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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태와 출산의 원리 룻1:1~5 2026년 [데스티니 8]
◑지난 7강 복습
룻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난 7강에서 데스티니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룻기를 통해서 “반대의 원리”를 살펴봤죠.
막힌 우물에서 오벳을 낳는...
그래서 우리가 항상 잘 풀리는 거, 잘 되는 거, 또 나의 은사
그런 것에만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원수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그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려고, 우물을 막아버린다고 했죠.
그래서 어떤 것들은... 나에게 잘 풀리지 않는 것, 또는 절대로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그렇게 될 것 같은) 소원이 있고,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실 것 같은...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그곳을 여러분 놓치시지 말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데스티니의 우물들을 열어주시고,
거기서 ‘오벳’을 낳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데스티니를 이루게 된다는 뜻)
자 이것이 우리가 지난 7강에서 살펴봤던 얘기고요.
▲오늘 [데스티니 8강]에서, 룻기에 대해서 좀 더 계속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든 성경은 그 성경이 기록된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 없이 기록되는 책은 없죠.
룻기가 기록된 이유가 뭘까요? 룻기가 기록된 이유는
‘다윗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기록된 책입니다.
그래서 룻기의 결국 핵심은 뭐냐면 “룻이 오벳을 낳았더라” 하는 것이
룻기가 기록된 목적입니다. 룻4:17~21
룻이 오벳을 낳고, 오벳이 이세를 낳고, 이새가 다윗을 낳죠.
그래서 다윗왕이 어디서부터 왔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 룻기입니다.
그래서 룻의 데스티니는 뭐냐면 오벳을 낳는 거예요. 룻기는 오벳을 낳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벳을 낳게 되는가요?
우리 지난 시간에도 나눴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가운데서, 룻이 오벳을 낳게 되죠.
모든 남자가 다 죽고 자녀를 낳을 수 없게 되는...
가장 낙심되고,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그 상황에서, 오벳을 낳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어떻게 보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도 뭔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오벳을 낳는 일들이 있는데,
오벳은 각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데스티니죠.
우리의 데스티니를 낳는(이루는) 일들이 있는데,
그것은 물론 어떤 것들은 순적하게 그렇게 이루어지는 일들도 있을 거예요.
할렐루야, 감사하죠.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것들은, 정말 불가능해 보이고, 안 될 것 같고, 낙심되고...
사실 룻기는요. 여러분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책 중에 가장 낙심되는 책입니다.
다 죽는 거로 룻기 1장이 시작하잖아요. 다 죽는 거로 이렇게 시작하는 책은 없어요.
하여간 룻기는요.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낙심되고,
다 죽고 끝나는 얘기로 시작하지 않습니까? 소망이 없어진 거죠.
당시 고대 사회에서 자녀를 낳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절망이었습니다.
오늘날하고는 또 다른 시대였기 때문에,
자녀를 낳는 것이 곧 축복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고,
또 여인들은 남편이 없고 자녀가 없으면,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어요.
그러니까 자녀를 낳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모든 것이 절망스러운 그런 시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가운데, 룻기의 이야기가 시작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순적하게 일들이 잘 풀어질 때만 역사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것들은 아주 낙심되어 보이고, 불가능할 것 같고, 다 끝난 것 같고...
그런 곳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들을, 그런 곳에서조차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반대의 원리’죠.
그리고 이 낙심되어 보이고, 불가능해 보일 것 같은 상황을,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섭리적으로 역전시키셔서... 더 큰 복이 되게 하신다는 거예요.
그것이 룻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혹시 여러분 삶 가운데도 절망적으로 보이고, 낙심되어 보이고, 안 될 것 같아 보이고,
그런 데서 넘어지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 가운데 더 놀라운 역사를 행하실 수도 있어요. 아멘!
그래서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가운데, 오벳을 낳게 하시는 이것이
룻의 이야기이고, 또 데스티니를 출산하는 것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 룻기는, 한마디로 ‘잉태와 출산에 대한 책’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비전을 잉태하고,
그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우리의 삶 가운데 출산할 건가 하는 것에 대한 책이
룻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원리가 ‘반대의 원리’였죠.
우리가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은, 꼭 순적할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막힌 우물 같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오벳을 출산하게 하신다는 거예요.
◑오늘은 두 번째 원리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두 번째 원리는 <선택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을 통해서>라는 거예요.
우리의 선택을 잘 해야.. 자기 데스티니가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반대로 선택을 잘못 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자기 데스티니가 이루어지지 않죠. 차질을 빚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주신 게 뭐예요? <선택>이잖아요.
뭔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죠. 선악과를 주시잖아요. *자유의지
그러니까 이 선택(또는 순종)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 피조물인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적인 기능이에요.
가장 중요한 영적인 기능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순종)하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영적인 미래, 또는 영의 충만함, 반대로 영의 피폐함, 그것도 결정되고요.
또 우리의 미래도 결정되고요. 우리가 어떤 열매를 출산할 건가... 하는 것도 결정됩니다.
다 무엇에 의해서 결정돼요? 선택에 의해서 결정돼요.
지가 선택에 의해서, 순종에 의해서 결정돼요. 오늘은 이 내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데스티니에는 뭐가 있냐 하면.. <선택의 원리>가 있습니다. 선택이 중요하다는 거죠.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받아들이는 거죠.
또 믿음으로 걸어간다고 하는 것도, 모두 우리 선택에 대한 얘기잖아요. *순종
우리 앞에 어떤 낙심되는 상황이 있고, 포기하고 싶은 상황이 있는데,
포기할 건지, 아니면 끝까지 갈 건지... 선택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선택에 의해서,
그리고 믿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다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 그것은 영적으로 무언가를 잉태하게 됩니다.
그리고 잉태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응애~’하고 출산하는 날이 옵니다.
이 잉태와 출산의 원리는, 꼭 좋은 것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 평생의 삶을 통해서,
정말 잉태하지 말아야 될 것을 잉태하고,
그 결과 저주를 세상에 출산하는 사람도 있어요.
요즘 살인사건 얘기로 뉴스에 떠들썩한데, 그런 사람들처럼 *길 가는 여고생 피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철저히 망가뜨리는, 저주를 출산하는 사람도 있고요.
또는 반대로 손양원 목사님이나 주기철 목사님처럼
세상의 축복과 소망을 출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꼭 좋은 것만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출산하지 말아야 될 것들을 출산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열쇠가 뭡니까? 선택이라는 거죠.
내가 무엇을 선택하냐에 따라서... 우리가 출산할 것이 결정되게 됩니다.
*예정론이 강한 장로교에서는 ‘자유의지, 선택’에 관한 강조가 skip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의지 will'의 영역을 skip 하는 것은, 극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가? 내가 오늘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내가 오늘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
오늘 내 무엇을 선택하는가? 그것이 곧 내가 잉태하는 것입니다. 몇 년 후에 열매를 맺죠.
모든 우리의 선택에는 여러분, 크고 작은 잉태가 뒤따라요.
선택했는데 아무것도 잉태하지 않는다는 건 없어요.
심지어 여러분들이 점심으로 뭘 먹었느냐도, 결국 여러분의 삶의 뭔가를 잉태합니다.
건강을 잉태하든지.. 아니면 병을 잉태하든지...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점심 때 여러분이 삼겹살을 드셨다면.. 몇 년 후에 좋은 걸 잉태하진 않을 겁니다.
하여간 우리가 작은 것 하나라도 선택을 했는데.. ’아무런 우리 삶의 영향이 없다‘
이런 건 없잖아요. 아무리 작은 거라도... 하여간 잉태한단 말이에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매 순간 매일매일 선택하는 거에 대해서,
그 선택의 중요성을 인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결국 내 삶 가운데 잉태되게 되고,
그리고 이 잉태된 것이, 결국 언젠가는 출산하게 된다는 거예요.
잉태된 것이 바로 그 즉시로 ‘응애!’ 하고 나오진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잉태해도, 9달 있다가 나오잖아요.
오늘 삼겹살을 먹었다고.. 내일 바로 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 그렇게 쌓이고 쌓이면, 그게 잉태가 되고,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응애!’ 하고 나온다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응애하고 나오는 날이 있다는 거예요.
그날을 여러분들이 인식하셔야 됩니다.
‘내가 오늘 무엇을 잉태하든지 간에, 시간이 지나면, 열 달이 지나면,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응애하고 나올 것이다’ 라는 거예요.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세상 가운데, 축복을 출산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계획들을.. 출산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절대적인 선택은? -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하기
자 이 수많은 선택들이 있는데,
이 선택들 중에 가장 중요한 선택,
다른 모든 선택을 덮고 남을 만한 절대적인 선택이 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내가 어떤 신을 섬기고 따를 것인가 하는 선택이에요.
그것이 룻기가 주고 있는 첫 번째 메시지죠. ‘어떤 신을 섬기고 따를 것인가?’
▲1. 나오미는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기로 선택했습니다.
나오미에게 두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오르바였고, 둘째는 룻이죠.
두 사람 모두에게 똑같은 어려움이 임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자녀가 없는데, 남편들이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길이 막혀버렸죠.
이로 인해서 충격을 받았는지.. 나오미가 모압 땅을 떠나, 이스라엘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그 두 며느리인 오르바와 룻에게도 선택이 주어집니다.
어머니를 좇아서 이스라엘로 돌아갈 결정을 합니다.
이스라엘로 갈 것인지, 아니면 모압에 남을 것인지.. 그리고 두 사람이 상반된 선택을 하죠.
룻1:14~15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첫째 며느리 오르바가 선택한 게 뭐냐면 ‘신’이라는 거예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1:15
그러니까 룻하고 오르바가 중요한 선택을 했는데, 어떤 선택이냐면
‘어떤 신을 따를 것인가?’ 하는 걸 선택한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룻은 영원한 창조주,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기로 선택했는데,
반대로 오르바는 다른 신들, 그 자기 민족 모압의 신들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이 오르바와 룻의 운명, 영원한 운명을 갈랐습니다.
그래요. 여러분, 우리의 데스티니는 결국, 어느 신을 쫓을 것인가 하는 것에서
큰 판가름이 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
영원한 운명의 주를 좇을 것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만들어낸 우상을 좇을 것인가?’
이게 우리의 데스티니를 가릅니다.
△우리 민족도 그렇죠. 우리 민족이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상을 섬기고, 우상을 좇았을 때.. 우리 민족에게 남은 건 한恨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1백여 년 전에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고, 우리 민족이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기로...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정했을 때, 선택했을 때, 그 민족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가 복을 누리고 있는 거잖아요.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시작합니까? 선택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선택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선택한 것이,
결국 여러분의 삶에서 잉태를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어느 신을 선택한다고 하는 것은,
한 번에 구원 사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창조주께서 나에게 허락하시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시는 그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
내 삶 가운데 두지 않은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거에요.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게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마십시오.
그거는 아무리 좋아 보여도 쳐다보지도 마세요.
‘저거 혹시 좋은 거...’ 생각도 하지 마세요.
나에게 허락한 것이 아니면, 아무리 좋아 보이고 아무리 귀해 보여도,
그걸 선택하면 인생 망가집니다.
그걸 선택하는 순간, 물질적으로는 조금 좋을 수 있어요. 그러나 결국 우리 영혼에는요.
잉태하지 말아야 될 것을 잉태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선택해야 되는 건 뭐냐면,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 허락하신 것,
그것이 어떤 기회든, 아니면 그것이 어떤 물질에 대한 거든, 아니면 사람이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청년이 결혼할 때도, 여러분에게 허락한 사람을 선택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 뭐 다른 거 보면 안 돼요.
무슨 뭐 조건 보고, 외모 보고, 뭐 키 보고...
그거 보다가, 다 엉뚱한 선택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외모나 키는요. 나이 50 넘어가면 다 똑같아요.
50까지도 안 가요. 한 10년 같이 살아보면, 더 이상 그게 보이지도 않아요.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진짜로 중요한 게 뭡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사람,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사람!’
이것이 가장 중요한 첫째, 둘째, 셋째 조건입니다.
사람도, 기회도, 재물도... 다 똑같아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게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마십시오.
그거 선택하는 순간, 우리 삶 가운데에 잉태하지 말아야 될 게 잉태하게 됩니다.
그 잉태된 것은, 시간이 지나면 꼭 나와요. 꼭 ‘응애~’하고 나와요. consequence of sin
여러분, 영원히 출산되지 않고, 10년 20년씩 잉태만 되어 있는 아이 보셨습니까?
아니요. 때가 차면 열 달 차면.. 그냥 나오는 거예요.
이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것만 취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또 중요한 선택은.. ‘어떤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
또한 어떤 신을 선택할 것인가만큼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 누구를 만날 것이가? 누구와 함께 할 것이가?’ 입니다.
그러니까 결혼 얘기도 했지만, 사람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어떤 신을 선택하느냐..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복음은 뭐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거잖아요.
복음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얘기란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선택했다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뭐냐 하면..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친구, 직장, 교회의 선택
이게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 다음으로 중요합니다.
여기에 대해선, 아래에서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2. 둘째, 선택의 원리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선택했으면 끝까지 붙좇으라>는 거예요. 1:14
여러분 물리적으로도요. 아이가 잉태되면 두 가지 결과가 있습니다.
건강하게 출산을 하든지 아니면, 슬프지만 유산이 되든지... 그렇죠?
이렇게 두 가지 결과가 있어요.
데스티니를 잉태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두 가지 결과가 있어요.
비록 우리가 올바른 것을 선택했고, 그래서 축복을 잉태했어도,
그것이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중간에 유산될 수도 있습니다.
룻과 오르바의 이야기를 보면, 이 두 가지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룻도 그렇고 오르바도 그렇고... 처음에는 다 올바른 선택을 하는 걸로 시작됩니다.
1:6~7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그러니까 처음에는 둘 다 나오미를 따라서 모압을 나왔어요.
나오미가 이스라엘에 돌아가려고 할 때,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둘 다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거죠. 잉태가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룻은 이 잉태의 결과 오벳을 출산하고, 오르바는 그렇지 못했죠.
오르바는 데스티니가 유산되어 버렸습니다.
▲왜 오르바의 데스티니가 유산됐습니까? 중간에 모압으로 돌아가 버렸으니까요!
오르바도 처음 선택은 룻과 다르지 않았어요. 옳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유다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섰어요.
문제는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가버린 거죠. 이건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열매가 없는 것,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열매가 없는 것은
이것과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됐다고 하는 것은, 일단 출발은 했다는 거예요.
일단 올바른 출발은 했다는 거예요.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열매가 없는가? 중간에 포기한 거죠. 중간에 멈춘 거예요.
룻이 아니라 오르바가 된 것입니다. 이건 열매가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오르바가 나오미를 좇아서 끝까지 갔다면,
누가 보아스랑 결혼했겠어요? 네, 오르바입니다.
성경에 명확히 누가 첫째 며느리고, 둘째 며느리인지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오르바가 큰 며느리였을 거라고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오르바의 이름이 룻보다 먼저 나오거든요.
그런데 명확하게 오르바가 첫쨰라고 못 박아놓지는 않았어요.
만약에 오르바가 큰 며느리라면 뭐예요? 누가 보아스랑 결혼하는 거죠?
오르바가 결혼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보아스가 했던 게 뭐냐면, 보아스가 룻과 결혼한 것은
기업무를 자를 찾는 순서에 의한 거잖아요. 그 순서에 의한 거였기 때문에,
당연히 순서(서열)에 의하면 오르바가 먼저입니다.
그러면 오르바가 오벳을 낳는 거죠. 오르바가 오벳을 낳는 거예요.
이 다윗의 조상이 되는,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계보를 이어가는 그 족보에
오르바가 오를 수 있었고요.
성경의 여덟 번째 책은 <룻기>가 아니라 <오르바記>가 됐어야 되는 거죠. 그렇잖아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르바는 이 놀라운 영광을 놓칩니다. 왜요?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가죠.
이게 오르바가 오벳을 낳지 못한 이유이고,
오늘날 우리가 믿음의 유업을 남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소망이 없어 보이고 낙심되고 그러면... 그만 멈춰서는 거예요. 포기하고 돌아가는 거예요.
1:12~13 ‘내 딸들아 되돌아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무슨 말이에요? 나를 좇아오지 말라는 거예요.
처음에 나오미가 출발하니까.. 두 며느리 다 좇아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길을 가다가 ‘며느리들아 돌아가라, 돌아가! 나는 소망이 없다.
나는 나이도 많고, 애를 낳기도 힘든 나이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형사취수제(수혼법, 계대결혼 이라고도 함)’라고 해서
가족의 대를 이어주는 제도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나는 지금 아들이 없다.
그런데 혹시라도 내가 늦둥이를 낳으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문제는 시아버지도 없다.
시아버지도 돌아가셨고...’ 이게 가능성이 없는 얘기라는 거예요.
아무 소망이 없는... ‘그러니까 너희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라’
이게 진짜 소망이 없는 얘기죠.
오늘날하고도 상황이 다르거든요.
당시에 남편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 당시에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낙심되고 힘들고 그러니까, 오르바가 포기하고 돌아갑니다.
항상 문제는 여러분 뭐냐면, 상황이 낙심되어 보일 때예요.
여러분, 모든 것이 잘 되고, 모든 것이 잘 풀어지고, 막 소망이 보이고...
그런 때에 포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중도 포기할 때 보면, 항상 포기할 만한 이유가 있어요.
상황이 정말 힘들든지.. 정말 낙심되든지.. 아무런 가능성이 안 보이든지...
그럴 때 사람들이 포기를 하지요. 가능성이 전혀 안 보일 때...
장래 소망이 있고.. 일이 잘 풀어질 듯 하게 보이면... 왜 포기하겠어요?
항상 오르바의 선택이 (중도 포기가) 이루어지는 때는 언제냐면...
오르바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요.
이 이야기를 보면, 오르바도 인간적으로 굉장히 좋은 사람이거든요.
아주 좋은 사람이고, 또 처음에는 끝까지 따라가려고 나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르바의 선택이 일어날 때 보면,
항상 그 앞에 뭐가 있냐면.. 힘들고, 낙심되고, 아무런 가능성도 없어 보이고,
이렇게 가면 뭐가 있는 거지?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런 거예요.
그럴 때 결국 낙심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돌아서게 됩니다.
소망이 없어 보일 때, 상황이 안 좋을 때,
또 주위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약속의 자리를 떠나기 시작할 때...
그래서 ‘나만 남은 것 같을 때...’ 이럴 때 사람들이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단이 부지런히 ‘우물을 막고’ 다니는 거 아니겠습니까?
포기하고 돌아가게 하려고, 잉태하는 삶의 비결은 이거예요.
이때 이때 내려놓고 싶을 때,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
상황이 안 좋아 보일 때,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다 떠나는 것 같을 때,
나밖에 없는 것 같을 때, 이때 믿음의 자리를 지키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출산의 열쇠입니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는 성령님에 대한 예표입니다.
소망이 없어 보이고, 상황이 막혀 보일 때도, 룻은 성령님을 좇았다는 거예요.
끈덕지게 좇아갔다는 거예요. 지긋지긋하게 좇아간 거예요. 거기서 열매가 나오는 거예요.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언제까지? 오벳을 낳을 때까지!
이게 여러분, 데스티니를 이루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성령님을 지긋지긋하게 쫓아가십시오. 결국 오벳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가..,. 버티는 거예요. 버티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좋을 때도 있습니다.
좋을 때도 있고, 기도하면 바로바로 응답이 되구요. 그럴 때도 있어요.
뭐 어떤 거는 기도하기 전에도 막 응답되는 것도 있어요. 신나죠.
그런데 인생이 항상 그런건 아니에요.
저도 한 60년 살아보니까, 인생이라고 하는게 항상 그런게 아니에요.
봄이 있으면, 무더운 여름이 있고,
시원한 가을이 있으면, 한 겨울도 있구요. 그런 거예요.
생각처럼 안 되는 때도 있고요. 기도해도 응답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요.
많이 기도해도 응답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요.
금식을 해도 하나님이 안 들으신 것 같은 때가 있고요. 이런 때가 있어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 같고.. ‘야 이렇게 해서 뭐가 되는 거지?’
미래가 안 보이고, 다 끝난 것 같고, 가능성도 없어 보이고... 그러는 때가 있어요. 많아요.
젊은 사람들은 아직 인생을 얼마 안 살아봤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살아보십시오. 그런 때가 많아요.
여기서 신앙의 비결은 뭐냐면.. 딴 거 없습니다. 그냥 버티는 거예요. 그냥 버티는 거예요.
비가 와도 버티고.. 눈이 와도 버티고.. 마귀가 막 난리를 쳐도 버티고..
때릴테면 때려라 난 안 비킨다... 그러고 그냥 그냥 하여간 버티는 거예요.
이게 룻이 보여준 믿음 아닙니까? *요즘 유행하는 시쳇말로 ‘존버 정신’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오르바의 선택이 맞죠. 거기 가봐야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더구나 이 여자는, 거기 돌아가면 이방여자입니다.
뭐 이방인을 개나 돼지 취급하는 사람들인데...
그것도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그것도 남편도 없는 여자가... 거기 이스라엘에 돌아가면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죠. 끔찍한 것밖에 기다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소망도 없고, 가능성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그래서 오르바의 선택이 지극히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오벳을 낳는 열쇠는 뭐냐 하면, 이런 상황에서도 좀 미련하게 좇아가는 거예요.
그냥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미련하게 좇아가는 거예요.
사람들 다 떠나서 아무도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나 여기 있으라고 했으면 있는 거야’ 그리고 그냥 버티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 가보면, 누가 열매를 맺는가 보면요.
그렇게 버틴 사람들이 열매를 맺습니다.
참 신기해요. 열매를 맺는 방법은 정말 이거 하나밖에 없어요. 버티기!
▲저도... 오랜 시간동안 사역을 해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어떤 사람은 은사가 많은 사람도 만났고요.
‘야 저 정도 은사가 있으면, 정말 엄청난 열매를 맺겠구나’
또 어떤 사람은, 정말 하는 것마다 잘 풀리는 사람도 봤고요.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보니까, 누가 열매를 맺었나 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열매를 맺는 게 아니더라고요.
은사가 많다고 열매 맺는 것도 아니고요.
누가 열매 맺었나 보면.. 딱 하나예요. 무식하게 버틴 사람들!
그냥 우직하게 버틴 사람들..
끝까지..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길이라면, 뭐 낙심이 돼도 그냥 가고,
보이는 게 없어도 그냥 가고... Keep going 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결국 열매를 맺더라고요.
▲이게 룻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이게 룻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예요.
‘끝까지 붙쫓았더라’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14
룻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은 나오미를 끝까지 붙쫓았더라’
여러분은 끝까지 성령님을 붙쫓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선택의 원리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장소>입니다.
이스라엘로 돌아갈 것을 선택해야지, 모압에서 아이 낳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가 있어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이 있어요.
거기 거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각사람 각사람에게는 약속의 땅이 있습니다.
교회가 될 수도 있고, 사역이 될 수도 있고, 일터가 될 수도 있고,
또 선교사들에게는 그 민족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 머물러야 할 약속의 땅이 있다는 거예요.
거기 머물러야 돼요. 거기를 떠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이 주셨던 비전이 뭐냐면
<선교와 다음 세대>였어요.
그래서 지난 26년 동안 한 번도 이것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선교와 다음 세대”를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고요.
아무리 좋은 사역의 기회가 있어도, 이게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아 이렇게 하면 교회가 부흥하고 좋대요’ .. 그거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왜요?
‘우리를 보내신 땅이 있다!’
우리를 보내신 땅이 있기 때문에 거기 그냥 머물러 있는 겁니다.
어디서 잉태할 것인가? 이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오벳을 잉태케 하는 보아스는, 약속의 땅에서 만나는 거지, 모압 땅에는 없습니다.
모압 땅에서도 아이를 가질 수는 있을지 몰라요. 그러나 오벳은 아닙니다.
약속의 땅이 아닌 곳에서도 열매를 맺을 수는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열매는 아닐 거에요.
약속의 땅에 머무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자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만나게 하십니다.
◑4. 자 그래서 이 선택의 네 번째 요소는 <사람>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끝까지 붙쫓기를 선택하고, 약속의 땅에 머물기를 선택했다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네 번째는 사람이에요.
데스티니를 이루기 위해선,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시는 사람, 보아스
그와 디바인 커넥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도와줄 사람을 만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맺어주시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이게 디바인 커넥션이라고 하는데, ‘신적인 연결’ 이런 거죠.
하나님이 맺어주시는 관계가 있다는 거예요.
여기서 언약적인 관계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데스티니를 이루어 가십니다.
‘어디에 가야 할 것인가,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그것은 모두 우리 선택이에요.
선택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선택에 의해서 무엇을 출산할 것인지가 결정됩니다.
그리고 이 선택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속할 때, 오벳을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제 인생에도 하나님이 만나게 하셨던 디바인 커넥션들이 있었습니다.
1) 첫 번째는 당연히 저희 집사람이고요.
여러분, 제가 외모 보고 결혼한 게 아닙니다. 물론 설득은 잘 안 되겠지만,
외모 보고 결혼한 건 진짜 아니에요.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결혼한 거지요... 안 믿네... 진짜입니다. 진짜예요.
2) 두 번째로 중요했던 만남이 있다면 제 영적인 멘토와의 만남이겠죠.
제가 20대 중반이었을 때, 미국에 유학생으로 가서
평생의 영적인 멘토가 되시는 선교사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재환 선교사님이신데 지금까지도 저에겐 아버지 같은 분이고,
지난 30년, 40년 가까운 교제 동안, 한 번도 관계가 깨진 적이 없어요.
제가 한 번도 딴 데 한눈 판 적도 없고,
20대 후반에 제가 이분을 처음으로 만난 거예요.
이분을 처음 처음으로 만났는데,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어요.
사람이 아닌 것 같았고... ‘아니 똑같이 예수를 믿는데,
왜 저분이 믿는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이 다른 것 같지?’
이게 처음에 느꼈던 충격이었습니다.
마치 어땠냐면 사도행전 속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았어요.
그때 선교지에 계실 때였는데 뭐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간증을 하시는데, 그때 아프리카 감비아 거기서 고아들을 데리고 사셨거든요.
그래서 고아원을 지으려고 건축을 하는데, 그때 공구리(콘크리트) 치는 날이 있었어요.
콘크리트 치는 날은 절대로 비가 오면 안 됩니다. 그러면 망하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비가 오지 말게 해달라고'
그런데 그 날 억수로 비가 많이 왔어요. 억수로 비가 왔는데,
딱 고아원 짓는 그 위에만, 구름이 뻥 뚫려 있는 거예요.
주위에는 다 비가 억수로 오고, 거기 공사현장만 비가 안 오고...
뭐 이런 간증이 그냥 계속 나오는 거예요.
이게 '다른 하나님'인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어떤 느낌이었냐면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냥 글자로 전해지는 종이 하나님 같고,
저분이 믿는 하나님은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 같네...'
그러면서 제 안에 어떤 거룩한 욕심이 올라왔냐 하면
'나도 저런 하나님을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은데...
나도 저렇게 살고 싶은데...'
그것이 오늘날 저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하는 걸 제가 알아요.
'나도 저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싶은데...'
이렇게 시작된 만남이, 지난 30년간 한결같이 이어졌고요.
저는 그래서 그 분과 교제관계를 통해서,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웠고요.
또 선교가 뭔지를 배웠고,
그리고 성경에서 얘기하는 게 뭔지... 그것도 배우게 됐고,
믿음이 뭔지도 배우게 됐고...
그래서 제가 결국엔 풀타임 사역자로 헌신을 하게 됐습니다.
여러분, 이 만남이 없었다면, 오늘 저는 지금 아마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 거예요.
신앙을 떠나서 엉뚱한 짓은 안 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모습은 아닐 거예요.
▲여러분, 만남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그 30년 동안 동행하면서 좋은 일만 있었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죠.
여러분, 사람은 여러분 다 죄인이에요.
한 사람과 오랫동안 동행한다고 하는 것은, 진짜로 힘든 일입니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때도 있고, 중간에 '아이고 뭐 여기만 있냐? 딴 데 가면 안 되냐?'
뭐 이랬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결혼한 것도 아니고, 안 만나면 그만이지..'
그런 위기들이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 안에 주셨던 믿음은 뭐냐면,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관계는 그,렇게 깨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게 깨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힘들어도 그냥 묵묵히
아 그렇다고 뭐 힘든 것만 있었다는 건 아니에요. 제가
전에도 얘기했지만, 저한테는 진짜로 저의 신앙의 많은 부분들을 이렇게 갖추게 해준
진짜 저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신데, 그렇다고 항상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또 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머리가 좀 크고... 그러다 보면,
제가 또 보이는 것들도 있고, 그래서 부딪치기도 하고... 그러는 거죠.
그래도 한 번도 저는 떠날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지금도 한 번도 떠날 생각 해본 적 없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믿고 있고요.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복을 주시는 이유라고 저는 믿습니다.
제 삶에 여러분 복이 있는 것 같으세요? 없는 것 같으세요?
복이 보이세요? 맞아요. 제 삶에 복이 있어요.
그런데 그 복을 받는 이유 중에 하나가, 저는 이거라고 믿습니다.
제가 끝까지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관계를 끌고 나갔어요. 아멘!
△그렇게 목회를 시작하고 나서, 몇 년 뒤에,
또 지금의 제게는 정말 가족같은 목사님들을 만나게 됩니다.
제가 39살 때 호주에 처음으로 집회 초청받아서 가게 됐는데,
가서 만난 사람이 박주연 목사였어요.
그 당시에는 다른 교회를 목회하고 있었는데,
제가 그때 찬양인도를 하러 갔어요. *처음에 워십 리더
아! 그런데 비행기에서 감기가 들어가지고... 전혀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지금 이 정도가 아니라, 쉰 소리밖에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비행기에서 이렇게 내렸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찬양인도는 물 건너간 거죠.
그때부터 제가 멘붕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난 여기에 왜 왔나? 비행기 타고 여기 호주까지 왔는데, 이게 뭔가?'
그러고 있는데... 그때 저 뒤에서 젊은 목사 한 명이
지금은 파워포인트로 가사를 띄우죠. 그 당시에는 그것도 아니었어요.
OHP 그걸로 가사 띄우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over head project
약간 대인기피증처럼 사람처럼, 눈도 안 마주치고, 막 이러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을 이렇게 보고 있는데 성령께서 '너는 저 사람을 만나러 온 거야' 하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뭐 어차피 목소리도 안 나오고 할 것도 없고,
그래서 호주에 가 있는 일주일 동안, 그 젊은 목사님하고만 그냥 주구장창 같이 교제했어요.
거기도 약간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낯선 사람을 그렇게 잘 안 만나요.
그러니까 저하고 둘이서만 아침, 점심, 저녁... 계속 같이 먹고, 계속 얘기하고,
그러면서 교제가 시작이 됐습니다.
그리고 가서 놀랍게도, 그때 저를 초청하셨던 분이,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멀리 왔는데, 목이 쉬어서 찬양인도는 어차피 못할 것 같고...
간증이라도 한번 해주시라고'
그래서 제게 이렇게 짧게 간증 시간을 주셨어요.
그게 목회자 컨퍼런스였어요. 그러니까 39살 병아리 목사가, *안수 2003년에 받음
여러 목회자들 앞에다 놓고, 뭔가 얘기한다고 하는 게... 이게 장난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약간 거기서 간증을 하게 됐는데, 거기에 성령께서 임하신 거죠.
성령께서 임하셔서 거기서 다 울음바다가 되고... 막 통곡을 하고...
그러고 나서는 호주에 있는 교회들이, 저를 초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년에 2번씩, 3번씩... 그 오랜 세월 동안,
10년 동안을 계속 호주를 드나들면서 그러면서, 거기서 관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몇 년 있다가 호주에 있는 박지원 목사님이 전화를 하셔서
자기가 진짜 신기한 청년을 만났는데 만나봐야 된다고
조지훈이라는 형제인데... 근데 그때는 청년이었어요.
아무 긴 설명도 없이 그를 꼭 만나봐야 된다고...
그래서 조지훈 목사님 만나고,
조금 있다가 윤성철 목사님 만나고
또 조금 있다가 김우열 목사님 만나고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만나게 하시면서
거기서 이 디바인 커넥션이 뭔지를 더 깊게 배우게 하시고,
언약적인 관계가 뭔지를.. 관계를 소중히 하는 걸 시작하게 됐어요.
그게 제가 39살 때였으니까, 지금 21년 지난 거잖아요.
자, 퀴즈! 여기서도 위기가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이 사람들은, 여러분, 다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을 꺾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그 중에서 가장 유한 분이 윤목사님이에요.
나머지는 다 윤목사님보다 몇 백 배 더 이렇게 자기 생각을 꺾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여러분, 그 분들과 관계가 쉬웠겠어요? 어렵겠어요? 당연히 어렵죠.
당연히 '에잇 관둬, 관둬'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사람이면, 쉽게 관계를 깨는 게 아니다.'
그 마음 가지고 하루, 또 하루, 5년, 10년 그렇게 관계를 이어가는 거예요.
위기가 항상 있는 건 아닙니다. 가끔씩 그런 위기가 오는 거죠.
그런데 항상 가끔씩 오는 위기를 우리가 돌파하지 못하는 거잖아요.
거기서 유산이 되는 거예요.
진짜로 여러분, 그 만남을 통해서 보아스와의 만남을 통해서, 오벳을 낳기 원한다면
관계를 깨지 마셔야 돼요. 적어도 하나님이 맺어주신 관계라면...
관계가 힘들다고 막 깨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참고 견디고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고,
그러면 그거 넘어가면 또 사랑이 더 깊어져요.
우정도 더 깊어져요. 그렇게 해서 끝까지 가는 겁니다.
그랬을 때 오벳을 낳게 되는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에게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냥 스쳐 지나가는 목사입니까? 아닙니다.!
젊었을 땐 몰라 좀 봐야 하지 않아 보니까요.
목회자는요. 여러분 성도들은 어떤 목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 참 중요하더라고요.
근데 반대도 똑같아요. 목사도 어떤 성도들을 만나느냐 하는 게 참 중요해요.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목사님들도.. 성도를 잘못 만나면요. 목회 완전히 망합니다.
제가 주변에서 많이 봤어요.
그래서 이게 보니까, 목회자와 성도의 만남은,
이게 하나님이 맺어주신 만남이어야 돼요.
그래서 목사는 어떤 성도들을 만나는가?
그리고 성도들도 어떤 목사를 만나는가?
그리고 그 만남을,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거라고 하는 믿음이 있다면, 끝까지 지켜야 돼요.
끝까지 지켜야 되고, 그리고 축복해야 되고,
서로의 데스티니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기를 희생해야 되고,
아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하려고 제가 안 했는데,
이 만남을 통해서 데스티니가 이루어진다고 했을 때,
우리는 항상 '저 사람이 나의 데스티니를 이루어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내가 저 사람의 데스티니를 이루어주는' 거예요.
그랬을 때, 그 안에서 함께 데스티니가 이루어져 가는 거지,
'저 사람이 나의 데스티니를 이루어준다고' 생각했을 때는,
사람을 이용해 먹는 것밖에 안 돼요. 거기에는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뭔가를 출산하는 데스티니를 출산하는 만남은
내가 저 사람의 요나단이 되는 것이지, 내가 다윗이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다윗이고 너는 요나단이니까, 너는 나를 위해서 죽어!'
거기에는 아무런 열매가 없어요.
목회자와 성도도, 서로에 대해서, 그 마음이 있어야 돼요.
'내가 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루어주는 요나단이 나야!'
성도도 목사에 대해서, 목회자에 대해서 그 마음이 있어야 되고,
목회자도 당연히 그 마음이 있어야죠.
또 목회자도, 성도들을 '그냥 내 목회를 성공시키기 위한 그런 희생양'으로 보면요.
그거 안 돼요. 그건 잘못된 거고,
'성도님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부르심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저 부르심을 내가 이루어지도록 도울 수 있을까?'
서로가 그 마음을 가지고, 또 서로를 좀 불쌍히 여기고... 그렇게 관계를 쌓아가는 거죠.
아니 목사라고 무슨 통뼈입니까?
제가 여러분보다 신앙이 좋으면 얼마나 더 좋겠어요?
조금은 더 좋을 거예요. 근데 그렇다고 뭐 제가 예수님도 아니고,
당연히 저도 부족한 것도 많고...
여러분보다 조금 더 신앙생활을 오래 했고, 조금 더 기도했고,
조금 더 영적으로 앞서갈지 모르겠지만,
그래봐야 한두 발 앞서가는 거지요...
그게 뭐 완전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서로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있어야 돼요.
'아, 목사님도 참 힘드시겠다'
그래서 목사가 뭐 좀 실수를 해도
'아이고 목사님도 뭐 실수하실 수 있지.. 그래도 진심은 있으셔' 아멘!
서로에 대해서 그 마음들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려고 하고..
제가 부족한 게 있겠죠.
그러면 '목사가 왜 이래?' 이럴 게 아니라,
여러분이 그 빈자리, 부족한 자리를 좀 채워주면 되잖아요. 아멘!
그렇게 했을 때 그 안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들이 이루어져 가는 거예요.
관계는 그렇게 지켜가는 거예요. 관계는 그렇게 지켜가는 거예요.
관계를 여러분 쉽게 맺고 쉽게 끊는 거... 그거 절대 영적이지 않습니다.
관계를 쉽게 맺고 쉽게 끊는 사람치고, 영적인 열매 맺는 사람은 못 봤어요.
관계는 여러분, 쉽게 맺고 쉽게 끊는 게 아니에요.
진중하게 선택하고, 선택했으면 끝까지 가는 거예요. 아멘!
오벳을 꼭 낳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우리 이 시간 같이 기도합시다.
함께 기도하실 때... 잉태와 출산의 열쇠는 뭐냐 하면,
출산하기 위해서는 잉태의 기간을 버텨야 된다는 겁니다.
출산을 위해서는 잉태의 기간을 버텨야 된다는 겁니다.
아이를 낳아보신 어머님들은 다 아시잖아요. 잉태의 기간이 쉽지 않죠. 힘들죠.
특별히 여름에 임신해가지고 이렇게 있어보면, 얼마나 힘들어요?
또 출산은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출산이 참 어렵고 힘들고, 또 어떨 땐 생명에 위협이 오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버텼을 때, 오벳을 안게 되는 거잖아요.
이게 영적으로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우리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 제가 오벳을 낳을 때까지 버티겠습니다.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절대로 가볍게 보지 않겠습니다.
허락하지 않으신 것에 한눈팔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성령님을 좇아가겠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신 관계들을 끝까지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자아들을 꺾어주시고,
성령님 우리 안에 충만히 역사하여 주십시오!'
이 마음 가지고 우리 '주여!' 한번 부르짖고 다같이 합심해서 기도하시겠습니다.