러분들이, ‘각자 내 인생에 철병거 900대는 뭘까? 미래에 대한 불안일까?

아니면 어떤 내가 내 힘과 여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일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20년을 이스라엘은, 그 밑에서 깊은 신음에 던져져 있습니다.

이건 각자가 다 다르겠죠?

 

▲지금 AI 같은 큰 시대적 조류 앞에, 청년들은 ‘야 나는 이러다가 도태되는 게 아닐까?’

‘그럼 이 시대적 격변기에 나는 뭘 준비해야 되나?’

근데 나를 돌아보면 그 준비마저도 별로 답이 안 돼요. 노답이에요. 그리고 불안하기만 해요.

 

‘내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뭐 결혼도 해야 되는데...’

특별히 청년들의 취업난... 이런 걸 생각하면 불안하기만 합니다.

 

거기에 비해서 내가 또 준비하고 있는 그 어떤 것은, 무능력해 보이고, 무기력해 보여요.

이런 상황에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위해서 뭘 준비하시는가? 거기에 주목해야 됩니다.

 

아마 ‘철병거 900대니까, 우리는 그걸 쳐부술 패트리어트 900기는 준비해야하지 않을까?’

‘그래야 싸움이 확실히 될 텐데...’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네가 열을 가지고 나와? 그럼 우리는 이십을 가지고 나갈게!’

 

힘과 힘의 맞대결에서 비교 우위를 점하려고, 끊임없이 군비 증강을 도모하고,

또 그 사이에 이익을 챙기는 나라도 있겠고...

그러니까 철병거 900대는 쉽게 얘기하면, K9 자주포 900대 격이에요. *스스로 이동 대포

그 시대 어마어마한 무력입니다.

 

그런데 그 철병거 앞에 이스라엘이 뭐 하겠어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거예요.

할 수도 없는 거예요. 무기력한 20년의 세월이, 부르짖음 가운데 흘러갑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런 절망의 시대에 뭘 준비하시는가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4: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때’가 어느 때입니까? 이스라엘이 답이 없이, 그 무력의 크기와 규모와 숫자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부르짖고만 있을 때, 그때 하나님이 카드를 딱 하나 꺼내시는데,

그 카드가 ‘여 선지자를 세우는’ 거예요.

 

이게 그림이 돼요? 이게 말이 돼요?

아니 저쪽에 철병거 900대면, 이쪽에는 미사일 900기 정도는 뭐 준비가 돼야

적에게 맞서거나, 이길 수 있는 승산이 확실한 거 아니겠어요?

 

근데 하나님은 뜻밖의 그림을 준비하십니다.

여성은.. 당시 고대 사회에 존재감이 없던 때입니다.

그래서 숫자에도 안 집어넣었을 때예요. *당시 인구조사는 ‘군대 나갈 군인만 계수’ 했죠.

 

그런데 그런 고대 시대에, 하나님은 연약한 여성 중에 한 사람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구원자로 뽑으시는 카드를 쓰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응대 방식이에요.

하나님의 준비하시는 카드입니다.

 

이걸 가지고 뭘 하시려는 걸까요?

그런데 여기 보면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 랍비돗은 드보라의 남편으로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여기 왜 갑자기 앞에 수식어로

등장을 시킬까요?   *굳이 랍비돗은 등장을 안 해도 되는데

 

여러 학자들은, ‘아마도 드보라는 가상의 인물이거나 또는 신화적 존재일 거다,

팩트가 아닐 거다’라고 해석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래서 그것을 한방에 정리하기 위해서, 드보라는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의미에서

‘랍비돗의 아내’라고, 그의 출신 배경을 성경은 명확히 밝히는 것입니다.

 

‘랍비둣’이라는 말을, 굳이 의미를 밝히자면 ‘타오르는 등불, 횃불’ 뭐 이런 뜻입니다.

성경에 ‘랍비돗의 아내’로만 나오고, 랍비돗이 뭘 어떻게 했다는 설명은 하나도 안 나옵니다.

그야말로 랍비돗은 존재감 제로예요.

 

그렇지만 본문의 주인공 여선지자 드보라가, ‘랍비돗의 아내’로 자리매김하는 걸로 봐서,

드보라는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거죠.

 

▲자 그러면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절입니다.

4: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설명이 좀 필요한 대목인데, 사사는 재판하는 사람인데, 

이 재판의 기능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그런 재판의 성격도 당연히 있겠으나,

사사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그래서 그 전달을 통해,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은 겁니다.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그 당시에는 무슨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었던 때가 아니기 때문에,

주로 큰 나무 밑에서 회집을 하곤 했어요.

 

거기에서 드보라가 앉아가지고, 하나님의 지혜를 베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직무를 맡은 겁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그 종려나무, ‘드보라의 종려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종려나무 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준비예요.

 

이건 어색한 정도가 아니라, 과연 이게 가나안의 철병거에 맞서는 답이 되겠습니까?

이래가지고...?

 

그런데 이것이 정확하게 하나님이 일 하시는 방식이에요.

그 시대가 그만큼 영적으로 허기 진 상태에서,

온 공동체는 이 가나안 왕 야빈의 철병거 9백대 앞에서, 어마어마한 잘 훈련된 군대 앞에서,

벌벌 떨고 부르짖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시대에,

하나님은 전혀 엉뚱한 카드로 그 시대를 준비시킵니다.

 

‘종려나무 밑에 하나님의 지혜를 베풀고 가르치는 드보라’에게로 사람들이 몰려오게

만듭니다. 이게 준비예요.

 

자! 상대방이 세상의 방식으로 웅크리고 있는, 그 철옹성 같은...

넘을 수 없는 태산같은 철병거 9백승과,

그에 맞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준비는 너무 언발란스예요.

‘이게 뭐 되겠나? 시대의 도전에 해답이 되겠나?’

 

▲근데 여러분, 우리들이 꼭 그런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을 거예요. 자괴감에 빠질 때...

직장에서 치열하게 숫자와, 통계와, 미래에 대한 분석과 예측으로,

페이퍼웍을 통해서 씨름하다가,

교회에 나오면 매번 ‘말씀과 주님을 의지하라’ 그러고,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 하니,

여러분은 그런 상황에서 낙담하기 쉽겠죠. ‘그래서 뭐가 되겠나?’

 

그리고 설교자가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회중들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바로 지금도 몇 사람의 표정이

‘그래, 그게 무슨 답이 되겠나?’ 하는 표정이에요.

 

그리고 가끔은, 설교하고 있는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시대가 AI,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로 진화하고 있는데, 설교는 늘 제자리걸음 아닌가?

설교는 늘 똑같은 주제의 말씀아닌가? 이래서 뭐가 될까?’

 

그러니 듣는 여러분들은,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말씀을 전하는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니까요.

‘이 말씀이, 지금 시대에 무슨 준비가 되겠나? 과연 답이 되겠나?’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세요.

그런 시대에 규모와 규모로, 숫자와 숫자로, 크기와 크기로 시대를 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쓰나미 같은 시대의 조류가 우리를 덤벼온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종려나무 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기 위해서 사람들을 보냅니다.

 

준비시킵니다. 믿습니까? 거기에 하나님의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제 말씀을 준비하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교회학교 이름을 전부 종려나무 학교라고 다 바꿀까?’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그 나무 아래서 말씀을 들려줌으로써 시대를 준비하실까?’를 우리가 살펴보도록 하죠. 

4:6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여기 이스라엘 측 리더십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바락이라는 인물이 등장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입니다.

드보라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시대를 통해, 시대를 위해서 뭘 준비하시는가를 봤다면,
바락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가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락은, 여기서 처음 등장하는데, 납달리 게데스에 거주하고 있었어요. :6
그때 하나님께서 드보라 선지자를 통해,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4: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앞에 진치고 있는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네 손에 붙였으니 
바락 너는, 백성들을 만명을 소집해서 다볼산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하셨어요. 

'너는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다볼산으로 가라. 
그러면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군대들을 
기손 강으로 이끌어내서,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  :7

여러분, 이 말씀은 드보라가 하나님께 받은 겁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이 전쟁의 결과에 대해서, 
그리고 그 '하나님의 전쟁'의 결과에 대한 예언을, 
지금 바락에게 전달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래도 바락이 남자이고, 군대장관인데 
'아멘, 제가 가겠습니다!' 이렇게 나와야 당연하지요.

그런데 8절은 참 사사기에서 가장 읽기 거북한 절입니다. 
4:8 '바락이 그(드보라)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말인즉슨 이런 거예요. '그 말은 알겠는데, 당신이 가면 나도 가겠고, 
당신 드보라가 안 가면, 저도 못 가겠습니다!' 

바락은 전쟁이 두려운 거예요. 쫄은 거죠. 
이게 소위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남자인데, 군대 장관인데, 뭐 이래요? 

그런데 용기라는 것은, 겁이 없는 게 용기가 아니라... 
겁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그 무서운 피를 철철 흘리는 격투기 선수들도, 
어리너(링)에 올라가기 전에 '겁이 난다' 그래요. 두들겨 맞을까봐 두렵대요. 

전쟁에 올라가기 전에 그게 정상이에요. 
그래서 '용기'라는 것은, 겁이 없는 게 아니고, 겁이 남에도 불구하고 
그 겁을 넘어설 줄 아는 겁니다. 
어쨌든 팩트는.. 그는 두려웠고, 무서웠고, 마음이 쫄아 있었어요. 주저했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히브리서에 보면, 이런 놀라운 기록이 담아져 있습니다. 
히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히11장은 '믿음 장'이에요. 
믿음의, 신앙의 위대한 사람들이 명예의 전당처럼 헌정되어 있는 장이 
히브리서 11장입니다. 그래서 히11장을 사람들은 '믿음 장'이라고 불러요. 
믿음의 영웅들이 쫙 등장을 해요. 

그런데 여기 '믿음의 명예의 전당' 명부에, 누가 등재되어 있어요? 
이 바락이 믿음의 전당에 헌정되어 있어요. 

성경은 이 사람에 대한 통시적이고 종합적인 결론으로 '믿음이 있다'고 본 거예요. 
그러면 사사기 4:8절하고 앞뒤가 안 맞아요. 이게 성경의 모순이에요. 충돌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종종 이런 구절을 만날 때마다, 
성경을 해석하는 또 다른 시선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보통 "기억의 재구성"이라고 얘기합니다. 

삿4:8절도 팩트입니까, 아닙니까? 팩트예요. 사실이에요.
그런데 히11:32절도 팩트입니다. 
이런 성경의 충돌을 이해하는 방식이 있어요. "기억의 재구성" 

무슨 얘기냐 하면, 어떤 교훈과 특별한 메시지를 위해서는 
그 과거의 어떤 팩트에 가까운 스토리를 교훈과 메시지를 위해서 재구성하는 겁니다. 
기억을... 그래서 그 부분만 강화시키는 거예요.      주1)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의 결론을 보니까, 바락을 '믿음의 위인'으로 평가를 내놨어요.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성경 기자의 손을 통해, 하나님이 평가하신 겁니다. 
그는 어쨌거나 바락은 믿음의 위인이에요. 

▲그러면 도대체 우리가 생각했던 '믿음'이라면, 드보라가 그런 메시지를 전했을 때 
'아멘'하고, 주저함 없이 담대한 표정으로, 눈에 이글거리는 불꽃을 튀기면서
나아가는 게 믿음의 모습인데, 그러질 못한단 말이에요. 

'드보라, 당신이 가면 나도 가겠고, 당신이 안 가면 나도 못 갑니다' 이렇게 했단 말이죠. 
어디서 바락의 믿음을 찾을 흔적이 있겠는가요? 자, 설명이 좀 필요해요. 

우선 바락은, 말 그대로 두려웠고, 무서웠고, 쫄아 있어요. 
그러니까 자기에게는 이 싸움을 용기를 내서 싸울 수 있는 
어떤 자질과 어떤 용기도 없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까 누구를 붙들죠? 드보라를 붙들어요. 
그러면 잘 보세요. 이게 단순히 한 여인을 의존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그 당시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권위는 누구겠습니까? 드보라 입니다. 

드보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대리해서 나라를 섬기고 통치하고 있어요. 
그러면 바락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권위는 누구겠습니까? 드보라예요. 

그러니까 바락이 '당신이 가면 나도 가고, 안 가면 못 갑니다'라는 말은 
사람을 의존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고백이에요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간절하고도 처절하고도 필사적인 매달림이에요. 
하나님은 이걸 믿음으로 봤어요. 이해가 됩니까? 

우리도 사실 그렇잖아요. 
여러분, 우리는 믿음 하면 '예스! 아멘! 가자! I can do it' 
이런 것만 믿음이라는 고정적 그림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살다 보면, 쫄아들 수밖에 없고, 두렵기도 하고, 
'이건 내가 해도 되는 일일까? 이러다 망하면 어떻게 되지? 
이번에 또 다 들어먹으면 어떻게 되지?' 이런 마음이 듭니까, 안 듭니까? 들어요... 

▲자 그 다음 이야기를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고, 
우리가 바락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정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4:9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네가 이 전쟁의 승리에 대한 열매는 거두지 못할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이제 전쟁터로 가는 거죠. 드보라는 예언하기를
'여인의 손에, 그 전쟁의 승리의 마지막 마침표를 맡길 거래요.' 

그 여인의 이름이 누구였습니까? 야엘이었습니다. 이방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전쟁 승리의 영광을 받게 될 거래요. 

여러분,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이 이렇게 신묘막측합니다.  
4: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만 명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바락은 납달리 지파 출신이죠.  4:6
납달리 지파 옆에는 스불론 지파가 살고 있었죠. 
지금 전쟁이 벌어지는 지역이, 가나안 북부 갈릴리 호수 윗쪽인데,
거기서 제일 가까운 지파의 기업이, 납달리와 스불론 이었던 겁니다.
*이렇게 사사기의 전쟁은, 이스라엘이 나라를 갖추기 전이고, 대부분 국지전이었죠.

두 지파의 군대를 게데스(4:6)로 부르니 1만명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다볼산으로 올라갔어요.   주2) 지도

4: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시스라에게 알리매'

이렇게 '올라간다' 라는 말이 반복되어 있죠.  4:10, 12
산이기 때문에, 다볼산으로 소집을 했기 때문에 '올라간다'라고 표현을 하고 있어요. 

또한 '올라가다'라는 말이 군대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사용될 때에는 
전투가 예상되는 장소로 군대가 진격하는 것을 가리키죠. 수7:2, 삼상24:22, 왕상9:16 등

▲자 그런데 12절에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적장에게 알립니다. 

지금 다볼 산에 바락이 만명을 거느리고 올라와 있습니다.   *신약의 변화산

4: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 병거 구백 대와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을 
하로셋학고임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맨 아래 지도 참조

시스라가 900대의 철병거와 함께 어마어마한 병력을 기손 강가에다가 모읍니다. 
강가는 높습니까? 평지입니까? 
강은 평지예요. 낮은데예요. 

그럼 생각해 봅시다, 전쟁을 할 때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유리하죠.
그런데 엉뚱하게도, 바락과 이스라엘의 1만 군대는, 다볼산에서 평지로 내려옵니다.

이스라엘이 다볼 산 거기서 버티기만 해도, 철병거가 어떻게 산으로 올라가요?
그래서 가나안 군대는, 지쳐서 스스로 나가떨어지거나 패퇴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다볼산에 올라가 있는 것은, 전쟁의 지형상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 갑자기 벌어지냐 하면, 

4: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여선지자 드보라의 말을 듣고, 이에 바락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평지 기손 강가로 내려가요. 거기 지금 누가 있죠? 
시스라가 철병거를 가지고, 병력들을 모아서 기다리고 있어요. 
근데 거기로 내려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주 유리한 위치에서, 스스로 강가 평지로 내려가는 거예요. 
이거는 적의 입에다가 '나 잡아 잡슈' 하고 들어가는 거예요. 
이건 자멸하는 작전입니다. 그런데 (드보라를 통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평지로 내려가요.

자, 그런데 15절을 볼까요?   
그때 갑자기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하는지라'   4:15

물어봅시다. 병거 타고 도망하는 게 빨라요? 걸어서 도망하는 게 빨라요? 
병거 타고 도망하는 게 백번 빠르죠. 

그런데 적장 시스라가 그걸 모를 리 없잖아요. 
그런데, 그가 자랑하던 병거를, 이제 내려서 걸어서 도망을 합니다. 
그러면 지금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는데, 철병거를 지금 쓸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는 거예요. 
지금 그 철병거가 쓸모가 없게 되었어요. 지금 무용지물이 됐다는 얘기예요.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겠는데, 성경에 명확한 설명이 나와있지 않아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마 갑자기 비가 내렸을 것이라고 추측을 해요. 
그래서 시스라의 군대가 진을 친 기손 강변이 온통 진흙뻘 천지가 된 거죠. 4:13참조
그러니 철병거가, 그 진흙뻘에 빠져서, 바퀴가 굴러가지 않는 거죠. 말들을 날뛰고요.

그리고 15절에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칼날로 혼란에 빠졌다'는 말은, 서로 칼로 쳤다는 얘기죠.
고대 부대는, 부족들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종종 이렇게 서로 부족간에 다투는 일이 많았죠. 
그래서 시스라의 군대가 자멸해 버린 겁니다.

▲이제 시스라가 급해서 맨발로 도망을 가요.  :15
도망을 가는데, 거기서 가까운 게데스에 누가 살았는가 하면, 
자기 친구 헤벨, 야엘의 남편이죠. 
자기하고 서로 어려울 때 도와주기로 평화조약을 맺은 친구 헤벨의 집이 있었어요. 4:11
거기로 쏙 들어갑니다. 

4:17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근데 시스라가 어디서 죽어요? 
헤벨이 장막이 피난처인 줄 알았는데, 자기 무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게 바로 세상의 꾀예요. 세상의 꾀를 따라가면.. 잘 될 것 같지만, 결국은 무덤이에요.

헤벨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고, 모세의 장인 호밥의 후손인 이방인이에요. 4:11
그러니 '가나안'은 헤벨의 족속과 화친 조약을 서로 맺고 있었던 거예요.  4:17

그러니 가나안의 군대장관 시스라는 
당연히 안심하고 '여기야말로 나를 위해서 예비된 피난처구나' 판단하고, 
그 전쟁터에서 가까이 있던 그 집으로 쏙 피난해 들어갑니다. 
그리고 누가 자기를 찾아오면 '없다, 모른다'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4:20

그런데 본문 중간에, 갑자기 엉뚱하게 한 가정이 이사하는 기록이 등장을 해요. 4:11
그 헤벨이 이사를 어디로 갑니까? 즉 전쟁터가 벌어질 가까운 게데스에 이사를 해요. 
한 사람의 사사로운 거주지, 이전 마저도 누구의 주권을 비껴갈 수 없어요. 
하나님의 주권을 비껴갈 수 없어요. (하나님이 미리 판을 깔아놓으신 거죠)

세상에 자기는 '여기가 피난처다' 하고 들어갔는데, 거기가 자기 무덤이 됐습니다. 
헤벨의 아내 야엘이,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서 즉사시킵니다. 

그러니까 최종적으로, 이 적장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의 최종적 승리를, 이방 여인의 손으로 마침표를 찍게 만듭니다. 

헤벨의 아내 야엘은, 모세의 장인 호밥의 후손으로서, 겐 족속 이방인이었어요.

여기서 우리가 한번 고민해야 될 과제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믿어야 될까요? 
아니면 철병거 9백승, 군대 규모, 사람 숫자, 미래 예측, 전망, 분석... 이런 걸 믿어야 될까요? 

본문의 답은... '종려나무 아래'로 들어가야 돼요.  4:5
말씀을 들으러 '종려나무 아래'로 가야 돼요.

이 시대가 뒤죽박죽이 되고 대혼란일수록, 
고요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앉는 집중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믿습니까? 

우리가 선교를 다니다 보면, 얼마나 종일 뜨거운 햇볕 아래서 피곤하고 지칩니까? 
그런데 그때, 우리가 왜 저녁마다 선교지 예배당에서 함께 모여 집회를 하고, 
말씀을 듣습니까? 왜 아침마다 경건회를 합니까? 

이 시대에 그런 철병거 9백승과 규모와 크기에 압도되어 
장래 자기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종려나무 아래에 가서 말씀을 들으러 나아가는' 집중력을 상기시키기 바랍니다. 
거기에 답이 있단 말이에요. 

또한 바락의 믿음을 우리가 종합해보면, 
바락의 이름이 히11장, '믿음 장'에 등재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뭐였는가 하면, 
그는 분명히 두려워했어요. 쫄아 있었어요. 근심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잘 준비된 사람이 어디 있느냐가 아니라, 
잘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를 찾는 거예요. 

'이게 아닌 길 같은데, 내 배운 바로는, 내 경험상으로는, 내 예측으로는 이게 아닌 길 같은데'
그렇지만 주께서 드보라를 통해 가라고 명하신 길이기에 
찔끔찔끔 거리면서 얼굴은 오만 죽상이 돼가지고 
근심 걱정 가득한 채... 그래도 결국은 가는 거예요. 그걸 믿음이라고 한다고요. 믿습니까? 

전쟁을 수십 년해도, 두려운 건 두려운 거예요. 
목사 수십 년에도, 겁나는 건 겁나는 거예요.
그런데 주께서 명하신 길이기에, 울면서 징징거리면서 조마조마하면서 노심초사하면서 
그냥 발자국을 떼는 거예요. 

'아이고 이거 이러다가 내가 옴팍 뒤집어 쓰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도, 순종해서 발걸음을 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 찬양하고,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

주1) 신학(특히 실천신학 및 목회상담학)에서 '기억의 재구성'이란 
트라우마나 깊은 상처로 왜곡된 과거의 사건을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단순히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위로와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고통스러운 기억에 담긴 의미를 바꾸는 작업입니다.

 

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